<일요초대석> 동물구조단체 위액트 함형선 대표

“구조한 개들이 행복했으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상처를 주는 것도, 치유해주는 것도 모두 인간이다. 말 못하는 동물은 학대하는 자와 구조하는 자 사이에 놓여 있을 뿐이다. 인간에게 괴롭힘을 당해도 인간을 사랑하는 이상한 존재들.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던 동물이 ‘반려동물’이 되는 순간, 비로소 인간은 사랑을 배운다.

지난달 14일 충격적인 기사가 나왔다. 경기 김포의 한 빌라서 한 남자가 2층 높이서 개를 던진 것이다. 당시 이 장면을 10세 자녀가 보고 있던 사실이 드러났다. 바닥으로 떨어진 개는 오른쪽 앞다리에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

제보받으면
일단 현장으로

이 같은 사실은 동물 구조단체 ‘위액트’에 의해 알려졌다. 위액트에 따르면 지난 12일 “누군가가 작은 강아지를 건물 2층 창밖으로 던져 구급차가 출동했다. (동물)학대는 오랜 시간 지속된 것으로 보인다”는 내용의 이메일이 들어왔다.

바깥으로 던져진 개의 주인으로 보이는 부부는 “학대한 적 없다”고 반복했다. 하지만 위액트가 확보한 CCTV 영상에는 부부가 다툼을 벌이다가 개를 집어던지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겼다. 여성이 개의 목덜미를 잡아 올리자 남성은 개를 확 빼앗아 창문 밖으로 던졌다.

현장에 있던 아이는 부모가 집으로 들어가자 서둘러 1층으로 향했다.


함형선 위액트 대표는 학대 정황이 담긴 이메일을 확인한 후 현장으로 출동했다. 함 대표를 비롯한 활동가들은 학대 의혹을 부인하는 부부에게 소유권 포기 각서를 받기 위한 대치에 들어갔다. 그의 요청에 활동가들은 늦은 시간에도 한달음에 현장으로 달려갔다. 결국 부부는 소유권을 포기했고 개는 동물병원으로 옮겨졌다.

지난 24일 서울 중랑구의 한 사무실서 만난 함 대표는 구조한 개의 상태를 보기 위해 동물병원에 들렀다가 온 참이었다. 현장에 출동한 순간부터 구조한 개를 동물병원으로 옮길 때까지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고 말했다. 학대받은 개를 학대자와 분리하고 병원서 치료가 시작되자 한숨 돌린 모양새였다.

함 대표는 “아이가 보고 있는 상황서 개를 2층에서 집어던진 것은 동물 학대이면서 아동 학대다. 위액트는 (학대자에 대한)고소‧고발을 진행하지 않는 조건으로 소유권 포기 각서를 받았지만, 현장에 경찰이 출동했고 관련 민원이 제기돼 조사가 이뤄질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함 대표와 마주 앉은 중랑구의 사무실에는 ‘네팔’이라는 개가 있었다. 김혜미 위액트 업무지원팀장이 입양한 개로 2019년 속초서 일어난 산불 현장서 구조됐다. 검은색 발바리종의 네팔이는 낯선 사람들의 등장에도 짖지 않고 의젓하게 앉아 있었다.

2015년 자원봉사 하다가
2018년 단체 만들어 활동

사진 촬영을 할 때도 반려인인 김 팀장을 눈으로 좇을 뿐 입질 한번 없이 사진기자의 주문에 따랐다.

김 팀장은 “검정 개는 한국서 입양이 잘 안 되지만 발견 당시에는 작고 귀여워서 충분히 입양될 것으로 생각했어요. 그런데 왜 내게 와 있는 거지?”라면서 웃어 보였다. 그러면서 “(네팔이는)개가 이렇게 완벽할 수 있나? 생각이 드는 아이에요. 더 잘해줄 수 있을 것 같다고 자책하게 만들죠”라고 애정을 드러냈다.


함 대표도 네팔이를 바라보면서 “눈이 그윽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함 대표는 2시간 남짓 이어진 인터뷰서 시원하고 거침없는 언변을 보여줬다. 무슨 질문에도 망설임 없는 대답이 나왔다. 2018년 위액트를 시작할 때, 그보다 더 전인 2015년 개인 활동가로 일하던 시절부터 고민한 흔적이 답변에 묻어났다. 그러면서도 조심스러웠다. 내용은 곧은 직선이었지만 표현은 둥글었다.

함 대표와 위액트는 같이 성장했다. 마치 게임서 ‘퀘스트’를 깨듯 장애물을 만날 때마다 조금씩 진화했다. 함 대표는 2015년 ‘보초 봉사’를 시작으로 이 세계(반려견 구조)에 발을 들였다. 경기 하남시 개 농장 구조 활동에 참여한 게 계기가 됐다.

그는 “보초 봉사를 하고 집에 갔다가 그 개들을 보고 싶다는 마음에 다시 찾아간 게 시작”이라고 회상했다.

함 대표는 “한 동물 구조단체가 개 농장주에게 소유권 포기 각서를 받았다. 그런데 개장수들이 개를 자꾸 훔쳐 간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SNS에 보초를 서줄 사람을 구한다는 글을 보고 현장으로 갔다”며 “개 짖는 소리는 들리는데 불빛이 없어 개를 볼 수 없었는데, 다음날 다시 찾아가 밥과 물을 주고 똥을 치워주는 봉사를 했다”고 말했다.

환한 낮에 개를 보니 정이 들었다. 함 대표는 개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해외 입양을 떠올렸다. 개 농장주로부터 소유권 포기 각서를 받았지만 일정 기간 입양되지 않으면 안락사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당시 동물 구조 현실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그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함 대표는 “당연히 국가가 얘네(개)를 다 살릴 것으로 생각했다. 지금 일반인이 학대받는 개를 보면서 하는 생각을 똑같이 하고 있던 셈이다. 그때부터 이 개들을 위해 뭘 할 수 있을지 생각했다. 밥과 물을 주고 똥을 치워주는 것 이상으로, 얘네한테 그 하루 말고 그 이상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인터넷 사이트를 뒤져 해외 동물 입양 단체를 찾아 이메일을 보내기 시작했다.

위기 때마다
단계적 도약

함 대표는 당시 같이 봉사하던 교포 친구 한 명과 ‘animal rescue organization’이라는 검색어를 쳐서 나온 모든 단체에 연락했다. 그중 10%나 연락이 왔을까? 개인이 연락하니 사기꾼으로 보는 느낌이었다. 조금이라도 ‘있어 보이는’ 팀 혹은 단체의 이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것이 바로 위액트의 시작이다. 이후 위액트는 단체의 성격을 덧입으면서 규모를 키워갔다. 초반에는 사비로 구조 활동을 진행했다. 하지만 구조하는 개체 수가 늘어나면서 사비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후원 요청이 필요해 단체 등록을 진행했고 간간이 기업으로부터 들어오는 후원에 기부금 영수증을 끊어주기 위해 사단법인을 발족했다.

“구조 활동 과정서 인프라스트럭처(Infrastructure, 기반)가 필요하면 그때그때 만드는 식이었다. 순서가 좀 거꾸로 됐다”며 웃음 짓는 함 대표는 “말 그대로 제약이 걸릴 때마다 ‘이렇게 해보자’ ‘저렇게 해보자’ 하면서 지금의 형태가 됐는데, 아직도 배울 게 많다”고 자평했다.


위액트가 단체의 성격을 띠고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한 시기는 2021년이다. ‘남양주 개 농장’ 구조가 있던 때로 위액트의 터닝포인트가 된 시기다. 위액트 활동가들은 ‘남양주의 악몽’으로 부르는 사건으로 2021년과 2023년에 두 차례에 걸쳐 진행한 동물 구조 활동을 뜻한다.

동물 학대를 바라보는 함 대표의 인식이 ‘사람’에서 ‘제도’로 변화하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함 대표는 “처음에는 방치된 개가 있다는 제보를 받고 현장에 간 것이었다. 개 농장, 번식장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는데 개를 구조하는 내내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며 “한두 마리가 아닌 최소 수십 마리가 근처에 있다는 생각이 들어 주변을 뒤졌더니 비닐하우스가 나왔다. 처음부터 끝까지 개로 가득찬 곳이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함 대표는 비닐하우스 시작부터 끝까지 달리면서 영상을 촬영했다. 1분 남짓한 영상에 담긴 개의 숫자는 어림잡아 100마리 정도였다. 문제는 이런 비닐하우스가 또 있었다는 점이다. 그 옆에도, 또 그 옆에도. 위액트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4명의 번식업자가 모여 만든 곳으로 5개 비닐하우스에 300마리가량의 개가 사육되고 있었다.

사람에 분노
제도 개선으로

그때까지만 해도 위액트의 규모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방치견을 구조하러 간 상황이었기 때문에 현장에 있는 인원도 적었다. 당장 개 농장주로부터 소유권 포기 각서를 받는다고 해도 물리적으로 300마리의 개를 돌볼 방법이 없었다. 입양이나 임시 보호는 둘째치고 당장 밥과 물을 주고 주변을 청소할 일도 깜깜했다.


함 대표는 “도움이 필요했다. ‘우리가 감히 시작도 하면 안 되는 곳에 들어왔는데 어쩌다가 소유권 포기를 다 받아버렸다. 우리의 능력으로는 얘네를 어떻게 할 수 없다. 누구든 이 아이들을 도와주실 수 있는 분들이 있다면 제발 현장으로 와달라’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일반 시민과 다른 동물 구조단체가 위액트의 SOS에 응답했다. 수백명의 시민이 6주에 걸쳐 현장을 찾아 개를 돌봤다. 그 사이 300여마리의 개가 차례로 입양처, 임시 보호처로 가게 됐다.

하지만 그 사이에도 개를 보호할 공간이 필요했다. 개 농장 인근서 2~3주를 버텼지만 농장주들이 물과 전기를 끊으면서 갈 곳을 찾아야 했다. 주변 사람의 제안으로 인근 공터에 머무르기도 했지만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마지막까지 남은 60여마리의 개를 보호하기 위해 경기도 용인에 있는 한 축사를 찾았다. 이것이 위액트 용인센터의 시작이다. 함 대표는 “구조한 개를 보호할 수 있는 우리만의 공간이 생기니까 정말 좋았다”고 말했다.

문제는 2023년 남양주서 같은 일이 반복됐다는 점이다. 위액트 활동가들은 아예 ‘남양주 번식 마을’이라고 명명하고 구조 활동에 나섰다.

함 대표는 “2021년에 그 주변을 이 잡듯이 뒤졌는데도 찾지 못한 개 농장이 발견됐다. 2021년 발견된 개 농장서 1㎞ 정도 떨어진 곳에 아예 드러나지 않은 또 다른 섹션이 있었다. 그때도 200~300마리의 개들을 구조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동물 구조단체 전부가 나서서 개를 구조하는 속도보다 개가 유기되는 속도가 훨씬 빠르고 그 수도 많다. 개 농장서 구조 활동을 하다 보면 새끼가 그렇게 많이 나온다. 처음 예상한 두수보다 20~30%는 더 늘어난다. 수컷은 5~10% 정도고 나머지는 전부 모견이다. 수컷은 강제로 교배하고 암컷은 끊임없이 새끼를 낳는다”고 부연했다.

2021년 남양주 개 농장 사건
단체와 함 대표의 ‘터닝포인트’

이어 “이 개들이 경매장으로 가고 펫숍으로 간다. 장애가 있거나 아픈 개들, 즉 인기가 없는 애들은 죽을 때까지 번식장서 새끼를 낳아야 한다. 펫숍서 개를 사면 안 되는 이유”라면서도 “개 농장이나 번식장서 구조된 개를 불쌍하게 여기면서도 막상 반려견을 키우려는 사람들이 펫숍을 많이 찾는 것으로 아는데, 정말 그 이유가 궁금하다”고 토로했다.

결국 함 대표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과거에는 개를 괴롭히는 등 학대하는 사람에 대한 분노가 컸다면 지금은 알면서도 개선하지 않는 이들에게로 그 화가 옮겨 간 것이라고 분석했다. 개를 학대하는 사람에 대한 처벌 수준이 강해진다면, 개가 펫숍 등을 통해 유통되는 환경을 근절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된다면, 지금보다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함 대표는 “반려동물을 기르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펫숍서 개를 구매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확산된 건 맞다. 일반인에게 물어봐도 10에 7~8명은 펫숍의 문제점을 알고 있다. 하지만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다른 듯하다. 본인이 키우고 있는 반려동물과 학대당하는 동물의 가치를 다르게 보는 것”이라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함 대표가 꾸준히 주장하는 건 ‘루시법’의 도입이다. 어린 동물의 판매를 금지하는 법으로 영국의 한 번식장서 구조된 강아지 ‘루시’의 이름을 따 만들어졌다. 영국에선 2018년 제정됐고 우리나라서도 지난 21대 국회서 발의됐지만 통과까진 이뤄지지 못했다.

함 대표는 “우리나라는 동물권이나 동물 관련 법 자체가 외국과 비교해 너무 늦다. 일단 ‘한국판 루시법’이라도 제정돼야 앞으로 생길 문제를 조금이나마 대비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전했다.

함 대표는 “아무도 반려동물을 기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과거 한 언론과의 인터뷰 답변에 대해 지금도 생각이 바뀌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위액트의 ‘궁극적인 목표’를 묻는 말에는 한참 망설였다. “정말 어려운 질문”이라고도 했다. 생각 끝에 나온 함 대표의 대답은 거창한 무언가를 생각했던 기자의 머리를 두드렸다.

인식과 행동
괴리 안타까워

“우리가 구조한 동물에게 할 수 있는 모든 치료를 해주고, 먹고 싶은 걸 먹게 해주고, 놀고 싶은 걸 놀게 해주고 싶어요. 위액트가 구조한 동물들이 끝내 입양 가지는 못하더라도 일반적인 반려견들이 누리고 있는, 누릴 수 있는 그런 삶을 누릴 수 있게 해주고 싶습니다. 우리가 구해온 아이들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구조한 아이들에게 잘하지도 못하면서 다른 아이들을 구조하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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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