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어설픈 양다리 작전

  • 박형준 기자 ctzxp@ilyosisa.co.kr
  • 등록 2025.02.25 15:03:12
  • 호수 15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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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그림에 치명적 모순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은 “비상계엄은 잘못됐지만, 탄핵은 안 된다”는 말로 강성 지지자들과 중도층의 마음을 한꺼번에 얻으려고 한다. 이질적인 집단의 지지를 모두 얻으려면, 융통성 있는 정치력과 지휘력·통솔력을 갖춰야 한다. 국민의힘에선 과연 누가 이런 능력을 갖추고 있을까?

지난 12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선 서울시·서울연구원이 주최하고 국민의힘 윤재옥 의원이 주관한 ‘87체제 극복을 위한 지방분권 개헌 토론회’가 진행됐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날 “지방정부에 예산·인력·규제·교육·고용·이민 등 권한을 이양해 중앙집권적 국가 체계를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전국을 5개의 초광역 경제권으로 나눠, 각 지역의 강점을 극대화해 국제 경쟁력을 갖춘 경제 중심지로 성장시켜야 한다”는 취지의 ‘5대 강소국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A지만, B다”
국힘 유행어

이날 토론회엔 ▲권영세 비대위원장 ▲권성동 원내대표 ▲김상훈 정책위의장 ▲이양수 사무총장 등 국민의힘 지도부를 포함한 소속 의원들 48명이 참석했다. 김기현 의원·추경호 전 원내대표 등 친윤(친 윤석열)계 핵심과 김상욱·김예지·김건 의원 등 친한(친 한동훈)계 의원들도 다수 참석했다. 오 시장의 지지자들도 다수 참석해 환호했다.

국민의힘은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등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에 대한 강도 높은 공격을 이어가고 있다. 국민의힘 박민영 대변인은 지난 13일 논평을 통해 “문 대행이 고등학교 동문 카페에 게재된 미성년자 음란물에 직접 댓글을 달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해당 사진은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가 조작한 사진이었다. 국민의힘 박수민 원내대변인은 지난 14일 “여러 일을 처리하는 과정서 사실관계 점검이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면, 당이 국민께 사과드릴 부분”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 90여명은 문 대행의 자택이 있는 아파트단지서 시위를 진행했다. 이들은 지난 17일 ‘음란 수괴 문형배’ 등 피켓을 들고, ‘문형배 사형’ 등 구호를 외쳤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지난 18일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헌법기관 및 국가기밀 취급 기관에 외국인 공무원 임용을 제한하고, 이미 임용된 외국인·복수 국적 공무원에 대한 보안 심사를 대폭 강화한다”는 취지의 국가공무원법 및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엔 ‘헌법연구관과 사무처 공무원 임용 시 대한민국 국적 보유 필수 명시’ ‘외국 국적자 및 복수 국적자인 공무원에 대한 국가보안 심사 및 재임용 심사 제도 도입’ 등 내용이 포함된다. 이에 대해선 “중국 개입설을 토대로 한 부정선거론을 헌재와 연결하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현재 국민의힘서 ‘조기 대선’이란 말은 금기어로 통하고 있다. 하지만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이 인용되면, 60일 안에 대선이 진행된다. 탄핵이 인용될 경우를 가정한 조기 대선 준비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겉으로는 조기 대선을 언급하지 않으면서, 실질적으론 윤 대통령을 두둔해 강성 지지자들을 결집하고, 오 시장 등 중도층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잠재 대선주자를 사실상 관리하는 ‘양다리 작전’으로 대비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KPI뉴스>가 리서치뷰에 의뢰해 지난 16일부터 이틀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범보수 대선주자 적합도’ 여론조사를 진행한 결과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22.3%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15.1% ▲오세훈 서울시장 9.6%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8.8% ▲홍준표 대구시장 7.0%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4.9%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 3.6%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 2.6%를 기록했다.

이재명 유죄로 중도 낙마 구상?
윤 대통령 하야로 필승 재집권?

다만 이들 중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양자 대결을 가정한 조사에서 이 대표를 추월하는 수치를 기록한 주자들은 없었다.


이 같은 추세가 유지되는 상황서 조기 대선이 진행되면, 김 전 장관과 오 시장이 큰 관심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유 전 의원과 한 전 대표는 당내 비토 세력의 지지 비중이 크다. 홍 시장과 안 의원은 당내 기반이 약하다. 국민의힘으로선 김 전 장관과 오 시장의 대결로 흥행몰이 해서 보수와 중도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아야 이 대표에게 대적할 수 있다.

문제는 현재 국민의힘 내부적으로 타오르고 있는 적잖은 불씨다. 지난해 12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은 집토끼 단속에 치중했다. 그러다 보니, 논리적 모순과 엇박자가 속출하고 있다.

집권당이자 원내 제2당이 폭동을 공공연하게 옹호할 순 없다. 따라서 국민의힘은 지난 1월 발생한 서울서부지법 폭동 사태에 대해서도 “폭력은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권 비대위원장은 지난달 20일 “불법·폭력 행위는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면서도 “야당 대표에게도 똑같은 사법적 잣대가 적용돼야 한다”는 등 강성 지지자들을 의식한 발언도 내놨다.

“A지만 B다”라는 논리는 국민의힘이 지난해 12월부터 유지해오고 있는 논조다. 이들 주요 구성원들은 정국 관련 발언을 할 때마다 “비상계엄은 잘못됐지만”이란 단서를 달고 나서 견해를 밝힌다.

나 의원은 지난해 12월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번 비상계엄은 당연히 잘못된 일”이라면서도 민주당을 비판하는 게시글을 올렸다. 지난 15일엔 “더불어민주당은 ‘계엄 유발자’ 역할을 했고, 윤석열 대통령은 계엄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면서 헌재와 민주당을 격렬하게 비판했다.

권 비대위원장은 지난 17일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서 “비상계엄은 잘못됐고, 과도한 조치”라면서도 헌재와 민주당을 비판했다. 그러더니 한술 더 떠 “제가 비상계엄 해제 표결 현장에 있었어도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상계엄은 잘못됐다”는 말은 세간의 비판과 중도층의 시선을 의식하는 표현일 가능성이 크다.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란 말도 강성 지지자들을 의식하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보니 “A지만, B다”라는 표현이 나온다. 물론 A와 B는 양립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잘못된 일이지만, 상대방이 유발한 것이기 때문에, 고치진 않겠다”는 이해하기 어려운 발언 구조가 만들어진다.

하야설에
날 선 반응

권 비대위원장은 부정선거론에 대해서도 “A지만 B다”라는 발언 구조를 이어나갔다. 그는 “부정선거가 있다고 단정할 정도의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도 “선관위가 나서서 객관적인 검토를 받겠다고 얘기하는 것도 어떨지 생각해봤다”며 애매한 발언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부정선거 음모론을 강경하게 주장하는 한국사 일타강사 전한길씨에 대해선 “큰 영향력을 가진 분이 그렇게 전향하신 부분에 대해선 굉장히 감사하다”는 등 ‘본심’을 드러냈다. 전씨가 과거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서 활동했던 것을 고려한 발언이었다.

국민의힘의 양다리 작전은 당 안팎에 큰 혼란을 초래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국민의힘 구성원들의 그 많은 “A지만 B다”를 모두 모아 요약하면 “비상계엄은 잘못됐지만, 탄핵은 기각돼야 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탄핵 기각 시 윤 대통령은 이론상으론 직무에 복귀한다. 그런데 현재 윤 대통령은 피고인 신분으로 서울구치소에 갇혀 있다.

구속 피고인은 원칙상 2개월 동안 수감되지만, 심급별로 2회에 걸친 연장을 할 수 있으므로 심급당 최장 6개월까지 수감이 가능하다. 피고인에 대한 구속 기간 연장은 통상적으로 대부분 이뤄진다. 서울구치소서 국무회의와 수석비서관 회의를 진행할 수 있을까?


서울구치소서 국빈을 맞이할 수 있을까? 각종 행사에도 한 발짝도 갈 수 없다. 탄핵이 기각되더라도, 현실적으로 권한대행 체제가 이어질 수밖에 없는 셈이다.

국민의힘은 이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해답으로 ‘이재명’이라는 세 글자에 집중력을 투입한다. 국민의힘 정연욱 의원은 지난해 12월 자신의 지역구(부산 수영)에 “그래도! 이재명은 안 됩니다!”라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부산시당도 부산 전체에 이 현수막을 내걸었다.

신동욱 수석대변인은 지난달 30일 “설 연휴 동안 (많은 사람이)‘이재명은 안 된다’는 강한 이야기도 많이 하셨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이 가장 바라는 그림은 이 대표가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 항소심서 사실상 낙마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지난해 11월 제1심서 징역 1년형·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항소심서도 이 형량이 유지되면 대선에 출마할 수 없다.

항소심이 빨리 진행돼 집행유예 선고를 유지하고 상고심도 빠르게 진행돼 확정하면, 국민의힘은 더 수월한 상태서 조기 대선을 치를 수 있다. 이 때문인지, 국민의힘은 당 차원서 재판을 통한 이 대표의 조기 낙마를 노리고 있다.

그림은
크지만…


당 법률자문위원장을 맡은 주진우 의원은 지난달 22일엔 항소심 재판부에 신속한 재판을 촉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지난 9일엔 이 대표가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한 것을 비난하면서 신속한 재판을 촉구하는 탄원서를 또다시 제출했다.

이를 고려해서인지, 일각에선 ‘윤 대통령 하야설’도 나오고 있다. 윤 대통령 변호인단은 지난 13일 변론기일서 “헌재가 탄핵 심판을 지금처럼 한다면 중대한 결심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는 지난 14일 YTN 라디오 <이익선·최수영의 이슈앤피플>에 출연해 “이재명 재판만으로 여론을 크게 흔들기 어려울 것”이라며, “진짜 변수는 윤석열 대통령이 하야 성명을 발표할 가능성”이라고 말했다.

이어 “윤 대통령의 하야가 선거판을 크게 흔들 수 있다”며 “동정 여론이 국민의힘뿐만 아니라 반이재명 진영에도 매우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 대표는 그 근거로 “인기와 아쉬움이 있을 때 하야를 선언하는 것이 극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며 “이런 상황이 반영되면 윤 대통령의 형사재판서도 불구속 재판 가능성이 커지고 이 대표와 민주당에 큰 타격을 줄 것”이라는 것을 제시했다.

물론 윤 대통령 측과 국민의힘은 모두 이를 부인하고 있다. 윤 대통령 변호인단의 일원인 석동현 변호사는 지난 14일 채널A와의 인터뷰서 “하야를 운운하는 건 탄핵 공작하는 이들의 사악한 상상력이자 희망사항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권 비대위원장도 “현실적으로 고려되지 않는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민주당도 이를 견제하기 위해 직접 반응을 보였다. 김민석 최고위원은 지난 14일 “하야 꼼수는 꿈도 꾸지 말라”고 비판했다. 박지원 의원도 지난 16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승만의 길을 가건, 박근혜의 길을 가건, 국민 관심 밖이며, 그 선택은 이미 늦었다”고 반응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일국의 집권당이자 보수 대표 정당이란 점을 통찰할 필요가 있다. 책임 있는 유력 정당은 재집권 명분을 청사진 제시를 통해 찾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재명은 안 된다”는 국민의힘의 정치철학과 정책이 얼마나 빈곤한지 드러내고, 이 대표의 맞상대로 자신 있게 내놓을 수 있는 대선주자가 부재한다는 사실을 자인하는 자폭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각 당의 강성 지지자들과 중도층은 이질적인데, 이는 민주당도 경험했다. 이 대표는 지난 10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서 중도층 공략을 위해 ▲반도체특별법 주 52시간 근무제 예외 조항 허용 ▲상속세 완화 등 ‘잘사니즘’을 제시했다.

‘강성+중도’ 두 마리 다 놓칠라
이질적 집단 아우를 정치력 부재

그러자 노동계가 민주당에 반발하는 일이 있었다. 국민의힘 김대식 원내수석대변인도 같은 날 “말뿐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해야 한다”며 “우향우 깜빡이를 켰으면 계속 우측으로 달려주길 바란다”고 비판했다.

강성 지지자들은 요란하게 자신의 견해를 밝히면서 지지 정당을 압박한다. 반대로 중도층은 조용하다. 양당으로부터 각각 실리를 얻길 바라면서, 그때그때 양당을 선택한다. 조용하므로 반응은 선거서만 확인할 수 있어, 경향을 파악하기도 어렵다. 파악하기 어렵다고 무시할 수 있는 비중도 아니다.

양당은 각각 30~40%의 지지를 얻고 있고, 무당파는 20~30%의 비중을 차지한다. 딜레마는 이로부터 비롯된다. 강성 지지자든 중도층이든, 선거에선 각각 1표씩밖에 행사할 수 없다. 강성 지지자들의 불만을 사지 않으면서 중도층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

그러려면, 융통성 있는 정치력과 지휘력·통솔력을 갖춰야 한다. 호감을 얻기에 비교적 어렵지 않은 강성 지지자들에 의존하는 정치로는 정당과 정치인의 지휘력·통솔력을 확인할 수 없다. 이질적인 두 집단을 모두 묶을 수 있는 지휘력·통솔력이야말로 진정한 정치력이다.

이는 현대 정치서도 확인할 수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지난 1997년 제15대 대선 당시 DJP연합과 국민신당 이인제 당시 후보가 신한국당을 탈당한 흐름을 타고 약 39만표 차이로 신한국당 이회창 당시 후보를 상대로 신승했다.

이회창 후보는 당내 경선을 함께 치른 후보들을 통합하는 데 실패해 이인제 후보의 탈당을 막지 못했다. 이 후보는 5년 후 제16대 대선에 다시 출마했지만, 김 전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원하면서 재차 낙선했다. “개혁 성향의 영남권 대선후보를 선택해 영남권 표심 일부를 이탈시키고, 호남이 전력으로 지원한다”는 김 전 대통령의 대전략을 이겨내지 못한 것이다.

국민의힘엔 당 지도부와 유력 대권주자를 가리지 않고, 이질적인 집단을 하나로 아우를 수 있는 정치인이 잘 보이지 않는다. “A지만 B다”라는 어설픈 모순 발언까지 이어가고 있다. 이렇게 하면 양쪽의 반발만 살 뿐, 둘 다 놓치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그림만 클 뿐, 치명적인 모순이 될 수도 있다.

강성 지지자들은 모순을 두려워하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 두둔한다. 중도층은 양당 모두를 객관적으로 살피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모순에 민감하다. 모순이 큰 정치인일수록 지지하길 꺼린다. 지난 20대 대선서 윤 대통령과 이 대표를 일컬어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란 표현이 유행했던 이유도, 두 사람 모두 사적 행보와 공적 언행의 불일치가 컸기 때문이었다.

어설프면서
솔깃한 이유

국민의힘은 배출하는 대통령마다 구치소로 가는 일이 연이어 발생했다. 하지만 의원들은 대통령의 일부 핵심 측근 외엔 지역구를 토대로 정치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일이 거듭되면, 의원들은 겉으로만 대통령을 두둔할 뿐, 몰락한 대통령을 가차 없이 버리고 자신의 정치 생명에 몰두하는 것을 체화하게 된다.

따라서 중도 성향 대선주자를 옹립했다가 중도 공략 실패로 대선에 패배할 경우, 책임을 그 중도 성향 대선주자에게 뒤집어씌우는 사태도 발생할 수 있다. 실현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특정 인물에게 책임을 몰기는 쉬운 탓이다. 국민의힘의 ‘양다리 작전’이 어설프면서도 솔깃할 수도 있는 이유다.

<ctzx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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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