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어설픈 양다리 작전

  • 박형준 기자 ctzxp@ilyosisa.co.kr
  • 등록 2025.02.25 15:03:12
  • 호수 15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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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그림에 치명적 모순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은 “비상계엄은 잘못됐지만, 탄핵은 안 된다”는 말로 강성 지지자들과 중도층의 마음을 한꺼번에 얻으려고 한다. 이질적인 집단의 지지를 모두 얻으려면, 융통성 있는 정치력과 지휘력·통솔력을 갖춰야 한다. 국민의힘에선 과연 누가 이런 능력을 갖추고 있을까?

지난 12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선 서울시·서울연구원이 주최하고 국민의힘 윤재옥 의원이 주관한 ‘87체제 극복을 위한 지방분권 개헌 토론회’가 진행됐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날 “지방정부에 예산·인력·규제·교육·고용·이민 등 권한을 이양해 중앙집권적 국가 체계를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전국을 5개의 초광역 경제권으로 나눠, 각 지역의 강점을 극대화해 국제 경쟁력을 갖춘 경제 중심지로 성장시켜야 한다”는 취지의 ‘5대 강소국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A지만, B다”
국힘 유행어

이날 토론회엔 ▲권영세 비대위원장 ▲권성동 원내대표 ▲김상훈 정책위의장 ▲이양수 사무총장 등 국민의힘 지도부를 포함한 소속 의원들 48명이 참석했다. 김기현 의원·추경호 전 원내대표 등 친윤(친 윤석열)계 핵심과 김상욱·김예지·김건 의원 등 친한(친 한동훈)계 의원들도 다수 참석했다. 오 시장의 지지자들도 다수 참석해 환호했다.

국민의힘은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등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에 대한 강도 높은 공격을 이어가고 있다. 국민의힘 박민영 대변인은 지난 13일 논평을 통해 “문 대행이 고등학교 동문 카페에 게재된 미성년자 음란물에 직접 댓글을 달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해당 사진은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가 조작한 사진이었다. 국민의힘 박수민 원내대변인은 지난 14일 “여러 일을 처리하는 과정서 사실관계 점검이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면, 당이 국민께 사과드릴 부분”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 90여명은 문 대행의 자택이 있는 아파트단지서 시위를 진행했다. 이들은 지난 17일 ‘음란 수괴 문형배’ 등 피켓을 들고, ‘문형배 사형’ 등 구호를 외쳤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지난 18일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헌법기관 및 국가기밀 취급 기관에 외국인 공무원 임용을 제한하고, 이미 임용된 외국인·복수 국적 공무원에 대한 보안 심사를 대폭 강화한다”는 취지의 국가공무원법 및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엔 ‘헌법연구관과 사무처 공무원 임용 시 대한민국 국적 보유 필수 명시’ ‘외국 국적자 및 복수 국적자인 공무원에 대한 국가보안 심사 및 재임용 심사 제도 도입’ 등 내용이 포함된다. 이에 대해선 “중국 개입설을 토대로 한 부정선거론을 헌재와 연결하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현재 국민의힘서 ‘조기 대선’이란 말은 금기어로 통하고 있다. 하지만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이 인용되면, 60일 안에 대선이 진행된다. 탄핵이 인용될 경우를 가정한 조기 대선 준비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겉으로는 조기 대선을 언급하지 않으면서, 실질적으론 윤 대통령을 두둔해 강성 지지자들을 결집하고, 오 시장 등 중도층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잠재 대선주자를 사실상 관리하는 ‘양다리 작전’으로 대비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KPI뉴스>가 리서치뷰에 의뢰해 지난 16일부터 이틀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범보수 대선주자 적합도’ 여론조사를 진행한 결과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22.3%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15.1% ▲오세훈 서울시장 9.6%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8.8% ▲홍준표 대구시장 7.0%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4.9%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 3.6%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 2.6%를 기록했다.

이재명 유죄로 중도 낙마 구상?
윤 대통령 하야로 필승 재집권?

다만 이들 중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양자 대결을 가정한 조사에서 이 대표를 추월하는 수치를 기록한 주자들은 없었다.


이 같은 추세가 유지되는 상황서 조기 대선이 진행되면, 김 전 장관과 오 시장이 큰 관심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유 전 의원과 한 전 대표는 당내 비토 세력의 지지 비중이 크다. 홍 시장과 안 의원은 당내 기반이 약하다. 국민의힘으로선 김 전 장관과 오 시장의 대결로 흥행몰이 해서 보수와 중도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아야 이 대표에게 대적할 수 있다.

문제는 현재 국민의힘 내부적으로 타오르고 있는 적잖은 불씨다. 지난해 12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은 집토끼 단속에 치중했다. 그러다 보니, 논리적 모순과 엇박자가 속출하고 있다.

집권당이자 원내 제2당이 폭동을 공공연하게 옹호할 순 없다. 따라서 국민의힘은 지난 1월 발생한 서울서부지법 폭동 사태에 대해서도 “폭력은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권 비대위원장은 지난달 20일 “불법·폭력 행위는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면서도 “야당 대표에게도 똑같은 사법적 잣대가 적용돼야 한다”는 등 강성 지지자들을 의식한 발언도 내놨다.

“A지만 B다”라는 논리는 국민의힘이 지난해 12월부터 유지해오고 있는 논조다. 이들 주요 구성원들은 정국 관련 발언을 할 때마다 “비상계엄은 잘못됐지만”이란 단서를 달고 나서 견해를 밝힌다.

나 의원은 지난해 12월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번 비상계엄은 당연히 잘못된 일”이라면서도 민주당을 비판하는 게시글을 올렸다. 지난 15일엔 “더불어민주당은 ‘계엄 유발자’ 역할을 했고, 윤석열 대통령은 계엄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면서 헌재와 민주당을 격렬하게 비판했다.

권 비대위원장은 지난 17일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서 “비상계엄은 잘못됐고, 과도한 조치”라면서도 헌재와 민주당을 비판했다. 그러더니 한술 더 떠 “제가 비상계엄 해제 표결 현장에 있었어도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상계엄은 잘못됐다”는 말은 세간의 비판과 중도층의 시선을 의식하는 표현일 가능성이 크다.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란 말도 강성 지지자들을 의식하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보니 “A지만, B다”라는 표현이 나온다. 물론 A와 B는 양립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잘못된 일이지만, 상대방이 유발한 것이기 때문에, 고치진 않겠다”는 이해하기 어려운 발언 구조가 만들어진다.

하야설에
날 선 반응

권 비대위원장은 부정선거론에 대해서도 “A지만 B다”라는 발언 구조를 이어나갔다. 그는 “부정선거가 있다고 단정할 정도의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도 “선관위가 나서서 객관적인 검토를 받겠다고 얘기하는 것도 어떨지 생각해봤다”며 애매한 발언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부정선거 음모론을 강경하게 주장하는 한국사 일타강사 전한길씨에 대해선 “큰 영향력을 가진 분이 그렇게 전향하신 부분에 대해선 굉장히 감사하다”는 등 ‘본심’을 드러냈다. 전씨가 과거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서 활동했던 것을 고려한 발언이었다.

국민의힘의 양다리 작전은 당 안팎에 큰 혼란을 초래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국민의힘 구성원들의 그 많은 “A지만 B다”를 모두 모아 요약하면 “비상계엄은 잘못됐지만, 탄핵은 기각돼야 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탄핵 기각 시 윤 대통령은 이론상으론 직무에 복귀한다. 그런데 현재 윤 대통령은 피고인 신분으로 서울구치소에 갇혀 있다.

구속 피고인은 원칙상 2개월 동안 수감되지만, 심급별로 2회에 걸친 연장을 할 수 있으므로 심급당 최장 6개월까지 수감이 가능하다. 피고인에 대한 구속 기간 연장은 통상적으로 대부분 이뤄진다. 서울구치소서 국무회의와 수석비서관 회의를 진행할 수 있을까?


서울구치소서 국빈을 맞이할 수 있을까? 각종 행사에도 한 발짝도 갈 수 없다. 탄핵이 기각되더라도, 현실적으로 권한대행 체제가 이어질 수밖에 없는 셈이다.

국민의힘은 이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해답으로 ‘이재명’이라는 세 글자에 집중력을 투입한다. 국민의힘 정연욱 의원은 지난해 12월 자신의 지역구(부산 수영)에 “그래도! 이재명은 안 됩니다!”라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부산시당도 부산 전체에 이 현수막을 내걸었다.

신동욱 수석대변인은 지난달 30일 “설 연휴 동안 (많은 사람이)‘이재명은 안 된다’는 강한 이야기도 많이 하셨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이 가장 바라는 그림은 이 대표가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 항소심서 사실상 낙마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지난해 11월 제1심서 징역 1년형·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항소심서도 이 형량이 유지되면 대선에 출마할 수 없다.

항소심이 빨리 진행돼 집행유예 선고를 유지하고 상고심도 빠르게 진행돼 확정하면, 국민의힘은 더 수월한 상태서 조기 대선을 치를 수 있다. 이 때문인지, 국민의힘은 당 차원서 재판을 통한 이 대표의 조기 낙마를 노리고 있다.

그림은
크지만…


당 법률자문위원장을 맡은 주진우 의원은 지난달 22일엔 항소심 재판부에 신속한 재판을 촉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지난 9일엔 이 대표가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한 것을 비난하면서 신속한 재판을 촉구하는 탄원서를 또다시 제출했다.

이를 고려해서인지, 일각에선 ‘윤 대통령 하야설’도 나오고 있다. 윤 대통령 변호인단은 지난 13일 변론기일서 “헌재가 탄핵 심판을 지금처럼 한다면 중대한 결심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는 지난 14일 YTN 라디오 <이익선·최수영의 이슈앤피플>에 출연해 “이재명 재판만으로 여론을 크게 흔들기 어려울 것”이라며, “진짜 변수는 윤석열 대통령이 하야 성명을 발표할 가능성”이라고 말했다.

이어 “윤 대통령의 하야가 선거판을 크게 흔들 수 있다”며 “동정 여론이 국민의힘뿐만 아니라 반이재명 진영에도 매우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 대표는 그 근거로 “인기와 아쉬움이 있을 때 하야를 선언하는 것이 극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며 “이런 상황이 반영되면 윤 대통령의 형사재판서도 불구속 재판 가능성이 커지고 이 대표와 민주당에 큰 타격을 줄 것”이라는 것을 제시했다.

물론 윤 대통령 측과 국민의힘은 모두 이를 부인하고 있다. 윤 대통령 변호인단의 일원인 석동현 변호사는 지난 14일 채널A와의 인터뷰서 “하야를 운운하는 건 탄핵 공작하는 이들의 사악한 상상력이자 희망사항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권 비대위원장도 “현실적으로 고려되지 않는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민주당도 이를 견제하기 위해 직접 반응을 보였다. 김민석 최고위원은 지난 14일 “하야 꼼수는 꿈도 꾸지 말라”고 비판했다. 박지원 의원도 지난 16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승만의 길을 가건, 박근혜의 길을 가건, 국민 관심 밖이며, 그 선택은 이미 늦었다”고 반응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일국의 집권당이자 보수 대표 정당이란 점을 통찰할 필요가 있다. 책임 있는 유력 정당은 재집권 명분을 청사진 제시를 통해 찾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재명은 안 된다”는 국민의힘의 정치철학과 정책이 얼마나 빈곤한지 드러내고, 이 대표의 맞상대로 자신 있게 내놓을 수 있는 대선주자가 부재한다는 사실을 자인하는 자폭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각 당의 강성 지지자들과 중도층은 이질적인데, 이는 민주당도 경험했다. 이 대표는 지난 10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서 중도층 공략을 위해 ▲반도체특별법 주 52시간 근무제 예외 조항 허용 ▲상속세 완화 등 ‘잘사니즘’을 제시했다.

‘강성+중도’ 두 마리 다 놓칠라
이질적 집단 아우를 정치력 부재

그러자 노동계가 민주당에 반발하는 일이 있었다. 국민의힘 김대식 원내수석대변인도 같은 날 “말뿐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해야 한다”며 “우향우 깜빡이를 켰으면 계속 우측으로 달려주길 바란다”고 비판했다.

강성 지지자들은 요란하게 자신의 견해를 밝히면서 지지 정당을 압박한다. 반대로 중도층은 조용하다. 양당으로부터 각각 실리를 얻길 바라면서, 그때그때 양당을 선택한다. 조용하므로 반응은 선거서만 확인할 수 있어, 경향을 파악하기도 어렵다. 파악하기 어렵다고 무시할 수 있는 비중도 아니다.

양당은 각각 30~40%의 지지를 얻고 있고, 무당파는 20~30%의 비중을 차지한다. 딜레마는 이로부터 비롯된다. 강성 지지자든 중도층이든, 선거에선 각각 1표씩밖에 행사할 수 없다. 강성 지지자들의 불만을 사지 않으면서 중도층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

그러려면, 융통성 있는 정치력과 지휘력·통솔력을 갖춰야 한다. 호감을 얻기에 비교적 어렵지 않은 강성 지지자들에 의존하는 정치로는 정당과 정치인의 지휘력·통솔력을 확인할 수 없다. 이질적인 두 집단을 모두 묶을 수 있는 지휘력·통솔력이야말로 진정한 정치력이다.

이는 현대 정치서도 확인할 수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지난 1997년 제15대 대선 당시 DJP연합과 국민신당 이인제 당시 후보가 신한국당을 탈당한 흐름을 타고 약 39만표 차이로 신한국당 이회창 당시 후보를 상대로 신승했다.

이회창 후보는 당내 경선을 함께 치른 후보들을 통합하는 데 실패해 이인제 후보의 탈당을 막지 못했다. 이 후보는 5년 후 제16대 대선에 다시 출마했지만, 김 전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원하면서 재차 낙선했다. “개혁 성향의 영남권 대선후보를 선택해 영남권 표심 일부를 이탈시키고, 호남이 전력으로 지원한다”는 김 전 대통령의 대전략을 이겨내지 못한 것이다.

국민의힘엔 당 지도부와 유력 대권주자를 가리지 않고, 이질적인 집단을 하나로 아우를 수 있는 정치인이 잘 보이지 않는다. “A지만 B다”라는 어설픈 모순 발언까지 이어가고 있다. 이렇게 하면 양쪽의 반발만 살 뿐, 둘 다 놓치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그림만 클 뿐, 치명적인 모순이 될 수도 있다.

강성 지지자들은 모순을 두려워하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 두둔한다. 중도층은 양당 모두를 객관적으로 살피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모순에 민감하다. 모순이 큰 정치인일수록 지지하길 꺼린다. 지난 20대 대선서 윤 대통령과 이 대표를 일컬어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란 표현이 유행했던 이유도, 두 사람 모두 사적 행보와 공적 언행의 불일치가 컸기 때문이었다.

어설프면서
솔깃한 이유

국민의힘은 배출하는 대통령마다 구치소로 가는 일이 연이어 발생했다. 하지만 의원들은 대통령의 일부 핵심 측근 외엔 지역구를 토대로 정치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일이 거듭되면, 의원들은 겉으로만 대통령을 두둔할 뿐, 몰락한 대통령을 가차 없이 버리고 자신의 정치 생명에 몰두하는 것을 체화하게 된다.

따라서 중도 성향 대선주자를 옹립했다가 중도 공략 실패로 대선에 패배할 경우, 책임을 그 중도 성향 대선주자에게 뒤집어씌우는 사태도 발생할 수 있다. 실현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특정 인물에게 책임을 몰기는 쉬운 탓이다. 국민의힘의 ‘양다리 작전’이 어설프면서도 솔깃할 수도 있는 이유다.

<ctzx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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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소문이 어느덧 사실처럼 인식되고 있다. 명확한 물증이 없는 가운데 파편적인 의혹이 덧씌워진 양상은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으며, 흐름을 파악할 만한 유의미한 흔적이 이제야 겨우 나왔을 뿐이다. 증폭된 의혹 뒤편에서 여전히 진실은 빼꼼히 잘 보이지 않는다. 2010년 9월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황해경제자유구역에 자리 잡은 유일한 농산물 가공 업체로, 그간 심심치 않게 밀수 의혹을 받아왔다. 가공 목적으로 수입한 농산물을 가공 없이 시중에 유통시켜 엄청난 차익을 봤다는 꼬리표가 뒤따랐다. 의혹하는 눈초리 선라이즈에프앤티가 취급했던 대다수 농산물이 고관세 품목이라는 점은 이 같은 의혹을 부채질했다. 그간 선라이즈에프앤티는 ▲녹두 ▲콩나물콩 ▲다대기(혼합양념) ▲생강 ▲마늘 ▲참깨 ▲팥 ▲서리태 등 높은 세율이 붙는 고관세 품목을 주로 수입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 예로 콩나물콩의 경우 그대로 들여와 국내에 유통하면 487% 관세가 부과되지만, 콩나물 재배 목적으로 수입하면 27%만 반영된다. 평택세관에 몸담았던 다수의 전직 세관공무원이 기업 출범 및 운영에 관여했다는 점도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부정적으로 보게 만들었다. 심지어 선라이즈에프앤티 이사진에 포함됐던 특정 세관 출신 임원이 한때 다이아몬드 밀수 사건에 이름이 오르내린 사례도 존재한다. 수년 전부터는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동일선상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해졌다. 선라이즈에프앤티의 밀수 의혹을 수차례에 걸쳐 제기했던 공익 제보자 이성열씨가 재판에 연루되는 과정에서 김건희씨의 모친인 최은순씨가 거론됐던 게 이 같은 흐름에 불을 지핀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정치평론가인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이 최근 ‘평택항’을 언급하자,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은 사실처럼 받아들여질 정도가 됐다. 장 소장은 SBS라디오 <김태현의 뉴스쇼>가 운영하는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김건희씨 일가의 수상한 물건 수입 의혹과 관련한 이야기를 전했다. 갈수록 증폭되는 평택 논란 이제야 공개된 소소한 흔적 장 소장은 “최은순씨가 주인으로 있는 농수산물 수입업체에서 이상한 것을 들고 오려고 하다가 걸려서 (김건희) 오빠와 김건희씨가 그것을 무마시키려고 여러 가지 이상한 (일들을 했다고 한다)”며 “어떤 물건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부적절한 물건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급기야 선라이즈에프앤티의 폐업이 알려지자, 의혹은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양상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국세청 사업자 과세 유형 조회 결과 지난 10일자로 폐업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폐업자로 조회된 지난 10일은 김건희 특검법이 공포된 시기와 맞물린다. 물론 꾸준히 의혹이 제기된 것과 별개로,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을 입증할 만한 확실한 단서는 없는 상황이다. 특히 주주명부가 지금껏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는 게 의혹과 진실을 구분 짓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일요시사>가 최초 입수한 주주명부는 간접적으로나마 의문을 풀 수 있는 열쇠로 작용할 여지를 남긴다. 2022년 10월 작성된 ‘카리나에프앤티(선라이즈에프앤티에서 2020년 9월 상호 변경) 주주명부’를 검토한 결과 주주는 총 17명, 발행주식은 91만8400주(1주당 5000원)로 확인됐다. 2010년 9월 자본금 5억원으로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수차례 증자를 거쳤고, 해당 시기에 자본금을 45억9200만원으로 늘린 상태였다. 의문 해소 첫 단추 일단 주주명부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의 이름을 찾을 수 없다. 대신 경영권 교체 과정이나마 엿볼 수 있을 뿐이다. 법인 등기와 주주명부를 교차 검증한 결과를 토대로 추정하면, 표면상 선라이즈에프앤티 지배 세력은 ‘전직 세관공무원(설립~2018년 중순)→지엔티에이치(~2020년 중순)→킴스에O엔O(~2022년 초순)→동OO앤에스(~2025년 6월)’ 순으로 변경된 흐름이다. 첫 번째 경영권 교체는 ‘펀딩하이 연체 사건’과 함께 발생했다. 펀딩하이는 중국·동남아시아에서 농산물을 수입하는 업체에 돈을 빌려 주고, 투자자들에게 15% 이상 수익을 보장하는 펀딩 상품으로 인기를 끌던 P2P 업체였다. 그러나 펀딩하이는 2018년 6월20일 ‘마늘 시즌2-17차(모집 금액 3억원, 차주 승리산업)’ 펀딩 상품의 연체를 시작으로 ▲세척 당근 시즌2-18차(모집금액 5억원, 차주 지엔티에이치) ▲김치 펀딩 2차(모집금액 1억2000만원, 차주 상아농산) ▲번데기 펀딩 1차(모집금액 1억8000만원, 차주 월량완코리아) 등에서 차주의 투자금 상환 실패를 알렸다. 연체 금액은 ▲지엔티에이치 29억원 ▲승리산업 33억원 ▲상아농산 11억8000만원 ▲월량완코리아 1억8000만원 등 총 75억6000만원에 달했다. 급기야 펀딩하이는 연체율 100%를 찍은 채 영업을 중단했다. 상환 실패 이후 차주 사이에 관련성이 드러났다. 지엔티에이치와 승리산업에서 대표이사였던 윤석호씨는 두 회사 지분을 각각 60%, 100% 보유 중이었다. 또한 월량완코리아 사내이사로도 등재돼있었다. 거듭되는 교체 수순 연체가 발생한 직접적인 사유는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대상으로 한 지분 투자였다. 지엔티에이치는 펀딩받은 금액을 농산물을 들여오는 데 쓰지 않고,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매입하는 데 활용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이를 계기로 지엔티에이치는 2018년 6월경 주식 16만1400주를 확보한 선라이즈에프앤티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확보한 이후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명단에 변화가 목격됐다. 선라이즈에프앤티 초창기부터 함께했던 사내이사와 부친에 이어 회사에 몸담았던 대표이사를 대신해 지엔티에이치가 끌어들인 얼굴들이 등기임원 자리를 꿰찼다. 정작 지엔티에이치는 연체 발생 넉 달 후인 2018년 10월 보유 중이던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에 넘겼다. 펀딩하이 투자자들과의 소송전이 불거지자 중국에 본거지를 둔 우군에 주식을 양도한 모양새였다. 두 번째 경영권 교체는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의 주체로 올라서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충청권에 본적을 둔 킴스에O엔O는 2022년 10월 기준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10만8200주를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의 친인척이 보유한 주식 13만2800주를 합산하면 우호 주식은 24만주 안팎이다. 기존 지엔티에이치 측 우호 세력(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 16만1400주+마송재 3만주)과 비교해 5만주 가까이 격차를 벌린 셈이다.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대량 매입한 시기는 2020년 중후반으로 추정된다. 이 무렵 선라이즈에프앤티 등기임원 구성이 크게 요동쳤다는 점을 통해 짐작 가능한 사안이다. 실제로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발휘하던 2018년 7월 대표이사에 선임됐던 김정일 대표는 2020년 3월 해임됐다. 2018년 9월 취임했던 또 다른 대표이사 역시 당해 10월을 넘기지 못한 채 사임했다. 쉽게 거두지 못하는 의심 의미심장 세력 교체 과정 공석이 된 주요 등기임원 자리는 킴스에O엔O 측 인물로 채워졌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가 2020년 10월 선라이즈에프앤티 대표이사로 취임했고, 해당 시기에 사외이사, 감사 등 등기임원 전원이 새 얼굴로 교체됐다. 킴스에O엔O에 이어 지배 세력으로 등장한 곳은 식료품 제조업을 영위하는 동OO앤에스였다. 이 회사는 2022년 10월 기준 주주명부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지분율 44.64%)를 보유한 단일 최대주주로 등재돼있다. 여기에 우호 세력(글로O포O 1만주+김성수 2만주+김종봉 788주)의 주식을 합산하면 지분율은 50%에 육박한다. 동OO앤에스는 사실상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인수하고자 만든 업체로 비쳐질 여지를 남긴다. 2022년 2월 출범 당시 자본금 10억원짜리였던 동OO앤에스는 불과 두 달 만인 2022년 4월14일 자본금을 21억원으로 두 배 이상 키웠다. 공교롭게도 동OO앤에스가 설립 이후 8개월 사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투입한 금액은 총 20억5000만원이었다. 이는 동OO앤에스 자본금 21억원이 선라이즈 주식 41만주를 매입하는 데 쓰였을 가능성에 주목하게 만든다. 게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기존 61만8400주였던 발행주식을 2022년 4월22일 91만8400주로 30만주 확대했다. 동OO앤에스가 자본금을 21억원으로 확충한 지 8일 만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가 발행주식을 30만주 늘린 덕분에 동OO앤에스는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주식 41만주를 확보한 형국이다. 동OO앤에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지배하는 위치로 올라설 무렵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구성은 또 한 번 바뀌었다. 동OO앤에스 대표이사가 사내이사, 글로O포O 대표이사가 사외이사에 이름을 올렸고, 김성수 대표이사가 신규 선임됐다. 이후 김성수 대표는 선라이즈에프앤티 폐업 전까지 자리를 지킨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되짚어보는 연결고리 한편 일각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는 지엔티에이치 측이 지배력을 상실한 이후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나마 킴스에O엔O 혹은 동OO앤에스와의 연관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관여한 직접적인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만약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를 2021년 이후로 특정해볼 수 있을 것”이라며 “항간에 떠도는 마약 적발 여부는 2022년 근방으로 얘기가 오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heaty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