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데까지 간 ‘정치 사법화’ 실상

  • 박형준 기자 ctzxp@ilyosisa.co.kr
  • 등록 2025.01.13 10:23:25
  • 호수 15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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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료 비싼 ‘아무 말 대잔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과 체포 시도가 현실화하자, 국민의힘의 선을 넘은 법률 왜곡 언행이 이어지고 있다. 그럴수록 정당해산심판 요구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정치 사법화는 정치의 법 왜곡화·정치의 법 선동화로 이어지는 분위기다.

한덕수 국무총리에 대한 탄핵소추가 지난달 27일 가결되자, 국민의힘은 의원 108명 전원 명의로 즉각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에 우원식 국회의장을 상대로 권한쟁의심판과 효력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국민의힘 법률자문위원장 주진우 의원은 “총리로서 ▲법률안 거부권 행사 건의 ▲비상계엄 국무회의 심의 반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헌법재판관 임명 보류 등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정당하게 수행한 직무일 뿐, 탄핵 사유라 할 수 없음이 명백하다”고 주장했다.

결집 유도
불순 의도

같은 달 31일엔 윤석열 대통령의 변호인단이 서울서부지법이 발부한 체포영장과 압수수색 영장에 대해 권한쟁의심판과 효력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변호인단은 “내란죄 수사권이 없는 공수처의 권한 없는 영장 청구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내란죄로 체포영장을 발부해 대통령의 헌법 수호와 비상계엄 선포 권한을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권한쟁의심판은 2개 이상 기관이 특정 권한의 존재 여부와 범위를 놓고 헌재의 판단을 구하는 절차를 말한다. 권한쟁의심판은 다툼을 하는 당사자가 직접 대립하는 구조기 때문에, 심판을 청구하려면 당사자 능력과 당사자 적격을 갖춰야 한다.

한 총리 탄핵소추에 문제가 있다면, 한 총리가 직접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해야 한다는 취지다. 제3자인 국민의힘은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할 자격 자체가 없다.


윤 대통령 체포영장에 대해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한 것도 특이하다. 윤 대통령은 직무가 정지됐기 때문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할 자격이 없다. 체포영장 발부에 대한 불만은 ‘개인 윤석열’이 법원에 체포적부심을 청구해 표현할 수 있다. 또 영장이 발부된 자체가 공수처의 체포영장 청구에 대한 법원의 판단을 의미한다.

이는 법원의 판단을 놓고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한 보기 드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은 “법원의 체포영장 적법성을 다투고 싶다면, 체포 적부의 심사를 법원에 청구하면 될 일”이라며 “해괴한 절차를 언급하는 것은 오직 시간 끌기를 통해 극단적 지지자들의 결집을 유도하려는 불순한 의도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공수처가 서울서부지법에 체포영장을 청구한 것에 대해, 윤 대통령 변호인단에 참가한 윤갑근 변호사는 같은 날 “공수처가 이례적으로 윤 대통령 체포영장만 서울서부지법에 청구한 영장 쇼핑”이라고 주장했다. 공수처법 제31조는 공수처 사건의 제1심 재판 관할을 서울중앙지법으로 지정했다.

하지만 이 조항엔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다른 법원에 기소할 수도 있다”는 취지의 단서가 있다. 또 법률엔 명백히 제1심 재판이라고 규정돼있다. 체포영장 청구는 피의자 신병 확보 절차다. 규정이 명확하지 않은 것이지, 윤 변호사의 주장대로 위법하다고 단정할 순 없다.

서울서부지법은 지난 5일 윤 대통령 측이 신청한 효력정지 가처분을 기각하는 것으로 윤 변호사의 주장에 대한 답변을 갈음했다.

강성 지지자들에 “방해해 달라”
탄핵·체포 과정 비상식적 주장


윤 변호사는 지난 2일, 형사소송법 역사에 길이 남을 주장을 이어간다. 그는 “경찰기동대는 관련법상 체포영장 집행 권한이 없다”며 “기동대가 공수처를 대신해 체포·수색영장 집행에 나선다면, 직권남용 및 공무집행방해죄 현행범이라서 경호처는 물론 시민 누구에게나 체포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표현은 ‘시민 누구에게나’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현행범은 일반인도 체포할 수 있다. 다만 현행범 체포엔 ▲범죄의 명백성 ▲체포의 필요성 등 적법 요건이 필요하다. 또 공조본은 “경찰기동대는 관저 주변 집회시위 관리 및 질서유지 업무만 담당했다”고 반박했다. 시민들은 관저에 들어갈 수 없다. “경찰기동대와 시민의 충돌을 부추기는 것 아니냐”고 의심할 소지가 남는다.

아울러 “다수의 언론에 배포할 목적으로 작성돼 공연성이 인정되는 입장문을 수단 삼아, 윤 대통령을 지지하는 탄핵 반대 집회 참가자들에게 ‘체포영장 집행을 방해해달라’는 특수공무집행방해를 부추긴 것 아니냐”고 해석될 위험이 있다.

집회 참가자들이 체포영장 집행을 방해하기 위해 경찰과 충돌했다면, “특수공무집행방해 교사행위를 한 것 아니냐”는 논란도 함께 제기됐을 것이다. 교사행위의 방법은 제한이 없다. ‘유혹’도 교사행위 방법에 포함된다.

국민의힘은 탄핵 심판에 대해서도 비상식적인 주장을 이어가고 있다. 국회 소추위원 측 대리인단은 지난 3일 윤 대통령 탄핵소추 사유 중 형법상 내란죄를 사실상 철회했다. 그러자 윤 대통령 측과 국민의힘은 총력을 기울여 “내란죄 철회는 소추 사유 중대 변경이므로 각하해야 한다”이란 주장을 퍼트리고 있다.

그러자 대리인단은 “내란 행위를 심판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은 변함없다”며 “형법상 내란죄가 아닌 헌법 위반으로 주장하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박찬운 한양대 로스쿨 교수는 지난 5일 자신의 페이스북 게시글을 통해 탄핵 심판의 논점을 ▲12·3 비상계엄 사태 전반의 헌법 위반 ▲계엄 절차 관련 계엄법 위반 ▲형법상 내란죄 논란 등으로 정리했다. 대리인단의 형법상 내란죄 철회는 12·3 비상계엄 사태 관련 내용 자체를 철회하는 것이 아니라, 헌재의 판단을 구하는 기준을 바꾼 것이다.

헌법 위반·형법 위반을 모두 포함해 탄핵소추했지만, 형법 위반을 다투는 과정서 윤 대통령 측의 시간 끌기를 우려해 헌법 위반 논점만 남겨두고 양을 대폭 줄인 것이다.

‘유혹’도
교사행위

국민의힘과 윤 대통령 측이 총력을 다해 각하를 요구하는 이유에 대해, 박 교수는 “형법 논점을 없애면, 탄핵 심판 심리가 빨리 끝날 것 같으니 저러는 것”이라며, “형사재판처럼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을 노렸던 것이고, 어떻게 해서라도 심리를 질질 끌어 시간을 벌려고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소추 사유서 형법 위반 논점을 제외하면, 좋아할 일 아니냐”면서 윤 대통령을 조롱했다.

헌법재판소법은 탄핵소추 대상이 되는 공무원의 기준을 “직무집행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했을 때”라고 규정했다. ‘이나’라는 말은 ‘둘 중 하나’를 의미한다. 같은 사안을 헌법 위반이라고 규정해 소추할 수도 있고, 법률 위반이라고 규정해 소추할 수도 있다. 둘 다 적용할 수도 있다.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행위로서 헌법수호 관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반 행위로 인정되면 파면되는 것이다.


국민의힘 의원 44명은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기한이었던 지난 6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정문 앞에 모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의 체포영장 집행을 저지하려고 했다. 권성동 원내대표 등 일부 중진 의원들과 법사위 소속 의원들은 같은 날 헌법재판소를 방문해 형법상 내란죄 논점이 철회된 것을 항의했다.

단순한 말이 아니라 행동에 나섰기 때문에 의미심장하다. 시각에 따라선 특수공무집행방해 시도와 진행 중인 재판에 압력을 행사하는 강요 행위로 해석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과 윤 대통령 측의 각종 언행은 정치의 사법화를 넘어 정치의 법 왜곡화 혹은 정치의 법 선동화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국민의힘엔 법조인 출신 의원들이 다수 있고, 권 원내대표는 지난 2017년 진행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심판 당시 소추위원이었다.

자신들의 언행이 법 상식에 어긋난다는 사실을 모를 개연성은 높지 않다. 그만큼 궁지에 몰렸다고 볼 여지가 남는다. 궁지에 몰리면 못 할 일이 없다.

일본 정부는 지난 2011년 자국을 방문한 이명박 당시 대통령과 원자바오 당시 중국 총리에게 원전 사고가 있었던 후쿠시마산 오이를 예고 없이 시식시켰다. 그들이 오이를 먹은 곳은 방사능 수치가 가장 높게 나왔던 후쿠시마시였다. 당시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해 일본은 나라가 뒤흔들리고 있었다.

간 나오토 당시 일본 총리는 두 사람에게 오이를 먹인 후 “정말 감사하다. 두 분의 행동이야말로 일본의 복구 지원에 최대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궁지에 몰렸기 때문에 외교 관례를 모두 벗어던진 것이다. 법률을 놓고 진행되는 국민의힘의 ‘아무 말 대잔치’는 당시 일본 정부의 행동을 연상시킨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모두 정치의 사법화를 극단적으로 추구해 현재에 이르게 한 공동 책임이 있다. 양당은 ‘프로 고발러’로 알려진 습관적인 고발장 제출자들과 관련이 있다. 국민의힘엔 법치주의 바로 세우기 행동연대를 운영하는 이종배 서울시의원이 있다.

궁지에
몰렸다

김한메 사법정의 바로 세우기 시민행동 대표는 민주당의 입장에 서서 국민의힘 인사들을 주로 고발한다. 이들은 수시로 고발장을 제출하면서 언론에 노출된다. 이들의 고발은 언론 보도를 노리고 진행되는 측면이 있다. 특정 정파성을 지나치게 추구하는 일부 언론은 이들의 고발 중 구미에 맞는 것엔 과도한 의미를 부여해 보도한다.

이 과정을 거쳐 강경 지지자들을 선동하는 결과가 양산된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고자 하는 사람의 심리를 악용하는 선동이다. “극단적인 지지자들만 선동하면 된다”는 무책임한 태도로 해석될 소지도 있다.

국민의힘은 이 의원을 서울시의원으로 당선시키고 부대변인으로 임명해 본의 아니게 그 관련성을 공인했다. 이들이 프로 고발러로 알려지는 과정을 토대로 정치의 사법화가 얼마나 뿌리 깊게 진행됐는지 확인할 수 있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국민의힘 자체가 흔들리는 상황이 되자, 권 원내대표와 주 의원 등 검사 출신 의원들이 직접 법 왜곡 발언이나 행동에 앞장서는 등 프로 고발러와 유사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오승용 전남대 5·18연구소 연구교수의 지난 2009년 논문 <민주화 이후 정치의 사법화에 관한 연구>엔 스페인의 사회학자 호세 마리아 마라발 마드리드대 사회학과 교수의 지난 2003년 저서 <정치적 무기로서의 법치> 일부가 인용돼있다.

오 교수가 인용한 바에 따르면, 마라발 교수는 정치의 사법화를 정치인과 정부의 전략으로 규정한다. 그러면서 정치의 사법화가 발생하는 상황을 ▲정치인의 책임성 제한 ▲선거에 연패한 야당이 새로운 차원의 경쟁 돌입 ▲정부의 야당 약화 시도 등으로 정리했다. 이어 “정치인과 정부의 전략에 따라 법의 지배가 정치적 무기가 되면 법의 지배라는 원칙은 훼손된다”며 “정치의 사법화는 법의 지배의 실현이 아니라 훼손”이라고 주장했다.

오 교수는 “법의 지배가 강화되는 경향 한편엔 사법 불신이 자리 잡고 있다”며 “우리 사례는 정치의 사법화와 사법 불신이 동시적으로 진행되는 독특한 사례”라고 진단했다. 이어 “문제의 핵심은 사법부의 정치화 이전에 의회의 문제 해결 능력 부재에 있다”고 정리했다.

그러면서 “정치의 사법화와 사법부의 정치화는 정치의 장이 제 기능을 다 하지 못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의회와 정당의 정상화가 선결 과제로 요구된다”고 주장했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도 지난 2023년 발표한 논문 <법과 정치의 분화와 통합>서 “정치의 실패가 정치의 사법화를 불러온 것”이라며 “정치가 제 기능을 했다면 애초에 발생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홍 교수는 “정치의 사법화가 확산한 이유는 정치가 스스로 해결해야 하고, 또 할 수 있는 문제를 사법에 떠넘겼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정치의 사법화가 사법부의 권력 비대화로 이어질 위험을 경고한다.

오 교수는 “정치의 사법화 현상이 삼권분립의 원칙에 입각한 근대 대의민주주의의 존립을 위협할 수 있다는 점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고 경고했다. 그 이유로는 “입법부·행정부와 달리, 국민이 직접 선출하지 않고, 다른 헌법기관에 의해 견제받지도 않으며, 사법적 판단에 대해 국민에게 책임을 지지도 않는다”는 것을 들었다.

홍 교수도 비슷한 예측을 하면서 “사법에 의해 정치가 식민화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점점 늘어나는 정당해산심판 요구
사법부 권력 비대화 위험 경고도

그 경고는 국민의힘에 대한 정당해산심판을 언급하는 목소리가 늘어나고 있어서 현실화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하지만 수십년 역사를 가진 거대정당 국민의힘에 대한 정당해산심판이 제기되고, 만약 인용되는 사태까지 발생하면, 우리 헌정사에 엄청난 여파를 남길 것이다.

국민의힘에 대한 정당해산심판은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이 지난해 12월6일 처음 언급했다. 당시 이 의원은 “국민의힘이 윤 대통령에게 동조하고, 가볍게 퉁치고 넘어가려고 하면, 개혁신당부터 국민의힘 정당해산심판을 걸겠다”고 말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다음날 “당이 조직적으로 국헌 문란 행위에 가담했다면 정당 해산 사유인 위헌정당이라는 것이 판례”라며 국민의힘을 향한 정당 해산 가능성을 언급했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은 지난 5일 정부에 국민의힘에 대한 정당해산심판 청구를 요구하는 진정서를 법무부에 제출했다.

혁신당 김선민 대표 권한대행은 “국민의힘이 위헌정당인 본질은 윤석열을 옹호하는 행위로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당해산심판은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 질서에 어긋날 때, 정부가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헌재에 청구한다. 우리 헌정사에선 지난 2014년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 청구가 인용된 사례가 유일하다.

통합진보당이 해산됐던 이유 중 하나는 이석기 전 의원의 내란 음모 사건을 적극적으로 두둔했다는 사실이었다. 이 전 의원의 사건은 내란 음모였던 것과는 달리, 윤 대통령은 대통령의 권한을 이용해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실제로 군을 동원했다.

국민의힘은 집단행동을 불사하면서 윤 대통령을 두둔하고 있다. 국민의힘에 대한 정당해산심판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점점 진지해지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정치의 사법화에 대해 부정적인 목소리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박은정 전 국민권익위원장은 지난 2010년 발표한 논문 <정치의 사법화와 민주주의>서 “헌법규범이 생활규범으로 정착되는 단계서 나타나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며 “정치의 사법화가 가능하고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최소요건이 갖춰져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권력분립의 실질적인 정착서 비롯되고 촉진되는 현상이라는 점도 간과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선동화
왜곡화

하지만 정치의 사법화는 정치의 법 선동화·왜곡화가 돼 비상계엄 사태에 이어 어느덧 공공연하게 체포영장 집행 방해를 시도하고, 지지자들에게 체포영장 집행 저지를 선동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내란 사태 자체의 후유증 못지않은 것이 정치권이 구조화시킨 정치 사법화의 문제점을 수습하는 것일 듯하다. 국민의힘의 ‘아무 말 대잔치’는 비싼 관람 비용을 요구하고 있다.

<ctzx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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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내란 비선’ 노상원 민간인 사찰 준비 의혹

[단독] ‘내란 비선’ 노상원 민간인 사찰 준비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방첩사가 댓글 공작을 계획한 정황이 곳곳에서 확인된다. 사이버작전사령관 후보군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여론전에 나서려 한 게 골자다. MB·박근혜정부 때의 악몽이 재발할 수 있었던 셈이다. 군 안팎에서는 계엄이 유지됐다면 여론 공작뿐만 아니라 민간인 사찰까지 벌어졌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군 정보기관 간부들은 이 계획을 준비하려 했던 인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아닌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을 지목한 것으로 파악됐다. “여인형은 댓글 공작을 지시한 사람일 뿐 계획한 사람은 노상원이다.” 한 군 고위관계자의 말이다.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부정선거 수사만을 담당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도 복수의 군 관계자들로부터 관련 진술을 받아냈다. 특히 사이버작전사령부가 댓글 공작을 계획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진보 성향 진급 제외 공수처는 이달 초 복수의 국군방첩사령부 간부들로부터 군 댓글 공작 의혹과 관련된 진술을 받아냈다. 한 방첩사 간부는 공수처에 “사이버사령관에 대한 정치 성향, 개인정보 등 신원 검증을 진행했다. 진보 계열 정치인과 친분이 있거나 알고 지낸 적이 있는 군 간부에 대해서는 신원 검증을 더욱 철저히 했다”고 진술했다. 공수처는 방첩사가 사이버작전사령관 후보군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정권 ‘코드 인사’가 정해지면 댓글 공작팀을 구성하려 했다고 보고 있다. 공수처가 확보한 블랙리스트는 지난해 12월과 지난 1월 두 차례에 걸친 방첩사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것이다. 당시 압수수색 대상엔 사이버사령관 관련 블랙리스트 문건도 포함됐다.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은 이 문건들을 김용현 전 장관에게 수차례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보고 시점이다. 김 전 장관이 대통령경호처장이던 지난해 초부터다. 김 전 장관이 군 인사에 개입하고 신원식 국가안보실장보다 영향력이 강했던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도 방첩사의 댓글 공작 플랜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지난 1월 국회 국정조사특위에서 “조원희 사이버사령관이 사이버 정예 요원 28명으로 구성된 ‘사이버 정찰 TF’를 구성해 2024년 10월7일∼12월27일 약 3개월간 운영할 계획이었다”며 “사이버사가 국가정보원, 국군방첩사령부 등 그동안 비상계엄에 협조해 온 기관과 연계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이른바 인지전·심리전을 하려던 것으로 추측된다”고 주장했다. 인지전은 전단 살포 등 기존 심리전에 더해 SNS를 통한 사이버 여론전까지 포괄한다. 실제 방첩사는 예하 보안연구소에 인지전을 전담하는 ‘정보종합통합대응팀(대응팀)’ 신설을 계획했다. 이 대응팀은 방첩사가 인지전 조직 설립을 추진하다 내부 반발에 부닥치자 만들어진 TF(태스크포스) 성격의 팀으로 알려졌다. 일부 인원을 보안연구소로 이동시켜 TF를 꾸린 뒤 인지전 조직을 설립할 계획이었다. 사이버사 통해 인지·심리전 작업 선관위 서버 탈취 성공하면 서포트 여 전 사령관은 보안연구소에 인지전 전문가를 직접 추천하기도 했다. 실제 여 전 사령관이 추천한 인사는 지난해 12월2일 보안연구소 연구기획팀에 임용됐다. 지난해 10월에는 여 전 사령관실에 있던 소령이 전 부대원을 대상으로 인지전 내용이 포함된 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 여 전 사령관의 지시를 받았던 건 그의 비서실장이던 정성우 전 1처장과 최측근인 소형기 전 방첩사 참모장(현 육군사관학교 교장)이다. 정 전 1처장은 보안처와 방첩처에 인지전 관련 조직 신설을 지시했으나 간부 대부분이 ‘업무 관련성이 없다’며 거부했다. 소 전 참모장은 지난 2023년 11월6일 인사를 통해 여 전 사령관과 함께 방첩사로 온 인물이다. 두 사람은 인사 이전 육군본부 정보작전참모부에서 부장과 계획편제차장으로 함께 근무했다. 방첩사는 육·해·공군 장성급 직책과 국방부 예하기관장 등에 대한 인사안도 작성했다. 이 인사안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관련 진술을 확보하고 지난달 29일부터 방첩사 신원보안실과 군사정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방첩사 신원보안실은 본래 육·해·공군 각군 인사참모부에서 인사 계획안을 작성하면, 해당 인물의 세평 등 정보를 수집·조사해 검증하는 조직이다. 그러나 여 전 사령관이 지난 2023년 11월 방첩사령관으로 임명된 이후 신원보안실은 여 전 사령관 측근들로 구성돼 군 인사와 비상계엄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신원보안실장을 맡고 있는 나모 실장(대령)은 지난해 전역을 앞두고 있었으나 비상계엄을 나흘 앞둔 11월29일 인사에서 이례적으로 임기가 2년 연장됐다. 신원보안실 산하 신원검증과장 등을 맡았던 진모 당시 중령은 충암고 출신으로 지난해 9월 인사에서 대령으로 진급했다. 내란 사태 이후 지난해 12월6일 육군 제5군단 방첩부대장으로 부임했다. 공수처 진술 확보 방첩사 신원보안실은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계획 문건을 만들고, 이를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기도 했다. 당시 그 자리는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이 맡고 있었으나 박 전 총장 임기 만료 전이던 지난 4월 인사에서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안을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8월 여 전 사령관 지시로 만들어진 블랙리스트인 이른바 ‘최강욱 라인 명단’은 2017~2020년, 군 법무관 출신인 민주당 최강욱 전 의원과 근무 시기가 겹치거나 만난 적이 있다는 군 판사·검사 명단을 30명 가까이 정리해 둔 문서다. 최 전 의원은 문재인정부 시절인 2018년 9월~2020년 3월 청와대 직원 직무감찰과 군을 포함한 주요 공직자 인사 검증을 담당하는 공직기관비서관으로 근무했다. 명단에는 김상환 육군본부 법무실장(준장)과 서성훈 중앙지역군사법원장(대령) 등 비육사 출신 군 법무관들이 주로 이름을 올렸다. 공수처는 여 전 사령관이 김 법무실장을 국방부 검찰단장직에 보임되는 일을 막기 위해 그를 강제 전역시킬 방안을 연구했다고 보고 압수수색 영장에 관련 혐의도 적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여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기 위해 장군 인사에도 개입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정치 성향 등 단순 세평 수집이 아닌 각 군에서 작성한 인사안을 검토하거나 직접 작성했는지가 의혹의 핵심이다. 한 군 정보 소식통은 “정보사를 포함해 계엄에 협력할 만한 인물을 정리한 문건도 방첩사가 관리했다.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을 포함해 계엄에 반대하지 않을 것 같은 인물들은 모두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됐다”고 주장했다. 조 사령관은 블랙리스트가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난해 4월 사이버사령관으로 부임했다. 노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과 연락을 취하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하기도 한다. 부임 6개월도 안 된 해군 출신이던 이동길 전임 사령관을 교체하고 조 사령관을 임명한 건 이례적인 일이라는 게 군 내부의 시선이다. 사령관 추천 노 ‘오케이’ 조 사령관은 평소 여 전 사령관과의 친분을 과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김 전 장관이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시절(2015~2017년) 작전본부 중령으로 근무했다. 방첩사 출신 군 관계자는 “여 전 사령관이 노상원을 멀리 했으나 계엄을 놓고 본다면 자신의 측근이자 믿을 수 있는 인물을 사이버사령관으로 둬야 했을 것이다. 여 전 사령관이 김용현에게 조 사령관을 추천, 노상원이 ‘오케이’한 인물”이라고 전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초부터 김 전 장관과 연락하면서 12·3 비상계엄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을 검증하려 계엄사령부 산하 수사2단을 지휘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서버 탈취를 계획했다. 정치권과 군 일각에서는 조 사령관이 여 전 사령관의 지시로 노 전 사령관에게 협력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노 전 사령관의 선관위 서버 탈취 계획이 성공했다면 조 사령관이 사이버사 산하 해킹 부대인 900연구소를 중심으로 댓글 및 여론 공작에 나섰을 것이란 분석이다. 복수의 정보사 간부들은 댓글·여론 공작의 다음 플랜이 ‘민간인 사찰’이라고 전했다. 노 전 사령관이 선관위 서버 탈취에 성공하면 진보 성향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시민단체 관계자들의 SNS를 들여다볼 계획이었다는 것이다. 정보사 출신 군 고위 관계자는 “‘부정선거가 사실이었다’는 여론을 조성하는 데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는다. 계엄이 2~3주 정도 유지됐다면 방첩사와 노상원이 지휘하는 수사2단이 주체가 돼 진보 성향 시민단체의 동향 파악은 기본이고 실제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결론적으로 방첩사가 사이버사를 통해 댓글·여론 공작을 하려 했던 건 ‘윤석열의 계엄이 옳았다’는 헛소리를 유포하기 위함이다. 노상원이 김용현에게 조언했고 MB·박근혜 때의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을 참고해 시나리오를 짰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노, MB·박정부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 참고 여, 블랙리스트 김용현에 직보…김·노 논의 여 전 사령관은 사이버사를 통해서만 댓글·여론 공작을 실행하려 하지 않았다. 직접 국정원에 방첩 업무를 담당할 도·감청 전문가들을 파견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는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이 여 전 사령관의 요청을 거절한 직후에 일어난 일이다. 당시 홍 전 차장은 윤 전 대통령이 “방첩사를 지원하라”고 하자 여 전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윤 전 대통령 지시 사항을 전달했고, 여 전 사령관은 체포 대상자 명단을 불러주며 위치 추적을 요청했다. 합참의 ‘계엄실무편람’에 따르면, 계엄사는 합동수사본부 지원을 맡는다. 합동수사본부는 예하에 수사1·2·3·5국을 둔다. 2018년 논란이 됐던 기무사의 계엄 대비 문건에는 합동수사본부장은 방첩사령관이, 수사5국은 국정원이 맡는다고 적혀 있다. 당시 문건에는 ‘국정원은 국정원법을 이유로 계엄사령관의 지시에 소극적으로 대응할 가능성 내재’ ‘이럴 경우 대통령께서 국정원장에게 계엄사령관의 지휘·통제를 따르도록 지시’라고 기록됐다. 여 전 사령관은 ‘민간인 사찰을 계획했느냐’는 <일요시사>의 여러 질문에 대해 “너무 구체적이다. 어떤 게 맞고 틀린지 답하기 곤란한 내용이 포함돼있다”며 “수사를 앞두고 있어 답할 수 없음을 양해해 달라”고 말한 바 있다. 공수처는 방첩사의 댓글·여론 공작 의혹과 군 간부들에 대한 평가와 사찰에 대한 문건이 윤 전 대통령에게까지 보고됐는지 수사 중이다. 공수처는 조만간 여 전 사령관에 대한 피의자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지만 내란 특검이 출범하게 되면 모든 자료를 특검에 넘겨야 한다. 공수처 최근 정례 브리핑에서 “지난주부터 방첩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거의 매일 진행 중”이라며 “포렌식이 오래 걸리는 건 여러 곳에 분산된 서버를 복구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통해 윤 전달? 공수처는 12·3 비상계엄 사태 수사와는 별개로 방첩사 관련 사건을 입건해 사건번호를 부여한 상태라고 부연했다. 지난 5일 내란 특검법, 채상병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해 조만간 특별검사 수사 체제가 가동될 것으로 예상돼 공수처는 특검 출범 이후 방첩사 블랙리스트 관련 수사와 기존 고발 사건 수사에 집중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 관계자는 “특검이 출범하고 자료 요청이 오면 당연히 자료를 넘겨야 하지만 그 전까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