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비상계엄 설계 ‘보살’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

파도 파도 끝없는 무속담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주도하고 윤석열 대통령이 실시한 12‧3 비상계엄 뒤에는 ‘아기보살’이 있었다.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으로 김 전 장관의 수족으로 불린다. 노 전 사령관이 계엄 날짜를 찍고 부추긴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으며 그의 수첩에는 구체적인 계획이 적혀있다. 구속 후 검찰로 송치된 그로부터 비상계엄의 새로운 국면이 나올까 관심이 집중된다.

12‧3 비상계엄 사태 핵심 인물로 꼽히는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주목받고 있다. 노 전 사령관의 수첩서 북한 공격 유도, 정치인 등 사살 등이 적혀있었기 때문이다. <일요시사>는 불명예 전역한 뒤 점집을 운영하다가 핵심 비선이 된 노 전 사령관에 대해 알아봤다.

엘리트 군인
무속인의 삶

노 전 사령관은 경상북도 문경시 출생으로 문경중학교와 대전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1981년 육군사관학교에 수석 입학했다. 

보병 병과로 군 생활을 시작해 7사단서 대대장과 연대장을 거쳤다. 소령 때 정보 병과로 전환했으며 이 무렵 ‘노용래’서 ‘노상원’으로 개명했다. 그는 이후 육군참모총장 수석전속부관, 대통령경호실 군사관리관, 777사령관, 정보사령관 등 핵심 보직을 거치며 승승장구했다.

특히 정보 병과서 국가정보원과 청와대로 파견 근무하며 능력을 인정받았다.

특히 2012년 준장으로 진급했고 당시 박근혜정부 대통령경호실서 군사관리관으로 1년간 파견 근무를 했다. 통상 군사관리관은 경호처 파견 군부대들을 관리하는 보직으로, 보병 병과 준장이 주로 보임되는데 노 전 사령관은 정보 병과이면서도 보임됐다. 그는 군사관리관 파견 근무 이후 소장으로 진급했다.

하지만 그는 윤석열정부 들어선 어떤 공직도 맡은 적 없다. 지난 2018년 육군 정보학교장을 마지막으로 불명예 전역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해 국군의날에 여군 교육생을 강제추행해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아 군복을 벗었다.

당시 노 전 사령관은 ‘산에 들어가겠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한 예비역은 “전역한 뒤 노 전 사령관이 생계를 위해 죽은 뱀에서 나온 구더기를 먹인 닭(이른바 뱀닭)을 판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최근엔 경기 안산서 점술가로 활동한 사실이 드러났다.

노 전 사령관은 안산시 상록구 본오동 한 건물 반지하서 점집을 운영했다. 점집은 문제의 ‘햄버거 회동’ 장소와는 직선거리로 1㎞ 남짓 떨어져 있다. 최근까지 ‘아기보살’이라고 적힌 명패가 외벽에 붙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현재는 사라진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건물 계단을 내려가 반지하에 도착하면 오른쪽으로 노 전 사령관의 점집 입구가 보인다. 입구에는 ‘안산시 모범 무속인 보존위원’이라고 적힌 스티커와 함께 붉은색 ‘만(卍)’자가 여러 개 붙어 있다.

입구 옆에는 제사 등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북어 더미, 말라버린 잡채 그릇, 정체를 알 수 없는 붉은 국이 담긴 냄비가 놓여 있다. 북어 중 일부는 여전히 입속에 현금이 들어 있기도 했다.

계단 아래 공간에 마련된 창고에는 사탕과 향초가 담긴 종이상자, 막걸리와 소주병 등이 가득 쌓여 있으며 사탕이 담긴 큰 유리병에는 ‘소원 성취’라는 글귀도 쓰여 있다.

군복 벗은 뒤 ‘핵심 비선’으로 자리
막후 인사권 쥐고 군 내부부터 흔들어

창고 한 칸에는 ‘부정 푸는 법’이라고 적힌 종이가 동봉된 마른 쑥 봉지도 가득 놓여 있었다. 종이에는 “본 부정풀이는 부정을 푸는 데 효과가 뛰어난 방법을 종합적으로 응용해 만들었다”며 “성물을 적당한 장소서 불살라 버리고, 소금이나 팥을 뿌려 퇴송하시면 부정이 사라진다”라고 쓰여 있다고 한다.

‘아기보살’과 연관된 물품인 듯 곳곳에 장난감과 사탕류도 눈에 띄었다. 북어 옆에는 먼지 쌓인 자동차 모형이 여러 개 놓여 있었고, 창고에도 용도를 가늠하기 힘든 초콜릿과 사탕, 젤리 등이 많이 보였다고 한다.

군복을 벗은 뒤 군과 절연한 것처럼 보였지만, 그는 오히려 ‘핵심 비선’으로 자리 잡았다. 자신이 사령관을 지낸 정보사의 OB(전직 간부) 모임을 주도한 흔적이 곳곳서 포착됐다. 특히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올해 9월 장관으로 취임하자, 군내에선 노 전 사령관 이름도 함께 회자됐다.

국방부 관계자는 “‘노상원 라인’으로 불리는 배모 준장이 김 전 장관 인사청문회 준비단에 들어갔을 때 낙하산이라는 말이 많았다”고 말했다. “배 준장이 그 뒤 요직인 연합사 작전처장이 된 것도 노 전 사령관 입김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노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과 함께한 첫 근무지는 수도방위사령부 55경비대대(현 55경비단)로 알려졌다. 55경비대대는 청와대를 경호하는 근위부대로, 두 사람은 김 전 장관이 1990년 무렵 소령으로 이곳 작전과장을 맡을 때 노 전 사령관(당시 대위)이 제대장을 맡아 연을 맺었다.

두 사람과 함께 근무한 예비역은 “둘이 죽이 정말 잘 맞았다”고 회상했다.

노 전 사령관은 탁월한 심기 경호로 김 전 장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한다. 두 사람과 인연이 있는 군 관계자는 “김 전 장관이 대대장에게 잘 보이려고 후배들을 쥐어짜면, 노 전 사령관은 이에 동조해 부하들을 강하게 쪼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예비역은 노 전 사령관을 “사람 자체가 흑백이라서 중간이 없다”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인정하는 부하에겐 전폭적으로 일을 맡기고, 마음에 안 들면 그냥 반 죽여서 짓밟았다”고 평가했다.

김 전 장관은 2007년부터 박흥렬 전 육군참모총장의 육군본부 비서실장으로 일했고, 김 전 장관 추천으로 노 전 사령관은 비서실 산하 과장급으로 근무했다. 이 무렵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의 수족처럼 일했다고 한다.

노 전 사령관을 잘 안다는 군 관계자는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존재감을 드러내려고 했고, 인맥과 라인을 만드는 데 열중했다”고 했다. 특히 김 전 장관을 통해 영향력을 과시하고 싶어해 후배뿐 아니라 동기들 사이서도 평가가 안 좋았다는 전언도 나왔다.

몰락했지만
김용현 라인

‘롯데리아 내란 모의’에 불려 나온 문상호 정보사령관과 현직 대령 2명 역시 노 전 사령관의 ‘인사 영향력’을 의식했을 것이란 시각이 많다. 문 사령관은 올해 여름 ‘블랙요원 리스트 유출 사건’과 자신이 연루된 하극상 사건으로 직무 배제 예정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는 김 전 장관의 취임과 맞물려 유임됐다. 군 소식통은 “문 사령관 인사에 미심쩍은 부분이 많다. 노 전 사령관이 승진을 약속하며 현직들을 끌어들였을 수 있다”고 했다. 정보사가 점조직인 탓에 OB들이 노 전 사령관처럼 블랙요원으로 활동하며 인사에 개입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김 전 장관 라인을 탄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과 계엄과 관련한 군 관계자들의 사주와 점을 계속 본 것으로 확인됐다. 

군산시 개정면서 점집을 운영하는 A씨는 <연합뉴스>와 인터뷰서 “노 전 사령관이 2022년 2월부터 올해 초까지 셀 수 없을 만큼 자주 방문해 군인들의 사주를 물어봤다”며 “대략 20여차례가 넘게 다녀갔다”고 말했다.

A씨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전화나 문자메시지로 사전에 예약한 뒤 점집을 방문했고, 군인들의 사주가 적힌 메모나 사진을 들고 찾아와 점괘를 물었다.

A씨는 “다른 군인들은 정확히 이름이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데 김용현 전 장관의 얼굴은 TV 뉴스를 보고 바로 알아봤다”면서 “김 전 장관의 사주를 가장 많이 물었고, 노 전 사령관이 ‘이 사람이 잘돼야 내가 복귀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A씨는 노 전 사령관이 ‘계엄’을 언급했느냐는 질문에는 “계엄이라는 말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고 ‘중요한 일’이라는 표현을 썼다”며 “뉴스를 보고 나서야 그때 물었던 것이 저걸 말하는 것이구나 하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노 전 사령관이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는지에 묻자 A씨는 “내가 대통령이 임기 1년을 남기고 탄핵당할 것이라고 말하자 노상원씨가 ‘외부에 공개된 (윤 대통령)생년월일과 실제 생년월일이 다르다’고 말하며 탄핵당할 일이 없다고 했다”고 답변했다.

A씨는 노 전 사령관 역시 점집을 운영하는데 이곳을 찾은 이유가 있느냐는 질문에는 “노상원씨도 사주를 아주 잘 보는데 내가 신내림을 받은 무당이라 자주 찾아왔다”면서 “대통령이나 영부인도 나중에 찾아오는 것이냐 물었지만, (특별한 언급 없이)다른 사람과 함께 오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성폭력 전과
햄버거 모의

김 전 장관을 등에 업고 인사 비선으로 권력을 휘두르던 노 전 사령관은 문제의 햄버거 회동이 알려지면서 계엄에 깊숙이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햄버거 회동은 계엄 이틀 전인 지난 1일 경기도 안산의 한 햄버거 가게서 국군 정보사령부 간부 3명과 만나 계엄을 사전에 논의한 것으로, 노 전 사령관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전산 서버를 확인하면 부정선거 증거를 확보할 수 있다”는 말을 했다.

이날 1시간여의 회동이 끝나고 노 전 사령관이 먼저 자리를 떠났고, 문 사령관은 이후 두 대령에게 비상계엄이 예정된 사실을 언급했다고 한다.

이후 계엄 선포 당일엔 국회와 선관위 장악 이후 추진할 후속 작전 및 수사에 관련된 ‘제2수사단’ 논의가 진행됐다. 지난 3일 오후 2시반쯤 마련된 회동엔 노 전 사령관과 김용군 전 대령, 구삼회 제2기갑여단장과 국방부 조사본부 관계자 1명이 참석했다.

이 같은 정황을 포착한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특별수사단(이하 특수단)은 지난 15일 노 전 사령관을 긴급 체포했다. 이후 노 전 사령관이 거주하던 점집에선 북한 공격 유도 문구와 정치인, 언론인, 종교인 등을 수거 대상으로 지칭한 수첩도 압수했다. 앞서 언급된 2수사단에 관한 내용도 적시돼있었다.

특수단 관계자는 “수첩에는 국회 봉쇄, 정치인, 언론인, 종교인, 노조, 판사, 공무원 등을 수거 대상으로 표현하며 수용 및 처리 방법에 대해 언급돼있었다”며 “(수거는)체포라는 의미로 해석된다”고 밝혔다.

우종수 특수단장도 지난 23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노 전 사령관의)수첩에 정치인, 언론인, 종교인 등에 대해 수거 대상이라고 이야기했는데 사살이라는 표현이 있었느냐” “사실에 부합하느냐”는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 질문에 “사실에 부합한다”고 답했다.

우 특수단장은 수첩에 오물 풍선에 관한 표현도 있었느냐는 질의에는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노 전 사령관 수첩서 ‘NLL(북방한계선)서 북한의 공격을 유도’라는 표현이 적시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힌 바 있다.

특수단이 확보한 노 전 사령관의 수첩에는 이른바 수거 대상과 관련된 백령도 작전이 적혀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수거 대상 명단으로 총 16명이 적힌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 당국은 수첩에 적힌 ‘백령도 작전’이 수거 대상을 체포 후 배를 통해 백령도로 보내는 과정서 사살한다는 취지의 내용으로 의심하고 있다.

계엄 날짜 찍고 구체화
내란에 더해 외환까지 

수첩에는 북한 등 불상의 공격을 통해 배가 폭발하는 등의 내용도 언급된 것으로 전해졌다.

서해 최북단 백령도는 북방한계선(NLL)을 사이에 두고 북한과 10여㎞ 떨어져 있다. 수사 당국은 노 전 사령관이 이곳에서 북한 공격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수거 대상 인사 사살 계획을 모의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수사 당국은 수첩 내용과 관련해 노 전 사령관이 개인적 아이디어 차원서 가능한 시나리오를 적어본 것일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 이 같은 정황에 국수본은 지난 24일, 노 전 사령관을 내란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구속 송치했다. 

노 전 사령관은 호송차로 이동하면서 ‘윤석열 대통령과 비상계엄에 대해 직접 소통했느냐’ ‘수첩에 누구를 사살하라고 썼느냐’ ‘북한 공격은 어떻게 유도하려고 했느냐’는 기자 질문에 별다른 답변을 하지 않았다.

이후 서울중앙지검에 들어서면서 ‘사살 대상이 누구였느냐’ ‘북한 공격을 어떻게 유도하라고 했느냐’는 질문에 취재진을 응시하기도 했다.

정보사 사정에 정통한 복수의 군 소식통 발언을 종합하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부터 “계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고 자신과 친분이 깊은 김 전 장관에게 조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군 소식통은 “노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에게 ‘계엄을 한번 해야 한다’고 먼저 건의한 것으로 안다”며 “노 전 사령관이 날짜까지 찍어 ‘계엄을 하려면 날짜는 12월3일이 좋다’는 취지로도 전달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노 전 사령관에게서 출발한 ‘계엄 아이디어’가 김 전 장관을 통해 야당의 잇단 탄핵 처리 등으로 비상조치를 검토하던 윤 대통령에게 전달되면서 계엄 준비가 이뤄졌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 소식통은 “‘계엄’이라는 키워드가 (김 전 장관을 거쳐)대통령에게까지 보고됐을 때 마침 정치적으로 수세에 몰려 있던 윤 대통령 생각과 맞아떨어져 계엄이 현실화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계엄 준비에 들어간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이 대통령 경호 관련 부대 근무 인연을 바탕으로 ‘경호처 카르텔’을 형성해 자신들의 뜻에 따르지 않는 정보사 인사를 ‘찍어내기’ 한 정황도 파악됐다.

실제 계엄 세력이 북한 도발을 유도한 사실이 확인된다면 현재 수사기관의 내란죄 수사는 외환죄 등으로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앞서 민주당은 평양 무인기 침투와 오물 풍선 원점 타격 지시 등으로 국지전을 도모하려 했다며 윤 대통령과 김 전 국방부 장관을 외환죄 중 일반이적죄로 고발했고, 외환 유치 의혹을 담당하는 별도 팀도 만들기로 했다.

북한 도발 
유도 세력?

형법 제99조 외환 일반이적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군사상 이익을 해하거나 적국에 군사상 이익을 공여한 자는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명시돼있다. 헌법 제84조는 대통령은 내란죄와 외환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소추를 받지 않는다고 정하고 있다. 그만큼 외환죄는 형사법상 심각할 범죄일뿐더러 대통령이 실제로 지시하거나 기획한 것이 확인된다면 파장이 클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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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