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연재> 선감도 ㉜위대했던 쿠데타의 기억

  • 김영권 작가
  • 등록 2024.12.16 03:00:00
  • 호수 15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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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자기들만의 장난은 아니어야지.” 김영권의 <선감도>를 꿰뚫는 말이다.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 청춘을 빼앗긴 한 노인을 다뤘다. 군사정권에서 사회의 독초와 잡초를 뽑아낸다는 명분으로 강제로 한 노역에 관한 이야기다. 작가는 청춘을 뺏겨 늙지 못하는 ‘청춘노인’의 모습을 그려냈다.

“이놈들! 따지고 싶은 게 있으면 지휘 계통을 밟아야지, 이게 무슨 난리통이야? 이 자식들을 그냥……. 말이 나왔으니 하는 애긴데, 너희 놈들이 억울하다고 할 건 없어. 게으르고 자립심이 부족하고 남한테 신세 지려 하고, 이게 네놈들의 본성이야! 전생에 얼마나 못되게 살았으면 지금 이런 곳에서 짜고 있겠어? 너희들은 밥이고 뭐고 함부로 투정할 게 못 돼. 지금 나라 지키느라 애쓰는 혁명 군인들도 너희보다 낫지는 않아. 그게 바로 지금 우리나라 현실이야. 우리는 풍요로운 미래를 향해 허리를 졸라매고 뛰어야 한다구. 또 그렇게 먹는 것부터가 배고픔을 이기는 훈련이기도 한 거구 말야.”

“네놈들의 본성”

“혁명 군인들한테 일년 열두 달 소금국만 주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원장이 황급히 두 팔을 휘저었다.

“아, 조용 조용히! 이 자식들이 웬 말이 많아. 그렇다면 그런 줄 알 것이지. 너희들이 몰라도 너무 모르는데 말야. 혹시 너희 지금 먹고 있는 급식비가 다 어디서 나오는 건지 한번쯤 생각해 봤어? 다 국민들이 허리띠 졸라매면서 낸 세금이란 말이야. 그걸 고맙게 생각할 줄도 알아야지.”


“그러니까 이 기회에 감사라도 한번 받아 보자는 거 아닙니까?”

원장의 얼굴에 일순 찬바람이 돌았다.

“엉? 저 녀석이 듣자 듣자 하니까…….”

원장의 노기 띤 표정에도 불구하고 내친 걸음이다 싶었는지 공격이 꼬리를 물었다.

“맞소. 귀중한 세금이니까 더욱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감사해도 문제가 없으면 우리도 두말 않겠습니다!”

원장은 다시 두 팔을 내저었다.

“아, 글쎄 조용 조용히 얘기하란 말야.”


하지만 이제 원생들은 더 이상 들으려 하지 않았다. 백번 얘기해 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원생들의 고함은 이제 야유로 변하고 있었다.

더 이상 가다간 어렵겠다 생각했는지 원장은 급히 선생들을 불러 모으고 한동안 무슨 말인가를 속닥거렸다. 그러더니 손바닥을 탁탁 치며 말했다.

“아, 좋아 좋아. 모두 주목하라! 이러다가는 하루종일 해도 끝이 안 나겠어. 그러니 다른 원생들은 그 자리에 대기하고 각 반 반장들만 대표로 나와라.”

그 얼굴엔 노련한 경륜이 기름처럼 번들거리고 있었다. 반장들이 앞으로 나가자 원장은 눈앞의 잔디밭으로 그들을 데리고 갔다. 

대화는 쉽게 끝나지 않았다. 둥그렇게 둘러앉아 나누기 시작한 대화는 여름의 태양이 중천을 지날 때까지도 계속되었다. 지치고 배고픈 나머지 꾸벅꾸벅 조는 원생들이 늘어가고 있었다. 

이윽고 땡볕 아래서 회의를 끝낸 원장이 성큼성큼 걸어왔다.    

“주목해라! 모두 알다시피 여기는 고립된 섬이다. 그러니 무작정 왈가왈부하며 앉아만 있을 게 아니라 개선할 것은 차차 개선하기로 하고, 우리한테 주어진 임무는 완수하면서 더 나은 결과를 기다리는 게 좋을 것 같다.”

곤쟁이같은 신세
꿈을 채색할 자유

뒤따라온 노랑머리가 원생들을 대표해서 한 마디 했다.

“여러분, 원장님의 말씀을 일단 한번 믿어 봅시다. 그러나 만일 오늘의 약속이 공수표로 끝난다면 그땐 다시 일어나 결사적으로 싸웁시다!”

원생들은 찬성의 뜻으로 박수를 쳤다. 원장과 선생들은 관사로 들어가고 원생들은 뙤약볕 밑을 걸어 식당으로 들어가 꽁보리밥과 짜디짠 곤쟁이젓으로 허기를 달랬다. 

용운은 젓가락을 든 채 우울한 표정으로 식판 위의 곤쟁이젓을 바라보았다. 매일 억지로라도 먹어야 하다 보니 이젠 거부감도 시나브로 삭고 삭아 자신의 몸같이 느껴지기도 하는 곤쟁이.


새우를 닮았으나 새우보다 작고 가냘파 보이는 희미한 생물.

한때는 고향인 푸른 바다 속을 유영하며 자유를 호흡했겠지만, 지금은 잡혀와서 거무칙칙한 하급품 소금에 절여져 검은 눈알만 점점이 남기고 삭아가며 자신의 근원도 모른다. 

“마치 나하고 같은 신세구나.”

용운은 중얼거리며 한숨을 쉬었다.

선감원의 여름날은 지루하게 흘러갔다. 평온을 되찾은 일상은 쳇바퀴처럼 돌았다.

선생들은 곧 좋은 날이 온다며, 기다림의 미학을 기회 있을 때마다 되풀이했다.


날이 지날수록 원생들은 그 위대했던 쿠데타의 기억을 잊고 쳇바퀴 속의 한 마리의 다람쥐로 변해 갔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노랑머리의 모습을 어디서도 볼 수가 없었다.

8월이 되자 특별한 피서객들이 선감도로 왔다. 서울에서 학교에 다니다가 방학을 맞아 절해고도의 풍경을 찾아온 그들은 원장이나 선생들의 아들딸들이었다. 

영양실조로 인해 마른버짐이 피고 잔뜩 억눌려 침울해 뵈는 원생들의 얼굴과는 달리 육지에서 온 아이들은 통통하게 살이 찌고 생기발랄한 모습이었다.

우중충한 회색 옷에 검정 고무신을 신은 원생들은 크레파스 통 속에서 마음에 드는 색은 무엇이든 골라 제 꿈을 채색할 수 있는 그들의 자유를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서울 아이들은 원생들을 두려워하거나 멸시하시는 않았다. 자기들의 부모가 기르는 가축인 양 호기심을 보이고 때로는 동정의 눈길을 던지기도 했다.

처음엔 좀 꺼림칙하게 생각하다가도 얘기를 걸어 왔고 그러다가 느낌이 통하면 서로 어울려 놀기도 했다. 

서울에서 사 온 과자는 입속에서 살살 녹았다. 원생들은 서울 아이들에게 답례로 팽이를 깎아 주기도 하고 매미나 개구리를 잡아 즐겁게 해주었다. 

선생이나 사장들은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훈시를 내리고 단속을 철저히 하긴 했지만 서로 마음이 통해 어울려 노는 것까지 막진 않았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자녀들의 교육 기회로 활용하려는 낌새도 보였다.

함께 갯벌로 나가 세발낙지나 물고기를 잡게 배려하기도 하고, 푸른 물결이 찰랑이는 바닷가에서 수영을 가르쳐 보라고 시키기도 했다. 

한여름 피서객

그런 기회는 물론 아무에게나 주어지진 않았다. 그 중 행실이 바르고 착실할 뿐만 아니라 자녀들과 나이가 비슷한 어린 원생에 한했다.

열다섯이 넘는 원생들은 함께 어울리지 못했고 멀찍이 서서 지켜보며 불상사에 대비해 관찰을 하도록 분부했다.

한창 물오른 소년 소녀들이 초록빛 바다를 배경으로 물장구치며 뛰노는 모습은 나이든 감시자들에겐 그야말로 한 폭 그림 속의 떡이었다.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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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간 산불 주원인 ‘실화·쓰레기 소각’ 예방법 없나?

10년간 산불 주원인 ‘실화·쓰레기 소각’ 예방법 없나?

[일요시사 취재2팀] 박정원 기자 = 지난 22일 경북 의성서 시작된 산불이 안동, 청송 등 인접 지역으로 걷잡을 수 없이 번지면서 가히 ‘재난 영화’를 방불케 할 정도의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이번 산불이 성묘객의 실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되면서, 관련자 처벌 수위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27일 산림청 산불 원인 통계자료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입산자에 의한 실화가 171건(31%)으로 가장 많았고, 쓰레기 소각이 68건(13%), 논·밭두렁 소각이 60건(11%)이었다. 대형 산불은 특히 건조한 날씨가 지속되는 봄철에 주로 발생한다. 계절별 산불 발생 현황을 살펴보면, 2015~2024년 연평균 산불 546건 중 봄철에 발생하는 산불은 303건(56%)에 달했다. 실제 지난 2022년 3월4~13일 경북 울진과 강원 삼척, 강릉, 동해서 발생한 일명 ‘동해안 산불’은 산림 2만523㏊를 태웠다. 2020년 4월 경북 안동서 발생한 산불은 1944ha의 면적을 태웠으며, 2019년 4월 강원 고성·강릉·인제서 난 산불은 3일간 2872ha를 휩쓸었다. 이처럼 산불이 주로 봄에 발생하는 이유는 건조한 날씨와 더불어 야외활동이 잦아지는 시기인 점도 한 몫한다. 이번 의성 산불 역시 묘지를 정리하던 50대 성묘객이 라이터로 불을 피운 게 화근이 됐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해당 성묘객은 산에서 쓰레기를 태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날 울산 울주군 온양읍 야산서 발생한 산불도 농막서 나온 용접 불꽃이 원인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보다 앞선 21일 경남 산청서 발생한 산불 역시 풀베기 작업 중 예초기서 튄 불꽃이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이에 일각에선 산불 관련 처벌이 약해 경각심이 부족하다는 지적과 함께,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급기야 국회전자청원 시스템에는 실화죄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청원까지 등장했다. 현행 산림보호법 53조는 과실로 산불을 냈을 경우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한다. 고의로 방화를 한 경우에는 5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형까지 가능하다. 하지만 산불의 특성상 발화 원인을 정확히 규명하기 어렵고, 실화자를 특정하거나 과실 입증 과정이 쉽지 않은 만큼, 실제 처벌로 이어진 사례는 많지 않다. 산림청에 따르면 지난 2021년부터 올해 3월까지 최근 5년간 산불 유발자 검거율도 46.1%에 불과하다. 처벌 수위도 낮다. 최근 4년간 산불 발생 건수는 2108건이었으나, 집행유예를 포함한 실형을 받은 건수는 43건(2.03%)에 그친다. 지난해에는 279건의 산불 중 110명이 범인으로 붙잡혔지만, 징역형을 선고받은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벌금형도 8명에 그쳐 처벌 비율이 7.2%밖에 되지 않았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대형 산불 재난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농촌 지역을 중심으로 불법 소각 행위가 근절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6일 경북 의성군 단촌면의 한 밭두렁에서는 산불이 계속 확산되는 상황 속에서도 한 주민이 불에 탄 신발, 가재도구와 폐기물 등을 태우는 모습이 목격됐다. 같은 날 안동 하회마을 인근서도 쓰레기를 소각하던 한 70대 노인이 관계기관에 적발되기도 했다. 당시 하회마을 인근에선 의성 산불이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소방·산림 당국이 대규모 인력을 투입해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었던 긴박한 상황이었다. 이처럼 대규모 재난 대응이 이뤄지는 와중에도 또 다른 대형 화재의 불씨가 될 수 있는 불법 소각 행위가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는 점은 ‘안전불감증’의 심각성이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현행 경북도 화재예방조례에 따르면 산림 인접지나 논·밭 주변서 사전 신고 없이 불을 피워 소방 인력이 출동할 경우 2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되지만, 이 같은 수준의 처벌이 수십 년간 이어져 온 농촌 지역의 불법 소각 관행을 근절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지자체 관계자는 “단속에 투입되는 인원에도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 농촌 지역에 거주 중인 주민들의 안전불감증이 가장 큰 문제”라며 “과태료도 인상과 함께 보다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도 과태료 인상 등 처벌 강화와 더불어 폐기물 수거 시스템 확충, 주민 참여형 안전 교육 등 보다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영농 폐기물 및 생활 쓰레기 처리 시스템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소각 행위를 대체할 수 있는 친환경 처리법의 보급 등 반복되는 산불 재난을 막기 위한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제언했다. 한편,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6시 기준 산불로 인한 사망자는 경북 22명, 경남 4명 등 26명으로 잠정 집계됐다. 산림 피해 면적은 3만5810㏊로, 역대 최대 피해를 냈던 2000년 동해안 산불의 피해 면적(2만3794㏊)을 넘어섰다. <jungwon933@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