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연재> 선감도 ㉜위대했던 쿠데타의 기억

  • 김영권 작가
  • 등록 2024.12.16 03:00:00
  • 호수 15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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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자기들만의 장난은 아니어야지.” 김영권의 <선감도>를 꿰뚫는 말이다.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 청춘을 빼앗긴 한 노인을 다뤘다. 군사정권에서 사회의 독초와 잡초를 뽑아낸다는 명분으로 강제로 한 노역에 관한 이야기다. 작가는 청춘을 뺏겨 늙지 못하는 ‘청춘노인’의 모습을 그려냈다.

“이놈들! 따지고 싶은 게 있으면 지휘 계통을 밟아야지, 이게 무슨 난리통이야? 이 자식들을 그냥……. 말이 나왔으니 하는 애긴데, 너희 놈들이 억울하다고 할 건 없어. 게으르고 자립심이 부족하고 남한테 신세 지려 하고, 이게 네놈들의 본성이야! 전생에 얼마나 못되게 살았으면 지금 이런 곳에서 짜고 있겠어? 너희들은 밥이고 뭐고 함부로 투정할 게 못 돼. 지금 나라 지키느라 애쓰는 혁명 군인들도 너희보다 낫지는 않아. 그게 바로 지금 우리나라 현실이야. 우리는 풍요로운 미래를 향해 허리를 졸라매고 뛰어야 한다구. 또 그렇게 먹는 것부터가 배고픔을 이기는 훈련이기도 한 거구 말야.”

“네놈들의 본성”

“혁명 군인들한테 일년 열두 달 소금국만 주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원장이 황급히 두 팔을 휘저었다.

“아, 조용 조용히! 이 자식들이 웬 말이 많아. 그렇다면 그런 줄 알 것이지. 너희들이 몰라도 너무 모르는데 말야. 혹시 너희 지금 먹고 있는 급식비가 다 어디서 나오는 건지 한번쯤 생각해 봤어? 다 국민들이 허리띠 졸라매면서 낸 세금이란 말이야. 그걸 고맙게 생각할 줄도 알아야지.”


“그러니까 이 기회에 감사라도 한번 받아 보자는 거 아닙니까?”

원장의 얼굴에 일순 찬바람이 돌았다.

“엉? 저 녀석이 듣자 듣자 하니까…….”

원장의 노기 띤 표정에도 불구하고 내친 걸음이다 싶었는지 공격이 꼬리를 물었다.

“맞소. 귀중한 세금이니까 더욱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감사해도 문제가 없으면 우리도 두말 않겠습니다!”

원장은 다시 두 팔을 내저었다.

“아, 글쎄 조용 조용히 얘기하란 말야.”


하지만 이제 원생들은 더 이상 들으려 하지 않았다. 백번 얘기해 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원생들의 고함은 이제 야유로 변하고 있었다.

더 이상 가다간 어렵겠다 생각했는지 원장은 급히 선생들을 불러 모으고 한동안 무슨 말인가를 속닥거렸다. 그러더니 손바닥을 탁탁 치며 말했다.

“아, 좋아 좋아. 모두 주목하라! 이러다가는 하루종일 해도 끝이 안 나겠어. 그러니 다른 원생들은 그 자리에 대기하고 각 반 반장들만 대표로 나와라.”

그 얼굴엔 노련한 경륜이 기름처럼 번들거리고 있었다. 반장들이 앞으로 나가자 원장은 눈앞의 잔디밭으로 그들을 데리고 갔다. 

대화는 쉽게 끝나지 않았다. 둥그렇게 둘러앉아 나누기 시작한 대화는 여름의 태양이 중천을 지날 때까지도 계속되었다. 지치고 배고픈 나머지 꾸벅꾸벅 조는 원생들이 늘어가고 있었다. 

이윽고 땡볕 아래서 회의를 끝낸 원장이 성큼성큼 걸어왔다.    

“주목해라! 모두 알다시피 여기는 고립된 섬이다. 그러니 무작정 왈가왈부하며 앉아만 있을 게 아니라 개선할 것은 차차 개선하기로 하고, 우리한테 주어진 임무는 완수하면서 더 나은 결과를 기다리는 게 좋을 것 같다.”

곤쟁이같은 신세
꿈을 채색할 자유

뒤따라온 노랑머리가 원생들을 대표해서 한 마디 했다.

“여러분, 원장님의 말씀을 일단 한번 믿어 봅시다. 그러나 만일 오늘의 약속이 공수표로 끝난다면 그땐 다시 일어나 결사적으로 싸웁시다!”

원생들은 찬성의 뜻으로 박수를 쳤다. 원장과 선생들은 관사로 들어가고 원생들은 뙤약볕 밑을 걸어 식당으로 들어가 꽁보리밥과 짜디짠 곤쟁이젓으로 허기를 달랬다. 

용운은 젓가락을 든 채 우울한 표정으로 식판 위의 곤쟁이젓을 바라보았다. 매일 억지로라도 먹어야 하다 보니 이젠 거부감도 시나브로 삭고 삭아 자신의 몸같이 느껴지기도 하는 곤쟁이.


새우를 닮았으나 새우보다 작고 가냘파 보이는 희미한 생물.

한때는 고향인 푸른 바다 속을 유영하며 자유를 호흡했겠지만, 지금은 잡혀와서 거무칙칙한 하급품 소금에 절여져 검은 눈알만 점점이 남기고 삭아가며 자신의 근원도 모른다. 

“마치 나하고 같은 신세구나.”

용운은 중얼거리며 한숨을 쉬었다.

선감원의 여름날은 지루하게 흘러갔다. 평온을 되찾은 일상은 쳇바퀴처럼 돌았다.

선생들은 곧 좋은 날이 온다며, 기다림의 미학을 기회 있을 때마다 되풀이했다.


날이 지날수록 원생들은 그 위대했던 쿠데타의 기억을 잊고 쳇바퀴 속의 한 마리의 다람쥐로 변해 갔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노랑머리의 모습을 어디서도 볼 수가 없었다.

8월이 되자 특별한 피서객들이 선감도로 왔다. 서울에서 학교에 다니다가 방학을 맞아 절해고도의 풍경을 찾아온 그들은 원장이나 선생들의 아들딸들이었다. 

영양실조로 인해 마른버짐이 피고 잔뜩 억눌려 침울해 뵈는 원생들의 얼굴과는 달리 육지에서 온 아이들은 통통하게 살이 찌고 생기발랄한 모습이었다.

우중충한 회색 옷에 검정 고무신을 신은 원생들은 크레파스 통 속에서 마음에 드는 색은 무엇이든 골라 제 꿈을 채색할 수 있는 그들의 자유를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서울 아이들은 원생들을 두려워하거나 멸시하시는 않았다. 자기들의 부모가 기르는 가축인 양 호기심을 보이고 때로는 동정의 눈길을 던지기도 했다.

처음엔 좀 꺼림칙하게 생각하다가도 얘기를 걸어 왔고 그러다가 느낌이 통하면 서로 어울려 놀기도 했다. 

서울에서 사 온 과자는 입속에서 살살 녹았다. 원생들은 서울 아이들에게 답례로 팽이를 깎아 주기도 하고 매미나 개구리를 잡아 즐겁게 해주었다. 

선생이나 사장들은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훈시를 내리고 단속을 철저히 하긴 했지만 서로 마음이 통해 어울려 노는 것까지 막진 않았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자녀들의 교육 기회로 활용하려는 낌새도 보였다.

함께 갯벌로 나가 세발낙지나 물고기를 잡게 배려하기도 하고, 푸른 물결이 찰랑이는 바닷가에서 수영을 가르쳐 보라고 시키기도 했다. 

한여름 피서객

그런 기회는 물론 아무에게나 주어지진 않았다. 그 중 행실이 바르고 착실할 뿐만 아니라 자녀들과 나이가 비슷한 어린 원생에 한했다.

열다섯이 넘는 원생들은 함께 어울리지 못했고 멀찍이 서서 지켜보며 불상사에 대비해 관찰을 하도록 분부했다.

한창 물오른 소년 소녀들이 초록빛 바다를 배경으로 물장구치며 뛰노는 모습은 나이든 감시자들에겐 그야말로 한 폭 그림 속의 떡이었다.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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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윤석열정부 당시 ‘정적 죽이기’로 가장 많은 피해를 봤던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3일 당선됐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내내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공약으로 내놨다. 이 대통령이 당선되자 검찰 내부는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가 나오고 있다. 다만 법조계와 학계에서는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신중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하면서 검찰 내에는 긴장감이 돌고 있다. 이 대통령이 후보 시절까지 포함해 취임 전 법원·검찰과 여러 차례 대립각을 세웠고 선거 과정서 사법개혁과 검찰개혁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만큼 빠른 시일 내에 개혁에 착수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수차례 대립각 이재명정부서 문재인정부 시절 ‘미완’으로 끝난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 완성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이 대통령은 선거 기간부터 “검찰개혁을 완성하겠다”며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고 수사기관의 전문성을 확보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는 문정부 때부터 줄곧 추진해 온 검찰개혁 방안과 유사하다. 문정부 당시 부패·경제 범죄 등에 대한 수사권만을 검찰에 남겨두고 다른 범죄에 대한 수사권은 경찰로 옮겼다. 하지만 윤정부 들어 이른바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복구)’ 시행령과 수사준칙 개정 등으로 여타 범죄에 대한 수사권도 일부 복구됐다. 이 대통령의 수사와 기소 분리는 문정부와는 궤를 달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청을 기소와 공소 유지를 담당하는 ‘기소청’으로 전환하고 중대범죄수사청과 같은 새로운 수사기관을 신설한다는 것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구상이다. 이를 통해 검찰의 기소권 남용에 대한 사법 통제가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검사를 일반 공무원처럼 자체 징계만으로도 파면할 수 있도록 하는 ‘검사 징계 제도’까지 도입한다는 구상이다. 또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 도입 ▲대통령령인 수사 준칙 상향 입법화 ▲피의사실공표죄 강화 ▲수사기관의 증거 조작 등에 대한 처벌 강화 및 공소시효 특례 규정 내용이 담긴 수사 절차법도 제정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이 대통령은 개헌을 통해 검찰총장 임명 시 국회 동의가 필요하도록 하고, 검사의 영장 청구권 독점도 폐지하겠다고 공약했다. 사실상 무소불위였던 검찰 권력을 수술대에 올리겠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한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현재 12개 혐의로 5건의 재판을 받고 있는데 이 가운데 상당수는 지난 정부서 검찰이 수사·기소한 것”이라며 “이 대통령으로서는 검찰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사 출신인 다른 법조인은 “앞서 민주당의 검사 탄핵이 모두 헌법재판소서 기각 결정을 받았는데, 이 대통령 공약대로 기소권 남용 통제, 검사 징계 파면 등이 도입된다면 검찰에 대한 견제가 매우 강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공수처와 국가수사본부에 힘을 실어준 뒤 두 기관을 적극 활용해 이른바 ‘적폐 청산’을 하려는 것 아니냐”고 전망했다. 수사청과 기소·공소청 분리 원칙 줄사표 신호탄…내부는 ‘초긴장’ 검찰 내부에서는 착잡한 기류가 팽배하다. 앞서 민주당이 추진했던 검사 탄핵이나 특활비 전액 삭감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도 높은 개혁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대검찰청 한 관계자는 “검찰의 운명은 민주당에 달려있는 것 아니겠느냐”며 “이재명정부와 여당이 된 민주당이 몰아칠 텐데 검찰의 협상력은 사실상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도 “개혁을 하든, 무엇을 하든 담담하게 운명을 받아들여야지 별 수 있냐”며 “다들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대개 검찰을 지원하는 이유가 국가에 대한 사명감 때문인데, 검찰개혁에 포함된 검사징계법에 파면을 명문화하게 되면 리스크를 감수하고 공익을 위해 일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며 “4~5명의 평검사가 각 부서에 있어야 수사가 원활하게 진행되는데 지금도 2~3명의 평검사만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검찰개혁 이후에는 부장 검사 밑에 직접 수사를 할 평검사가 전혀 없을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고 토로했다. 특수부 검사들 사이에서는 인사보복에 대한 우려가 강하게 나오고 있다. 특히 이 대통령을 수사했던 특수부 검사들은 ‘검찰개혁 이전에 인사보복을 당할 것’이라고 사석에 이야기하고 다닌다고 한다. 반면, 일선 형사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들은 “우리에겐 직접적인 피해는 없을 것”이라며 선을 긋는 분위기다. 다만, 형사부·특수부 검사들이 공감대를 이루며 우려하는 부분도 있다. 과거 문정부 시절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의 권한이 비대해진 바 있는데, 이번 검찰개혁으로 경찰이 영장 청구권을 확보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검찰 단계서 경찰의 영장청구를 판단하지 않아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분석이다. 검찰 내부서 특수부와 형사부가 갈리는 상황에 이들을 모을 구심점도 없다. 과거 문정서 검찰개혁이 추진될 때 검사들이 단일대오로 뭉쳐 저항했던 것처럼 먼저 움직일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결국 수사로 검찰의 존재 의의를 보여야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도이치 주가조작 의혹 ▲명태균·건진법사 선거개입 의혹 등 굵직한 주요 사건 관련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에 부의돼있다. 특검이 시작되면 검찰의 역할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새 정부의 법무부 장관 인선 직후 대규모 인사도 예상된다. 당장 고검장·지검장 물갈이에 이 대통령 관련 사건을 맡았던 검사들의 줄퇴사도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 지난달 20일 사의를 표했던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의 사직서는 지난 3일 수리됐다. 검 운명은 민주당에 이 지검장은 수원지검 성남지청장 재직 당시엔 성남FC 및 선거법 위반 등으로 이 대통령을 기소했다. 이미 2022년부터 업무 과부하 등을 이유로 매년 100명 이상의 검사들이 퇴직했는데 이번엔 이보다 더 큰 규모로 검찰 대탈출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 윤정부가 들어섰던 해인 2022년엔 직전 해(79명)보다 2배쯤 많은 검사 142명이 퇴직한 바 있다. 다만 퇴사를 희망하는 검사가 많더라도 대형 로펌에 이들을 다 수용할 수 있는 자리가 없어 실제 퇴사 규모는 예상보다 적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검찰개혁 신중론도 나오고 있다. 검찰 내부에선 피할 수 없는 문제지만 속도전이 아닌 과거 수사권 조정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반추와 함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차원의 정책 설계가 우선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문정부 시절 검찰개혁으로 인한 수사권 조정 등으로 인한 영향을 복기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한 검사장급 간부는 “다 예상했던 것들로 놀랍진 않지만 수사가 효율적으로 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했으면 좋겠다”며 “과거 수사권 조정으로 대표되는 검찰개혁이 왜 실패했다고 평가를 받겠나? 수사권 조정 등 앞선 검찰개혁에 대해 복기한 다음 추진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 차장검사는 “수사기관 간 견제는 경쟁으로 이어진다”며 “수사는 합리적이고 치밀하게 해야 하는데 다른 기관을 의식해 무리하게 하다 보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우려했다. 한 부장검사는 “구조적인 문제가 없도록 꼼꼼히 설계해야 한다”며 “수사권, 수사력의 문제도 있지만 법 자체가 구조적으로 난점이 있다는 것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형사소송법 등 근간이 되는 법에 속도전으로 나선다면 이번 비상계엄 사태 수사 때처럼 향후 여러 문제가 드러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부장검사도 “수사기관끼리 경쟁하게 되면 결국 윤 전 대통령 내란 수사처처럼 어느 사건이든 번번이 망가질 것”이라며 “검찰 등 수사기관, 학계, 정계 등이 참여하는 공론의 장에서 시간을 갖고 충분히 논의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 이재명정부는 검찰개혁과 더불어 수사기관 개혁과 사법개혁도 같이 추진하려고 준비 중이다. 이 대통령은 검찰의 권한은 축소하면서 경찰과 공수처의 권한은 더욱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펼쳤다. 민주당은 공수처 검사 정원을 현행 25명에서 최대 300명까지 확대하고, 고위 공직자의 모든 범죄에 대해 영장 청구 및 기소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꼼꼼히 설계해야 법조계 안팎에서는 성급한 수사기관 확대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공수처가 2021년 출범 이후 뚜렷한 수사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12·3 비상계엄 사건서도 윤석열 전 대통령 대면조사에 실패하는 등 수사력 한계를 노출했다. 게다가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수사에서 검찰과 경찰, 공수처가 각자 수사권을 주장하며 혼선을 빚기도 했다. 이창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경 수사권이 조정된 지 5년이 지난 시점서 경찰 국가수사본부, 공수처, 검찰의 수사 성과를 냉정히 평가한 뒤 수사권 분리를 논의해도 늦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이 가장 먼저 개혁할 것으로 보이는 것은 사법개혁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달 1일,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에 대한 파기환송을 결정하고, 다음날에 파기환송심 첫 공판기일을 그달 15일로 지정했다. 그러나 공판기일을 지정한 지 5일 만에 다시 공판기일을 대선 이후인 오는 18일로 변경했다. 연기 사유는 “대통령 후보인 피고인에게 균등한 선거운동의 기회를 보장하고, 재판의 공정성 논란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일련의 과정 이후 민주당 내에서는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사법부 개혁이 대선 국면의 핵심 의제 중 하나로 떠올랐다. 민주당 의원들은 대법관 증원 법안을 연달아 발의했고, 박범계 의원이 법조인이 아닌 사람도 대법관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가 논란 끝에 철회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발표한 공약집서 ‘내란 극복과 민주주의 회복’의 하위 범주로 “사법개혁을 완수하겠다”며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여러 정책을 공약했다. 대법원 등 사법기관도 엎는다 “신중하게 진행해야” 의견도 공약집에는 실제 증원 규모가 명시되지 않았으나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개정안은 대법관 수를 30명으로 늘리는 방안을 담고 있다. 대법관 수를 100명으로 늘리는 법안도 발의됐으나 논란이 일자 민주당은 지난달 26일 철회했다. 대법관이 증원되면 현재 1인당 연평균 약 4000건을 처리해야 하는 대법관들의 업무 부담이 줄면서 ‘재판 지연’의 주된 원인으로 꼽히는 상고심 적체 현상은 상당수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를 통해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고 사회적 갈등에 해답을 제시하는 최고 법원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30명이 모두 모여 깊이 있는 합의에 도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대법관 증원에 따라 이 대통령 임기 중 총원의 절반이 넘는 대법관이 대통령 임명을 받아 합류하면 사법부 구성이 편향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원의 재판에 관한 헌법소원 심판을 허용하는 ‘재판 소원’이 도입될지도 관심사다. 민주당 의원들이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재판소원이 허용되면 법원이 법률을 헌법에 어긋나게 해석·적용하거나, 재판의 절차적 측면서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됐다고 판단된 경우 헌재가 결정으로 위헌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헌재가 법원의 재판에 관여하는 것은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정한 헌법 101조에 반하고 불필요한 법적 분쟁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로 법안에 반대해 왔다. 법조계의 의견은 엇갈린다. 재판소원 추진 논의가 이 대통령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급물살을 탔다는 점에서 대법원을 견제하려는 시도로 보는 시각도 있다. 사실상의 ‘4심제’가 돼 최고법원으로서 대법원의 기능이 약화하고 법적 안정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반면 헌법기관 간 상호 견제를 강화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할 안전망을 두텁게 만든다는 점에서 도입을 긍정하는 견해도 있다. 실제로 법조계에서는 오랜 기간 재판소원 도입의 필요성에 관한 논의가 이어져 왔다. 헌재 역시 최근 국회에 “국민의 충실한 기본권 보호를 위해 개정안의 취지에 공감한다”는 찬성 의견을 냈다. 이밖에 판결문 공개 범위 확대, 공개변론 중계 의무화 추진, 법관평가위원회 설치 등 국민의 사법 접근성을 제고하는 정책 등도 이 대통령 임기 중 추진될 전망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사법개혁 문제는 최우선 문제에 속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당시 “제도 개혁이나 특히 사법·경찰·검찰개혁은 중요하다. 수사권 조정이든 다 중요하다”면서도 “여기에 주력해서 힘을 뺄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덧붙였다. 민생이 우선 일단 후순위 이후 지난 6월4일 취임사에선 “먼저 민생 회복과 경제 살리기부터 시작하겠다. 불황과 일전을 치르는 각오로 비상경제대응TF를 바로 가동하겠다”며 “국가 재정을 마중물로 삼아 경제의 선순환을 되살리겠다”고 강조했다. 검찰 및 사법개혁이 중요하지만 민생 회복이 중요하다고 재차 강조한 셈이다. 이로 인해 검찰·사법개혁은 후순위로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