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연재> 선감도 ㉛결국 터진 원생들의 불만

  • 김영권 작가
  • 등록 2024.12.09 04:00:00
  • 호수 150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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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자기들만의 장난은 아니어야지.” 김영권의 <선감도>를 꿰뚫는 말이다.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 청춘을 빼앗긴 한 노인을 다뤘다. 군사정권에서 사회의 독초와 잡초를 뽑아낸다는 명분으로 강제로 한 노역에 관한 이야기다. 작가는 청춘을 뺏겨 늙지 못하는 ‘청춘노인’의 모습을 그려냈다.

“서울의 소년원에선 이 정도로 배를 곯진 않았어요! 삼시 세끼 곤쟁이젓, 정말 미치겠어요!”

다른 원생이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옳소!” 하는 호응이 터져나왔다.

거짓 나라일

“조용히들 해! 나라에서 하는 일을 거짓이라고 우길 셈이냐? 너희들은 부랑자라는 사실을 명심하라구.”

그러자 또 다른 원생이 못 참겠다는 듯 벌떡 일어섰다.


“아까도 우리를 보고 나라 발전을 저해하는 부랑아들이라 뭘 요구할 자격도 없다고 하셨는데, 도대체 그 부랑아란 말뜻이 어떤 건지 가르쳐 주십시오.”

“몰라서 묻는 거냐? 한 마디로 일정한 주소도 직업도 없이 떠돌아 다니는 애들을 말한다.”

“그렇다면 말이죠, 저희들은 부랑아가 되고 싶어서 됐겠습니까? 대부분 이 전쟁통에 부모를 잃었거나 내버려진 애들 아닙니까? 더군다나 멀쩡히 부모가 살아 있고 소박한 가정이 있는 경우도 많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애들은 억지 단속에 걸려 끌려왔다고 해요. 그것만 해도 억울한데 무슨 큰 죄인이나 되는 것처럼 취급한다는 건 이해가 안 됩니다!”

주임 선생은 음침한 미소를 지었다.

“하긴 북쪽에서 쳐들어 온 6.25 전쟁이 없었더라면 너희들은 고아 신세가 되어 떠돌다가 여기 들어와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실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란 걸 알아야 해. 6.25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단련이 된 것이다. 그때 만일 미국의 도움이 없었으면 우리는 소련이나 중공의 후원을 받은 북한에게 흡수되고 말았을 것이다.”

주임 선생은 헛기침을 한번 했다.

“물론 나라의 법이 너희들 개개인의 사정을 일일이 참작하지 못한다는 건 유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멀쩡한 몸으로 떼지어 다니며 문전걸식이나 패싸움이나 도둑질을 하는 건 분명 국가 차원의 범죄야. 때문에 혁명 정부는 너희들에게 갱생의 기회도 줄 겸 건설적인 나라를 만들기 위해 일정기간 보호한다는 것이다.”


그러자 갑자기 심상찮은 소란이 인다 싶더니 곧 폭탄 같은 항변이 사방에서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집어쳐라! 찢어진 대가리에 소금을 뿌리는 게 보호하는 거야?”

“우리 집, 부모 형제 곁으로 돌려보내 다오!”

“갱생과 자립의 기회도 몸이 건강해야 생기는 거야!”        

“여기서 죽어간 귀한 목숨 살려내라!”

한번 일기 시작한 불길은 연쇄반응을 일으키며 걷잡을 수 없는 아우성으로 변했다. 앉아 있던 원생들은 여기저기 일어섰다. 분위기가 긴박하게 변하고 있었다.

“그 위대한 혁명정부에 연락에서 감사 한번 받아봅시다!”

이런 요구도 들고 나왔다.

그러나 주임선생은 털끝만큼도 자세를 흩트리지 않았다. 그는 굳은 표정으로 눈알에 힘을 주고 반란자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결정 여하에 따라 공권력과 직결된다는, 따라서 반란자들에게 엄청난 화가 초래된다는 점을 분명하게 주지시키려는 듯한 자세였다.

노랑머리 사내가 목청을 돋워 말했다.

나라의 법이 개인 사정 참작 못해
“혁명정부에 연락해 감사 받아보자”


“요점을 정리해 주십시오! 갱생과 자립을 위해 그러는 것이니 우리는 주면 주는 대로 먹고 때리면 때리는 대로 맞아라 이 말씀이십니까?”

“건방지다. 지금 누구 앞에서 공갈치냐?”

“우린 그저 확답이 듣고 싶을 뿐입니다.”

“흠, 앞으로 너희의 태도를 보아 체벌 문제는 좀 숙의해 보겠다. 그러나 아까도 말했듯이 식사 문제는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야. 워낙 많은 인원이기도 하지만, 모든 예산은 위에서 결정돼 내려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식사에 관해 전혀 개선해 볼 수 없다는 말입니까?”

“그렇다고 할 수 있다.”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끝내 원생들은 감정을 폭발시키고야 말았다.

“정부의 감사반을 불러라!”

“그럴 거 없이 우리 모두 이 지옥 같은 데를 빠져나가자!”

마구 악을 쓰던 원생 몇 명이 갑자기 쌓아올린 식기더미로 달려들어 냅다 걷어차 버렸다.

위태롭게 놓였던 윗부분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자 흥분한 수백 명이 달려들어 그것들을 사방으로 집어던지기 시작했다.

“관사에 쳐들어가 선생들도 이렇게 먹고 사나 확인해 보자!”

“야 이 저승사자 같은 놈들아, 우릴 지옥에서 내보내라!”

당황한 선생들이 질려서 허둥대는 가운데 수많은 식기들이 내용물을 흩뿌리며 허공에 난무했고 온갖 욕설이 메아리쳤다. 

원장이 부원장과 함께 나타난 건 그때였다.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달려온 원장은 주임 선생의 귀엣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앞으로 나섰다.

“아, 조용 조용히 해! 모두 앉아서 얘기하자구!”

그러나 격분한 원생들의 쿠데타는 누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참다 못한 원장이 버럭 소리쳤다.

“이 자식들이 왜 이리 말을 안 들어. 모두 앉으라니까!”

원장은 허리춤에 찬 권총집을 만지작거렸다. 그의 충혈된 눈은 불을 뿜고 있었다.

원장의 일갈에는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하고 싶은 얘기가 뭐야? 누구 한 사람 일어나서 얘기해 봐!”

원장과 대화

소란이 좀 잦아들자 원장이 따지듯 물었다. 노랑머리가 다시 나섰다.

“다름이 아니라, 저희들의 하루 급식 정량이 얼마인지 알고 싶습니다.”

“흐흠! 그러니까 밥이 좀 적다 이거야?”

“네. 그리고 허구헌날 꽁보리밥 아니면 강냉이밥에 반찬은 혓바닥이 질려 버릴 정도로 짜디짠 곤쟁이젓만 계속 나옵니다.”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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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일요시사 취재1·정치팀] 오혁진·박희영·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다. 특검이 출범하면서 관련 수사도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여러 언론을 통해 핵심 인물들의 수사 기록이 일부 보도됐다. 그러나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에 대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언급된 바 없다. <일요시사>는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의 ‘노상원 수사 기록’을 단독으로 입수해 공개하기로 했다. “부정선거 증거가 차고 넘치고 나중에는 드러날 것이다.”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수사기관에 진술한 내용이다. 그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처럼 부정선거 음모론에 꽂혀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노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주최하는 집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사실상 수년 전부터 망상에 빠져있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생각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주도하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에 참여하기 시작한 건 2년 전부터로 추정된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노 전 사령관 수사 기록에 따르면 그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의 집회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 노 전 사령관이 전 목사와 개인적으로 알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에게 집회에 참여할 때마다 당시 분위기와 참석자들이 윤 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텔레그램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1년간 ‘극우 집회’를 분석한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는 “문상호, 정성욱, 김봉규 등과 만날 때 주로 어떤 말을 했느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 “선관위를 얘기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선관위가 부정선거의 온상이라고 김용현 전 장관이 많이 말씀하셨다. 나에게도 여러 번 선관위의 부정선거에 대해 알아보라고 지시했고 네이버로 찾아도 봤다”고 말했다. “부정선거를 주로 누구에게서 들었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는 “관련 집회에 여러 번 참여하면서 들었고 특정 인물이 누구인지 실명을 거명하긴 그렇다. 나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를 해야 해서 스스로 공부도 많이 했다. 여론조사 조작이나 선거 부정은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했다. 전 주도 윤 지지자 극우 집회 직접 참석 김과 텔레그램으로 부정선거 자료 공유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의 근거로 “선관위 산하에 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있다. 여론조사기관은 여론조사심의위에 등록해야 한다. 여론조사기관의 갑이다. 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9명으로 위원장 이대영 사무총장과 강성봉 등이고 그 밑에 쭉 있는데 7명이 진보 계열 인물이다. 여론조사기관이 편향되어 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임시선거사무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네이버에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2021년 국회의원 선거 때 동작구 선거사무소가 있는데 옆을 임대해서 임시선거사무소를 만들었었다. 언론에 나오니까 발뺌했었고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자 김 전 장관이 더 많은 자료를 보내 줬었다”고 했다. 노 전 사령관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며 “결국에는 다 까질 것이다. 전산은 한 번 까지면 되돌릴 수가 없다. 폭파하거나 고물상에 갖다 버리지 않는다면 전산은 결국 까진다. 북한이 쳐들어온 것도 아니고 서울 상공에 포를 쏜 것도 아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께서는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고 생각하시고 정국이 전시에 준하는 사태라고 민감한 상황이라고 보신 것 같다. 그런 상황이 아닌데도 그렇게 행동한 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2시간짜리 호소였다. 만약 국회 결정을 윤 전 대통령께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유혈사태가 났을 것”이라고 윤 전 대통령을 옹호했다.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2월 초, 선관위가 서버 교체를 검토했다가 교체하려 했던 것을 두고 “윤 전 대통령께서 어디에선가 확실하고 핵심적인 정보를 들으셨을 것 같다. 서버 조작이 있었기에 그 서버를 우리가 확보하려 할 때 선관위 측이 폭파했을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군검찰·검찰 피의자 신문조서를 보면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초 ‘정보사 군무원 간첩 사건 수사 결과’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 등 인물들에 대해 “비상대권을 사용해 이 사람들에 대해 조치를 해야 한다”며 “현재의 사법체계, 형사소송법, 방탄국회 및 재판지연 아래에선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조치’ ‘2시간짜리 계엄’ 겹치는 윤·노 발언 "서버 확보하려 했다면 선관위가 폭파했을 것” 주장 윤 전 대통령이 “비상대권을 사용한 조치”를 언급한 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만큼 이 대통령과 자신의 의견을 거스르는 인물들에 대한 복수심이 극에 달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노 전 사령관도 마찬가지다. 노 전 사령관은 경찰에 “김용군(대령)과 구삼회 등에게 ‘이재명은 죄가 7개인데 봐주고 지연시키고 구속도 안 되고 당 대표까지 하는데 더불어민주당이 감사원장, 중앙지검장, 판사 등을 모두 탄핵하려고 하는 게 과연 올바른 세상이냐’고 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윤 전 대통령과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말이 일치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2일 “국정원 직원이 해커로서 해킹을 시도하자 얼마든지 데이터 조작이 가능했고 비밀번호도 아주 단순해 ‘12345’ 같은 식이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노 전 사령관도 “선관위가 헌법기관인데 스스로 깨끗해야 하거나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황제·세자 채용 등 문제가 나왔다. 각종 할 수 있는 최악의 것은 다 저질렀다. 그리고 전산 해킹이 언급될 때 서버 본체를 보여준 것도 아니고 일부 샘플만 살짝 보여줬는데 얼마든지 전산 조작이 가능하고 해킹에 얼마나 취약하면 비밀번호가 ‘1234’냐. 이미 그런 게 다 나왔다. 그렇게 떳떳하면 왜 본체를 못 열어주나”고 말했다. 그러나 조태용 국정원장은 같은 해 12월 검찰 조사에서 “선관위 시스템에 보안상 취약점이 발견됐지만, 부정선거에 관한 단서는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는 내용으로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과 직접 비화폰으로 연락을 주고받았을 것이라는 보고 있다. 실제 노 전 사령관도 지난해 12월2일 자신의 지인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노 전 사령관은 당시 “나 같은 경우는 브이(V, 윤 전 대통령 지칭)하고 이렇게 좀 도와드리고 있다. 원래 한 4~5년, 3~4년 전에 알았다뿐이고 그래서 이제 뭐 이렇게 여러 가지로 좀 도와드리고 있다. 비선으로”라고 했다. 친분 과시 노 전 사령관은 안산 ‘롯데리아 회동’에 참석했던 구삼회 전 육군 2기갑여단장에게도 “며칠 전에는 김용현과 함께 대통령도 만났다. 갈 때마다 대통령이 나한테만 거수경례를 하면서 ‘사령관님 오셨습니까’라고 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다. 대통령과 장관 같이 만난다. 나는 벌써 여러 번 만났다”고 했다. <hounder@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