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여자 축구판 만수르 미셸 강

메시도 몰랐는데 세계 축구 중심에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재미동포 미셸 강 회장이 미국축구협회에 여성 중 역대 가장 많은 금액을 기부했다. 기업가로 성공한 이후 미국, 영국, 프랑스 등에서 3개의 여성 축구단을 운영하며 인생 2막을 열었던 그는 지난 2020년부터 여성 스포츠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서 태어나 미국 이민 후 성공한 여성 사업가인 미셸 강이 여자축구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미국과 유럽에 있는 축구클럽 3곳을 운영하고 있으며 이번에는 미국 여자축구에 거금을 기부했다. 재미동포 여성 사업가 미셸 강 회장이 미국 여자축구 발전을 위해 써달라며 3000만달러(약 418억원)를 기부해 화제다. 해당 금액은 여성이 쾌척한 미국축구협회 기부금 중 최고액이다.

한국 태생
미국 이민

미국축구협회는 지난 20일(한국시각) “미셸 강 회장이 협회의 여성 및 유소녀 프로그램을 위해 향후 5년 동안 300만달러를 기부하기로 약속했다”며 “미국축구협회의 여성 및 유소녀 프로그램에 대한 역대 가장 큰 규모의 기부”라고 밝혔다.

미국축구협회는 강 회장의 기부금으로 유소녀 선수들의 경쟁 기회를 확대하고 재능 있는 선수를 발굴·육성하며, 여성 선수·코치·심판의 전문성 개발을 촉진하는 데 사용할 예정이다.

강 회장은 “여성 스포츠는 너무 오랫동안 과소평가되고 간과됐다”며 “저는 여성 선수들이 잠재력을 최대로 발휘하는 데 필요하고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전문적인 지원을 제공함으로써 경기장 안팎서 여성 축구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 전념하려 한다”고 전했다.


신디 팔로우 콘 미국축구협회 회장은 “미셸 강의 선물은 미국의 여성 및 유소녀 축구를 변화시킬 것”이라며 “선수, 코치, 심판을 포함한 우리 축구계서 여러 세대의 여성 및 유소녀들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미셸 덕분에 우리는 여성과 유소녀들에게 더 많은 지원과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 회장은 11대, 13대 국회의원으로 여성 권익 신장에 이바지한 이윤자 전 의원의 딸로 서강대에 재학하다 1981년 유학길에 올랐다. 당시 “한국에선 여성은 결혼=퇴사가 당연했고, 경력을 이어나간다고 해도 유리천장을 깨기 어려웠다. 나의 꿈은 최고경영자(CEO)의 비서가 아닌 CEO가 되는 것이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혼수 자금을 당겨서 달라”고 부모를 설득해 미국서 대입부터 다시 시작, 시카고대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졸업 후 글로벌 컨설팅 회사인 EY에 들어가 컨설턴트로 일하다 ‘포춘 500대 기업’인 방위산업체 노스럽그러먼의 임원으로 이직했다. 

그러다 2008년 48세 나이에 미국 워싱턴DC서 헬스케어 정보기술(IT) 업체인 코그노상트를 창업했다. 그는 미국서 활동하며 헬스케어 정보기술 분야가 아직 블루오션으로 남아있다고 판단했고, 그의 판단을 증명하듯 코그노상트를 10여년 만에 연매출 4억달러(약 5500억원)에 직원 2000여명의 중견기업으로 성장시켰다.

미국축구협회에 418억 기부 화제
여성 기부 최고액…그녀는 누구?

강 회장은 성공비결에 대해 “미국서 여성이 세운 회사는 100만달러 매출을 넘기기 힘든 경우가 많다”며 “그 한계를 뛰어넘게 하는 게 다른 사람의 힘이고 팀워크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조직의 힘을 키우기 위해 회사 매출이 2000만달러일 때도 10억달러 회사에 뒤지지 않는 조건을 내세워 직원들을 뽑았다”며 “남들이 잘 안 하는 과감한 투자를 했기 때문에 매년 매출이 두 자릿수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기업가로 성공한 강 회장은 이제 여성 축구 구단주로서 인생 2막을 살아가고 있다. 기업 CEO로서 유리천장을 몸소 깬 그는 은퇴를 고심하던 시점부터 여성 축구계에 자꾸 관심이 갔다고 한다. 어떤 선수의 우수성, 어떤 팀의 우승 가능성 때문이 아니라 여성 축구계가 남성 축구계에 비해 이윤 창출이 부진하고 그렇기에 활력이 없어지는 악순환 때문이었다.


강 회장은 처음 여자 축구에 진출하면서 현지 언론에 “난 솔직히 리오넬 메시가 누구인지도 몰랐다”며 “나는 의료 업계도, 축구도 잘 모르고 이 분야에 뛰어들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랬던 그는 어느새 세 구단을 소유한 구단주가 됐다.

그가 인수한 축구단은 프랑스의 올랭피크 리옹 페미냉(Olympique Lyon Feminin), 미국의 워싱턴 스피릿(the Washington Spirit)과 영국의 런던시티 라이어네시즈(the London City Lionesses)다.

이 중 가장 먼저 인수한 구단은 워싱턴 스피릿이다. 그는 지난 2020년 12월 워싱턴 스피릿의 공동 구단주로 이름을 올린 지 2년이 지난 2022년에 단독 구단주가 됐다. 당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딸인 첼시 클린턴,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의 딸인 지나 부시 해거 등이 워싱턴 스피릿의 주요주주 명단에 올라 화제가 되기도 했다.

혼수 자금
당겨 사업

강 회장은 단독 구단주에 오른 후 “전임 감독의 폭력으로 선수들이 큰 어려움을 겪는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축구단 운영을 맡게 됐다”며 “급한 불은 껐으니 이제 선수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 회장은 “3년 내 선수 연봉과 팀 운영 등 모든 면에서 워싱턴 스피리트를 세계 최고의 여자 축구팀으로 키울 것”이라며 “그 이후에 유럽과 한국의 여자 축구팀을 인수해 세계적인 여자 프로축구단으로 성장시키고 싶다”고 밝혔다.

강 회장이 두 번째로 인수한 구단은 잉글랜들 2부 클럽 소속인 런던시티 라이오네시스다. 강 회장은 지난해 말 런던시티를 인수한 후 연고지를 브롬리로 옮기고 세계적인 수준의 훈련 센터를 건립할 계획을 세웠다. 지난해 12월엔 파리생제르맹 감독인 조셰린 프뤼처를 새 사령탑으로 선임하고, 스웨덴 출신 베테랑 코소바레 아슬라니를 영입하는 등 공격적으로 투자를 감행하고 있다.

강 회장은 두 번째 구단으로 런던시티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가장 중요한 이유는 런던시티가 독립적이어서다. 남성팀과 여성팀을 분리하는 것은 매우 복잡한 거래”라며 “클럽 이름에 런던이 들어가는 것은 실로 엄청나다. 축구가 활성화되지 않은 지역에 들어가 미래를 설계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미국과 잉글랜드 클럽을 한 팀씩 인수한 강 회장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지난 5월17일 <AP통신>은 “미국여자축구리그 워싱턴의 구단주인 미셸 강 회장이 워싱턴과 프랑스 리그1 올림피크 리옹을 포함하는 ‘멀티 구단 법인’을 이끌기로 계약을 체결했다”고 보도했다.

강 회장과 리옹을 소유한 OL그룹의 최대주주인 이글 풋볼 홀딩스가 맺은 계약에 따르면, 워싱턴과 리옹으로 구성된 별도의 축구 법인이 새로 설립된다. 강 회장은 이 법인의 대주주 겸 최고경영자가 된다. 사실상 강 회장이 리옹을 인수한 셈이다.

강 회장은 새 법인 지분을 나눠 갖는 OL그룹의 이사회에도 합류한다. <AP통신>은 당시 “해당 계약은 미국여자축구리그 사무국의 승인만 남겨두고 있으며 6월 말에 모든 절차가 완료된다”고 전했다. 

강 회장은 “이번 계약은 여자 프로축구 역사에서 중요한 진전”이라며 “유럽축구연맹(UEFA) 여자 챔피언스리그(UWCL) 8회 우승에 빛나는 리옹의 독보적인 전통과 2021년 미국여자축구리그 챔피언 워싱턴의 역동성이 결합해 여자축구를 새로운 시대로 안내할 것”이라 강조했다.


여자축구
새 시대로

3개의 구단을 인수한 강 회장은 지난 7월 여자축구의 프로화에 중점을 둔 세계 최초의 멀티구단 글로벌 조직 ‘키니스카 스포츠 인터내셔널’을 설립했다. 

강 회장의 꿈은 남자축구의 ‘시티풋볼그룹’ ‘레드불풋볼’과 같은 축구 기업을 경영하는 것이다. 아랍에미리트의 대부호인 세이크 만수르는 지난 2014년 시티풋볼그룹이란 지주 회사를 세운 뒤 맨체스터시티(잉글랜드), 뉴욕시티(미국), 멜버른시티(호주), 지로나(스페인) 등 12개국의 축구 구단을 인수하거나 지분을 사들여 운영 중이다. 

시티풋볼그룹은 단순히 축구가 좋아서 회사를 운영하는 것이 아닌 부동산 투자와 개발을 통해 자본을 끌어올리기 위한 목적도 가지고 있는 만큼 인수하는 구단 역시 대부분 투자를 통해 수익을 불리기 좋은 대도시 연고의 구단 위주로 구성돼있으며, 해당 구단이 빠르게 성장하거나 자리잡을 수 있도록 공격적인 초기 투자를 마다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레드불풋볼은 잘츠부르크(오스트리아), 뉴욕 레드불스(미국), 브라간치누(브라질), 라이프치히(독일) 등 4개국서 프로축구 사업을 펼치고 있다. 오스트리아의 세계적인 음료 회사 레드불은 스포츠계에 많은 투자를 하는 그룹으로 유명하다. 

레드불은 전 세계인이 즐기는 레이싱 스포츠 F1(Formula 1)을 비롯해 아이스하키, 크라켓, 랠리, 배구 등 여러 스포츠에 스폰을 하는 등 전 세계 스포츠계에 깊게 잠식돼있는 회사다. 레드불은 약 200개국서 판매되는 에너지 음료의 브랜딩 효과를 유지하기 위해 스포츠계에 투자를 하는 반면, 축구계에서는 직접적인 이윤을 발생시키는 새로운 방식을 도입하기도 했다. 


레드불풋볼그룹은 마치 공장의 생산 라인처럼 유망주를 발굴하고 양육하고 판매해 방대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조슈아 킴미히, 엘링 홀란드 등 세계적인 선수들이 이 시스템 안에서 탄생했으며 지금도 그들과 같은 수많은 인재들이 레드불 풋볼 시스템 안에서 성장하고 있다.

강 회장은 여성 스포츠도 돈이 된다고 강조해 왔다. 그는 지난 8월19일 <가디언>이 공개한 인터뷰서 “여성 스포츠가 좋은 사업이라는 걸 증명하는 임무를 수행 중”이라며 “절대 자선이 아니다. 진지한 투자”라고 밝혔다. 강 회장에게 여자축구를 비롯한 여성 스포츠는 수익성을 품은 ‘신사업’인 셈이다.

강 회장이 생각하는 여자축구 산업 확장의 핵심은 중계권과 판권 등 미디어를 통한 수익이다.

기업 CEO서 구단주로
현재 3개 구단 운영 중

강 회장은 “남성 스포츠도 미디어를 통해 버는 돈을 빼면 수익을 내는 팀이 그리 많지는 않다”며 “미국여자프로농구가 새로 맺은 계약을 보라. 그게 여자축구서도 새로 일어날 일”이라고 짚었다.

이어 “‘그게 지금 어떤 상태인지’와 ‘그게 어디까지 클 수 있는지’는 전혀 다른 거다. 아무도 이를 주목하지 않았다는 데서 어리둥절했다”며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내 사업적 역량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여자축구 경기를 보는 시청자가 경기당 50만명에 육박하고 있다”며 “남자 축구 시청자 수를 능가할 정도로 여자축구 인기가 많아지고 있다”고 했다. 강 회장은 여자축구도 남자 축구 못지않게 큰 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기존 중계권 계약이 2025년 만료되는 미국여자프로농구는 지난 7월 디즈니, NBC, 아마존 등과 11년짜리 새 계약을 체결했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계약 규모는 22억달러(약 2조9000억원)에 달한다.

여기에 더해 강 회장은 여성들에게도 더 많은 삶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다.

강 회장은 “난 이민자고 운 좋게 아메리칸드림을 이뤘다. 이제 내가 기회를 제공할 차례다. 똑같은 결과를 보장할 수는 없으나 동등한 기회는 줄 수 있다”면서 “대단히 재능 있는 젊은 여성이 전문적인 직업 경로가 보이지 않아 꿈을 포기하는 걸 봐왔다. 남자아이들처럼 제약 없이 꿈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또 “미국서 남자 축구선수는 40만달러가 넘는 연봉을 받지만 여자 선수의 평균 연봉은 4만달러에 그쳐 대부분 여자 선수들이 대학 졸업 후 축구를 포기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올림픽서 금메달을 따는 것도 여자 선수들이고 아이비리그 출신 선수들도 수두룩한데 이들의 연봉이 남자 선수의 10% 수준에 그치는 건 말도 안 된다”고 꼬집었다.

이를 위해 강 회장은 구단 확장 계획도 가지고 있다. 그는 “대륙마다 팀 한 곳은 가지고 싶다”며 “욕심이나 허영심서 그런 게 아니라 여자아이들이 TV를 보고 ‘영국, 프랑스, 미국서나 있는 현상’이라고 말하는 걸 보고 싶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강 회장은 한국에 먼저 진출하려 했으나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 회장은 지난해 여자 실업축구 WK리그 팀 인수나 창단도 검토한 걸로 알려졌다. 연고지까지 물색했으나 각종 행정상 난관에 구체적 단계까지 진행되지는 않은 걸로 전해진다.

“여 스포츠도 
돈이 된다”

이런 강 회장의 행보에 미국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는 지난 2023년 ‘영향력 있는 스포츠계 50인’ 중 한 명으로 선정했다. <뉴욕 타임스>는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리오넬 메시를 몰랐던 강 회장이 지금은 세계 여자축구의 판도를 바꾸는 인물이 됐다”고 평가했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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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계엄 후폭풍> 윤석열의 무리수 미스터리

[12·3 계엄 후폭풍] 윤석열의 무리수 미스터리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진짜 속내는 담화문서 깨알같이 발견되는 두 글자로 확인할 수 있다. 꼭꼭 숨기려고 했지만, 끝내 숨기지 못했던 두 글자 ‘특검’. 과연 그 두 글자가 군을 동원하려고 했던 진짜 이유였을까?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오후 10시27분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윤 대통령이 밝힌 비상계엄 선포 사유는 ▲야권의 정부 관료 탄핵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 제1심 선고 전 대규모 시위(판사 겁박) ▲야권의 검사 탄핵(사법 업무 마비) ▲야권의 특활비 삭감(국가의 본질적 기능 훼손) ▲야권의 민생 예산 삭감(대한민국 국가 재정 농락) 등이다. 모르고? 알면서? 이 사유들을 열거한 윤 대통령은 “자유 대한민국의 헌정질서를 짓밟고, 헌법과 법에 의해 세워진 정당한 국가기관을 교란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내란을 획책하는 명백한 반국가 행위”라며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명분을 강조했다. 이어 “지금 우리 국회는 범죄자 집단의 소굴이 됐고, 입법 독재를 통해서 국가의 사법 행정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자유 민주주의체제 전복을 기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 정국을 ‘범죄자 집단 소굴의 자유 민주주의체제 전복 기도’라고 규정한 것이다. 범죄자 집단 소굴로 규정된 야권은 곧바로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으로 ‘격상’됐다. 윤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겠다”며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야권을 일컬어 “지금까지 패악질을 일삼은 망국의 원흉 반국가 세력”이라고 거듭 비난하면서 “반드시 척결하겠다”고 다짐했다. 윤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6시간 후인 지난 4일 오전 4시26분에 마무리됐다. 이날 우원식 국회의장은 경찰의 국회 통제에 담을 넘어 진입해 의원들의 긴급 소집을 발동했고, 야권 의원들 및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중립 의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오전 0시29분 본회의를 개최했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비상계엄 선포 후 약 19분이 지난 3일 오후 10시46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약속했다. “야권과 국민의힘 내 친한계 의원들이 모여 비상계엄 해제를 의결할 것”이라는 결말은 이때 이미 예측됐다. 국회의원 보좌진과 국회 직원들이 계엄군의 본청 진입을 막는 가운데, 의원들은 오전 1시경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안건으로 상정했다. 1분 후 의원 190명은 만장일치로 결의안을 가결시켰다. 계엄 선포 후 약 2시간35분이 지나 가결된 것이다. 행정부는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막을 권한이 없으므로,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이때 사실상 마감됐다. 계엄군은 국회 본회의 통과 후 약 10분이 지난 오전 1시11분부터 국회서 철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국방부는 “대통령의 계엄 해제가 있을 때까지 계엄사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윤 대통령이 오전 4시26분 제2차 대국민 담화를 진행하고, 오전 5시4분 국무회의서 계엄 해제안이 의결되면서 약 6시간37분 동안 진행된 뜬금없는 비상계엄 선포는 마무리됐다. 6시간 동안 이어진 충격과 공포 해제 의결에 적극 가담한 친한계 헌법 제77조에 따르면, 대통령은 전시·사변·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 발생 시 군사상 필요·공공의 안녕질서 유지 필요가 있을 때 한정해서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시 언급한 사유들이 과연 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법률적 요건을 떠나, 윤 대통령으로서는 선포 당시 열거한 이유로부터 큰 위기감을 느꼈고, 자신의 정치적 위기를 ‘전시·사변·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있다. 국회는 정부 출범 이후 22건의 정부 관료 탄핵소추를 발의했고, 22대 국회 출범 후 10명째 탄핵을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 2022년 12월11일 소속 의원 169명 전원이 참여해서 이태원 압사 사고에 대한 책임을 명분으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가결했다.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민주당과 정의당은 지난 2023년 2월 이 장관을 탄핵심판으로 넘겼다. 이는 헌정사상 최초의 국무위원에 대한 탄핵소추였다.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는 같은 해 7월25일 만장일치로 이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를 기각했다. 야권의 탄핵소추는 이동관·김홍일·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으로 이어졌고, 직무대행을 맡던 이상인 전 부위원장도 탄핵소추 대상이 됐다. 이 전 위원장·김 전 위원장·이 전 부위원장에 대한 탄핵소추는 사퇴로 인해 폐기됐다. 사퇴하지 않았던 이 위원장은 탄핵안이 가결돼 현재 헌재서 탄핵심판이 진행되고 있다. 이 전 위원장은 윤 대통령의 대선 출마 이후 윤 대통령과 줄곧 가까웠다. 김 전 위원장은 윤 대통령의 검사 재직 당시 상관인 서울중앙지검 3차장을 지냈다. 이 전 부위원장도 BBK 특검보를 지냈고, 윤 대통령은 당시 파견검사였다. 이후엔 윤 대통령과 가깝게 지냈던 검사들이 집중적으로 탄핵 소추됐다. 손준성·이정섭·강백신·김영철·엄희준·이창수·최재훈·조상원 등 탄핵 소추된 검사 대부분은 윤 대통령과 근무연으로 묶여있다. 이 중 강백신·김영철·조상원 검사는 윤 대통령이 ‘스타’로서의 위상을 굳혔던 ‘최순실 특검’에 함께 파견됐다. 손 검사는 윤 대통령의 검찰총장 재임 당시 핵심 요직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을 맡았고, 이정섭 검사는 윤 대통령의 대검 중수2과장 재직 당시 검찰연구관이었다. 엄 검사는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 재임 중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에게 요직 배치를 요구했다. 이창수 검사는 윤 대통령의 총장 재직 당시 대변인이었고, 최 검사는 정보관리담당관이었다. 이들이 탄핵 소추되는 것을 보는 윤 대통령의 기분을 대변하는 옛 드라마 대사가 있다. 지난 2007년 방영된 KBS2 드라마 <한성별곡-정>의 임금은 수도 이전과 개혁을 추진하다가 독살당했다. 독살당하는 순간, 임금은 “신료들도 백성들도 나를 탓하기에 바쁘고, 나의 간절한 소망을 따랐다는 이유로 소중한 인재들이 죽어 나간다”고 한탄했다. 윤 대통령에게 그들은 ‘소중한 인재들’이었을 것이고, 그들에 대한 탄핵소추는 ‘죽어 나가는’ 것이었을 개연성이 있다. 특활비 삭감 표면적 이유 자신의 국정운영은 ‘간절한 소망’이었을 가능성이 크고, 국민과 야권의 비판은 ‘나를 탓하기에 바쁜’ 일이었을 것이다. 임금은 세자에게 양위한 후 자신은 수원 화성으로 옮겨 친위부대 장용영을 끼고 한양을 압박하는 친위 쿠데타를 기획했다. 윤 대통령과는 달리, 임금은 “반대하는 신하들이 옳아서 이기는 게 아니라, 내가 백성들을 설득하지 못해 지는 것”이라는 자기반성도 잊지 않았다. 측근 탄핵 못지않게 큰 위기감을 느꼈을 사안은 예산안이었다. 야당이 주도하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지난달 8일 2025년도 검찰 예산안을 확정하면서 특수활동비(이하 특활비) 80억9000만원과 특정업무경비(이하 특경비) 506억9100만원을 전액 삭감했다. 정청래 법사위원장(민주당)은 “내역이 입증되지 않는 것은 전액 삭감하겠다는 방침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고 주장했다. 법사위 내 예산결산기금심사소위원장을 맡은 민주당 장경태 의원도 “이렇게 성역과 예외와 특혜가 많은 부처는 없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지난달 29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서 이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그뿐만 아니라 ▲대통령실 특활비 82억원 ▲경찰 특활비 약 31억 원 ▲감사원 특활비·특경비 60억원도 전액 삭감됐다. 특활비는 기밀 유지가 필요한 활동에 소요되는 경비라서 영수증을 남기지 않는다. 사실 그동안 특활비는 적잖은 물의를 일으켰다. 지난 2017년 4월엔 이영렬 당시 서울중앙지검장과 안태근 당시 법무부 검찰국장이 서로의 휘하에 있는 후배 검사들에게 1인당 100만원 상당 돈 봉투를 건넨 정황이 밝혀져 정국이 발칵 뒤집혔다. 이 돈의 출처는 특활비였다. 인터넷언론 <뉴스타파>와 시민단체들은 검찰의 특활비 사용명세를 확인하기 위해 정보공개청구와 행정소송을 진행했다. 이어 큰 파문이 발생했다. 원래 밀봉해 보관해야 할 특활비 자료 중 사라진 명세들이 다수 확인됐고, 특활비가 기밀수사와 무관하게 정기적으로 후배 검사들에게 지급된 정황이 확인됐다. 큰 수사가 있을 때마다 지출이 있었다는 것을 토대로 “포상금으로 사용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증빙 없이 특활비를 무단 사용한 정황과 별도 계좌·이중 장부가 사용된 정황도 확인됐다. 업무 추진비 사용명세도 공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특활비의 정당성을 재차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야당의 특활비 전액 삭감 처리에 대해 “국가 본질 기능과 마약범죄 단속, 민생 치안 유지를 위한 모든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서 국가 본질의 기능을 훼손했다”며 “대한민국을 마약 천국, 민생 치안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윤 대통령이 성토했던 것은 ▲재해 대책 예비비 1조원 삭감 ▲아이 돌봄 지원 수당 384억원 삭감 ▲청년 일자리·심해 가스전 개발사업 등 4조1000억원 삭감 ▲군 간부 처우 개선비 제동 등이었다. 표적은 민주당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지난 1일 기자간담회서 “역대 정부서 예비비는 1조5000억원 이상 사용한 예가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소속 예산안심사소위 위원들도 지난 2일, 아이 돌봄 지원 수당·청년 일자리 예산 삭감에 대해 “여야가 이미 감액을 합의했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지난 1994년 2월부터 2021년 3월까지 변호사로 활동한 1년을 제외하고 약 26년 동안 검사로 재직했다. 윤 대통령도 특활비가 친숙하게 여겨졌을 가능성이 크다. 윤 대통령도 담화 중 특활비에 대해 가장 많은 이야기를 했다. 고려의 마지막 임금 공양왕은 즉위하기 전엔 많은 땅을 거느린 ‘땅 부자’였다. 그를 즉위시킨 이성계 세력은 토지개혁을 시도했다. 정도전은 가족 수에 따라 백성들에게 토지를 나눠주는 계민수전을 주장했다. 조준은 경기도 내 토지에 한정해 관리들에게 수조권을 부여하고, 다른 지역 토지는 백성들에게 나눠주는 과전법을 주장했다. 두 안 모두 분명한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고려의 모든 사전(私田)을 빼앗아 국유화한다”는 것이었다. 고려에선 많은 전란을 극복하는 과정서 공신들에게 나눠줄 땅이 부족해져 같은 땅을 여러 사람에게 반복해서 나눠주는 사태가 발생했다. 따라서 땅 하나에 2명 이상의 주인이 각자 자신의 소유권을 주장하고, 백성으로부터 반복해서 세금과 소작료를 가져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성계 세력에 반대했던 보수파 이색도 최소한 소유권을 분명하게 정리하는 일전일주제를 주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보수파엔 정예 사병 가별초 2000여명을 거느린 이성계에게 대항할 수 있는 무력이 없었다. 최영은 위화도회군 이후 축출됐다. 이성계를 견제하던 조민수와 변안열도 위화도회군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퇴출됐다. 정도전과 조준은 이성계의 무력을 기반으로 토지 몰수를 시도했다. 이성계의 선택은 과전법이었다. 과전법이 발표돼 많은 백성이 기쁨의 눈물을 흘릴 때, 공양왕은 슬퍼 눈물을 흘렸다. 개인 소유 토지가 모두 몰수됐기 때문이다. 비상계엄 사유로 특활비 삭감을 내걸었다는 것은 두고두고 회자될 가능성이 크다. 특활비에 대한 국민적 비판 여론이 높은 가운데, 윤 대통령은 반대로 “특활비가 삭감돼 민생 치안 공황 상태가 됐다”고 성토했다. 혹시 ‘윤석열 검사의 특활비’는 ‘공양왕의 개인 소유 토지’와 비슷한 의미였던 걸까? 고려 멸망 공민왕·공양왕 윤 대통령도 같은 길 걷나 비상계엄이라는 뜬금없는 선택을 하게 된 진짜 역린은 두 글자 안에 숨어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 두 글자는 ‘특검’이다. 특검은 딱 1번 언급됐다. 꾹 참고 숨기려다가 참다못해 터져 나왔던 1번이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띈다. 야권이 끈질기게 발의했던 특검의 대상자는 김건희 여사와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이다. 이 중 김건희 특검법은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인해 국회로 돌아와 오는 10일 재표결이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지난 7일, 본회의서 부결 처리됐다. 그렇다면 담화 중 언급된 특검은 김건희 특검법일 가능성이 높다.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는 지난 10월1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카카오톡 갈무리 사진 1장을 올렸다. 김 여사와의 대화였다. 김 여사는 대화서 “철없이 떠드는 우리 오빠를 용서해달라”며 “무식하면 원래 그런다”고 말했다. 이어 “제가 사과드린다”며 “오빠가 이해 안 간다, 지가 뭘 안다고”라고 덧붙였다. 이 ‘오빠’를 두고 “김 여사의 친오빠를 가리키는 것 아니냐”는 일각의 문제 제기도 있었다. 명씨는 “내가 김 여사의 친오빠와 토론했겠느냐”고 주장하다가 “친오빠가 맞다”고 번복했다. 하지만 다수설은 여전히 윤 대통령으로 해석하고 있다. 다수설대로 해석하면, 윤 대통령이 김 여사를 향한 반복적인 특검법 발의에 왜 분노를 감추지 못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이로부터 부부의 굳건한 잉꼬 금슬을 확인할 수 있다. 김 여사가 취임 기념 만찬서 윤 대통령의 샴페인 음주를 눈짓으로 막는 영상이 화제가 됐다. 이 영상과 명씨가 공개한 카톡에 대한 다수설을 조합하면 자연스러운 흐름이 보인다. 아울러 명씨가 윤 대통령 부부와 통화했던 ‘황금폰’을 민주당에 제출할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이 부부의 금슬에 비견할 수 있는 부부로는 고려 공민왕·노국공주 부부가 확인된다. 공민왕은 즉위 후 아내의 지지를 기반으로 고려를 통치했다. 노국공주는 원나라 공주였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반원 정책을 강력하게 지지했다. 또 원나라 공주라는 신분을 반대파 압박에 사용했고, 부정부패도 저지르지 않았다. 공민왕은 아내의 강력한 지지를 토대로 친원파를 숙청했고, 북진정책을 추진했다. 측근 김용의 반란 당시 공민왕을 지킨 사람도 노국공주였다. 그런 노국공주가 출산 중 사망하자, 공민왕은 완전히 무너졌다. 이후 공민왕은 무명의 승려 신돈에게 국정 일체를 맡기고, 자신은 아내의 영전 공사에 몰두하는 등 기이한 행각을 일삼다가 암살당했다. 윤 대통령의 아내 사랑에 대해선 2개의 반응이 있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지난 5월14일 “자기 여자 하나 보호 못하는 사람이 5000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킬 수 있겠느냐”면서 윤 대통령을 두둔했다. 국민들 막았다 하지만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특임교수는 지난 2023년 12월14일 <폴리뉴스> 칼럼서 “자식을 사랑했기에 자식을 법의 심판대에 세워 속죄의 기회를 마련해줬던 YS(고 김영삼 대통령)·DJ(고 김대중 대통령)·MB(이명박 전 대통령)처럼 하는 것이 진정 아내를 위한 길이 아니겠느냐”고 주장했다. 아내를 너무 사랑하고 의존했던 공민왕은 고려의 문을 닫았다. 반대로 가혹하게 처남들을 숙청했던 태종 이방원은 조선왕조 500년 기반을 닦았다. 따뜻한 남편의 길과 훌륭한 대통령의 길은 항상 일치하지 않는다. 아내 사랑으로부터 비롯된 분노가 군을 동원한 진짜 이유였을까? 공민왕과 고려의 몰락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