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아베가 산 자민당 잡다

  • 박형준 기자 ctzxp@ilyosisa.co.kr
  • 등록 2024.11.11 13:52:11
  • 호수 150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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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폭망?’ 한일 보수정당 오버랩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일본 자민당은 지난 10월 중의원 선거서 패배했다. 자민당의 패배 이유는 국민의힘의 지난 4월 총선 패배와 상당히 겹친다. 민심을 지나치게 건드리고, 그 근원을 뿌리 뽑지 못하면 선거서 이길 수 없다.

일본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지난달 27일 제50회 중의원 총선거서 패배했다. 선거 직전 258석이었던 의석수는 191석으로 줄었고, 연정 파트너 공명당도 32석서 24석으로 줄었다. 공명당 이시이 게이이치 대표와 사토 시게키 부대표는 자신의 지역구서 낙선하는 수모를 겪었다. 두 당의 의석은 총 215석이 됐고, 이는 중의원 총 의석수인 465석 대비 과반에 미치지 못한다. 

열리는
게이트

자민당의 현 상황은 통일교 게이트와 정치자금 게이트의 여파가 이어진 결과이기 때문에 자업자득 성격이 강하다. 국민의힘이 각종 논란과 구설수로 인해 지난 4월 총선서 108석밖에 얻지 못한 것과 비교할 수 있다. 양국의 대표 보수정당은 어쩌다가 이런 상황을 맞이했을까?

국민의힘과 자민당은 각각 김건희 여사와 아베 신조 전 총리라는 단 1명이 남긴 여파로 총선 패배라는 성적표를 받았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22년 7월8일 나라시서 제26회 참의원 선거 후보 지원 유세를 하다가 야마가미 데쓰야로부터 총격을 받아 살해당했다. 야마가미는 모친이 통일교에 지나치게 몰두해 전 재산을 헌납하면서 큰 스트레스를 받았고, 부친도 이에 절망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밝혀진 바에 따르면, 아베 일가는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 시절부터 문선명 통일교 총재와 깊은 관계를 맺었다. 리처드 새뮤얼스 MIT 국제학연구소장이 2001년 일본정책연구소를 통해 공개한 논문에 따르면, 통일교 일본 본부는 기시 전 총리 소유 토지에 설립됐다.

일본 내 통일교 신자들은 자민당 선거운동원으로 무보수로 활동했다. 정치서 가장 필요한 요소인 ‘사람’을 공급받은 것이다. 이 관계는 아베 전 총리로까지 이어졌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21년 통일교 행사에 직접 영상으로 찬조 출연했고, 문 총재의 손녀사위 오츠카 히로타카가 지난 2011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아베 전 총리와 함께 찍은 사진도 뒤늦게 확인됐다.

통일교와 자민당의 밀착은 문 총재의 생전 어록서도 확인된다.

문 총재는 지난 1987년 “자민당 의원 중 최소 180명은 우리의 바람권 내에서 행동하지 않을 수 없다”며 “그 나라를 움직이고, 수상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1993년에는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와 가깝게 지냈고, 그 직계 아베 신타로도 내가 정치적으로 성장시켰다”는 취지의 발언을 남겼다.

아베 신타로 전 외무상은 아베 전 총리의 부친이다. 아베 일가와 통일교의 밀착이 알려지자, 일본에선 야마가미 데쓰야에 대한 동정 여론이 크게 일었다. 이해가 가는 사정이 있는 사적 복수에 비교적 관대한 일본의 풍토와 맞물린 현상이다.

1명이 남긴 불씨 게이트로
선거 패 양국 여당 닮은꼴 

통일교 게이트가 자민당의 발목을 잡은 ‘과거’라면, 정치자금 게이트는 가장 민감한 현재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파티를 개최해 벌어들인 정치자금을 축소 신고하거나 누락하던 관행이 대대적으로 공개돼 자민당의 오랜 파벌 정치를 형식적으로나마 끝낸 사건이다. 


정치자금 게이트는 지난 2022년 11월 일본공산당이 기관지를 통해 처음 밝혔다. 보도를 본 가미와키 히로시 고베가쿠엔대 교수는 대대적으로 자민당의 정치자금 실태를 조사했고, 확인된 위법 사항을 검찰에 고발했다. 장부에 기재하지 않은 금액이 제일 컸던 파벌은 아베 전 총리의 세이와 정책연구회(속칭 ‘아베파’)였다.

총무성이 공개했던 2022년 정치자금 보고서에 따르면, 아베파는 정치자금 9480만엔을 누락했다. 당시 아베파는 중의원 94명이 가입한 최대 파벌이었다.

이는 아베파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기시다 후미오 전 총리의 파벌 굉지회는 물론, 이시바 시게루 총리의 파벌 수월회서도 정치자금을 축소 기재한 정황이 밝혀졌다. 이후 아소 다로 전 총리의 지공회와 모테기 도시미쓰 간사장의 헤이세이 연구회를 제외한 모든 파벌은 해산을 선언했다.

하지만 자민당 내 징계는 성난 민심을 가라앉히기엔 부족했다. 징계는 수장을 잃고 표류하는 아베파 소속 의원들에게 집중됐고, 기시다 전 총리와 당 원로 니카이 도시히로 전 간사장에 대한 징계는 없었다. 연루 의원 상당수도 공천을 받았다.

국민의힘은 김 여사에 대한 각종 의혹에 대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큰 의미를 부여하기 어려운 특별감찰관 임명조차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명태균 게이트로까지 확산돼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10%대로 주저앉았다. 1명이 쏘아 올린 게이트는 때때로 나라를 뒤흔든다.

기시다 전 총리가 취임 이후 얻은 부정적인 별명은 ‘증세 안경’이었다. 기시다 전 총리가 이어받은 일본 경제는 아베노믹스 이후의 상황이다. 아베 전 총리는 재임 중 “윤전기를 쌩쌩 돌려서 일본은행이 돈을 무제한으로 찍어내게 하겠다”고 말했다.

일본은 15년 넘게 제로금리에 가까울 정도로 극단적인 저금리를 유지했다. 따라서 아베 전 총리는 “각종 채권을 대량으로 매입하는 방식으로 양적완화를 진행해 유동성을 공급한다”는 방침을 토대로 경기를 부양시키려고 했다. 엔화의 가치를 고의로 떨어트린 것이다. 이렇게 되면 물가 상승과 임금 상승 둔화라는 후폭풍이 따라온다.

이 상황이 이어지고 있던 지난 2022년 12월, 기시다 전 총리는 방위비 증액을 추진했다. 이어 ▲법인세 ▲소득세 ▲담배소비세 등 세금을 인상했다. 반대 여론을 무릅쓰고, 아베 전 총리의 장례식도 국비로 진행했다.

레이와 신센구미 소속 야마모토 타로 참의원은 지난 2023년 11월 기시다 전 총리에게 “별명이 ‘증세 빌어먹을 안경’이라는 정치인이 있는데, 누구인 줄 아느냐”면서 조롱성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기시다 전 총리는 “인터넷서 나를 ‘증세 안경’이라고 부르는 것은 알고 있다”고 답변했다.

늪으로…
방어 불능

영국서도 지난 7월 총선서 정권이 교체돼 노동당이 집권했다. 그전까지 집권했던 보수당 리즈 트러스 내각과 리시 수낙 내각은 일본과는 정반대로 감세와 공공지출 축소를 집중적으로 추진하다가 정권을 잃었다. 기시다 전 총리가 아베 전 총리의 장례식까지 국비로 치러 민심을 건드렸다면, 수낙 전 총리는 상속세 폐지와 징병제 부활까지 추진하다가 청년 민심을 건드려 정권을 잃었다.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 각종 공약과 정책의 진행 강도를 전혀 조절하지 못하고 있다.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힌 현대사회의 특성상 정책 추진에는 세심한 조율이 필요하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지르고 보는’ 정책 추진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는 연구개발 예산 삭감과 의대 증원 논란이다. 사전 조정 없이 섣부르게 정책을 쐐기 박듯이 밝혀놓고, 수습은 전혀 못하고 있다. 거기에 리지 수낙 전 총리처럼 폐지까지 나가지는 못하고 있지만, 상속세 완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는 윤 대통령이 추진하는 각종 부자 감세의 연장선상으로 해석되고 있고, 세수 결손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국민의힘과 자민당은 위기에 직면해 ‘스타’ 1명을 선거의 전면에 내세운다. 국민의힘은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을 비대위원장으로 임명했고, 이시바 총리는 중의원 해산 이후 고이즈미 신지로 전 환경상을 자민당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임명했다.

고이즈미 의원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차남이고, ‘펀쿨섹’으로 대표되는 괴상한 발언들로 유명하다. 고이즈미 의원은 아버지의 탈원전 운동 참여 여파로 아베 전 총리와 결별한 후폭풍을 톡톡히 치렀다. 아베 전 총리는 제4차 내각의 제2차 개조 내각서 고이즈미 의원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홍준표 대구광역시장은 지난 2017년 4월 대선 유세 중 “이명박 전 대통령이 환경부 장관을 제의했는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일본서도 환경상은 요직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환경상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등 대형 악재를 취급해야 하고, 정치적으로 빛을 보기 어려운 직책이다.

아베 전 총리의 고이즈미 환경상 임명에 대해서는 “적당히 구색을 갖춘 후 사지로 밀어버리려는 의도의 임명일 수도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고이즈미 의원은 ‘펀쿨섹’ 발언 외에도 “온실가스를 46% 감축하겠다는 목표는 갑자기 46이라는 실루엣이 떠올라 결정했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면서 환경상 직책을 버텼다. 이어 지난 2021년 자민당 총재 선거서부터 정치적으로 두각을 드러냈다.


당시 고이즈미 의원은 이시바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함께 ‘고이시카와’라는 3자 연대를 구성했다. 이들은 “대중의 인기는 높지만, 당내 기반은 약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3자 연대는 고이즈미 의원이 주도해 구성됐다. 3자 연대는 이시바 총리를 총리 후보로 내세웠지만, 아베 전 총리가 지원한 기시다 전 총리에게 패배했다.

이번에는 아베 전 총리가 오래전부터 지원했던 다카이치 사나에 전 총무대신을 이기고, 이시바 총리를 당선시켰다. 여기에는 다카이치 의원과 대단히 사이가 안 좋은 기시다 전 총리의 지원도 큰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스타 1명
땜질 시도

이시바 총리와 고이즈미 의원의 당면 과제는 양대 게이트, 그중서도 특히 정치자금 게이트에 대한 대응이었다. 이시바 총리는 중의원 해산에 소극적이었지만, 고이즈미 의원은 “새로운 정권이 탄생하면, 국민의 신임을 묻는 것이 당연하다”면서 중의원 해산을 강하게 주장했다.

그 결과는 연정의 과반 미달이었다. 고이즈미 의원은 선거대책위원장이었기 때문에 정치적인 책임서 자유롭기 어렵다. 젊고 유망한 스타 1명을 내세워 땜질을 시도했다가 선거서 패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국민의힘 한 대표는 지난 4월 총선 패배 당시 비대위원장이었다. 한 대표의 4월 총선 패배 이후 상황과 고이즈미 의원의 현 상황은 비슷하다. 한 대표는 국회의원을 지낸 적이 없고, 고이즈미 의원은 지난 10월 당선까지 포함해 6선에 불과하다. 아소 전 총리는 15선에 당선됐고, 이시바 총리도 13선이다. 한국에선 6선이면 국회의장에 도전할 수 있는 중진이지만, 일본서는 6선이 중진 반열에 들기는 어렵다.

다만 고이즈미 의원과 한 대표 모두 정치 생명 자체가 끝난 것은 아니다. 특히 고이즈미 의원에 대해서는 일각의 두둔도 있다. 제1야당 입헌민주당 노다 요시히코 대표는 국민민주당(이하 국민당)과 일본유신회에 후보 단일화를 제안했고, 이들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성사되지 못했던 이유는 부족한 시간이었다. “서둘러 중의원을 해산하고 선거 국면에 돌입시켜, 야 3당이 뭉치지 못하게 했다”는 평가가 나올 수 있었던 지점이었다. 만약 야 3당이 연정 합의에 성공했다면, 자민당은 야당이 될 수도 있었다.

한 대표도 윤 대통령과의 관계가 험악해지고, 총선 책임론이 집중되는 상황서도 지난 7월 국민의힘 당 대표로 당선됐다. 또 20명 내외의 현역 의원들과 계파를 구성했다. 한 대표와 계파 구성원들이 극단적으로 결심하면, 얼마든지 민주당과 손잡고 김건희 특검이나 대통령 탄핵을 추진할 수도 있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 모두 서로를 함부로 대하기 어려운 위치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시바 총리는 자민당의 선거 패배 확정 후 “직책을 완수하겠다”며 “우리가 내건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하는 등 사퇴 요구를 일축했다. 하지만 <요미우리신문>은 지난달 29일 사설서 “이시바 총리는 책임의 무게를 자각하라”며 “빠르게 진퇴를 결정하는 것이 헌정의 상도”라고 요구했다.

헌정의 상도는 일본 정당정치의 관례를 의미한다. <산케이신문>도 같은 날 “책임지고 깨끗하게 사직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서는 고이즈미 의원과 다카이치 의원을 차기 총리로 거론하고 있다.

자민당 패배 직후 야당과 정책협의
유연한 대응 배운다고 친일 비난?

하지만 이시바 총리 입장에선 자신의 잘못으로 불거진 문제 때문에 패배한 선거라고 보기 어려워서 사퇴 요구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크지 않다. 정치자금 게이트에 수월회가 연루된 것은 사실이지만, 크게 물의를 일으킨 파벌은 아베파였다.

아울러 통일교 게이트는 아베 전 총리가 몸통이나 다름없다. 구 아베파에 속했던 의원들이 다카이치 의원을 중심으로 다시 뭉친다면, 이시바 총리와 큰 다툼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또 선거 이후 존재감을 키운 제3야당 국민당의 선택에 따라 정국의 구도가 달라질 수도 있다. 국민당은 이번 선거서 총 28석을 확보했다. 자민당과 입헌민주당 모두 국민당을 포섭하려고 한다. 자민당과 국민당은 지난달 31일 정책협의 개시를 합의했다.

핵심 쟁점은 ‘103만엔의 벽’이라고 하는 소득세 과세 최저한도였다. 현행 103만엔(약 929만원)인 최저한도를 178만엔(약 1606만원)으로 올리는 것이 국민당의 대표 공약이다. 국민당 다마키 유이치로 대표는 지난 3일 “소득세 비과세 한도 인상에 자민당이 응하지 않으면, 정권 운영에 협력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자민당은 선거 패배를 빠르게 인정하고 제3야당과의 정책협의를 시작으로 협상에 돌입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선거 패배 이후로도 달라진 자세를 보이지 않았다. 여기에 더해 명태균 게이트까지 불거지면서 퇴진 요구가 서서히 일어나고 있다. 총선 패배 이유를 분석해 기록하는 백서 작성 과정서도 서로에게 책임을 추궁하는 계파 갈등이 그대로 재현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새누리당의 제20대 총선 패배 이후 국정 장악력이 누수되다가 우병우 전 민정수석 논란과 비선 실세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의 존재가 불거져 탄핵 가결에 이르렀다. 선거의 패배는 정권의 몰락 가능성을 의미하는 대표적인 전조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김 여사 논란은 윤 대통령의 검사 재직 시절부터 알음알음 알려지다가 대선 출마 이후 크게 불거진 오래된 사안이다. 오래된 의혹은 전혀 해소되지 못했고, 윤 대통령의 인사 임명 논란과 각종 정책 추진 논란이 맞물려 현재에 이르렀다.

박 전 대통령과 윤 대통령은 여당서도 고압적인 태도로 일관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 이준석·김기현·한동훈 등 여당 수장 3명을 끌어내렸다. 이 같은 대응은 분명히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이 고압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사이 지지율은 10%대로 내려앉았다.

퇴진 요구
내홍 가능성

자민당의 지난 10월 중의원 선거 패배와 윤 대통령의 현 상황은 거시적인 공통점이 있다. 민심을 지나치게 건드리는 정치적 행각을 일삼고, 문제의 근원을 뿌리 뽑지 못하는 정치세력은 반드시 선거서 패배한다.

하지만 자민당은 빨리 현실을 인정하고 국민당과 정책협의에 들어갔다. 1993년 중의원 선거서 패배해 정권을 잃은 후에도 빠르게 현실을 받아들여 일본사회당과 대연정을 합의했다. 빠르고 유연한 대응이야말로 자민당이 오랫동안 정권을 잡은 비결이었다. 이 비결을 배운다고 하더라도 아무도 ‘친일’이라고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

<ctzx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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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100일 결정적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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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체감상 1년은 된 것 같다.” 어느 덧 이재명정부가 출범 100일째를 맞았다. 이재명 대통령에겐 숨 가쁜 3개월이었다. 12·3 비상계엄 선포, 탄핵 정국, 조기 대선 등 대형 정치 이슈는 지나갔다. 이제 본격적으로 국정 운영의 청사진을 실현해야 하는 시기다. 지지율은 이미 요동치고 있다. 어떤 이슈가 이정부를 뒤흔들었던 걸까? 지난 6월3일 21대 대통령선거가 열렸다. 지난해 12월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6개월 만에 대선이 치러졌다. ‘어대명(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이라는 말이 대선 전부터 파다했고 실제로 이변은 없었다. 재수 끝에 대통령에 당선된 이재명 대통령은 역대 최다 득표수를 기록했다. 다만, 과반 득표율에는 미치지 못했다. 무정부 상태 산적한 이슈 이번 대선은 대통령 탄핵으로 치러진 보궐선거여서 인수위원회 기간 없이 바로 임기가 시작됐다. 이 대통령 앞에는 비상계엄 사태 수습, 민생 회복, 국민 통합 등 국내 문제는 물론 미국발 통상 전쟁 등 국외 문제까지 이슈가 산적한 상태였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무정부’나 다름없는 상태로 6개월 동안 이어진 국정 공백을 메워야 했다. 이 대통령은 당선이 확정된 후 소감 연설에서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민주공화정 공동체 안에서 국민이 주권자로 존중받고 협력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것, 반드시 그 사명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란 극복 ▲민생 회복 ▲국민 안전 ▲한반도 평화 ▲국민 통합 등을 언급했다. 실제 이 대통령은 국회의 과반 의석을 등에 업고 ‘윤석열정부 지우기’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재명 정부 1호 법안으로 ‘내란 특검법’ ‘김건희 여사 특검법’ ‘채 해병 특검법’ 등을 통과시켰다. 김건희 특검법, 채 해병 특검법 등은 윤정부에서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번번이 폐기됐던 법안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 엿새 만인 6월10일 국무회의에서 3대 특검법을 의결했다. 그는 국무회의 이후 SNS를 통해 “이재명 정부 1호 법안인 3대 특검법은 내란 심판과 헌정 질서 회복을 열망하는 국민의 뜻을 받들기 위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특검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구속 기소하는 등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침체된 내수를 회복하기 위한 소비쿠폰도 지급했다.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을 거치면서 사회 분위기가 흉흉해졌고 이는 곧 경기 부진으로 이어졌다. 정치 상황이 좋지 않다 보니 사람들이 소비를 줄이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연말 연초 대목 장사를 망친 자영업자는 폐업을 걱정해야 할 지경에 몰렸다. 민생 회복 소비쿠폰 지급은 이 대통령이 대선후보 때부터 내세운 공약이다. 지난 7월21일부터 전 국민을 상대로 1차 소비쿠폰이 지급됐다. 기본 15만원에 인구 감소 지역 등에 일정 금액을 더했다. 2차 소비쿠폰은 상위 10%를 제외한 국민 90%가 오는 22일부터 신청할 수 있다. 13조원의 재정이 투입됐다. 윤정부 때부터 이어진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은 이재명정부 들어서도 쉽게 출구 전략을 찾지 못하는 모양새다. 무엇보다 의대생 수업 복귀에 대한 이정부의 행보에 민주당 지지자 사이에서도 불만이 제기됐다. 의료 정상화를 이유로 조건 없이 의대생 복귀를 추진하는 모습에 공정과 원칙이 깨졌다며 실망감을 표출한 것이다. 두 번의 도전 끝에 당선 내란 종식, 민생 첫 손에 의정 갈등은 윤정부 시기인 지난해 2월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겠다는 보건복지부의 발표로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전공의는 집단 사직하며 병원을 떠났고 의대생은 집단 휴학을 강행했다. 응급실 뺑뺑이 사건 등 의료 공백이 가시화되고 의료 붕괴까지 우려되다가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핵심 이슈에서 멀어졌다. 새 정부의 현안으로 넘어간 것이다. 이 대통령이 정은경 전 질병관리청장을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하면서 의정 갈등 해소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정 장관 지명 이후 의료계에서 일제히 환영 입장을 내놨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대생 복귀와 관련해 특혜 논란이 나왔고 국민 여론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의료계와 국민 여론의 괴리가 큰 상황이라 해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산재와의 전쟁’은 임기 초 이정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는 모양새다. 이 대통령은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SPC 공장을 현장 방문하는가 하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반복 공시로 주가 폭락’ 등 수위 높은 발언으로 건설업계를 겨냥했다. 이 대통령이 산업재해 근절을 외치자 건설업계가 납작 엎드렸다. 산재 사고가 발생하면 사용주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내용의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고도 일터에서 근로자가 죽는 사례가 거듭 일어나자 대통령이 직접 칼을 빼든 것이다. 연이어 산재 사고가 발생한 포스코이앤씨는 대표이사가 바뀌었고 DL건설은 임직원 전원이 사의를 표명했다. 일각에서는 이정부가 지나치게 기업을 ‘잡도리’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코스피 5000’을 외치며 주가 부양을 공언한 것과 실제 행보는 정반대라는 의견이다. 지금까지의 주가 상승은 이정부에 대한 기대감에서 비롯됐다면 앞으로의 상승분은 실물 경제에서 끌어 올려야 하는데 이를 이끌 기업을 너무 옥죄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다. 경제 정책의 방향도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된다. 지난달 1일 코스피 지수가 126.03포인트(3.88%)나 하락했다. 주가 3200선이 깨졌고 하락률은 미국발 상호 관세 부과로 충격을 받았던 지난 4월7일(-5.57%) 이후 4개월 만에 가장 컸다. 이른바 ‘검은 금요일’의 배경은 전날 이재명 정부가 발표한 세제 개편안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침체된 경기 소비쿠폰으로 이정부는 주식 양도소득세 과세 대상인 대주주 기준을 50억원에서 10억원으로 낮추고 최고 35% 배당소득 분리과세 도입 등을 담은 세제 개편안을 공개했다. 금융투자소득세 도입 조건부로 인하된 증권거래세율도 현재의 0.15%에서 2023년 수준인 0.2%로 환원됐다. 또 법인세 세율을 모든 과세표준 구간에 걸쳐 1%포인트씩 일괄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검은 금요일’의 후폭풍은 상당했다. 무엇보다 국내 주식시장에 대한 투자 심리가 위축됐다는 게 문제였다. 주가가 폭락한 지난달 1일 이후 열흘 사이에 거래 대금이 20%가량 줄었다. 이른바 ‘국장’에서 빠져나간 개인 투자자들이 ‘미장(미국 주식시장)’으로 몰려가면서 나스닥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가뜩이나 관세 협상으로 전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증시 부양책에 대한 의구심이 커졌다는 방증이었다. 일명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제2·3조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점도 우려를 더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노란봉투법은 하청 노동자에게 원청과의 교섭권을 부여하고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이 골자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 활동이 위축될 것이라는 예상이 끊이지 않았다. 법안이 통과되기 전부터 한국경영자총연합회 등 경영계를 대표하는 경제단체는 물론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등이 노란봉투법에 반대 의사를 드러냈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이 규제가 덜한 외국으로 나갈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경제단체 등은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시행을 유예해 달라고까지 했지만 그대로 진행됐다. 대통령실은 법안 통과 이후 상황을 주시하는 모습이다. 이 대통령은 노란봉투법 통과 이후 “노란봉투법의 진정한 목적은 노사의 상호 존중과 협력 촉진”이라며 “노동계도 상생의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책임 있는 경제 주체로서 국민 경제 발전에 힘을 모아주시기를 노동계에 각별히 당부드린다”고 강조했다. 광복절을 앞두고는 사면 문제가 불거졌다. 취임한 지 2개월 밖에 되지 않았고 전임 정부에서 임기 초 정치인 사면을 한 적이 없던 터라 이정부 역시 같은 길을 갈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했다. 사면 대상으로 거론되던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가 자녀 입시 비리 혐의 등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수감된 지 8개월 밖에 안된 점도 ‘사면 불가론’에 힘을 더했다. 주가 부양 공약 반대되는 정책 지난해 12월12일 대법원은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의 혐의로 기소된 조 전 대표에게 징역 2년에 추징금 600만원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조 전 대표는 나흘 뒤인 12월16일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만기 출소일은 내년 12월15일이었다. 조 전 대표가 이끌던 조국혁신당은 당시 대선에서 후보를 내지 않고 이 대통령을 지지했다. 조 전 대표의 사면 관련 언급이 나올 때마다 ‘대선 청구서’라는 말이 따라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후 종교계, 시민단체, 정치권 일부에서 조 전 대표를 사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조 전 대표가 검찰의 횡포에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다는 주장도 일부 진영에서 제기됐다. 특히 문재인 전 대통령이 대통령실 등이 조 전 대표의 사면을 직접 요구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조 전 대표는 문재인정부 시절 민정수석, 법무부 장관 등 요직을 맡은 바 있다. 문 전 대통령은 조 전 대표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고 언급하는 등 각별히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빗발치는 사면 요구에 고심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정치권 등에서 조 전 대표를 사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과 달리 여론이 좋지 않았기 때문. 특히 민주당 지지층 내에서도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목소리가 나왔다.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입시 비리 혐의 등이 민주당 지지층이 중요하게 여기는 공정과 상식의 가치에 반한다는 것이다. 지지율이 떨어지는 등 민심 이반이 예상된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이 대통령은 장고 끝에 조 전 대표의 사면을 결정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11일 조 전 대표를 비롯해 윤미향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은수미 전 성남시장,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 등 정치인과 고위공직자 27명을 포함해 총 83만6678명에 대한 대규모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분열과 반목의 정치를 끝내고 국민 대화합 차원에서 이뤄지는 광복절 특사’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광복절 사면은 이 대통령의 지지율을 뒤흔들었다. 사면 논의가 시작됐을 때부터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한 지지율은 발표 이후 눈에 띄게 꺾였다. 조 전 대표가 사면 이후 ‘광폭 행보’를 보이며 노출도가 높아진 것도 한몫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세제 개편안·사면으로 지지율 흔들 한일·한미 정상회담은 긍정적 평가 조 전 대표는 이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에 대해 ‘(사면이 끼친 영향은) N분의 1 정도’라고 발언한 부분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조 전 대표는 수감 한 달여 만에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여권 내에서도 조 전 대표의 행보를 불편해하는 기류가 감지되며 야권에서는 이정부를 공격하는 소재가 된 모양새다. 특히 조 전 대표를 비롯한 조국혁신당에서 우리의 길을 가겠다는 ‘마이웨이’ 행보를 공언하면서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계 개편이 일어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대통령의 임기 5년간 외교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정상회담도 잇따라 열렸다. 이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부터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던 ‘트럼프발 통상 전쟁’의 대응 방향이 윤곽을 드러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당선 직후부터 ‘관세’를 무기로 전 세계에 싸움을 걸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미 FTA’로 쌀 등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관세가 ‘0’이었기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증액 등을 언급했다. 시장을 개방하고 미국에 이른바 ‘동맹 비용’을 내라는 요구였다. 실무진이 진행한 관세 협상은 그 시발점이었고 정상회담은 미국발 청구서의 윤곽이 드러난 자리였다.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표면상으로는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각국 정상을 불러놓고 면전에서 망신주기 하는 등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방식의 트럼프 대통령과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한 점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일각에서는 정작 중요한 사안은 하나도 논의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앞서 조선업 협력, 원전 문제를 비롯해 자동차 등 주력 산업에 붙는 관세까지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일반적으로 실무진이 틀을 만들고 정상회담에서 결정되는 방식의 외교 관행이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먹히지 않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공동성명이나 합의문 등은 나오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앞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도 만났다. 이 대통령은 일본 방문 전 과거 한일 간 위안부 합의와 징용 배상 문제와 관련해 “국가 간 약속은 존중돼야 한다”며 기존 합의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당시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미국발 관세 관련 논의도 이뤄졌다. 당분간 민생 집중 취임 후 첫 외교 시험대를 넘은 이 대통령은 당분간 민생을 살피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당분간 국민의 어려움을 살피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민생과 경제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이규연 대통령실 홍보소통수석은 “몇 주간 정상회담에 몰두했기 때문에 국내, 특히 민생·경제성장과 관련된 부분을 앞으로 주력해서 챙기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