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월 지난 아리셀 사고 그 후…

말로만 대형 참사 ‘관심 없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외국인 노동자는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현장서도 가장 밑바닥에 존재한다. 특정 현장에서는 이들이 없으면 업무가 진행되지 않을 정도로 의존도가 높지만 사고나 사건이 일어나면 ‘투명인간’ 취급을 받는다.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다. 우리나라서 외국인 노동자가 처한 현실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졸지에 가족을 잃은 유족은 억울함을 호소하고자 ‘스피커’를 찾아 헤맨다. 국회 국정감사는 스피커가 필요한 이들에게 기회로 여겨진다. 정치인의 입을 빌려 책임자를 향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창구가 되는 것이다. ‘반짝’ 관심에 그쳤던 사건이 수면 위로 올라오기도 한다. 

조용하다가
국감서 반짝

지난 6월24일 오전 10시30분께 경기도 화성시 소재 아리셀 공장 3동 2층서 화재가 발생했다. 이날 화재로 23명이 숨지고 8명이 다쳤다. 사망자 가운데 5명은 한국인, 나머지 18명은 외국인이었다. 김달성 포천이주노동자센터 대표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서 “30년 이주노동자 역사에서 가장 큰 참사”라고 말했다. 

당시 공개된 CCTV에는 화재를 발견한 노동자들이 불을 끄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담겨있다. 하지만 1분도 안 되는 사이 불길은 2층 전체를 삼켜 버렸다. 화마에 휩싸인 이들은 어디로 피하지도 못한 채 숨졌다. 누구도 대피하라고 하지 않았고 누구도 구조하러 달려가지 못했다. 대형 참사였다.

사고 난 다음날부터 책임 공방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쟁점이 된 부분은 화재로 사망한 이들의 소속이 어디였냐는 점이다. 피해자 대부분은 인력 공급업체를 통해 아리셀 공장서 일한 것으로 드러났다. 문제는 해당 인력 공급업체가 무허가였다는 점이다. 

경찰, 고용노동부 등이 수사에 나섰다. 그 결과 다수의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한 현장서 일어날 수 있는 총체적인 문제가 발견됐다. 외국인 노동자가 처한 열악한 노동 환경과 안전 문제가 다시 한번 극명하게 드러난 것이다. 김 대표는 “죽을 수밖에 없는 노동 조건과 환경이었다”고 한탄했다.

지난달 24일 수원지검 전담수사팀은 박순관 아리셀 대표를 중대재해처벌등에관한법률(산업재해치사), 파견법 위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또 박 대표의 아들인 박중언 총괄본부장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업무상 과실치사상, 파견법 위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업무방해, 건축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여기에 아리셀 임직원 등 6명은 업무상 과실치사상 등 혐의로, 아리셀 등 4개 법인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박 대표는 아리셀 사고와 관련해 유해·위험요인 점검을 이행하지 않고 중대재해가 발생할 것을 대비해 매뉴얼을 구비하지 않는 등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위반한 혐의를, 박 총괄본부장 등은 전지 보관 및 관리(발열감지 모니터링 미흡)와 화재 발생 대비 안전관리(안전교육·소방훈련 미실시)상 주의 의무를 위반해 대형 인명사고를 일으킨 혐의를 받고 있다.

사망자 23명 가운데 18명 외국인
비전문취업(E-9) 비자는 없었다

박 대표와 박 총괄본부장 등은 2021년 11월부터 올해 6월까지 무허가 파견업체 소속 근로자 320명을 아리셀 직접 생산 공정에 허가 없이 불법 파견받았다. 불법 파견업체서 나온 외국인 노동자들은 대부분 숙련되지 않은 상태였고 고위험 전지 생산 공정에 투입되면서도 안전교육을 받지 못했다.

실제로 사망한 23명의 피해자 가운데 20명이 파견근로자였고 대부분이 입사 3~8개월 만에 사고를 당했다. 

또 아리셀은 안전·보건 예산을 최소한으로 편성·집행하고 담당 부서 인력도 감축했다. 안전보건 관리자가 퇴사한 이후에는 4개월 동안 자리를 채우지 않았다. 또 이후 전지에 대한 기본지식도 없는 직원을 형식적으로 안전보건 관리자로 임명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번 사고를 예고된 인재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일각에서는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관련자가 재판에 넘겨지는 등 사고에 대한 후속조치가 이뤄지고 있는 것에 반해 ‘본질’에 대한 목소리가 없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번 사고로 외국인 노동자의 현실이 또 한번 적나라하게 드러났음에도 국민은 물론 정부의 관심도 부족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국내 체류 중인 외국인은 지난해 12월 기준 250만7584명으로 나타났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가 공개한 <2023년 12월 통계연보> 자료에 따르면, 이 수치는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4.89%에 이른다. 통상 한 나라의 외국인 비율이 5%를 넘는 경우 다문화사회로 본다는 점을 참고하면 우리나라는 다문화사회 진입을 앞둔 셈이다.

이 가운데 외국인 노동자는 약 130만명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비전문취업(E-9) 외국인 입국자는 16만8775명으로 코로나19 발생 이전인 2019년(15만1116명)보다 많았다. 지난 8월까지 12만6557명이 입국하면서 연말까지 20만명에 가까운 인력이 들어올 것으로 전망된다.

시민단체
유족 요구

E-9은 일정 자격이나 경력 등이 필요한 전문 직종이 아닌 제조 업체, 건설공사 업체, 농업, 축산업 등 비전문 직종에 취업하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발급되는 비자다. 

E-9 비자로 입국하는 외국인 노동자는 ‘코리안 드림’을 꿈꾼다. 우리나라서 바짝 돈을 벌어 고향의 가족에게 송금하고 사용자와 원만한 관계를 맺어 체류 기간을 늘리는 게 이들의 바람이다. 이 때문에 ‘돈’과 ‘고용 안정’은 외국인 노동자를 옭아매는 족쇄로 작용하곤 했다. 노동 현장서 사고가 일어나도 대부분의 외국인 노동자는 ‘악’ 소리도 내지 못한 채 숨죽였다. 

김달성 대표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 때마다 ‘산재 은폐율’을 강조했다. 2021년 한국노동연구원 김정우 전문위원이 발간한 <노동조합은 산업재해 발생과 은폐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게재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산재 은폐율은 66.6%에 이른다. 여기서 눈여겨볼 부분은 이 연구가 노동자 3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라는 점이다. 

김 대표는 “외국인 노동자는 대부분 50인 미만 사업장서 일한다. 실제 현장에 가보면 내국인 노동자의 산재 은폐율도 연구 결과보다 높을 것이다. 그렇다면 외국인 노동자는 어떻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1년에 프레스 기계로 절단된 외국인 노동자의 손가락이 열두 가마니라는 말이 있다”며 “그 정도로 원시적인 산재가 아직도 현장서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외국인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 환경서 비롯된 사건‧사고는 E-9 비자로 입국한 이들에게 집중됐다. 영하 17도 혹한의 날씨에 비닐하우스서 동사한 캄보디아 여성 노동자 속헹씨 사건이 대표적이다. 속헹씨는 E-9 비자로 입국한 농업 노동자였다.

열악한 환경
현주소 드러나

그의 죽음이 산재로 인정받기까지 수년이 걸린 점은 E-9 비자로 입국한 외국인 노동자의 현실을 반영한다.

하지만 아리셀 사고서 사망한 피해자들 가운데 E-9 비자로 입국한 사람은 한 명도 없다. 18명의 사망자 가운데 재외동포(F-4) 비자가 11명, 방문 취업 동포(H-2) 비자가 4명, 결혼 이민(F-6) 비자와 영주권(F-5) 비자가 각각 2명, 1명이었다. 

F-4는 한국 국적을 갖고 있다가 외국 국적을 취득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비자다. 비교적 자유로운 국내 활동이 가능하고 취업에도 큰 제약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체류 기간은 3년 단위로 연장돼 무기한 체류도 가능하다. 

H-2 비자는 외국 국적 동포에게 발급된다는 점에서 F-4 비자와 비슷하지만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 구소련지역 6개 국가의 국적을 보유한 18세 이상의 외국 국적 동포에 한정된다. F-4 비자와 비교해 취업에 제한이 있다. 

외국인 노동자에게 비자는 곧 신분과 같다. 실제 지난 7월 아리셀 측은 피해자의 국적과 비자 종류에 따라 보상액을 차등 산정해 유족의 반발을 불렀다. F-4나 H-2 비자로 입국했다가 이번 사고로 사망한 경우 국내 체류 기간(7년)은 내국인 기준으로 일실수입을 적용하고 이후 65세까지는 중국 현지 근로자 임금으로 일실수입을 적용했다. 

F-4 비자로 입국하면 단순 노무직으로 취업할 수 없어 이번 사고로 사망자가 불법 취업한 사실이 적발된 이상 생존했더라도 비자 연장은 불가능하므로 7년 이후는 중국 임금을 기준으로 한다는 종전 판례를 적용했다는 것이다.

아리셀 측의 입장에 한 유족은 “돈으로 보상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아쉽긴 하지만 사측에서는 내·외국인 따지지 말고 다 같은 인간으로 공정하게 보상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불법 파견에 군납 비리 의혹까지
대표 구속되고 관계자 극단적 선택

한 노동계 관계자는 이 같은 현실에 대해 “E-9 비자로 입국한 외국인 노동자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그보다 나은 조건인 이들의 노동 환경도 열악하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만큼 외국인 노동자 처우나 환경에 대한 관심이 적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그나마 최근 박순관 대표의 국감 출석 문제로 아리셀 사고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 지난 7일 ‘경기도 전지공장 화재 사고의 조사와 회복을 위한 자문위원회’는 “올해 국정감사에서 이 사건의 책임자인 박순관을 증인으로 채택하고 취약한 노동자의 인권 문제를 철저히 파헤치고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단체는 화재 참사에 대한 경기도 차원의 대응과 예방책을 마련하기 위한 목적으로 활동 중이다. 

이들은 성명서를 통해 “아리셀 참사는 현재 이 순간 한국 사회서 등장하고 있는 안전관리와 위험 문제의 핵심을 보여주는 사고”라며 “여러 지점서 한국의 산재 위험이 변화하는 역사의 변곡점에 있지는 않은지에 대한 고민을 검토해봐야 하는 참사”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박 대표의 국감 증인 채택을 촉구했다. 유족들의 절절한 요구도 이어졌다. 

국회 환노위는 지난 17일 박 대표를 종합감사 증인으로 채택했다. 하지만 박 대표가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다. 그는 사유서에서 “진행 중인 재판, 수사와 직접 관련된 만큼 답변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국회서의 답변 내용이 향후 수사 및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 진행 중인 경찰 수사와 관련해 회사 소속 기술책임자가 구속영장 심사를 앞두고 자택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접했다”면서 “이후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울 만큼 심각한 심적 불안 증세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16일 에스코넥 관계자 A씨가 자택서 숨진 채 발견됐다. A씨는 에스코넥과 아리셀의 군납비리 사건 관련 피의자로 수원지법서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을 예정이었다. 그는 에스코넥과 아리셀이 수년간 국방기술품질원 검사자가 미리 선정해 봉인한 ‘샘플 시료전지’를 관계자들이 별도 제작한 ‘수검용 전지’로 몰래 바꿔 통과토록 하는 등 비리를 저질러 온 사건 관련자다. 

후속 대처
이어질까

국회 환노위는 지난 22일 박 대표의 불출석 사유서에도 동행명령장을 발부하는 등 그를 국감장에 세우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국회 증언‧감정법은 동행명령을 거부하거나 고의로 동행명령장 수령을 회피할 경우 ‘국회모욕죄’로 보고 5년 이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환노위원장인 민주당 안호영 의원은 “증인은 국감에 반드시 출석해 아리셀 화재 사고에 대해 유족과 국민에게 사과의 뜻을 명백히 전하고 향후 피해보상 및 회복에 대한 진지한 노력을 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표명할 의무가 있다”고 동행명령장 발부 배경을 밝혔다. 박 대표는 끝내 국감에 불참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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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