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웨이’ 한동훈-이회창 아이러니 오버랩

  • 박형준 기자 ctzxp@ilyosisa.co.kr
  • 등록 2024.10.14 10:20:21
  • 호수 15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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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보면 2024년 보인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은 검사 재직 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연이은 갈등과 결별을 이어가고 있다. 견제 장치를 없애는 것에 골몰했던 역대 대통령들은 모두 폭주 기관차로서 헌정사에 비극으로 남았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의 갈등은 지난 1월부터 드러났다. 두 사람은 검찰 시절 인연에 이어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으로서 호흡을 맞췄다. 비상대책위원장이었던 한 대표는 1월17일, 김경율 회계사를 비상대책위원으로 영입한 후 22대 총선 서울 마포을 출마를 직접 소개했고, 이때부터 두 사람 사이의 파열음이 일어났다. 김 회계사는 20년 넘게 참여연대서 활동한 야권 성향 인물이었다.

검찰 인연서 
정권 악연으로

특히 문제가 됐던 것은 김 회계사의 종편 유튜브 방송 출연 당시 발언이었다.

김 회계사는 JTBC 유튜브 ‘장르만 여의도’서 “디올백에 대해서만큼은 분명한 진상을 이야기하고 대통령이든 영부인이든 입장을 표명하는 게 국민 마음을 추스르는 방법”이라며, 김건희 여사를 프랑스 부르봉 왕조 시절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에 비유했다. 그러면서 “(프랑스 대혁명은) 사치와 난잡한 사생활이 하나하나 드러나면서(국민의) 감성이 폭발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윤 대통령은 “민감한 시기에 사천(私薦)으로 비칠 수 있는 발언을 한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며, “김 여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공천 시스템 훼손 우려 때문”이라는 명분으로 한 위원장을 비판했다.


이관섭 대통령비서실장은 한 위원장에게 “대통령의 뜻”이라면서 한 대표의 비대위원장직 사퇴를 거론했고, 당내 친윤(친 윤석열)계도 사퇴 여론을 조성했다. 이어 한 대표의 비대위원장 취임 직후인 지난해 12월에도, 그가 김건희 여사 특검에 대한 조건부 수용 의사를 드러내자, 비대위원장직 사퇴를 압박한 사실이 밝혀졌다.

총선을 불과 석 달도 채 남기지 않은 시점이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일단 봉합’인 상황을 유지한 채 선거를 치렀고, 김 회계사도 제22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물론 ‘일단 봉합’이었을 뿐 ‘완전 봉합’은 아니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선거 정국 중에도 ▲이종섭 호주 대사 임명 논란 ▲황상무 시민사회수석비서관 거취 ▲국민의미래 비례대표 명단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논란 등 이슈를 놓고 끊임없이 충돌했다.

윤 대통령은 4월1일 의대 정원 증원과 관련된 대국민 담화를 진행했고, 한 위원장은 사퇴 의사까지 밝혀가면서 ‘의대 증원 유연화’를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국민의힘은 지난 22대 총선서 108석만을 건지는 참패를 당했다. 한 위원장은 비대위원장직서 사퇴했지만, 해외직구 규제 논란에 대해 “과도한 규제”라는 비판을 이어나갔다. 이어 ▲전당대회 출마 ▲채상병 특검법 찬성 ▲김 여사 발신 문자 ‘읽씹’ 논란 ▲R&D 예산 삭감 비판 등 흐름이 이어지는 와중에 선거인단 득표와 여론조사 지지율을 합친 62.84%의 지지를 얻어 당 대표로 당선됐다.

한 대표의 취임 이후에도 두 사람은 ▲정책위의장 임명 갈등 ▲김경수 전 경남지사 복권 등 문제서 의견이 충돌하는 상황이 연이어 보도됐다. 이들의 갈등이 언론에 보도될 때마다 제목을 장식했던 표현은 ‘윤 격노’였다.

갈등이 가장 크게 불거진 사안은 지난 9월 불거진 김대남 전 SGI서울보증보험 상임감사의 ‘한동훈 공격 사주 의혹’이었다.

김경율 영입부터 시작된 윤·한 갈등
30년 전 내부 갈등과 유사 형태 전개


유튜브 ‘서울의소리’는 김 전 감사가 대통령실 행정관으로 재직할 당시의 통화 녹취록을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김 전 감사는 전당대회 중이던 지난 7월10일 “‘서울의소리’가 이번에 잘 기획해서 한동훈을 치면, 김 여사가 아주 좋아할 것”이라고 말했고, ‘서울의소리’는 7월12일 한 대표의 당비 횡령 및 유용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자 한 대표는 “보수정당 당원이 소속 정당 정치인을 허위 사실로 음해하기 위해 좌파 유튜버와 협업하고 공격을 사주하는 것은 명백하고 심각한 해당 행위이자 범죄”라며, “당 차원서 필요한 절차들을 통해 진상을 규명하고 그 결과에 따라 엄중히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과 김 전 감사는 일면식도 없고, 해당 발언은 김 전 감사가 청와대서 퇴직한 이후에 한 발언인 데다 일방적이고 과장된 주장”이라며, “김 여사와도 관계가 없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김 전 감사가 2022년 4월 강남구청장 선거에 출마했을 당시 <국제뉴스>와의 인터뷰서 “윤 당선인을 위해 조직 동원 활동을 했고, 당선인이 저를 많이 신뢰하셨던 것 같다”며, “당선인과 2시간 동안 독대라는 귀중한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2022년 3월에는 자신의 SNS에 윤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도 공개했다. 녹취록에 따르면, 김 전 감사는 감사직 취임에 대해서도 “다른 회사는 임기가 2년인데, (서울보증보험 감사의 임기는)3년이라 현 정부가 끝날 때까지 있을 수 있어서 내가 선택했다”고 언급했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인해 진행된 ‘김건희 특검법’에 대한 재의 표결은 지난 4일 진행됐다. 무기명 투표로 진행된 재의 표결서 104표의 반대가 나왔다. 국민의힘 의석수는 총 108석이기 때문에 4명의 이탈표가 발생한 셈이다.

이틀 후에는 한 대표와 친한(친 한동훈)계 의원 20여명이 서울 종로구 한 식당서 비공개 만찬을 가졌다. 이들이 향후 어떤 움직임을 보일지는 아직 확실히 알려진 것은 없다. 

다만 국민의힘의 의석수가 총 108석이라는 사실로 비춰볼 때, 20여명이라는 이들의 ‘세’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국민의힘은 현재 개헌저지선 100석을 살짝 웃도는 선의 의석만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여론조사 꽃’이 7일 발표한 정례여론조사에 따르면,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율은 23.7%로 집계됐다.

반면 국민의힘 지지율은 29%로 대통령 지지율이 정당 지지율보다 낮은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뉴시스>가 여론조사 전문회사 에이스리서치에 의뢰해 진행하고 2일 발표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 대표는 차기 대통령감 선호도 조사에서 19.3%를 기록해 전체 2위에 올랐다. 한 대표 외에 이름이 거론된 국민의힘 인사는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홍준표 대구시장 ▲오세훈 서울시장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이 있지만, 이들은 모두 5%를 넘지 못했다.

국민의힘으로서는 한 대표 외에는 유의미하게 내세울 수 있는 대선주자가 아직은 드러나지 않은 셈이다.

YS와 갈등
박과 갈등


헌정사에서 대통령과 당내 유력인사가 갈등을 빚은 사례는 여럿 있었다. 김종필(JP) 전 국무총리는 제3공화국 시절 제6대 총선서 당선돼 의회 입성 후 민주공화당 내에서 계보를 구성하고 있었다. 당내서 ‘박정희 대통령의 후계자’로 미는 움직임도 있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3선 개헌을 준비하고 있었다. 김 전 총리의 자택은 김형욱 부장이 이끌던 중앙정보부의 감시를 받았고, JP 계열 연구모임 국민복지연구회서 3선 개헌을 반대했다. 구성원들은 중정서 혹독한 심문을 받으면서 ‘JP 대통령 추대 음모’를 추궁당했다. 김 전 총리는 결국 마음을 바꿔 3선 개헌을 지지했다. 

김 전 총리는 ‘최순실 게이트’ 정국이 이어졌던 2016년 11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서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김 전 총리는 박 대통령에게 “제가 나세르입니까? 왜 자꾸 의심하십니까?”라고 항의했다. 그러자 박 대통령은 “내가 좀 의심도 해”라고 말했고, 김 전 총리는 인터뷰 도중 “(박 대통령이)‘했어’라 아니라 ‘해’라고 말했다. (의심을)계속 하고 있다는 말”이라면서 서운했던 기억을 회고했다.

가말 압델 나세르 전 이집트 대통령은 총리로 재직했던 1954년 무함마드 나기브 대통령을 퇴출시키고, 스스로 대통령에 취임했다. 나세르 대통령은 1952년 왕정을 무너트린 자유 장교단의 쿠데타를 주도한 후 나기브 장군을 대통령으로 추대했다. 

박 대통령이 김 전 총리를 견제하기 위해 동원한 사람들은 ‘4인방’이었다. 4인방은 김성곤·김진만·백남억·길재호 민주공화당 의원이다. 이들은 박 대통령의 당내 대리인 격으로 JP계와 다퉜고, 3선 개헌의 선봉장 역할을 했다. 특히 김성곤 의원은 박 대통령의 셋째 형이자 김 전 총리의 장인인 박상희씨와 친분이 돈독했다. 김 의원은 박 대통령과는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냈다. 

당내 영향력이 커진 4인방은 1971년 항명 파동을 일으켰다. 당시 야당이었던 신민당은 “광주대단지 사건과 실미도 사건의 책임을 묻는다”는 취지로 오치성 내무부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발의했다. 국회 의석수 총 204석 중 공화당 소속은 113명이었고, 공화당은 ‘해임건의안 부결’을 당론으로 정했기 때문에, 부결은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4인방은 10월2일 가결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러자 이후락 부장이 이끌던 중정은 이들을 연행해 고문을 가했고, 정계서 추방된다. “김성곤 의원은 콧수염까지 뽑혔다”는 이야기가 있다. 4인방이 정리된 것은 한국 정치에 큰 흔적을 남긴다. 공화당에는 더는 박 대통령의 영향력에 도전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박 대통령은 1972년 10월 유신헌법을 발표하고 제4공화국을 열었다.

문민정부에서는 이회창 당시 국무총리가 김영삼(YS) 대통령에게 도전장을 던졌다. 이 전 총리는 YS의 권유로 감사원장으로 취임하면서 “청와대·기무사 등 어느 기관이든 법 규정에 따라 감사하겠다”는 선언과 함께 권력기관들에 대한 감사를 진행했다.

대권 도전했다
콧수염 뽑혔다

감사원은 먼저 대통령비서실부터 대대적으로 감사했다. 이어 율곡사업에 대한 감사를 진행한 후 비리에 연루된 노태우정부의 국방부 장관 2명과 해·공군 참모총장들을 적발했다. ‘평화의댐’ 비리 의혹을 근거로, 안기부에 대한 감사도 진행했다.

안기부가 감사원 직원들의 진입을 막는 등 감사를 거부하자, 이 전 총리는 “그대로 밀고 들어가라”고 지시했다. 불과 10개월 동안 재직하면서 일어난 사건들이었다. 이 상황은 5공·노태우정부에 대한 사정(司正)이었기 때문에, 문민정부에게도 유리한 흐름이었다. YS는 이 전 총리를 국무총리로 발탁했다.

두 사람의 갈등은 총리 취임 이후 시작됐다. 이 전 총리는 국가안전보장회의서 총리가 제외된 것과 관련해 “통일원 장관 등 회의 구성원들은 총리의 직할이고, 총리의 승인을 받지 않은 회의는 무효”라고 주장했다. 이 전 총리는 자진사퇴 형식으로 사실상 경질됐다.

이 전 총리는 신한국당에 입당해 정치에 입문했고, 제15대 총선 선대위원장을 거쳐 당 대표로 지명됐다. 하지만 총리 재직 당시부터 시작된 갈등은 이 전 총리의 당대표 취임 이후 더욱 크게 불거졌다. 이 전 총리는 대표직서 사임하지 않은 채 대선에 출마했고, 김윤환 의원 등 민정계는 이 전 총리를 지원했다.

반면 민주계는 여러 후보들이 난립해 단일화에 성공하지 못했다. 이 전 총리가 대선후보로 확정되자, YS는 암묵적으로 이인제 후보를 지원했다. 이 후보는 신한국당을 탈당해 국민신당을 창당한 후 신한국당의 표밭을 잠식했다. 이 전 총리는 제15대·제16대 대선에 출마했다가 연이어 낙선했다.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크게 충돌했고, 이 충돌은 박 전 대통령의 운명을 바꿨다. 박 대통령과 유 전 의원은 2015년 2월 새누리당 원내대표 당선 이전에 이미 결별했던 상황이었다. 유 전 의원은 박근혜정부의 외교 노선과 관련해 “청와대 얼라들이 외교하느냐”는 말을 해 파문을 일으켰던 적이 있다.

당시 친박(친 박근혜)계는 이주영 의원을 원내대표로 밀었지만, 유 전 의원은 경선서 이 의원을 물리쳤다. 유 전 의원은 취임 직후 박 대통령의 핵심 의제 ‘창조 경제’를 비판하면서 “증세 없는 복지는 불가능하다”는 취지의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했다.

폭주 기관차, 결국 헌정사 비극으로 
갈등마다 격노…이번도 같은 길 걷나

유 전 의원은 원내대표직을 불과 5개월밖에 이어가지 못했다. 당시 여야는 정부가 법률을 침해하는 시행령을 국회가 규제할 수 있도록 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합의·통과시켰다. 이 합의는 유 전 의원이 주도했다. 그러자 박 대통령은 “국민이 배신의 정치인을 심판해주셔야 한다”면서 원내대표직 사퇴를 요구했다.

유 전 의원으로서는 공무원연금 개혁 과정서 야당의 여러 요구 조건 중 선택했던 사안이 국회법 개정안이었다. 그로서는 “대통령의 핵심 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거래 조건을 선택한 것이었는데, 이게 왜 배신이냐”는 의문이 들 법했다. 

압박을 이겨내지 못한 그는 결국 원내대표직을 사퇴했다. 유 전 의원은 당 대표가 된 적은 없다. 당시 당 대표였던 김무성 전 의원도 청와대와 각을 세우기는 했지만, 유 전 의원의 대립각이 더욱 강하게 부각됐다. 김 전 의원은 유 전 의원이 물러난 후에야 문재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안심번호 국민경선제에 대한 합의를 하면서, 박 대통령과 크게 각을 세웠다.

제20대 총선 국면에서는 공천 갈등 끝에 ‘옥새 런’ 사건을 일으켜 갈등을 증폭시켰다.

박정희·박근혜 부녀 대통령은 당내 견제 장치를 모두 제거한 후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다가 파국을 맞았다. 공화당과 유신정우회 모두 거수기 역할만 소화하면서, 중앙정보부장과 대통령경호실장이 2인자 자리를 놓고 갈등하던 중 아버지 대통령은 암살당했다.

딸 대통령은 비선 실세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과 핵심 측근인 문고리 3인방(정호성·안봉근·이재만)에 의지해 국정을 운영하다가, 비선 실세의 존재 및 대기업에 대한 금품 갈취가 발각돼 탄핵당하는 비극을 맞이했다. 

탄핵안이 국회서 가결될 당시 새누리당은 원내 2당이었기 때문에 사태를 수습할 역량 자체가 없었다. 대기업에 대한 금품 갈취를 세상에 드러낸 언론은 보수언론 <조선일보>였다. 박 전 대통령과 <조선일보>는 우병우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었다. 대통령이 폭주 기관차가 되면 그 끝은 결국 파국이었다.

윤 대통령은 검사 재직 시절 민주당 및 문재인정부와 갈등을 빚은 끝에 결별했고, 정계 입문 후에도 이준석 전 새누리당 대표는 물론, 현재 한 대표와 갈등을 빚고 있다. 김건희 여사에 대한 논란도 정치 입문부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견제 없앤 
정권의 끝

민주당은 현재 압도적인 원내 제1당이라는 위치를 이용해 호불호와 찬반 여하를 떠나 ▲법 왜곡죄 ▲금융투자소득세 ▲거부권 특별법 등 정책 논제를 던지고 있다. 원외에서는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통일 정책과 관련해 ‘두 국가론’라는 논점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에서는 오로지 김 여사와 ‘윤·한 갈등’만 보인다. ‘웰빙 정당’이라는 놀림도 여전하다. 견제 장치를 날리기 위한 파국의 끝이 어땠는지는 헌정사에 빼곡하게 기록되고 있다. 국민의힘은 과연 현재와 미래를 위해 어떤 선택을 할까?

<ctzx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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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광로 내각’ 눈에 띄는 이재명 사람들

‘용광로 내각’ 눈에 띄는 이재명 사람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11개 부처 장관 후보자와 국무조정실장 인선을 발표했다. 취임 후 첫 개각인 만큼 이 대통령의 국정 철학과 정부의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다. 초대 장관인 데다가 이력도, 배경도 독특한 이들이 합류하면서 주목도는 배로 높아졌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에는 배경훈 LG AI연구원장이, 외교부에는 조현 전 1차관이 후보자로 지명됐다. 이 밖에도 ▲통일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동영 의원 ▲국방부 민주당 안규백 의원 ▲국가보훈부 한나라당 권오을 전 의원 ▲환경부 민주당 김성환 의원 ▲고용노동부(이하 노동부) 김영훈 전 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 위원장 ▲해양수산부 민주당 전재수 의원 ▲여성가족부 민주당 강선우 의원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 한성숙 네이버 대표이사 ▲국무조정실장 윤창렬 LG글로벌 전략개발원장 등이 후보자로 임명됐다. 가리지 않고 사람만 보고 큰 폭의 내각 변화가 일어난 가운데 유독 주목을 받는 인물이 있다. 이력이 독특하거나 발탁 배경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등 청문회 과정 역시 순탄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이슈는 국방부 장관으로 내정된 안규백 후보자다. 안 후보자는 5선 국회의원으로 약 20년 동안 국회 국방위원을 지내며 의정 활동 대부분을 국방 분야에서 보냈다. 내란 사태 당시 ‘윤석열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내란 특위)’ 위원장 등을 맡기도 했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안 후보자는 국회 국방위 간사·위원장 등 5선 국회의원 이력 대부분이 국방위 활동이기에 군에 대한 이해도가 풍부하다”며 “64년 만에 문민 국방 장관으로 계엄에 동원된 군의 변화를 책임지고 이끌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 후보자는 지난해 12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군은 문민통제가 돼야 한다. 비상계엄 당시 문민통제가 공고했다면 대통령이 내란을 지시하더라도 시작 단계부터 군이 반대해 따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안 후보자가 청문회를 통해 최종 임명된다면 64년 만에 민간인 출신 국방부 장관이 탄생한다. 첫 민주노총 출신 장관이 탄생할지에도 이목이 쏠린다. 김영훈 후보자는 현직 철도 기관사로, 1992년 철도청(현 코레일)에 입사해 올해로 34년째 근무 중이다. 장관 후보로 지명되기 전날까지 김 후보자는 경부선 부산-서울 구간에서 새마을호 열차를 운행했다. 국민의힘은 김 후보자가 민주노총 출신인 점을 거론하며 이번 인선이 일종의 ‘청구서’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원석 원내대표는 “내각이 아니라 민주당 선대위 같다”며 “능력이나 전문성보다 논공행상이 우선된 거 아닌가 하는 국민적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진행된 노동 개혁 성과는 후퇴하고,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과 중대재해처벌법 등 주요 현안에 대한 새 정부의 반 기업적 스탠스를 명확히 못 박아두는 인사 아닌지 우려된다. 민주노총의 정치적 청구서가 본격적으로 날아오는 신호탄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고 밝혔다. 김 후보자가 노동부 장관으로 임명된다면 지난 3년간 거부권에 가로 막혔던 노란봉투법을 비롯한, 주 4.5일 근무제 등이 거대 여당을 등에 업은 채 졸속으로 처리될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민간 국방 장관, 기관사 노동 장관 파격 인사에 국민들 관심도 ‘쑥’ ↑ 이를 의식한 듯 김 후보자는 쟁점 법안에 대해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면서도 “명분만으로 밀어붙이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주 4.5일 근무제가 어려운 기업이 있다면 무엇이 어렵게 하는지 정부가 잘 살펴보고 공동의 길을 모색해보겠다”고 설명했다. 교수 출신 인사가 없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번 개각 명단을 보면 대부분 실무형 인사 위주로 곧바로 실전에 투입할 수 있는 실용성 있는 인재를 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기업인이 과기부·중기부 장관 후보자 등으로 내각에 포함된 것 역시 궤를 같이한다. 강 대변인은 “배경훈 과기부 장관 후보자는 AI 학자이자 기업가로서 초거대 AI 상용화로 은탑산업훈장을 받은 인물”이라며 “하정우 AI미래기획수석과 함께 AI 국가경쟁력을 높일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앞서 이 대통령은 네이버 클라우드 AI 랩 소장, AI 미래포럼 공동의장 등을 지낸 하정우 수석을 대통령실 AI 미래기획 수석으로 지목했다. 이재명정부는 “100조를 투자해 AI 강국을 만들겠다”고 선언한 만큼 하 수석과 배 후보자가 손발을 맞춰 글로벌 시장의 주도권을 잡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배 후보자는 서울 종로구 광화문우체국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단 사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과 만나 “이 대통령의 1호 공약인 AI 3대 강국이 되기 위해 3강의 정의부터 해봤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로선) 우리가 3위를 한다고 해도 미·중과 너무 차이가 크다. 1·2위에 근접한 3위가 돼야 하며 사실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며 “AI 3강 목표를 반드시 2∼3년 이내에 달성해야겠다는 사명감이 있고, 소속됐던 기업에서 좋은 사례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기부 장관 후보자로는 한성숙 네이버 고문이 내정됐다. 한 후보자는 지난 2017년 네이버 최초로 여성 최고경영자(CEO)에 선임됐으며 같은 해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제13대 회장을 맡은 인물이다. 역대 중기부 장관을 살펴보면 통상 관료나 정치인이 낙점된 만큼 민간 기업 출신 후보자라는 점에서 신선하다는 평이 나온다. 중소기업계는 한 후보자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일꾼도 실용주의 중소기업중앙회는 논평을 내고 “중소기업계는 이재명정부 초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로 한성숙 후보자가 지명된 것을 환영한다”며 “한 후보자는 네이버 등 IT산업에 오랜 경험을 가진 기업인 출신으로 산업 대전환기에 중소기업·소상공인의 AI·디지털화를 촉진하는 등 디지털 생태계를 구축할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정부와 중소기업이 한 후보자에게 기대를 걸고 있지만 과거 국정감사 이력이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 등 국정감사 ‘단골’로 불릴 만큼 여러 차례 소환됐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2021년 네이버 직장 내 괴롭힘으로 한 직원이 극단적 선택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원들의 질책이 잇따랐다. 민주당 노웅래 의원이 당시 네이버 대표였던 한 후보자에게 “최인혁 (네이버파이낸셜) 대표를 징계했느냐”고 묻자 “네이버에서 본인이 사임을 했다”고 짧게 답했다. 노 의원이 “징계를 했느냐”고 재차 물었지만 한 후보자는 “징계가 있었다”면서도 정확히 어떤 처분이 내려졌는지 답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노동계 등에서는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 밖에도 뉴스 편집 조작과 댓글 여론 조작 방조 의혹 등으로 2017년부터 4년 연속 국감 증인으로 소환됐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박상웅 의원은 한 후보자 지명과 관련해 “거대 포털과의 전략적 야합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한성숙 후보자 지명은 과거 민주당의 규제를 통한 견제가 아니라 포털과의 인사 유착을 통해 정권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시도로 비쳐질 수 있다”며 “플랫폼 권력과 정치 권력의 야합이라는 심각한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는 것이 국민적 시각”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2021년 국감을 언급하며 “직원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극단적 선택까지 했던 괴롭힘의 현장을 방치한 책임자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를 지원해야 할 부처의 수장으로 지명된 것은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이라며 “국민 신뢰를 저버린 매우 전략적이고 노골적인 이번 인사는 즉각 철회돼야 한다”고 거듭 지적했다. 성급했나? 잡힌 발목 실용과 통합을 위한 지명도 이뤄졌지만 여야 모두에게 질책을 받으면서 오히려 자충수라는 비판이 나온다. 윤석열정부 출신인 송미령 농식품부의 장관 유임과 한나라당 권오을 전 의원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송 장관이 유임된 배경에 대해선 “첫 국무회의에서 대부분 사의를 표한 후라 소극적이고 구체적이지 않은 답변이 많았던 반면, 송 장관은 상당히 구체적으로 대통령 질문에 답하고 국정 방향에 대해 미리 준비하고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여러 안을 가지고 왔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일할 수 있는, 준비된 현직 국무위원이라고 판단한 것 아닌가 하는 짐작을 해본다”고 설명했다. 강 대변인은 “이 대통령은 지난 24일 유임을 발표한 뒤 첫 국무회의에서 송 장관에게 ‘사회적 충돌, 혹은 이해관계에 있어서 다른 의견이 있다면 유임된 장관으로서 적극적으로 들어보고 갈등을 조정하는 데 직접 역할을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송 장관이) 그에 대해서 수긍한 것으로 본다”며 “유임 결정까지는 대통령실에서 한 것이지만, 이후에 갈등 조정 기능도 내각에 임명 혹은 내정된 분들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송 장관의 유임을 두고 민주당, 특히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이하 농해수위) 소속 의원을 중심으로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는 분위기다. 지난 3년 동안 양곡관리법 등을 반대하고 이를 ‘농망법’이라고 부르는 사람을 기용하는 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다는 게 주된 이유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 진보당도 목소리를 높였다. 혁신당 박웅두 농어민위원장은 논평을 통해 “이재명정부의 ‘국민통합정부’ 의지를 높이 평가한다”면서도 “남태령 응원봉의 주역이자 이재명 대통령 당선에 뜻을 함께했던 농민들은 송 장관의 유임에 당혹감과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송 장관은 윤석열 농정에 대해 공식적으로 참회와 반성, 사과와 유감의 발언도 없었고 공개적인 평가의 과정과 책임의 경중을 논의한 바가 없는데 누가 송미령을 장관으로 추천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식량주권에 대한 손톱만큼의 애정이 있다면 유임 결정을 즉각 철회하라”고 밝혔다. 농해수위 소속인 진보당 전종덕 의원 역시 “농망 장관”이라며 지명 철회를 촉구하는 1인 시위에 나섰다. 통합용 지명? 여야 모두 아우성 ‘윤의 사람’ 그대로 품은 이유는? 일부 야권에서도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송 장관은 민주당이 추진한 양곡법과 속칭 농민3법을 농업의 미래를 망치는 농망법이라며 대통령 거부권 행사까지 건의했다”며 “그런데 이재명정부의 농림부 장관으로 지명되니 ‘새정부 철학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추진하겠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장관을 오래하려면 송미령 같이’라는 자조가 공직사회 전반에 퍼지지 않겠느냐”며 “금번 인사를 보니 이 대통령이 말하는 실용주의의 정체를 알겠다. 그건 실용의 이름으로 포장된 기회주의이자 국익으로 덧발라진 밥그릇 챙기기”라고 꼬집었다. 논란에 대해 한 민주당 관계자도 “나름 탕평 인사로 가장 탈이 안 날 것 같은 인물을 유임시킨 것 같은데 아마 이 대통령도 뒷말은 예상했을 것”이라며 “내란 종식을 내걸고 정권을 잡은 만큼 모순된 면이 있다. 그날 밤(12월3일) 용산에 모인 국무위원을 내란 동조자, 내란 방관자라고 하더니 ‘일을 잘하니 함께 가겠다’라는 건 국민에게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권 전 의원이 보훈부 장관으로 지목된 것 역시 탕평 인사로 분류된다는 해석이다. 권 후보자는 지난 4월 6·3 조기 대선 당시 이재명 후보 캠프에 합류에 눈길을 끌었다. 친유승민계로 분류되는 권 후보자는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을 거쳐 바른정당에서 최고위원을 지냈다. 보수 인사였던 그는 이재명 캠프에 합류하면서 “대구와 경북의 정치적 발언권을 보장하기 위해 참여하게 됐다”며 “민주당의 중도 보수 지향에 대해 힘을 보탤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훈식 대변인은 권 후보자가 보훈부 장관으로 지명된 것에 대해 “경북 안동에서 3선 의원을 역임했다”면서 “지역과 이념을 넘어 특별한 희생에 특별한 보상이라는 보훈 의미를 살리고 국민통합을 이끌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권 후보자는 보수와의 소통에 힘을 쏟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국민통합을 강조하며 “소통의 장을 자주 마련하면 광화문 태극기 부대와 촛불 부대가 서로 소통이 되고 이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께서 국민통합이라면 소통의 장을 마련해 각자가 논리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해보고 들어봐서 반영하라고 하셨다”며 “그래도 자기 진영 논리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면, 이해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을 자주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유임된 송 장관을 제외한 10개 부처에 대한 개각이 이뤄지면서 국회 역시 각 상임위가 바쁘게 돌아갈 예정이다. 시기상 장관 후보자 청문회는 7월 말에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청문회를 겪은 국민의힘은 남은 장관 후보자들에 대해서도 ‘송곳 검증’을 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격돌의 7월 관전 포인트 다만 한 야권 관계자는 “김민석 후보자의 청문회가 이틀 동안 진행됐지만 총리로서의 자격 검증은 뒷전이고 돈 문제만 물고 늘어졌다”며 “물론 총리 후보자의 부도덕한 면을 부각시킬 수 있겠지만 총리 후보자 청문회인 만큼 더 다양한 각도에서 질문을 해야 했다. 곧 있으면 다른 장관에 대한 청문회도 진행될 텐데 지금처럼 (청문회를) 진행해서는 국민의힘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