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웨이’ 한동훈-이회창 아이러니 오버랩

  • 박형준 기자 ctzxp@ilyosisa.co.kr
  • 등록 2024.10.14 10:20:21
  • 호수 15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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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보면 2024년 보인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은 검사 재직 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연이은 갈등과 결별을 이어가고 있다. 견제 장치를 없애는 것에 골몰했던 역대 대통령들은 모두 폭주 기관차로서 헌정사에 비극으로 남았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의 갈등은 지난 1월부터 드러났다. 두 사람은 검찰 시절 인연에 이어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으로서 호흡을 맞췄다. 비상대책위원장이었던 한 대표는 1월17일, 김경율 회계사를 비상대책위원으로 영입한 후 22대 총선 서울 마포을 출마를 직접 소개했고, 이때부터 두 사람 사이의 파열음이 일어났다. 김 회계사는 20년 넘게 참여연대서 활동한 야권 성향 인물이었다.

검찰 인연서 
정권 악연으로

특히 문제가 됐던 것은 김 회계사의 종편 유튜브 방송 출연 당시 발언이었다.

김 회계사는 JTBC 유튜브 ‘장르만 여의도’서 “디올백에 대해서만큼은 분명한 진상을 이야기하고 대통령이든 영부인이든 입장을 표명하는 게 국민 마음을 추스르는 방법”이라며, 김건희 여사를 프랑스 부르봉 왕조 시절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에 비유했다. 그러면서 “(프랑스 대혁명은) 사치와 난잡한 사생활이 하나하나 드러나면서(국민의) 감성이 폭발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윤 대통령은 “민감한 시기에 사천(私薦)으로 비칠 수 있는 발언을 한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며, “김 여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공천 시스템 훼손 우려 때문”이라는 명분으로 한 위원장을 비판했다.


이관섭 대통령비서실장은 한 위원장에게 “대통령의 뜻”이라면서 한 대표의 비대위원장직 사퇴를 거론했고, 당내 친윤(친 윤석열)계도 사퇴 여론을 조성했다. 이어 한 대표의 비대위원장 취임 직후인 지난해 12월에도, 그가 김건희 여사 특검에 대한 조건부 수용 의사를 드러내자, 비대위원장직 사퇴를 압박한 사실이 밝혀졌다.

총선을 불과 석 달도 채 남기지 않은 시점이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일단 봉합’인 상황을 유지한 채 선거를 치렀고, 김 회계사도 제22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물론 ‘일단 봉합’이었을 뿐 ‘완전 봉합’은 아니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선거 정국 중에도 ▲이종섭 호주 대사 임명 논란 ▲황상무 시민사회수석비서관 거취 ▲국민의미래 비례대표 명단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논란 등 이슈를 놓고 끊임없이 충돌했다.

윤 대통령은 4월1일 의대 정원 증원과 관련된 대국민 담화를 진행했고, 한 위원장은 사퇴 의사까지 밝혀가면서 ‘의대 증원 유연화’를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국민의힘은 지난 22대 총선서 108석만을 건지는 참패를 당했다. 한 위원장은 비대위원장직서 사퇴했지만, 해외직구 규제 논란에 대해 “과도한 규제”라는 비판을 이어나갔다. 이어 ▲전당대회 출마 ▲채상병 특검법 찬성 ▲김 여사 발신 문자 ‘읽씹’ 논란 ▲R&D 예산 삭감 비판 등 흐름이 이어지는 와중에 선거인단 득표와 여론조사 지지율을 합친 62.84%의 지지를 얻어 당 대표로 당선됐다.

한 대표의 취임 이후에도 두 사람은 ▲정책위의장 임명 갈등 ▲김경수 전 경남지사 복권 등 문제서 의견이 충돌하는 상황이 연이어 보도됐다. 이들의 갈등이 언론에 보도될 때마다 제목을 장식했던 표현은 ‘윤 격노’였다.

갈등이 가장 크게 불거진 사안은 지난 9월 불거진 김대남 전 SGI서울보증보험 상임감사의 ‘한동훈 공격 사주 의혹’이었다.

김경율 영입부터 시작된 윤·한 갈등
30년 전 내부 갈등과 유사 형태 전개


유튜브 ‘서울의소리’는 김 전 감사가 대통령실 행정관으로 재직할 당시의 통화 녹취록을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김 전 감사는 전당대회 중이던 지난 7월10일 “‘서울의소리’가 이번에 잘 기획해서 한동훈을 치면, 김 여사가 아주 좋아할 것”이라고 말했고, ‘서울의소리’는 7월12일 한 대표의 당비 횡령 및 유용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자 한 대표는 “보수정당 당원이 소속 정당 정치인을 허위 사실로 음해하기 위해 좌파 유튜버와 협업하고 공격을 사주하는 것은 명백하고 심각한 해당 행위이자 범죄”라며, “당 차원서 필요한 절차들을 통해 진상을 규명하고 그 결과에 따라 엄중히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과 김 전 감사는 일면식도 없고, 해당 발언은 김 전 감사가 청와대서 퇴직한 이후에 한 발언인 데다 일방적이고 과장된 주장”이라며, “김 여사와도 관계가 없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김 전 감사가 2022년 4월 강남구청장 선거에 출마했을 당시 <국제뉴스>와의 인터뷰서 “윤 당선인을 위해 조직 동원 활동을 했고, 당선인이 저를 많이 신뢰하셨던 것 같다”며, “당선인과 2시간 동안 독대라는 귀중한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2022년 3월에는 자신의 SNS에 윤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도 공개했다. 녹취록에 따르면, 김 전 감사는 감사직 취임에 대해서도 “다른 회사는 임기가 2년인데, (서울보증보험 감사의 임기는)3년이라 현 정부가 끝날 때까지 있을 수 있어서 내가 선택했다”고 언급했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인해 진행된 ‘김건희 특검법’에 대한 재의 표결은 지난 4일 진행됐다. 무기명 투표로 진행된 재의 표결서 104표의 반대가 나왔다. 국민의힘 의석수는 총 108석이기 때문에 4명의 이탈표가 발생한 셈이다.

이틀 후에는 한 대표와 친한(친 한동훈)계 의원 20여명이 서울 종로구 한 식당서 비공개 만찬을 가졌다. 이들이 향후 어떤 움직임을 보일지는 아직 확실히 알려진 것은 없다. 

다만 국민의힘의 의석수가 총 108석이라는 사실로 비춰볼 때, 20여명이라는 이들의 ‘세’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국민의힘은 현재 개헌저지선 100석을 살짝 웃도는 선의 의석만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여론조사 꽃’이 7일 발표한 정례여론조사에 따르면,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율은 23.7%로 집계됐다.

반면 국민의힘 지지율은 29%로 대통령 지지율이 정당 지지율보다 낮은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뉴시스>가 여론조사 전문회사 에이스리서치에 의뢰해 진행하고 2일 발표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 대표는 차기 대통령감 선호도 조사에서 19.3%를 기록해 전체 2위에 올랐다. 한 대표 외에 이름이 거론된 국민의힘 인사는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홍준표 대구시장 ▲오세훈 서울시장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이 있지만, 이들은 모두 5%를 넘지 못했다.

국민의힘으로서는 한 대표 외에는 유의미하게 내세울 수 있는 대선주자가 아직은 드러나지 않은 셈이다.

YS와 갈등
박과 갈등


헌정사에서 대통령과 당내 유력인사가 갈등을 빚은 사례는 여럿 있었다. 김종필(JP) 전 국무총리는 제3공화국 시절 제6대 총선서 당선돼 의회 입성 후 민주공화당 내에서 계보를 구성하고 있었다. 당내서 ‘박정희 대통령의 후계자’로 미는 움직임도 있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3선 개헌을 준비하고 있었다. 김 전 총리의 자택은 김형욱 부장이 이끌던 중앙정보부의 감시를 받았고, JP 계열 연구모임 국민복지연구회서 3선 개헌을 반대했다. 구성원들은 중정서 혹독한 심문을 받으면서 ‘JP 대통령 추대 음모’를 추궁당했다. 김 전 총리는 결국 마음을 바꿔 3선 개헌을 지지했다. 

김 전 총리는 ‘최순실 게이트’ 정국이 이어졌던 2016년 11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서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김 전 총리는 박 대통령에게 “제가 나세르입니까? 왜 자꾸 의심하십니까?”라고 항의했다. 그러자 박 대통령은 “내가 좀 의심도 해”라고 말했고, 김 전 총리는 인터뷰 도중 “(박 대통령이)‘했어’라 아니라 ‘해’라고 말했다. (의심을)계속 하고 있다는 말”이라면서 서운했던 기억을 회고했다.

가말 압델 나세르 전 이집트 대통령은 총리로 재직했던 1954년 무함마드 나기브 대통령을 퇴출시키고, 스스로 대통령에 취임했다. 나세르 대통령은 1952년 왕정을 무너트린 자유 장교단의 쿠데타를 주도한 후 나기브 장군을 대통령으로 추대했다. 

박 대통령이 김 전 총리를 견제하기 위해 동원한 사람들은 ‘4인방’이었다. 4인방은 김성곤·김진만·백남억·길재호 민주공화당 의원이다. 이들은 박 대통령의 당내 대리인 격으로 JP계와 다퉜고, 3선 개헌의 선봉장 역할을 했다. 특히 김성곤 의원은 박 대통령의 셋째 형이자 김 전 총리의 장인인 박상희씨와 친분이 돈독했다. 김 의원은 박 대통령과는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냈다. 

당내 영향력이 커진 4인방은 1971년 항명 파동을 일으켰다. 당시 야당이었던 신민당은 “광주대단지 사건과 실미도 사건의 책임을 묻는다”는 취지로 오치성 내무부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발의했다. 국회 의석수 총 204석 중 공화당 소속은 113명이었고, 공화당은 ‘해임건의안 부결’을 당론으로 정했기 때문에, 부결은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4인방은 10월2일 가결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러자 이후락 부장이 이끌던 중정은 이들을 연행해 고문을 가했고, 정계서 추방된다. “김성곤 의원은 콧수염까지 뽑혔다”는 이야기가 있다. 4인방이 정리된 것은 한국 정치에 큰 흔적을 남긴다. 공화당에는 더는 박 대통령의 영향력에 도전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박 대통령은 1972년 10월 유신헌법을 발표하고 제4공화국을 열었다.

문민정부에서는 이회창 당시 국무총리가 김영삼(YS) 대통령에게 도전장을 던졌다. 이 전 총리는 YS의 권유로 감사원장으로 취임하면서 “청와대·기무사 등 어느 기관이든 법 규정에 따라 감사하겠다”는 선언과 함께 권력기관들에 대한 감사를 진행했다.

대권 도전했다
콧수염 뽑혔다

감사원은 먼저 대통령비서실부터 대대적으로 감사했다. 이어 율곡사업에 대한 감사를 진행한 후 비리에 연루된 노태우정부의 국방부 장관 2명과 해·공군 참모총장들을 적발했다. ‘평화의댐’ 비리 의혹을 근거로, 안기부에 대한 감사도 진행했다.

안기부가 감사원 직원들의 진입을 막는 등 감사를 거부하자, 이 전 총리는 “그대로 밀고 들어가라”고 지시했다. 불과 10개월 동안 재직하면서 일어난 사건들이었다. 이 상황은 5공·노태우정부에 대한 사정(司正)이었기 때문에, 문민정부에게도 유리한 흐름이었다. YS는 이 전 총리를 국무총리로 발탁했다.

두 사람의 갈등은 총리 취임 이후 시작됐다. 이 전 총리는 국가안전보장회의서 총리가 제외된 것과 관련해 “통일원 장관 등 회의 구성원들은 총리의 직할이고, 총리의 승인을 받지 않은 회의는 무효”라고 주장했다. 이 전 총리는 자진사퇴 형식으로 사실상 경질됐다.

이 전 총리는 신한국당에 입당해 정치에 입문했고, 제15대 총선 선대위원장을 거쳐 당 대표로 지명됐다. 하지만 총리 재직 당시부터 시작된 갈등은 이 전 총리의 당대표 취임 이후 더욱 크게 불거졌다. 이 전 총리는 대표직서 사임하지 않은 채 대선에 출마했고, 김윤환 의원 등 민정계는 이 전 총리를 지원했다.

반면 민주계는 여러 후보들이 난립해 단일화에 성공하지 못했다. 이 전 총리가 대선후보로 확정되자, YS는 암묵적으로 이인제 후보를 지원했다. 이 후보는 신한국당을 탈당해 국민신당을 창당한 후 신한국당의 표밭을 잠식했다. 이 전 총리는 제15대·제16대 대선에 출마했다가 연이어 낙선했다.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크게 충돌했고, 이 충돌은 박 전 대통령의 운명을 바꿨다. 박 대통령과 유 전 의원은 2015년 2월 새누리당 원내대표 당선 이전에 이미 결별했던 상황이었다. 유 전 의원은 박근혜정부의 외교 노선과 관련해 “청와대 얼라들이 외교하느냐”는 말을 해 파문을 일으켰던 적이 있다.

당시 친박(친 박근혜)계는 이주영 의원을 원내대표로 밀었지만, 유 전 의원은 경선서 이 의원을 물리쳤다. 유 전 의원은 취임 직후 박 대통령의 핵심 의제 ‘창조 경제’를 비판하면서 “증세 없는 복지는 불가능하다”는 취지의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했다.

폭주 기관차, 결국 헌정사 비극으로 
갈등마다 격노…이번도 같은 길 걷나

유 전 의원은 원내대표직을 불과 5개월밖에 이어가지 못했다. 당시 여야는 정부가 법률을 침해하는 시행령을 국회가 규제할 수 있도록 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합의·통과시켰다. 이 합의는 유 전 의원이 주도했다. 그러자 박 대통령은 “국민이 배신의 정치인을 심판해주셔야 한다”면서 원내대표직 사퇴를 요구했다.

유 전 의원으로서는 공무원연금 개혁 과정서 야당의 여러 요구 조건 중 선택했던 사안이 국회법 개정안이었다. 그로서는 “대통령의 핵심 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거래 조건을 선택한 것이었는데, 이게 왜 배신이냐”는 의문이 들 법했다. 

압박을 이겨내지 못한 그는 결국 원내대표직을 사퇴했다. 유 전 의원은 당 대표가 된 적은 없다. 당시 당 대표였던 김무성 전 의원도 청와대와 각을 세우기는 했지만, 유 전 의원의 대립각이 더욱 강하게 부각됐다. 김 전 의원은 유 전 의원이 물러난 후에야 문재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안심번호 국민경선제에 대한 합의를 하면서, 박 대통령과 크게 각을 세웠다.

제20대 총선 국면에서는 공천 갈등 끝에 ‘옥새 런’ 사건을 일으켜 갈등을 증폭시켰다.

박정희·박근혜 부녀 대통령은 당내 견제 장치를 모두 제거한 후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다가 파국을 맞았다. 공화당과 유신정우회 모두 거수기 역할만 소화하면서, 중앙정보부장과 대통령경호실장이 2인자 자리를 놓고 갈등하던 중 아버지 대통령은 암살당했다.

딸 대통령은 비선 실세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과 핵심 측근인 문고리 3인방(정호성·안봉근·이재만)에 의지해 국정을 운영하다가, 비선 실세의 존재 및 대기업에 대한 금품 갈취가 발각돼 탄핵당하는 비극을 맞이했다. 

탄핵안이 국회서 가결될 당시 새누리당은 원내 2당이었기 때문에 사태를 수습할 역량 자체가 없었다. 대기업에 대한 금품 갈취를 세상에 드러낸 언론은 보수언론 <조선일보>였다. 박 전 대통령과 <조선일보>는 우병우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었다. 대통령이 폭주 기관차가 되면 그 끝은 결국 파국이었다.

윤 대통령은 검사 재직 시절 민주당 및 문재인정부와 갈등을 빚은 끝에 결별했고, 정계 입문 후에도 이준석 전 새누리당 대표는 물론, 현재 한 대표와 갈등을 빚고 있다. 김건희 여사에 대한 논란도 정치 입문부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견제 없앤 
정권의 끝

민주당은 현재 압도적인 원내 제1당이라는 위치를 이용해 호불호와 찬반 여하를 떠나 ▲법 왜곡죄 ▲금융투자소득세 ▲거부권 특별법 등 정책 논제를 던지고 있다. 원외에서는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통일 정책과 관련해 ‘두 국가론’라는 논점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에서는 오로지 김 여사와 ‘윤·한 갈등’만 보인다. ‘웰빙 정당’이라는 놀림도 여전하다. 견제 장치를 날리기 위한 파국의 끝이 어땠는지는 헌정사에 빼곡하게 기록되고 있다. 국민의힘은 과연 현재와 미래를 위해 어떤 선택을 할까?

<ctzx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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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힘 축출’ 가시화 한동훈 광야에 서나

‘국힘 축출’ 가시화 한동훈 광야에 서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가족의 당원 게시판 연루 의혹 가능성을 사실로 확정 짓고 있다. 같은 당 장동혁 대표도 한 전 대표 축출 의지를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상황에서 한 전 대표는 점점 광야로 내몰리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지난 2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사실상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축출 의지를 드러냈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를 직접 겨냥한 것은 아니었으나 ‘걸림돌’이라고 호칭했다. “제거돼야 통합 가능” 장 대표는 이날 “당내 통합에 걸림돌이 있다면 제거돼야 대표가 통합을 이루는 공간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표는 개인적 감정에 따라 움직이거나 결정하는 자리가 아니”라며 “당원과의 관계를 해결해야 할 당사자인 어떤 걸림돌은 그걸 해결하지 않고는 연대·통합을 함부로 얘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최근 국민의힘의 주요 화제 중 하나는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됐다”는 당원 게시판 의혹이다. “한 전 대표 가족들의 명의를 이용한 아이디로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 비난 글을 다수 작성했다”는 것이 핵심이다.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30일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당무감사위는 이날 “비난 글을 작성한 문제 계정들은 한 전 대표 가족 5인의 명의와 같고, 전체 87.6%는 2개의 IP로 작성된 여론조작 정황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언론 보도 후 연루자들의 탈당·대규모 게시글 삭제가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 이호선 당무감사위원장도 별도의 자료를 발표했다. 그는 “해당 IP를 사용한 계정 10개 중 4개는 같은 휴대전화 뒷번호·같은 선거구(서울 강남병)을 공유한다”며 “동명이인이 이 모든 조건을 우연히 공유할 확률은 사실상 0%고, 탈당 시점도 4일 이내로 집중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문제는 당 대표 본인·가족 명의 계정을 이용해 다수 당원이 지지하는 것처럼 위장한 것”이라며, “당심을 왜곡한 후 언론을 통해 확대 재생산해서 일반 여론까지 움직이려 했다면 드루킹 사건보다 더 심각한 범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당원 게시판 의혹을 드루킹 사건과 비교했던 사람은 장예찬 여의도연구원 부원장이다. 장 부원장은 지난달 15일 임명된 후 장 대표의 측근으로 분류되고 있다. 그는 지난 2024년 11월 이 사건을 일컬어 ‘온가족 드루킹’ 혹은 ‘한가족 드루킹’ 등 표현을 사용하면서 한 전 대표를 비난했다. 장에 한은 당내 통합 걸림돌 취급 “게시글, 드루킹 사건보다 더 심각” 한 전 대표와 가족을 강하게 비판한 장 부원장이 사용하는 표현을 위원장 발표 자료에 담은 것을 봐선, 이날 당무감사위의 발표는 “국민의힘에서 한 전 대표를 확실하게 내보내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당무감사위에 따르면, 한 전 대표에게 소명을 요구하는 질의서를 보냈지만,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한 전 대표는 방송 출연으로써 하루 격차를 두고 상반된 의견을 냈다. 그는 지난달 30일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에 출연해 “당시엔 저와 제 가족에 대한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 게시물이 당원 게시판을 뒤덮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제 가족이 익명 보장된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윤 전 대통령 부부에 대한 비판적 사설·칼럼을 올렸단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고 말했다. 한 전 대표는 이날 “가족이 게시물을 올렸다”고 처음 인정하면서도 “저는 글을 쓴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가족 명의로 게시물을 올리는 게 비난받을 일이라면 가족이 아닌 저를 비난하라고 말하고 싶다”면서도 “제가 제 이름으로 글을 쓴 게 있는 것처럼 발표한 것은 명백한 허위 사실”이라고 반박했다. 한 전 대표는 다음 날 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위원장이 ‘동명이인 한동훈’ 게시물을 제 가족 게시물인 것처럼 조작해서 발표했다”면서 이 위원장에 대한 법적 조치를 예고했다. 이어 “게시물 작성 시기는 제가 정치를 시작하기 전·최근 등 무관한 것을 대표 사례라고 조작해 발표했는데, 저는 당원 게시판에 아예 가입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이런 가운데 장 대표는 지난 7일 국민의힘 당사에서 진행된 ‘이기는 변화’ 기자회견에서 윤 전 대통령이 자행한 12·3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대국민 사과를 했다. 장 대표는 이날 “12·3 비상계엄은 상황에 맞지 않는 잘못된 수단으로써, 국민께 큰 혼란·불편을 끼쳤고, 당원께 큰 상처가 됐다”며 “국정 운영의 한 축이었던 여당이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한 책임이 크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어 “그 책임을 무겁게 통감하고,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 국민의힘이 부족했으니, 잘못·책임은 국민의힘 안에서 찾겠다”면서 “국민의힘은 오직 국민 눈높이에서 새롭게 시작하겠으니, 과거의 일은 사법부의 공정한 판단·역사의 평가에 맡겨놓고, 계엄과 탄핵의 강을 건너 미래로 나아가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당명 개정 추진 의사도 밝혔다. 장 대표의 이날 기자회견을 놓고, 일각에선 “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어 윤 전 대통령을 강하게 지지하는 강경 보수 유튜버 고성국씨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 ‘고성국 TV’에 출연한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에게 입당 원서를 직접 전달하는 형식으로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이에 대해선 “장 대표가 국민의힘 안에 강경 보수 세력을 끌어들여 세력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있다. 이어 “고씨를 입당시킨 것과 장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대국민 사과는 모순 아니냐”고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고씨는 평소 한 전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는 의견을 공개적으로 밝혀왔다. 이날 김 최고위원도 고씨의 입당 원서 작성을 지켜보면서 “혹시 당원 게시판에 글 올리시면 들통난다”는 등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거를 타선 없는 국힘? 정의당 박원석 전 의원은 지난 6일 MBC 라디오 <권순표의 뉴스 하이킥>에 출연해 “국민의힘이 한 전 대표 세력을 축출하고, 완전히 윤 어게인 세력의 당으로 만들어 훨씬 더 극우화된 정당으로 가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미 고씨와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입당했고, 윤 전 대통령 변호인 김계리 변호사도 곧 입당 심사를 통과할 것으로 보인다”며 “국민의힘은 거를 타선이 없는 정당이 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이 한 전 대표를 내보낼 것”이라는 예측은 “한 전 대표에겐 뚜렷한 정치적 기반이 없는 것 아니냐”는 평가로부터 비롯된다. 한 전 대표의 핵심 기반은 팬클럽 ‘위드후니’다. 위드후니는 40대 이상 여성 중심으로 구성돼있고, 활동하는 노년 여성도 다수다. 하지만 선거는 결국 지역 기반으로부터 비롯된다. 한 전 대표의 가장 큰 정치적 약점으로는 지역 기반이 없다는 것이 주로 거론된다. 한 전 대표의 정치 기반에 대해선 ‘중도층·수도권 화이트칼라 계층에서 일정한 지지를 얻고 있다’는 분석이 많았다. 여론조사기관 미디어토마토가 지난 4일 <뉴스토마토> 의뢰로 지난 1일부터 이틀 동안 만 18세 이상 중도 성향을 지닌 전국 18세 이상 남녀 51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중 15%는 보수 진영을 이끌면 가장 두려운 상대로 한 전 대표를 지목했다. 하지만 “한 전 대표가 중도층을 국민의힘으로 유도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그 객관적 지표는 지난 2024년 총선이다. 당시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총괄 선거대책위원장으로서 총선을 지휘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108석만 겨우 건지는 참패를 당했다. 한 전 대표는 당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과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를 묶어 ‘이조심판론’을 주장하면서 “야당이 2/3 의석을 차지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일각에선 “선거에서 이기려면 중·수·청(중도·수도권·청년)을 잡아야 하는데, 왜 안 하느냐”며 비판했다. 당시 국민의힘은 서울 전체 48석 중 11석을 차지했고, 인천·경기 60석 중 6석만을 차지했다. 국민의힘 지도부가 “한 전 대표가 수도권·중도층에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나올 수 없는 총선 결과”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중도층 영향력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일각에서 주장했던 ‘장·한·석(장동혁·한동훈·이준석)’ 연대 성립 가능성을 부정했다. 그 이유도 한 전 대표였다. 장 대표는 “개혁신당과의 연대에 대한 표현에 특별히 문제 삼지 않겠다”면서도 “당내 인사와 어떻게 정치를 풀어가느냐는 문제에 왜 연대란 이름을 붙이는 건지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당내 인사’도 한 전 대표를 뜻한다. 따라서 장 대표의 지난 2일 발언한 “당내 통합 걸림돌을 제거해야 대표가 통합을 이루는 공간이 생길 것”에서 ‘걸림돌’이 한 대표라면, ‘통합’ 범위엔 개혁신당과의 연대가 포함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은 지난달부터 통일교 특검법을 함께 추진하고 있다. 장 대표도 “자강을 논하는 단계에서 연대를 논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면서도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진 않는다. 개혁신당은 이준석 대표가 국민의힘 소속이었을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친윤(친 윤석열)계와의 갈등 때문에 당원권 정지 6개월 징계를 받은 후 탈당해 창당됐다. 개혁신당 지지자들은 당시 과정에서 쌓인 앙금을 잊지 않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이후 자멸했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럽다. 일각에선 장 대표가 한 전 대표를 축출한 후 강경 보수 세력을 당내 세력화해 ‘자강’을 이룬 후 개혁신당과의 연대에 나설 가능성을 제기한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6월 대선에서 ▲서울 41.55% ▲경기 37.95% ▲인천 38.44% 등을 득표했다. 약 12% 이상의 부족분을 중도층으로부터 얻어와야 한단 사실을 모를 가능성은 낮다. 당시 이 대표는 ▲서울 9.67% ▲경기 8.84% ▲인천 8.74% 등 득표했다. 개혁신당 지지자들은 개혁보수·중도 제3지대에 두텁게 포진해 있다. 국민의힘으로선 개혁신당이 확보한 8~9%의 지지가 필요하다. 중도층의 지지를 얻는 게 확실한지 아직 선거에서 검증되지 않은 한 전 대표와 달리 이 대표는 대통령선거에서 거둔 실적이 뚜렷하다. 장 대표는 “국민의힘 최대 아킬레스건인 중도·수도권 공략을 개혁신당과 이 대표의 힘을 빌려 해결하겠다”고 생각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 수도권 영향력 의문…이준석으로 대체? 지방선거 앞두고 신당 창당 가능할지 의문 국민의힘이 한 전 대표를 중징계하거나 한 전 대표가 탈당하면, 한 전 대표의 운신 폭은 매우 좁아질 수도 있다. 정치의 중심은 국회라서 총선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둬야 정치적 영향력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오는 6월 지방선거는 말 그대로 ‘지방선거’다. 함께 진행되는 재보궐선거는 현시점에선 ▲인천 계양을 ▲충남 아산을 ▲경기 평택을 ▲전북 군산·김제·부안갑 등 4곳이 확정됐다. 지방선거 출마를 선언한 의원들의 지역구도 가능성이 있지만, 후보로 확정된 의원만 사퇴해 재보선을 치른다. 그 외 의원의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이 진행 중이라서 재보선을 치를 가능성이 있는 지역구로는 3곳이 거론된다. 이 정도 규모의 선거에서의 선전을 바라보고 창당하는 것은 모험에 가까우며, 동력이 얼마나 될지 확인하기도 어렵다.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계 의원들이 모두 한 전 대표의 정치 행보에 무조건 동참할 것으로 기대하기도 쉽지 않다. 지역 구도가 특히 큰 힘을 발휘하는 한국 선거에서 각각 호남·영남을 지역 기반으로 둔 민주당·국민의힘과 달리 한 전 대표는 독자적인 지역 기반을 갖추고 있지도 않다. 그와 비슷한 이 대표도 젊은 유권자들이 다수 거주하는 데다 민주당·국민의힘에서도 모두 후보를 공천한 경기 화성을에서 3자 구도를 만들어 승리했다. 특히 지방선거·재보선은 대선·총선에 비해 투표율이 낮은 만큼 보수성이 강하며 그만큼 바람을 일으키기도 어렵다. 한 전 대표는 광야에 설 가능성이 크지만, 신당 창당은 동사·벼랑 끝에 서는 것과 비슷할 수 있다. 한 전 대표의 절정은 12·3 비상계엄 사태였다. 당시 한 전 대표는 계파 소속 의원들과 함께 국회에 진입해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다. 이어 윤 전 대통령이 숙청을 시도하던 반대파 중 1명이 됐다. 하지만 한 전 대표의 절정은 여기서 끝이었다. “한 전 대표가 가족 관리에 실패했다”는 취지의 당원 게시판 의혹은 12·3 비상계엄 사태 이전 한 전 대표를 서서히 옥죄고 있었다.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발생 이후 한 전 대표는 비상할 수 있었다. 그는 한덕수 당시 국무총리와 ‘총리·여당 당정 협력 담화’ 형식의 일명 ‘한덕수·한동훈 체제’ 성립을 시도했다. 한덕수·한동훈 체제는 각계각층의 강한 비난 때문에 실제로 성립되진 못했다. 이후 한 전 대표는 친한계 일원이란 평가를 받는 진종오 의원을 포함한 최고위원 4명이 전원 사퇴해 지도부가 붕괴하는 상황을 겪었다. 한때 핵심 측근이었던 장 대표는 국민의힘 대표로서 한 전 대표 퇴출을 주도하고 있다. 따라서 현 상황으로 이어진 한 전 대표 최대의 패착은 2024년 12월11일 장 의원이 입을 굳게 다물고 당 대표실을 나갈 때, 문을 잡고 미소 지었던 순간이다. 폭발까지 도화선은? 폭발이 일어날 때 트리거는 하나다. 하지만 폭탄까지 가는 도화선은 여러개일 수도 있다. 트리거가 터져 폭발이 일어나면, 폭발까지 가는 도화선도 모두 다 터진다. 장 대표는 총선이 아닌 지방선거·재보선을 앞두고 그 트리거를 만지고 있다. 트리거가 당겨지면 한 전 대표는 광야에 선다. 한 전 대표는 과연 광야에 서게 될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