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사형수 대부’ 삼중 스님

재소자에 평생을 바치다

[일요시사 취재1팀] 최윤성 기자 = 재소자 포교와 사회 적응을 지원해 온 삼중 스님이 지난 20일 세수 82세 법랍 66년으로 원적에 들었다. 60여년간 재소자와 함께하며 사형제 폐지를 주장한 삼중 스님은 무기수, 사형수 등의 교화 활동에 힘썼다. 사형 집행 현장을 마지막까지 지키며 ‘사형수의 대부’로도 불렸던 삼중 스님은 재소자 포교에 진력했다.

60년 가까이 사형수들의 교화에 힘써 온 ‘사형수의 대부’ 삼중 스님이 지난 20일 오후, 경주의 한 병원서 만성신부전증으로 투병하다 입적했다. 세수 82세, 법랍 66년. 삼중 스님은 심부전증으로 인해 이틀에 한번 혈액투석을 하면서도 재소자들을 위한 전법·교화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투병 생활
교화 활동

지난 1942년 서울 서대문형무소 뒤편 단칸방서 태어난 그는 6·25 전쟁이 일어나자, 홀어머니 밑에서 피란 생활을 했다.

이후 1958년 경남 합천 해인사를 찾아 주지 청담 스님에게 “왜 중이 되려 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세상서 가장 착한 사람이 되고 싶고, 죽음이 없는 영원한 인생을 찾고 싶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여기서 경산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고 화엄사, 용연사, 자비사 주지 등을 역임했다.

스님은 특히 소외된 이들의 생활 현장서 함께하는 동사섭 수행을 실천했으며 무기수, 사형수 등의 교화 활동에 힘썼다. 생전 인연을 맺은 사형수만 수백명에 이른다. 

삼중 스님은 지난 1967년부터 대구교도소를 시작으로 재소자 교화 활동을 펼쳤다. 당시 교도소는 목사와 신부들이 선교해 왔으나 스님은 전무했던 시절이었다. 대구교도소서 법사를 찾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스님은 곧바로 달려가 법사 직을 수락하고 교화 활동을 진행했다. 

재소자들과의 만남이 이어지면서 점점 진지해지는 표정을 보고 ‘이제 이들을 도와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그렇게 스님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사형수로 이어졌다. 거물 간첩을 시작으로 사형수들에게 법문을 전하는 일을 했고, 모두 500여명의 사형수와 만났다. 

세속에서는 죄를 지어 사형이라는 중형을 받았지만, 스님의 눈에는 모두 부처로 보였다. 그는 사형수를 상대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고 사형 집행 현장을 지켜보기도 해 ‘사형수의 대부’라는 별명을 얻었다. 

삼중 스님은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며 형벌 체계의 불평등을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 2022년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서 “사형이라는 제도 자체를 없애도록 국회서 법을 고쳐야 한다”면서 대신 종신형을 법정 최고형으로 하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삼중 스님은 한국이 25년간 사형을 집행하지 않았지만 “법무부 장관이 명령하면 집행이 재개될 수 있다”며 “제도적으로 사형을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형수들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경우가 많고 이들이 능력 있는 변호사를 선임하기 힘들기 때문에 방어권을 충분히 행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힘 있는 사람들은 대단한 변호사를 선임하니 그런 허망한 일을 안 당한다”고 지적했다. 

투석 중에도 교화 활동
맺어진 인연만 수백명

사형 집행 현장을 여러 번 지켜본 삼중 스님은 “범죄를 저지르고도 돈이나 권력으로 잘 마무리해서 교도소에 가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힘이 없어서 작은 실수를 하고도 엄청난 형벌을 받는 사람이 지금도 있다”며 한국 사회의 형벌 체계가 강자에게 관대하고 약자에게 가혹하다는 인식을 강조했다. 

서진 룸살롱 살인 사건의 주범 중 한 명인 서울목포파 고금석이 삼중 스님을 만나 참회한 대표적 사형수였다.

고금석은 한순간의 잘못된 선택을 참회하며 수감 생활을 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사형 집행 전까지의 짧은 생을 나눔에 썼다. 넉넉하지 못한 형편의 아이들을 위해 영치금을 써달라고 보내주는가 하면, 형 집행 후에는 신체 일부를 기증하기도 했다. 

서진 룸사롱 살인 사건은 지난 1986년 서울 강남 조직폭력배 간 다툼으로 8명이 잔인하게 살해되거나 중상을 입은 사건이다. 고금석은 유도 대학 출신으로 친한 선배들을 쫓아다니다 엉겁결에 싸움에 휘말려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험상궂은 외모나 잔인한 범행 수법과 달리 감옥에서는 3년간 매일 삼천배와 참선 등을 하며 교도소 내에서는 ‘선사’ ‘스님’ 등으로 불렸다. 또 자신의 영치금을 털어 산골 어린이를 돕는 선행도 베풀었다. 이런 고금석을 삼중 스님은 무척 아끼고 사랑했다. 

삼중 스님의 손에는 지금도 그가 만들어준 염주가 끼워져 있다. 지금은 오랜 시간이 지나 글씨가 닳아서 잘 안 보이지만 염주에는 고금석이 평소 좋아하던 경구들이 새겨져 있다고 말한다. 

삼중 스님은 고금석이 사형수로서는 기록에 남을 만한 삶을 살았다고 했다. 독실한 불자로 어려운 재소자를 도와가며 자신의 죄를 참회했다는 것이다.

삼중 스님은 “지금까지도 여생을 이렇게 보낸 사형수는 본 적이 없다”며 “자신의 죄를 받아들였고, 사소해도 타인을 위한 일이라면 스스로 나서고 나누고 싶어 했다”고 회고했다. 

삼중 스님은 한국인 차별에 항거해 야쿠자를 사살하고 일본 교도소서 무기수로 복역 중이던 재일동포 김희로의 석방 운동을 펼쳐, 석방과 귀국에 기여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1980년대부터 일본 교도소서 교화 활동을 시작했다. 이 과정서 한국인 차별에 격분해 일본인 야쿠자를 살해한 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수감 중인 재일교포 김희로를 만나 사정을 듣고 그의 구명운동을 펼쳤다. 

사형제 폐지
재소자 구제

삼중 스님의 10년간의 구명운동으로 김희로는 지난 1999년 석방돼 국내로 돌아왔다. 또 일본서 교화 활동을 하는 스님들과 교류하며 200여차례 일본을 오가며 한일 관계의 가교 역할을 해오기도 했다. 

김희로 사건은 지난 1968년 2월 일본 시즈오카현 시미즈시의 클럽 밍크스서 터졌다. 야쿠자는 빌려 쓴 돈을 갚으라며 협박한 뒤 김희로에게 “조센징, 더러운 돼지새끼”라며 욕설을 퍼부었다.

어린 시절부터 일본서 살아오면서 온갖 차별과 모멸을 받아온 그는 이 한마디에 큰 분노를 느꼈다. 김희로는 갖고 있던 엽총으로 시즈오카현 야쿠자 두목과 그 부하를 사살했다. 

살해 후 그는 현장서 45km 떨어진 시즈오카현 스마타쿄의 후지노미 온천여관으로 달아나 여관 주인과 투숙객 13명을 인질로 잡고 장장 88시간의 인질극을 벌였다. 김희로는 이를 재일교포의 차별 문제를 부각하는 기회로 최대한 활용 했다. 당시 사건은 일본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안겼다. 

그의 인질극과 주장이 TV와 신문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됐으며 쉬쉬하던 재일교포의 인권과 차별 문제가 수면 위로 본격적으로 떠오르는 계기가 됐다.

그의 투쟁은 사건 나흘째에 기자로 위장한 수사관에 의해 전격 체포되면서 막을 내렸다. 체포 당시 김희로는 혀를 깨물어 자결을 시도했지만, 실패해 구마모토 형무소서 24년을 복역했다. 

삼중 스님이 교화를 위해 일본을 드나들던 중 그의 절절한 사연을 듣고 발벗고 석방 운동에 나섰다. 198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김희로의 석방 운동을 시작했다. 

1990년 10만명 서명을 시작으로 김희로의 가석방을 위한 서명운동 결과를 모아 세 차례 일본 규슈 갱생보호위원회와 일본 법무성에 보냈다. 수만명의 서명이 담긴 석방 청원서는 효력이 있었다. 

김희로의 석방을 구체화한 것은 1998년부터였다. 삼중 스님은 일본 법무성이 요구하는 신원인수보증서를 구마모토 형무소에 제출한 데 이어 김희로로부터 고국행 의사를 구두로 받아냈다. 이 같은 김희로의 귀국 의사는 이후 석방 절차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이후 김희로는 1999년 6월7일과 7월16일 두 차례에 걸쳐 일본 정부에 출옥 후 한국으로 가되 일본을 비방하지 않으며 오로지 삼중 스님의 뜻에 따르겠다는 내용의 서약서를 제출했고, 이를 검토한 일본 정부가 석방을 최종 결정함으로써 그의 ‘31년 전쟁’이 일단락됐다. 

삼중 스님은 1980년대 초 대구 시립희망원서 장애인과 부랑자들을 돌보던 최소피아 수녀에게도 부처님오신날 거리서 모금한 성금 40만원을 전달하는 등 종교의 벽을 넘는 자비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서로 다른 종교에 몸담았지만 끊어질 듯 말 듯했던 두 사람의 인연은 40년 가까이 이어졌다. 

삼중 스님이 최소피아 수녀와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1980년대 초다. 그는 시립희망원서 일하는 최소피아 수녀의 이야기를 접하고서 그해 부처님오신날 거리서 모금한 성금 40만원을 전달했다.

불심으로 모은 돈을 왜 다른 종교에 보내느냐는 말도 나왔지만 좋은 일에 보태는 것을 가리지 말자는 삼중 스님 의견에 뒷말은 없었다. 

그렇게 둘의 인연은 시작됐다. 스님은 최소피아 수녀를 만나러 희망원을 종종 찾았는데 누군가 피부를 잡아 뜯어놓은 듯 그의 얼굴이 온통 피투성이인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억울한 사연
도움의 손길

당시 희망원 시설에는 지체·정신 장애를 함께 지닌 중복 장애인들이 많았다. 주사 하나 놓기 쉽지 않은 상황서 얼굴이 긁히고 잡히는 일이 많아지며 상처가 생겼다가 없어지기를 반복했던 것이다.

삼중 스님은 “얼굴에 그렇게 상처를 입고서도 또다시 주사를 놓으러 방으로 향하는 수녀님을 보니 내가 정말 정신적으로 깊이 반했다”고 떠올렸다. 

삼중 스님은 교도소 재소자 교화 일을 하며 언론을 통해 얼굴이 많이 알려졌지만 최소피아 수녀는 희망원 봉사를 하는 동안에도 외부에 잘 드러나지 않았다. 언론 노출을 극도로 꺼렸기 때문이다. 

한번은 삼중 스님이 언론사 기자를 불교청년회 회원으로 속이고 최소피아 수녀를 취재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가 기사가 크게 퍼지는 바람에 둘 사이가 급격히 틀어져 버렸다. 선의로 도와주려 했던 일이 큰 오해를 받게 된 것이다.

최소피아 수녀는 자신이 한 일은 하나님에게 보고하는 것이지, 세상에 떠들썩하게 알리는 것은 아니라며 스님을 나무랐다고 한다.

당시 삼중 스님은 “수녀님이 화를 많이 냈다”며 “최소피아 수녀도 이런 일이 있고 나서 10년가량 나와 거리를 뒀다”고 말했다. 

연락해도 외면하는 일이 많았다. 그러다 삼중 스님이 시설 설립에 어려움을 겪던 최소피아 수녀에 적십자사를 통해 도움을 받도록 연결해 주면서 마음을 되돌릴 수 있었다고 한다. 

삼중 스님은 안중근 의사 유해 찾기 운동과 유묵을 찾는 데도 헌신했다. 아쉽게도 수십차례 중국을 방문했으나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찾지는 못했다.

하지만 일본서 안중근 의사의 유묵 ‘경천’을 찾아내 이를 천주교 서울대교구에 전했으며, 현재는 이탈리아 로마 교황청 바티칸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어려운 사람 그냥 못 지나쳐”
서진 룸살롱 고금석 참회 도움

삼중 스님은 살아생전 두 개의 염주를 지니고 있었다. 하나는 구명운동으로 풀려난 최씨가 과거 사형수 시절 ‘반드시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염원을 담은 염주고, 다른 하나는 앞서 언급한 고금석이 생전에 금강경 법문을 새긴 것이다. 두 사형수의 삶과 죽음이 스며 있다. 

삼중 스님과 최씨의 인연은 3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최씨는 3인조 은행 강도살인 사건의 주범으로 몰려 서울구치소에 복역 중이었다. 이미 대법원서 사형이 확정된 상황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사형수 법문을 해온 삼중 스님은 그를 만났다. 최씨의 손에는 굵은 알의 염주가 들려 있었는데,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바람이 새겨져 있었다.

삼중 스님은 사형수가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한다는 게 의아해 물어봤다고 한다. 최씨가 의연한 어조로 “스님, 저는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고 답하자 진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모르게 두 명의 공범을 면회했다. 무기수였던 한 명의 공범은 이미 숨진 뒤였다. 나머지 한 명은 강도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했다. 

이 공범은 본인의 처지보다는 오히려 가족이 있는 최씨를 걱정했다고 한다. 이후 삼중 스님은 최씨를 믿고 구명운동을 시작했다. 변호사회 등의 도움으로 사건이 조작됐다는 의구심이 커졌다. 범행 현장은 숨진 피해자가 흘린 피투성이였지만, 최씨 의류에서는 혈흔은 발견되지 않았다.

옷을 태우거나 버린 정황도 찾지 못했다. 

사건 당일 최씨는 얼굴 상처로 붕대를 감고 있었지만, 범행 현장 답사를 온 것으로 의심되는 또 다른 3인조 중 붕대를 감은 이를 봤다는 직원은 없었다. 숨진 피해자의 상처도 설명하지 못했다. 

결국 최씨는 경찰의 고문에 허위 자백을 했음이 드러났다. 각계의 노력으로 최씨는 사형수서 무기수로 감형됐고, 결국 19년 만에 특사로 풀려나기에 이른다.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최씨는 복역생활에도 서예 등을 익혀 교정작품전에 출전, 입상하기도 했다. 최씨는 석방 후 자신을 고문한 형사를 찾아가 용서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삼중 스님을 40년 가까이 스승으로 모시고 근래에는 주 3회 투석 치료 때 병원에 동행하기도 한 재가자는 “어려운 사람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스님이셨다”며 “억울한 사형수도 여러 명 살리셨다”고 삼중 스님의 활동을 회고했다. 그러면서 “너무 존경했고 이런 분을 만난 것이 나에게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가르침 전파
약자 대변인

삼중 스님은 <길> <가난이 죄는 아닐진대 나에게 죄가 되어 죽습니다> <사형수 어머니들의 통곡> <그대 텅빈 마음 무엇을 채우랴> <사형수들이 보내온 편지> <사형수의 눈물을 따라 어머니의 사랑을 따라> 등 여러 책을 남기며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세상에 전했다. 약자를 보살피는 여러 활동 등으로 대한불교조계종 종정표창, 대한적십자사 박애상 금상, 대통령 표창, 국민훈장 목련장 등을 수상했다. 

<yuncastl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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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더 깊은 늪에 빠진 국민의힘

‘점점’ 더 깊은 늪에 빠진 국민의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지방선거 공천에선 인물난 속에서도 조직표를 놓지 못하는 흔적들이 감지된다. 서울시장 경선 참여자들은 장동혁 대표의 지원 유세에 난감해하고 있다. 조직표에 기반한 정당이 집권하지 못했던 과거 사례들은 국민의힘을 더 깊은 늪으로 몰고 있다. 리얼미터·한국갤럽이 지난달 각각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지지율은 높지만,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리얼미터가 발표한 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62.2%로 확인됐다. 이 조사는 지난달 23일부터 27일까지 5일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2513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가면 갈수록 지지율 격차 민주당 지지율은 51.1%로 집계됐고, 국민의힘 지지율은 30.6%로 집계됐다. 이 조사는 지난달 26일부터 27일까지 이틀 동안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두 조사 모두 무선 자동응답 방식을 활용해 무작위 생성 표집틀을 통한 임의 전화걸기 방법으로 실시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한국갤럽도 비슷한 기간 동안 유사한 조사를 진행했다. 한국갤럽이 발표한 이 대통령 지지율은 65%였다. 정당 지지율은 민주당 46%로 집계됐고, 국민의힘은 19%로 집계됐다. 이 조사는 지난달 24일부터 26일까지 3일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두 조사 모두 무작위로 추출된 무선전화 가상번호에 전화 조사원이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 조사 결과들을 놓고 “민주당과 국민의힘 간 지지율 격차가 상당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는 지방선거에서 언제나 중요한 승부처로 거론되는 서울시장·경기도지사 선거와 관련해 국민의힘이 인물난을 겪고 있는 현 상황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국민의힘에선 양향자 최고위원·새누리당 함진규 전 의원 등 2명이 경기도지사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민주당에서 김동연 경기도지사·추미애 의원·한준호 의원이 치열한 경쟁을 하는 것과 대비된다. 이 때문에 국민의힘에선 유승민 전 의원에게 지속해서 출마를 권유했다. 국민의힘으로선 “중도 성향 유권자에게도 설득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 유 전 의원이 경기도지사 후보로 적임이란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유 전 의원은 “국민의힘 의원들이 지난달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한 이후에도 당의 강경 노선에 큰 변화가 없다”는 인식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달 27일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만났던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출마 권유에도 “불출마한다는 생각엔 변화가 없다”면서 끝내 거절했다. 그러자 양 최고위원은 같은날 KBS 라디오 <세상의 모든 정보 윤인구입니다>에 출연해 “정당·국가 운영과 공천은 원칙·절차적 정당성 확보가 중요하다”며 “어떤 분이 제게 ‘절대로 떠밀려서 나오는 선거는 하면 안 된다’고 말했는데, 확실한 소명 의식을 가진 사람이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공천이 마무리되는 대로 당이 필요로 하는 가장 어려운 곳에서 제 역할을 다할 준비를 하겠다”며 “아무도 가지 않으려는 곳에서 또 다른 역할을 할 것”이라고 썼다. 이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 출마 암시로 해석됐고, “유 전 의원에게도 출마를 간접 압박하는 것”이란 해석도 나왔다. 겹치는 악재에 강경 보수 조직표 의존? 장동혁 지원 유세? 각지 후보들 ‘난색’ 하지만 유 전 의원은 불출마 의사를 바꾸지 않았다. 이 전 위원장은 지난달 31일 “유 전 의원의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며 “현재 신청하신 훌륭한 두 분을 포함해 여러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지방선거 공천이 사실상 완료됐다”며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 출마를 선언한 후 사퇴했다. 부산에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과 부산시장 후보 경선을 치러야 하는 박형준 부산시장이 손영광 울산대 교수를 공동선대본부장으로 임명했다. 손 교수는 윤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를 주도한 손현보 목사의 아들이다. 이는 박 시장이 직접 지난달 24일 CBS 라디오 <박성태의 뉴스쇼>에 출연해 “손 교수는 역량이 뛰어난 사람이고, 누구의 아들이라고 매도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해명해야 할 정도로 큰 논란이 됐다. 박 시장은 국민의힘 내에서 합리적 보수 이미지가 강한 인물로 평가된다. 손 교수 영입에 대해선 “경선을 앞두고, 부산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대형 교회 조직표를 의식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서 공천 배제된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해서도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 전 위원장은 지난달 29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진행된 2026 KBO리그 개막전을 방문해 ‘대구시장 예비후보 이진숙’이란 어깨띠를 두르고 시민들에게 인사했다. 이에 대해선 “이 전 위원장이 대구시장 선거에 무소속 출마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반대로 “국민의힘이 이 전 위원장의 공천 자체를 배제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분석도 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지난달 24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전 위원장은 정권의 무도함에 맞선 최전선 투사”라며 “대구시장 후보에 현역 의원이 공천되면, 그 지역구 재보궐선거에 이 전 위원장을 공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전 위원장을 경기도지사 후보로 공천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국민의힘 조광한 최고위원은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 “이 전 위원장이 경기도지사 후보로도 추천되고 있다”며 “이 전 의원장의 결심 여하에 따라 선택지가 굉장히 다양하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 전 위원장은 경기도지사 공천 가능성은 강하게 부정하고 있다. 이 전 위원장은 지난달 25일 <조선일보>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경기도지사 출마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제 인지도 하나만 달랑 갖고 경기도지사를 하겠다는 건 경기도민에 대한 우롱”이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경기일보>는 지난달 27일 ‘국힘, 경기지사가 경선 탈락자 처리장이냐’는 제목의 사설을 공개했다. 이 사설엔 “국민의힘 경기도지사 후보 경선에 나선 주자는 중량감·연고성 등이 모두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 2명”이라며 “급기야 대구시장 탈락자 차출설도 나오는데, 이쯤 되면 경기도민 모욕 아니냐”고 비판했다. 낮은 당 지지율과 공천 과정의 잡음이 이어지면서 급기야 지방선거 출마자들이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도 난감해하는 상황도 이어졌다. 유권자에게 “공개적 절윤 선언과 달리 인적 절연이 제대로 안 되고 있다”는 인상을 준 영향이라고 분석되고 있다. 7년 만에 대표 거부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달 27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저도 장 대표를 선거 유세에 모시고 싶다”면서도 “변신한 모습으로 와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선언한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도 지난달 26일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해 “장 대표의 지원 유세는 조금 예민한 문제”라며 “시민 눈높이에서 해결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선거는 후보가 시민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잘 전하는 시민을 위한 시간”이라며 “장 대표는 노선형 정치인이 됐으므로, 정책 선거 현장이 정치 선거로 비화하면 유불리를 떠나 서울시민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다 논란이 이어지자 지난 1일엔 의견을 바꿔 채널A 라디오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저는 국민의힘이 확장해야 한다는 것에 공감대가 확실히 있다고 생각한다”며 “정공법을 선택하겠다”고 말했다. 주요 선거 후보들이 당 대표의 지원 유세에 난감해하는 것은 지난 2018년 지방선거 당시 주요 후보들이 자유한국당 대표였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지원 유세를 거부한 상황을 연상시킨다. 낮은 지지율과 혼란을 거듭하는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이미 예고됐던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 2024년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후 대규모 집회 개최 및 참여 등 강경 보수 행보를 유지했다. 당시 진행됐던 대규모 집회는 손 목사·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담임목사·유튜버 전한길씨 등이 주도했다. 울림이 큰 방에서 나는 소리는 메아리가 돼 돌아온다. 이는 특정 성향·신념이 일치하는 사람들이 모여 비슷한 정보·주장을 계속 접하면서 그 의견이 굳어지는 현상을 비유하는 데 활용된다. 이를 두고 에코 체임버 현상이라고 한다. 보통은 SNS에서 일어나지만, 최근엔 정치권에서도 구조화되고 있다. 정치인의 관점에서 대규모 집회에서 동원한 인파·우호적인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는 열렬한 지지는 쉽게 눈에 띈다. 선거에선 이게 독이 되는 경우가 많다. 후보의 캠프에선 이를 유권자의 보편적 정서로 착각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최근엔 당원투표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당원의 뜻이 공천에 반영되면, 정당의 민주적 구조가 탄탄해진다. 하지만 조직표 동원 경선이 될 위험이 커진단 치명적인 단점도 있다. 당내 강경파·특정 조직의 관성은 중도층·무당층까지 포함하는 전체 민심과 방향이 다른 경우가 많다. 집권은 불가능 후보도 선거를 치르면서 조직표를 움직이는 지역 토착 세력·강경 지지층을 만나는 과정에서 현장 분위기를 착각한다. 설령 당선되더라도 이들의 포로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와 같은 확증 편향 현상은 “누구나 현실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사람은 자신이 보고 싶은 현실만을 본다”던 고대 로마 정치인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격언이 현재진행형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조직표는 장단점이 명확하게 나뉜다. 일정한 득표를 보장하는 것은 분명한 장점이다. 하지만 득표 이상의 목표 달성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전형적인 사례는 일본 공명당이다. 공명당은 창가학회란 종교를 배경으로 두고 있다. 덕분에 공명당은 엄청난 조직력을 동원할 수 있다. 창가학회 회원 1명은 강력한 선거운동원이 된다. 그 1명은 주변 지인 모두에게 공명당 선거운동을 한다고 보면 된다. 정치와 종교의 결합이 흔히 발생하는 중요한 원인이다. 일본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공명당과 연정을 하면서 창가학회·공명당의 조직력을 토대로 많은 정치적 이익을 얻었다. 공명당 후보가 출마하지 않는 지역구에선 그 조직력이 고스란히 자민당 후보의 선거 조직이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명당은 종교 기반 정당이기 때문에 그 틀을 벗어나긴 어려웠다. 그래서 공명당이 정치적으로 확장할 수 있는 최대치는 집권당의 연정 파트너였다. 공명당과 손을 잡았다고 무조건 선거에서 좋은 결과를 얻는다고 보긴 어렵다. 이는 지난 2월 진행된 제51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이하 중원선)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제1야당 입헌민주당(이하 입민당)은 자민당과 결별한 공명당과 손잡고 ‘중도개혁연합’이란 선거 연대를 구성했다. 하지만 선거 결과는 참혹했다. 입민당·공명당은 원래 총 169석을 보유했지만, 선거 결과 49석만 확보하는 대참패를 당했다. 이 중 입민당이 확보한 의석수는 21석에 불과했다. 중도개혁연합이 해체되면 각각 28석을 확보한 공명당·국민민주당이 제1야당 반열에 오를 수 있을 정도의 대참패였다. 조직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민심이란 걸 보여준 선거였다. 경기도지사 후보 인물난…유승민은 거듭 고사 손현보 아들 등장·컷오프 이진숙 못 놓는 이유? 절대로 몰락하지 않는 안정적인 하한선을 보유했지만, 상한선·기대치도 낮은 사례로 일본 공명당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성향이 강한 특정 집단을 기반으로 유지되는 정당은 그에 대한 다른 유권자의 거부감 때문에 집권이 불가능하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독일 좌파당 ▲영국 민주연합당 ▲이스라엘의 샤스·유대교 토라 연합 등을 거론할 수 있다. 독일 좌파당은 독일 통일 이후 구동독 지역 사회주의 통합당 후신이 모여 조직됐다. 따라서 구동독 지역의 고령 유권자·옛 공산당 관료·강성 노동계급 등이 핵심 지지층을 이루고 있다. 이런 연유로 구동독 지역에선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전체 민심과 조화를 이루긴 어렵고, 주요 정당의 연정 파트너로 주로 거론된다. 영국 민주연합당은 북아일랜드 강성 개신교·연합주의자 조직에 기반한다. 이들의 강경한 종교 성향은 잉글랜드·스코틀랜드 등의 정서와 많이 멀다. 따라서 이들도 북아일랜드 지역 정당 겸 주요 정당의 연정 파트너로 거론된다. 지난 2017년엔 영국 보수당이 과반 확보에 실패하자 민주당과 신임 공급 협약을 맺고 정부를 구성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의 샤스·유대교 토라 연합은 이스라엘 내 극단적인 유대교 원칙주의자들로서 사회적 민폐라고 거론되는 하레디를 기반으로 구성된 정당이다. 이들은 사회적인 활동보다 경전 공부에 몰두한다. 극단적인 일부 하레디는 19세기 생활 양식을 고집하고, 일체 생산 활동을 하지 않면서 정부 보조금에 의존한다. 이들은 출산율이 높아 이스라엘 재정에 부담을 주지만, 이스라엘 내 유대인 인구 비율 유지를 고려하면, 정부가 이들을 지원하지 않을 수 없는 측면도 있다. 이들은 랍비의 지시에 따라 절대적인 투표 성향을 유지한다. 이스라엘의 보수 정당 리쿠드당은 이들과의 연정을 통해 조직표를 동원한다. 일본 자민당은 원래 다양한 성향의 여러 파벌이 모여 구성된 특성을 역설적으로 정권 유지 비결로 활용했다. 총리를 배출하는 회파만 바뀌어도 국정 기조가 바뀌어 유권자에게 정권교체 체감을 주는 유사 정권교체 효과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2월 중의원 의원 선거 대승은 자민당으로서도 기존과 다른 형태였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기민한 유튜브·SNS 활용 ▲실용적 포퓰리즘으로 통하는 사나에노믹스 등 다카이치 총리의 개인 팬덤이 강력하게 형성된 것이 승리로 연결됐다. 공명당 등 해외 사례 표면적으로는 국민의힘은 이미 지난 2월에 입증된 자민당의 승리 비결을 외면하고, 공명당의 길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주요 후보들이 당 대표 지원 유세에 신중한 반응을 보이는 것 자체가 국민의힘이 ‘더 깊은 늪’에 들어가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일면일 수도 있다. 국민의힘은 늪에서 나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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