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뺑뺑이’ 임현택 의협 회장 6개월 해부

막말, 독선…잇단 헛발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의정 갈등이 장기화하면서 국민 여론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의료 현장은 이미 아수라장 상태다. 정부는 의료개혁을 계속 밀어붙이는 중이다. 설상가상으로 의료계는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 중심에 의협, 그리고 임현택 회장이 있다.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서 시작된 의정 갈등이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의료 대란은 현실화했고 실제 환자가 제시간에 진료를 받지 못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응급실은 마비 상태에 이르렀고 의료진은 과부하로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다. 

7개월째
평행선

천문학적인 재정이 의정 갈등 사태를 수습하는 데 투입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장종태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비상진료체계 운영에 따른 건강보험지원금은 지난 5월 810억원, 6월 830억원, 7월 2983억원, 8월 1073억 등 누적 5696억원에 이른다. 장 의원은 “9월 1883억원 등 2월 말부터 이번 달 말까지 약 7개월간 비상진료체계 유지를 위해 투입되는 건보 재정 규모는 7579억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또 정부는 경영이 어려운 수련병원에 7월부터 건강보험 급여를 선지급하고 있다. 선지급 금액은 6월분 3684억원, 7월 3974억원, 8월분 3914억원 등 총 규모가 1조1572억원이다. 의정 갈등의 여파로 2조원에 육박하는 재정이 들어가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정부와 의료계의 입장은 여전히 평행선을 그리고 있다. 정부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의료 공백을 메꾸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의사들은 요구사항이 관철되기 전까지 돌아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가족을 잃은 이들은 의료 정상화를 외치며 정부와 의료계에 읍소 중이다.

문제는 의정 갈등의 한 축인 의료계의 분열이다. 그동안에도 조짐은 있었지만 최근 본격화되는 모양새다. 그 중심에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와 임현택 회장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구심점 역할을 해야 할 의협이 거듭 전선을 이탈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임 회장의 행보에 대한 의료계 안팎의 반발이 심화하면서 의협 자체가 힘을 잃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임 회장은 지난 3월 의협 회장 선거서 압도적 지지로 당선됐다. 의사들은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에 맞설 ‘강한’ 회장을 원했고 임 회장이 적임자로 낙점된 것이다. 앞서 임 회장은 윤석열 대통령 참석 행사에서 의견을 내세우다 쫓겨나는 등 강성 중의 강성으로 알려져 있다.

3월 압도적 지지 당선됐지만…
불신임 청원에 사퇴 요구까지

하지만 불과 6개월 만에 임 회장에 대한 평가가 180도 달라졌고, 사퇴 요구까지 나온 상태다.

의정 갈등서 ‘선봉장’ 역할을 맡은 전공의 단체 대표가 사퇴를 요구했다. 이미 두 사람은 한 차례 신경전을 벌인 적이 있다. 의료계 분열이 언급될 때마다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그러다 이번에 또 한 번 갈등이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이다. 


임 회장은 지난 3월26일 제42대 의협 회장으로 선출됐다. 당시 총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65.43%)를 얻었다. 임 회장은 정부의 의대 증원 추진을 막지 못한 책임으로 사퇴한 이필수 전 회장에 뒤를 이어 회장 자리에 올랐다.

임 회장은 의대 증원에 대해 “저출생으로 인해 오히려 500~1000명 줄여야 한다”는 입장의 강경파로 분류된다. 

앞서 임 회장은 윤 대통령 주재로 열린 의료개혁 민생토론회서 반대 의견을 전달하려다 경호원들에게 입이 틀어 막힌 채 끌려 나간 적이 있다. 이른바 ‘입틀막’ 의사의 의협 회장 당선으로 의료계의 대정부 투쟁 수위가 높아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실제로 임 회장은 증원 철회를 비롯해 대통령의 사과와 책임자 파면 등을 주장했다. 

지난 5월1일 3년 임기를 시작한 임 회장에 대한 현재까지의 평가는 낙제점에 가깝다. 무엇보다 의료계 구성원 사이서 임 회장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특히 임 회장의 언행이 도마 위에 올랐다. 과격한 표현과 독단적 태도가 주변의 반발을 부르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의대 증원 등 정부의 의료개혁 정책에 대해 정부와 논의할 협의체 구성에 난항이 계속되는 중이다. 정부는 앞서 의협의 대표성에 의문을 표한 바 있다. 정부는 지난 2월 의협 대신 ‘대표성을 갖춘 협의체’를 구성해 대화하자는 뜻을 의료계에 전달했다.

당시 의협은 내부 분열을 위한 갈라치기 시도라면서 반발했다. 

믿었는데 
낙제점

그 시기에는 정부가 의협의 대표성을 문제 삼았다면 현재는 의협을 제외한 의사단체가 반발하고 있다. 임 회장에 대한 불만이 꿈틀대기 시작한 시점은 지난 6월 진행된 전국의사총궐기대회다. 임 회장의 ‘무기한 집단 휴진’ 발언이 다른 의사단체와 상의 없이 나온 것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내홍이 일었다.

시도의사회 회장이 임 회장의 발표를 비판했다. 당시 이동욱 경기도의사회 회장은 “저를 포함한 16개 광역시도 회장들도 임 회장이 여의도 집회서 무기한 휴진을 발표할 때 처음 들었다”며 “회원들이 황당해하고 우려하는 건 의사결정의 민주적 정당성과 절차적 적절성이 전혀 지켜지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의사들은 임 회장의 ‘장기판 졸’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도 가세했다. 박 위원장은 “무기한 휴진은 의협 대의원회, 시도의사회와 상의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발표한 것으로 파악했다”며 “임 회장은 언론 등 대외적 입장 표명을 조금 더 신중하게 하길 바란다”고 직격했다. 


또 의협이 범의료계대책위원회를 구성하겠다며 전공의 대표를 공동위원장으로 제안하고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지만 박 위원장은 “들은 바 없다. 대전협은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표현했다”며 선을 그었다. 

임 회장의 언사에 대해서는 의대생 단체도 목소리를 냈다. 의대생 단체는 지난 7월 “임 회장은 의협 회장이라는 무거운 자리에 있음에도 ‘표현의 자유’라며 부적절한 공적 발화를 일삼고 있다”며 “당선되고 난 후의 행보를 과연 의료계의 입장을 강력히 대변하겠다는 의협 회장의 행동으로 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이하 의대협)가 문제 삼은 지점은 6월26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청문회서 나온 임 회장의 발언이다. 민주당 강선우 의원은 이날 임 회장을 향해 “저 기억하시나. 제가 21대 국회서 대변인으로 활동할 때 저한테 미친 여자라고 그러셨죠”라고 물었다. 

의사단체
선긋기 나서

당시 강 의원은 의협이 수면내시경을 받으러 온 여성 환자를 전신 마취하고 수차례 성폭행했던 의사에게 회원자격정지 2년 징계를 내린 것을 비판하는 논평을 냈다. 이를 두고 임 회장이 막말을 쏟아낸 것. 임 회장은 강 의원의 질문에 “유감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강 의원이 임 회장의 공격적 언사에 대해 언급하자 “국민이 가진 헌법상 표현의 자유 영역에 들어간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논란이 일었다. 의대협은 “본인의 발언에 대해서도 수습하지 못하는 무능한 모습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앞서 임 회장은 의사의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를 인정해 유죄를 선고한 판사를 향해서도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고 발언했다. 또 해당 판사가 언론에 인터뷰했던 사진과 함께 “이 여자와 가족이 병‧의원에 올 때 병 종류에 무관하게 의사 양심이 아니라 반드시 ‘심평원 심사 규정’에 맞게 치료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했다.

법원이 유감을 표명할 정도로 수위 높은 비판이었다. 

또 서울고법이 의대 증원 집행정지 신청을 기각하자 “(재판을 담당한)구회근 판사가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에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 그런 통로가 막혀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있다”고 주장했다.

임 회장의 해당 발언에 법원은 공식적으로 유감을 표했다.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라고 밝혔다. 

도를 넘는 발언과 독단적 태도 등이 거듭되면서 의료계 내부에서는 임 회장을 ‘리스크’로 여기는 분위기가 분출하고 있다. 박단 대전협 위원장은 지난 10일 의협 회장과는 어떤 협상 테이블에도 같이 앉을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자신의 SNS에 “의협 회장은 사직한 전공의와 휴학한 의대생을 대표하지 않는다”고 썼다. 

그러면서 “아래 기재된 네 사람은 그 어떤 테이블에서도 임 회장과 같이 앉을 생각이 없다”며 “임 회장 및 의협 집행부는 전공의와 의대생 언급을 삼가시길 바라며 임 회장의 조속한 사퇴를 촉구한다”고 전했다. 박 위원장이 언급한 네 사람은 본인과 대전협 비상대책위원회의 손정호·김서영·조주신 공동위원장이다. 

의정갈등 장기화에도
행보마다 효과 없어

앞서 박 위원장은 7월26일에도 “임 회장은 공석서 전공의와 의대생을 언급하는 것 외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100여명의 직원과 300억원의 예산은 어디에 허비하고 있습니까”라며 “임 회장이 아직도 중요한 게 뭔지 모르겠다면 이제 부디 자진 사퇴를 고려하시길 권한다”고 적었다.

임 회장은 앞뒤가 꽉 막힌 상자 안에 들어서 있는 형국이다. 몸을 갈아 넣은 대정부 투쟁은 통하질 않고 의료계조차 임 회장의 행보에 싸늘한 기색이다. 국민적 관심도 거의 끌지 못했다. 임 회장은 지난달 의대 증원과 간호법안 입법화 움직임에 반발해 무기한 단식투쟁에 나섰다가 6일 만에 병원에 긴급 후송됐다. 

문제는 단식투쟁의 실익이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일단 간호법 제정안이 통과됐다. 국회는 지난달 28일 간호법 제정안을 가결시켰다. 이르면 내년 6월부터 진료지원 간호사(PA 간호사)의 의료 행위가 합법화된다. PA 간호사의 의료 행위에 대한 법제화는 의료계의 오랜 쟁점이었다. 

여기에 의료계 내부서 임 회장에 대한 탄핵 움직임이 불거졌다. 지난달 28일부터 의협 대의원회의 조병욱·조현근 대의원은 임 회장에 대한 불신임 청원 서명을 받았다. 간호법 제정과 의대 증원 저지에 실패해 회원의 중대한 권익을 침해했으며 협회의 명예도 현저히 훼손했다는 이유를 제시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선거권이 있는 회원 4분의 1 이상의 청원이 모이면 회장에 대한 불신임 발의가 가능하다. 이후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이들 중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회장 불신임이 결정된다. 청원을 발의한 대의원들은 “의견 수렴이 목적”이라면서도 “발의 요건이 충족되면 대의원회를 통해 임 회장 불신임을 발의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다만 지난달 31일 의협 임시대의원총회서 비상대책위를 꾸리는 내용의 안건이 부결되면서 임 회장은 한숨 돌릴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 ‘의대 정원 증원 저지‧필수의료 패키지 대응·간호법 저지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설치에 대한 투표가 투표자 189명(총원 242명) 가운데 찬성 53명, 반대 131명, 기권 5명으로 통과되지 않았다. 

한숨 돌려
다음은?

결과적으로 임 회장은 ‘재신임’을 받았다. 하지만 그가 가는 걸음에 힘이 실리지 않고 있다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의정 갈등의 출구전략이 보이지 않는 상황서 수장을 바꿔야 한다는 의견도 줄어들 기미가 없다. 의료계 분열과 정부의 의료개혁 추진이라는 이중고에 의사에 대한 국민의 부정적인 여론까지 더해졌다. 임 회장의 ‘헛발질’ 6개월이 낳은 결과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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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