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뺑뺑이’ 임현택 의협 회장 6개월 해부

막말, 독선…잇단 헛발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의정 갈등이 장기화하면서 국민 여론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의료 현장은 이미 아수라장 상태다. 정부는 의료개혁을 계속 밀어붙이는 중이다. 설상가상으로 의료계는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 중심에 의협, 그리고 임현택 회장이 있다.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서 시작된 의정 갈등이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의료 대란은 현실화했고 실제 환자가 제시간에 진료를 받지 못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응급실은 마비 상태에 이르렀고 의료진은 과부하로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다. 

7개월째
평행선

천문학적인 재정이 의정 갈등 사태를 수습하는 데 투입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장종태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비상진료체계 운영에 따른 건강보험지원금은 지난 5월 810억원, 6월 830억원, 7월 2983억원, 8월 1073억 등 누적 5696억원에 이른다. 장 의원은 “9월 1883억원 등 2월 말부터 이번 달 말까지 약 7개월간 비상진료체계 유지를 위해 투입되는 건보 재정 규모는 7579억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또 정부는 경영이 어려운 수련병원에 7월부터 건강보험 급여를 선지급하고 있다. 선지급 금액은 6월분 3684억원, 7월 3974억원, 8월분 3914억원 등 총 규모가 1조1572억원이다. 의정 갈등의 여파로 2조원에 육박하는 재정이 들어가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정부와 의료계의 입장은 여전히 평행선을 그리고 있다. 정부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의료 공백을 메꾸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의사들은 요구사항이 관철되기 전까지 돌아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가족을 잃은 이들은 의료 정상화를 외치며 정부와 의료계에 읍소 중이다.

문제는 의정 갈등의 한 축인 의료계의 분열이다. 그동안에도 조짐은 있었지만 최근 본격화되는 모양새다. 그 중심에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와 임현택 회장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구심점 역할을 해야 할 의협이 거듭 전선을 이탈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임 회장의 행보에 대한 의료계 안팎의 반발이 심화하면서 의협 자체가 힘을 잃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임 회장은 지난 3월 의협 회장 선거서 압도적 지지로 당선됐다. 의사들은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에 맞설 ‘강한’ 회장을 원했고 임 회장이 적임자로 낙점된 것이다. 앞서 임 회장은 윤석열 대통령 참석 행사에서 의견을 내세우다 쫓겨나는 등 강성 중의 강성으로 알려져 있다.

3월 압도적 지지 당선됐지만…
불신임 청원에 사퇴 요구까지

하지만 불과 6개월 만에 임 회장에 대한 평가가 180도 달라졌고, 사퇴 요구까지 나온 상태다.

의정 갈등서 ‘선봉장’ 역할을 맡은 전공의 단체 대표가 사퇴를 요구했다. 이미 두 사람은 한 차례 신경전을 벌인 적이 있다. 의료계 분열이 언급될 때마다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그러다 이번에 또 한 번 갈등이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이다. 


임 회장은 지난 3월26일 제42대 의협 회장으로 선출됐다. 당시 총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65.43%)를 얻었다. 임 회장은 정부의 의대 증원 추진을 막지 못한 책임으로 사퇴한 이필수 전 회장에 뒤를 이어 회장 자리에 올랐다.

임 회장은 의대 증원에 대해 “저출생으로 인해 오히려 500~1000명 줄여야 한다”는 입장의 강경파로 분류된다. 

앞서 임 회장은 윤 대통령 주재로 열린 의료개혁 민생토론회서 반대 의견을 전달하려다 경호원들에게 입이 틀어 막힌 채 끌려 나간 적이 있다. 이른바 ‘입틀막’ 의사의 의협 회장 당선으로 의료계의 대정부 투쟁 수위가 높아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실제로 임 회장은 증원 철회를 비롯해 대통령의 사과와 책임자 파면 등을 주장했다. 

지난 5월1일 3년 임기를 시작한 임 회장에 대한 현재까지의 평가는 낙제점에 가깝다. 무엇보다 의료계 구성원 사이서 임 회장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특히 임 회장의 언행이 도마 위에 올랐다. 과격한 표현과 독단적 태도가 주변의 반발을 부르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의대 증원 등 정부의 의료개혁 정책에 대해 정부와 논의할 협의체 구성에 난항이 계속되는 중이다. 정부는 앞서 의협의 대표성에 의문을 표한 바 있다. 정부는 지난 2월 의협 대신 ‘대표성을 갖춘 협의체’를 구성해 대화하자는 뜻을 의료계에 전달했다.

당시 의협은 내부 분열을 위한 갈라치기 시도라면서 반발했다. 

믿었는데 
낙제점

그 시기에는 정부가 의협의 대표성을 문제 삼았다면 현재는 의협을 제외한 의사단체가 반발하고 있다. 임 회장에 대한 불만이 꿈틀대기 시작한 시점은 지난 6월 진행된 전국의사총궐기대회다. 임 회장의 ‘무기한 집단 휴진’ 발언이 다른 의사단체와 상의 없이 나온 것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내홍이 일었다.

시도의사회 회장이 임 회장의 발표를 비판했다. 당시 이동욱 경기도의사회 회장은 “저를 포함한 16개 광역시도 회장들도 임 회장이 여의도 집회서 무기한 휴진을 발표할 때 처음 들었다”며 “회원들이 황당해하고 우려하는 건 의사결정의 민주적 정당성과 절차적 적절성이 전혀 지켜지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의사들은 임 회장의 ‘장기판 졸’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도 가세했다. 박 위원장은 “무기한 휴진은 의협 대의원회, 시도의사회와 상의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발표한 것으로 파악했다”며 “임 회장은 언론 등 대외적 입장 표명을 조금 더 신중하게 하길 바란다”고 직격했다. 


또 의협이 범의료계대책위원회를 구성하겠다며 전공의 대표를 공동위원장으로 제안하고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지만 박 위원장은 “들은 바 없다. 대전협은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표현했다”며 선을 그었다. 

임 회장의 언사에 대해서는 의대생 단체도 목소리를 냈다. 의대생 단체는 지난 7월 “임 회장은 의협 회장이라는 무거운 자리에 있음에도 ‘표현의 자유’라며 부적절한 공적 발화를 일삼고 있다”며 “당선되고 난 후의 행보를 과연 의료계의 입장을 강력히 대변하겠다는 의협 회장의 행동으로 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이하 의대협)가 문제 삼은 지점은 6월26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청문회서 나온 임 회장의 발언이다. 민주당 강선우 의원은 이날 임 회장을 향해 “저 기억하시나. 제가 21대 국회서 대변인으로 활동할 때 저한테 미친 여자라고 그러셨죠”라고 물었다. 

의사단체
선긋기 나서

당시 강 의원은 의협이 수면내시경을 받으러 온 여성 환자를 전신 마취하고 수차례 성폭행했던 의사에게 회원자격정지 2년 징계를 내린 것을 비판하는 논평을 냈다. 이를 두고 임 회장이 막말을 쏟아낸 것. 임 회장은 강 의원의 질문에 “유감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강 의원이 임 회장의 공격적 언사에 대해 언급하자 “국민이 가진 헌법상 표현의 자유 영역에 들어간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논란이 일었다. 의대협은 “본인의 발언에 대해서도 수습하지 못하는 무능한 모습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앞서 임 회장은 의사의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를 인정해 유죄를 선고한 판사를 향해서도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고 발언했다. 또 해당 판사가 언론에 인터뷰했던 사진과 함께 “이 여자와 가족이 병‧의원에 올 때 병 종류에 무관하게 의사 양심이 아니라 반드시 ‘심평원 심사 규정’에 맞게 치료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했다.

법원이 유감을 표명할 정도로 수위 높은 비판이었다. 

또 서울고법이 의대 증원 집행정지 신청을 기각하자 “(재판을 담당한)구회근 판사가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에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 그런 통로가 막혀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있다”고 주장했다.

임 회장의 해당 발언에 법원은 공식적으로 유감을 표했다.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라고 밝혔다. 

도를 넘는 발언과 독단적 태도 등이 거듭되면서 의료계 내부에서는 임 회장을 ‘리스크’로 여기는 분위기가 분출하고 있다. 박단 대전협 위원장은 지난 10일 의협 회장과는 어떤 협상 테이블에도 같이 앉을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자신의 SNS에 “의협 회장은 사직한 전공의와 휴학한 의대생을 대표하지 않는다”고 썼다. 

그러면서 “아래 기재된 네 사람은 그 어떤 테이블에서도 임 회장과 같이 앉을 생각이 없다”며 “임 회장 및 의협 집행부는 전공의와 의대생 언급을 삼가시길 바라며 임 회장의 조속한 사퇴를 촉구한다”고 전했다. 박 위원장이 언급한 네 사람은 본인과 대전협 비상대책위원회의 손정호·김서영·조주신 공동위원장이다. 

의정갈등 장기화에도
행보마다 효과 없어

앞서 박 위원장은 7월26일에도 “임 회장은 공석서 전공의와 의대생을 언급하는 것 외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100여명의 직원과 300억원의 예산은 어디에 허비하고 있습니까”라며 “임 회장이 아직도 중요한 게 뭔지 모르겠다면 이제 부디 자진 사퇴를 고려하시길 권한다”고 적었다.

임 회장은 앞뒤가 꽉 막힌 상자 안에 들어서 있는 형국이다. 몸을 갈아 넣은 대정부 투쟁은 통하질 않고 의료계조차 임 회장의 행보에 싸늘한 기색이다. 국민적 관심도 거의 끌지 못했다. 임 회장은 지난달 의대 증원과 간호법안 입법화 움직임에 반발해 무기한 단식투쟁에 나섰다가 6일 만에 병원에 긴급 후송됐다. 

문제는 단식투쟁의 실익이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일단 간호법 제정안이 통과됐다. 국회는 지난달 28일 간호법 제정안을 가결시켰다. 이르면 내년 6월부터 진료지원 간호사(PA 간호사)의 의료 행위가 합법화된다. PA 간호사의 의료 행위에 대한 법제화는 의료계의 오랜 쟁점이었다. 

여기에 의료계 내부서 임 회장에 대한 탄핵 움직임이 불거졌다. 지난달 28일부터 의협 대의원회의 조병욱·조현근 대의원은 임 회장에 대한 불신임 청원 서명을 받았다. 간호법 제정과 의대 증원 저지에 실패해 회원의 중대한 권익을 침해했으며 협회의 명예도 현저히 훼손했다는 이유를 제시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선거권이 있는 회원 4분의 1 이상의 청원이 모이면 회장에 대한 불신임 발의가 가능하다. 이후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이들 중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회장 불신임이 결정된다. 청원을 발의한 대의원들은 “의견 수렴이 목적”이라면서도 “발의 요건이 충족되면 대의원회를 통해 임 회장 불신임을 발의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다만 지난달 31일 의협 임시대의원총회서 비상대책위를 꾸리는 내용의 안건이 부결되면서 임 회장은 한숨 돌릴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 ‘의대 정원 증원 저지‧필수의료 패키지 대응·간호법 저지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설치에 대한 투표가 투표자 189명(총원 242명) 가운데 찬성 53명, 반대 131명, 기권 5명으로 통과되지 않았다. 

한숨 돌려
다음은?

결과적으로 임 회장은 ‘재신임’을 받았다. 하지만 그가 가는 걸음에 힘이 실리지 않고 있다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의정 갈등의 출구전략이 보이지 않는 상황서 수장을 바꿔야 한다는 의견도 줄어들 기미가 없다. 의료계 분열과 정부의 의료개혁 추진이라는 이중고에 의사에 대한 국민의 부정적인 여론까지 더해졌다. 임 회장의 ‘헛발질’ 6개월이 낳은 결과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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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