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뺑뺑이’ 임현택 의협 회장 6개월 해부

막말, 독선…잇단 헛발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의정 갈등이 장기화하면서 국민 여론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의료 현장은 이미 아수라장 상태다. 정부는 의료개혁을 계속 밀어붙이는 중이다. 설상가상으로 의료계는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 중심에 의협, 그리고 임현택 회장이 있다.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서 시작된 의정 갈등이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의료 대란은 현실화했고 실제 환자가 제시간에 진료를 받지 못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응급실은 마비 상태에 이르렀고 의료진은 과부하로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다. 

7개월째
평행선

천문학적인 재정이 의정 갈등 사태를 수습하는 데 투입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장종태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비상진료체계 운영에 따른 건강보험지원금은 지난 5월 810억원, 6월 830억원, 7월 2983억원, 8월 1073억 등 누적 5696억원에 이른다. 장 의원은 “9월 1883억원 등 2월 말부터 이번 달 말까지 약 7개월간 비상진료체계 유지를 위해 투입되는 건보 재정 규모는 7579억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또 정부는 경영이 어려운 수련병원에 7월부터 건강보험 급여를 선지급하고 있다. 선지급 금액은 6월분 3684억원, 7월 3974억원, 8월분 3914억원 등 총 규모가 1조1572억원이다. 의정 갈등의 여파로 2조원에 육박하는 재정이 들어가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정부와 의료계의 입장은 여전히 평행선을 그리고 있다. 정부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의료 공백을 메꾸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의사들은 요구사항이 관철되기 전까지 돌아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가족을 잃은 이들은 의료 정상화를 외치며 정부와 의료계에 읍소 중이다.

문제는 의정 갈등의 한 축인 의료계의 분열이다. 그동안에도 조짐은 있었지만 최근 본격화되는 모양새다. 그 중심에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와 임현택 회장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구심점 역할을 해야 할 의협이 거듭 전선을 이탈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임 회장의 행보에 대한 의료계 안팎의 반발이 심화하면서 의협 자체가 힘을 잃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임 회장은 지난 3월 의협 회장 선거서 압도적 지지로 당선됐다. 의사들은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에 맞설 ‘강한’ 회장을 원했고 임 회장이 적임자로 낙점된 것이다. 앞서 임 회장은 윤석열 대통령 참석 행사에서 의견을 내세우다 쫓겨나는 등 강성 중의 강성으로 알려져 있다.

3월 압도적 지지 당선됐지만…
불신임 청원에 사퇴 요구까지

하지만 불과 6개월 만에 임 회장에 대한 평가가 180도 달라졌고, 사퇴 요구까지 나온 상태다.

의정 갈등서 ‘선봉장’ 역할을 맡은 전공의 단체 대표가 사퇴를 요구했다. 이미 두 사람은 한 차례 신경전을 벌인 적이 있다. 의료계 분열이 언급될 때마다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그러다 이번에 또 한 번 갈등이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이다. 


임 회장은 지난 3월26일 제42대 의협 회장으로 선출됐다. 당시 총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65.43%)를 얻었다. 임 회장은 정부의 의대 증원 추진을 막지 못한 책임으로 사퇴한 이필수 전 회장에 뒤를 이어 회장 자리에 올랐다.

임 회장은 의대 증원에 대해 “저출생으로 인해 오히려 500~1000명 줄여야 한다”는 입장의 강경파로 분류된다. 

앞서 임 회장은 윤 대통령 주재로 열린 의료개혁 민생토론회서 반대 의견을 전달하려다 경호원들에게 입이 틀어 막힌 채 끌려 나간 적이 있다. 이른바 ‘입틀막’ 의사의 의협 회장 당선으로 의료계의 대정부 투쟁 수위가 높아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실제로 임 회장은 증원 철회를 비롯해 대통령의 사과와 책임자 파면 등을 주장했다. 

지난 5월1일 3년 임기를 시작한 임 회장에 대한 현재까지의 평가는 낙제점에 가깝다. 무엇보다 의료계 구성원 사이서 임 회장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특히 임 회장의 언행이 도마 위에 올랐다. 과격한 표현과 독단적 태도가 주변의 반발을 부르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의대 증원 등 정부의 의료개혁 정책에 대해 정부와 논의할 협의체 구성에 난항이 계속되는 중이다. 정부는 앞서 의협의 대표성에 의문을 표한 바 있다. 정부는 지난 2월 의협 대신 ‘대표성을 갖춘 협의체’를 구성해 대화하자는 뜻을 의료계에 전달했다.

당시 의협은 내부 분열을 위한 갈라치기 시도라면서 반발했다. 

믿었는데 
낙제점

그 시기에는 정부가 의협의 대표성을 문제 삼았다면 현재는 의협을 제외한 의사단체가 반발하고 있다. 임 회장에 대한 불만이 꿈틀대기 시작한 시점은 지난 6월 진행된 전국의사총궐기대회다. 임 회장의 ‘무기한 집단 휴진’ 발언이 다른 의사단체와 상의 없이 나온 것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내홍이 일었다.

시도의사회 회장이 임 회장의 발표를 비판했다. 당시 이동욱 경기도의사회 회장은 “저를 포함한 16개 광역시도 회장들도 임 회장이 여의도 집회서 무기한 휴진을 발표할 때 처음 들었다”며 “회원들이 황당해하고 우려하는 건 의사결정의 민주적 정당성과 절차적 적절성이 전혀 지켜지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의사들은 임 회장의 ‘장기판 졸’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도 가세했다. 박 위원장은 “무기한 휴진은 의협 대의원회, 시도의사회와 상의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발표한 것으로 파악했다”며 “임 회장은 언론 등 대외적 입장 표명을 조금 더 신중하게 하길 바란다”고 직격했다. 


또 의협이 범의료계대책위원회를 구성하겠다며 전공의 대표를 공동위원장으로 제안하고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지만 박 위원장은 “들은 바 없다. 대전협은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표현했다”며 선을 그었다. 

임 회장의 언사에 대해서는 의대생 단체도 목소리를 냈다. 의대생 단체는 지난 7월 “임 회장은 의협 회장이라는 무거운 자리에 있음에도 ‘표현의 자유’라며 부적절한 공적 발화를 일삼고 있다”며 “당선되고 난 후의 행보를 과연 의료계의 입장을 강력히 대변하겠다는 의협 회장의 행동으로 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이하 의대협)가 문제 삼은 지점은 6월26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청문회서 나온 임 회장의 발언이다. 민주당 강선우 의원은 이날 임 회장을 향해 “저 기억하시나. 제가 21대 국회서 대변인으로 활동할 때 저한테 미친 여자라고 그러셨죠”라고 물었다. 

의사단체
선긋기 나서

당시 강 의원은 의협이 수면내시경을 받으러 온 여성 환자를 전신 마취하고 수차례 성폭행했던 의사에게 회원자격정지 2년 징계를 내린 것을 비판하는 논평을 냈다. 이를 두고 임 회장이 막말을 쏟아낸 것. 임 회장은 강 의원의 질문에 “유감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강 의원이 임 회장의 공격적 언사에 대해 언급하자 “국민이 가진 헌법상 표현의 자유 영역에 들어간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논란이 일었다. 의대협은 “본인의 발언에 대해서도 수습하지 못하는 무능한 모습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앞서 임 회장은 의사의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를 인정해 유죄를 선고한 판사를 향해서도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고 발언했다. 또 해당 판사가 언론에 인터뷰했던 사진과 함께 “이 여자와 가족이 병‧의원에 올 때 병 종류에 무관하게 의사 양심이 아니라 반드시 ‘심평원 심사 규정’에 맞게 치료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했다.

법원이 유감을 표명할 정도로 수위 높은 비판이었다. 

또 서울고법이 의대 증원 집행정지 신청을 기각하자 “(재판을 담당한)구회근 판사가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에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 그런 통로가 막혀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있다”고 주장했다.

임 회장의 해당 발언에 법원은 공식적으로 유감을 표했다.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라고 밝혔다. 

도를 넘는 발언과 독단적 태도 등이 거듭되면서 의료계 내부에서는 임 회장을 ‘리스크’로 여기는 분위기가 분출하고 있다. 박단 대전협 위원장은 지난 10일 의협 회장과는 어떤 협상 테이블에도 같이 앉을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자신의 SNS에 “의협 회장은 사직한 전공의와 휴학한 의대생을 대표하지 않는다”고 썼다. 

그러면서 “아래 기재된 네 사람은 그 어떤 테이블에서도 임 회장과 같이 앉을 생각이 없다”며 “임 회장 및 의협 집행부는 전공의와 의대생 언급을 삼가시길 바라며 임 회장의 조속한 사퇴를 촉구한다”고 전했다. 박 위원장이 언급한 네 사람은 본인과 대전협 비상대책위원회의 손정호·김서영·조주신 공동위원장이다. 

의정갈등 장기화에도
행보마다 효과 없어

앞서 박 위원장은 7월26일에도 “임 회장은 공석서 전공의와 의대생을 언급하는 것 외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100여명의 직원과 300억원의 예산은 어디에 허비하고 있습니까”라며 “임 회장이 아직도 중요한 게 뭔지 모르겠다면 이제 부디 자진 사퇴를 고려하시길 권한다”고 적었다.

임 회장은 앞뒤가 꽉 막힌 상자 안에 들어서 있는 형국이다. 몸을 갈아 넣은 대정부 투쟁은 통하질 않고 의료계조차 임 회장의 행보에 싸늘한 기색이다. 국민적 관심도 거의 끌지 못했다. 임 회장은 지난달 의대 증원과 간호법안 입법화 움직임에 반발해 무기한 단식투쟁에 나섰다가 6일 만에 병원에 긴급 후송됐다. 

문제는 단식투쟁의 실익이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일단 간호법 제정안이 통과됐다. 국회는 지난달 28일 간호법 제정안을 가결시켰다. 이르면 내년 6월부터 진료지원 간호사(PA 간호사)의 의료 행위가 합법화된다. PA 간호사의 의료 행위에 대한 법제화는 의료계의 오랜 쟁점이었다. 

여기에 의료계 내부서 임 회장에 대한 탄핵 움직임이 불거졌다. 지난달 28일부터 의협 대의원회의 조병욱·조현근 대의원은 임 회장에 대한 불신임 청원 서명을 받았다. 간호법 제정과 의대 증원 저지에 실패해 회원의 중대한 권익을 침해했으며 협회의 명예도 현저히 훼손했다는 이유를 제시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선거권이 있는 회원 4분의 1 이상의 청원이 모이면 회장에 대한 불신임 발의가 가능하다. 이후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이들 중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회장 불신임이 결정된다. 청원을 발의한 대의원들은 “의견 수렴이 목적”이라면서도 “발의 요건이 충족되면 대의원회를 통해 임 회장 불신임을 발의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다만 지난달 31일 의협 임시대의원총회서 비상대책위를 꾸리는 내용의 안건이 부결되면서 임 회장은 한숨 돌릴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 ‘의대 정원 증원 저지‧필수의료 패키지 대응·간호법 저지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설치에 대한 투표가 투표자 189명(총원 242명) 가운데 찬성 53명, 반대 131명, 기권 5명으로 통과되지 않았다. 

한숨 돌려
다음은?

결과적으로 임 회장은 ‘재신임’을 받았다. 하지만 그가 가는 걸음에 힘이 실리지 않고 있다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의정 갈등의 출구전략이 보이지 않는 상황서 수장을 바꿔야 한다는 의견도 줄어들 기미가 없다. 의료계 분열과 정부의 의료개혁 추진이라는 이중고에 의사에 대한 국민의 부정적인 여론까지 더해졌다. 임 회장의 ‘헛발질’ 6개월이 낳은 결과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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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후폭풍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과 검찰의 시각이 크게 엇갈리면서 서로를 향해 날을 겨누는 형국이다. 검찰청은 내년 9월 폐지될 시한부 운명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검찰개혁’을 필두로 이참에 검찰의 뿌리를 뽑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을 등에 업고 버티기에 나선 검찰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아 당분간 양측 간의 힘겨루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검이 대장동 사건에 대한 항소 시한을 넘기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서울중앙지검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비롯해 ▲남욱 변호사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정민용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등 대장동 일당에 대한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은 것이다. 꺾이거나 되치거나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피고인에게 더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게 됐다. 대장동 개발 비리로 발생한 범죄수익의 국고 환수 규모가 축소될 것이란 해석에도 힘이 실린다. 화살은 곧바로 이재명 대통령에게로 향했다. 이 대통령은 대장동 사건에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 등을 받는데, 이미 대장동 민간업자 재판에서 무죄가 나온 만큼 항소 포기로 인해 추가로 다툴 여지를 차단했다는 게 국민의힘의 설명이다. 여기에 대통령실이 항소 포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재명 면죄부’라고도 주장했다. 국민의힘 곽규택 대변인은 “대통령실 민정수석실 비서관 4명 중 3명, 법무부 장관 정책보좌관, 법제처장, 국정원 기조실장까지 모두 이 대통령의 변호인 출신”이라며 “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대장동 사건 주요 피고인 정진상, 김용, 이화영 등을 특별 면회하면서 ‘검찰은 증거가 없다’는 발언으로 회유를 시도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보수 성향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역시 “국가의 유례없는 사법 정의 포기 사태는 이재명정부의 책임”이라며 “공소 사실의 핵심에 무죄 선고가 난 사건에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 전례를 찾기 어렵다. 대통령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부 출범 이후 대검찰청 차장검사로 승진한 노만석 검찰총장을 겨냥해서는 책임론이 불거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항소 시한을 앞두고 서울중앙지검은 대장동 일동에 대해 일부 무죄가 선고되는 등 다툼의 여지가 있는 1심 판결에 대해 “관행대로 항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이를 전해 들은 대검 수뇌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노 대행은 지난 9일 “대장동 사건은 일선 검찰청의 보고를 받고 통상의 중요 사건의 경우처럼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후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대행인 저의 책임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의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역시 대장동 일동에 대해 검찰의 구형량보다 높은 형량이 선고된 만큼 항소 포기가 ‘적절한 판단’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항소 포기 지시는 없었다”고 일축했다. 화약고에 불붙인 ‘항소 포기’ 후폭풍 이재명·노만석·정성호 몽땅 도마 위로 정 장관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해 ‘(이진수) 법무부 차관에게 대장동 사건 관련으로 어떤 지시를 했느냐’는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의 질문에 “노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지휘권을 행사할 수도 있으니 항소를 알아서 포기하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어 정 장관은 총 3번 정도 대장동 사건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언급하며 “(두 번째인) 11월6일 목요일에는 국회에서 예결위 종합질의가 있어 국회에 왔는데, 예결위 끝나고 대검에서 항소할 필요성이 있다고 한 의견을 들었다”며 “당시 ‘중형이 선고됐는데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하지 않는가’란 정도의 이야기만 하고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음 날인 11월7일에도 마찬가지”라며 “저녁에 예결위가 잠시 휴정돼 검찰에서 항소할 것 같다는 구두 보고를 식사 중에 받았고, 그날 저녁 예결위가 끝난 후 최종적으로 항고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부연했다.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대목을 놓고 국민의힘은 “신중한 검토(판단)가 곧 항소 포기인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며 법무부가 사실상 외압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이 8글자에 모든 것이 함축적으로 들어가 있다”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하며 검찰에 지시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대장동 사건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일선 검사를 중심으로 반발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김영석 대검찰청 감찰1과 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를 통해 “검찰 역사상 일부 무죄가 선고되고 엄청난 금액의 추징이 선고되지 않은 사건에서 항소 포기를 한 전례가 있었나”라며 이번 결정으로 대장동 일당 등 민간업자에게 수천억원 상당의 범죄수익이 돌아간 점을 꼬집었다. 대장동 사건의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도 “항소 포기로 남욱·정영학을 상대로는 범죄수익을 단 한 푼도 환수할 수 없게 됐고, 김만배를 상대로는 당초 예상 금액의 1/10에 불과한 금액만 추징 선고가 이뤄졌음에도 이를 묵과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기막힌 타이밍 검찰 안팎에서 책임론이 확산하자 결국 노 대행은 항소 포기 논란이 불거진 지 닷새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자 일선 검사들은 ‘검찰총장 권한대행께 추가 설명을 요청드린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항소 포기 과정에 대한 상세 설명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냈다. 해당 입장문은 박재억 수원지검장을 비롯해 ▲박현준 서울북부지검장 ▲박영빈 인천지검장 ▲박현철 광주지검장▲임승철 서울서부지검장 ▲김창진 부산지검장 등 검사장 18명 명의로 작성됐다. 이들은 “서울중앙지검장은 명백히 항소 의견이었지만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항소 포기 지시를 존중해 최종적으로 공판팀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을 상대로 항소 의견을 관철하지 못하고 책임지고 사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면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어제 배포한 입장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의 항소 의견을 보고받고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뒤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책임 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하담미 수원지검 안양지청장 ▲최행관 부산지검 동부지청장 ▲신동원 대구지검 서부지청장 등 8개 대형 지청을 이끄는 지청장들도 집단 성명을 냈다. 이들은 “이번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지시는 그 결정에 이른 경위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검찰이 지켜야 할 가치, 검찰의 존재 이유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라며 “그간 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입장문, 법무부 장관의 설명만으로는 항소를 포기한 구체적 경위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법적·행정적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정치 검사들의 반란을 분쇄하겠다”며 검찰의 집단 반발을 ‘항명’이라고 규정하고 이에 대한 징계를 예고했다. 현재 일반 공무원은 6단계 징계 처분(파면·해임·강등·정직·감봉·견책)이 가능하지만, 검사는 파면에 해당하는 징계 규정이 없다. 검사에 대한 징계는 검사징계법에 따라 이뤄지는데, 이를 ‘검사 특혜법’이라고 지적하며 폐지하겠다는 설명이다.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정치 검사들의 반란에 철저하게 책임을 묻겠다”며 사실상 검찰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김 원내대표는 “정 법무부 장관께 강력히 요청한다. 항명 검사장 전원을 즉시 보직 해임하고 이들이 의원면직하지 못하게 징계 절차를 바로 개시하라”며 “항명에 가담한 지청장과 일반 검사들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이후 김 원내대표가 검사징계법 폐지 법률안·검찰청법 개정안을 각각 국회에 제출하면서 사실상 검찰 징계는 당론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항소 포기 논란 이후 박재억 수원지검장에 이어 송강 광주고검장이 연달아 사의를 표명했지만 민주당은 “사표를 수리하지 말고 징계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퇴로를 막았다. 항명? 투쟁? 법무부 내부에서 집단행동에 나선 일부 검사장을 대상으로 평검사 보직이동을 하거나 국가공무원법 위반 등으로 형사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검찰 측에서는 “보복용 강등”이라는 거센 반발이 나오지만 법무부는 “검사장은 직급이 아닌 보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강등·징계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검사장의 집단행동을 비판하며 징계의 타당성을 주장했지만, 일선 검사들은 항소 포기 판단 경위에 대해 추가 설명을 요청한 것이 어떻게 항명이냐며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그동안 민주당 의원들이 앞다퉈 일선 검사장을 향해 “빨리 나가라”고 윽박지르던 것과 달리 최근 지도부는 숨 고르기에 돌입한 모양새다. 국민의힘이 계속해서 이정부와 대장동을 엮어 공격하는가 하면, 이 대통령의 UAE(아랍에미리트) 순방 성과가 묻힐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톤 조절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는 이 대통령이 순방을 떠난 17일부터 이틀간 공개 석상에서 검사 항명, 징계 등 관련 현안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 등 일부 최고위원이 내란전담재판부 도입을 주장했으나 당은 “지도부 차원의 의견은 아니”라며 거리를 뒀다. 정 법무부 장관 역시 지난 18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검사장 징계 검토 관련 질문에 “어떤 것이 좋은 방법인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을 위해 법무부나 검찰이 안정되는 것”이라며 신중한 자세를 택했다. 낮은 볼륨을 유지하는 지도부와 달리 의원 개개인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한 라디오를 통해 정 법무부 장관의 ‘검찰조직 안정’ 발언에 대한 질문에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넘어가는 것이 조직의 안정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방법은 아니”라고 답했다. 이어 “정 법무부 장관은 법무부와 검찰 전체를 총괄하는 수장이기 때문에 고민이 있으신 것 같다”면서도 “다만 중요한 것은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현재 민주당이 내세우는 원칙은 항명 검사에 대한 징계로, 그 원칙을 지키는 것이 국민 여론이라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몰아붙이던 지도부 잠시 숨 고르기 이제는 각개전투…검사들도 ‘부글’ 민주당이 다수 석을 차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는 ‘집단 항명 검사장 18인’ 전원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항소 포기 결정에 반발하는 검사장 18명을 겨냥해 “헌정 질서의 근본인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검찰조직의 지휘 감독체계를 정면으로 무너뜨린 사건”이라고 비판하며 법적 조치에 나선 것이다. 지난 19일 법사위 여당 간사인 김용민 의원은 조국혁신당·무소속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며 “검찰의 집단 항명은 정치적 집단행동으로 헌정 질서를 훼손하는 중대 범죄”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의 행동은 단순한 의견 개진이 아니었으며 법이 명백히 금지한 공무의 집단행위, 즉 집단적 항명”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피고발인 18명은 모두 각 검찰청을 대표하는 검사장급 고위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이 누구보다 강하게 요구되는 위치에 있다”며 “그런데 이들은 서로 합의해 공동성명을 작성하고 이를 동시에 내부망과 언론에 공개했다. 이는 다수가 결집해 실력으로 주장을 관철하려는 집단적 압력 행위”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압박이 거세지자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뒤 검사들이 반격에 나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권력이 교체됨에 따라 검사의 태도 역시 손바닥 뒤집듯 바뀌고, 만일 보수 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갈 경우 검사의 날이 다시 이 대통령을 향할 것이란 점에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내년 10월 해체 예정인 검찰청이지만 막강한 권력을 지니던 시절의 관행을 버리지 못한다면 이들을 중심으로 정치 검찰의 모습을 한 또 다른 집단이 탄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검사 인사권은 법무부에 있다”며 이번 사안에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논란의 중심으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며 대통령실이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대통령실 외압’은 궁지에 몰린 국민의힘의 프레임”이라며 “만약 5년 뒤에 검찰이 반기를 들면 그때는 (이 대통령의 거취를) 국민 여론에 맡기면 된다. 지난 몇 년간 수십번의 압수수색과 조사가 이뤄졌고, 그 결과를 전부 국민이 지켜봤다”고 설명했다. 피바람 과도기 이 모든 과정을 놓고 최요한 정치 평론가는 “과도기”라고 설명했다. 최 평론가는 <일요시사>를 통해 “검찰이 하나의 권력으로 등장해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그 대상을 개혁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고, 이정부는 그걸 시스템으로 헤쳐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혁은 혁명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혁명은 싹을 자르면 되지만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며 “검사 징계, 검찰개혁을 놓고 같은 진보라 하더라도 결이 다르지 않나. 다양한 논의와 의견을 두들겨 맞춰서 하나의 안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혁안은 보수도 일정 정도 동의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스템 개혁이라는 건 단칼에 두부처럼 잘리는 게 아닐뿐더러 이정부가 끝날 때까지 (개혁을) 시도하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일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