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서 드러난 스포츠협회 민낯

재주는 선수가, 돈은 임원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빛이 밝을수록 그림자는 짙은 법이다. 선수들이 땀과 눈물로 쟁취한 메달의 이면이 드러나고 있다. 예상치를 크게 웃도는 성적에도 마냥 웃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4년마다 반복되는 ‘한여름의 꿈’. <일요시사>가 파리올림픽서 드러난 우리나라 대표팀의 명암을 조명했다.

지난달 26일(현지시각) 시작된 2024 파리 하계 올림픽(이하 파리올림픽)이 17일간의 열전을 뒤로하고 지난 11일 막을 내렸다. 32개 종목 329개 금메달을 놓고 경쟁한 파리올림픽서 한국은 금메달 13개를 따냈다. 당초 목표치였던 금메달 5개를 크게 상회한 수치다. 

낮은 기대
역대급 성적

한국은 21개 종목에 선수 143명만 파견했다.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 이래 48년 만의 최소 인원이다. 여자핸드볼을 제외한 단체 구기종목의 집단 부진이 영향을 미쳤다. 우리 선수단의 목표는 금메달 5개 이상 종합순위 15위였다. 효자종목인 양궁을 비롯해 펜싱, 배드민턴 등에서 메달을 예상했다. 

개막 전까지 화제성도 낮았다. 인기 종목인 축구, 야구, 배구 등이 본선 진출에 실패하면서 좀처럼 올림픽 분위기가 살지 않았다. 하지만 사격 100m 공기소총 혼성 단체서 박하준과 금하준이 은메달, 김우민이 남자 수영 400m 자유형서 동메달을 따내면서 분위기가 고조되기 시작했다. 

이후 여자 사격 10m 공기권총서 오예진이 금메달, 김예지가 은메달을 획득한 데 이어 양궁 여자 리커브 단체, 사격 여자 10m 공기소총, 양궁 남자 리커브 단체, 사격 여자 25m 권총 등에서 금맥이 터졌다. 특히 사격 대표팀은 금메달 3개, 은메달 3개를 따내는 등 예상 목표치를 크게 상회하는 성적으로 초반 화제성을 주도했다. 


‘전통의 금밭’ 양궁은 금메달 5개로 남녀 전 종목을 석권하는 기염을 토했다. 남자 대표팀 김우진과 여자 대표팀 임시현은 개인과 단체서 모두 금메달을 따내며 3관왕에 올랐다. 펜싱에서는 남자 사브르 단체서 금메달을, 오상욱은 사브르 개인전서도 금메달을 따내며 2관왕을 차지했다. 

총, 칼, 활 등을 사용하는 종목서 잇따라 메달을 획득해 ‘무기의 나라’라는 말이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돌기도 했다. 유도, 탁구 종목서도 메달이 쏟아졌다. 탁구 혼성 복식서 임종훈과 신유빈이 동메달을 거머쥐었다. 유도 여자 57㎏급에서 허미미가 은메달, 김하윤이 +78㎏급에서 동메달을 차지했다.

유도 혼성 단체전서도 동메달을 따냈다. 

안세영 작심발언에 체육계 발칵
사격연맹은 수장이 돌연 사임해

일찌감치 금메달 예상 목표치를 초과 달성하면서 한국 선수단의 분위기는 물론 국민의 응원도 고조됐다. 절정은 배드민턴 여자 단식에 출전한 안세영의 금메달 소식이었다. 안세영은 결승전서 중국의 허빙자오를 2대0으로 완파하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세계선수권대회, 아시안게임, 아시아선수권대회에 이어 올림픽까지 제패하면서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한국 배드민턴의 올림픽 단식 종목 우승은 남녀를 통틀어 1996 애틀랜타올림픽 방수현 이후 역대 두 번째이자 28년 만이다. 준결승 승리 직후 ‘낭만 있게 끝내겠다’는 말을 지킨 안세영은 자타공인 ‘셔틀콕의 여왕’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대관식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상황이 반전됐다. 

시상식을 마친 안세영은 공동취재구역서 “제 부상은 생각보다 심각했고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 대표팀에게 조금 많이 실망했었다”면서 “이 순간을 끝으로 대표팀이랑은 조금 계속 가기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는 작심발언을 쏟아냈다.


지난해 10월 2022 항저우아시안게임 결승전서 얻은 무릎 부상에 대한 대표팀의 대처 과정을 지적한 것으로 풀이됐다. 

이어진 공식 기자회견서도 안세영의 비판은 계속됐다.

그는 “제가 부상을 겪는 상황서 대표팀에 대해 너무 크게 실망했다.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안세영에 따르면 재검진서 부상 정도가 심했다고 한다. 그는 “처음에 오진이 났던 순간부터 계속 참으면서 경기했는데 지난해 말 다시 검진해보니 많이 안 좋더라”며 “꿋꿋이 참고 트레이너 선생님이 도와주셔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대표팀을 나가는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하면서 대한배드민턴협회를 직격했다.

독기 품은
셔틀콕 여왕

안세영은 “대표팀서 나간다고 해서 올림픽을 못 뛰는 것은 선수에게 야박하지 않나 싶다” “협회는 모든 것을 다 막고 자유라는 이름으로 방임한다” “우리 배드민턴이 많은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은데 금메달이 1개밖에 안 나왔다는 것도 돌아봐야 하지 않나 싶다” 등의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안세영의 예상치 못한 발언에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은퇴를 시사하는 것이라는 추측부터 배드민턴협회를 비난하는 목소리까지 여론이 들끓었다. 금메달을 딴 직후라 안세영에 대한 관심이 최고조에 이른 상황서 나온 폭로여서 그 파급력은 더 컸다. 이후 안세영은 SNS 글을 통해 각종 추측에 대한 진화에 나섰다. 

안세영은 “일단 숙제를 끝낸 기분에 좀 즐기고 싶었는데 그럴 시간도 없이 저의 인터뷰가 또 다른 기사로 확대되고 있어서 참… 저의 서사는 고비 고비가 쉬운 게 없다”고 말했다.

이어 “선수 관리에 대한 부분을 말씀드리고 싶었는데 본의 아니게 떠넘기는 협회나 감독님의 기사들에 또 한 번 상처를 받게 된다”며 “선수들이 보호되고 관리돼야 하는 부분 그리고 권력보단 소통에 대해서도 언젠가는 이야기해 드리고 싶었는데 또 자극적인 기사들로 재생되는 부분이 안타깝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누군가와 전쟁하듯 이야기해 드리는 부분이 아니라 선수들의 보호에 관한 이야기임을 이해해 주시기를 바란다”며 “은퇴라는 표현으로 곡해하지 말아달라”고 부연했다. 아울러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에 대해 한 번은 고민해주시고 해결해 주시는 어른이 계시기를 빌어본다”며 글을 맺었다.

이후 안세영의 발언에 배드민턴협회가 반박하는 양상이 이어지면서 사안은 진실공방으로 번지고 있다. 일단 김택규 배드민턴협회장은 “(안세영과)갈등은 없었다. 왜 그런 발언을 했는지 확인해보겠다”고 밝혔다. 이후 배드민턴협회는 안세영의 발언에 대한 입장을 담은 A4용지 10페이지 분량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대한체육회
조사 진행


배드민턴협회는 ▲안세영의 부상 방치 의혹 ▲(안세영의)개인 트레이너 계약 여부 ▲(안세영의)개인 자격 대회 출전 가능성 등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지난 7일 입국한 안세영은 “난 싸우려는 의도가 아니라 운동에만 전념하고 싶은 마음을 호소하기 위해, 그렇게 이해해 달라는 마음으로 말씀드린 것”이라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표했다. 그러면서 자세한 내용은 대회 후에 말하겠다며 말을 아꼈다.

안세영과 배드민턴협회의 갈등은 체육계 전반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대한체육회는 감사원 출신 감사관, 경찰 수사관 출신 체육회 청렴시민감사관과 국민권익위 출신 감사관, 여성위원회 위원 등 외부 감사 전문과 4명과 체육회 법무팀장, 감사실장으로 조사위를 꾸려 본격적인 조사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잡음이 나오는 건 배드민턴만이 아니었다. 파리올림픽서 역대급 성과를 거둔 사격서도 수장이 논란에 휩싸였다. 대한사격연맹 관계자는 지난 6일 “신명주 회장이 갑작스럽게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올림픽 기간에 불거진 신 회장의 임금체불 논란과 무관하지 않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경기 용인시에서 종합병원인 명주병원을 운영하는 신 회장은 대한하키협회 부회장을 거쳐 지난 6월 사격연맹 회장에 취임했다. 사격연맹은 2002년부터 한화그룹이 회장사를 맡아오다 지난해 11월 물러나 6개월 넘게 회장 자리가 공석이었다.

명주병원은 최근 고용노동부에 임금이 체불됐다는 관련 신고가 100건 이상 접수된 것으로 전해졌다. 


4년에 한 번 ‘반짝’ 이슈로
지속적인 관심 있어야 변화

당장 포상금 문제도 불거졌다. 파리올림픽서 메달을 딴 5명에 대한 포상금 지급을 논의해야 할 시기에 신 회장이 갑작스럽게 사임하면서 사격연맹은 난처한 상황에 처했다. 이들에게 지급해야 할 포상금은 규정에 따라 총 3억1500만원(선수 2억1000만원, 지도자 1억500만원)이다.

신 회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서 “사비를 털어서라도 포상금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체육계 등에서는 매번 올림픽 때마다 일어나는 일이 또다시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파리올림픽서 전 종목 석권이라는 금자탑을 세운 양궁협회는 4년마다 국민적 지지를 받는다. 공정하고 깨끗한 선수 선발 방식, 물심양면의 지원 등 양궁협회와 협회장인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에 대한 칭송이 높다. 

그와 동시에 선수 지원이 부족한 협회에 대한 비판도 빗발친다. 최근 배드민턴협회와 사격연맹서 문제가 불거지면서 대한배구협회의 과거 행보가 재조명되는 것도 그 한 예다. 여자배구 대표팀은 ‘배구 여제’ 김연경을 필두로 세계 4강을 두 번이나 노크했다.

특히 지난 도쿄올림픽에서는 이번 올림픽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타 종목서 메달 레이스가 부진해 여자배구 대표팀의 활약이 국민에게 큰 즐거움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아시안게임, 올림픽 등 굵직한 대회서 높은 성적을 거둔 여자배구 대표팀에 대한 배구협회의 지원은 그에 미치지 못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2014 인천아시안게임 ‘김치찌개 회식’, 통역사 없이 대회를 치른 2016 리우올림픽 ‘부실 지원’, 귀국 후 논란 발언으로 난리가 났던 2020 도쿄올림픽까지 배구협회의 ‘흑역사’는 그 면면도 화려했다. 

좋든 나쁘든
지나면 끝

하지만 일각에서는 4년에 한 번 쏟아지는 ‘반짝 관심’으로는 엘리트체육의 고질적인 병폐를 바꿀 수 없다는 냉소적인 반응도 나온다. 메달을 많이 따든 적게 따든 국민의 관심은 잠깐에 불과하기에 대대적인 변화를 바라는 건 욕심이라는 지적이다.

체육계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좋은 이슈든, 나쁜 이슈든 한 달이면 다 사라질 것”이라며 “4년 뒤에야 또다시 관심을 받을 것”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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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12·3 계엄 당일 내란 주동자들은 정치인과 판사 등 자신들이 반국가 세력으로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위해 서둘렀다. 하지만 준비가 된 것은 각 군의 사령관들뿐이었다. 계엄사령부와 합동수사본부의 설치는 훈련 상황서도 24시간가량 걸리는데 이를 간과한 것이다. 미리 계엄을 준비했다는 증거가 계속해서 나오는 상황에 실무진에게 준비시키지 않은 점이 의문점으로 남아있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내란 주도자들이 정치인과 판사 등 ‘좌파세력’이라고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그 내막에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이하 합수본)의 미설치가 있다. 진술 나오자 다른 전략 <일요시사>가 검찰 진술 조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계엄이 시작된 계기와 14명의 체포 미수 및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불법 점거의 실패 이유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를 꼽았다.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 국회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대립은 심각했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야당은 자기들끼리 뭉쳐서 법안을 통과시켰고 윤 전 대통령은 재의요구권을 사용했다. 또 야당은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를 수사한 검찰들에 대한 탄핵을 시도하고 김건희씨와 관련한 특검법을 계속 발의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27일경, 윤 전 대통령이 관저 식사 자리서 “수사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검사를 탄핵하고, 재판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판사를 탄핵하고, 헌법재판소가 마음에 안 들면 정족수를 자르고, 이게 나라냐.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국가 세력의 준동에 관해 청주간첩단 및 창원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수사 과정서 잡은 인원들을 판사 기피 신청이 들어오면 단기간에 결정하는 것이 상식인데 6개월이나 결정을 하지 않아 간첩들의 구속 기간이 끝나 다 풀려나 돌아다니는데도 이런 것을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니 나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미래 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비상계엄)이 필요하겠다”고 강조했다. 일주일이 지난 후 윤 전 대통령은 김 전 장관에게 “야당의 패악질로 나라의 미래가 없다. 국가 비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들은 비상계엄 관련 논의를 했다. 이때 체포 명단인 이른바 ‘좌파 세력’ 14명의 명단과 군대를 어떻게 투입할지 등을 확정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들은 체포 명단의 사람들의 신병을 확보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게다가 내란 주동자들은 검찰 진술과 형사 법정 등에서도 체포하려 하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합수부 미설치로 체포 불가” “합수부 없어 시작부터 위법” 김 전 장관은 검찰에 “주요 정치인 등에 대한 검거를 시도한 바 없다. 혐의가 있어야 검거를 시도하지 않겠냐”며 “언론에 나오는 위치 추적 등은 포고령에 따라 정치활동이 금지되고 있는 상황이니 주요 정치인 몇 분과 부정선거 등과 관련해 사회서 의혹이 제기되는 사람들의 위치를 미리 파악하라고 이야기한 것일 뿐”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과 작전에 투입된 군인들의 진술로 체포 명단이 실제로 존재했으며 체포를 지시하고 시도했다는 것마저 모두 드러났다. 체포 시도가 있었다는 진술이 계속해서 나오자 내란 주동자들은 다른 전략을 세우게 된다. 바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다. 김 전 장관은 검찰 진술서 합수본이 미설치돼 체포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계엄사령부와 합수본이 설치되는 과정이라 검거가 불가능하다”며 “합수본이 설치되려면 검찰과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데 아무런 대비도 없이 체포부터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진술했다. 김 전 장관의 진술은 계엄 직후 선관위에 국군 정보사령부 부대원들을 보내 선거인 명부 관리 서버를 장악하고 선관위 당직자들에 대한 통신 제한(휴대전화 압수)과 감금이 위법한 수사 활동임을 나타내고 있다. 계엄이 터지면 통상적으로 합수본 역할을 맡는 국군 방첩사령부 관계자도 검찰 진술 당시 선관위 투입은 잘못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영희 방첩사 비서실 1과장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방첩사 소속 군인들로 하여금 중앙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도록 지시하거나 계엄 해제 이후 관련 증거를 제거하도록 시킨 것은 자신들의 정당한 권한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성 미리 알고? 박성하 방첩사 기획조정실장은 “현장에 나가 있던 소위 체포조에 대해서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면서도 “하지만 전시에도 방첩사가 일부 범죄에만 수사권이 있기 때문에 전시나 계엄 상황이라도 관할권이 없는 선관위나 정치인 등 체포나 점거는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게다가 합수본(방첩사)은 직접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역 합수단서 해야 할 일을 방첩사 인원으로 진행한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한 군검찰 출신 변호사는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임명하는 군사경찰 관리, 경찰공무원, 국가정보원 직원 중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 그 밖에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로 구성된다”며 “또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지정한 사건의 수사와 정보기관 및 수사기관의 조정·통제업무를 관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선관위로 투입된 인원들은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지도, 임무를 하달받지도 않았다”며 “게다가 합수본까지 설치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시작부터 위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보사와 방첩사 모두 계엄사령군(군사경찰)이 아니기에 정당한 절차가 없었다면 반란군이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점은 계엄 업무를 해본 김 전 장관이 왜 무리수를 뒀는지다. 김 전 장관은 대한민국 합동참모부서 작전본부장을 역임한 바 있다. 합참 작전본부에는 계엄과가 편제돼있기 때문에 김 전 장관이 계엄군과 합수본 지정 및 운용 등을 몰랐다고 보기 힘들다. 합참 계엄과서 편찬하는 계엄실무편람에도 잘 나와있기 때문이다. 김 전 장관은 논란을 줄이기 위해 계엄이 선포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화상으로 개최하면서 박안수 전 육국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을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일부 사령관 등에게만 공유됐던 12·3 계엄 작전은 계엄사령부가 설치되기도 전에, 합수본이 설치되기도 전에 끝났다. 사령부만 알았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 조서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부 사령관에게 국회와 선관위 출동을 하면서 방첩사에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해서 임무 수행을 하라고 지시했다. 김 전 장관이 방첩사에 지시한 임무는 경찰과 국방부 조사본부에 100명씩 인원을 요청하고 선관위로 먼저 투입된 국군 정보사령부가 접수한 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라는 지시였다. 국방부 조사본부와 경찰에 인원 요청을 한 것은 정치인, 판사, 등 민간인 체포를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조사본부는 방첩사가 요청한 수사관 지원 요청을 4차례 거절했다. 조사본부 한 관계자는 검찰 조사 당시 “지난 3일 계엄령 선포 이후 방첩사로부터 수사관 100명 지원을 네 차례 요청받았지만, 근거가 없다고 판단해 응하지 않았다”며 “이후 합수본 실무자 요청에 따라 시행 계획상 편성돼있는 수사관 10명을 지난해 12월4일 오전1시8분 출발시켰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의 수사관 파견 요청에는 불응했고, 계엄 시행 이후 방첩사를 중심으로 꾸려지는 합수본 요청에는 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사관이 파견된 시간은 이미 계엄 해제 의결이 이뤄진 뒤였다. 합수본이 계엄 해제와 비슷한 시기에 모양새라도 갖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 전 장관이 계엄 직후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여 전 사령관에게 합수본 설치를 지시했지만 설치가 늦어진 이유가 있다. 방첩사에 내려진 지시는 좌파세력 체포와 합수본 설치, 검찰과 경찰 및 국방부 조사본부 등에 협조 요청 등으로 내란 주동자들에게는 어느 것 하나 미룰 수 없는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 기획조정실장은 “부대에 도착해보니 OOO회의실에 여 전 사령관이 이경민 참모장, 이창엽 비서실장과 같이 있었다”며 “합수본 설치 지시를 받으려 사령관에 물어봤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여 전 사령관이 다른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합수본부장으로 임명됐다. 우리 대원들은 다 나가 있다’고 말하며 통화에만 집중했을 뿐 합수본 설치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계엄 6개월 전부터 준비 실무진만 ‘닭 쫓던 개’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국가적으로 엄중한 상황이 될 텐데 방첩사는 계엄 선포 예정 사실을 알고 준비하지 않았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계엄이 선포되면 합수본을 설치해야 하는 사람이 나다. 하지만 나는 해당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체포조를 운영한 수사단장도 해당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 그는 “방첩사 비상소집이 완료된 시간이 지난해 12월4일 오전 1시4분”이라며 “합수본은 기본 시설도 갖추지 못한 상태서 계엄이 해제됐다”고 말했다. 방첩사 인원들이 전원 소집되는 시간에 이미 계엄은 해제된 것이다. 방첩사의 작전 계획상에는 상황실 설치에 8시간, 합수본 설치에 24시간을 예정하고 있는데 비상계엄이 3시간 만에 해제됐다. 본부 설치에만 24시간이 걸리며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아 합수본을 완전히 구성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한 군사학과 교수는 “계엄 선포에 대해 사령관과 참모진 외에 실무자에게도 공유가 됐다면 미리 합수본 설치를 준비하고 있다가 계엄이 선포된 후 바로 체포를 진행했을 것”이라며 “이번 계엄의 패착은 이전 계엄과 달리 빠르게 대처한 국회를 막지 못한 것과 계엄사령부부터 합수본까지의 실무자들이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방첩사 사령부에서는 미리 계엄 준비를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방첩사 소속 간부 A씨는 검찰 조사에서 “방첩사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체결한 MOU에 언급된 ‘합동수사본부’는 계엄 시 설치되는 합수부가 맞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와 국수본은 지난해 6월28일 ‘안보범죄 수사 협력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합동수사본부 설치 시 편성에 부합하는 수사관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방첩사가 계엄을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지휘부에서 최초에는 지난해 5월 초순경 3주안에 체결하라는 지시를 했다”며 “보통 미국 국방정보국(DIA) 등 해외정보수사기관과 이런 MOU를 맺고, 국내 기관은 관련 법령이 있어 MOU를 맺지는 않는다. 국내 기관과 MOU를 맺은 건 이번이 처음이고, 굳이 이런 MOU를 맺는 게 의아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다만 조지호 경찰청장은 해당 MOU에도 불구하고 계엄 당일 수사관 지원 요청을 이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조 청장은 지난 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 나와 “방첩사 주관으로 수사본부가 꾸려질 수 있으니 경찰서 필요한 인력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준비하겠다고 했다”고 밝혔으며 계엄 당일 수사관 81명이 방첩사 요청으로 대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두환과 구상 흡사 내란 주동자들은 경찰력을 대거 방첩사로 파견해 합동수사본부를 꾸리고 정치인 체포 작전을 벌일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79년 비상계엄하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만든 합수본과 흡사한 구상이다. 당시 합수본은 정권에 반대하는 정치인에 대한 정보 기능을 도맡아 12·12 군사 반란의 수괴인 전두환씨가 권력을 장악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됐다. <kcj512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계엄 사령부 구성도 완전 실패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계엄사령부는 구성조차 못했다. 권영환 전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계엄과장은 계엄이 선포된 후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으로부터 ‘계엄사령부 설치를 도와라’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그는 육군 본부 참모진들이 올라올 때까지 계엄사 상황실 구성 준비를 했다. 계엄이 선포되면 계엄사에는 2실(비서실, 기획조정실) 8처(정보처, 작전처, 치안처, 법무처, 보도처, 동원처, 구호처, 행정처)를 구성하도록 돼있으나. 권 전 과장이 계엄사 상황실을 구성하고 있을 당시 국회에서는 ‘비상계엄해제 요구결의안’이 가결됐다. 당시 권 전 과장이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에게 “(계엄해제 요구안이 가결됐으니) 법률상 지체 없이 계엄을 해제하도록 돼있다”고 말하자 박 전 총장은 “그런 것을 조언할 것이 아니라 일이 되게끔 만들어야지 일머리가 없다”며 “올해 연습을 두 번이나 했다고 하면서 구성을 왜 빨리 못하냐”고 꾸짖었다고 한다. 이는 내란 주동자들이 2차 계엄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계엄사 구성의 역할이 합참에 있었다는 것을 내포하는 대목이다.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