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경기 시각장애인연합회 차량 이용료 대납 의혹

센터장 보호 차원서 내줬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아내의 유품에는 생전의 괴로움이 가득했다.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흔적, 동료의 고통을 보며 분노한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남편은 아내의 고통을 새카맣게 몰랐다며 자책했다. 남편이 찾아낸 아내의 메모와 글이 세상에 드러난 순간, 오랜 시간 고여 있던 물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동료를 도와주면 다음 타깃이 됐다. 문제를 제기하면 권한이 없다는 말이 돌아왔다. 2015년부터 최소 3명의 직원이 송사에 휘말렸지만 변화는 없었다. 그사이 한 사람은 죽고 한 사람은 사선을 넘었다가 돌아왔다. 직원이 6명 남짓한 양평군 장애인생활이동지원센터(이하 양평군센터)서 일어난 일이다. 

망인의 메모

장애인생활이동지원센터는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의 이동을 돕기 위한 지역사회 재활사업의 일환이다. 시도 단위의 지부가 관리‧감독하는 시군구 단위의 지회가 운영한다. 양평군센터의 경우, 경기도 시각장애인연합회가 관리하는 양평군지회가 운영 주체다. 양평군과 경기도는 각각 90%, 10%의 보조금을 지원한다. 

양평군센터의 배차 상담원이었던 윤모씨는 2020년 6월 암으로 사망했다. 윤씨의 남편은 망인이 된 아내가 생전에 당시 양평군지회 부회장이자 양평군센터 운영위원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해당 인물은 2022년 양평군 지회장으로 취임한 장모씨다.

윤씨는 사망하기 직전까지도 장 지회장이 자신을 비롯한 동료를 괴롭히고 있다는 내용 등의 민원을 제기했다.


윤씨는 사망(2020년 6월28일) 직전 총 3건의 민원을 제기했다. 2020년 6월24일 ‘직장 내 괴롭힘, 성추행의 고충 처리 요청에도 아무런 조치 없는 사측’ ‘양평군청 주민복지과 담당자와 군수님께’ 등 2건, 같은 달 28일에 ‘양평군 시각장애인연합회 부회장, 임원의 직장 내 괴롭힘’ 등이다.

이 중 양평군청 담당자와 군수를 상대로 한 민원은 취하했다. 

민원은 윤씨가 장 지회장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며 도움을 요청하는 내용으로 가득했다. 윤씨는 “사람이 견딜 수 있는 도를 넘어 죽고 싶은 지경이 되는 게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남아 있는 다른 동료들을 괴롭히는 것을 여기서 멈추게 하고 싶습니다” “죽고 싶습니다” “도와주세요” “남은 내 사랑하는 동료들 그들만이라도 지켜주세요” 등 강하게 호소했다.

하지만 윤씨는 생전에 변화를 보지 못했다. 대신 윤씨의 남편이 나섰다. 윤씨의 남편은 아내가 사망한 뒤에야 상황을 알게 됐고 장 지회장을 상대로 민형사상의 소를 제기했다. 형사 건은 경찰 선에서 ‘무혐의’ 처리됐지만 민사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는 항소심 재판부가 윤씨 측의 손을 들어줬다. 

수원지방법원 제8민사부는 장 지회장이 윤씨에게 한 일부 행위를 ‘직장 내 괴롭힘’이라고 판단하고 위자료 2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시했다. 윤씨의 남편은 “위자료는 소송비용과 상계 처리돼 한 푼의 돈도 받지 못했다”면서도 “재판부가 아내가 당한 일이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인정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양평군센터 상황에 밝은 박모씨는 “그 한 줄의 판결을 얻기 위해 2년을 매달렸다”고 전했다. 윤씨의 남편이 받은 판결은 동료의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다는 내용의 유서를 쓰고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던 양평군센터 정모씨 역시 장 지회장을 상대로 민형사상의 소를 제기했다. 

윤씨가 남긴 것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윤씨의 남편은 아내의 유품을 정리하던 도중 발견한 메모를 근거로 민원을 제기했다. 당시 양평군 센터장이었던 김모씨를 비롯한 일부 직원들이 차량을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하고 비용 처리를 하지 않은 점을 지적한 내용이었다.


양평군 센터 차량을 사적으로 이용한 인물 가운데는 장 지회장도 포함돼있었다. 

윤씨의 남편이 제기한 민원을 토대로 양평군은 지도점검에 나섰고 2014년부터 2019년까지 6년에 이르는 운행일지를 파악해 행정처분을 내렸다. 양평군이 2021년 1월22일 양평군센터에 내린 행정처분명령서에 따르면, 총 10명이 이용료 156만2500원 만큼의 차량을 부당하게 사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2021년 부적정 차량 이용 적발
3년4개월 만에 수입으로 처리돼

양평군은 “부적정 차량 이용료에 대해 차량 이용료 수입금으로 반환하라”는 내용의 개선명령을 내렸다.

문제는 2021년에 1차 행정처분 이후 최종적으로 차량 이용료 수익금이 양평군센터에 반환되기까지 무려 3년 이상의 기간이 소요됐다는 점이다. 양평군이 추가로 행정처분을 진행하고 양평군센터가 행정소송까지 제기했다 기각된 끝에 지난 5월24일에야 마무리됐다.

양평군은 2022년 12월26일 양평군센터를 상대로 “‘부적정 차량 이용료에 대해 차량 이용료 수입금으로 반환’ 명령을 미이행한 사실이 있다”면서 이행을 촉구했다. 2차 행정처분명령서에 따르면 8명의 차량 이용료 121만3440원이 여전히 수입금으로 처리되지 않은 상태였다. 양평군은 사회복지사업법 제54조(벌칙)를 들어 고발 조치할 수 있다는 입장도 전했다. 

하지만 양평군센터는 양평군의 2차 행정처분에 반발해 경기도행정심판위원회에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양평군의 2차 행정처분이 무효라는 취지다.

경기도행정심판위원회는 지난해 3월15일 양평군센터의 청구를 기각했다. 양평군의 행정처분이 유효하다는 판단이 나오면서 양평군센터는 차량 이용료를 수입금으로 반환하라는 개선명령을 이행해야 했다. 

특히 양평군의 행정처분이 이미 2차까지 이뤄진 터라 양평군센터의 상황은 더욱 복잡했다. 행정처분이 3차까지 진행되면 ‘시설장 교체’가 불가피하기 때문. 이미 양평군의 행정처분이 이뤄지는 동안 양평군센터의 센터장은 수차례 바뀌었고 마지막 행정처분이 이뤄진다면 현 센터장인 최모씨가 그 책임을 뒤집어써야 할 판이었다. 

눈여겨볼 만한 대목은 이 과정서 경기도 시각장애인연합회가 개입했다는 사실이다. 경기도 시각장애인연합회는 차량을 부적정하게 이용한 것으로 확인된 8명 가운데 이미 차량 이용료를 납부한 4명을 제외한 나머지 4명의 이용료를 대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장 지회장을 비롯한 4명의 차량 이용료는 총 109만6000원이다. 장 지회장 33만6900원, 신모씨 1만7800원, 한모씨 78만900원, 허모씨 1만400원 등이다. 

경기도 시각장애인연합회는 5월23일 ‘사단법인 경기도 시각장애인연합회’ 이름으로 109만6000원을 양평군센터 계좌에 입금했다. 양평군센터는 하루 뒤인 5월24일 109만6000원을 ‘군청 행정소송 관련 차량 이용료 수익금 반환’이라는 내용으로 수입 처리했다.


이후 양평군에 행정처분 개선명령을 이행 완료했다고 보고했다. 첫 행정처분 이후 3년4개월 만이다.

의문점은 왜 경기도 시각장애인연합회가 양평군센터서 발생한 차량 이용료 문제를 해결해줬느냐는 점이다.

정태곤 경기도 시각장애인연합회 회장은 <일요시사>의 질문에 “센터장 보호 차원이었다”고 해명했다. 한 차례 더 행정처분을 받으면 센터장이 물러나야 하는 상황서 부득이하게 조치를 취했다는 주장이다. 경기도 시각장애인연합회는 회의를 거쳐 해당 조치를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서 정 회장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양평군서도 (연합회에)찾아왔었다. 장 지회장 등에게 차량 이용료를 내라고 설득하기도 했다. 하지만 장 지회장 등이 내지 않겠다고 버텨서 궁여지책 끝에 처리한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도 시각장애인연합회서 대신 내준 차량 이용료를 장 회장 등에게 받았느냐는 <일요시사>의 질문에 “요청하지 않았다”면서도 “앞으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상한 결론


양평군센터 관계자는 “센터장 보호 차원서 차량 이용료를 대납해줬다는 경기도 시각장애인연합회의 해명은 믿기 어렵다”며 “그럼 그동안 임기를 다 채우지도 못하고 몇 개월 만에 날아간 센터장들은 왜 보호하지 않았나. 원래 지회장과 센터장은 임기를 같이 하는데 장 지회장 취임 이후 벌써 센터장이 4번이나 바뀌었다”고 지적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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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