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평구 일본도 살인사건 전말

75cm 칼날 마구 휘둘렀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서울 시내서 일본도로 잔혹하게 살해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가해자가 ‘피해자가 스파이였다’는 이상한 진술을 하면서 정신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이 도검 소지를 허가받았다는 문제 제기도 이어졌다. 경찰이 뒤늦게 도검류 검사 강화와 개정을 하겠다고 나섰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 은평구 아파트단지서 두 아들을 둔 아버지가 일본도에 살해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가해자 백모씨가 최근 1년 동안 총 7건의 경찰에 신고된 것이 알려지며 도검 소지 허가제에 대한 개선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잔혹한 칼부림

서울 서부경찰서는 아파트 정문 앞에서 흉기를 휘둘러 같은 단지 주민인 남성 A씨를 살해한 혐의(살인)로 백씨를 긴급체포했다. 백씨는 지난달 29일 오후 11시30분께 잠깐 담배를 피우러 나온 A씨를 날 길이 75cm의 일본도로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백씨는 범행 전 골프 가방에 범행에 썼던 일본도를 넣은 채 아파트 단지 정문 근처를 수분 동안 배회하다 담배 피우러 나온 A씨를 마주치고 일본도를 들고 다가가 시비를 걸었고, A씨가 경찰에 신고하려고 하자 흉기를 휘둘렀다.

A씨는 칼에 찔린 뒤 경찰에 신고하며 도망갔지만 백씨가 인도서 주차장 입구까지 따라가며 여러번 더 칼을 휘둘렀다고 한다. 백씨는 범행 직후 자기 집으로 도주했으나 1시간 만에 경찰에 붙잡혔다. A씨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구조대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결국 숨졌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백씨는 “누군가 내 귀에 도청장치를 설치했다”며 “피해자가 자신을 감시하는 ‘현 정권서 보낸 스파이’라고 생각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경찰에 따르면 백씨는 당시 술을 마신 상태는 아니었다. 게다가 백씨는 정신질환 관련 치료나 약물 복용 이력조차 없었다. 경찰은 백씨가 마약을 복용한 것인지 의심하고 있다. 다만 그가 경찰의 간이마약검사를 거부한 만큼 경찰은 마약류 등 관련 압수영장을 신청하고 정신감정도 의뢰한 상황이다.

당초 백씨의 진술이 보도된 이후 백씨가 ‘심신미약’을 노리고 있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한 형사소송 전문 변호사는 “말도 안 되는 진술로 심신미약 판정을 받은 선례가 존재한다”며 “다만 피의자의 진술만으로 심신미약을 인정받는 경우가 흔한 것은 아니다. 정신감정 결과와 법원의 판단을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아파트단지 주민 따라가며 칼질
도검 허가 후 7번 경찰 신고당해

이 같은 예상과 달리 백씨는 오히려 심신미약이 아니라고 당당히 주장했다. 그는 지난 1일 서울서부지법 이순형 영장전담 부장판사 심리로 열리는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 취재진에게 “나는 멀쩡했고 심신미약 상태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백씨는 취재진이 ‘일본도를 구매한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묻자, “중국 스파이를 처단하기 위해 샀다”고 답했다. 또 ‘미리 살해 계획을 세웠는가’라는 질문에는 “저는 나라를 팔아먹는 중국과 함께 팔아먹는 김건희와 중국 스파이를 처단하기 위해 이 일을 했다”면서 “김건희 여사와 중국 스파이는 중국과 함께 한반도 전쟁을 일으키려고 했다. 그래서 제가 이 일을 하게 됐고 저는 심신미약이 아니다”고 말했다.


‘마약 검사를 왜 거부했느냐’는 물음에는 “중국 스파이가 마약을 얘기하기 때문”이라면서도 “유가족에게 미안한 마음도 없다”고 말히기도 했다. 

이런 모습에 법조계에서는 이번 사건이 일반적인 살인보다 가중처벌될 것이라고 봤다. 복수의 법조계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에 징역 15년 이상의 형을 예상했다. 한 변호사는 징역 25년 이상의 중형을 예측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에 따르면 일반적인 살인은 기본 10~16년이 양형기준으로 정해져 있다. 

법조계서 가중처벌을 예상한 이유는 백씨의 평소 행실과 관련이 있다. 서부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1월 이후 백씨와 관련해 접수된 112 신고는 총 7건으로 집계됐다. 백씨는 지난 1월 경찰로부터 장식용 도검 소지 승인을 받았고 그 이후부터 그에 대한 경찰 신고가 끊이지 않은 것이다.

신고가 접수된 지역은 다양했다. 백씨가 거주하는 은평구뿐만 아니라 종로구서도 백씨 관련 신고가 들어왔다. 대부분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다’ ‘시끄럽게 소란을 부리면서 시비를 건다’는 식이었다.

7건의 신고 가운데 도검과 직접 관련한 내용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백씨는 평소 일본도를 들고 다니면서 아파트 놀이터에 있는 아이들에게 칼싸움을 하자고 하는 등 이상행동을 보여왔다고 한다. 게다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백씨가)항상 신줏단지 모시듯 낚시가방 같은 걸 꼭 들고 다녔다’는 목격담이 올라오기도 했다.

낚시가방 안에 일본도를 가지고 다녔다는 취지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범인이 피해자를 도검으로 여러 번 찌르고 베며 잔혹하게 살해한 점과 장식용 도검을 갈아 흉기로 만든 점, 항상 도검을 갖고 다닌 점을 고려해 볼 때 우발적인 범행이라고 보긴 힘들다”며 “물론 피해자 A씨를 염두에 두고 진행한 것은 아닐 테지만 이런 점은 가중처벌의 가능성을 더 높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스파이 처단하려고” 장검 구입
장식용 도검 관리 곳곳에 구멍

일본도로 일어난 살인사건은 이번 사건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6월 경기 광주에서는 평소 ‘고령의 무술인’이라며 언론에 여러 번 소개되기도 했던 70대 남성이 101㎝ 길이의 일본도로 주차 시비가 걸린 50대 남성의 양쪽 손목을 절단하는 사건이 발생한 바 있다.

손목이 잘린 피해자는 과다출혈로 인한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옮겨졌으나 끝내 숨졌다.

지난 2021년에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서는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집을 나와 이혼소송을 준비하던 아내를 남편이 일본도로 살해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일본도 살인사건이 계속 발생하자 도검 소지 허가 제도에 대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현재 총포화약법상 칼날 15㎝ 이상의 도검을 구입하려면 인근 경찰서로부터 허가를 받아야 한다. 신청인이 운전면허가 있다면 신체·정신 건강 검사서 등을 별도로 제출할 필요가 없다.


3년마다 소지 허가를 갱신해야 하는 총포와 달리 도검은 갱신 의무도 없다.

대신 경찰은 알코올·마약중독자나 정신질환자, 전과자가 도검을 소지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매년 6~8월 일제 점검을 진행한다. 소유주가 도검을 직접 경찰서에 들고 가 면담하는 방식으로, 경찰은 이때 도검 개조 여부나 소유주의 정신 건강 등을 확인한다.

하지만 이마저도 허가증 보유자 수가 너무 많아 연도를 쪼개 일부만 검사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느슨한 관리 탓에 칼부림 사건을 막지 못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된 셈이다.

이 같은 지적에 경찰청은 이달 31일까지 한 달간 전체 소지허가 도검 8만2641정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한다고 지난 1일 밝혔다. 도검은 칼날 길이 15㎝ 이상의 칼, 검, 창 등이다.

허가 이유?

신규 소지허가 절차도 강화한다. 신규 소지허가 시 적격 여부를 심사하고, 경찰서 담당자가 신청자를 직접 면담한다. 위험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경찰서 범죄예방대응과장을 위원장으로 심의위원회를 개최해 허가 여부를 판단한다.


아울러 신규허가 시 신청자의 정신질환 또는 성격장애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서류를 제출하도록 하는 총포화약법 개정도 추진한다. 허가 갱신 규정도 함께 마련할 예정이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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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