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이슬처럼 떠난 김민기

너희가 김민기를 아느냐

[일요시사 취재1팀] 최윤성 기자 = 대학로 소극장 학전을 이끈 가수 김민기가 암 투병 끝에 향년 73세로 세상을 떠났다. 김민기의 비보에 대중문화계 인사들의 추모 물결이 이어졌다. 김민기는 ‘아침이슬’ ‘상록수’ 등 민중가요를 통해 민주정신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또 한국 대중음악과 공연예술계에 큰 획을 그으며 큰 업적을 남겼다. 김민기는 학전에서 수많은 후배 예술인을 키워냈고 대중문화 발전과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헌신한 뒷것 인생을 살다 떠났다.

서울 대학로 소극장 ‘학전’을 이끈 연출가이자 ‘아침이슬’을 부른 가수·작곡가 김민기가 지난 21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73세. 학전 관계자들은 지난 22일 “김민기가 21일 오후 8시20분쯤 세상을 떠났다”고 전했다. 김민기는 지난해 가을, 위암 4기 진단을 받았다. 

병세 악화
추모 행렬

지인들에 따르면 최근까지 경기 고양시 일산 집에서 통원하며 항암치료를 받아왔지만, 암세포가 간까지 전이된 상태라 시간이 갈수록 급격히 병세가 악화한 것으로 전해졌다. 

학전 측은 이날 “조의금과 조화는 고인의 뜻에 따라 정중히 사양한다”며 “빈소 및 발인 등 모든 장례 절차는 취재진에게 비공개로 진행된다” “조용히 장례를 치르고자 하는 고인의 뜻을 따를 수 있도록 마음으로 애도해달라”고 당부했다.

김민기의 조카이자 학전 총무팀장인 김성민은 지난 22일, 서울 대학로 학림다방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댁에서 요양 중이던 선생님(김민기)의 건강이 지난 19일부터 안 좋아졌고 20일 오전 응급실을 찾았다”며 “병원에 갔을 때부터 상태가 좋지 않다가 다음날 오후 8시26분에 돌아가셨다”고 밝혔다.

이어 “갑작스럽게 떠나셨지만 3∼4개월 전부터 가족 등 가까운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많이 하셨다”며 “학전과 관련해선 ‘지금 끝내는 게 맞다. 나는 할 만큼 다 했다’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이후 지난 24일 오전 8시 빈소가 마련됐던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고인의 발인식이 엄수됐다. 별도의 영결식은 진행되지 않았다. 발인식이 끝난 후 장지인 천안공원묘원에 향하기 전 서울 대학로에 위치한 ‘아르코꿈밭극장’ 마당을 들렀다.

이곳에는 아르코꿈밭극장을 운영하고 있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정병국 위원장을 비롯해 설경구, 장현성, 황정민, 이황의, 최덕문, 방은진, 배성우, 가수 박학기, 박승화(유리상자), 유홍준 교수 등 김민기와 추억을 함께한 이들이 모여 그의 마지막 길을 눈물로 배웅했다. 

정치계 인사들의 추모 물결도 더해졌다. 윤석열 대통령, 문재인 전 대통령,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당 대표 후보,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 등 애도의 뜻을 전했다.

김민기는 1951년 전북 익산에서 10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경기중·고등학교를 나와 지난 1969년 서울대학교 회화과에 입학한 뒤 미술을 접고 가수의 길로 접어들었다. 획일적인 수업 방식에 거부감을 드러낸 그는 1학년 1학기를 마친 뒤 고등학교 동창 김영세와 포크 듀오 ‘도비두’를 결성해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마지막까지 학전 들리고 떠나
“떠나기 전 고맙다는 말 전해”

이듬해 김민기는 명동 와이더블유시에이(YWCA) 회관의 ‘청개구리의 집’에서 공연을 열며 그를 대표하는 곡 ‘아침이슬’과 ‘가을편지’ ‘꽃 피우는 아이’ ‘친구’ 등을 작곡했다. 그러나 김민기의 음악 활동은 시작부터 고난의 연속이었다. 

지난 1972년 서울대학교 문리대 신입생 환영회에서 민중가요를 가르치다가 경찰에 연행돼 고초를 겪었다. 당시 가르쳤던 ‘꽃 피우는 아이’가 금지곡으로 지정되면서, 음반 활동에도 타격을 받기 시작했다. 김민기의 이름이 올라가 있으면 사전 심의 통과가 어려워 작곡을 해 놓고 이름을 올릴 수 없었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지난 1974년 10월에는 카투사로 입대해 군복무를 시작했으나 1975년 초 유신 반대 운동에서 김민기의 노래들이 불렸다는 이유가 문제가 돼 보안대에 끌려가 조사를 받았다.

‘아침이슬’은 금지곡으로 지정됨과 동시에 솔로 1집도 판매 금지 조치를 받았다. 보안대 조사가 끝나고 김민기는 영창살이를 한 뒤 최전방 부대로 재배치됐다. 

중등교사 자격증을 가졌지만, 김민기는 대학 졸업 후 봉제 공장과 탄광에서 일하며 생계를 꾸렸고 익명으로 비밀리에 작곡 활동을 이어갔다. 당시 공장에서 일했던 경험은 1977년 작곡해 발표한 ‘상록수’에 담겼다. 

틈틈이 노래를 만들어 불렀지만, 박정희정권은 그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1976년 봉제 공장에서 일하던 당시에 작곡한 ‘늙은 군인의 노래’는 가사가 불건전하다는 이유로 금지곡이 됐다. 

음악 활동이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자 김민기는 고향인 전북 익산으로 내려가 농사를 지었다. 10·26 사건으로 맞은 ‘서울의 봄’ 시기에 잠시 음악 활동을 재개했지만, 12·12 군사 반란으로 전두환 일당이 정권을 잡자 다시 낙향했다. 지난 1981년 전두환정부가 관제 예술제인 ‘국풍81’에 참여하도록 김민기를 회유했지만, 농사일을 핑계로 끝까지 참가를 거절한 일은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다. 

고난의 연속
민주화 상징

1980년대에는 공연윤리심의위원회 등의 삼엄한 감시를 받으면서도 공연 활동을 활발히 펼치며 사회운동에 뛰어들었다. 농촌과 탄광촌 등의 현실을 담은 마당극과 노래극 등을 공연하고, 1984년 대학에서 활동하던 노래패들의 노래를 모아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라는 음반을 제작했다. 노래패 ‘노찾사’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전두환정부의 방해로 음반은 거의 팔리지 못했고, 1987년 6월 항쟁으로 금지곡들이 해제될 때까지 초라한 신세를 겪었다.

1987년 민주항쟁 당시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입에선 언제나 ‘아침이슬’이 불렸다. 해당 시기 양희은이 노래한 ‘아침이슬’은 대학생들의 입에서 입으로 퍼져나가며 ‘민주화의 상징’이 됐다. 1989년에는 한살림소비자생활협동조합의 초대 사무국장을 맡았다.

이후 1990년 <한겨레신문>의 겨레의 노래 사업단에 참여해 음반 ‘겨레의 노래’를 제작한 뒤 이를 기념해 전국 순회공연을 하면서 20년 만에 ‘아침이슬’을 공개한 장소에서 자신의 목소리로 불렀다. 

김민기가 공연계에 입문한 것은 1970년대다. 1973년 김지하의 희곡 <금관의 예수>의 극음악을 작곡해 첫 무대 공연 경험을 쌓은 김민기는 이듬해 마당극 <아구>의 대본을 맡았다. <아구>는 공연윤리위원회로부터 상연 금지처분을 당했지만, 김민기는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재공연을 강행하며 저항했다. 

연이은 금지곡 지정으로 음악 활동에 심각한 타격을 받은 1978년에는 개신교 계열 시민단체인 한국교회사회선교협의회의 후원을 받아 노래극 <공장의 불빛>을 제작했다. 노조 설립을 시도하다 사측이 고용한 용역 깡패에 의해 좌절하는 노동자들의 고투를 담은 작품으로 지난 1979년 2월 제일교회에서 상연됐다. 

정부의 탄압을 피해 농사를 짓던 1981년에는 전북 지역의 연극패, 노래패와 함께 동학농민운동을 다룬 마당극 <1876년에서 1894년까지>를 제작했다. 이 극은 1983년 대한민국연극제 참가 작품으로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공연됐다. 김민기가 익명으로 연출을 맡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전성기 시작
대배우 배출

김민기가 공연계에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은 것은 1990년대 들어서다. 지난 1991년 김민기는 극단 학전을 세우며, 30년간 문화예술계에 큰 공을 세웠다. 

학전은 ‘못자리 농사를 짓는 곳’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배우가 성장하면 내보내고 새로운 사람을 심고 키웠다. 그는 4장의 앨범으로 구성한 <김민기 전집>을 발매하며 받은 선불금으로 180석 규모의 학전을 열었다. 

지난 1994년 독일 극작가 폴커 루트비히가 각본을 쓰고 비르거 하이만이 작곡한 록 뮤지컬인 <지하철 1호선>의 한국어 번안과 연출을 맡아 학전에서 올렸다. 초연한 록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은 한국 뮤지컬 역사에 기념비적 작품으로 남아 있다.

2001년엔 독일과 중국, 일본에서 해외 순회 공연을 했고, 2007년에 독일문화원에서 수여하는 괴테 메달을 받았다. 한국인으로서는 윤이상과 백남준 이래 세 번째 수상자였다. 이 공연은 2023년까지 8000회 이상, 70만명이 넘는 관객을 모았다.

김민기는 30년 넘게 학전을 운영하며 후배 양성에 힘썼다. 다양한 예술 장르 간의 교류와 접목을 통한 새로운 문화창조 공간의 역할을 해왔다. 소극장 뮤지컬 최초로 라이브 밴드를 도입하기도 했다.

오래도록 저항가요와 민주화의 상징으로 각인됐지만, 김민기는 ‘백구’ ‘인형’ ‘식구 생각’ ‘꽃 피우는 아이’ 등의 동요를 쓰기도 했다. 이 같은 행보는 학전에서도 이어졌다. 그는 학전에서 어린이 청소년극에 관심을 이어가며 주류 공연계가 관심을 가지지 않는 곳에도 마음을 뒀다. 

김민기가 이끈 학전은 한국 대중문화계를 이끄는 수많은 스타를 발굴하고 육성한 곳이었다. 라이브 공연으로 팬들과 만난 고 김광석은 학전이 배출한 최고의 음악인이다. 김광석을 비롯해 윤도현, 나윤선, 정재일 등 음악가들이 학전 출신으로 성장했다. ‘학전 독수리 5형제’로 불린 설경구·김윤석·황정민·장현성·조승우도 배출했다. 

학전은 한국 문화예술의 산실이며, 대학로의 상징과 같은 공간이었다. 김민기는 무대 앞에 서는 배우를 ‘앞것’, 무대 뒤에 있는 스태프인 자기를 ‘뒷것’이라고 불렀다. 

특히 학전은 배우들과 계약서를 쓰고 4대 보험을 하는 극단이었다. 총 수입을 배우들에게 다 공개하면서 투명한 정산으로 더욱 신뢰받은 극단이었다. 

김민기는 척박해진 대학로에서도 추수를 내다보는 못자리로서 자리를 지켰다. 1991년 개관 당시 임대료, 설비비 등 재원을 마련하려다 매일 병원 신세를 지고, 극장으로 진 빚을 갚기 위해 22년 만에 신보(1993년)를 내는 등 악착같이 버텼다. 

금지곡 80년대 중반서야 해금 
“현실적인 한계에 아쉬움 남아”

그러나 다른 소극장과 마찬가지로 관객 감소 등 경영상 어려움이 이어지며 학전은 지난 3월15일 폐관했다. 폐관에 앞서 이곳을 거쳐간 50여명의 배우, 가수, 예술인이 모여 ‘학전, 어게인 프로젝트’를 열기도 했다.

김민기는 지난해 11월 <연합뉴스>와 서면 인터뷰에서 “제가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하고 죽는 날까지 학전을 운영하려 했는데, 현실적인 한계에 부딪히고 말았다”며 깊은 아쉬움을 드러냈다. 

학전은 지난 17일 건물을 리모델링해 문화체육관광부 산하기관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등이 운영하는 어린이·청소년 중심 공연장 ‘아르코꿈밭극장’으로 재개관했다. 김민기는 학전의 정체성 훼손을 걱정한 듯 학전이란 이름을 쓰지 말라고 요구했다. 

재정난에 시달리면서도 지켜온 학전은 뮤지컬 <의형제> <개똥이>와 어린이극 <우리는 친구다> <고추장 떡볶이> 등을 연출하며 대학로 공연 문화의 산실로 굳건히 버텨왔다. 개관 33주년을 맞으며 문을 닫는 학전에서 김민기가 연출한 마지막 작품은 <고추장 떡볶이>였다.

그는 학전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좀 더 열심히, 더 많이 뛸 수는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학전을 기억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전하고 싶다”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김민기의 별세를 추모하기 위해 SBS는 지난 24일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를 재편성했다. 

지난 4월21일부터 5월5일까지 총 3부작에 걸쳐 방영된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는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을 탄생시킨 대한민국 문화예술의 못자리 학전과 철저히 무대 뒤의 삶을 지향하며 방송 출연을 자제해온 학전 대표 김민기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또 학전 운영을 통해 후배 예술인을 양성하는 등 우리나라 대중문화 발전과 문화적 저변 확대에 공헌하고,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헌신한 뒷것 김민기의 숨겨진 활동을 사실적이고 감명 깊게 전달했다.

유홍준(전 문화재청장), 가수 송창식·조영남, 김창남(노찾사/성공회대 교수), 임진택(연극연출가) 등 김민기의 오랜 지인들을 비롯해 가수 박학기·장필순·강산에·윤도현, 배우 설경구·황정민·장현성·이정은·안내상·이종혁·김대명·이선빈 등 학전이 배출한 아티스트들은 물론, 학전 스태프였던 강신일(총무부장), 정재일(음악감독) 등 유명인사 100여명이 김민기와 학전을 돌아본 유일무이한 프로젝트로 주목받았다.

숨겨진 헌신
마지막 인사

김민기는 우리 문화예술계에 대한 공을 인정받아 지난 2020년 호암재단이 수여하는 ‘제30회 호암상 수상자’ 예술상을 받았다.

또 생전에 백상예술대상 음악상, 한국평론가협회 음악극 부문 연극상, 서울연극제 극본상 및 특별상, 제35회 동아연극상 작품상, 제6회 한국뮤지컬대상 특별상, 제10회 한국대중음악상 공로상, 대중문화예술상 문화훈장 은관 등을 수상하는 등 한국 문학사에 큰 획을 그었다.

<yuncastl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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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BBQ 정보 유출 사건’ 위증 재판으로 확대⋯박현종 목줄 잡혔다

[단독] ‘BBQ 정보 유출 사건’ 위증 재판으로 확대⋯박현종 목줄 잡혔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대법원에서 집행유예로 확정된 사건이 다시 법정으로 끌려 나왔다. ‘BBQ 내부망 불법 접속’ 사건의 핵심 증거였던 ‘ID·비밀번호 메모장’을 둘러싼 위증 여부를 다투는 후속 재판이다. 박현종 전 bhc 회장의 집행유예가 확정된 사건임에도 검찰은 관련 증인들을 위증 혐의로 직접 고발했다. 핵심은 과연 BBQ 직원의 ID와 비밀번호가 적힌 그 메모장은 어떻게 만들어졌고, 유창성 전 bhc 정보전략팀장의 손을 어떻게 거쳐 전달됐는가다. 그리고 그 과정을 둘러싼 법정 진술의 신빙성이다. 검찰은 최근 공판에서 “피고인(박현종 등)에게 유리한 허위 증언이 반복됐다”는 판단 아래 유 전 팀장 등 관련자 3명을 위증 혐의로 고발했다. 메모장 전달자 통상 위증 여부는 재판부 판단 이후 별도 절차로 넘겨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번처럼 검찰이 직접 칼을 빼든 것은 이례적이다. 그만큼 단순한 진술 번복이나 기억 착오 수준이 아닌 사건의 본질을 뒤흔들 수 있는 중대한 허위 진술이 있었다고 본 셈이다. 이번 공판의 중심에는 ‘메모장 전달자’로 지목된 유 전 bhc 정보전략팀장이 있다. 그는 과거 재판에서 결정적 증거로 채택된 BBQ 직원들의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적힌 메모를 박현종 전 bhc 회장에게 전달한 인물이다. 이 메모장은 박 회장의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를 입증하는 핵심축이었다. 이 메모장의 출처와 작성 경위가 흔들리면, 사건 전체의 구조도 다시 흔들릴 수밖에 없다. 검찰은 유 전 팀장이 박 전 회장에게 건넨 메모장의 내용 자체를 문제 삼았다. 메모장에 기재된 임직원 계정 정보 뒤에는 ‘퇴사자 임시’라는 내용이 덧붙어 있었다. 이는 BBQ 내부망에서만 확인 가능한 정보라는 점을 강조했다. 외부에서 추정이나 기억만으로 재구성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더 나아가 성명불상자가 BBQ 내부망에 관리자 권한으로 접속해 계정을 취득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를 유 정보팀장을 거쳐 박 전 회장에게 전달했다는 구체적 시나리오까지 제시했다. 재판부 역시 “기억과 추리로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떠올렸다는 설명은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며 검찰 주장에 일정 부분 무게를 싣는 듯한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재판부는 “특정한 심증을 가진 것은 아니”라며 추가 심리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피고인 측은 거칠게 반격했다. 변호인은 검찰 주장을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bhc와 BBQ가 극도로 적대적인 관계였던 상황에서, bhc 소속 직원이 BBQ 내부 직원과 접촉해 계정 정보를 빼냈다는 가정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는 논리다. 나아가 검찰이 실제 내부망 침입을 입증하지 못한 채 추측만을 쌓고 있다고 공격했다. 60억원대 횡령·배임 혐의에 리스크 추가 ‘BBQ 직원 ID·비밀번호 유출’ 둘러싼 공방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피고인 측은 기존 재판에서 채택된 증거와 증인 진술 전반에 대해 신빙성을 문제 삼으며, 데이터베이스(DB) 조작 가능성까지 거론했다. 사실상 1·2심은 물론 대법원 판단의 기초 자체를 뒤흔드는 주장이다. 확정 판결 이후 재판에서 “증거 자체가 위조됐다”는 취지의 주장을 반복하는 것은 법조계에서도 보기 드문 강수로 평가된다. 유 전 팀장은 BBQ 정보전략팀장으로 근무하다가 bhc 매각과 함께 bhc 정보전략팀장으로 이직한 인물이다. 이후 그는 박 전 회장에게 BBQ 직원의 개인정보를 적은 쪽지를 전달했다. 개인정보가 유출된 인물은 BBQ 재무임원과 재무 실무진이다. 2021년 11월3일 서울동부지방법원에서 열린 박 전 회장의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 관련 7차 공판에 유 전 팀장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유 전 팀장은 박 회장에게 BBQ 직원의 개인정보를 건넨 이유에 대해 “박현종 회장이 국제상공회의소(ICC) 중재 소송 때문에 BBQ 직원들의 아이디만 필요하다고 했다”며 “해당 직원들의 개인정보가 업무 수첩에 적혀있어 이를 그대로 전달했다. 당시 위법성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박 전 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BBQ 직원들의 개인정보와 비밀번호가 있으면 좋겠다’고 진술했다. 박 전 회장과 증인의 진술이 일치하지 않는 데 대해 묻는 검찰 질문에 유 전 팀장은 “박 전 회장의 진술은 모르겠고 아이디만 필요하다고 말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유 전 팀장은 BBQ와 bhc의 ICC 중재 소송에 대해 자세히 알지도 못하고 소송에 관여하지도 않았다고 증언했다. BBQ 직원들의 개인정보 취득 경위와 관련해서는 “BBQ 정보전략팀장으로 일할 당시 BBQ 재무임원이 그룹 전산망의 데이터가 다르다고 확인 문의가 왔다”며 “당시 물류 전산망이 바뀐 지 얼마 안 돼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아 문제 해결을 위해 임원에게 개인정보를 요청해 받은 뒤 이를 업무 수첩에 적은 이후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 전 팀장이 개인정보를 받았다고 지목한 BBQ 재무임원은 앞서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개인정보를 아무에게도 전달한 적 없다”며 “업무 처리도 유씨가 아닌 다른 직원과 했다”고 증언했다. 또한 검찰은 유 전 팀장이 그룹 전산망에 접근할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내부 정보 취득 시점이… 유 전 팀장은 재무임원의 개인정보를 취득한 시점에 대해서도 그간 검찰 조사에서 했던 진술을 번복했다. 그는 2011년~2012년 즈음에서 2013년 1월로 시점을 바꿨다. 검찰은 증인에게 진술을 번복한 이유가 물류 전산망이 바뀐 시점으로 맞추기 위함이냐고 묻자 유 전 팀장은 “단순 착오”라고 답했다. 유 전 팀장은 bhc 직원으로 일할 당시 BBQ 퇴사자의 개인정보를 어떻게 알 수 있냐는 검찰 질문에 “자신이 BBQ 정보전략팀장으로 일할 당시 퇴사자의 개인정보를 어떻게 다루는지 알고 있어 이를 바탕으로 추측해 박 회장에게 전달했다”고 답했다. 검찰은 유 전 팀장의 증언에 BBQ가 퇴사자에게 부여하는 임시 비밀번호를 줄 때 증인이 말한 방식을 쓴 것은 증인 퇴사 이후라고 지적했다. 검찰은 유 전 팀장이 박 전 회장에게 BBQ 전·현직 직원들의 정확한 개인정보를 전달할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 bhc가 BBQ의 데이터베이스(DB)를 모조리 빼내 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 박 전 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BBQ 허락하에 BBQ DB를 모두 가져왔다”고 진술했다. 박 전 회장 진술 이외에 검찰 판단을 뒷받침하는 정황도 있다. 2013년 6월 말 bhc 매각 이후 bhc는 자체 전산망 구축을 위해 BBQ와 bhc 전산망 분리 작업이 필요했다. 그해 7월2일 외부 업체는 해당 작업이 최소 한달 이상 걸릴 것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유 전 팀장과 부하 직원 한 명, 그리고 한달 이상이 걸릴 것으로 판단했던 외부업체는 2013년 7월5일 오후 9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불과 12시간 만에 BBQ로부터 분리된 bhc 전산망을 구축했다. 이와 관련해 유 전 팀장은 “bhc 직원이 100명 남짓에 불과해 수작업으로 데이터를 옮겨 가능했다”며 “BBQ DB는 가져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BBQ DB 관련 박 회장과 유씨의 진술이 배치되는 데 대해 유 전 팀장에게 묻자 “자신은 박 회장에게 BBQ DB를 가져왔다고 말한 적 없다”며 “박 회장이 검찰에서 왜 그리 말했는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다만 유 전 팀장은 노트북 하드 교체 관련 재판 과정에서도 말이 일치하지 않았다. 뻔히 보이는 해킹의 목적 첫 증언에서는 bhc 매각 시기인 2013년 이후 노트북 감가상각 5년을 계산해 2018년에 바꿨다고 했지만 이후 2017년으로 고쳤다. 기존 사건이 ‘불법 접속이 있었느냐’는 사실관계 다툼이었다면, 이번 후속 재판은 ‘그 사실을 둘러싸고 법정에서 거짓말이 있었느냐’는 문제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 거짓말이 조직적으로 이뤄졌는지 여부가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해 2월, 박 전 회장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박 전 회장이 BBQ 직원 계정을 정상적인 방법으로 취득할 수 없었고, 불법적 경로일 가능성을 인식했을 것으로 판단했다.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는 무죄였지만, 정보통신망법 위반은 명확히 유죄로 못 박았다. 그러나 사건은 집행유예 판결로 끝나지 않았다. 검찰이 위증을 별도의 범죄로 끌어올린 이상, 수사는 ‘위증교사’를 밝히는 단계로 향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만약 법원이 관련자들의 위증을 인정할 경우, 그 진술을 누가, 어떤 방식으로 유도했는지가 핵심 수사 대상이 된다. 화살이 결국 박 전 회장을 향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위증교사는 기존 사건과는 별개의 범죄로, 추가 기소로 이어질 경우, 사법 리스크도 한층 더 커진다. 문제는 입증이다. 위증교사는 단순한 정황만으로는 성립하기 어렵다. 구체적인 지시나 교감, 사전 조율 정황이 확인돼야 한다. 하지만 검찰이 이미 “유리한 허위 증언 반복”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고발까지 단행한 점을 감안하면, 단순한 가능성 제기를 넘어선 그림을 그리고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BBQ 출신 정보전략팀장 진술 번복 검, 증인들 위증 혐의로 직접 고발 이 사건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축은 bhc와 BBQ 사이의 오랜 분쟁이다. 박 전 회장은 삼성전자와 삼성에버랜드에서 근무하다가 2012년 BBQ 글로벌 대표로 영입됐다. 이어 2013년 BBQ 자회사 bhc가 미국계 사모펀드에 팔린 뒤 bhc 대표로 옮겨가며 양사 갈등의 중심에 섰다. 2018년 사모펀드 운용사 MBK파트너스 등과 함께 bhc를 사들여 오너 경영자가 된 동시에 각종 소송과 형사적 리스크의 한가운데에 서게 됐다. 이번 사건 역시 단순한 개인 비위가 아니라, 기업 간 치열한 법적 분쟁 속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점에서 무게가 다르다. 검찰에 의하면 박 전 회장은 2015년 7월3일 서울 송파구 신천동 bhc 본사에서 BBQ 직원 2명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무단 도용해 BBQ 전산망에 접속한 뒤 bhc와 BBQ가 연루된 국제 중재 소송 관련 자료들을 살펴봤다. 이로 인해 박 전 회장은 2020년 11월 재판에 넘겨졌다. 아울러 박 전 회장은 유 정보팀장으로부터 BBQ 직원 이메일 아이디, 비밀번호, 전산망 주소가 적힌 메모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2022년 6월 1심 재판부는 박 전 회장의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를 인정해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에 대해선 입증이 부족하다며 무죄 판결을 내렸다. 사건은 항소심으로 넘어갔다. 항소심 3차 공판 때 검찰과 변호인은 파워포인트(PPT)를 통해 2시간 동안 치열한 공방을 펼쳤다. 먼저 의견 개진 기회를 얻은 변호인은 “BBQ가 여러 차례 박현종 회장을 영업비밀 침해 등의 이유로 고소했지만 계속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며 “그런데 검찰이 정보통신망법을 무리하게 적용해 박현종 회장을 기소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변호인은 “검찰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혐의를 입증한 것도 아니”며 “왜곡 가능성이 큰 간접 증거만 제시됐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박현종 회장은 2015년 7월3일 순댓국 프랜차이즈 인수 회의에 참석해 BBQ 전산망에 접속할 상황이 아니었다”고 부연했다. 반면 검찰은 “bhc가 2013년부터 BBQ 전산망에 무단 접속한 횟수가 236회에 달하지만 행위자가 드러나지 않아 기소하지 못했다”며 “박현종 회장은 무단 접속이 명백해 기소했다”고 반박했다. 지시했나 사면초가 검찰은 박 전 회장의 범행 동기에 대해 “2015년 BBQ 직원들이 박현종 회장이 bhc 매각을 총괄했다”는 진술서를 국제 중재 법원에 냈다. 국제 중재 소송에서 질 경우 지위가 불안정해질 수 있었던 박 전 회장은 “해당 진술서를 검토하고 반박해야만 했다”고 했다. 이어 “박현종 회장 휴대전화에서 BBQ 직원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적은 메모 사진이 나왔다. BBQ 전산망 접속 데이터 분석 결과, 박현종 회장이 BBQ 사내 메일을 포워딩(전달)한 개인 메일을 2년 만에 열람한 기록도 있다”며 혐의를 입증할 물적 증거가 많다고 했다. 검찰은 “2015년 7월3일 순댓국 프랜차이즈 인수 회의 참석자 2명은 박현종 회장을 회의에서 보지 못했다고 했다”며 박 전 회장의 알리바이를 부인하기도 했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