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이슬처럼 떠난 김민기

너희가 김민기를 아느냐

[일요시사 취재1팀] 최윤성 기자 = 대학로 소극장 학전을 이끈 가수 김민기가 암 투병 끝에 향년 73세로 세상을 떠났다. 김민기의 비보에 대중문화계 인사들의 추모 물결이 이어졌다. 김민기는 ‘아침이슬’ ‘상록수’ 등 민중가요를 통해 민주정신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또 한국 대중음악과 공연예술계에 큰 획을 그으며 큰 업적을 남겼다. 김민기는 학전에서 수많은 후배 예술인을 키워냈고 대중문화 발전과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헌신한 뒷것 인생을 살다 떠났다.

서울 대학로 소극장 ‘학전’을 이끈 연출가이자 ‘아침이슬’을 부른 가수·작곡가 김민기가 지난 21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73세. 학전 관계자들은 지난 22일 “김민기가 21일 오후 8시20분쯤 세상을 떠났다”고 전했다. 김민기는 지난해 가을, 위암 4기 진단을 받았다. 

병세 악화
추모 행렬

지인들에 따르면 최근까지 경기 고양시 일산 집에서 통원하며 항암치료를 받아왔지만, 암세포가 간까지 전이된 상태라 시간이 갈수록 급격히 병세가 악화한 것으로 전해졌다. 

학전 측은 이날 “조의금과 조화는 고인의 뜻에 따라 정중히 사양한다”며 “빈소 및 발인 등 모든 장례 절차는 취재진에게 비공개로 진행된다” “조용히 장례를 치르고자 하는 고인의 뜻을 따를 수 있도록 마음으로 애도해달라”고 당부했다.

김민기의 조카이자 학전 총무팀장인 김성민은 지난 22일, 서울 대학로 학림다방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댁에서 요양 중이던 선생님(김민기)의 건강이 지난 19일부터 안 좋아졌고 20일 오전 응급실을 찾았다”며 “병원에 갔을 때부터 상태가 좋지 않다가 다음날 오후 8시26분에 돌아가셨다”고 밝혔다.

이어 “갑작스럽게 떠나셨지만 3∼4개월 전부터 가족 등 가까운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많이 하셨다”며 “학전과 관련해선 ‘지금 끝내는 게 맞다. 나는 할 만큼 다 했다’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이후 지난 24일 오전 8시 빈소가 마련됐던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고인의 발인식이 엄수됐다. 별도의 영결식은 진행되지 않았다. 발인식이 끝난 후 장지인 천안공원묘원에 향하기 전 서울 대학로에 위치한 ‘아르코꿈밭극장’ 마당을 들렀다.

이곳에는 아르코꿈밭극장을 운영하고 있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정병국 위원장을 비롯해 설경구, 장현성, 황정민, 이황의, 최덕문, 방은진, 배성우, 가수 박학기, 박승화(유리상자), 유홍준 교수 등 김민기와 추억을 함께한 이들이 모여 그의 마지막 길을 눈물로 배웅했다. 

정치계 인사들의 추모 물결도 더해졌다. 윤석열 대통령, 문재인 전 대통령,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당 대표 후보,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 등 애도의 뜻을 전했다.

김민기는 1951년 전북 익산에서 10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경기중·고등학교를 나와 지난 1969년 서울대학교 회화과에 입학한 뒤 미술을 접고 가수의 길로 접어들었다. 획일적인 수업 방식에 거부감을 드러낸 그는 1학년 1학기를 마친 뒤 고등학교 동창 김영세와 포크 듀오 ‘도비두’를 결성해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마지막까지 학전 들리고 떠나
“떠나기 전 고맙다는 말 전해”

이듬해 김민기는 명동 와이더블유시에이(YWCA) 회관의 ‘청개구리의 집’에서 공연을 열며 그를 대표하는 곡 ‘아침이슬’과 ‘가을편지’ ‘꽃 피우는 아이’ ‘친구’ 등을 작곡했다. 그러나 김민기의 음악 활동은 시작부터 고난의 연속이었다. 

지난 1972년 서울대학교 문리대 신입생 환영회에서 민중가요를 가르치다가 경찰에 연행돼 고초를 겪었다. 당시 가르쳤던 ‘꽃 피우는 아이’가 금지곡으로 지정되면서, 음반 활동에도 타격을 받기 시작했다. 김민기의 이름이 올라가 있으면 사전 심의 통과가 어려워 작곡을 해 놓고 이름을 올릴 수 없었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지난 1974년 10월에는 카투사로 입대해 군복무를 시작했으나 1975년 초 유신 반대 운동에서 김민기의 노래들이 불렸다는 이유가 문제가 돼 보안대에 끌려가 조사를 받았다.

‘아침이슬’은 금지곡으로 지정됨과 동시에 솔로 1집도 판매 금지 조치를 받았다. 보안대 조사가 끝나고 김민기는 영창살이를 한 뒤 최전방 부대로 재배치됐다. 

중등교사 자격증을 가졌지만, 김민기는 대학 졸업 후 봉제 공장과 탄광에서 일하며 생계를 꾸렸고 익명으로 비밀리에 작곡 활동을 이어갔다. 당시 공장에서 일했던 경험은 1977년 작곡해 발표한 ‘상록수’에 담겼다. 

틈틈이 노래를 만들어 불렀지만, 박정희정권은 그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1976년 봉제 공장에서 일하던 당시에 작곡한 ‘늙은 군인의 노래’는 가사가 불건전하다는 이유로 금지곡이 됐다. 

음악 활동이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자 김민기는 고향인 전북 익산으로 내려가 농사를 지었다. 10·26 사건으로 맞은 ‘서울의 봄’ 시기에 잠시 음악 활동을 재개했지만, 12·12 군사 반란으로 전두환 일당이 정권을 잡자 다시 낙향했다. 지난 1981년 전두환정부가 관제 예술제인 ‘국풍81’에 참여하도록 김민기를 회유했지만, 농사일을 핑계로 끝까지 참가를 거절한 일은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다. 

고난의 연속
민주화 상징

1980년대에는 공연윤리심의위원회 등의 삼엄한 감시를 받으면서도 공연 활동을 활발히 펼치며 사회운동에 뛰어들었다. 농촌과 탄광촌 등의 현실을 담은 마당극과 노래극 등을 공연하고, 1984년 대학에서 활동하던 노래패들의 노래를 모아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라는 음반을 제작했다. 노래패 ‘노찾사’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전두환정부의 방해로 음반은 거의 팔리지 못했고, 1987년 6월 항쟁으로 금지곡들이 해제될 때까지 초라한 신세를 겪었다.

1987년 민주항쟁 당시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입에선 언제나 ‘아침이슬’이 불렸다. 해당 시기 양희은이 노래한 ‘아침이슬’은 대학생들의 입에서 입으로 퍼져나가며 ‘민주화의 상징’이 됐다. 1989년에는 한살림소비자생활협동조합의 초대 사무국장을 맡았다.

이후 1990년 <한겨레신문>의 겨레의 노래 사업단에 참여해 음반 ‘겨레의 노래’를 제작한 뒤 이를 기념해 전국 순회공연을 하면서 20년 만에 ‘아침이슬’을 공개한 장소에서 자신의 목소리로 불렀다. 

김민기가 공연계에 입문한 것은 1970년대다. 1973년 김지하의 희곡 <금관의 예수>의 극음악을 작곡해 첫 무대 공연 경험을 쌓은 김민기는 이듬해 마당극 <아구>의 대본을 맡았다. <아구>는 공연윤리위원회로부터 상연 금지처분을 당했지만, 김민기는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재공연을 강행하며 저항했다. 

연이은 금지곡 지정으로 음악 활동에 심각한 타격을 받은 1978년에는 개신교 계열 시민단체인 한국교회사회선교협의회의 후원을 받아 노래극 <공장의 불빛>을 제작했다. 노조 설립을 시도하다 사측이 고용한 용역 깡패에 의해 좌절하는 노동자들의 고투를 담은 작품으로 지난 1979년 2월 제일교회에서 상연됐다. 

정부의 탄압을 피해 농사를 짓던 1981년에는 전북 지역의 연극패, 노래패와 함께 동학농민운동을 다룬 마당극 <1876년에서 1894년까지>를 제작했다. 이 극은 1983년 대한민국연극제 참가 작품으로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공연됐다. 김민기가 익명으로 연출을 맡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전성기 시작
대배우 배출

김민기가 공연계에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은 것은 1990년대 들어서다. 지난 1991년 김민기는 극단 학전을 세우며, 30년간 문화예술계에 큰 공을 세웠다. 

학전은 ‘못자리 농사를 짓는 곳’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배우가 성장하면 내보내고 새로운 사람을 심고 키웠다. 그는 4장의 앨범으로 구성한 <김민기 전집>을 발매하며 받은 선불금으로 180석 규모의 학전을 열었다. 

지난 1994년 독일 극작가 폴커 루트비히가 각본을 쓰고 비르거 하이만이 작곡한 록 뮤지컬인 <지하철 1호선>의 한국어 번안과 연출을 맡아 학전에서 올렸다. 초연한 록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은 한국 뮤지컬 역사에 기념비적 작품으로 남아 있다.

2001년엔 독일과 중국, 일본에서 해외 순회 공연을 했고, 2007년에 독일문화원에서 수여하는 괴테 메달을 받았다. 한국인으로서는 윤이상과 백남준 이래 세 번째 수상자였다. 이 공연은 2023년까지 8000회 이상, 70만명이 넘는 관객을 모았다.

김민기는 30년 넘게 학전을 운영하며 후배 양성에 힘썼다. 다양한 예술 장르 간의 교류와 접목을 통한 새로운 문화창조 공간의 역할을 해왔다. 소극장 뮤지컬 최초로 라이브 밴드를 도입하기도 했다.

오래도록 저항가요와 민주화의 상징으로 각인됐지만, 김민기는 ‘백구’ ‘인형’ ‘식구 생각’ ‘꽃 피우는 아이’ 등의 동요를 쓰기도 했다. 이 같은 행보는 학전에서도 이어졌다. 그는 학전에서 어린이 청소년극에 관심을 이어가며 주류 공연계가 관심을 가지지 않는 곳에도 마음을 뒀다. 

김민기가 이끈 학전은 한국 대중문화계를 이끄는 수많은 스타를 발굴하고 육성한 곳이었다. 라이브 공연으로 팬들과 만난 고 김광석은 학전이 배출한 최고의 음악인이다. 김광석을 비롯해 윤도현, 나윤선, 정재일 등 음악가들이 학전 출신으로 성장했다. ‘학전 독수리 5형제’로 불린 설경구·김윤석·황정민·장현성·조승우도 배출했다. 

학전은 한국 문화예술의 산실이며, 대학로의 상징과 같은 공간이었다. 김민기는 무대 앞에 서는 배우를 ‘앞것’, 무대 뒤에 있는 스태프인 자기를 ‘뒷것’이라고 불렀다. 

특히 학전은 배우들과 계약서를 쓰고 4대 보험을 하는 극단이었다. 총 수입을 배우들에게 다 공개하면서 투명한 정산으로 더욱 신뢰받은 극단이었다. 

김민기는 척박해진 대학로에서도 추수를 내다보는 못자리로서 자리를 지켰다. 1991년 개관 당시 임대료, 설비비 등 재원을 마련하려다 매일 병원 신세를 지고, 극장으로 진 빚을 갚기 위해 22년 만에 신보(1993년)를 내는 등 악착같이 버텼다. 

금지곡 80년대 중반서야 해금 
“현실적인 한계에 아쉬움 남아”

그러나 다른 소극장과 마찬가지로 관객 감소 등 경영상 어려움이 이어지며 학전은 지난 3월15일 폐관했다. 폐관에 앞서 이곳을 거쳐간 50여명의 배우, 가수, 예술인이 모여 ‘학전, 어게인 프로젝트’를 열기도 했다.

김민기는 지난해 11월 <연합뉴스>와 서면 인터뷰에서 “제가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하고 죽는 날까지 학전을 운영하려 했는데, 현실적인 한계에 부딪히고 말았다”며 깊은 아쉬움을 드러냈다. 

학전은 지난 17일 건물을 리모델링해 문화체육관광부 산하기관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등이 운영하는 어린이·청소년 중심 공연장 ‘아르코꿈밭극장’으로 재개관했다. 김민기는 학전의 정체성 훼손을 걱정한 듯 학전이란 이름을 쓰지 말라고 요구했다. 

재정난에 시달리면서도 지켜온 학전은 뮤지컬 <의형제> <개똥이>와 어린이극 <우리는 친구다> <고추장 떡볶이> 등을 연출하며 대학로 공연 문화의 산실로 굳건히 버텨왔다. 개관 33주년을 맞으며 문을 닫는 학전에서 김민기가 연출한 마지막 작품은 <고추장 떡볶이>였다.

그는 학전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좀 더 열심히, 더 많이 뛸 수는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학전을 기억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전하고 싶다”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김민기의 별세를 추모하기 위해 SBS는 지난 24일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를 재편성했다. 

지난 4월21일부터 5월5일까지 총 3부작에 걸쳐 방영된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는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을 탄생시킨 대한민국 문화예술의 못자리 학전과 철저히 무대 뒤의 삶을 지향하며 방송 출연을 자제해온 학전 대표 김민기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또 학전 운영을 통해 후배 예술인을 양성하는 등 우리나라 대중문화 발전과 문화적 저변 확대에 공헌하고,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헌신한 뒷것 김민기의 숨겨진 활동을 사실적이고 감명 깊게 전달했다.

유홍준(전 문화재청장), 가수 송창식·조영남, 김창남(노찾사/성공회대 교수), 임진택(연극연출가) 등 김민기의 오랜 지인들을 비롯해 가수 박학기·장필순·강산에·윤도현, 배우 설경구·황정민·장현성·이정은·안내상·이종혁·김대명·이선빈 등 학전이 배출한 아티스트들은 물론, 학전 스태프였던 강신일(총무부장), 정재일(음악감독) 등 유명인사 100여명이 김민기와 학전을 돌아본 유일무이한 프로젝트로 주목받았다.

숨겨진 헌신
마지막 인사

김민기는 우리 문화예술계에 대한 공을 인정받아 지난 2020년 호암재단이 수여하는 ‘제30회 호암상 수상자’ 예술상을 받았다.

또 생전에 백상예술대상 음악상, 한국평론가협회 음악극 부문 연극상, 서울연극제 극본상 및 특별상, 제35회 동아연극상 작품상, 제6회 한국뮤지컬대상 특별상, 제10회 한국대중음악상 공로상, 대중문화예술상 문화훈장 은관 등을 수상하는 등 한국 문학사에 큰 획을 그었다.

<yuncastle@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