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대한’ 장담 못하는 이유

판 뒤집을 ‘찐윤’ 등판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원희룡 전 국토부 장관의 참전으로 한층 더 가열되는 분위기다. 친윤 호위무사 타이틀을 가진 인물의 등장으로 당권주자들의 셈법이 분주하다. 과연 ‘어대한’(어차피 당 대표는 한동훈) 분위기를 원 전 장관이 깰 수 있을까?

당권주자 4인이 출마 선언을 했다. 누군가는 반윤(반 윤석열) 기조를, 누군가는 친윤(친 윤석열) 기조를 한층 더 강화하는 듯한 발언을 통해 출사표를 던졌다. 사안별로 시각의 차이가 있었다. 이번 전당대회서 친윤 세력은 윤석열 대통령과 가까운 인물이 되길 원한다. 그래야 주류로서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용산 교감?
갑자기 왜?

친윤 세력은 전당대회에 앞서 수세에 몰렸던 바 있다. 당내 주류임에는 분명하나 전당대회서 이들에게 힘을 더욱 불어넣어줄 후보가 마땅히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을 공격하는 일뿐이었다.

상황은 점점 최악으로 치달았다. 이런 탓에 친윤 세력은 국민의힘 김재섭·나경원 의원에게 자꾸 스킨십을 시도했다. 그러나 이들은 “지원받을 생각이 없다” “특정 계파에 줄 서지 않는다”며 받아들이지 않아 무위에 그쳤다.

문제는 친윤 세력의 공격이 크게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는 점이다. 앞서 친윤 핵심 인사인 이철규 의원은 ‘어대한’이라는 말에 대해 “당원을 모욕하는 말이다. 선거 결과는 뚜겅을 열어봐야 안다고 생각한다”고 날선 반응을 보였다. 


친윤 입장에서는 반드시 편승할 세력이 필요했다. 자신들이 주류임을 여전히 입증해야 당을 틀어쥘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전당대회 후보 등록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도 대안으로 떠오르는 인물이 없었다.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의 등판 시기는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출마 선언을 위한 구체적인 시기와 당 대표 선거를 위한 둥지까지 본격적으로 틀었다. 

친윤에게는 한 전 비대위원장을 이길 수 있을 만한 누군가가 절실한 상황이었다. 그의 지지율은 날로 치솟고 메시지 하나에도 주목도가 높았다. 친윤 세력으로만으로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다수 내려졌다. 이런 구도 상황서 나오는 게 바로 반한동훈 구도다. 

한 전 비대위원장이 압도적이기는 하나, 상대하기 까다로운 인물이라면 충분히 다른 상황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한 전 비대위원장이 가진 당심을 빼앗을 수 있는 후보가 필요하다는 인식도 기저에 깔려 있었다.

이런 틈에 총선서 패배한 뒤 잠행을 하던 원희룡 전 국토부 전 장관이 갑작스레 당 대표 선거에 뛰어들겠다고 선언했다. 원 전 장관은 언론인들에게 “지난 총선 패배 이후 대한민국과 당의 미래에 대해 숙고한 결과, 지금은 당과 정부가 한마음, 한뜻으로 총선을 통해 나타난 민심을 온전히 받드는 변화와 개혁을 이뤄내야 한다”고 전해왔다. 

원희룡과 붙으면 결선 간다?
“대세 구도 깰 수 있는 인물”

그는 국민의힘 후보군 중 가장 먼저 입장을 밝혔다. 친윤에게는 희소식이다. 원 전 장관은 윤 대통령의 복심 중 한 명이다. 위기에 처할 때마다 역할론이 급부상했고, 늘 중용 1순위 중 한 명으로 꼽혀왔다. 지난 총선서도 비대위원장 후보로 거론되기도 한 바 있다. 


원 전 장관의 출마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우선 나 의원은 완벽한 친윤 스탠스를 가져가지 못한다. 친윤 입장에서는 나 의원을 지원할지 다른 후보를 지원할지에 관한 선택의 폭도 넓어진 상황이다. 정치에 ‘믿는다’는 표현은 없지만 원 전 장관은 윤 대통령과 척을 진 적이 없다. 한 마디로 섭섭한 과거가 없다. 

나 의원은 국민의힘 중앙서 오랜 시간 동안 정치를 해온 만큼 인지도도 높다. ‘어대한’이라는 말이 나왔어도 결코 만만하게 볼 상대가 아니다. 친윤계가 물밑서 지원을 했다면 파급력이 커질 수 있었다. 

특히 나이연대(나경원-이철규 연대)에 강한 반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더욱이 나 의원 입장에서는 친윤에 가까운 스탠스가 불리하다. 

일각에서는 동작구 선거서 나 의원이 살아 돌아올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민심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결국 중도층을 확보하기 위해서 친윤에 가까운 태도를 유지하기 힘든 셈이다. 이런 상황서 가장 부담스럽지 않은 인물이 바로 원 전 장관으로 분류된다.

또 직전 당 대표 선거서 나 의원은 연판장 사태로 당 차원서 눌려 버렸다. 나 의원 스스로도 끔찍한 일로 기억하고 있으며 일을 잊기도 쉽지 않다. 

확실히 원 전 장관은 전당대회서 변수를 초래할 수 있는 인물이다. 한 전 비대위원장의 존재감과 몸값은 다른 후보에 비해 압도적이다. 

그나마 대항마로 불리는 나 의원도 한 전 비대위원장의 과반을 저지하기 힘들다는 분석이 나왔는데, 원 전 장관은 충분히 가능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전 비대위원장의 과반을 저지해 결선투표까지만 이뤄낸다면 그때의 상황은 알 수 없다는 게 이유다.

제대로
뒤통수

2등, 3등 후보가 연합한다는 가정의 변수가 추가된 셈이다. 

그의 출마는 용산의 전당대회 참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지난 전당대회 당시 후보들은 저마다 자신이 ‘친윤’이라며 부쩍 강조했던 바 있다. 특히 김기현 전 대표는 당시 김장(김기현-장제원) 연대의 덕을 톡톡히 봤다. 김 전 대표는 지지율 면에서 5위에 머물러 사실상 컷오프가 예정돼있었다. 

그러나 친윤 및 대통령실의 막대한 지원으로 기어이 당 대표로 선출됐다. 결선투표 없이 과반으로 이뤄낸 결과였다. 

반면 안철수 의원의 경우에는 자신이 윤안(윤석열-안철수) 연대로 이 자리에 왔고, 윤 대통령과 조합을 과시하기도 했다. 사실상 자신도 친윤 후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높지 않았어도 당에서는 기대감이라는 게 분명 존재했다.


이 때문에 친윤 색채를 강조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나 의원은 “우리 당은 스스로 친윤, 비윤, 반윤, 친한과 반한 같은 것들과 과감히 결별했으면 좋겠다. 완전히 잊고 묻어버렸으면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 같은 메시지를 낸 이유 자체가 언론서 자신이 친윤계 대표로 지칭되는 부분에 상당한 부담을 느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이런 탓에 친윤도 나 의원에게 더 이상 다가가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원 전 장관의 출마 이전까지 나 의원은 한 전 비대위원장의 대항마, 대세로 떠올랐다.

정치권에선 그의 등판 배경에 대해 나 의원이 친윤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지금은 어떤 후보도 내가 친윤이라고 하지 못한다. 여전히 대통령에게는 수직적 당정관계가 필요하다. 당의 그립을 쥐고 여전히 주도권을 쥐어야 유리하기 때문이다. 

믿기도
안 믿기도


원 전 장관의 참전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그의 당권 도전을 두고 대통령실과 사전에 상의가 있지 않았겠느냐는 해석도 나온다. 실제로 원 전 장관은 지난 20일, 윤 대통령을 만난 것으로 전해진다.

정치권 관계자에 따르면, 원 전 장관과 나 의원은 썩 사이가 좋지 않은 앙숙 관계다. 원 전 장관은 한 전 비대위원장, 나 의원을 때리면 때릴수록 세가 몰릴 가능성이 높다. 

이와 관련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에 “원 전 장관은 당권주자 후보 중 지지율이 낮지만, 확실한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는 인물로 충분히 판을 흔들 수 있는 인물 중 한 명”이라고 평가했다. 원 전 장관과 친윤 세력의 연대는 사실상 반 한동훈 연대로 불린다. 한 전 비대위원장이 이미 윤 대통령을 저버렸다는 평가가 나오는 탓이다. 

공격이 들어올 지점은 명백하다. 한 전 비대위원장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장동혁 의원은 “(한 전 비대위원장이)채상병 특검법에 대한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앞서 한 전 비대위원장도 총선에 앞서 “이종섭 국방부 장관의 소환과 (호주서 조사를 위해)귀국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당 자체적으로 채상병 특검법 등을 방어해 왔던 만큼 한 전 비대위원장의 이 같은 발언은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다만, 이 경우 그를 향한 반발 당심이 원 전 장관에게로 향할 수 있다.

물론 원 전 장관과 한 전 비대위원장과의 관계는 좋은 편으로 지난달, 두 사람은 식사 자리를 가졌다. 이 자리서 원 전 장관은 한 전 비대위원장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원 전 장관은 윤 대통령의 호위무사 격으로 당내에서는 한 전 비대위원장이 자기 정치를 했다는 이유로 반감이 일고 있는 분위기다. 

나, 연판장 사태로 신뢰 약해
원, 퍼포먼스 강해 변수 충분

이와 관련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한 전 비대위원장이 자기 정치를 했다는 반감이 크다. 유세에 가서 후보자를 내려보내고, 자기가 올라가는 등의 행동 등도 많았다”고 언급했다.

또 다른 변수는 민심이다. 국민의힘은 직전 전당대회서 100% 당원투표를 80%, 민심(여론조사)을 20% 반영되도록 고쳤다. 이는 한 전 비대위원장을 견제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로 해석됐다. 

통상 전당대회는 당원에 따라 요동치는 게 다반사로 당원들은 지지하는 당권주자들을 위해 조직적으로 움직인다. 한 전 비대위원장이 당협위원장 등을 만나 세를 불리기 위해 노력했지만 변수가 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지난 총선서 다수의 후보들이 쓴잔을 들이켰을 뿐만 아니라, 시스템 공천이라는 미명 하에서도 당내 다수의 반발이 제기됐었기 때문이다. 

조직을 쥐고 있는 이들은 현역 의원을 비롯해, 당협위원장도 상당수인 만큼 이들의 움직임에 따라서도 투표 향방이 갈릴 전망이다. 

원 전 장관의 출마를 달갑지 않게 보는 시선도 존재한다.

한 원외당협위원장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후보들이 당의 변화와 수도권 민심을 받아들여야 한다. 누군가를 단체로 지지하기는 어렵지만 원외 쪽은 당이 과거 거수기 노릇을 하던 모습으로부터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원 전 장관의 출마는)대통령실서 개입하겠다는 뜻인데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 지금은 당내 구성원과 원외당협위원장들도 용산의 책임이 제일 크다고 보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원 전 장관의 등판으로 전당대회 열기는 한층 더 치열해진 분위기로, 우선 시선을 끄는 데 성공한 셈이다. 앞으로 직전 전당대회서 김 의원이 선출됐을 때처럼 대통령실의 노골적인 개입으로 원 전 장관을 대놓고 밀어줄지가 관건이다.

원외위원장
조직 중요

반면 당내 상황은 현역 의원에 따라, 원외당협위원장에 따라 각각 셈법이 달라 한층 더 복잡해졌다. 이 같은 점 등을 미뤄볼 때 원 전 장관이 선거판을 충분히 흔들 수 있는 인물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이와 관련해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나 의원보다는 친윤이 상대적으로 볼 때 원 전 장관을 선택하는 게 (세력의)이탈 가능성이 적다고 본 듯하다”며 “(원 전 장관은)어대한이라는 대세론을 깰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예상했다. 

<ckcjfdo@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김재섭, 전대 불출마 까닭

국민의힘 김재섭 의원은 최근 당권 도전 불출마를 선언했다.

김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한 배경에는 자신의 무대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김 의원은 자신의 SNS에 “이번 전당대회에 출마하지 않는다. 이번 전대가 새로운 시대의 전야이길 바랐지만, 현실은 여전히 시대의 밤처럼 느껴진다”고 언급했다.

그는 입장을 밝히기 전까지도 상당한 고민을 했다고 전해진다.

정치권 관계자에 따르면 김 의원의 출마 여부를 놓고 찬반이 갈렸다고 전해왔다.

출마 반대하는 파는 전당대회에 출마할 경우, 이미지 소모가 커 불출마해야 한다는 이유를 내놨다고 한다.

한 첫목회 소속 인사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김 의원에게 출마만으로 의미가 되는 선거가 있다면 지금이라고 했다”며 “김 의원이 출마해야 전당대회가 산다고 했으나 끝내 불출마를 선언해버렸다”고 언급했다.

김 의원은 당선 이후 잠재적 당권주자로 분류돼 왔다.

국민의힘 험지로 분류되는 서울 도봉구서 당선이 됐고 무엇보다 젊은 피기 때문이다.

최고위원 출마 가능성도 제기됐지만 김 의원실 관계자는 <일요시사>에 “(최고위원 출마)가능성은 없다”고 못을 박았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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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12·3 계엄 당일 내란 주동자들은 정치인과 판사 등 자신들이 반국가 세력으로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위해 서둘렀다. 하지만 준비가 된 것은 각 군의 사령관들뿐이었다. 계엄사령부와 합동수사본부의 설치는 훈련 상황서도 24시간가량 걸리는데 이를 간과한 것이다. 미리 계엄을 준비했다는 증거가 계속해서 나오는 상황에 실무진에게 준비시키지 않은 점이 의문점으로 남아있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내란 주도자들이 정치인과 판사 등 ‘좌파세력’이라고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그 내막에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이하 합수본)의 미설치가 있다. 진술 나오자 다른 전략 <일요시사>가 검찰 진술 조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계엄이 시작된 계기와 14명의 체포 미수 및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불법 점거의 실패 이유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를 꼽았다.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 국회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대립은 심각했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야당은 자기들끼리 뭉쳐서 법안을 통과시켰고 윤 전 대통령은 재의요구권을 사용했다. 또 야당은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를 수사한 검찰들에 대한 탄핵을 시도하고 김건희씨와 관련한 특검법을 계속 발의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27일경, 윤 전 대통령이 관저 식사 자리서 “수사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검사를 탄핵하고, 재판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판사를 탄핵하고, 헌법재판소가 마음에 안 들면 정족수를 자르고, 이게 나라냐.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국가 세력의 준동에 관해 청주간첩단 및 창원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수사 과정서 잡은 인원들을 판사 기피 신청이 들어오면 단기간에 결정하는 것이 상식인데 6개월이나 결정을 하지 않아 간첩들의 구속 기간이 끝나 다 풀려나 돌아다니는데도 이런 것을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니 나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미래 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비상계엄)이 필요하겠다”고 강조했다. 일주일이 지난 후 윤 전 대통령은 김 전 장관에게 “야당의 패악질로 나라의 미래가 없다. 국가 비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들은 비상계엄 관련 논의를 했다. 이때 체포 명단인 이른바 ‘좌파 세력’ 14명의 명단과 군대를 어떻게 투입할지 등을 확정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들은 체포 명단의 사람들의 신병을 확보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게다가 내란 주동자들은 검찰 진술과 형사 법정 등에서도 체포하려 하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합수부 미설치로 체포 불가” “합수부 없어 시작부터 위법” 김 전 장관은 검찰에 “주요 정치인 등에 대한 검거를 시도한 바 없다. 혐의가 있어야 검거를 시도하지 않겠냐”며 “언론에 나오는 위치 추적 등은 포고령에 따라 정치활동이 금지되고 있는 상황이니 주요 정치인 몇 분과 부정선거 등과 관련해 사회서 의혹이 제기되는 사람들의 위치를 미리 파악하라고 이야기한 것일 뿐”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과 작전에 투입된 군인들의 진술로 체포 명단이 실제로 존재했으며 체포를 지시하고 시도했다는 것마저 모두 드러났다. 체포 시도가 있었다는 진술이 계속해서 나오자 내란 주동자들은 다른 전략을 세우게 된다. 바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다. 김 전 장관은 검찰 진술서 합수본이 미설치돼 체포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계엄사령부와 합수본이 설치되는 과정이라 검거가 불가능하다”며 “합수본이 설치되려면 검찰과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데 아무런 대비도 없이 체포부터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진술했다. 김 전 장관의 진술은 계엄 직후 선관위에 국군 정보사령부 부대원들을 보내 선거인 명부 관리 서버를 장악하고 선관위 당직자들에 대한 통신 제한(휴대전화 압수)과 감금이 위법한 수사 활동임을 나타내고 있다. 계엄이 터지면 통상적으로 합수본 역할을 맡는 국군 방첩사령부 관계자도 검찰 진술 당시 선관위 투입은 잘못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영희 방첩사 비서실 1과장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방첩사 소속 군인들로 하여금 중앙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도록 지시하거나 계엄 해제 이후 관련 증거를 제거하도록 시킨 것은 자신들의 정당한 권한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성 미리 알고? 박성하 방첩사 기획조정실장은 “현장에 나가 있던 소위 체포조에 대해서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면서도 “하지만 전시에도 방첩사가 일부 범죄에만 수사권이 있기 때문에 전시나 계엄 상황이라도 관할권이 없는 선관위나 정치인 등 체포나 점거는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게다가 합수본(방첩사)은 직접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역 합수단서 해야 할 일을 방첩사 인원으로 진행한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한 군검찰 출신 변호사는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임명하는 군사경찰 관리, 경찰공무원, 국가정보원 직원 중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 그 밖에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로 구성된다”며 “또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지정한 사건의 수사와 정보기관 및 수사기관의 조정·통제업무를 관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선관위로 투입된 인원들은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지도, 임무를 하달받지도 않았다”며 “게다가 합수본까지 설치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시작부터 위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보사와 방첩사 모두 계엄사령군(군사경찰)이 아니기에 정당한 절차가 없었다면 반란군이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점은 계엄 업무를 해본 김 전 장관이 왜 무리수를 뒀는지다. 김 전 장관은 대한민국 합동참모부서 작전본부장을 역임한 바 있다. 합참 작전본부에는 계엄과가 편제돼있기 때문에 김 전 장관이 계엄군과 합수본 지정 및 운용 등을 몰랐다고 보기 힘들다. 합참 계엄과서 편찬하는 계엄실무편람에도 잘 나와있기 때문이다. 김 전 장관은 논란을 줄이기 위해 계엄이 선포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화상으로 개최하면서 박안수 전 육국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을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일부 사령관 등에게만 공유됐던 12·3 계엄 작전은 계엄사령부가 설치되기도 전에, 합수본이 설치되기도 전에 끝났다. 사령부만 알았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 조서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부 사령관에게 국회와 선관위 출동을 하면서 방첩사에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해서 임무 수행을 하라고 지시했다. 김 전 장관이 방첩사에 지시한 임무는 경찰과 국방부 조사본부에 100명씩 인원을 요청하고 선관위로 먼저 투입된 국군 정보사령부가 접수한 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라는 지시였다. 국방부 조사본부와 경찰에 인원 요청을 한 것은 정치인, 판사, 등 민간인 체포를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조사본부는 방첩사가 요청한 수사관 지원 요청을 4차례 거절했다. 조사본부 한 관계자는 검찰 조사 당시 “지난 3일 계엄령 선포 이후 방첩사로부터 수사관 100명 지원을 네 차례 요청받았지만, 근거가 없다고 판단해 응하지 않았다”며 “이후 합수본 실무자 요청에 따라 시행 계획상 편성돼있는 수사관 10명을 지난해 12월4일 오전1시8분 출발시켰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의 수사관 파견 요청에는 불응했고, 계엄 시행 이후 방첩사를 중심으로 꾸려지는 합수본 요청에는 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사관이 파견된 시간은 이미 계엄 해제 의결이 이뤄진 뒤였다. 합수본이 계엄 해제와 비슷한 시기에 모양새라도 갖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 전 장관이 계엄 직후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여 전 사령관에게 합수본 설치를 지시했지만 설치가 늦어진 이유가 있다. 방첩사에 내려진 지시는 좌파세력 체포와 합수본 설치, 검찰과 경찰 및 국방부 조사본부 등에 협조 요청 등으로 내란 주동자들에게는 어느 것 하나 미룰 수 없는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 기획조정실장은 “부대에 도착해보니 OOO회의실에 여 전 사령관이 이경민 참모장, 이창엽 비서실장과 같이 있었다”며 “합수본 설치 지시를 받으려 사령관에 물어봤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여 전 사령관이 다른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합수본부장으로 임명됐다. 우리 대원들은 다 나가 있다’고 말하며 통화에만 집중했을 뿐 합수본 설치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계엄 6개월 전부터 준비 실무진만 ‘닭 쫓던 개’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국가적으로 엄중한 상황이 될 텐데 방첩사는 계엄 선포 예정 사실을 알고 준비하지 않았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계엄이 선포되면 합수본을 설치해야 하는 사람이 나다. 하지만 나는 해당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체포조를 운영한 수사단장도 해당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 그는 “방첩사 비상소집이 완료된 시간이 지난해 12월4일 오전 1시4분”이라며 “합수본은 기본 시설도 갖추지 못한 상태서 계엄이 해제됐다”고 말했다. 방첩사 인원들이 전원 소집되는 시간에 이미 계엄은 해제된 것이다. 방첩사의 작전 계획상에는 상황실 설치에 8시간, 합수본 설치에 24시간을 예정하고 있는데 비상계엄이 3시간 만에 해제됐다. 본부 설치에만 24시간이 걸리며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아 합수본을 완전히 구성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한 군사학과 교수는 “계엄 선포에 대해 사령관과 참모진 외에 실무자에게도 공유가 됐다면 미리 합수본 설치를 준비하고 있다가 계엄이 선포된 후 바로 체포를 진행했을 것”이라며 “이번 계엄의 패착은 이전 계엄과 달리 빠르게 대처한 국회를 막지 못한 것과 계엄사령부부터 합수본까지의 실무자들이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방첩사 사령부에서는 미리 계엄 준비를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방첩사 소속 간부 A씨는 검찰 조사에서 “방첩사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체결한 MOU에 언급된 ‘합동수사본부’는 계엄 시 설치되는 합수부가 맞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와 국수본은 지난해 6월28일 ‘안보범죄 수사 협력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합동수사본부 설치 시 편성에 부합하는 수사관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방첩사가 계엄을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지휘부에서 최초에는 지난해 5월 초순경 3주안에 체결하라는 지시를 했다”며 “보통 미국 국방정보국(DIA) 등 해외정보수사기관과 이런 MOU를 맺고, 국내 기관은 관련 법령이 있어 MOU를 맺지는 않는다. 국내 기관과 MOU를 맺은 건 이번이 처음이고, 굳이 이런 MOU를 맺는 게 의아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다만 조지호 경찰청장은 해당 MOU에도 불구하고 계엄 당일 수사관 지원 요청을 이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조 청장은 지난 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 나와 “방첩사 주관으로 수사본부가 꾸려질 수 있으니 경찰서 필요한 인력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준비하겠다고 했다”고 밝혔으며 계엄 당일 수사관 81명이 방첩사 요청으로 대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두환과 구상 흡사 내란 주동자들은 경찰력을 대거 방첩사로 파견해 합동수사본부를 꾸리고 정치인 체포 작전을 벌일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79년 비상계엄하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만든 합수본과 흡사한 구상이다. 당시 합수본은 정권에 반대하는 정치인에 대한 정보 기능을 도맡아 12·12 군사 반란의 수괴인 전두환씨가 권력을 장악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됐다. <kcj512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계엄 사령부 구성도 완전 실패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계엄사령부는 구성조차 못했다. 권영환 전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계엄과장은 계엄이 선포된 후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으로부터 ‘계엄사령부 설치를 도와라’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그는 육군 본부 참모진들이 올라올 때까지 계엄사 상황실 구성 준비를 했다. 계엄이 선포되면 계엄사에는 2실(비서실, 기획조정실) 8처(정보처, 작전처, 치안처, 법무처, 보도처, 동원처, 구호처, 행정처)를 구성하도록 돼있으나. 권 전 과장이 계엄사 상황실을 구성하고 있을 당시 국회에서는 ‘비상계엄해제 요구결의안’이 가결됐다. 당시 권 전 과장이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에게 “(계엄해제 요구안이 가결됐으니) 법률상 지체 없이 계엄을 해제하도록 돼있다”고 말하자 박 전 총장은 “그런 것을 조언할 것이 아니라 일이 되게끔 만들어야지 일머리가 없다”며 “올해 연습을 두 번이나 했다고 하면서 구성을 왜 빨리 못하냐”고 꾸짖었다고 한다. 이는 내란 주동자들이 2차 계엄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계엄사 구성의 역할이 합참에 있었다는 것을 내포하는 대목이다.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