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대한’ 장담 못하는 이유

판 뒤집을 ‘찐윤’ 등판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원희룡 전 국토부 장관의 참전으로 한층 더 가열되는 분위기다. 친윤 호위무사 타이틀을 가진 인물의 등장으로 당권주자들의 셈법이 분주하다. 과연 ‘어대한’(어차피 당 대표는 한동훈) 분위기를 원 전 장관이 깰 수 있을까?

당권주자 4인이 출마 선언을 했다. 누군가는 반윤(반 윤석열) 기조를, 누군가는 친윤(친 윤석열) 기조를 한층 더 강화하는 듯한 발언을 통해 출사표를 던졌다. 사안별로 시각의 차이가 있었다. 이번 전당대회서 친윤 세력은 윤석열 대통령과 가까운 인물이 되길 원한다. 그래야 주류로서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용산 교감?
갑자기 왜?

친윤 세력은 전당대회에 앞서 수세에 몰렸던 바 있다. 당내 주류임에는 분명하나 전당대회서 이들에게 힘을 더욱 불어넣어줄 후보가 마땅히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을 공격하는 일뿐이었다.

상황은 점점 최악으로 치달았다. 이런 탓에 친윤 세력은 국민의힘 김재섭·나경원 의원에게 자꾸 스킨십을 시도했다. 그러나 이들은 “지원받을 생각이 없다” “특정 계파에 줄 서지 않는다”며 받아들이지 않아 무위에 그쳤다.

문제는 친윤 세력의 공격이 크게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는 점이다. 앞서 친윤 핵심 인사인 이철규 의원은 ‘어대한’이라는 말에 대해 “당원을 모욕하는 말이다. 선거 결과는 뚜겅을 열어봐야 안다고 생각한다”고 날선 반응을 보였다. 


친윤 입장에서는 반드시 편승할 세력이 필요했다. 자신들이 주류임을 여전히 입증해야 당을 틀어쥘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전당대회 후보 등록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도 대안으로 떠오르는 인물이 없었다.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의 등판 시기는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출마 선언을 위한 구체적인 시기와 당 대표 선거를 위한 둥지까지 본격적으로 틀었다. 

친윤에게는 한 전 비대위원장을 이길 수 있을 만한 누군가가 절실한 상황이었다. 그의 지지율은 날로 치솟고 메시지 하나에도 주목도가 높았다. 친윤 세력으로만으로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다수 내려졌다. 이런 구도 상황서 나오는 게 바로 반한동훈 구도다. 

한 전 비대위원장이 압도적이기는 하나, 상대하기 까다로운 인물이라면 충분히 다른 상황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한 전 비대위원장이 가진 당심을 빼앗을 수 있는 후보가 필요하다는 인식도 기저에 깔려 있었다.

이런 틈에 총선서 패배한 뒤 잠행을 하던 원희룡 전 국토부 전 장관이 갑작스레 당 대표 선거에 뛰어들겠다고 선언했다. 원 전 장관은 언론인들에게 “지난 총선 패배 이후 대한민국과 당의 미래에 대해 숙고한 결과, 지금은 당과 정부가 한마음, 한뜻으로 총선을 통해 나타난 민심을 온전히 받드는 변화와 개혁을 이뤄내야 한다”고 전해왔다. 

원희룡과 붙으면 결선 간다?
“대세 구도 깰 수 있는 인물”

그는 국민의힘 후보군 중 가장 먼저 입장을 밝혔다. 친윤에게는 희소식이다. 원 전 장관은 윤 대통령의 복심 중 한 명이다. 위기에 처할 때마다 역할론이 급부상했고, 늘 중용 1순위 중 한 명으로 꼽혀왔다. 지난 총선서도 비대위원장 후보로 거론되기도 한 바 있다. 


원 전 장관의 출마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우선 나 의원은 완벽한 친윤 스탠스를 가져가지 못한다. 친윤 입장에서는 나 의원을 지원할지 다른 후보를 지원할지에 관한 선택의 폭도 넓어진 상황이다. 정치에 ‘믿는다’는 표현은 없지만 원 전 장관은 윤 대통령과 척을 진 적이 없다. 한 마디로 섭섭한 과거가 없다. 

나 의원은 국민의힘 중앙서 오랜 시간 동안 정치를 해온 만큼 인지도도 높다. ‘어대한’이라는 말이 나왔어도 결코 만만하게 볼 상대가 아니다. 친윤계가 물밑서 지원을 했다면 파급력이 커질 수 있었다. 

특히 나이연대(나경원-이철규 연대)에 강한 반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더욱이 나 의원 입장에서는 친윤에 가까운 스탠스가 불리하다. 

일각에서는 동작구 선거서 나 의원이 살아 돌아올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민심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결국 중도층을 확보하기 위해서 친윤에 가까운 태도를 유지하기 힘든 셈이다. 이런 상황서 가장 부담스럽지 않은 인물이 바로 원 전 장관으로 분류된다.

또 직전 당 대표 선거서 나 의원은 연판장 사태로 당 차원서 눌려 버렸다. 나 의원 스스로도 끔찍한 일로 기억하고 있으며 일을 잊기도 쉽지 않다. 

확실히 원 전 장관은 전당대회서 변수를 초래할 수 있는 인물이다. 한 전 비대위원장의 존재감과 몸값은 다른 후보에 비해 압도적이다. 

그나마 대항마로 불리는 나 의원도 한 전 비대위원장의 과반을 저지하기 힘들다는 분석이 나왔는데, 원 전 장관은 충분히 가능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전 비대위원장의 과반을 저지해 결선투표까지만 이뤄낸다면 그때의 상황은 알 수 없다는 게 이유다.

제대로
뒤통수

2등, 3등 후보가 연합한다는 가정의 변수가 추가된 셈이다. 

그의 출마는 용산의 전당대회 참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지난 전당대회 당시 후보들은 저마다 자신이 ‘친윤’이라며 부쩍 강조했던 바 있다. 특히 김기현 전 대표는 당시 김장(김기현-장제원) 연대의 덕을 톡톡히 봤다. 김 전 대표는 지지율 면에서 5위에 머물러 사실상 컷오프가 예정돼있었다. 

그러나 친윤 및 대통령실의 막대한 지원으로 기어이 당 대표로 선출됐다. 결선투표 없이 과반으로 이뤄낸 결과였다. 

반면 안철수 의원의 경우에는 자신이 윤안(윤석열-안철수) 연대로 이 자리에 왔고, 윤 대통령과 조합을 과시하기도 했다. 사실상 자신도 친윤 후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높지 않았어도 당에서는 기대감이라는 게 분명 존재했다.


이 때문에 친윤 색채를 강조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나 의원은 “우리 당은 스스로 친윤, 비윤, 반윤, 친한과 반한 같은 것들과 과감히 결별했으면 좋겠다. 완전히 잊고 묻어버렸으면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 같은 메시지를 낸 이유 자체가 언론서 자신이 친윤계 대표로 지칭되는 부분에 상당한 부담을 느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이런 탓에 친윤도 나 의원에게 더 이상 다가가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원 전 장관의 출마 이전까지 나 의원은 한 전 비대위원장의 대항마, 대세로 떠올랐다.

정치권에선 그의 등판 배경에 대해 나 의원이 친윤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지금은 어떤 후보도 내가 친윤이라고 하지 못한다. 여전히 대통령에게는 수직적 당정관계가 필요하다. 당의 그립을 쥐고 여전히 주도권을 쥐어야 유리하기 때문이다. 

믿기도
안 믿기도


원 전 장관의 참전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그의 당권 도전을 두고 대통령실과 사전에 상의가 있지 않았겠느냐는 해석도 나온다. 실제로 원 전 장관은 지난 20일, 윤 대통령을 만난 것으로 전해진다.

정치권 관계자에 따르면, 원 전 장관과 나 의원은 썩 사이가 좋지 않은 앙숙 관계다. 원 전 장관은 한 전 비대위원장, 나 의원을 때리면 때릴수록 세가 몰릴 가능성이 높다. 

이와 관련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에 “원 전 장관은 당권주자 후보 중 지지율이 낮지만, 확실한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는 인물로 충분히 판을 흔들 수 있는 인물 중 한 명”이라고 평가했다. 원 전 장관과 친윤 세력의 연대는 사실상 반 한동훈 연대로 불린다. 한 전 비대위원장이 이미 윤 대통령을 저버렸다는 평가가 나오는 탓이다. 

공격이 들어올 지점은 명백하다. 한 전 비대위원장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장동혁 의원은 “(한 전 비대위원장이)채상병 특검법에 대한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앞서 한 전 비대위원장도 총선에 앞서 “이종섭 국방부 장관의 소환과 (호주서 조사를 위해)귀국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당 자체적으로 채상병 특검법 등을 방어해 왔던 만큼 한 전 비대위원장의 이 같은 발언은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다만, 이 경우 그를 향한 반발 당심이 원 전 장관에게로 향할 수 있다.

물론 원 전 장관과 한 전 비대위원장과의 관계는 좋은 편으로 지난달, 두 사람은 식사 자리를 가졌다. 이 자리서 원 전 장관은 한 전 비대위원장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원 전 장관은 윤 대통령의 호위무사 격으로 당내에서는 한 전 비대위원장이 자기 정치를 했다는 이유로 반감이 일고 있는 분위기다. 

나, 연판장 사태로 신뢰 약해
원, 퍼포먼스 강해 변수 충분

이와 관련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한 전 비대위원장이 자기 정치를 했다는 반감이 크다. 유세에 가서 후보자를 내려보내고, 자기가 올라가는 등의 행동 등도 많았다”고 언급했다.

또 다른 변수는 민심이다. 국민의힘은 직전 전당대회서 100% 당원투표를 80%, 민심(여론조사)을 20% 반영되도록 고쳤다. 이는 한 전 비대위원장을 견제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로 해석됐다. 

통상 전당대회는 당원에 따라 요동치는 게 다반사로 당원들은 지지하는 당권주자들을 위해 조직적으로 움직인다. 한 전 비대위원장이 당협위원장 등을 만나 세를 불리기 위해 노력했지만 변수가 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지난 총선서 다수의 후보들이 쓴잔을 들이켰을 뿐만 아니라, 시스템 공천이라는 미명 하에서도 당내 다수의 반발이 제기됐었기 때문이다. 

조직을 쥐고 있는 이들은 현역 의원을 비롯해, 당협위원장도 상당수인 만큼 이들의 움직임에 따라서도 투표 향방이 갈릴 전망이다. 

원 전 장관의 출마를 달갑지 않게 보는 시선도 존재한다.

한 원외당협위원장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후보들이 당의 변화와 수도권 민심을 받아들여야 한다. 누군가를 단체로 지지하기는 어렵지만 원외 쪽은 당이 과거 거수기 노릇을 하던 모습으로부터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원 전 장관의 출마는)대통령실서 개입하겠다는 뜻인데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 지금은 당내 구성원과 원외당협위원장들도 용산의 책임이 제일 크다고 보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원 전 장관의 등판으로 전당대회 열기는 한층 더 치열해진 분위기로, 우선 시선을 끄는 데 성공한 셈이다. 앞으로 직전 전당대회서 김 의원이 선출됐을 때처럼 대통령실의 노골적인 개입으로 원 전 장관을 대놓고 밀어줄지가 관건이다.

원외위원장
조직 중요

반면 당내 상황은 현역 의원에 따라, 원외당협위원장에 따라 각각 셈법이 달라 한층 더 복잡해졌다. 이 같은 점 등을 미뤄볼 때 원 전 장관이 선거판을 충분히 흔들 수 있는 인물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이와 관련해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나 의원보다는 친윤이 상대적으로 볼 때 원 전 장관을 선택하는 게 (세력의)이탈 가능성이 적다고 본 듯하다”며 “(원 전 장관은)어대한이라는 대세론을 깰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예상했다. 

<ckcjfdo@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김재섭, 전대 불출마 까닭

국민의힘 김재섭 의원은 최근 당권 도전 불출마를 선언했다.

김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한 배경에는 자신의 무대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김 의원은 자신의 SNS에 “이번 전당대회에 출마하지 않는다. 이번 전대가 새로운 시대의 전야이길 바랐지만, 현실은 여전히 시대의 밤처럼 느껴진다”고 언급했다.

그는 입장을 밝히기 전까지도 상당한 고민을 했다고 전해진다.

정치권 관계자에 따르면 김 의원의 출마 여부를 놓고 찬반이 갈렸다고 전해왔다.

출마 반대하는 파는 전당대회에 출마할 경우, 이미지 소모가 커 불출마해야 한다는 이유를 내놨다고 한다.

한 첫목회 소속 인사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김 의원에게 출마만으로 의미가 되는 선거가 있다면 지금이라고 했다”며 “김 의원이 출마해야 전당대회가 산다고 했으나 끝내 불출마를 선언해버렸다”고 언급했다.

김 의원은 당선 이후 잠재적 당권주자로 분류돼 왔다.

국민의힘 험지로 분류되는 서울 도봉구서 당선이 됐고 무엇보다 젊은 피기 때문이다.

최고위원 출마 가능성도 제기됐지만 김 의원실 관계자는 <일요시사>에 “(최고위원 출마)가능성은 없다”고 못을 박았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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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정부는 당시 합병으로 인해 외국계 투자회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및 메이슨 캐피탈과 국제투자 분쟁에 휩싸였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정으로 정부는 이들에게 약 2100여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 중 아주 작은 소생의 실마리가 나왔다. 엘리엇 분쟁 사건의 판정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정부가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와의 8년간 진행 중인 국제투자 분쟁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1300여억원을 배상하라는 국제투자 분쟁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의 항소심에서 승소하면서다. 이로 인해 배상 판결이 취소될 가능성도 되살아났다. 사건 발단 짚어보니… 법무부에 따르면 영국 항소법원은 지난 17일 한국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법원인 고등법원에 사건을 환송했다. 이에 따라 사건을 되돌려받은 영국 고등법원은 엘리엇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을 결정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재판 관할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한국 정부로서는 중재판정 자체를 무효화할 가능성을 다시 확보하게 된 셈이다. 엘리엇 배상 사건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엘리엇은 해당 의혹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나서야 7억7000만달러의 손해를 입었다며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의 ISDS 제기는 대한민국 정부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만약 엘리엇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막대한 국민 세금이 배상금으로 지급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국제 중재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외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전담팀을 구성하고 국제 법률 전문가들과 협력해 엘리엇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양측은 수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국정 농단 사건의 재판 결과와 국민연금 관계자들의 증언 등이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 기나긴 법적 공방 끝에 지난 2023년 6월20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PCA는 엘리엇의 ISDS 사건에 대한 최종 판정을 내렸다. 판정 결과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PCA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당시 환율로 약 690억원) 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엘리엇이 청구한 금액인 약 7억7000만달러의 약 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 중재에서 패소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PCA는 판정문에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행위가 한국 정부에 귀속되는 행위며, 이로 인해 엘리엇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공적기금으로서 정부의 통제 하에 있으며, 그 의사결정이 정부의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의 정당한 주주 권리를 침해하고 투자가치를 훼손했다고 봤다. 배상 취소 소송 항소심 승소 한미FTA상 성립 불가능 판단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 판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판정 직후 즉각적으로 불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7월18일, 정부는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하는 동시에,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판정에 법리적 오류가 있거나 중재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주장하며 판정을 뒤집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특히, 정부는 엘리엇 사건이 한미 FTA상 ‘성립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점을 취소소송에서 가장 크게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국제투자 분쟁은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협정 위반 행위에 대해 제기하는 국제중재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상업적 행위’일 뿐 국가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으나 1심 법원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는 해당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를 진행했고 지난 17일 영국 항소법원은 우리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사건은 다시 1심 법원인 영국 고등법원으로 환송됐으며, 영국 고등법원은 배상 판결을 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애초 재판 관할권이 있었는지부터 다시 심리하게 된다. 이 판결은 한국 정부가 거액의 배상을 면할 수 있는 반전의 기회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엘리엇 배상 사건의 발단은 삼성물산 제일모집 합병에서 촉발됐다. 지난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 계획을 발표하며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1대 0.35의 비율로 흡수합병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및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으로 해석됐으나,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불리한 합병 비율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8년 소송 결말은?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는 삼성물산의 약 3배였지만, 자산총액 기준으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의 3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음을 공시하며 합병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합병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됐으며 합병 조건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엘리엇의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하며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합병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합병 반대 의견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내부 투자위원회를 거쳐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결국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됐고, 그해 9월1일 통합 삼성물산이 공식 출범했다. 이후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불법성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관련 인사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2025년 7월17일, 대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과 관련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이 회장은 약 10년간 이어져 온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게 됐다. 리스크 해소 다양한 반응 엘리엇 배상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항소심에서 ‘한국 승소’로 뒤집히자, 취소 청구를 주도한 법무부 장관으로서 환영했다. 한 전 대표는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낸 많은 ‘좋은 공직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제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지휘했던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의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대한민국이 이겼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저 소송(취소소송 제기) 관련해 저를 많이 비난했었다”고 정쟁적 비판을 상기시켰다. 그는 “‘국익’이 걸렸지만 결과가 나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큰 문제를 결정할 때, 몸 사리면 공직자들은 편하다. ‘지면 네 돈 낼 거냐’는 폭력적인 질문 앞에서 ‘안 하고 말지’ 생각이 들게 마련”이라며 “그래도 몸 사리지 않고 국익을 생각한 좋은 공직자들이 있다. 이 경우가 그랬다”고 설명했다. 특히 “엘리엇 항소에 대해 ‘질 가능성이 크니 항소하지 마라, 그래서 지면 한동훈 사비로 돈 대신 내라’는 감정적 비난이 많았고, 그런 제목의 언론 사설까지 있었다”면서 공직사회에 “피 같은 국민 세금 아끼기 위해 많은 분들이 혼신의 노력을 해온 것을 제가 잘 안다”고 격려를 보냈다. 한 전 대표는 “의미있는 승리지만 이 사안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쉽지 않은 싸움”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국익을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엘리엇 배상 사건처럼 메이슨 캐피탈이 같은 이유로 제기했던 ISDS의 중재판정 취소소송 항소 포기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한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엘리엇과 메이슨은 같은 이유로 ISDS를 제기했다”며 “엘리엇은 취소소송의 항소심을 진행하면서 메이슨은 지연이자 등으로 항소심을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엇 사건이 항소심에서 승리하면서 메이슨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4월 정부 대리 로펌 및 외부 전문가들과 논의한 끝에 정부의 메이슨 ISDS 중재판정 취소 청구를 기각한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발단 “이재명정부가 구상권 제기해야” 메이슨은 지난 2018년 9월 우리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금 1억9139만달러(약 2609억원)와 판정일까지 연 5% 월 복리이자를 지급하라는 ISDS를 제기했다. 정부는 한미 FTA상 ‘정부가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는 공식적인 국가 행위를 전제로 하는데, 개별 공무원의 불법적이고 승인되지 않은 비위 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4월 우리 정부를 향해 메이슨 측에 3203만876달러(약 438억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싱가포르 법원은 메이슨 측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 정부 측에 손해배상을 명한 중재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법리뿐 아니라 항소 제기 시 발생하는 추가 비용 및 지연이자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결정했다"고 항소 포기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번에 항소심에서 정부가 승리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국민 세금으로 내야 할 배상액이다. 정부가 메이슨에 지급해야 할 돈은 지연이자까지 포함해 약 887억원이 됐다. 엘리엇에 배상해야 할 금액은 당초 1300억원에서 지연이자까지 더하면 약 1500억원가량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에서는 엘리엇과 메이슨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만큼 당시 합병을 주도한 이 회장과 두 기업의 합병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상대로 구상권을 제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리이자가 계속 쌓이면서 배상액도 천문학적으로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 이재명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월 대선을 앞두고 참여연대는 대선후보들에게 엘리엇·메이슨 ISDS 배상금 구상권 행사 여부를 듣기 위해 질의문을 보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참여연대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서 세금 수천 억원의 손실을 되돌리기 위한 의지와 책임을 보여야 할 자리에서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7일에는 이재용 회장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다시 한번 “재벌 봐주기 판결로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고 총수 일가의 전횡을 용인하는 해로운 판례를 남긴 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주장과 함께 정부를 향해 구상권 청구를 요청했다. 구상권 문제는? 다만 국제통상 전문가로 활동한 송기호 변호사가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에 있다는 점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송 실장은 변호사 시절 “법무부는 당시 중과실로 불법 행위한 대한민국 공무원들, 이들과 공모 관계라고 인정된 이재용 회장을 상대로 신속하게 구상권 청구를 해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 등 공무원에겐 국가배상법에 따라 당사자에게 청구하고, 이 회장에 대해선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청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