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쇄빙선’ 조국혁신당 암초 셋

망망대해 휘젓다 수면 아래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4·10 총선은 그야말로 ‘조국 열풍’이었다. 제3지대 중 가장 두각을 나타냈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은 창당 한 달 만에 비례 12석을 얻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원내 제3당의 비운일까? 22대 국회를 완주하기 위한 여의도 생존 전략은 무디기만 하다.

22대 국회 개원과 동시에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은 ‘한동훈 특검법’을 1호 법안으로 제시하고 ‘수사·기소 분리 검찰개혁 3법’을 당론으로 발의했다. ‘윤석열 탄핵’을 가감 없이 외치고 용산 리스크를 전면으로 들이받으며 존재감을 키워갔다.

한계 고착?

창당부터 지금까지 연일 광폭 행보를 보였지만 총선 때 보여줬던 조국 열풍이 조금씩 꺼지고 있다는 회의적인 시선도 따라붙는다. 총선 열기와 더불어 컨벤션 효과가 사그라든 만큼 당연한 결과라지만 이대로는 비례정당의 한계에 고착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혁신당은 총선 이후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0%대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지만 원내 제3당으로서의 존재감이 다소 미약하다는 평이 나온다. 김건희 여사 수사와 채 상병 특검법 등 주요 현안을 놓고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 크게 차별점을 두지 못해 ‘민주당 2중대’라는 수식어도 여전하다.

혁신당은 거대 야당인 민주당과 달리 발언이나 행동적인 측면서 비교적 자유롭다는 강점을 가졌다. 혁신당 일부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이 보낸 당선 축하 난을 보란 듯이 거절했다. 최근 최고위원회의에서는 “대한민국서 오르지 않는 건 ‘내 월급과 윤 대통령 지지율’이라는 말까지 나온다”며 윤 대통령을 향해 “술 마시며 유튜브만 보지 마시기를 바란다”는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혁신당 특유의 시원한 화법은 강성 지지층에게 곧잘 먹히는 전략이었지만 이제는 강약 조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의 목표인 ‘윤정부 조기종식’도 좋지만 검찰개혁에만 과하게 몰두하다 보면 오히려 중도층의 반감을 산다는 것이다.

민생 정책과 검찰개혁 비율을 분배해 대중성을 확보하는 게 첫 번째 과제로 여겨진다. 단순히 윤정부 조기종식을 원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아닌 공공 이익의 실현을 목표로 하는 정당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점에서다.

지난 11일 혁신당은 창당 100일 기념 기자회견서 외연 확장 가능성을 밝혔다. 혁신당의 비전인 검찰개혁은 물론 정책적으로도 중도층을 아우르며 ‘사회권 선진국’으로 거듭나기 위한 전략을 실행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날 조 대표는 중도층의 진보화가 이뤄지고 있다고 시사했다. 그는 “(통계 조사에 따르면)우리나라서 자기를 중도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진보화돼있다”며 “싸움을 거칠게 하지 않고 품격 있게 할 것이고 그게 정치공학적으로 중도층도 원하는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용산 리스크’ 한 놈만 노렸더니…
외연 확장·교섭 단체 여전히 난항

이날 조 대표는 가장 시급한 과제로 ‘전국 조직화’를 제시하기도 했다. 대중 정당이 되기 위해서는 혁신당의 뜻을 국민에게 잘 전달할 수 있도록 조직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

혁신당서도 이 같은 한계점을 인지하고 있다.


한 혁신당 관계자는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창당 전후로는 검찰개혁을 향한 목소리를 크게 냈지만 민생 법안을 소홀히 하는 건 결코 아니다”라며 “얼마 전에는 사각지대에 있는 노동자의 노동권리 보장법을 혁신당 민생 법안 1호로 발의했다”고 밝혔다.

다만 한동훈 특검법 등 비교적 주목도가 높은 메시지가 다방면으로 나온 탓에 해당 법안이 다소 묻힌 듯한 경향이 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당 관계자는 “혁신당이 만들어진 이유는 윤정부 조기종식이라는 뚜렷한 이유가 있다”면서도 “당연히 22대 국회 내내 한 가지만 외칠 수 없다. 조 대표도 각종 민생 정책에 깊은 관심을 두고 있어 당 차원서도 여러 가지 방법을 연구할 것”이라고 전했다.

두 번째는 비교섭단체가 갖는 한계다. 교섭단체가 아닌 정당은 국회를 운영하거나 각종 상임위원회 논의서 배제되는 등 활동 반경이 제한된다. 아무리 혁신당이 굳은 의지를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비교섭단체인 상태로는 여러 가지 제약이 붙을 수밖에 없다.

그동안 혁신당은 교섭단체 문제를 두고 민주당을 향해 여러 차례 서운한 입장을 밝혀왔다. 22대 총선 당시 민주당이 교섭단체 조건을 현행 20석에서 10석으로 완화하는 것을 먼저 제시했지만 선거가 끝나자 논의가 흐지부지된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문제에 대한 열쇠를 쥔 건 민주당이다. 조 대표의 대법원 판결 이후 당의 동력이 빠르게 떨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만큼 이른 시일 내 민주당과 머리를 맞대 결과를 도출해야 한다.

교섭단체 문제를 놓고 민주당도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닌 모양새다. 혁신당의 활동 반경이 넓어진다는 건 정부여당 대항마라는 든든한 우군을 얻는 동시에 경쟁상대가 되기 때문이다. 혁신당은 민주당과의 차별성을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하는 만큼 이슈 주도권을 빼앗길 우려가 있다.

더 멀리 내다봤을 때 2026년 지방선거서 표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민주당 관계자의 설명이다. 혁신당이 지난 총선서 호남표를 예상치보다 많이 흡수한 만큼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오직 조국 위한 사당?
다가오는 전대 주목

따라서 현재로서는 국회 비교섭단체 6당이 뭉치는 방안이 가장 유력하게 점쳐진다. 혁신당 12석에 ▲개혁신당 3석 ▲진보당 3석 ▲새로운미래 1석 ▲기본소득당 1석 ▲사회민주당 1석을 더하면 총 21석으로 교섭단체 기준인 20석을 충족한다.

이는 민주당과의 논의 없이 6당이 합의를 보면 되는 방법인 만큼 혁신당 입장서도 부담이 덜하다. 하지만 각자의 당이 조금씩 이견이 있는 만큼 한 방향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다.

마지막은 ‘조국 1인 정당’ 이미지를 탈피하는 것이다. ‘조국혁신당’이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당은 조 대표의 존재감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조 대표는 자신의 사법 리스크로 인한 혁신당의 해체 가능성에 “당이 붕괴될 가능성은 없다”고 딱 잘라 말했지만 ‘조국 없는 조국혁신당’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한 척의 쇄빙선이 아닌 각각 다른 열두척의 쇄빙선으로 폭넓게 움직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12명의 비례의원이 각자의 분야서 이슈 파이팅으로 정치권의 시선을 조 대표로부터 분산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민주당이 이 대표 일극 체제로 굳어지는 것과 차별점을 둬 민주당 2중대라는 오명을 벗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다만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당장 조 대표 외에 눈에 띄는 인물이 없다는 점을 한계로 지적했다. 혁신당은 의원 수가 적을뿐더러 대다수가 법조인 출신인 만큼 서로 관심사가 겹치는 것도 아쉬운 점으로 꼽았다.

혁신당 2인자로 황운하 원내대표와 신장식 의원이 자칭타칭 물망에 오르지만 조 대표와 마찬가지로 사법 리스크가 걸린 탓에 여러모로 신중을 가하는 모양새다.

두 번째 기회

내달 20일 예정인 혁신당 전당대회를 기점으로 새로운 장이 열릴지 이목이 쏠린다. 새 지도부가 출범하는 등 당 분위기를 전체적으로 환기해 다시 한번 컨벤션 효과를 누릴 것이란 희망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본격적으로 22대 국회가 가동되면 중요 안건에 대한 캐스팅보터 역할을 톡톡히 해낼 것이란 기대감도 적지 않다. 조국 열풍을 불렀던 혁신당이 원내 제3당으로서 도약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hypak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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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