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 기획사’ 하이브 빛과 그림자

대기업 됐지만 속은 비실비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논란, 논란, 논란. 끊임없이 이어지는 논란에 엔터테인먼트사의 본질은 뒷전이 된 모양새다. 대중은 차갑게 돌아섰고 이미지는 나락으로 떨어져 소속 연예인까지 타격받고 있다. 규모로는 업계 1위를 자랑하는 기업이 곪아 터진 속사정만 드러내는 중이다. 화려한 겉모습 이면에 어떤 민낯이 숨어 있던 걸까?

연예계가 이렇게 시끄러웠던 적이 있을까? 겨우 상반기가 끝났을 뿐인데 ‘올해의 뉴스’라고 할 법한 사건이 연이어 터졌다. 심지어 몇몇은 현재진행형이다. 그 중심에 ‘하이브’가 있다. 하이브는 BTS, 뉴진스, 르세라핌, 아일릿 등 국내외 인기 그룹을 보유한 업계 1위 엔터테인먼트사다.

빛 좋은
개살구?

최근 하이브는 엔터테인먼사 중에는 최초로 대기업집단에 지정됐다.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는 지난달 15일 ‘2024년 대기업집단(공시대상 기업집단) 지정 현황’을 발표했다. 자산 총액 5조원 이상(지난해 말 기준)인 회사가 공시대상 기업집단으로 지정됐다.

하이브는 앨범‧공연‧콘텐츠 수익 증가로 자산이 4조8100억원에서 5조2500억원으로 늘었다. 하이브 총수(동일인)인 방시혁 의장은 주식재산 6위를 기록했다. 방 의장은 하이브 주식을 2조5447억원어치 보유하고 있다.

기업분석전문 한국CXO연구소에 따르면 대기업집단 88개 그룹 총수 가운데 6번째다. 주식 재산만 놓고 보면 4대 그룹 총수인 최태원 SK그룹 회장(2조1152억원)이나 구광모 LG그룹 회장(2조202억원)보다 높은 순위다. 


하이브는 2005년 빅히트엔터테인먼트로 출범해 2021년 현재 사명으로 바꿨다.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음악에 기반한 세계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라이프스타일 플랫폼 기업을 지향한다’고 소개하고 있다. 하이브가 다른 엔터테인먼트사와 차별화되는 지점은 ‘멀티레이블 시스템’ 방식이다.

하이브는 빅히트뮤직(BTS), 플레디스엔터테인먼트(세븐틴), 쏘스뮤직(르세라핌), 빌리프랩(아일릿), 어도어(뉴진스) 등 멀티레이블을 운영하고 있다. 멀티레이블 시스템은 레이블별로 독립적인 운영을 보장해 특정 아티스트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려는 목적으로 설계됐다.

하이브는 레이블별로 75% 이상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민희진과의 갈등에서 완패
화해 제스처에도 묵묵부답

멀티레이블 시스템은 하이브가 업계 최초로 도입한 체제다. 최근 하이브를 뒤흔들고 있는 논란이 바로 멀티레이블 시스템으로부터 비롯됐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하이브 입장에서는 경쟁과 협력을 바탕으로 레이블 간 상생을 꾀한 듯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갈등의 시발점이 된 모양새다. 

모든 일은 하이브와 민희진 어도어 대표의 갈등서 비롯됐다. 이후 하이브 산하 레이블 일부가 참전하면서 전선이 확대되기 시작했다. 고소, 고발이 진행됐고 법정 공방으로 이어졌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중심으로 하이브 소속 연예인에 대한 언급이 늘어났고 이 과정서 몇몇 가수에 대한 비방이 쏟아졌다, 

문제는 갈등이 거듭되면서 하이브에 대한 대중 이미지가 바닥을 치고 있다는 점이다.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되는 등 외형은 ‘공룡기업’으로 커졌지만 내부 상황이 까발려지면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방 의장의 리더십이 시험대에 오른 것을 넘어 일정 부분은 이미 상처를 입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민 대표에 대한 감사권 발동으로 시작된 경영권 분쟁은 하이브의 완패로 끝났다. 앞서 하이브는 민 대표와 부대표가 경영권 탈취 시도를 했다고 보고 긴급 감사에 들어갔다. 이후 감사 중간 결과 보고를 통해 민 대표와 부대표의 배임 증거를 확보했다고 밝히면서 이들을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발했다. 

민 대표는 기자회견을 자처하며 맞불을 놨다. 민 대표의 기자회견은 크게 화제가 되면서 여론을 뒤흔들었다. 민 대표가 타 레이블의 표절 의혹을 제기하고 하이브의 음반 밀어내기 권유를 폭로하자 갈등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특히 업계에서는 멀티레이블 체제의 단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말이 나왔다.

감사권 발동
가처분 인용

하이브와 민 대표의 갈등 수위가 올라가자 법원의 판단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민 대표가 어도어 대표직을 유지할 수 있는지를 두고 법조계 입장도 엇갈렸다. 지난달 30일 법원은 민 대표 측이 하이브를 상대로 낸 의결권 행사 금지 가처분신청을 인용했다. 민 대표 측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는 “민희진에게 해임 사유가 존재하지 않는 한 하이브는 이번 주주총회서 민희진 해임에 대한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을 계약상의 의무가 있다”며 “하이브는 민희진의 해임 사유에 대해 소명해야 하지만 현재까지 제출된 자료로는 충분히 소명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이어 “민희진이 뉴진스를 데리고 하이브의 지배 범위를 이탈하거나 하이브를 압박해 하이브가 보유한 어도어 지분을 팔게 만듦으로써 어도어에 대한 지배력을 약화하고 독립적으로 지배할 방법을 모색했던 것은 분명하다고 판단된다”면서도 “방법 모색의 단계를 넘어 구체적인 실행행위까지 나아갔다고 보기 어려울 뿐 아니라 민희진의 행위가 하이브에 대한 배신적 행위가 될 수는 있겠지만 어도어에 대한 배임행위가 된다고 하기는 어렵다”고 판시했다. 

법원이 가처분신청을 인용하면서 민 대표와 하이브는 ‘불편한 동거’를 이어가게 됐다. 민 대표는 법원의 판결 이후 기자회견을 자청해 하이브에 손을 내밀었다. 1차 기자회견 때와 달리 한결 차분한 모습으로 자세를 낮췄다. 하이브가 어도어 이사진을 교체하면서 구도가 재편된 것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어도어 이사회가 1대 3 구도가 되면서 이사회 결의만 있으면 민 대표를 해임하는 것이 가능하다. 법적으로 이사회 의결권을 강제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민 대표 입장에서는 ‘시한부 대표’가 될 가능성도 존재하는 셈이다. 모회사인 하이브와 계속 법정 공방을 이어가는 것도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표절·밀기
문제 불거져

민 대표는 법원 판결 다음 날인 지난달 31일 “어도어 대표로 계속 일하고 싶다. 뉴진스와 함께 계획한 것을 하고 싶다. 그게 하이브에도 이익이다. 그만 싸우고 다음 챕터로 넘어가자”고 했다. 그는 “직위와 돈에 대한 욕심이 이 분쟁의 요인이 아니다. 뉴진스 멤버와 세운 비전을 이루고 싶은 소망이 크다. 감정적인 건 뒤로 하고 하이브와 이성적으로 타협점을 잘 찾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상황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 하이브와의 분쟁이 1차적으로 마무리되기 무섭게 타 레이블 간의 갈등이 본격화된 것이다. 특히 하이브와 민 대표의 갈등 과정서 제기된 표절 의혹에 불이 붙었다. 앞서 민 대표는 아일릿의 소속사가 뉴진스의 제작 포뮬러를 표절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빌리프랩은 민 대표를 업무방해와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데 이어 최근 민사소송을 추가로 제기했다. 빌리프랩은 지난 10일 SNS에 “빌리프랩은 그동안 표절의 멍에를 짊어지고 숨죽여 온 아티스트와 구성원의 피해에 대한 민사소송을 추가로 제기해 민희진 대표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여기에 표절 반박 영상을 제작해 유튜브에 게재하는 등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다. 28분 분량의 영상에는 김태호 빌리프랩 대표, 아일릿 기획에 참여한 관계자 등이 출연했다.

김 대표는 “특정한 콘셉트로 데뷔한 선배들 뒤에 데뷔하는 팀들이 가져야 하는 숙명이라고 생각한다”고 표절 논란에 대한 입장을 전했다. 이어 “뉴진스를 만든 민희진씨 입장에서는 본인이 했던 것과 유사성을 찾아내고 (빌리프랩이)베꼈다고 주장하시는 것 같다”며 “하지만 안타깝게도 전혀 그런 바가 없다”고 반박했다.

빌리프랩은 영상서 여러 그룹을 언급하면서 뉴진스의 콘셉트를 차용하지 않았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레이블 간 전쟁으로 2차전
이미지 실추로 주가도 하락

누리꾼 반응은 싸늘하다. 일각에서는 ‘안 하니만 못했다’는 반응이 나오면서 역풍까지 불 기세다. 유튜브 영상의 ‘싫어요’ 수가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부정적인 댓글이 쏟아지고 있다. 업계서도 소속 아티스트를 신경 쓰지 않은 대응이었다는 비판이 이어지는 중이다.


실제 영상에 대한 비판은 아일릿으로까지 번지는 모양새다. 데뷔한 지 채 3개월도 되지 않은 걸그룹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이미지가 훼손됐다는 의견도 있다.

하이브와 민 대표와의 갈등이 수면 위로 올라온 시기는 지난 4월말 경이다. 불과 2개월 만에 하이브는 대기업집단 지정‧내부 갈등이라는 극과 극의 상황을 동시에 겪었다. 업계 1위 기업이라는 것을 인정받은 것과 동시에 누리꾼 사이서 ‘K-POP을 망치는 주범’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하이브를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이 앞으로 더 날카로워질 것이라는 점이다. 기업의 가치 평가가 고스란히 반영되는 주가는 이미 큰 폭으로 하락했다. 안 그래도 ‘엔터주’는 연예인의 상황에 따라 주가 등락이 큰 분야다. 대중을 상대로 하는 업계인 만큼 이미지 실추는 치명적이다. 

이미지 회복을 위해서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갈등을 봉합해야 하는데 가야 할 길이 멀다. 내부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은 이미 넘어서 송사로 비화된 만큼 기업에 대한 이미지 상실은 물론, 소속 아티스트에 대한 타격도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여기에 민 대표가 제기한 표절이나 음반 밀어내기 등 K-POP의 관행처럼 여겨졌던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온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지금까지 암암리에 진행됐다는 의혹만 나왔던 부분이 민 대표의 발언으로 검증 대상이 된 것이다. 

아티스트도
타격 입었다

여기에 갈등 과정서 불거진 각종 의혹도 꼬리표처럼 따라붙을 가능성이 크다. 연예계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은 만큼 의혹에 대한 진화도 어려운 상황이다. 결국 방 의장의 역량이 이번 사태로 확인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작곡가로서 방 의장은 ‘업계 탑’으로 알려져 있다. BTS라는 세계적인 그룹을 키워내면서 기획자로서의 역량도 인정받았다. 이제 그룹 총수로서의 역량을 검증받을 때가 왔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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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트럼프발’ 통상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앞서 못 박은 시한은 끝났다. 우리나라는 유예 기간이 끝나기 전날 타결했다. 이제 협상 결과를 두고 계산기를 두드려야 할 때다. 일본과 유럽연합(EU), 그리고 한국. <일요시사>가 세부 내용을 들여다봤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각국에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미국을 상대로 돈을 번, 즉 대미 무역 흑자를 거둔 나라들이 표적이 됐다.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부터 전 세계는 ‘트럼프발’ 통상 전쟁에 휘말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숫자를 외칠 때마다 세계 경제가 요동쳤다. 하루 전 극적 타결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다소 늦게 통상 협상을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지난 6월 조기 대선이 치러질 때까지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탄핵심판 등 대형 정치 이슈가 거듭되면서 미국과 협상을 하고 싶어도 테이블에 앉을 사람이 마땅치 않은 상태였다. 실제 한덕수 전 국무총리나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 등이 협상에 나섰지만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 새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제동을 걸었다. 또 한 전 총리의 대선 출마 선언, 최 전 부총리 탄핵안 상정 등의 상황이 겹치면서 미국과의 협상은 큰 진전 없이 시간만 흘렀다. 이후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다. 우리나라는 좀처럼 미국 실무진과 접점을 찾지 못했다. 그 사이 트럼프 대통령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모든 한국산 제품에 대해 산업별 관세와는 별도로 25%의 일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시한은 지난 1일로 못 박았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FTA 체결로 사실상 무관세 수준이었기에 관세 부과가 현실화하면 경제 전반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자동차나 반도체 등 핵심 수출 품목에 붙는 관세 외에도 비관세 장벽(관세 이외의 수단으로 무역을 제한하는 조치)을 허물라는 압박도 가해졌다. 쌀이나 소고기 등 농·축산물 시장 개방, 정밀 지도 반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 등이 협상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예상됐다. 국내 상황과 맞물려 쉽게 내주기 어려운 조건들이었다. 일·EU와 같은 15%로 막아 대미 투자는 3500억달러로 협상도 난항을 겪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2 통상 협상을 하루 앞두고 출국하려다 미국 측의 취소로 불발하는 일이 일어났다. 앞서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이 방한을 닷새 앞두고 일정을 취소하기도 했다. 미국 고위급 인사들과의 만남이 잇따라 무산되면서 ‘한미 관계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일본과 유럽연합(EU)이 차례로 미국과 협상을 타결하면서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다. 특히 일본의 협상 결과가 공개되면서 우리나라가 최소한으로 맞춰야 할 기준이 생겨버렸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자동차 등 수출 품목이 일부 겹치기에 일본보다 관세가 높아지면 수출 경쟁력이 망가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일본과 무역 협상을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일본산 수입품에 부과하는 상호관세는 15%다. 기존 25%에서 10%포인트 줄어들었다. 일본이 미국에 5500억달러(약 759조원)를 투자할 것이고 이 중 90%의 수익을 미국이 받게 된다고도 했다. 동시에 자동차와 농산물을 일부 개방한다는 조건도 달렸다. 지난달 27일에는 미국과 EU가 관세 협상을 타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EU로부터 수입되는 모든 품목에 대해 일괄적으로 1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산 에너지 7500억달러(약 1030조원) 구매 및 대미 투자 6000억달러(약 820조원) 확대 방안을 담은 ‘무역협정 틀’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일본과 EU의 협상 타결로 미국의 협상 전략이 윤곽을 드러냈다. 관세를 낮추는 조건으로 무엇을, 얼마나 내놓느냐가 관건이 된 것이다. 관심이 집중된 부분은 대미 투자액이었다. 애당초 통상 전쟁 자체가 타국이 얻는 대미 무역 흑자를 줄이겠다는 명목으로 시작된 터라 트럼프 대통령은 상대국에 대미 투자라는 일종의 ‘청구서’를 요구한 셈이다. 일본이 5500억달러, EU가 6000억달러를 미국에 각각 투자하기로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리나라에 날아올 청구액에 관심이 쏠렸다. 협상 시한이 다가오면서 언론보도 등을 통해 3000억달러, 4000억달러 등의 추측이 난무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제멋대로’ 외교에 우리나라 협상팀이 휘둘리고 있다는 말도 나왔다. 쌀 소고기 지켰다는데 우리나라는 협상 시한을 하루 앞둔 지난달 31일 한국산 제품에 대한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내용을 골자로 협상을 타결했다. 일단 일본, EU와 동일한 수준으로 관세 인하를 이끌어낸 것이다. 관심을 모았던 자동차 관세율은 15%, 철강·알루미늄·구리는 기존 관세율(50%)을 유지하기로 했다. 또 반도체와 의약품 관세 부과 시 최혜국 대우도 약속받았다. 다른 나라보다 불리한 관세를 적용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부분도 일본, EU와 같은 합의 내용이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민감한 품목으로 분류됐던 쌀과 쇠고기 등의 개방은 하지 않는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농산물 전면 개방을 언급해 향후 변동 가능성을 지켜봐야 한다. 대미 투자액은 3500억달러(약 490조원)로 결정됐고 1000억달러(약 140조원) 상당의 액화천연가스(LNG) 또는 기타 에너지 제품을 수입하기로 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한국과 일본의 대미 무역 상황은 지난해 기준 각각 660억달러 흑자, 685억달러 흑자로 규모가 유사한 상황에서 일본보다 작은 규모인 3500억 달러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며 “기업이 주도하는 조선펀드 1500억달러를 제외하면 우리 펀드 규모는 2000억달러로 일본의 36%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합의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미국과 조선업 분야 협력을 확대하기로 한 것”이라며 “한미 조선협력펀드 1500억달러는 선박 건조, MRO(유지·보수·정비), 조선 기자재 등 조선업 생태계 전반을 포괄한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 협상팀은 조선 협력을 내세운 게 협상 타결의 ‘키’였다고 자평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브리핑을 하며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가 협상 타결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고 밝혔다.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뜻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구호인 ‘매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에서 따온 표현이다. 자동차는 관철 못 해 아쉬운 부분으로는 자동차 관세를 꼽았다. 이전까지 우리나라 자동차는 관세가 0%였다. 2.5%였던 일본과 비교해 근소하게 가격 경쟁력을 가졌다. 하지만 이번 협상 타결로 일본과 똑같은 15% 관세가 결정되면서 자동차 업계는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됐다. 우리나라 협상팀이 끝까지 자동차 관세 12.5%를 요구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모두 15%’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큰 고비를 하나 넘었다”며 “이번 협상으로 정부는 수출 환경의 불확실성을 없애고 미국 관세를 주요 대미 수출 경쟁국보다 낮거나 같은 수준으로 맞춤으로써 주요국들과 동등하거나 우월한 조건으로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고 평했다. 협상 결과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성공과 실패를 떠나 일단 ‘최악은 면했다’는 의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협상 타결이 이뤄지기 전까지 유예 기간을 놓쳐 관세 25%를 맞을 수도 있다고 우려한 것에 비하면 나름 ‘선방했다’는 의견이다. 동시에 미국이 내민 청구서의 구체적인 부분을 더 살펴야 한다는 신중론도 존재한다. 일본 등은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타결 발표와 실제 합의 내용이 다르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결정된 사항을 즉흥적으로 바꾸는 등 외교 과정에서 ‘오락가락’하는 면모를 보인 적이 여러 차례 있다.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불확실성을 극대화하는 협상 기술을 사용한다는 평이다. 정밀 지도·국방비 등 안보 이슈 백악관서 만나 대통령끼리 담판?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나라와의 협상 타결 내용을 발표하면서 언급한 정상회담이 ‘진짜’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는 “한국이 투자 목적으로 상당한 금액을 추가 투자하기로 합의했다”면서 2주 내로 이재명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투자액이 발표될 것이라고 했다. 추가 청구서가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이번 통상 협상에서 논의되지 않은 정밀 지도 반출 문제가 협상 테이블에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지도 반출 등 안보 사안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별도로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지도 반출과 관련해) 우리가 계속 방어해왔다. 추가 양보는 없다”고 말했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3월 <2025 국가별 무역 장벽 보고서>에서 정밀 지도 반출 제한을 한국과의 디지털 무역 장벽 중 하나로 지목했다. 우리나라 정부는 군사기밀 유출을 우려해 정밀 지도의 국외 반출을 막아왔다. 정밀 지도에 해외 기업이 가진 위성사진을 결합하면 국가 안보와 직결된 지도 정보로 완성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정계와 IT업계는 정밀 지도를 반출해야 한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협상에서는 다뤄지지 않았지만 정상회담의 의제로 오를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뜻이다. 주한미군 주둔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문제도 거론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들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5% 이상을 국방비 예산으로 잡으라고 압박했다. 우리나라에도 대선 후보 시절부터 방위비 분담금으로 100억달러를 내야 한다고 여러 차례 말하는 등 전방위로 요구한 바 있다. 추가 청구 나올까? 한미 정상회담은 이 대통령의 ‘외교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대통령은 취임 직후 G7 정상회의에 참석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지 못했다. 나토 회의에는 이 대통령 대신 위성락 안보실장이 참석했다. 이번 정상회담이 ‘안보’ 회담이 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딜을 벌일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