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웅열 코오롱 명예회장 분가 이후…초라한 창업 성적표

만만찮은 홀로서기…잘 쳐줘야 ‘1무3패’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재벌 총수가 모든 특권을 뒤로한 채 창업의 길에 올랐다. 자신의 힘으로 꿈을 일구겠다는 일념으로 내디딘 첫 발이다. 아직까지는 성과랄 게 없다. 스타트업이라는 특성을 감안해도 변변치 못한 성적표는 가려지지 않는다. 성장 가능성을 감안해 평가해봐야 ‘1무3패’에 불과하다. 

2018년 11월 코오롱원앤온리타워에서 열린 ‘성공 퍼즐 세션’은 생각지 못하게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세션 종료 직전 느닷없이 연단에 오른 이웅열 코오롱그룹 명예회장이 “앞으로 그룹 경영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폭탄선언을 한 덕분이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해당 발언은 단순 해프닝이 아니었다. 이 명예회장은 사임 표명 직후 사내 인트라넷에 “청년 이웅열로 돌아가 새롭게 창업의 길을 가겠다”는 취지로 글을 올려 경영 은퇴 결정을 재확인시켰다.

충만했던
의지

물론, 이 명예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는 게 총수 자리에서 내려왔음을 뜻한 건 아니었다. 지주사인 ㈜코오롱 대표이사직을 이 명예회장의 장남 이규호 부회장과 전문경영인 안병덕 부회장이 맡고 있음에도, 공정거래위원회는 최근까지도 이 명예회장을 ‘동일인’으로 등록한 상태다.

이 명예회장의 실질 지배력이 여전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총수 꼬리표는 떼지 못했지만, 그룹과 선을 그은 채 창업의 길을 걷겠다는 이 명예회장의 의중은 확고했다. 그리고 이 명예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자취를 감춘 지 1년여가 흐른 이후부터 그가 직접 출자한 스타트업이 순차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공정거래위원회 기업집단누리집에 등록된 최근 5년(2020년~2024년 5월) 코오롱그룹 소속 기업 변동 내역을 분석한 결과, 이 명예회장 일가에서 지분 100%를 보유했던 비금융 국내 법인은 ▲더블유파트너스 ▲인유즈 ▲메모리오브러브 ▲어바웃피싱 ▲비아스텔레코리아 등 총 5곳으로 확인된다.

‘더블유파트너스(2010년 10월 설립)’를 제외한 4곳은 이 명예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이후 직접 설립한 스타트업으로, 코오롱그룹 계열사로 등록된 바 있다. 현행 공정거래법상 동일인과 동일인의 친인척(배우자, 6촌 이내 혈족, 4촌 이내 인척) 등이 30% 이상 지분을 보유했거나 지배력을 행사하는 법인은 계열 편입 대상이 된다.

다만 이 명예회장이 만든 대다수 스타트업은 사실상 궤도 안착에 실패한 모양새다. 원활한 운영은커녕, 생존을 위협받는 녹록지 않은 현실에 노출된 양상이다.

엇비슷한
내리막

‘인유즈’는 이 명예회장의 창업 프로젝트가 첫 결실을 맺은 사례였다. 이 회사는 이 명예회장이 전액 출자한 자본금 1억원을 밑천 삼아 2019년 12월 ‘아르텍스튜디오’라는 상호로 설립됐고, 항균 소재 마스크 및 가정용품 소매업에 주력했다.

이 명예회장의 창업 의지가 발현됐다는 상징성과 별개로, 기초체력이 허약했던 인유즈는 초창기에 내부거래로 연명했다. 2020년 거둔 매출 7억600만원 중 66.01%에 해당하는 4억6600만원을 그룹 계열사에서 끌어왔다는 게 이를 뒷받침한다.


이듬해와 2022년에는 내부거래 비중을 각각 17.17%, 0%로 낮췄을 뿐, 수익성을 반등시키지 못했다. 2020년 1억100만원이었던 영업손실 규모는 이듬해 코로나19 수혜에 따른 매출 확대에 힘입어 4300만원으로 줄었다가, 1년 뒤 3억4500만원으로 급격히 커졌다. 

이 명예회장은 단기차입 형태로 2020년 4월 3억원을 빌려주고, 세 차례에 걸쳐 상환 연장을 수락하는 등 인유즈에 투자를 감행했다. 2021년 10월과 지난해 12월에는 유상증자에 참여해 각각 10억9000만원, 지난해 2억5000만원을 출자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인유즈는 결국 해체 수순을 밟았다. 지난해 12월 임시주주총회에서 법인 해산 결의와 청산 절차 진행이 결정됐고, 지난 4월자로 청산 및 법인 소멸 작업이 완료된 상황이다. 이 명예회장이 인유즈 해체 직전까지 투입한 자금은 설립 당시 자본금 1억원을 포함해 총 14억4000만원에 달한다.

벌인 사업 적자 수렁
곳곳에서 폐업 속출

2021년 5월 설립된 ‘메모리오브러브’ 역시 인유즈와 비슷한 수순을 밟았다. 업싸이클링 의류 제품을 대표 품목으로 등록한 이 회사는 이 명예회장 일가에서 소유한 가족회사 개념이었다. 설립 당시 자본금 5억원 중 70%를 이 명예회장이 투자하고, 슬하의 3남매(이규호 부회장·이소민씨·이소윤씨)가 각각 10%씩 출자한 구조였다.

메모리오브러브는 매출이 전혀 없는 가운데 운영비용이 발생하면서 2021년 말 기준 영업손실 2억2900만원을 기록했다. 추가 자금의 필요성이 부각되자 이 명예회장은 ▲1억5000만원(2022년 9월) ▲5000만원(2022년 12월) ▲5000만원(지난해 1월) ▲5000만원(지난해 2월) ▲5000만원(지난해 3월) 등 총 5차례에 걸쳐 3억5000만원을 빌려줬다.

이 같은 노력에도 메모리오브러브는 폐업을 피하지 못했다. 지난해 4월 초 임시주주총회를 거쳐 해산을 결의했고, 같은 달 말 청산 절차를 밟았다. 메모리오브러브가 영위했던 플랫폼 사업은 코오롱인더스트리가 양도받았는데, 당시 코오롱인더스트리는 친환경 패션 플랫폼 사업 활성화 및 사업 시너지 발휘를 위함이라고 양도 이유를 설명했다.

하나라도
살릴까?

‘어바웃피싱’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축이다. 2021년 5월 자본금은 5억원을 밑천 삼아 설립된 이 회사는 메모리오브러브와 마찬가지로 이 명예회장 일가에서 소유한 가족회사였다. 최근까지 발행주식 중 70%를 이 명예회장, 나머지 지분 30%를 슬하의 3남매가 10%씩 나눠 갖고 있었다.

사명에서 알 수 있듯이 어바웃피싱은 낚시 관련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초창기에는 낚시 관련 커뮤니티 서비스에 주력했지만, 이후 낚시터 정보제공, 예약서비스, 용품 판매 등으로 서비스를 확장하면서 성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받는 분위기다.

이 명예회장 일가는 지금껏 4차례에 걸쳐 유상증자에 참여하면서 어바웃피싱에 투자 의지를 내비쳐왔다. 설립 당시 5억원이었던 어바웃피싱 자본금은 35억원으로, 발행주식은 100만주에서 700만주로 증가한 상황이다. 

이 명예회장은 측면 지원에도 힘쓰고 있다. 이 명예회장이 어바웃피싱에 대여한 금액만 해도 ▲2022년 9월 3억원 ▲2022년 12월 1억원 ▲지난해 12월 3억원 ▲지난해 12월 9000만원 ▲지난 1월 7000만원 등 총 7억1000만원이다. 자금 사정이 넉넉해진 어바웃피싱은 ‘어바웃피싱 베트남법인’을 운영할만한 여력을 갖춘 상태다.


다만 수익을 내려면 다소 시간이 필요한 분위기다. 어바웃피싱이 최근 3년간 거둔 매출은 ▲2021년 0원 ▲2022년 7200만원 ▲지난해 5억6000만원 등 연평균 2억1100만원에 불과했다.

같은 기간 영업손실은 ▲2021년 2억원 ▲2022년 10억880만원 ▲지난해 26억5800만원 등 급격히 커지는 추세다. 수익성이 발목을 잡은 것도 모자라 지난해 말 기준 총자본(-4700만원)이 자본금(35억원)을 하회하는 ‘완전 자본잠식’에 빠져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어바웃피싱 주주 구성에서는 큰 변화가 있었다. 지난 11일 이 명예회장은 보유주식 490만주 중 350만1주를 코오롱인더스트리 fnC 출신인 송동현 어바웃피싱 대표이사에게 넘겼다. 기존 70%였던 이 명예회장의 지분은 20%로 낮아진 반면 송 대표는 지분 50%+1주 확보와 함께 어바웃피싱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불편한
현실

‘비아스텔레코리아’는 이 명예회장이 창업한 스타트업 중 막내 격이다. 이 명예회장이 출자한 자본금 3500만원을 토대로 2022년 1월 출범했고, 도시락 및 식사용 조리식품 제조업을 사업목적으로 두고 있다.

비아스텔레코리아는 설립한 지 2년 넘도록 종업원은 1명에 불과하고, 사업성과는 ‘0’에 수렴한다. 지난해 말 기준 매출 없이 영업손실과 순손실을 1400만원씩 기록했고, 자본잠식에 빠져 있다. 사업목적을 늘리면서 기존 식품업은 물론이고 컨설팅, 서비스용역에 진출할 수 있게 됐지만, 출범 이래 지금껏 별다른 자본유입 흐름은 목격된 게 없다.

<heaty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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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