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군대 보내지 않는 엄마들 백태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4.06.11 08:47:27
  • 호수 14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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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죽음 당할 바엔 한국 뜬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군에 아들을 보낸 부모들이 비상이다. 끊이지 않는 군 내 사망사고로 ‘어떻게 하면 아들을 군에 보내지 않을까’ 하는 고민 때문이다. 물론 편법으로 병역의 의무를 회피해선 안 되겠지만, 일찌감치 해외 이민으로 군대를 가지 않아도 되는 방법을 마련해주자는 의도다. 어쨌든 ‘죽을 수도 있는’ 군대에 가는 것보단 낫다는 것이다.

최근 군부대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지난달 21일부터 27일까지는 군인 4명이 숨졌다. 지난달 27일에는 경기도 모 공군 부대 간부가 영외 독신자 숙소서 숨진 채 발견됐고, 같은 날에는 강원도 육군 21사단 위관급 장교가 자신의 차량 안에서 사망했다.

사병에
장교까지

지난달 23일에는 육군 12사단 훈련병 1명이 군기훈련 중 쓰러져 민간 병원으로 응급 후송돼 치료받았으나 이틀 만에 사망했다. 지난달 21일에는 육군 32사단 신병교육대서 수류탄 폭발 사고로 훈련병 1명이 숨졌다.

특히 지난달 23일에 있었던 훈련병 사망 사건은 충격적이었다. 이날 오후 제12보병사단서 훈련병 6명이 ROTC 출신 여군 중대장의 명령으로 완전군장 상태로 연병장 뜀걸음, 팔굽혀펴기, 선착순 달리기 등의 군기훈련을 받았다. 해당 훈련병이 전날 밤에 떠들었다는 이유였다.

이때 훈련병 1명이 이상 징후를 보였다. 같이 군기훈련을 받던 동료 훈련병이 이를 파악해 간부에게 보고했으나, 간부는 꾀병 취급해 계속 군기훈련을 진행했다.


결국 해당 훈련병은 군기훈련 시작 후 40분 만에 쓰러져 방치되다가 발견돼 신병교육대대 의무실로 이송 후 군의관 지시로 수액을 맞았다. 이후 오후 의무사령부 의료종합상황센터를 통해 군 병원이 아닌 민간 병원인 속초의료원으로 응급 후송됐지만, 속초의료원 후송 당시 호흡수가 분당 50회에 체온은 40.5도로 고열 상태였다.

나이와 이름을 묻는 질문에도 정상적으로 대답할 수 없는 상태였다.

속초의료원은 해당 훈련병이 지나친 체온 상승과 무리한 운동으로부터 비롯된 근육 손상으로 횡문근융해증이라고 진단했다. 2~3시간가량 치료에도 불구하고 훈련병의 몸은 40도 이상 고열이 유지됐고 치료 도중 신부전 등의 증세가 나타났다.

속초의료원은 강릉아산병원으로의 전원을 결정했다. 신장 투석이 긴급히 필요해질 정도로 증세가 악화됐고, 영동지방서 신장투석기를 보유한 병원이 상급종합병원급 외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훈련병은 의식이 없는 채로 강릉아산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이송 이후 근육이 녹아내리는 상황서 신장 투석을 진행했지만, 치료 도중 상태가 나빠진 끝에 패혈성 쇼크로 끝내 사망했다.

군기훈련 받다가 쓰러져서…
일주일 새 군인 4명이나 사망

현행 육군 규정상 완전군장 상태의 군기훈련은 훈련병은 걷기만 가능하고, 걷더라도 1회당 1㎞ 이내만 지시할 수 있다. 팔굽혀펴기도 훈련병 기준 20회까지 최대 4세트로 맨몸인 상태서만 시킬 수 있다.


반면 숨진 훈련병은 당시 여러번 건강 이상 신호가 있었으며, 같이 군기훈련을 받던 동기 훈련병이 해당 훈련병의 안색과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을 보고 현장 간부에게 보고했다. 하지만, 중대장은 이를 무시하고 별다른 조치 없이 계속 군기훈련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병영생활 규정은 군기훈련 대상자의 신체 상태를 고려해 실시해야 하고, 시행 전 신체 상태에 대해 문진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특히 사고가 발생한 날의 인제군 기온은 27.4도로 더운 날씨였다. 이날 훈련병은 완전군장을 한 채로 연병장 2바퀴를 보행하고, 지시에 따라 군장 상태서 뛰다가 쓰러졌다. 군당국은 당시 보행 및 구보의 총거리는 1.5㎞ 정도로 파악했다.

군 관계자는 “통상 20㎏ 이상인 군장을 한 채 팔굽혀펴기까지 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지난달 29일, 육군 12사단 훈련병, 32사단 훈련병, 21사단 장교, 공군 초급 간부가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윤석열정부의 책임이 크다”고 주장했다.

최민석 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국회 소통관 브리핑서 “일주일 새 4명의 군인이 세상을 떠났다. 군 장병들을 소모품쯤으로 취급하는 윤정부와 정치 군인들로 인해 대한민국의 국방과 안보가 안에서부터 무너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연이은 군인 사망 사태는 대통령 취임 행사에 군인을 동원하는 등 장병들을 소모품으로 취급해 온 윤정부의 책임이 크다. 특히 해병대원 사망 사건과 수사외압 의혹은 윤정부가 장병들의 인권을 얼마나 하찮게 여기는지 알게 한다”고 지적했다.

불똥 튄
정치권 

최 대변인은 “철 지난 색깔론을 들이밀며 정권의 이념 전사로 만드는 데만 혈안이었지, 윤정부가 장병의 인권과 안전을 위해서 지금까지 한 게 무엇이냐? 신원식 전 장관과 같은 막장 인사가 국방부 장관이 되고 정치 군인이 활개치며, 애꿎은 장병들만 억울하게 희생되는 것이 지금의 군의 현실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아울러 “윤정부는 장병을 도구 취급하고 이들의 인권과 생명을 짓밟으며 군을 무너뜨리는 행태를 멈춰라. 지금 대한민국 안보의 가장 큰 위협은 군을 안에서부터 무너트리는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의 행태임을 뼈아프게 반성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상황이 병역기피를 부추기고 있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민주당 송옥주 의원이 병무청으로부터 받은 ‘2018~2022년 병역의무 기피자 정보공개 현황’ 자료에 따르면, 이 기간 동안 발생한 병역기피자는 총 1397명이었다. 

국외 여행 허가를 받고 출국했다가 귀국을 미루고 불법체류한 사례가 698명으로 가장 많았고 현역 입영 기피자가 466명으로 뒤를 이었다. 사회복무요원 소집 기피자는 126명, 병역판정검사 기피는 107명이었다. 이들 1397명 가운데 병무청의 경고를 받고 뒤늦게라도 병역의무를 이행한 사람은 20.3%(283명)에 그쳤다.


특히 국외 불법체류자 698명 중에서는 단 1.6%(11명)만 병역을 다했다.

특히 어린 아들을 둔 엄마들이 비상이다. 아들이 3세라는 A씨는 아들의 군 문제 때문에 이민을 고려하고 있다. 처음엔 단순히 ‘군대서 고생시키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었지만 군 사망 뉴스를 계속 접하면서 아들을 군대에 보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A씨는 “이민을 선택한 이유에는 좋은 교육환경도 있지만 남자아이를 키우는 처지서 합법적인 군 면제를 받게 하고 싶은 것이 크다. 처음엔 본인이 선택할 문제라고 생각했지만, 군대서 계속 사람이 죽는데 당연히 보내고 싶지 않은 게 부모 마음 아니냐”고 말했다.

군 면제
방법 공유

이어 “이런 말 하면 당연히 욕먹는 거 알지만 한국서 살면 대학교 1~2학년 때 군 입대하는 게 보통인데, 그 전에 선택하겠지만 그 전에 선택할 수 있도록 영주권이라도 따게 도와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영주권자가 된다고 해서 무조건 군 면제가 가능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미국 영주권자는 한국인이라도병역법 제3조에 따라 ‘대한민국 남성은 헌법과 이 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병역의무를 성실히 수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현행법률상 영주권을 가져도 병역을 이행할 의무를 갖고 있는 셈이다. 또 병역법 제60조에 따르면 ‘국외에 체재·거주하고 있는 사람은 병역판정검사 등 병역을 연기할 수 있다’고 명시한다. 같은 법 70조는 ‘병역의무자로서 25세 이상 병역준비역 등은 국외 여행 시 병무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돼있다. 

해외 거주 중인 영주권자들은 37세까지 병역 연기가 가능하지만 이를 넘기면 병역의무가 자동 소멸된다. 영주권 으로 군대 연기를 하려면 24세가 되는 해에 국외 여행 기간연장 허가 신청서를 제출해야 하고, 늦어도 25세가 되는 해의 1월15일까지는 허가를 받아야 한다.

결국 한국 체류나 방문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시민권을 취득해야 군 면제가 된다.

A씨는 “군대에 다녀와야 철이 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군대서 과연 좋은 것만 보고 느끼겠나?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좋은 것보다는 나쁜 조직의 습성을 몸에 익히고 폭력에 관대해지는 것 같다”고 밝혔다.

해외 영주권자인 B씨는 아들이 해외서 대학교에 다니고 있다. 당연히 B씨 아들도 영주권자인데, 축구 경기 도중 전방십자인대 파열 부상을 당하면서 군에 입대하려던 계획이 틀어졌다.

“어릴 때 이미 이민 준비”
“차라리 영창 가는 게 낫다”

B씨는 “아들이 신검을 받을 겸 한국행 비행기를 예매해놓은 상황이었다. 아이가 워낙 운동을 좋아해서 축구 시합을 나갔다가 부상을 입었다. 아이가 다쳐 마음이 아팠지만, 군대를 면제받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최근에 있었던 사건 사고를 보면서 더 안심했다”고 전했다.

B씨 아들은 한국서 다리 수술 후 결국 면제를 받았다. 수술받기 전부터 군에 입대하고 싶다고 의사와 많은 상담을 했지만, 부상 정도가 심해서 면제받은 것이다. 이렇게 군 문제가 일단락된 것으로 생각했지만, 아들은 입대하겠다고 계속 고집을 부렸다.

B씨는 “최근 터진 군 사망사고 뉴스를 보여주면서 군대에 가면 안 된다고 말렸다. 이렇게 면제까지 받게 된 상황에, 군대 가면 안 된다. 남들은 군대에 안 가려고 편법까지 쓰는 상황 아니냐?”며 “군대서 반항하면 영창가지 않느냐? 그나마 영창에 가는 게 낫지, 그러면 개죽음은 안 당하지 않느냐? 국가서 아들 살인을 지켜볼 수는 없다”고 분개했다.

미국 등 출생 국가서 한국인 부모로부터 태어난 선천적 복수 국적 남성이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하려면 국적법 제12조에 따라 18세가 되는 해 3월31일 이전까지 국적이탈 신고를 해야 한다.

그러나 미국에 거주하는 C씨 가족은 이 같은 사실을 알지 못해 국적이탈 시기를 놓쳤다. C씨 아들은 미국서 대학교에 다니는데, 한국 입국 시 군대에 가야 해 입국을 하지 못하고 있다.

선천적 복수 국적 남성이 국적이탈 시기를 넘겨 한국 국적을 갖고 있는 경우, 병역의무 해소 2년 이내에 국적이탈 신고가 가능하다. 따라서 C씨 아들은 당장은 국적이탈이 불가하고, 한국서 국외 여행 허가를 받아 병역 이행을 미뤄야 한다.

“가족들이
모두 말린다”

C씨는 “아들이 군대에 가면 쉽게 해결되지만, 가족들 모두가 말리고 있다. 유학 목적으로 국외 여행 허가를 받고 시민권을 취득하면 자연스럽게 병역의무가 상실된다”며 “군대 가서 시간을 버리는 것보다 건강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게 문제다. 가지 않을 수 있다면 가지 않는 게 정답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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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