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실사판 마동석’ 김수환 탐정

“탐정과 흥신소 다른 점은 이것”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정보 과잉 시대다. 홍수처럼 밀어닥치는 정보 사이서 양질의 것을 찾는 일은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가짜가 진짜인 척 스스로 포장하는 사이 업계의 질은 착실하게 낮아진다. 탐정업이 딱 그 짝이다. 진짜 탐정과 가짜 탐정, 어떻게 구분해야 할까?

50평 남짓한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담배 냄새가 코를 찔렀다. 창문도 열려 있고 에어컨도 켜져 있었지만 진한 담배향은 사라질 줄을 몰랐다. 벽에는 각종 자격증과 표창장이 가득했다. 김수환 탐정은 서울 광역수사대 출신으로 20년 넘게 강력계서 근무하다 명예퇴직했다. 개인 사무실로 보이는 곳에서 걸어나온 김 탐정은 일반인이 대체로 ‘강력계 형사’라고 생각할만한 외모였다.

강력계 20년

연이어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 잡은 영화 <범죄도시>의 마동석을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인터뷰가 시작되자 김 탐정은 답변 하나하나에 신중을 기하며 조심스러운 태도로 응했다. 

현직일 때보다는 발언에 있어서 자유롭지만 그렇기에 피해자를 더 아프게 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김 탐정은 현재 ‘형사, 탐정 되다’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달 31일 기준 구독자 수는 3만1000여명에 이른다. 

김 탐정은 “형사 퇴직 후 시민과 부대끼며 쌓아온 경험을 다시 시민에게 풀어서 소통하고 공유하기 위해 채널을 개설했다”고 말했다. 탐정에 관심이 있거나 어려운 일, 방송 소재 등 제보해 달라고도 당부했다.


일반적으로 탐정이라고 하면 젊은 층의 경우 만화책이나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직업을 떠올린다. 반면 연령이 높은 층은 흥신소나 심부름센터라고 되묻곤 한다. 불륜 증거를 잡거나 외도 현장을 미행하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2020년 8월 개정 신용정보법이 시행되면서 이전까지 금지됐던 ‘탐정’이라는 용어를 영업에 사용할 수 있게 됐다. 말 그대로 아무나 탐정 행세를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김 탐정이 경찰일을 그만두고 탐정업에 뛰어든 게 2019년인데 올해 5월이 다 되도록 탐정법은 개정되지 않았다.

지난달 31일 기점으로 21대 국회가 마무리되면서 탐정법을 제정하려면 발의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렇다 보니 진짜와 가짜, 합법과 불법이 뒤엉키는 사태가 일어났다. 흥신소나 불법 심부름센터를 운영하고 있던 사람들까지 전부 탐정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공인된 자격증이 없다 보니 당연히 관리·감독도 엉망이고 의뢰인이 불법 업체를 찾을 방법도 요원한 상태다. 

김 탐정은 “정확하게 조사해 본 것은 아니지만 실제 현직 경찰로 활동하면서 수사를 해본 사람은 열 손가락에나 꼽을까 싶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의뢰인이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지 못한 사이 당사자 역시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자동차나 휴대폰에 위치추적기를 부착한다든가 하는 방법으로 동선을 파악해 의뢰인의 요구를 들어주는 게 문제라는 지적이다. 김 탐정은 “제가 현직서 수사할 때 경험한 바에 따르면, 생각보다 세상에 비밀은 없다. 시간이 지난 후에도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고 강조했다. 자동차를 고치거나 내부를 수리하다 발견하기도 한다. 

김 탐정은 “불법적인 방식으로 진행하면 일이 정말 쉽다. 위치추적기를 달면 5분 단위로 동선과 방향이 뜬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탐정이라는 일 자체가 국민에게 존중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수사기관 ‘사각지대’를 파고들다
“진짜 탐정은 열 손가락에 꼽을 것”
“피해자보다 피의자인권중시 곤란”

강력계 형사로 23년간 지낸 경험은 ‘발로 뛰는’ 형사와 탐정을 접목하는 데 도움이 됐다. 일반인은 잠복과 미행이 쉽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굉장히 어려운 일로 손꼽힌다. 김 탐정은 아주 작은 단서를 바탕으로 오랜 시간을 한 곳에서 보내야 하는 일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김 탐정에게 가장 많은 의뢰가 들어오는 사건은 ‘사람 찾기’다. 아동이 없어지면 경찰이 발 빠르게 수사 모드로 돌입한다. 그나마 여성의 경우도 경찰의 움직임이 빠른 편이다. 하지만 남성 성인, 특히 범죄 혐의점이 없는 사례는 경찰의 우선 순위에서 크게 뒤로 밀리게 된다.

의뢰인은 이런 사건을 김 탐정에게 의뢰하는 것이다. 

김 탐정은 “가족 간의 불화 끝에 사람이 없어져 찾아달라고 하는 경우가 꽤 있다. 자발적으로 없어진 사례인데 그 경우에는 정말 찾는 게 어렵다. 예전에는 아들이 부모와 다투고 차를 가지고 잠적한 일이 있었다. 자동차의 명의가 부모로 돼있어서 딱지가 하나 날아왔더라. 그 딱지를 단서로 그 근처에서 40일을 잠복한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숨고 싶은 사람이었는데 찾아주면 당사자가 싫어하지 않느냐는 <일요시사>의 질문에는 그래도 가족이라 그런가 심각하게 도망치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성공률을 묻는 질문에는 80%가량이라고 답했다. 

회사 내부 정보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이른바 ‘산업스파이’를 고소, 고발하기 위한 증거를 잡는 일도 의뢰가 많이 들어온다고 했다. 중소기업은 내부에 법무팀 등을 갖추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증거를 잡는 일이 몹시 힘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 탐정은 현직 시절 쌓은 여러 인맥 등을 이용해 수사기관이 할 수 없는 일종의 ‘사각지대’를 들여다보는 셈이다. 그는 불법 의뢰를 잘 걸러 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교도소서 나온 남자가 “정말 사랑하는 여자가 있는데 찾아달라”는 의뢰를 한 적이 있는데 오랜 시간 상담한 끝에 ‘해코지’를 하려고 한 사실이 드러났다. 또 돈을 받아 달라는 의뢰 역시 그런 경우가 상당히 많다고 한다. 

김 탐정은 “실제 현직서 수사를 오래 하다 보면 의뢰인의 생각이 어느 정도 보인다. 의뢰가 오면 직접 발로 뛰는 일은 직원들에게 시키는 편이지만 상담만큼은 무조건 내가 한다”고 설명했다. 

김 탐정이 탐정 업계서 선구자적 길을 걷고 있다 보니 퇴직 경찰들이 찾아와 ‘지사’를 내달라거나 직원으로 고용해 달라는 등의 무리한 요구를 하는 일이 있다고 한다. 그는 “아무 생각 없이 지사를 내줬다가 나중에 문제가 발생하면 걷잡을 수 없다. 조심스러운 마음에 지사를 내거나 직원 고용은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선구자


김 탐정은 “형사 일을 하면서 피해자보다 피의자의 인권을 더 중시하는 모습에 실망한 적이 여러번 있었다. 검거 과정서 일어난 일로 피의자 인권을 침해했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불려간 게 3번이다. 현직에 있는 후배들은 이런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못한다. 나는 이제 전직 형사가 됐고 탐정으로 조금 알려졌으니 유튜브를 통해 사각지대에 대해 말하려 한다”고 덧붙였다. 탐정에 대한 인식이 제고되길 바란다고도 강조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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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