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후반 필자는 대학 내 산악회에 들어가 1년에 2회 정도 등반대회에 참가했다. 등반대회는 우리 대학 내 산악회만 참가하는 대회도 있었지만, 대부분 타 대학 산악회도 참가하는 대회였다.
등반대회는 주로 산 정상까지 어느 팀이 먼저 도착하느냐로 우승을 가렸기 때문에, 등반대회 일정이 정해지면 산 위로 올라가는 데 필요한 하체 근력을 키우는 훈련을 해야만 했다.
당시엔 산 정상서 등반대회가 끝나면 기념사진을 찍고 팀별로 자유롭게 하산했다.
최근에도 60대로 구성된 산악회에 들어가 1년에 한번 정도 등반대회에 참가하고 있다.
그런데 필자가 대학 다닐 때 등반대회와 달리 60대가 된 지금의 등반대회는 어느 팀이 산 정상까지 빨리 올라가느냐로 우승을 가리지 않고, 어느 팀이 산 정상을 찍고 처음 출발했던 곳으로 먼저 도착하느냐로 우승을 가린다.
지난 주말에도 3개팀이 의정부 회룡역을 출발해 사패산 정상을 찍고 오는 등반대회가 있었다.
여느 때와 달리 지난 주말 등반대회에선 두 팀이 워낙 강해 우리 팀이 사패산 정상에 제일 늦게 도착했는데, 우리 팀이 종착지인 회룡역에는 다른 두 팀보다 먼저 도착해 우승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다른 두 팀의 회원들은 하체 근력이 좋아 사패산 정상까진 잘 올라갈 수 있었지만, 관절이 좋지 않아 내려 올 땐 빨리 내려올 수 없었다고 했다.
최근까지도 우리 사회는 정상에 누가 빨리, 높이 올라가느냐로 우승을 정하는 프레임에 갇혀 있는 편이다.
도대체가 내려오는 데는 별 관심이 없다. 정상에 오른 사람도 언젠가는 내려와야 하는데, 정상서 즐기기만 한다. 이는 우리 사회 성숙도가 높지 않다는 증거다.
젊다고 올라가는 것만 배우고, 늙었다고 내려오는 것만 배우는 프레임은 후진국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다.
필자가 대학 다닐 때 등반대회가 산 정상에 누가 빨리 오르느냐가 아닌, 누가 빨리 출발지(도착지)로 돌아오느냐의 승부가 아닌 게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 정치도 정상에 누가 빨리 올라가고, 그리고 누가 높이 올라가느냐의 프레임에 갇혀 있는 것 같다.
2022년 대선에선 국민의힘이 산 정상에 먼저 올라 우승했고, 지난 4·10 총선에선 더불어민주당이 산 정상에 먼저 올라 우승했다.
그러나 종착지에 도착하는 게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현재 국민의힘은 정상서 하산하는 중이고,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정상에 도착한 지 얼마 안됐다. 민주당도 곧 내려와야 하는데, 너무 오래 머물면 낭패를 당할 수 있다.
선거서 이기기만 하면 되는 시대는 지났으며, 이긴 후에도 잘해야 진정한 승자가 되는 시대가 됐다.
정당이 선거서 이기기 위해선 산 정상에 오를 때 힘을 키워야 하듯이 전력을 다해야 하지만, 이긴 후엔 산 정상서 내려올 때 유연성을 가져야 하듯이 타 정당과 함께 협치를 해야 한다.
국민의힘은 2년 전 대선서 정상을 찍고 현재는 내려오는 중이다. 그런데 내려오는 유연성이 부족해 발목에 큰 부상을 당해 더디게 내려오는 느낌이다.
4·10 총선서 승리한 민주당은 이를 반면교사 삼아 내려오는 연습을 잘해야 진정한 승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힘만 셌던 소련은 무너지고, 힘과 함께 유연성을 가진 미국은 밀어붙일 땐 강한 군사력으로, 그리고 양보할 땐 유연한 외교력으로 세계를 좌지우지하고 있음을 우리가 간과해선 안 된다.
우리 사회서 일어나는 모든 경쟁도 정상에 오르는 데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하산하는 데까지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래야 우리 사회가 진정한 승리의 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요즘 헬스클럽에 가보면, 근력을 키우는 운동기구만 가득했던 과거와 달리, 유연성을 키우는 운동기구도 많이 볼 수 있다. 우리 사회가 변하고 있다는 증거다.
미국의 유명한 강철왕 앤드류 카네기가 사업 초창기엔 쓸쓸한 해변에 초라한 나룻배 한 척과 낡아 빠진 노가 썰물에 밀려 흰 백사장에 제멋대로 널려 있는 그림을 사무실에 걸어놨는데, 그림 하단에 ‘The high tide will come(반드시 밀물이 밀려오리라)’는 짧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고 한다.
필자는 카네기가 성공한 이후엔 그림 하단에 ‘The low tide will come (반드시 썰물이 밀려오리라)’는 문구로 바꿔 놓았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봤다.
똑같은 그림이지만, ‘반드시 밀물이 밀려오리라’는 문구가 적혀 있는 그림은 카네기를 철강왕으로 만들었고, ‘반드시 썰물이 밀려오리라’는 문구가 적혀 있는 그림은 카네기의 부와 명예를 오랫동안 유지해줬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어려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하고 극복할 것인지에 대한 교훈적인 메시지는 많이 들어 잘 알고 있지만, 잘나가고 성공한 상황서 그 위치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는 잘 듣지도 못했고, 잘 알지도 못하는 편이다.
그래서 수십년간 노력해서 얻은 부와 명예를 한순간에 잃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민주당 당사에 ‘반드시 썰물이 밀려오리라(The low tide will come)’는 문구가 적혀 있는 그림을 걸어놓으면 어떨까? 그래야 2026 지선과 2027 대선서 승산이 있을 것이다.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