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기획> 나쁜 집주인과 중개사 ‘임대 깡패’ 커넥션 추적 ③전국전세사기대책위원회 안상미 위원장의 토로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4.04.30 13:37:41
  • 호수 14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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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님, 4조? 1조도 안 듭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전세 사기 피해자는 점차 늘어나고 있지만, 대책은 전무하다. 시간만 계속 흘러간다.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 등 거대 양당이 싸우는 사이 민생의 목소리는 흐려진다. 전세 사기 피해자들은 “우리의 목소릴 듣고 정책을 만들어 달라”고 외치지만 허공 속으로 흩어질 뿐이다.

지난 18일, 국토교통부는 전세사기피해지원위원회 전체회의를 2회 개최했다. 해당 회의를 통해 1432건이 전세 사기로 추가 인정됐다. 피해자가 아닌, 전세 사기로 인정된 집 건수가 1만5000건을 넘은 것이다. 피해자들이 1인 가구보다는 2~3인 가구로 예상되는 만큼, 피해자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기준 다른 판단

21대 국회서 전세사기특별법인 ‘선 구제 후 구상’을 추진 중이지만, 여당인 국민의힘은 재정 투자의 이유로 협조적이지 않다. ‘특별법이 시행될 경우, 수조원의 돈이 들어간다’는 주장이다. 이 와중에도 전세 사기 피해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일요시사>는 지난 22일, 인천 미추홀구 숭의동에 있는 한 카페서 안상미 전국전세사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과 만나 현재 전세 사기 피해자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경청했다.

안 위원장 역시 전세 사기 피해자로 거주 중이던 아파트로 ‘경매에 넘어갔다’는 내용의 우편물이 우편물을 받고 나서였다.


그는 “당시 너무 놀라서 부동산에 물어보니 ‘문제없다. 걱정하지 마라’고만 했다. 집 계약 당시 집의 문제점에 대해 공인중개사가 알려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보통 임차인이 집을 구할 때는 공인중개사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데 이를 악용한 것이었다. 전국 각지서 전세 사기 문제가 터지고 경매 우편물을 받은 후, 임대인과 공인중개사가 결탁해 임차인을 속였다는 것을 알게 됐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안 위원장이 전세로 계약해 거주 중인 아파트는 특정 공인중개사무소(이하 중개사무소)에만 매물로 올라왔던 집이었다. 게다가 해당 중개사무소 공인중개사가 그에게 집에 대한 설명을 제대로 하지 않고 계약을 진행했다.

안 위원장은 “공인중개사도 사법적 판결을 받아야 한다. 불법이 일상화돼있는 곳이 중개사무소다. 중개사무소 관련 법에는 공인중개사에게 ‘설명의 의무’를 부여하고 있는데,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 게 다반사”라고 주장했다. 이어 “지금도 전세 사기 매물(문제 있는 집들)을 단기 임대로 내놓고 있다. 지금도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통상 부동산계약은 공인중개사와 임대인의 합의로 이뤄진다. 하지만, 안 위원장은 계약서 작성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의 경우, 공인중개사가 임차인에게 ‘문제가 있을 시 해당 중개사무소가 책임진다’는 각서까지 쓰기도 했지만, 이에 대한 법적 효력은 없다. 이를 두고 공인중개사가 임차인을 속이기 위해 한 행동이라는 지적의 목소리도 들린다.

임차인들은 공인중개사를 신뢰함으로써 계약서를 작성한다.

안 위원장은 “문제는 전세 사기 피해자들이 ‘내가 피해자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는 점이다. 국토부와 경찰이 판단하는 전세 사기 피해자 기준도 너무 다르다”며 “우리는 피해자들끼리 모여서 관련자들의 조직도를 만들었다. 경찰서도 대단하다고 놀랐다. 진짜 문제는 이런 과정서 피해자의 일상이 완전히 무너진 것”이라고 토로했다.


전세 사기 피해자들은 마음 한편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안고 살아간다. 공황장애를 앓는 것은 기본이고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는 “전 재산을 잃어버린 것이다. 평생 만져보지도 못한 돈을 갚으며 살아야 하는데, 사회 분위기는 ‘전세 사기는 개인 간 거래니, 개인이 잘 알아보지 않은 것’이라고 한다”며 “전세 사기는 돈을 벌려고 투자한 것도 아니고, 내가 살 집을 마련하다가 사기당한 거 아니냐”고 반문했다.

피해자가 잘못해서 전세 사기를 당했다는 인식을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정부다. 정부는 전세 사기 피해를 ‘개인의 부주의로 일어난 사인 간의 거래’라고 폄하했다. 피해자들은 이 같은 입장에 반박한다. 피해자 대부분이 청년층이고, 등기부등본을 확인했을 때 문제가 없었던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은행서도 정상적으로 대출이 실행됐고, 안전하다고 여겼던 청년중소기업대출이 가능한 집도 있었다.

이런 상황인데도 정치권에서는 ‘선 구제 후 구상’이 잘못됐다는 의견을 거침없이 내뱉는다.

피해자 위로하는 건 피해자뿐
“전세 사기 조직 직권조사해야”

안 위원장은 “국토부가 전세 사기 피해 영상, 안심 전세 앱을 만드는 것도 다 세금으로 하는 것이다. 실효성도 없는 것에 돈을 쓰면서 피해자 구제는 하지 않고 있다”며 “특별법 내용도 보증금의 30%를 최우선 변제하는 것인데, 여태까지 전수조사도 하지 않고 얼토당토 않게 4조원이 필요한다는 기사를 보도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에게 실상은 1조원 이하로 필요하다 말해주고 싶다”며 분개했다.

무엇보다 황당했던 건 안심 전세 앱에서 전세 사기 피해를 당한 안 위원장의 집을 검색했을 때 안심 매물이라고 떴다는 점이다. 

반면 정부는 건설사의 사업 실패 시 주택을 대신 매입해주도록 논의하고 있다. 건설사가 이익을 내기 위해 무리하게 사업을 진행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건설사만 구제해 주고, 전세 사기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아무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여야는 의견 대립만 하고 있는 실정이다.

전세 사기 피해자가 정치인을 만나면, 그들은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식이었다.

안 위원장은 “정치인에게 만나 달라고 요청하면 ‘나도 젊었을 때 사기당했다. 나때는 정부에 도와달라는 말도 못 했다. 나는 공천이 중요하다’ ‘전 정권서 저지른 일’이라고 한다. 만나기로 해놓고 약속을 잡지 않는다. 대체 피해자를 안 만나면 누구를 만나는 거냐”고 답답해했다.


특별법에 찬성하지도 않는다. 말이 구제지, 실제로 구제가 될 리가 없다는 것이다.

안 위원장은 “피해 금액(보증금)의 30%를 인정해 주는 것이지 전체를 도와주는 것이 아니다. 나라가 책임을 안 지려고 한다. 피해자들을 구제해 준 뒤 임대인한테 어떻게든 돈을 받아내면 된다. 면밀하게 조사하면 할 수 있는데 하지 않는다”며 “피해자들에게 앞으로 은행 대출이자를 깎아주겠다는 정책을 내놨다. 이자를 적게 내니까 이득을 본다는 것이다. 이미 경제적으로 힘든 피해자에게 다시 대출하라는 것은 모순이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새로 만든 특별법은 기존의 법과 제도를 그대로 가져왔는데, 한시법이다. 기존 법으로는 해결이 안되니 특별법을 만든 것인데 말이 안 된다”며 “처음 특별법을 만들 때 6개월마다 한번씩 고치겠다고 했는데 고치지도 않고 있다. 이미 2번이나 고칠 기회가 있었다. 국회서 반대하니 못하는데, 이러다가 또 대통령이 거부권을 쓸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답답해했다.

지금도 특별법은 ‘포퓰리즘’이라고 불린다. 예방은 고사하고 제대로 된 전수조사도 이뤄지지 않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청년들의 삶은 계속 나락으로 떨어진다.

그는 “결혼 예정이던 한 전세 사기 피해자는 결혼도 하지 못한다. 결혼하면 수입이 합쳐져서 안 된다. 이혼하거나 출산 계획을 포기하는 것도 부지기수”라고 설명했다.

우울증 때문에 치료를 받거나, 트라우마로 힘들어하는 경우도 많다.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가 치료받던 중 세상을 떠난 경우도 있지만, 전세 사기 피해로 사망했다고 나오지도 않는다.


대책이 없다

안 위원장은 “피해자를 위로해주는 것은 피해자밖에 없다. 나는 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함께 많은 대화를 하니 다른 피해자들보단 좀 낫다. 전세 사기는 임대인과 공인중개사가 조직적으로 만드는 사기다. 제발 국가가 직권으로 조사하길 바란다”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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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12·3 계엄 당일 내란 주동자들은 정치인과 판사 등 자신들이 반국가 세력으로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위해 서둘렀다. 하지만 준비가 된 것은 각 군의 사령관들뿐이었다. 계엄사령부와 합동수사본부의 설치는 훈련 상황서도 24시간가량 걸리는데 이를 간과한 것이다. 미리 계엄을 준비했다는 증거가 계속해서 나오는 상황에 실무진에게 준비시키지 않은 점이 의문점으로 남아있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내란 주도자들이 정치인과 판사 등 ‘좌파세력’이라고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그 내막에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이하 합수본)의 미설치가 있다. 진술 나오자 다른 전략 <일요시사>가 검찰 진술 조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계엄이 시작된 계기와 14명의 체포 미수 및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불법 점거의 실패 이유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를 꼽았다.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 국회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대립은 심각했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야당은 자기들끼리 뭉쳐서 법안을 통과시켰고 윤 전 대통령은 재의요구권을 사용했다. 또 야당은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를 수사한 검찰들에 대한 탄핵을 시도하고 김건희씨와 관련한 특검법을 계속 발의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27일경, 윤 전 대통령이 관저 식사 자리서 “수사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검사를 탄핵하고, 재판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판사를 탄핵하고, 헌법재판소가 마음에 안 들면 정족수를 자르고, 이게 나라냐.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국가 세력의 준동에 관해 청주간첩단 및 창원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수사 과정서 잡은 인원들을 판사 기피 신청이 들어오면 단기간에 결정하는 것이 상식인데 6개월이나 결정을 하지 않아 간첩들의 구속 기간이 끝나 다 풀려나 돌아다니는데도 이런 것을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니 나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미래 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비상계엄)이 필요하겠다”고 강조했다. 일주일이 지난 후 윤 전 대통령은 김 전 장관에게 “야당의 패악질로 나라의 미래가 없다. 국가 비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들은 비상계엄 관련 논의를 했다. 이때 체포 명단인 이른바 ‘좌파 세력’ 14명의 명단과 군대를 어떻게 투입할지 등을 확정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들은 체포 명단의 사람들의 신병을 확보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게다가 내란 주동자들은 검찰 진술과 형사 법정 등에서도 체포하려 하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합수부 미설치로 체포 불가” “합수부 없어 시작부터 위법” 김 전 장관은 검찰에 “주요 정치인 등에 대한 검거를 시도한 바 없다. 혐의가 있어야 검거를 시도하지 않겠냐”며 “언론에 나오는 위치 추적 등은 포고령에 따라 정치활동이 금지되고 있는 상황이니 주요 정치인 몇 분과 부정선거 등과 관련해 사회서 의혹이 제기되는 사람들의 위치를 미리 파악하라고 이야기한 것일 뿐”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과 작전에 투입된 군인들의 진술로 체포 명단이 실제로 존재했으며 체포를 지시하고 시도했다는 것마저 모두 드러났다. 체포 시도가 있었다는 진술이 계속해서 나오자 내란 주동자들은 다른 전략을 세우게 된다. 바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다. 김 전 장관은 검찰 진술서 합수본이 미설치돼 체포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계엄사령부와 합수본이 설치되는 과정이라 검거가 불가능하다”며 “합수본이 설치되려면 검찰과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데 아무런 대비도 없이 체포부터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진술했다. 김 전 장관의 진술은 계엄 직후 선관위에 국군 정보사령부 부대원들을 보내 선거인 명부 관리 서버를 장악하고 선관위 당직자들에 대한 통신 제한(휴대전화 압수)과 감금이 위법한 수사 활동임을 나타내고 있다. 계엄이 터지면 통상적으로 합수본 역할을 맡는 국군 방첩사령부 관계자도 검찰 진술 당시 선관위 투입은 잘못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영희 방첩사 비서실 1과장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방첩사 소속 군인들로 하여금 중앙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도록 지시하거나 계엄 해제 이후 관련 증거를 제거하도록 시킨 것은 자신들의 정당한 권한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성 미리 알고? 박성하 방첩사 기획조정실장은 “현장에 나가 있던 소위 체포조에 대해서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면서도 “하지만 전시에도 방첩사가 일부 범죄에만 수사권이 있기 때문에 전시나 계엄 상황이라도 관할권이 없는 선관위나 정치인 등 체포나 점거는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게다가 합수본(방첩사)은 직접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역 합수단서 해야 할 일을 방첩사 인원으로 진행한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한 군검찰 출신 변호사는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임명하는 군사경찰 관리, 경찰공무원, 국가정보원 직원 중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 그 밖에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로 구성된다”며 “또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지정한 사건의 수사와 정보기관 및 수사기관의 조정·통제업무를 관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선관위로 투입된 인원들은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지도, 임무를 하달받지도 않았다”며 “게다가 합수본까지 설치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시작부터 위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보사와 방첩사 모두 계엄사령군(군사경찰)이 아니기에 정당한 절차가 없었다면 반란군이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점은 계엄 업무를 해본 김 전 장관이 왜 무리수를 뒀는지다. 김 전 장관은 대한민국 합동참모부서 작전본부장을 역임한 바 있다. 합참 작전본부에는 계엄과가 편제돼있기 때문에 김 전 장관이 계엄군과 합수본 지정 및 운용 등을 몰랐다고 보기 힘들다. 합참 계엄과서 편찬하는 계엄실무편람에도 잘 나와있기 때문이다. 김 전 장관은 논란을 줄이기 위해 계엄이 선포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화상으로 개최하면서 박안수 전 육국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을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일부 사령관 등에게만 공유됐던 12·3 계엄 작전은 계엄사령부가 설치되기도 전에, 합수본이 설치되기도 전에 끝났다. 사령부만 알았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 조서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부 사령관에게 국회와 선관위 출동을 하면서 방첩사에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해서 임무 수행을 하라고 지시했다. 김 전 장관이 방첩사에 지시한 임무는 경찰과 국방부 조사본부에 100명씩 인원을 요청하고 선관위로 먼저 투입된 국군 정보사령부가 접수한 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라는 지시였다. 국방부 조사본부와 경찰에 인원 요청을 한 것은 정치인, 판사, 등 민간인 체포를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조사본부는 방첩사가 요청한 수사관 지원 요청을 4차례 거절했다. 조사본부 한 관계자는 검찰 조사 당시 “지난 3일 계엄령 선포 이후 방첩사로부터 수사관 100명 지원을 네 차례 요청받았지만, 근거가 없다고 판단해 응하지 않았다”며 “이후 합수본 실무자 요청에 따라 시행 계획상 편성돼있는 수사관 10명을 지난해 12월4일 오전1시8분 출발시켰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의 수사관 파견 요청에는 불응했고, 계엄 시행 이후 방첩사를 중심으로 꾸려지는 합수본 요청에는 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사관이 파견된 시간은 이미 계엄 해제 의결이 이뤄진 뒤였다. 합수본이 계엄 해제와 비슷한 시기에 모양새라도 갖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 전 장관이 계엄 직후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여 전 사령관에게 합수본 설치를 지시했지만 설치가 늦어진 이유가 있다. 방첩사에 내려진 지시는 좌파세력 체포와 합수본 설치, 검찰과 경찰 및 국방부 조사본부 등에 협조 요청 등으로 내란 주동자들에게는 어느 것 하나 미룰 수 없는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 기획조정실장은 “부대에 도착해보니 OOO회의실에 여 전 사령관이 이경민 참모장, 이창엽 비서실장과 같이 있었다”며 “합수본 설치 지시를 받으려 사령관에 물어봤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여 전 사령관이 다른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합수본부장으로 임명됐다. 우리 대원들은 다 나가 있다’고 말하며 통화에만 집중했을 뿐 합수본 설치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계엄 6개월 전부터 준비 실무진만 ‘닭 쫓던 개’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국가적으로 엄중한 상황이 될 텐데 방첩사는 계엄 선포 예정 사실을 알고 준비하지 않았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계엄이 선포되면 합수본을 설치해야 하는 사람이 나다. 하지만 나는 해당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체포조를 운영한 수사단장도 해당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 그는 “방첩사 비상소집이 완료된 시간이 지난해 12월4일 오전 1시4분”이라며 “합수본은 기본 시설도 갖추지 못한 상태서 계엄이 해제됐다”고 말했다. 방첩사 인원들이 전원 소집되는 시간에 이미 계엄은 해제된 것이다. 방첩사의 작전 계획상에는 상황실 설치에 8시간, 합수본 설치에 24시간을 예정하고 있는데 비상계엄이 3시간 만에 해제됐다. 본부 설치에만 24시간이 걸리며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아 합수본을 완전히 구성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한 군사학과 교수는 “계엄 선포에 대해 사령관과 참모진 외에 실무자에게도 공유가 됐다면 미리 합수본 설치를 준비하고 있다가 계엄이 선포된 후 바로 체포를 진행했을 것”이라며 “이번 계엄의 패착은 이전 계엄과 달리 빠르게 대처한 국회를 막지 못한 것과 계엄사령부부터 합수본까지의 실무자들이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방첩사 사령부에서는 미리 계엄 준비를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방첩사 소속 간부 A씨는 검찰 조사에서 “방첩사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체결한 MOU에 언급된 ‘합동수사본부’는 계엄 시 설치되는 합수부가 맞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와 국수본은 지난해 6월28일 ‘안보범죄 수사 협력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합동수사본부 설치 시 편성에 부합하는 수사관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방첩사가 계엄을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지휘부에서 최초에는 지난해 5월 초순경 3주안에 체결하라는 지시를 했다”며 “보통 미국 국방정보국(DIA) 등 해외정보수사기관과 이런 MOU를 맺고, 국내 기관은 관련 법령이 있어 MOU를 맺지는 않는다. 국내 기관과 MOU를 맺은 건 이번이 처음이고, 굳이 이런 MOU를 맺는 게 의아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다만 조지호 경찰청장은 해당 MOU에도 불구하고 계엄 당일 수사관 지원 요청을 이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조 청장은 지난 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 나와 “방첩사 주관으로 수사본부가 꾸려질 수 있으니 경찰서 필요한 인력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준비하겠다고 했다”고 밝혔으며 계엄 당일 수사관 81명이 방첩사 요청으로 대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두환과 구상 흡사 내란 주동자들은 경찰력을 대거 방첩사로 파견해 합동수사본부를 꾸리고 정치인 체포 작전을 벌일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79년 비상계엄하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만든 합수본과 흡사한 구상이다. 당시 합수본은 정권에 반대하는 정치인에 대한 정보 기능을 도맡아 12·12 군사 반란의 수괴인 전두환씨가 권력을 장악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됐다. <kcj512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계엄 사령부 구성도 완전 실패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계엄사령부는 구성조차 못했다. 권영환 전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계엄과장은 계엄이 선포된 후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으로부터 ‘계엄사령부 설치를 도와라’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그는 육군 본부 참모진들이 올라올 때까지 계엄사 상황실 구성 준비를 했다. 계엄이 선포되면 계엄사에는 2실(비서실, 기획조정실) 8처(정보처, 작전처, 치안처, 법무처, 보도처, 동원처, 구호처, 행정처)를 구성하도록 돼있으나. 권 전 과장이 계엄사 상황실을 구성하고 있을 당시 국회에서는 ‘비상계엄해제 요구결의안’이 가결됐다. 당시 권 전 과장이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에게 “(계엄해제 요구안이 가결됐으니) 법률상 지체 없이 계엄을 해제하도록 돼있다”고 말하자 박 전 총장은 “그런 것을 조언할 것이 아니라 일이 되게끔 만들어야지 일머리가 없다”며 “올해 연습을 두 번이나 했다고 하면서 구성을 왜 빨리 못하냐”고 꾸짖었다고 한다. 이는 내란 주동자들이 2차 계엄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계엄사 구성의 역할이 합참에 있었다는 것을 내포하는 대목이다.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