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뉴진스 엄마’ 민희진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4.04.29 11:19:03
  • 호수 14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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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볼모로 밥그릇 싸움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민희진 어도어 대표가 모회사 하이브와의 대립각 속에서 “뉴진스를 이용하지 말라”는 부정 여론에 휩싸였다. 뉴진스 멤버들이 하이브의 또 다른 레이블 쏘스뮤직 출신으로 드러나면서다. 앞서 하이브는 뉴진스 프로듀서 민희진에 대해 경영권 탈취 시도 의혹을 제기했다. 민희진은 갈등의 본질이 하이브 신생 그룹 아일릿의 ‘뉴진스 베끼기’라고 받아쳤다.

뉴진스의 소속사 어도어(ADOR)와 모 회사인 하이브(HYBE) 간의 분열 사태는 봉합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어도어는 하이브와의 경영권 갈등 관련 감사 질의서 시한인 지난 24일 공식 입장을 발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어도어 측은 “하이브가 제기한 경영권 탈취 모의 등 사실관계를 묻는 감사 질의서와 관련해 어떤 입장도 밝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빼앗기?
베끼기?

이를 두고 일각에선 각 조직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하이브의 ‘멀티 레이블’ 체제의 부작용으로 해석하고 있다.

2022년 그룹 뉴진스를 탄생시킨 민희진은 직접 멤버 5명의 캐스팅부터 트레이닝·음악·퍼포먼스·매니지먼트 시스템까지 전 과정을 진두지휘한 것으로 알려졌다. 

‘뉴진스 엄마’ 민희진은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의 소녀시대를 최고의 걸그룹으로 만든 주역이기도 하다. 2002년 SM에 공채로 입사한 민희진은 그룹 소녀시대, 샤이니, 레드벨벳, 엑소 등의 콘셉트 제작을 담당해 이름을 알렸다. 이후 2017년 SM 등기이사가 됐다.

2000년대 초 SM에 신입사원이었던 그는 소녀시대의 그룹명이 정해지자 당시 SM 총괄 프로듀서였던 이수만에게 콘셉트에 대해 직접 프레젠테이션했다는 후문이다.

소녀시대 ‘Gee’의 스키니진, 레드벨벳 ‘빨간맛’ 등은 모두 민희진의 손에서 탄생했다. 잘나가던 민희진은 등기이사 승진 약 2년 만인 2018년 말 SM서 퇴사했다. 번아웃 증후군 때문이라고 밝힌 그는 tvN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해 “20~30대를 일에 바쳤다고 생각한다”며 “자학과 자기 검열이 너무 심했다”고 털어놨다.

2019년 하이브의 CBO(최고브랜드관리자, Chief Brand Officer)로 돌아온 민희진은 하이브 신사옥 공간 디자인까지 맡을 정도로 감각을 인정받았다. 박지원 하이브 대표이사(CEO)의 연봉 5억900만원보다 많은 5억2600만원 연봉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4대 기획사 중 연봉 5억원 이상을 받은 유일한 여성이었다.

이후 민희진은 하이브 자본으로 2021년 11월 레이블 어도어를 설립한 뒤, 2022년 그룹 뉴진스를 탄생시켰다. K팝 업계서 수십년간 내공을 쌓은 민희진에 대한 기대감은 있었지만, 뉴진스의 데뷔 후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뉴진스는 명품 브랜드 구찌, 디올 등의 홍보모델로 발탁될 정도였다. 이외에 스마트폰, 금융 등 전 분야의 광고까지 휩쓸며 영향력을 과시했다. 뉴진스는 미국 경제지 <포브스>가 선정한 ‘아시아서 영향력 있는 30세 이하 30인’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행복은 길지 않았다. 뉴진스 흥행 2년 만에 민희진은 ‘경영권 탈취 의혹’에 휘말리며 반역자로 몰린 상황이다.

뉴진스 멤버 전원 쏘스뮤직 출신
“네꺼? 내꺼!” 박 터지는 집안싸움

앞서 민희진은 매체와 인터뷰를 통해 “제가 가진 18%의 지분으로 어떻게 경영권 탈취가 되겠느냐”며 “80% 지분권자인 하이브 동의 없이 어도어가 하이브로 독립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불가능한 일을 도모했다는 하이브의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이번 갈등의 본질은 하이브의 또 다른 레이블인 빌리프랩(BELIFT LAB)이 지난 달 데뷔시킨 걸그룹 ‘아일릿’의 ‘뉴진스 베끼기’라는 주장을 내놨다.

지난 22일 어도어 측은 “뉴진스가 이룬 성과는 아이러니하게도 하이브에 의해 가장 심각하게 침해되고 있다”며 아일릿을 뉴진스의 아류라고 표현했다. 이어 “어도어는 하이브나 빌리프랩 등 어느 누구에게도 뉴진스 성과를 카피하는 걸 허락하거나 양해한 적이 없다”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이들은 “하이브 방시혁 의장이 아일릿 데뷔 앨범의 프로듀싱을 맡았다”며 “하이브가 단기적 이익에 눈이 멀어 성공한 문화 콘텐츠를 아무 거리낌 없이 카피한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저격했다.

최근까지 민희진이 밝힌 입장은 경영권 욕심보다 스스로 지켜온 ‘독립성’ ‘독창성’을 하이브가 해치고 있다는 판단으로 보인다.

민희진은 “(하이브의) 멀티 레이블은 각 레이블이 원하는 음악을 할 수 있도록 한 체제이지, 계열 레이블이라는 이유로 한 레이블이 이룩한 문화적 성과를 다른 레이블들이 따라가는 데 면죄부를 주기 위한 체제가 결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뉴진스의 문화적 성과를 지키기 위한 정당한 항의가 어떻게 어도어의 이익을 해하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인지, 어떻게 어도어의 경영권을 탈취하는 행위가 될 수 있는 것인지,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의도가 있다고 보인다”고 토로했다.

멀티 레이블
구조적 결함

일각에선 민희진이 온전한 ‘뉴진스 엄마’가 아니라는 지적도 잇따른다. 뉴진스 멤버 전원은 쏘스뮤직 소성진 대표가 발굴했다는 것이다. 

먼저 뉴진스 멤버 민지가 쏘스뮤직에 입사한 건 2017년이고, 하니는 2019년에 들어왔다. 빅히트와 쏘스뮤직이 주최한 글로벌 오디션에 합격한 것이다. 해린과 다니엘은 2020년 연습생 계약을 맺었다. 마지막 주자는 온라인서 발굴한 혜인이 오디션을 통과해 쏘스뮤직과 도장을 찍었다.

이들 모두 2021년 하반기까지 쏘스뮤직서 연습생으로 지냈다는 결론이다. 

민희진이 하이브로 이적한 시기는 2019년이다. 그의 롤은 브랜드 총괄 CBO. 하이브 관계사 전반에 대한 브랜드를 지휘하는 역할이었다. 민희진은 쏘스뮤직 데뷔조를 준비해야 했지만 독자적인 레이블의 수장을 원했고, 어도어 탄생의 배경이라는 보도가 이어졌다.

훗날 민희진은 쏘스뮤직서 연습생을 선발했고, 현재 뉴진스 멤버를 구축했다. 대신 쏘스뮤직에는 그동안의 트레이닝 비용을 전달했다. 민희진이 뉴진스를 만든 건 맞지만, 뉴진스 멤버는 쏘스뮤직서 발굴한 인재로 골랐다는 것이다. 

민희진의 보상도 재조명됐다. 하이브 이사회는 2023년 1분기, 스톡옵션(주식매수선택권) 대신, 어도어의 주식(구주)을 저가에 살 수 있게 했다. 민희진은 어도어 지분 18%(57만 3,160주)를 보유, 2대 주주로 올라섰다. 

민희진이 주식을 받았을 당시 어도어는 적자 기업에 비상장사였다. 2022년 매출은 186억원, 영업적자 40억원이었다. 민희진이 스톡옵션을 받았다면, 취득 시점에 45%에 달하는 세금을 내야 하지만 적자기업 주식을 받음으로써 세금도 아꼈다. 이를 통해 민희진이 하이브 시스템의 수혜자라는 해석도 나왔다.

하이브는 지난 22일, 민희진과 측근 A씨가 투자자를 유치하고자 대외비인 계약서 등을 유출, 하이브의 어도어 주식을 팔도록 유도하는 방안 등을 논의했다는 이유로 감사에 착수했다. 또 A씨가 어도어 독립에 필요한 비공개 문서와 영업비밀 등을 어도어 측에 넘겨줬다고 의심했다.

조금만 
잘나가면···

하이브는 확보한 전산 자산 등을 토대로 필요하다면 법적 조처에도 나설 방침이다. 

이날 하이브는 본사에서 어도어 측이 쓴 것으로 보이는 ‘빠져 나간다’는 의향과 해외 펀드에 주식을 매각하는 방안 등이 적힌 문건을 찾아냈다고 전했다. 해당 문건이 하이브가 감사의 명분으로 제기한 ‘경영권 탈취’의 물증이 될 수 있을지 이목을 끌었다.

하이브는 문건 확보를 계기로 경영진 교체를 위한 주주총회 소집 절차에 속도를 냈다. 지난 23일 가요계에 따르면, 하이브가 전날 어도어 전산 자산을 확보하면서 찾아낸 문건은 최소 3개다. 이 문건은 민희진의 측근 A씨가 지난 3월23일과 29일 각각 작성한 업무 일지다. 23일자 문건에는 ‘아젠다’(Agenda)라는 제목 아래 ‘1. 경영 기획’ 등 소제목, 그 아래 ‘계약서 변경 합의’ 같은 세부 시나리오가 적힌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이 문건에는 ‘외부 투자자 유치 1안·2안 정리’라는 항목으로 ‘G·P는 어떻게 하면 살 것인가’ 하는 대목과 내부 담당자 이름도 적시돼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이브는 G는 싱가포르 투자청(GIC), P는 사우디 국부펀드(PIF)로 보고 있다.

하이브가 보유한 어도어 지분 일부를 싱가포르 투자청이나 사우디 국부펀드에 매각하게 하는 방안을 모색한 것으로 비칠 수 있다.

이 문건에는 또 ‘하이브는 어떻게 하면 팔 것인가’ 하는 문장과 또 다른 담당자 이름이 쓰여 있었다. 하이브를 모종의 방법으로 압박해 현재 80%인 하이브의 어도어 지분을 팔도록 하겠다는 고민으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또, 민희진이 “아일릿이 뉴진스를 따라 했다”는 비판 역시 ‘압박 방법’ 가운데 하나라고 하이브는 해석했다. 민희진은 최근 하이브 내부 면담 자리서 “아일릿도 뉴진스를 베끼고, 투어스도 뉴진스를 베꼈고, 라이즈도 뉴진스를 베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어 29일자 문건에는 ‘목표’라는 항목 아래 ‘궁극적으로 빠져나간다’ ‘우리를 아무도 못 건드리게 한다’ 등의 내용이 적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업계 관계자는 “다양한 문제를 제기해 하이브를 압박하고 궁극적으로 빠져나가는 방안이 정리된 문건”이라고 귀띔했다.

“경영권 탐낸 거 아니냐”
어쩌다···방시혁과 대립

결국 민희진 측은 지난 24일까지 기한이었던 하이브의 감사 질의서에 답변하지 않으면서 첨예한 대립각을 세웠다. 그는 어도어에 대한 하이브의 감사권 발동 관련 ‘아일릿의 뉴진스 카피 사태’라고 규정하며 “모방 의혹에 대한 문제를 제기를 했으나 답을 받지 못했다”고 주장하며 경영권 탈취와 관련한 사실을 부인해 왔다. 

민희진은 하이브의 회사 정보자산 반납 요구에도 공식적으로 응하지 않았다. 당초 반납 시한은 지난 23일 오후 6시까지였다. 업계 관계자는 “하이브 측이 어도어 이사진을 상대로 오는 30일 이사회 소집을 요구했으며 대표 사임을 요구하는 서한도 발송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가요계에서는 하이브가 산하 레이블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멀티 레이블 체제’의 부작용이 드러났다는 해석도 내놨다.

지난 2005년 2월 빅히트엔터테인먼트로 설립된 하이브는 소속 그룹 방탄소년단로 금자탑을 세웠다. 이 과정서 쏘스뮤직(2019년), 플레디스(2020년), 이타카 홀딩스(2021년), 빌리프랩 지분 51.5%(2023년), QC 미디어 홀딩스·엑자일 뮤직(2023년) 등을 잇따라 인수해 멀티 레이블 체제의 기틀을 잡았다.

이는 전통적인 엔터테인먼트 방식 운영보다 더 많은 가수와 음악을 동시다발적으로 생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이브가 방탄소년단의 완전체 활동이 잠시 멈춘 2022년 이래 르세라핌, 뉴진스, 아일릿 등 신인 그룹을 짧은 기간에 대거 데뷔시킬 수 있던 것도 멀티 레이블 체제의 덕이 컸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통해 일부 레이블 대표가 독자 행보를 도모할 수 있다는 약점도 드러났다. 하이브가 80%라는 압도적인 지분을 보유한 레이블 어도어서 잡음이 빚어졌다는 사실은 단순 ‘지분 문제’ 이상의 구조적 결함을 지녔다는 것이다. 

하이브와 어도어는 이번 사태와 관련해 각각 김앤장법률사무소와 법무법인 세종을 법률대리인으로 선임해 대응하고 있다. 

결국
법정으로?

문화계에서는 하이브와 어도어의 갈등이 결국 양측의 법적 대응을 통해 매듭지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어도어 측이 하이브가 요구한 이사회 소집을 거부할 경우 하이브는 곧바로 임시주주총회 개최를 위한 가처분 신청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법원의 가처분 신청 판단은 통상 2개월여 소요된다. 이어 현재 양측이 맞부딪히고 있는 쟁점들에 대한 소송전이 열리고 상급심까지 가게 되면 분쟁이 끝나는 시점은 예상하기 어렵다.

<smk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기고발당한 민희진, 왜?

어도어 경영진을 상대로 감사를 펼친 하이브는 민희진 대표를 수사기관에 고발하기로 했다. 

지난 25일 하이브는 산하 레이블 어도어에 대해 감사를 진행한 결과 문건과 경영권 탈취 계획 등이 담긴 메시지앱 대화록 등의 정보자산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또 하이브는 정보자산에 담긴 사실관계를 기반으로 민희진을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로 수사기관에 고발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하이브에 따르면 민희진은 어도어 부대표 등 경영진에게 “하이브가 보유 중인 어도어 지분을 매각하도록 하이브를 압박할 방법을 마련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실제 하이브가 이날 공개한 민희진과 부대표가 나눈 메시지앱 대화록에는 ▲2025년 1월2일 풋옵션 행사 엑시트(Exit) ▲어도어는 빈 껍데기 됨(권리침해소송 진행) ▲재무적 투자자를 구함(민 대표님+하이브서 어도어 사오는 계획) ▲하이브에 어도어 팔라고 권유 ▲ 적당한 가격에 매각 ▲민 대표님은 어도어 대표이사+캐시 아웃(Cash Out)한 돈으로 어도어 지분 취득 등 경영권 탈취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담겼다.

아울러 하이브는 지난 22일부터 감사를 실시해 ‘하이브의 죄악’ ‘프로젝트 1945’ 등 경영권 탈취 계획 내용이 담긴 여러 문건을 확보했다고 전했다. 

하이브는 감사를 통해 얻은 물증을 근거로 민희진에 대한 고발장을 제출키로 한 것이다.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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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경찰이 압수한 비트코인 1700여개 중 1400개 이상이 사라졌다. 전체 피해액은 최소 1300억원에서 최대 15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충격적인 것은 탈취 시점과 방식, 그리고 접속 기기까지 모두 경찰 수사 과정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단순 해킹으로 보기 어려운 정황이 잇따라 확인되면서 사건의 성격이 ‘내부 연루 의혹’으로 급격히 기울고 있다. 사건의 출발은 2021년 11월 광주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의 불법 도박사이트 수사였다. 광주청 수사과 소속 경사 김모씨 등은 범죄수익은닉 혐의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하며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을 받은 비트세븐 거래소 대표 이모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에 접속했다. 6분 간격 연결고리 당시 경찰은 피의자 이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 계정에 접속해 비트코인 1798개를 확인했다. 경찰은 같은 날 오전 11시58분부터 약 40분간 27차례에 걸쳐 135개를 이체하며 1차 압수를 진행했다. 이후 접속이 차단됐다고 주장했지만, 불과 몇 시간 뒤인 11월10일 새벽과 오후, 경찰청 사무실에서 추가로 185개를 더 이체했다. 총 320개가 ‘정식 압수’됐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2021년 11월10일 오후 8시28분. 김 경사는 압수된 계정의 연동 이메일을 자신의 구글 계정으로 변경한다. 그리고 불과 12분 뒤인 8시40분부터, 지갑에 남아 있던 비트코인 1477개가 195차례에 걸쳐 외부 주소로 빠져나갔다. 압수 직후, 그것도 계정 권한이 경찰에게 완전히 넘어간 직후 벌어진 대규모 탈취였다. 블록체인닷컴이 제출한 IP 로그는 더욱 노골적이다. 11월9일부터 10일 오후 8시32분까지 모두 한국 IP를 사용한 수사관 접속 기록이다. 이후 마지막 김 경사의 접속 6분 뒤, 미국·우크라이나·캐나다 IP를 통한 접속이 연속으로 발생한다. VPN을 이용한 김 경사로 의심되는 ‘탈취자’의 접속이다. 수사관 로그인 → 6분 후 탈취 로그인 → 즉시 대량 이체로 이어진 것이다. 외부 해커의 우연한 침입이라 보기에는 타이밍이 지나치게 촘촘하고 정교하다. 결정적인 단서는 디바이스 로그다. 블록체인닷컴 측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해당 계정에는 단 두 종류의 기기만 기록돼있다. 하나는 윈도우 기반 데스크톱, 다른 하나는 안드로이드 모바일이다. 이 중 안드로이드 접속은 단 한 번, 우크라이나 IP를 통해 이뤄졌다. 나머지 탈취 접속은 모두 윈도우 데스크톱이다. 문제는 그 윈도우 기기다. 로그에는 수사관이 사용한 윈도우 기기 외에 다른 데스크톱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탈취자가 사용한 윈도우 PC가 별도 기기였다면 반드시 추가 로그가 남아야 하지만 그마저도 없다. 탈취 접속에 사용된 윈도우 기기가 수사관이 사용한 기기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수사관 접속 후 VPN 유출 시작 경찰이 사용한 기기가 쓰였다? 탈취 당시 상황도 석연치 않다. 계정 연동 이메일이 김 경사의 개인 계정으로 바뀐 직후 탈취가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최소 198건의 출금이 발생했다. 정상이라면 동일 수량의 알림 이메일이 수신돼야 한다. 그러나 김 경사의 이메일에는 단 7건만 남아 있다. 나머지 191건은 흔적조차 없다. 더욱이 김 경사는 당시 사무실에 남아 있었고, 탈취 시간 동안 계정 재접속을 시도했다고 진술했다. 그럼에도 본인 이메일로 전송된 출금 알림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단순 실수로 보기엔 삭제 규모가 과도하다. 선택적 삭제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수사 협조 전문가 박모씨의 분석 자료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정황이 발견됐다. 박씨는 11월11일 저녁, 탈취 자금 흐름을 분석한 노드 자료를 김 경사에게 전달했다. 그런데 해당 자료에는 그 시점 기준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 트랜잭션이 포함돼있었다. 실제 해당 거래는 다음 날 새벽에야 블록체인에 기록된 것으로 확인된다. 블록체인 구조상 발생하지 않은 거래를 사전에 확인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해당 자료가 사후 수정됐거나, 탈취 경로를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씨는 사건 발생 한 달 뒤 탈취 사실을 인지하고 검찰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후 추가 진정까지 제출했지만, 수사는 2024년까지 사실상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다 뒤늦게 수사가 이뤄졌고, 결과는 반전이었다. 탈취 의혹은 규명되지 않은 채, 오히려 피해자가 허위 고발을 했다며 무고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국가 수사기관이 압수한 비트코인이 경찰 손을 거친 직후 대량으로 사라졌으나, 코인의 주인은 구속되고 경찰은 의심에서 벗어났다. 단순 해킹이라 보기에는 시점과 방식, 그리고 이후 수사 흐름까지 모든 것이 비정상적이다. 법원도 이미 “누군가 계정에 접근해 비트코인을 이체했다”고 판단했고, 검찰은 수사 정보 유출 의혹까지 제기하고 경찰을 상대로 압수수색을 벌였다. 정작 탈취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무고 혐의로 법정에 서 있는 상황이다. ‘누가 훔쳤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은 여전히 답을 얻지 못한 채 사건은 미궁으로 빠졌다. 알림 191건 흔적 없이… 경찰은 1일 전송 한도 때문에 압수가 며칠에 걸쳐 이뤄지는 사이, 이씨 측이 이를 빼돌렸다고 판단했다. 반면 이씨 측은 정반대 주장을 펼쳤다. 계정 접근권한을 사실상 장악한 수사기관 내부에서 탈취가 이뤄졌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사건은 단순 범죄수익 환수 문제를 넘어 ‘압수된 국가 관리 자산이 어떻게 사라졌는가’라는 근본적 의문으로 확장됐다. 광주지법 항소심은 도박공간 개설과 범죄수익은닉 혐의 자체는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사라진 1476개 비트코인에 대해서는 이씨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누군가 이씨의 블록체인 계정에 접근해 당시까지 남아있던 비트코인 대부분을 다른 지갑으로 이체해 갔다”고 판시했다. 이는 곧 해당 비트코인의 이동 주체가 이씨로 특정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 1심에서 600억원대에 달했던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에 대한 추징금은 항소심에서 15억원 수준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이 판결은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법원이 최소한 “외부 혹은 제3자의 개입 가능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다. 즉, 단순히 피고인이 숨기거나 빼돌린 사건이 아니라, 압수된 계정에 대한 추가 접근이 있었고 실제 자산 이동이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되지 않았다. 검찰 역시 이 사건을 단순히 피고인 책임으로만 보지 않았다. 2023년 11월 검찰은 광주경찰청과 서부경찰서를 상대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수사 정보가 외부로 유출됐을 가능성과 압수 과정의 적법성을 확인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 과정에서 사건 브로커와 거액 자금 흐름까지 거론되며 사건은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번졌다. 단순한 도박사이트 수사가 아니라 수사 기밀, 로비, 가상자산 이동이 뒤엉킨 구조적 사건으로 확장된 것이다. 최근 공판에서는 또 다른 쟁점이 드러났다. 증인으로 출석한 전문가 박씨 측 인물은 사라진 비트코인의 이동 경로를 분석한 결과 특정 거래소 계열 지갑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확인된다며, 도박사이트 운영 세력이 직접 자금을 이동시켰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의심받는 수사관 반면 이씨 측은 사건 직후 오히려 검찰에 진정을 제기하며 탈취 의혹을 먼저 제기한 점을 강조하며, 스스로 범행을 저질렀다면 그런 행동을 할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또 블록체인닷컴 측 자료에 따르면 ‘탈취자’는 VPN을 이용해 해외 IP로 접속했으며, 일부 접속은 데스크톱 환경에서 이뤄진 것으로 분석됐다. 만약 이 분석이 사실이라면, 압수 과정에서 사용된 기기와 탈취에 사용된 기기가 동일하거나 밀접하게 연관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다만 이 같은 기술적 분석은 현재까지 법원에서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는 점에서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메일 기록 역시 의문을 키운다. 탈취 과정에서 수백건에 달하는 출금이 발생했다면 이에 상응하는 알림 메일이 존재해야 정상이다. 그러나 일부 기록만 남아 있고 상당수는 확인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만약 실제로 알림이 발송됐음에도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면, 이는 단순 오류가 아니라 의도적 삭제 가능성까지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이 사건은 세 가지 축으로 압축된다. 첫째, 경찰이 압수한 가상자산이 왜 완전히 확보되지 못했는가. 둘째, 압수 이후 누가 해당 계정에 접근해 자산을 이동시켰는가. 셋째, 그 과정에서 수사기관 내부 혹은 외부 세력의 개입이 있었는가다. 상식적으로 국가가 압수한 자산은 그 어떤 개인소유보다도 안전하게 보호돼야 한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정반대 결과가 나타났다. 압수 직후 대규모 자산이 사라졌고, 책임 소재는 규명되지 않았으며,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오히려 피고인 신분이 됐다. 계정 변경 직후 사라져 이메일 변경 직후 작업 이 사건이 단순한 형사사건을 넘어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만약 압수된 자산조차 안전하게 관리되지 못한다면, 국가 형사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특히 가상자산과 같이 추적과 관리가 기술적으로 가능한 자산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점은 더욱 심각하다.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만 놓고 보면, 이 사건은 ‘탈취’가 아니라 ‘내부 유출’ 가능성을 강하게 의심케 한다. 한편, 지난달 15일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인물은 범행 주체가 경찰이 아니라 탈취범으로 지목된 이씨와 그의 아버지일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광주지방법원 형사10단독 유형웅 판사는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이씨 부녀에 대한 속행 공판기일 재판을 열었다. 이씨 부녀는 2021년 11월 경찰 압수수색이 진행되던 중 자신의 블록체인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76개를 빼돌린 혐의로 기소됐다. 검사는 이날 A씨를 증인으로 신청해 신문했다. A씨는 과거 이씨 측 부탁을 받고 비트코인 환전에 도움 준 인물이다. 현재는 코인 관련 별도 사기 혐의로 보석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A씨는 이날 검사의 질문을 받고 “이씨 지갑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00여개의 행방을 쫓기 위해 거래 내역을 분석한 결과, 비트세븐 거래소와 연결된 지갑이 다수 등장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경찰은 일일 전송 제한량이 걸려 있어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을 여러 날에 걸쳐 경찰 지갑으로 옮겨 압수했는데, 같은 시기 탈취범은 순식간에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00여개를 빼간 것으로 나타났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달리 이씨 지갑에서 순식간에 다량의 비트코인을 탈취해 간 점, 탈취된 비트코인 이동 경로에 비트세븐 거래소 지갑이 활용된 점을 고려할 때 탈취범은 비트세븐 거래소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며 사실상 이씨 부녀를 겨냥했다. 구속된 코인 주인 A씨가 언급한 비트세븐 거래소는 정상적인 가상자산 거래소가 아니라, 이씨 부녀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운영했던 도박사이트라는 주장이다. 비트세븐 거래소와 관련해 이씨는 도박공간 개설 혐의 등으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다만 해당 재판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76개에 관한 추징(현 시세 기준 약 1620억원) 책임은 인정되지 않아, 검찰은 범죄수익은닉 혐의를 적용해 이씨를 부친과 함께 추가 기소했다. A씨의 증언에 대해 이씨 부녀 측은 즉각 반박하는 대신 별도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