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지는 한화그룹 사업 재편 로드맵

‘3세 시대’ 길목에 들어서다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5년 넘게 현장에서 자취를 감췄던 한화그룹 왕회장이 광폭 행보를 밟고 있다. 일주일 간격으로 곳곳에 출몰하면서 존재감을 십분 발휘하는 양상이다. 아들이 동행하면서 그럴듯한 구도를 만들자, 경영권 승계를 앞두고 힘을 실어주기 위함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그룹이 사업구조 재편 작업에 한창이라는 점이 이 같은 목소리에 무게를 더한다.

현장 경영에 나선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행보가 눈에 띈다. 1952년생인 김 회장은 한동안 건강을 이유로 공식 석상에 나서는 것을 자제했지만, 최근 들어 주요 사업장을 찾으면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김 회장은 지난달 29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전 R&D 캠퍼스를 방문해 차세대 발사체 사업 단독 협상자로 선정된 것을 축하했다. 김 회장이 그룹 계열사 현장에 모습을 드러낸 건 2018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베트남 엔진 부품공장 방문 이후 5년여 만이다.

계속되는 
광폭 행보

이날 김 회장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주관하게 될 누리호 4차 발사에 대한 당부를 빼먹지 않았다. 2025년으로 예정된 4차 발사의 완벽한 성공으로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손꼽히는 우주 전문기업으로 도약해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자는 뜻을 내비쳤다.

한화그룹은 우주 사업에 지금껏 9000억원대 투자를 집행했고, 자체 기술 확보와 밸류 체인 구축에 힘을 쏟아왔다. 그 결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발사체를 통한 우주 수송, 쎄트렉아이·한화시스템은 인공위성 제작 및 위성 서비스를 담당하는 등 우주 사업 밸류 체인 확보에 성공했다.


특히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 2월 순천 율촌 산단 내에 스페이스 허브 발사체 제작센터 착공식을 하고 현재 한창 건설이 진행 중이다. 센터가 완공되면 민간 체계종합 기업으로서 입지를 더욱 굳건히 할 것으로 기대된다.

김 회장의 현장 방문은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았다. 대전 R&D 캠퍼스 둘러본 지 일주일 만인 지난 5일에는 판교 한화로보틱스 본사를 방문했다. 한화그룹의 로봇 부문 계열사인 한화로보틱스는 미래 핵심 산업 중 하나로 손꼽히는 로봇 분야 선점을 위해 지난해 10월 공식 출범한 법인이다.

2017년 주력 제품인 협동로봇을 국내 최초로 선보인 한화로보틱스는 협동로봇 기반의 다양한 첨단기술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기업인 ‘보스턴 컨설팅 그룹(BCG)’은 글로벌 로봇시장이 2030년 최대 351조6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김 회장은 신기술 개발이 이뤄지는 연구 현장에서 실무진과 기술 현황, 미래 로봇산업 전망 등과 관련해 얘기를 나눴다.

그는 “로봇이 당장 구체적 성과를 내는 푸드테크를 시작으로 방산, 조선, 유통 등 그룹 내 여러 사업장에서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 회장이 연이어 계열사 현장을 방문한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경영권 승계를 고려한 움직임이라고 평가하는 분위기다. 김 회장의 첫 현장 방문지였던 대전 R&D 캠퍼스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핵심 연구소이며,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김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부회장이 총괄하는 곳이다.

김동관 부회장은 현재 ▲㈜한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솔루션 등에서 전략 부문 대표이사로 재직하고 있다. 김 회장이 대전 R&D 캠퍼스 방문했을 때 부친 옆을 지켰던 것도 김동관 부회장이었다.


김 회장이 두 번째로 찾은 한화로보틱스는 삼남인 김동선 부사장이 이끌 것으로 관측되는 곳이다. 재계에서는 경영권 승계 작업이 완료되면 김동선 부사장이 ▲유통 부문 ▲호텔 부문 ▲로봇 부문 등을 떼어내 독자 경영에 나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김 회장이 판교 한화로보틱스 본사를 방문했을 당시 김동선 부사장은 근거리에서 부친을 보좌했다. 

현장 챙기느라 바쁜 회장
경영권 승계 움직임 시동

장남과 삼남이 이끄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로보틱스를 연달아 방문한 것처럼, 김 회장이 차남 김동원 사장에게 힘을 싣는 행보를 밟느냐도 관심사다. 김동원 사장이 경영에 관여하는 금융 계열사는 ▲한화생명 ▲한화손해보험 ▲한화자산운용 한화투자증권 등이 있다.

금융 계열사의 경우 한화생명이 나머지 법인을 지배하는 방식으로 지분정리가 어느 정도 끝난 상태다.

눈여겨볼 부분은 김 회장의 현장 방문 시기가 그룹의 사업구조 개편 시기와 맞물린다는 점이다. 이런 이유로 사업구조 개편을 경영권 승계와 연결 짓는 시각도 존재한다. 

최근 한화그룹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솔루션, ㈜한화 등을 앞세워 방산 및 에너지 부문 경쟁력 강화를 위한 준비 작업에 돌입한 모습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2022년 11월 한화디펜스, 지난해 4월 ㈜한화 방산 부문을 흡수 합병하며 방산 계열사를 통합했다.

최근 비주력 사업인 한화정밀기계와 한화비전은 인적 분할을 결정했다.

한화솔루션은 지난해 12월 첨단소재 부문을 물적분할해 한화첨단소재로 분리하고, 지난 2월에는 백화점 사업부인 갤러리아 부문을 인적 분할했다. ㈜한화는 지난 3일 건설 부문 해상풍력 사업과 글로벌 부문 플랜트 사업을 한화오션에 넘기고, 모멘텀 부문 태양광 장비사업을 한화솔루션에 양도하기로 했다.

한화그룹의 사업구조 재편 작업에 대해 증권가는 우호적이다. 특히 신한투자증권은 지배구조 재편 및 다각적인 사업 확장 노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지난 3일 이동헌 신한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인적 분할에 대한 시장의 기대에 대해 “순수 방산업체로의 면모를 확고히 한다는 측면, 실적이 레벨업된 한화 비전의 가치 재부각, 실전이 부진해 소외된 정밀기계 사업의 투자 확대 및 재평가, 적극적인 지배구조 재편 작업에 따른 추가적 성장 전략에 대한 기대 등이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사업구조 개편 작업이 계획대로 올해 하반기 경 완료되면 김동관 부회장은 신재생에너지·방산·항공우주 등 그룹 핵심 사업을 직접 통솔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를 계기로 형제 간 영역 구분이 더 확실해질 수 있다.


다만 삼형제가 확실한 승계 수순을 밟으려면 지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지난해 말 기준 ㈜한화 최대주주는 지분 22.65%를 보유한 김 회장이다. 반면 김동관 부회장의 지분율은 4.91%에 불과하며, 김동원 사장과 김동선 부사장 역시 지분율이 2.14%씩에 그친다.

부친이 보유한 주식을 물려받으려면 천문학적인 세금 부담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일각에서는 한화에너지가 지분 승계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화에너지는 여수와 군산에서 열·전기를 공급하는 집단에너지 사업을 전개하는 오너 가족회사다. 김동관 부회장이 지분 50%를 보유한 최대주주고, 김동원 사장과 김 부사장이 25%씩 지분을 보유 중이다. 

한화에너지의 중요성은 지배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이 회사는 ㈜한화 지분 9.70%를 보유한 2대 주주다. 만약 ㈜한화가 한화에너지와 합병 수순을 밟게 되면 삼형제의 ㈜한화 지분율이 상승할 여력이 생긴다.

일석삼조
효과

한화에너지가 삼형제의 승계 자금을 마련에 도움을 줄 가능성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최근 한화에너지가 현금배당을 실시한 건 2021년(현금배당 501억원)뿐이지만, 추가 현금배당에 나설만한 재정 여력은 충분하다. 


지난해 말 현금성자산과 금융상품 합계액은 6조2805억원에 달했으며, 같은 기간 순자산가치는 4조8914억원으로 집계됐다. 게다가 한화에너지는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으로 4조7110억원, 영업이익 2150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각각 20.0%, 306.8% 상승한 수치다. 

<heaty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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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신흥시장 라오스는 지금···

범죄 신흥시장 라오스는 지금···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라오스가 동남아의 마지막 프런티어이자 신흥 투자처로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이면에는 국제 범죄자들의 주요 거점으로 악용될 가능성도 있다. 수력발전과 광물, 인프라 개발을 앞세운 투자시장이 활발하게 성장하는 반면, 불법 콜센터를 중심으로 한 사이버 범죄 산업도 동시에 팽창하기 때문이다. 합법과 불법, 투자와 범죄가 교차하는 이 구조는 라오스를 단순한 ‘개발도상국’이 아니라, 국제 금융·사이버 범죄의 회색지대로 바라보게 만든다. 최근까지 라오스에서 발생한 보이스피싱 범죄는 과거 한국이나 중국에서 인식해 온 단순 전화 사기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 대거 이동 범죄 온상 라오스 스스로도 더 이상 ‘내륙 봉쇄국’이 아니라 ‘육상 연결국’을 자임하며 철도와 도로, 에너지, 도시 인프라를 국가 도약의 기반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이 밝은 전면 뒤에는 국제 범죄도시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함께 드리워지고 있다. 투자시장과 범죄 산업이 동시에 팽창하는 이중 구조다. 라오스에서 발생하는 보이스피싱과 온라인 투자사기는 전화와 메신저, SNS를 결합한 다층적 구조가 정착됐다. 가짜 투자 플랫폼과 암호화폐, 외환(FX) 거래를 미끼로 한 고도화된 금융사기가 핵심 수법으로 자리 잡았다. 이들 범죄는 국경 지대와 특별경제구역을 거점으로 운영된다. 미얀마·태국과 맞닿은 북부지역 경제특구 일대는 외국 자본과 외국 인력이 밀집한 구조를 악용하기 쉬운 환경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겉으로는 카지노나 리조트, 개발사업사무소로 위장하지만, 내부에서는 각국 언어를 담당하는 인력이 분업 형태로 사기 전화를 걸고 메시지를 발송한다. 최근에는 캄보디아 내 대규모 범죄조직들이 현지 단속을 피해 라오스 등 인접국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정황도 잇따라 포착되고 있다. 지난 10월19일 양기대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라오스에 체류 중인 한국인 민간봉사단체 관계자는 국제 통화에서 “라오스 정부 고위 인사들에게 캄보디아 범죄조직의 라오스 이동 가능성을 물었지만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들었다”고 전했다. 교민사회에서는 태국발 마약 범죄만으로도 벅찬 상황에서 캄보디아발 범죄조직까지 유입되면 감당이 어렵다며, 한국 정부가 후임 대사를 조속히 임명하고 경찰·영사 인력을 보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문제는 이 범죄들이 ‘라오스 현지 범죄’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제 피해자는 한국과 중국, 일본은 물론 동남아 전역, 유럽과 북미까지 확산돼있다. 라오스는 범죄가 실행되는 물리적 공간일 뿐, 자금은 국제 금융망과 가상자산을 통해 순식간에 국경을 넘는다. 캄 ‘프린스그룹’ 라 ‘킹스 로만스’ 해외투자 뒤에 드리운 검은 그림자 보이스피싱 조직은 가짜 투자 수익 인증 화면과 조작된 거래 내역을 제시해 신뢰를 쌓고, 일정 금액 이상이 입금되면 추가 투자나 긴급 송금을 요구한 뒤 출금을 차단하는 전형적인 수법을 반복한다. 일부 사례에서는 실제 존재하는 라오스 광산 개발, 에너지 프로젝트, 부동산 사업을 사기 시나리오에 끼워 넣어 ‘현지 실물 투자’처럼 포장하기도 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범죄 구조가 인신매매와 강제노동과 결합돼있다는 점이다. 고수익 IT·마케팅 일자리를 제안받고 라오스로 입국한 외국인들이 여권을 압수당한 채 콜센터에 감금돼 사기를 강요받는 사례가 국제 언론과 인권단체 보고서를 통해 반복적으로 드러났다. 성과를 내지 못하면 폭행과 협박이 뒤따르고, 탈출을 시도하면 몸값을 요구받는 구조도 확인됐다. 이는 단순 금융사기를 넘어 국제적 인권 범죄이자 조직범죄로 분류되는 이유다. 캄보디아 시아누크빌 일대에 밀집했던 대형 범죄단지가 해체되며 조직이 점조직 형태로 흩어지고 있다는 점도 불안 요인이다. <시사저널> 보도에 따르면, 현지 단속 이후 웬치로 불리는 범죄단지 상당수가 텅 비었고, 이들 조직원 상당수가 라오스와 태국, 미얀마 접경 지역으로 이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른바 ‘골든 트라이앵글’은 과거 세계적인 마약 생산지였지만, 최근에는 다국적 피싱 사기의 온상지로 탈바꿈했다. 울창한 산림 지역에 스타링크 위성 인터넷 장비를 설치해 전 세계를 상대로 보이스피싱과 로맨스 스캠을 이어가는 방식이다. 라오스 북부 보케오 지역에는 ‘범죄단지’를 넘어선 ‘범죄마을’도 존재한다. 중국 카지노 그룹 킹스 로만스가 99년간 임차해 카지노와 호텔을 운영하는 이 지역은 사실상 외부 접근이 차단된 치외법권에 가깝다. 불법도박과 마약 밀매, 스캠 사기, 암호화폐 자금세탁이 복합적으로 이뤄진다는 의혹이 제기돼왔고, 미국은 이미 2018년부터 킹스 로만스를 초국가범죄 기업으로 지정해 제재하고 있다. 캄보디아에 프린스그룹이 있다면, 라오스에는 킹스 로만스가 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국경 넘는 나쁜 놈들 마약 범죄 역시 라오스의 또 다른 어두운 단면이다. 최근 라오스 공항에서 마약을 소지한 채 출국을 시도하다 적발되는 한국인이 급증했다. 비엔티안과 지방 공항에서 잇따라 체포된 사례들은 대부분 헤로인과 케타민, 필로폰 등 대량의 마약을 포함하고 있다. 라오스 형법은 마약 범죄에 극히 강경하다. 일정 기준을 초과하면 사형이나 무기징역까지 선고될 수 있고, 미수나 공범 역시 동일하게 처벌된다. 실제로 2019~2020년 비엔티안 공항에서 필로폰을 소지하다 적발된 한국인 2명은 현재까지도 장기 복역 중이다. 주라오스 한국대사관이 “타인으로부터 물건을 위탁받지 말라”고 반복적으로 경고하는 배경이다. 라오스 정부 역시 이 같은 문제를 인식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불법 콜센터 단속과 외국인 범죄자 검거, 장비 압수와 추방 조치를 공개적으로 발표하며 국제사회의 시선을 의식하는 모습도 보인다. 그러나 단속이 강화될수록 범죄조직이 인접 국가로 이동하는 ‘풍선효과’는 반복되고 있다. 구조적 취약성이 해소되지 않는 한, 범죄의 위치만 바뀔 뿐 산업 자체는 유지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같은 범죄 환경은 라오스 투자시장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복합적인 영향을 미친다. 라오스는 여전히 매력적인 투자 요소를 갖춘 국가다. 수력발전과 광물, 재생에너지, 일부 농업·임산물 가공 분야는 실질적인 기회를 제공한다.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행정 절차의 불투명성, 계약 집행의 불확실성, 외환 규제와 금융 접근성 문제는 오래된 리스크다. 여기에 사이버 범죄가 결합되면서 정상 프로젝트와 사기성 프로젝트의 경계는 더욱 흐려지고 있다. ‘정부 승인’ ‘양허권 보유’ ‘현지 고위 인맥’ 같은 표현이 반복적으로 등장하지만, 공식 검증 없이는 실체를 가늠하기 어렵다. 동남아 마지막 남은 블루오션 라오스의 개발 모델 역시 기회와 위험이 교차한다. 인프라를 외부 차관과 ODA로 먼저 구축하고 성장을 통해 상환하는 구조는 철도와 도로, 병원, 상수도 같은 가시적 성과를 냈다. 그러나 정부 부채는 GDP(국내총생산) 대비 60% 후반으로 추정되고, 낍(KIP)화 약세는 상환 부담을 키우고 있다. 빚으로 지은 인프라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자산이 아니라 부담으로 남을 수 있다는 경고다. 현장에서는 인프라가 완공돼도 운영 시스템과 인력, 수요가 따라오지 못하는 모습이 반복된다. 다만, 한국 정부는 ‘메콩강 내륙국’으로 외교적 지평을 넓히기 위한 포석으로 라오스를 지목했다. 해양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제 개발 속도가 더딘 메콩강 유역 내륙국 시장을 선점해 경제협력의 이익을 극대화하겠다는 판단도 깔려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올해 마지막 정상회담 대상국으로 라오스를 선택한 이유다. 이 대통령은 지난 1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통룬 시술릿 라오스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을 했다. 이날 정상회담은 이 대통령의 초청으로 이뤄졌다. 라오스 국가주석이 정상회담을 위해 방한한 것은 12년 만이다. 라오스는 대표적인 메콩강 유역의 내륙 국가로 꼽힌다. 인도차이나반도의 젖줄인 메콩강은 중국 칭하이성에서 발원해 윈난성과 미얀마,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을 거쳐 남중국해로 흐른다. 한국은 중국과 미국에 이어 '3대 교역국'으로 꼽히는 베트남을 비롯해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아세안의 해양국과 활발한 경제·문화·인적 교류를 해온 반면 라오스와 미얀마, 캄보디아 등 메콩강 유역 내륙국과 비교적 교류가 적었다. 조원득 국립외교원 아세안인도연구센터장은 “(한국의) 경제협력이나 투자는 베트남 등에 집중됐고 동남아의 내륙 국가에 대한 실질적인 투자 등은 이뤄지지 않았다”며 “최근 몇 년간 (한국이) 한미일 외교에 집중하다 보니 (내륙국에 대한) 정치·외교적인 관심이 많이 떨어진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범죄로 얼룩 이면엔 ‘기회의 땅’ 무궁무진 천연 광물과 수력발전 이재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메콩강 유역 국가들은 베트남처럼 경제적으로 한 단계 높은 층위를 차지하는 국가들과 아닌 국가들로 구분돼있다”며 “메콩강 지역 개발의 최대 수혜는 상대적으로 빈곤한 국가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얀마는 군부독재라는 문제가 있고 캄보디아는 온라인 ‘스캠’(사기)으로 대표되는 치안 문제가 있다”며 “한국이 메콩 지역 개발을 위해 손잡고 일할 수 있는 국가는 현재로선 라오스”라고 했다. 이 대통령이 해양국들뿐 아니라 내륙국들과 교류·협력 등을 통해 아세안에서 영향력을 높이는 효과도 기대된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아세안의 GDP 규모는 약 3조8000억달러(약 5590조원)로 국가로 치면 세계 5위 수준이다. 인구 규모는 6억7000만명으로 세계 3위다. 미중 갈등을 계기로 국제사회의 불확실성이 장기간 지속되면서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이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 ‘4강’을 넘어 아세안 등 신흥시장을 개척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이 대통령은 취임 후 약 6개월 만에 G7(주요 7개국), 유엔(UN·국제연합)총회,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 참석해 상생과 연대의 가치를 강조하며 자유무역 질서 및 다자주의 회복에 힘쓴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통룬 주석과의 확대회담에서 “라오스가 통룬 주석의 리더십 하에 내륙 국가라는 지리적 한계를 새로운 기회로 바꿔 역내 교통·물류의 요충지로 발전한다는 국가 목표를 성공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확신한다”며 “이 과정에서 한국이 든든한 파트너로서 함께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양국 간 호혜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협력관계를 더욱 확대·발전시켜서 양국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인 성과를 함께 만들어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수익 보장? 의심부터 결국 라오스의 투자시장과 보이스피싱 범죄는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제도적 공백과 국경 지대의 느슨한 관리, 외국 자본과 인력 유입이 만들어낸 회색지대라는 동일한 토양에서 자라난 두 개의 얼굴이다. 라오스는 여전히 기회의 땅일 수 있다. 그러나 그 기회는 이제 철저한 검증과 리스크 관리 없이는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이 됐다. 높은 수익률을 약속하는 투자 제안일수록, ‘이미 현지에서 잘 돌아가고 있다’는 말일수록 냉정하게 의심해야 하는 이유다. 라오스 투자시장의 성장과 국제 범죄 산업의 확산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같은 구조가 낳은, 서로 다른 두 개의 결과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