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박근혜 탄핵, 그후…‘끝나지 않은’ 재판 풀스토리

요란했던 빈 수레 결말은 용두사미?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2016~2017년은 헌정사의 유례없는 일로 가득 찬 해였다. 민간인이 국정에 개입한 사실이 드러났고 그 결과 대통령이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끌어내려졌다. 대통령을 비롯한 관련자를 단죄하는 수사팀이 꾸려졌고 재판이 진행됐다. 그로부터 7년,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던 사건이 마무리 수순을 밟고 있다.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2017년 3월10일 오전 11시23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이하 헌재) 대심판정서 울린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의 주문이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다. 헌법재판관 8명은 만장일치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을 결정했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이 탄핵된 순간이었다.

대통령 낙마
초유의 사건

헌재는 “박 전 대통령의 헌법과 법률 위배 행위는 재임 기간 전반에 걸쳐 지속적으로 이뤄졌고 소추 사유 관련 일련의 언행을 보면 위배 행위가 반복되지 않도록 할 헌법 수호 의지가 드러나지 않는다”고 탄핵 인용 배경을 밝혔다. 

이어 “피청구인의 위헌, 위법 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수호의 관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 행위”라면서 “헌법 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파급효과가 중대하므로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강조했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된 결정적 사유로는 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국정 개입 허용과 권한 남용이 꼽힌다. 박 전 대통령이 최씨에게 공무상 비밀을 공유하고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이나 최씨 개인 소유·운영 법인을 통한 이권 추구를 도운 점이 헌법과 법률을 위배했다는 게 골자다.


실제 사건의 윤곽이 드러났을 때 국민이 가장 분노한 지점도 바로 여기에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알려진 사건의 정식 명칭은 ‘박근혜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 농단 의혹 사건’(이하 국정 농단 사건)이다. 당시 국정 농단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박영수 특별검사가 임명됐고 윤석열 수사팀장이 합류했다. 현재의 윤석열 대통령은 박영수 특검팀에 합류하면서 재기의 기회를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은 국정 농단 사건의 또 다른 시작으로 작용했다. 일반인 신분으로 격하된 대통령에 대한 사법처리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국정 농단 사건은 비선 실세 의혹이 발단이 되면서 검찰 특별수사본부, 박영수 특검팀, 서울중앙지검이 세 단계로 수사를 진행했다.

박 전 대통령을 비롯해 최씨, 김기춘 전 비서실장 등 주요 인사 58명이 기소됐고 재판서 48명이 유죄를 확정받았다. 

국정 농단 사건 재판 마무리
블랙리스트 사건 판결 확정

박 전 대통령 재판은 국정 농단 사건과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 특수활동비 상납 등 혐의로 나뉘어 진행됐다. 국정 농단 사건 1심 재판부는 최씨와 공모한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모금, 삼성의 정유라 승마 지원비 중 일부를 뇌물로 인정, 징역 24년과 벌금 180억원을 선고했다.

항소심에서는 삼성 영재센터 후원금이 뇌물로 추가돼 징역 25년, 벌금 200억원으로 형량이 늘었다. 


국정원장들로부터 35억원을 받았다는 특활비 상납사건은 1심서 징역 2년, 항소심서 징역 5년이 선고됐다. 대법원은 두 사건 모두 원심 판결을 깨고 파기환송했고 이후 사건이 합쳐져 심리됐다. 파기환송심에서는 대법원의 판결 취지에 따라 강요죄 등 일부 혐의가 무죄로 뒤집혔다. 두 사건에 대한 최종 형량은 징역 20년, 벌금 180억원으로 확정됐다.

여기에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공천 개입 혐의로 2년의 확정 판결을 더해 총 22년형으로 최종 결정됐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은 2021년 12월31일 문재인 전 대통령의 신년 특별사면으로 석방됐다. 2017년 3월31일 구속된 이후 4년9개월 만이었다. 또 다른 국정 농단 사건의 핵심인 최씨는 아직 수감 중이다.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및 뇌물 등 혐의로 기소된 최씨는 2020년 대법원에서 징역 18년에 벌금 200억원, 추징금 63억여원의 원심이 확정됐다.

딸 정유라씨가 이화여대에 입학하도록 압력을 행사한 혐의로도 징역 3년형을 받아 도합 21년의 실형이 결정됐다.  

최근 국정 농단 사건에 연루됐던 관련자들에 대한 재판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가장 오랜 시간을 끌어온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이 파기환송심까지 간 끝에 결론이 난 것이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은 문화예술단체를 지원하는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 시절 정부의 입맛에 맞지 않는 단체를 차별․배제했다는 내용이다.

박영수 특검팀은 출범 직후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정무수석을 구속했다. 

정권교체
시발점

지난달 24일 서울고등법원은 김 전 실장의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 징역 2년을, 조 전 수석에게는 징역 1년2개월을 선고했다. 김 전 실장과 조 전 수석이 재상고를 포기하면서 파기환송심 판결이 확정됐다. 박영수 특검이 ‘가짜 수산업자 사건’에 연루돼 사임하면서 재판 기간이 7년여까지 늘어졌다.

실제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기타 양형상 참작 사유’로 재판 지연을 들기도 했다.

국정 농단 사건서 파생된 재판 결과도 속속 나오고 있다. 특히 국정 농단 사건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법 농단 사건에 관심이 집중됐다. 사법 농단 사건은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청와대와 국정 운영 관련 재판을 거래하고 재판에 개입했다는 내용이다.

이 과정서 법원행정에 비판적인 법관을 사찰하고 불이익을 행사하는 등 사법행정권을 남용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나란히 기소됐다. 두 사람은 사법 농단 사건의 최종 결정권자와 실무자로 지목됐다.

지난달 26일과 지난 5일 양 전 대법원장과 임 전 차장에 대한 1심 재판부의 판결이 나왔다. 양 전 대법원장은 무죄, 임 전 차장은 징역형으로 희비가 엇갈렸다.


지난달 26일 서울중앙지법은 직권남용 등 혐의로 기소된 양 전 대법원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1심 판결이 나오기까지 무려 4년11개월이나 걸렸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해 징역 7년을 구형했지만 법원은 50개에 가까운 혐의 모두를 무죄로 봤다. 

1심 선고에
4~5년 걸려

양 전 대법원장은 2011년 9월 취임 이후 6년 임기 동안 임 전 차장 등에게 반헌법적 구상을 보고받고 승인하거나 직접 지시한 혐의로 2019년 2월11일 구속 기소됐다. 사법 농단 사건의 정점으로 여겨진 것이다. 재판개입, 법관 블랙리스트 작성, 헌재 견제, 비자금 조성 등 47개 범죄 혐의가 따라붙었다. 

특히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손해배상 청구소송,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처분 사건,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옛 통합진보당 의원 지위 확인 소송 등에 부당 개입했다는 혐의에 관심이 집중됐다. 재판부는 임 전 차장 등 하급자들의 직권남용 혐의가 대부분 인정되지 않고 일부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양 전 대법원장 등의 지시, 가담 등 공범 관계가 검찰이 제시한 증거만으로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봤다. 

반면 임 전 차장은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받는 등 유죄가 선고됐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5일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된 임 전 차장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임 전 차장은 2018년 11월 ▲상고법원 추진 등 법원 위상 강화 이익 도모 ▲대·내외 비판 세력 탄압 ▲부당한 조직 보호 ▲비자금 조성 등 4가지 범주의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사법 농단 사건의 ‘실무자’로 여겨졌다.

1심 재판부는 전교조 법외노조 처분 소송서 고용노동부의 소송서류를 사실상 대필해준 혐의,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홍일표 전 의원의 형사재판 전략을 대신 세워준 혐의, 통합진보당 지역구 지방 의원에 대한 제소 방안 검토를 지시한 혐의 등을 유죄로 봤다.


그러면서도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낸 손해배상청구소송과 관련해 일본 기업 측 입장서 재판 방향을 검토하고 외교부 의견서를 미리 건네받아 감수해준 혐의 등은 무죄로 판단했다.

파생 사건 1심 선고 속속
양승태·이재용 무죄 받아

국정 농단 사건서 비롯된 이른바 ‘이재용 재판’도 1심 판결이 나왔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국정 농단 사건에 연루돼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가석방된 뒤 사면되는 등 사법 리스크에 시달렸다. 경영권 승계 관련 재판 역시 국정 농단 사건서 촉발된 것이다. 

당시 박영수 특검팀은 삼성이 이 회장의 안정적 경영권 승계에 도움을 받으려는 의도로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에게 말을 뇌물로 건넨 것으로 봤다. 또 엘리엇 등 삼성물산 주주들이 제일모직과 합병을 반대하자 삼성물산 지분 11.9%를 가진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청와대가 힘써주기를 청탁했다고 판단했다. 

특검에 이어 수사를 시작한 서울중앙지검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과정을 파고들었다. 합병을 성사시키기 위해 이 회장 등이 불법행위를 자행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이 회장 등은 2015년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최소비용으로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승계하고 지배력을 강화할 목적으로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이하 미전실)이 추진한 각종 부정거래와 시세조종, 회계 부정 등에 관여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하지만 법원은 두 회사 합병이 이 회장의 승계나 지배력 강화가 유일한 목적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부당하다고 볼 수 없고 비율이 불공정해 주주에게 손해를 끼쳤다고 인정할만한 증거가 없다고 봤다. 제일모직 자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와 관련한 거짓 공시·분식회계 혐의도 무죄로 봤다. 

불법승계 사건에 대한 법원의 1심판결은 검찰에 불똥이 튈 것으로 보인다. 실제 법원은 검찰의 주장에 대해 “검찰의 공소사실이 모두 입증이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특히 검찰 입장에서는 증거능력에 대한 지적이 뼈아팠다.

당시 수사팀은 삼성바이오로직스 공장 바닥을 뜯어내 숨겨진 회사 공용 서버와 직원들의 노트북을 대거 확보했다고 한 바 있다. 법원은 이 과정서 압수수색 절차를 지키지 않은 위법 증거는 재판에 사용할 수 없다며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완벽한 패배
검찰로 불똥?

심지어 이 사건은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었던 윤 대통령 등이 지휘했다. 기소 후 3년5개월 동안 치열한 법정 공방을 벌였지만 검찰은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완패했다. 일각에서는 검찰의 무리한 기소가 독이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는 이 사건에 대한 수사 중단과 불기소를 권고한 바 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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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다. 당원의 명령인 개혁을 완수하기 위한 질주다. 당의 ‘아웃사이더’였던 그가 당을 휘어잡기까지 수많은 당원이 등을 밀어줬다. 비주류에서 주류 ‘인싸’로 자리 잡기 위한 정 대표의 다음 스텝이 주목된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행보가 매섭다. 윤석열정부에서 막힌 과제를 해치우는 동시에 공약이었던 각종 개혁을 빠르게 완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 대표는 같은 당 박찬대 의원보다 덜 알려졌다는 평이 나오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위원장으로서 보여준 ‘사이다’ 면모가 주목받으면서 강성 지지층의 환호를 받았다. 정청래가 걸어온 길 비주류였던 그가 당 대표가 되기까지의 여정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21대 국회 때는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 수석 최고위원을 지냈고, 22대 국회에선 법사위원장으로서 국민의힘에 호통을 치며 유튜브 단골 주제가 됐다. 당시 정 대표는 국민의힘이 반대하는 쟁점 법안을 밀어붙이고 상대편 의원과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인기를 끌었다. 그동안 정 대표는 언론 대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유튜브 등 SNS를 통해 지지자와 직접 소통해 왔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보다 주목도가 떨어진다는 평이 나오지만 팬덤 정치에 최적화된 모습을 보여줬다. 정 대표는 최근에도 자신을 둘러싼 의혹과 청-명 프레임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혔다. 그는 SNS에 ‘언론의 자유와 횡포 그리고 언론의 게으름의 관성’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조국 전 대표의 사면·복권을 놓고 일부 언론에서 ‘정청래 견제론’을 말한다.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근거 없는 주장일뿐더러 사실도 아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바로 반박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어 “정청래는 김어준이 밀고, 박찬대는 이재명 대통령이 밀었다는 식의 가짜 뉴스가 이 논리의 출발”이라며 “어심이 명심을 이겼다는 황당한 주장, 그러니 정청래가 이재명 대통령과 싸울 것이란 가짜 뉴스에 속지 말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각을 세울 일이 1도 없다. 당정대가 한 몸처럼 움직여 반드시 이재명정부를 성공시킬 생각이 100(이다)”이라고 덧붙였다. 계파 갈등 프레임이 씌워질 조짐이 보이자 이를 사전에 차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대표의 정치적 뿌리를 따지자면 친노(친 노무현)에 가깝다. 그러나 문재인 전 정부서는 친문(친 문재인),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는 친명(친 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등 계파색이 비교적 옅은 편이다. 1989년 미국 대사관저 점거 농성을 주도한 혐의로 2년형을 선고받은 등 학생 운동권 출신이지만, 대표 운동권인 민주당 86 그룹과의 친분을 공개적으로 과시하지 않았다. 따라서 정 대표는 당의 주류보다 비주류에 가깝다는 게 여의도에 떠도는 평이다. 친문? 친명? 오히려 ‘계파 청산파’ “잘못된 586 문화 배운 97도 청산” 전당대회가 한참이던 당시 한 민주당 의원은 “사석에서 만난 정 의원은 아주 뚝심 있는 사람이었다. 박찬대 의원은 특유의 재치로 호감을 얻는 편이라면 정 의원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할 말은 제대로 하는 캐릭터”라며 “그래서 계파를 분류하기 어려운 것 같다. 나만의 길을 가는 것 같으면서도 한번 정한 길은 꺾지 않고 걷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정 대표는 ‘계파 청산’을 외치는 인물이다. 그는 당 대표 후보이던 당시 “국민께서 비판하시는 586의 운동권 문화는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라디오에 출연해서는 “계파는 당을 좀먹는 독약”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정파와 노선은 필요하지만, 계파는 없어져야 한다. 저 스스로 계파에 가입하지 않고, 그런 데서도 저는 안 불러준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586의 질서, 운동권의 수직적 관계가 싫었다. 그런 분들과 몰려 다니는 게 너무 비생산적”이라며 “586의 안 좋은 문화를 따라 배운, 너무 빨리 늙어버린 97 세대들의 그런 것도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수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당원들의 요구를 파악해 발 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8·2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는 당선 이후 “이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것은 민주당 주류가 바뀌었단 뜻이고, 민주당에서 정청래가 대표가 됐다는 것은 당의 주인인 당원들이 당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대가 왔다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해석했다. 이날 전당대회를 “예전에는 당원들이 국회의원 눈치를 봤지만, 이제는 국회의원들이 당원 눈치를 봐야 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민주당의 민주화’가 드디어 그 깃발을 높이 든 8·2 전당대회”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이처럼 정 대표를 탄탄히 받쳐주는 건 여의도 인맥이 아닌 당원이었다. 정 대표는 이들을 대주주 삼아 힘을 키워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에는 당원권에 힘을 쏟으며 역사상 처음으로 ‘평당원 최고위원’ 선출을 시도하는가 하면 당원 주권 정당 실현을 강조하기 위해 ‘대의원 1인1표제’를 띄우기도 했다. 대의원 1인1표제는 당원들의 권한을 대폭 향상하는 방안이다. 정 대표는 지난 18일 열린 국회 당원주권 정당특위 출범식에서 “10년 넘게 당원주권정당, 1인1표를 주장해 왔지만, 아직까지도 열리지 않았다”며 “헌법에서 얘기하고 있는 평등 선거가 민주당에서도 구현이 될 수 있도록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3대 개혁 풀가동 이어 “대한민국 헌법에는 평등 선거가 명시돼있고, 많은 선거에서 1인1표가 행사되지만 유독 더불어민주당에선 누구는 1표, 누구는 17표를 행사한다”며 “헌법적으로 보나 상식적으로 보나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재명정부가 국민주권시대를 강조하는 만큼 이에 발맞추기 위해서라도 민주당은 권리당원의 권리를 보장하고 상징적인 ‘1인1표’ 시대를 반드시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밖에도 정 대표는 당헌·당규 개정을 비롯한 ▲평당원 선출 준비 지원 ▲연말 당원 콘서트 지원 등을 약속했다. 당원의 힘이 커질 수록 정 대표의 정치적 입지도 넓어진다. 정 대표는 연일 국민의힘 때리기에 집중하며 당원으로부터 지지를 받았고, 민주당의 목표로 3대 개혁 완수를 내걸었다. 이는 비주류였던 자신의 정체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으로도 읽힌다. 이 대통령이 ‘사이다’ 발언으로 당권까지 올랐다면 정 대표는 각종 특위를 띄우며 거침없는 개혁가의 모습을 굳히겠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강성 지지층의 요구에 따라 검찰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청을 폐지하는 대신 가칭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과 공소청을 신설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다음 달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정 대표는 지난달 21일 의원총회에서 이 대통령과 당 지도부의 만찬 회동을 언급하며 “검찰청 폐지, 공소청·중수청 설립을 담은 정부조직법을 9월 내 본회의에서 처리하자고 당과 대통령실이 입장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약속드린대로 추석 귀향길 뉴스에서 ‘검찰청은 폐지됐다’ ‘검찰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는 기쁜 소식을 국민 여러분께 전해드릴 수 있도록 당에선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임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된 추미애 의원 역시 “법사위원장 선출은 검찰과 언론, 사법개혁 과제를 완수하라는 국민의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전폭적으로 힘을 실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위원회도 속속들이 들어섰다. 우선 민주당은 ‘국민주권 검찰정상화 특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정 대표는 출범식 및 1차 회의에 참석해 “지금의 시대적 과제는 내란 종식, 내란 척결, 이정부 성공에 있다”며 “가장 시급히 해야 할 개혁 중 개혁이 검찰개혁”이라며 “개혁도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저항이 거세져서 좌초되고 말 것이기 때문에 시기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특위의 주요 과제로는 ▲수사·기소 완전 분리 ▲국민 주권 실현 및 민생 뒷받침 등을 제시했다. 새로운 구심점 이어 언론개혁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언론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추석 전까지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언론의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피해자에게 손해액의 최대 5배 배상을 의무화하는 법적 장치다. 언론뿐만 아니라 ‘유튜버’도 포함하는 안이 논의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중심 사법개혁특별위원회’도 출범했다. 정 대표는 “대법관의 증원과 추천 방식을 변경하는 내용의 사법개혁안을 추석 전까지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구석구석 눈도장을 찍기 위한 지역별 공략에도 나섰다. 지난 21일 호남발전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다들 대한민국 민주화에 대해서 호남이 기여한 바가 지대하다는데, 국가는 ‘호남을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답을 이제 할 때가 되지 않았나”라고 꼬집었다. 정 대표는 “호남만 발전시키면 되겠느냐”며 영남발전특위도 띄웠다. 이는 내년 6월에 있을 지방선거를 대비해 대구·경북 등의 표밭을 다지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광폭 행보를 보이는 정 대표를 구심점으로 신흥 세력이 탄생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정 대표는 계파 정치와 거리를 두겠다고 거듭 밝혔지만, 권력자의 주변에 사람이 모이는 것은 당연하다는 해석이다. 정 대표의 편에 선 동료 의원들에게도 시선이 쏠린다.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를 공식적으로 지지했거나 개혁 선봉에 함께 섰던 의원 등이다. 정 대표가 당권 도전을 선언한 국회 기자회견장에는 장경태·최기상·문정복·임오경·양문석 의원 등이 자리했다. 여의도 이야기를 종합하면, 정 대표는 ‘당원 중심 정당’ 철학에 부합하는 인사로 장 의원을 꼽았다. 현재 장 의원은 평단원 최고위원 선출 절차를 위한 특위위원장을 맡고 있다. 최민희 의원은 정 대표를 공개 지지한 인물이다. 당시 정 대표가 수박 논란에 휩싸였을 당시 최 의원은 “심하게 비난받는 정청래 후보를 지켜보면 짠하다”며 “비난에도 역비난하지 않고 여전히 유쾌·상쾌하게 선거운동하는 정 후보를 격하게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 밖에도 한민수·김영환·이성윤 의원은 경선 유세 현장에 함께하며 힘을 실어줬다. 왼쪽으로 붙는 민주당…좁아지는 공간 강성 지지층 등에 업고 개혁가의 길로 개혁가의 길을 걷는 정 대표의 존재감이 커지자 일각에서는 조기 대선을 거치며 ‘중도 보수론’으로 넓혀놨던 민주당의 정치 공간이 다시 좁아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 대표의 강경한 태도가 민주당의 기조가 된다면 야당과의 협치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이다. 실제 정 대표는 “악수는 사람하고만 한다”며 국민의힘을 척결 대상으로 대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6주기 추모식에서 정 대표는 국민의힘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과 악수는커녕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다. 송 비대위원장 역시 적대감을 드러내면서 그야말로 ‘국회 빙하기’ 시대가 열렸다. 여당인 민주당은 좌우를 넓게 아우르는 정당이 돼야 앞으로 다가올 선거에서 유리한 구도를 유지할 수 있다. 지금처럼 국민의힘이 보수로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왼쪽은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에 맡겨둔 채 중도 보수를 자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당원의 힘으로 대표가 된 만큼 그는 개혁을 완수하기까지 지금과 같은 태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민주당 상임고문단도 “집권여당은 당원만 바라보고 정치를 해선 안 된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당 상임고문단 간담회에서 “정당의 주인은 당원이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면서도 “우리 국민은 당원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도 “내란의 뿌리를 뽑기 위해 전광석화처럼, 폭풍처럼 몰아쳐 처리하겠다는 대목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과유불급이다. 의욕이 앞서 결과를 내는 게 지리멸렬한 것보다는 훨씬 나으나, 지나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민주당으로 민주당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포스트 이재명’ ‘이재명 키즈’가 아닌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새로운 길을 열어야 당이 계속해서 순환하는 등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 “민주당의 주류는 강성 지지층이다. 당원이 당을 좌지우지하는데 그들의 숫자가 얼마가 되든 목소리가 커 여론을 만드는 것”이라며 “이 주류의 흐름에 올라탄 사람이 정 대표다. 이 대통령이 대표이던 때와는 다른 모습의 민주당을 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아직 남은 정 견제 세력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SNS에 올렸다 곧바로 삭제한 게시글이 화제다. 민주당은 지난달 19~20일 양일간 경주를 찾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 상황을 점검했는데 정 대표가 마치 천마총 금관을 쓰고 있는 듯한 착시 사진이 문제가 된 것이다. 정 대표가 금관을 직접 착용한 것은 아니지만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시에 왕 노릇을 한다” “벌써 왕인 것처럼 군다” 등 거친 비판이 쏟아졌다. 현재 해당 사진은 삭제됐지만 8·2 전당대회 때 불거진 박찬대 의원과의 앙금이 아직 남은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