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특집 일요초대석> 벽지서 세상을 보다 - 김종국 원로 신부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4.02.05 13:55:05
  • 호수 14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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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 식사 없는 나라를 희망합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유난히 추웠던 날씨에 김종국 원로 신부를 만났다. 편안해 보이는 인상으로 30년이 넘게 토마스의집을 운영했던 일을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지만, 하루에 300명이 넘는 식사를 무료로 제공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김 신부는 지금도 영등포역 토마스의 집은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무료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서울시 영등포구 영등포역 6번 출구 앞에는 토마스의 집이 있다. 1970년대 여인숙과 집창촌이 있었던 장소다. 영등포 쪽방촌은 산업화에 밀려난 도시 빈민층이 몰리면서 생긴 쪽방 주거지다. 쪽방이란 부엌, 화장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6.6㎡ 이하 규모의 방으로, 보증금 없이 월세나 일세를 받는다. 이곳은 현재 역세권 공공주택단지로 바꾸기 위한 공공 주도 재정비 사업이 2028년에 마무리될 예정이지만, 아직도 거주민들이 살고 있다.

30년 넘은
급식 봉사

토마스의 집은 가난하고 소외된 행려자에게 ‘빵이 곧 생명’이라는 철학으로 점심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원래는 ‘사랑의 선교수도회’ 급식소가 운영하다가 문 닫은 자리서 시작한 것이다. 코로나19 대유행 이전에는 매일 500명서 550명이 토마스의 집을 이용했다면, 현재는 하루에 평균 320명 정도가 토마스의 집에서 식사를 한다.

토마스의 집은 자원봉사자들이 주 업무를 한다. 주·부식 준비부터 식판에 반찬 담기, 배식 및 설거지와 뒷정리까지가 토마스의 집 일과다. 다음 날 배식 준비로 일이 더 늘어날 때도 있다. 이곳 자원봉사자들은 ‘이웃에 대한 정신적인 성원과 협력’ ‘나눔은 이웃을 비난하지 않는 것’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존경’하는 신념으로 봉사활동에 임한다.

어느 덧 올해로 토마스의 집은 32년 째 운영 중이다. 자원봉사자들이 운영에 도움을 주고 있는데, 시작은 김종국 원로 신부로부터다.


<일요시사>는 지난달 22일 오후 1시 서울시 중구 명동 가톨릭회관서 김종국 원로 신부를 만나, 김 원로 신부가 지난 30여년간 겪은 봉사의 삶과 이 시대가 겪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 들어봤다. 

김 원로 신부는 “토마스의 집을 하기 전, 영등포교도소서 10년 동안 있었다. 가톨릭 담당으로 교도소에 있는 교인과 대화를 많이 나눴다”며 “교도소에 있는데 어느 날, 영등포역서 사랑의 선교회 수사님이 무료 급식 봉사를 하다가 그만뒀다는 얘길 들었다. 이어받을 사람이 없다며 부탁받았다”고 회상했다.

당시 김 원로 신부는 장고에 들어갔다. 봉사활동이야 신부된 도리로 좋은 일이라지만, 당시 그는 본당 신부인 입장이라 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이런 까닭에 선뜻 급식 봉사를 하겠다고 나서지 않고 우선 영등포역을 방문했다. 어떤 장소서 급식 봉사를 한 것인지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교도소 10년, 토마스의집 30년
한 끼 대접하자 마음으로 시작

이때 김 원로 신부 눈에 들어온 것은 쪽방촌이었다. 김 원로 신부는 “쪽방도 아니었다. 거의 허물어가는 집이었다. 직접 가 보니까 어려운 사람에게 밥을 한 끼 대접하면 좋겠구나란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급식 봉사를 하겠다고 마음 먹었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원래 급식 봉사했던 장소가 정리가 돼있지 않았던 탓이다. 김 원로 신부는 쓰레기 더미를 치우려고 리어카로 9번이나 왔다 갔다 했다. 쓰레기를 버리는 데도 돈이 들었는데,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건물 주인이 급식 봉사를 하도록 허락해준 것이었다.

수저, 밥그릇 등 모든 것을 다 직접 사야 했다.


평신부였더라면 하지 않아도 될 고생이었다. 토마스의 집을 꾸리는 것이 너무 고생스러워 ‘내가 이런 고생을 왜 하고 있지’라는 생각도 들었다. 처음부터 후원해주는 곳이 없으니 사비도 들어갔다.

김 원로 신부는 “물건 구매는 물론, 음식도 해야 했다. 아무리 좋은 일을 하더라도 처음부터 후원해주는 곳이 없어 사비를 쓰면서 체계를 잡아 나갔는데 거의 시작하자마자 거의 전국으로 알려져서 지금까지 오게 됐다”고 회상했다.

시작은 어려웠지만, 그 뒤로는 잘됐다. 토마스의 집은 따로 홍보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당시엔 무료 급식을 하는 곳도 드물었던 만큼, 노숙자들 사이서 입소문이 나는 건 순식간이었다.

토마스의 집에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독거노인이다. 요즘엔 지하철요금이 무료라 시골에 거주 중인 노인들이 토마스의 집까지 원정을 오기도 한다. 시골 노인 한 명이 토마스의 집에서 무료로 식사하고 동네 노인과 같이 오는 식이다.

김 원로 신부는 “우리는 식사만 하는 게 아니라 빵, 사과, 라면도 끼워서 준다. 그래서인지 많이 온다”고 밝혔다. 무료 급식소가 전국에 있는데 꼭 굳이 토마스의 집까지 찾을 필요가 있을까? 이는 토마스의 집만의 문화 때문일 것이다.

쪽방촌
지킴이

사람은 밥만 먹고 살 수 없다는 것이 김 원로 신부의 지론이다. 사람이 가장 참기 힘든 것은 외로움이고, 스스로가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받아야 한다.

김 원로 신부는 “나도 외로울 때가 있고, 소외감을 느낀 적도 있다. 이게 쌓이면 병이 된다. 그래서 토마스의 집에 식사하러 온 사람들에게 ‘우리 님’이라고 부른다. 여기 와서 밥 먹는다고 무시하면 안 된다. 높여서 부르면 존중받는 것을 느끼니까 많이 오는 것 아닐까”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문화는 김 원로 신부가 교도소 신부로 있었을 때의 경험을 살려서 만든 것이다. 당시 영등포교도소에는 70세가 넘은 할아버지 수감자가 있었다. 교도소에서는 나이가 많다고 해서 대접해주는 문화가 없다. 오히려 약자이기 때문에 함부로 대한다.

다른 수감자들이 이 70대 수감자를 ‘이 새끼, 저 새끼’라고 하면서 함부로 불렀다. 그러나 김 원로 신부는 미사에 참석했던 이 70대 수감자에게 큰 목소리로 “젊은 오빠, 어디 계십니까!”하고 불렀다. 70대 수감자는 손을 번쩍 들고 앞으로 나왔다.

김 원로 신부는 그를 ‘젊은 오빠’라고 부르면서 챙겨줬다. 다른 사람들도 챙겼지만, 선물을 주더라도 먼저 주는 식이었다. 이때부터 교도소 안에서 70대 수감자의 별명이 ‘젊은 오빠’로 바뀌었다. 이 수감자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함부로 부르던 명칭도 사라졌다.

김 원로 신부는 “사람을 존중하는 언어를 찾아야 한다. 수감자들은 절도범이 많았는데 강도, 강간, 살인미수는 기본이었다. 그래도 존중받으면 사람은 바뀔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렇다고 토마스의 집에 독거노인들만 오는 것은 아니다. 노인들이 많이 오는 편이지만, 젊은 사람도 많이 온다. 초반에는 대부분이 남성이었다면 지금은 여성들도 찾아온다. 이곳에서 함께 식사하면 개인이 아닌 ‘우리’가 된 것을 느낀다는 것이 김 원로 신부의 말이다.

대부분
노인들

현재 토마스의 집은 외국서 자원봉사자가 올 정도로 입소문이 났다. 외국서 한국으로 정기적으로 봉사활동을 하러 오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토마스의 집에서 식사했던 사람들이 김 원로 신부에게 인사하러 오기도 한다. 밥을 다 먹고 난 뒤 조용히 “신부님, 잘 먹었다” “나중에 제가 복직하게 되면 꼭 이 은혜를 갚겠다” 등의 인사를 하며 떠난다.

직접 만든 수세미를 기부하기도 하고, 자신이 파는 물건이 남으면 쓰라고 가져오기도 했다.

이럴 때마다 김 원로 신부는 “결국 사람은 정에 굶주리면 가장 힘든 것인데, 이곳에서 사람과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같이 식사를 하면서 정을 느끼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 신앙을 실천하는 것이고, 주님은 나에게 가까이 있는 이웃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했다”고 웃으며 말했다.


다행히도 지금은 토마스의 집 외에 다른 무료 급식소들이 생겨서, 이제는 이곳이 아니더라도 밥을 굶지 않아도 된다. 그렇지만 김 원로 신부는 봉사활동을 끝낼 생각이 없다.

“언제까지 봉사를 이어나갈 생각이시냐”는 질문에 김 원로 신부는 “글쎄, 그만두라고 할 때까지 할 생각이다. 만약 내가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이 하면 할 수는 있겠지만 지금은 내가 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나중에는 한국에 토마스의 집 같은 무료 급식소가 아예 없어져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사회가 발전한 것이니까”라고 답했다.

김 원로 신부와 토마스의 집 외에도, 현재 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다. 특히 젊은 층의 극단적 선택에 대한 걱정이 컸다. 그러면서 해당 문제 역시 소외감을 느끼는 것을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원로 신부는 “극단적 선택이나 마약 같은 정신병은 소외감을 느끼는 것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우울증을 겪는 사람 중에는 청년이 많다. 이것도 결국 사랑이 배제된 사회라서 그렇다”고 지적했다.

이들이 공부를 얼마나 많이 했는지, 사업 및 삶의 도전 여부는 별개의 문제다. 원했던 공부만 했더라도 그대로 살 수 있는 사람도 있는 데 반해, 돈을 들인 것에 비해 자기 자리를 잡는 사람이 드물 수도 있다. 결국 청년들이 사회에 나가 설 자리가 많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가난하고 소외된 행려자 지원
외국서 자원봉사자가 올 정도

김 원로 신부는 “청년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 설 자리가 없으니 계속 불안해지고 더 우울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사람들을 상담하면 대부분 우울증이 있다. 소화가 안 되고, 답답해하다가 호흡까지 안 되는 사람이 많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나마 이 문제를 해결할 수있는 방법은 서로 대화를 하는 것인데, 이 방법이 잘못되면 안 된다.

김 원로 신부는 “종교가 도움을 준다. 자기를 마음껏 드러내는 생활을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그러니 점점 더 외골수가 되고 대인기피증도 생긴다. 상담하러 오면서도 ‘너 지금 나를 감시하러 왔지’라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편하고 좋은 마음으로 대화하기 힘든 것은 이 시대가 병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중 하나가 종교를 갖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꼭 성당을 강요하지 않았다.

김 원로 신부는 “마음을 열어놓고 대화할 수 있는 게 종교다. 어느 종교든 상관없다. 불자는 불자대로, 예수님 믿는 사람은 예수님 믿는대로 가는 것”이라며 “종교관 속에서 자신이 편안해지고, 스스로가 표현할 수 있는 것을 표현하는 게 좋다. 결국 사랑은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신념을 전했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면서 편안한 대화는 쉽지 않다. 고부 갈등, 상사-직원 간의 갈등, 부모-자식 간 등의 갈등이 난무하는 탓이다. 

이는 모두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갖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만날 때 자신이 원하는 것보다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해주고 들어주고, 그렇게 할 수 없다면 그냥 조용히 들어주는 미덕이 필요하다.

김 원로 신부는 “자신의 마음을 여는 것은 정말 쉬운 것이 아니다. 내려놓는 것은 더더욱 그렇다. 말은 쉽지 누구나 청산유수같이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실제로 행동으로 하는 것은 어렵다. 자존심이 깎인다는 생각이 들고, 그러니 지금 시대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종교의 힘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그렇다고 모든 종교가 옳다고 볼 순 없다. 끊임없이 이슈되는 종교 내 성 문제 역시도 그의 고민거리 중 하나였다. 성은 축복이지만, 이를 남용하는 것이 문제가 되고, 결국 제대로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특히 기성 종교인들이 이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잘하면 이런 문제도 없을 텐데, 문제를 발생시키는 것은 결국 종교인들이다.

사창가서
살던 수녀님

김 원로 신부는 “그렇다고 모든 종교인이 잘못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인근에 있는 사창가서 살던 외국 수녀님도 있었는데 본국으로 돌아가셨다”며 “처음엔 사창가 사람들이 수녀님에게 ‘저 X이 우리 잡아먹으려고 들어왔다’고 욕하며 삿대질했는데, 오랜 시간 동안 생활하면서 아이들을 키워줬다”고 말했다.

그는 “밥도 나눠주고, 나도 근처에 있으니 식사를 나눠주기도 했다. 이렇게 좋은 일을 하시는 분들도 있다. 이런 분들 덕분에 사회가 좋아지는 것 아닐까”라고 마무리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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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