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진 모자’ 쪼개지는 한미약품 막전막후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4.01.25 14:43:15
  • 호수 146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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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어떻게 키웠는데···골육상쟁 서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OCI그룹과 한미약품 간 통합 과정이 오너가 장남의 반발로 떠들썩하다. 한미약품 창업주의 장남 임종윤 한미약품 사장은 양 그룹의 통합 발표를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 반대하는 가처분 신청을 냈다. 통합을 주도한 그의 모친 송영숙 회장과의 갈등은 어떤 결말을 낳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제약업계에 따르면 지난 12일 한미약품그룹과 OCI그룹은 각각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 지분 27.0%와 OCI홀딩스 지분 10.4%를 맞교환하는 내용의 계약을 체결했다. 한미사이언스 지분 27.0%를 OCI홀딩스가 7703억원을 들여 취득하고, OCI홀딩스 지분 10.4%는 임주현 사장 등 한미사이언스 주요 주주가 취득하는 방식으로 양사가 통합을 결정한 것이다. 

임 창업주
떠나자마자…

계약이 마무리되면 OCI홀딩스는 한미사이언스의 최대주주이자 통합 지주사가 된다. 한미사이언스는 제약바이오 자회사를 거느리는 중간 지주사가 된다.

한미약품 오너 일가는 상속세를 마련하기 위해 통합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송영숙 한미그룹 회장과 임주현 한미약품 사장 등이 내야 할 상속세는 약 2000억원으로 추산된다. 한미약품은 상속세 마련을 위해 OCI에 지분을 매각하면서도 임주현 사장의 경영권 유지를 조건으로 내건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6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2020년 임성기 한미약품 창업주가 별세하면서 아내 송영숙과 세 자녀(2남1녀) 등 오너 일가는 5400억원의 상속세를 안게 됐다. 송 회장과 임종윤 한미사이언스 사장, 임주현 한미사이언스 전략기획실장, 임종훈 한미약품 사장은 지난 2021년 서울 잠실세무서에 상속세 납부를 조건으로 총 12.29%의 한미사이언스 지분을 담보로 잡혔다. 


이들은 3년간 분할 납부를 해왔지만, 재원 마련에 어려움을 겪었다. 지난해 한미약품은 상속세 자금 마련을 위해 MG새마을금고가 주요 출자자인 사모 펀드 ‘라데팡스 파트너스(이하 라데팡스)’에 한미사이언스 지분 11.8%를 3200억원에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지난해 새마을금고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 여파로 한미사이언스 지분을 매입할 자금을 투자받지 못하면서 한미약품은 지분매각 대상을 다시 물색했다.

라데팡스는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 사후 배경태 전 삼성전자 부사장을 한미약품에 부회장으로 추천했을 만큼 한미약품과 신뢰관계를 유지한 운용사다. 지분매입이 불발로 돌아갔으나 지분매각 자문 역할은 유지했고, 이 과정서 OCI를 한미약품에 소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불안한 장남···가처분신청까지
이종 결합 실패?···경영권 분쟁

당시 라데팡스는 임주현 사장의 경영에도 힘을 실어줬다. 이번 통합이 한미그룹의 ‘집안싸움’으로 번지게 된 이유다. 통합 후 OCI홀딩스의 한미사이언스 지분은 27.03%가 될 예정이지만, 장남 임종윤 한미약품 사장과 차남 임종훈 한미정밀화학 사장의 지분을 합하면 17.69%에 불과하다. 

임종윤 사장은 통합에 반대한다며 법적 대응에 나섰다. 그는 지난 17일 한미약품과 OCI의 통합중지가처분신청을 냈다. 남동생 임종훈 한미약품 사장도 한배를 탄 형국이다. 임종윤 사장은 이날 개인회사인 코리그룹의 엑스(옛 트위터) 계정을 통해 “한미사이언스의 임종윤 및 임종훈은 공동으로 신주발행 금지 가처분신청서를 금일 수원지방법원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임종윤 사장이 ‘신주발행 금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하는 과정서 차남 임종훈 한미정밀화학 사장이 형과 합류한 것은 예상 밖이라는 분위기다. 평소 송 회장 등과 사이가 원만했던 임종훈 사장은 한미약품의 우호 세력으로 평가됐다. 임종훈 사장이 임종윤 사장 편에 서면서 예상은 빗나갔다.


앞서 한미약품 측은 가처분신청 예정일이 지난 16일서 하루 연기된 것을 보며 임종윤 사장 측이 실제 행동에는 옮기지 못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임종훈 사장이 나서면서 판도는 바뀌었다.

임종윤 사장 측은 지난 16일 오후 가처분신청을 하려고 했다. 가처분신청은 임종윤 사장 측이 주도하되 임종훈 사장이 검토하는 방식이었다. 임종훈 사장은 당일까지도 고심을 거듭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17일에도 검토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면서 신청은 오후 늦은 17시께 이뤄졌다.

임종훈 사장의 결정이 늦춰지자, 임종윤 사장 측은 단독으로 가처분신청을 제출하는 방안까지 고려했다. 한미약품 오너가 경영권 분쟁은 앞으로 장기화될 전망이다. 조기 종결될 수 있던 순간 임종윤과 임종훈 사장이 전격 합류하면서 장·차남 대 모녀 구도가 완성됐다.

상속세 
선택지

임종윤 사장 측 가처분신청에 대해 한미약품 관계자는 지난 18일 <일요시사>와 통화서 “요건상 문제가 없어 가처분 인용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게 우리 측 법률검토 사항”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양 그룹사가 합의한 동반, 상생 공동 경영의 취지가 잘 반영될 수 있도록 원활한 통합 절차 진행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미사이언스 내 위치와 지분구조 등으로 볼 때 임종윤 사장이 이번 결정을 뒤집기 어렵다는 분석도 있다. 한미약품-OCI 통합 발표가 임종윤 사장의 입지를 불안케 했던 것일까? 2000년대 초만 해도 임종윤 사장은 한미약품의 유력 후계자였다. 

앞서 그는 매체와 인터뷰서 “내가 별도로 경영하는 코리그룹과 국내 기업을 통해 증권가 자금조달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는 자신의 입지를 공고히 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과거 임종윤 사장은 지난 2004년부터 북경한미약품 부총경리(부사장), 총경리(사장), 동사장(회장) 등을 거치며 입지를 다져왔다.

당시 북경한미약품의 연 매출이 600억원대로 성장하면서 임 사장의 경영 성과는 돋보였다. 이어 2009년 한미약품과 지주사 한미사이언스가 나뉘기 전에 한미약품의 등기임원(사장)으로 선임됐다. 분할 이후에는 사내이사에서 물러난 아버지 임성기 회장 대신 지주사 한미사이언스에 단독대표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다 2020년 임성기 회장이 별세하면서부터 찬밥 신세에 놓였다. 모친 송 회장이 임 전 회장의 자리를 이어받으면서 임종윤 사장의 동생 2명을 모두 한미약품 사장으로 승진시킨 것이다. 2021년 한미약품그룹은 임종훈 사장의 동생 임주현·임종훈 남매의 한미약품 사장 선임을 발표했다.

후계구도가 송 회장이 지시한 ‘삼남매 검증 후 결정’으로 바뀐 것도 이때부터다. 이후 임종윤 사장의 경영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임씨 집안 내에 형성됐다고 전해진다. 임종윤 사장은 한미사이언스 대표 자리서 물러났고 이사회서도 제외됐다.

OCI 집안과
가깝게 지내

모자간 갈등이 본격화된 계기는 임종윤 사장이 중국서 벌인 신사업의 부진과 이에 대한 모친의 불만이 누적된 결과라고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대표적으로 2008년 홍콩 소재에 한미사이언스 계열사 오브맘컴퍼니와 임종윤 사장 개인회사인 코리그룹 계열사 코리포항의 실패다.


임종윤 사장은 오브맘그룹을 통해 프리미엄 산후조리원 사업에 뛰어들었다. 국내 산후조리원을 사들이기 위해 SG프라이빗에쿼티·플루터스에쿼티파트너스서 공동 조성하는 200억원대 사모펀드에 개인자금을 투자하기도 했다.

그러나 오브맘컴퍼니의 한국 법인인 오브맘코리아컴퍼니는 매년 수십억원대의 적자를 냈다. 오브맘코리아컴퍼니는 2022년말 기준 자본총계가 마이너스(-) 34억원으로 완전자본잠식 상태다. 코리포항의 2021년 기준 연 매출은 4700만원에 불과하다.

부진한 사업 결과에도 임종윤 사장이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분석이 많다. 미국 보스턴칼리지 생화학과를 졸업한 그는 버클리음대 재즈작곡분야 석사과정을 마쳤다. 업계에선 “임종윤 사장은 한미사이언스 대표 시절에도 자유로운 행동으로 주변을 당황시켰다”고 했다.

그의 독특한 행보는 한미약품 경영에 관여해온 ‘여장부’ 송 회장의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송 회장은 임 전 회장 생전에 가현문화재단 이사장, 한미사진미술관장 등의 자리서 문화사업을 이끌면서도 경영 일정 부분에 참여해왔다.

송 회장이 북경한미약품의 어린이 유산균정장제 ‘마미아이’를 직접 작명하기도 했고, 북경한미가 성장하는 과정서 중국 진출에 대해 조언하기도 했다는 전언이다. 직접 경영을 맡게 된 2020년부터는 안팎서 ‘저돌적으로 경영한다’는 평가가 자자했다. 이번 OCI그룹과의 통합 역시 송 회장이었기에 가능한 결정이었다는 후문.

여장부 엄마-음대 출신 아들
갑자기 사이 벌어진 까닭은?


임종윤 사장도 송 회장이 자신을 배제했다고 했다. 최근 한 매체와의 인터뷰서 “2020년부터 한미약품 그룹서 밀실 경영이 시작됐고 그때부터 경영권 확보를 위한 준비를 마쳤다”고 언급했다. 현재 임종윤 사장은 한미약품 사내이사이지만 대표이사가 아닌 ‘미래전략 담당’이다. 내부에선 그가 사내에 역할이 없는 상징적인 자리에 있다고 전했다.

업계에선 한미 오너 일가가 안정적인 경영권 방어를 위해 OCI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석했다. 다만, OCI가 산업재료용 화학제품 전문기업으로 제약업과 접점이 없는 점에 대해서는 지분을 인수할 상대 기업의 업종은 크게 고려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업계 관계자는 “한미약품은 타 국내 제약사와 비교해 협업 없이 독자적으로 사업을 해왔다”며 “한미약품이 헬스케어나 제약·바이오사업 경험이 없는 대기업 그룹사와 협업을 결정한 것은 이례적이다. 아무래도 약국부터 시작한 임성기 전 회장과는 다른 송영숙 회장의 리더십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미약품이 OCI를 통합 대상으로 수용한 배경에는 송 회장과 이우현 OCI 회장의 모친인 김경자 송암문화재단 이사장의 친분이 깔려 있다고 한다. 송 회장은 OCI를 제안받고 “점잖고 믿을 수 있는 집안”이라며 통합 추진을 승인했다고 전해졌다.

송 회장과 김 이사장은 문화활동과 사회공헌활동을 함께하면서 가깝게 지낸 사이다. 송 회장은 국내서 유일한 사진미술관을 운영할 만큼 국내 예술사진계를 지원하고 있다. 이 회장이 아마추어 사진작가인 점도 신뢰 형성에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OCI 측에서는 이 회장의 OCI홀딩스 지분율이 6.55%에 불과하고, 작은아버지 두 명의 지분이 15%에 육박하는 점도 한미약품과의 지분 일부 교환을 결정한 요인으로 해석된다. 양사가 상부상조할 수밖에 없는 위기의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양사가 이번 지분거래를 ‘합병’이라는 경영 용어 대신 ‘통합’이라고 표현한 배경이기도 하다.

한편, 제약업계에서는 ‘이종결합’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나온다. OCI는 제약·바이오산업 진출을 위해 2022년 부광약품을 인수했으나 인수 후 적자를 면치 못하는 상황이다. 부광약품 내부에서는 OCI가 제약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지 않은 상태서 영업망 축소 등 부광약품 조직개편과 건강기능식품 진출 등을 추진해 회사의 경쟁력을 약화시켰다고 지적했다.

한판 붙은 
오너 일가

또, 차세대 승계를 진행하지 못한 다른 제약사들이 향후 한미약품과 유사한 방식으로 지분을 이종 기업에 파는 일이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전문가들은 OCI가 이번 통합 발표 내용대로 한미약품의 경영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미약품의 신약 연구개발(R&D) 능력 등을 유지할 수 있다고 봤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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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윤석열정부 당시 ‘정적 죽이기’로 가장 많은 피해를 봤던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3일 당선됐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내내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공약으로 내놨다. 이 대통령이 당선되자 검찰 내부는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가 나오고 있다. 다만 법조계와 학계에서는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신중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하면서 검찰 내에는 긴장감이 돌고 있다. 이 대통령이 후보 시절까지 포함해 취임 전 법원·검찰과 여러 차례 대립각을 세웠고 선거 과정서 사법개혁과 검찰개혁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만큼 빠른 시일 내에 개혁에 착수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수차례 대립각 이재명정부서 문재인정부 시절 ‘미완’으로 끝난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 완성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이 대통령은 선거 기간부터 “검찰개혁을 완성하겠다”며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고 수사기관의 전문성을 확보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는 문정부 때부터 줄곧 추진해 온 검찰개혁 방안과 유사하다. 문정부 당시 부패·경제 범죄 등에 대한 수사권만을 검찰에 남겨두고 다른 범죄에 대한 수사권은 경찰로 옮겼다. 하지만 윤정부 들어 이른바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복구)’ 시행령과 수사준칙 개정 등으로 여타 범죄에 대한 수사권도 일부 복구됐다. 이 대통령의 수사와 기소 분리는 문정부와는 궤를 달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청을 기소와 공소 유지를 담당하는 ‘기소청’으로 전환하고 중대범죄수사청과 같은 새로운 수사기관을 신설한다는 것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구상이다. 이를 통해 검찰의 기소권 남용에 대한 사법 통제가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검사를 일반 공무원처럼 자체 징계만으로도 파면할 수 있도록 하는 ‘검사 징계 제도’까지 도입한다는 구상이다. 또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 도입 ▲대통령령인 수사 준칙 상향 입법화 ▲피의사실공표죄 강화 ▲수사기관의 증거 조작 등에 대한 처벌 강화 및 공소시효 특례 규정 내용이 담긴 수사 절차법도 제정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이 대통령은 개헌을 통해 검찰총장 임명 시 국회 동의가 필요하도록 하고, 검사의 영장 청구권 독점도 폐지하겠다고 공약했다. 사실상 무소불위였던 검찰 권력을 수술대에 올리겠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한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현재 12개 혐의로 5건의 재판을 받고 있는데 이 가운데 상당수는 지난 정부서 검찰이 수사·기소한 것”이라며 “이 대통령으로서는 검찰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사 출신인 다른 법조인은 “앞서 민주당의 검사 탄핵이 모두 헌법재판소서 기각 결정을 받았는데, 이 대통령 공약대로 기소권 남용 통제, 검사 징계 파면 등이 도입된다면 검찰에 대한 견제가 매우 강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공수처와 국가수사본부에 힘을 실어준 뒤 두 기관을 적극 활용해 이른바 ‘적폐 청산’을 하려는 것 아니냐”고 전망했다. 수사청과 기소·공소청 분리 원칙 줄사표 신호탄…내부는 ‘초긴장’ 검찰 내부에서는 착잡한 기류가 팽배하다. 앞서 민주당이 추진했던 검사 탄핵이나 특활비 전액 삭감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도 높은 개혁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대검찰청 한 관계자는 “검찰의 운명은 민주당에 달려있는 것 아니겠느냐”며 “이재명정부와 여당이 된 민주당이 몰아칠 텐데 검찰의 협상력은 사실상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도 “개혁을 하든, 무엇을 하든 담담하게 운명을 받아들여야지 별 수 있냐”며 “다들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대개 검찰을 지원하는 이유가 국가에 대한 사명감 때문인데, 검찰개혁에 포함된 검사징계법에 파면을 명문화하게 되면 리스크를 감수하고 공익을 위해 일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며 “4~5명의 평검사가 각 부서에 있어야 수사가 원활하게 진행되는데 지금도 2~3명의 평검사만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검찰개혁 이후에는 부장 검사 밑에 직접 수사를 할 평검사가 전혀 없을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고 토로했다. 특수부 검사들 사이에서는 인사보복에 대한 우려가 강하게 나오고 있다. 특히 이 대통령을 수사했던 특수부 검사들은 ‘검찰개혁 이전에 인사보복을 당할 것’이라고 사석에 이야기하고 다닌다고 한다. 반면, 일선 형사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들은 “우리에겐 직접적인 피해는 없을 것”이라며 선을 긋는 분위기다. 다만, 형사부·특수부 검사들이 공감대를 이루며 우려하는 부분도 있다. 과거 문정부 시절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의 권한이 비대해진 바 있는데, 이번 검찰개혁으로 경찰이 영장 청구권을 확보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검찰 단계서 경찰의 영장청구를 판단하지 않아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분석이다. 검찰 내부서 특수부와 형사부가 갈리는 상황에 이들을 모을 구심점도 없다. 과거 문정서 검찰개혁이 추진될 때 검사들이 단일대오로 뭉쳐 저항했던 것처럼 먼저 움직일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결국 수사로 검찰의 존재 의의를 보여야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도이치 주가조작 의혹 ▲명태균·건진법사 선거개입 의혹 등 굵직한 주요 사건 관련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에 부의돼있다. 특검이 시작되면 검찰의 역할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새 정부의 법무부 장관 인선 직후 대규모 인사도 예상된다. 당장 고검장·지검장 물갈이에 이 대통령 관련 사건을 맡았던 검사들의 줄퇴사도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 지난달 20일 사의를 표했던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의 사직서는 지난 3일 수리됐다. 검 운명은 민주당에 이 지검장은 수원지검 성남지청장 재직 당시엔 성남FC 및 선거법 위반 등으로 이 대통령을 기소했다. 이미 2022년부터 업무 과부하 등을 이유로 매년 100명 이상의 검사들이 퇴직했는데 이번엔 이보다 더 큰 규모로 검찰 대탈출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 윤정부가 들어섰던 해인 2022년엔 직전 해(79명)보다 2배쯤 많은 검사 142명이 퇴직한 바 있다. 다만 퇴사를 희망하는 검사가 많더라도 대형 로펌에 이들을 다 수용할 수 있는 자리가 없어 실제 퇴사 규모는 예상보다 적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검찰개혁 신중론도 나오고 있다. 검찰 내부에선 피할 수 없는 문제지만 속도전이 아닌 과거 수사권 조정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반추와 함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차원의 정책 설계가 우선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문정부 시절 검찰개혁으로 인한 수사권 조정 등으로 인한 영향을 복기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한 검사장급 간부는 “다 예상했던 것들로 놀랍진 않지만 수사가 효율적으로 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했으면 좋겠다”며 “과거 수사권 조정으로 대표되는 검찰개혁이 왜 실패했다고 평가를 받겠나? 수사권 조정 등 앞선 검찰개혁에 대해 복기한 다음 추진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 차장검사는 “수사기관 간 견제는 경쟁으로 이어진다”며 “수사는 합리적이고 치밀하게 해야 하는데 다른 기관을 의식해 무리하게 하다 보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우려했다. 한 부장검사는 “구조적인 문제가 없도록 꼼꼼히 설계해야 한다”며 “수사권, 수사력의 문제도 있지만 법 자체가 구조적으로 난점이 있다는 것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형사소송법 등 근간이 되는 법에 속도전으로 나선다면 이번 비상계엄 사태 수사 때처럼 향후 여러 문제가 드러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부장검사도 “수사기관끼리 경쟁하게 되면 결국 윤 전 대통령 내란 수사처처럼 어느 사건이든 번번이 망가질 것”이라며 “검찰 등 수사기관, 학계, 정계 등이 참여하는 공론의 장에서 시간을 갖고 충분히 논의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 이재명정부는 검찰개혁과 더불어 수사기관 개혁과 사법개혁도 같이 추진하려고 준비 중이다. 이 대통령은 검찰의 권한은 축소하면서 경찰과 공수처의 권한은 더욱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펼쳤다. 민주당은 공수처 검사 정원을 현행 25명에서 최대 300명까지 확대하고, 고위 공직자의 모든 범죄에 대해 영장 청구 및 기소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꼼꼼히 설계해야 법조계 안팎에서는 성급한 수사기관 확대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공수처가 2021년 출범 이후 뚜렷한 수사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12·3 비상계엄 사건서도 윤석열 전 대통령 대면조사에 실패하는 등 수사력 한계를 노출했다. 게다가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수사에서 검찰과 경찰, 공수처가 각자 수사권을 주장하며 혼선을 빚기도 했다. 이창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경 수사권이 조정된 지 5년이 지난 시점서 경찰 국가수사본부, 공수처, 검찰의 수사 성과를 냉정히 평가한 뒤 수사권 분리를 논의해도 늦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이 가장 먼저 개혁할 것으로 보이는 것은 사법개혁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달 1일,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에 대한 파기환송을 결정하고, 다음날에 파기환송심 첫 공판기일을 그달 15일로 지정했다. 그러나 공판기일을 지정한 지 5일 만에 다시 공판기일을 대선 이후인 오는 18일로 변경했다. 연기 사유는 “대통령 후보인 피고인에게 균등한 선거운동의 기회를 보장하고, 재판의 공정성 논란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일련의 과정 이후 민주당 내에서는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사법부 개혁이 대선 국면의 핵심 의제 중 하나로 떠올랐다. 민주당 의원들은 대법관 증원 법안을 연달아 발의했고, 박범계 의원이 법조인이 아닌 사람도 대법관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가 논란 끝에 철회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발표한 공약집서 ‘내란 극복과 민주주의 회복’의 하위 범주로 “사법개혁을 완수하겠다”며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여러 정책을 공약했다. 대법원 등 사법기관도 엎는다 “신중하게 진행해야” 의견도 공약집에는 실제 증원 규모가 명시되지 않았으나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개정안은 대법관 수를 30명으로 늘리는 방안을 담고 있다. 대법관 수를 100명으로 늘리는 법안도 발의됐으나 논란이 일자 민주당은 지난달 26일 철회했다. 대법관이 증원되면 현재 1인당 연평균 약 4000건을 처리해야 하는 대법관들의 업무 부담이 줄면서 ‘재판 지연’의 주된 원인으로 꼽히는 상고심 적체 현상은 상당수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를 통해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고 사회적 갈등에 해답을 제시하는 최고 법원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30명이 모두 모여 깊이 있는 합의에 도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대법관 증원에 따라 이 대통령 임기 중 총원의 절반이 넘는 대법관이 대통령 임명을 받아 합류하면 사법부 구성이 편향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원의 재판에 관한 헌법소원 심판을 허용하는 ‘재판 소원’이 도입될지도 관심사다. 민주당 의원들이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재판소원이 허용되면 법원이 법률을 헌법에 어긋나게 해석·적용하거나, 재판의 절차적 측면서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됐다고 판단된 경우 헌재가 결정으로 위헌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헌재가 법원의 재판에 관여하는 것은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정한 헌법 101조에 반하고 불필요한 법적 분쟁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로 법안에 반대해 왔다. 법조계의 의견은 엇갈린다. 재판소원 추진 논의가 이 대통령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급물살을 탔다는 점에서 대법원을 견제하려는 시도로 보는 시각도 있다. 사실상의 ‘4심제’가 돼 최고법원으로서 대법원의 기능이 약화하고 법적 안정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반면 헌법기관 간 상호 견제를 강화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할 안전망을 두텁게 만든다는 점에서 도입을 긍정하는 견해도 있다. 실제로 법조계에서는 오랜 기간 재판소원 도입의 필요성에 관한 논의가 이어져 왔다. 헌재 역시 최근 국회에 “국민의 충실한 기본권 보호를 위해 개정안의 취지에 공감한다”는 찬성 의견을 냈다. 이밖에 판결문 공개 범위 확대, 공개변론 중계 의무화 추진, 법관평가위원회 설치 등 국민의 사법 접근성을 제고하는 정책 등도 이 대통령 임기 중 추진될 전망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사법개혁 문제는 최우선 문제에 속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당시 “제도 개혁이나 특히 사법·경찰·검찰개혁은 중요하다. 수사권 조정이든 다 중요하다”면서도 “여기에 주력해서 힘을 뺄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덧붙였다. 민생이 우선 일단 후순위 이후 지난 6월4일 취임사에선 “먼저 민생 회복과 경제 살리기부터 시작하겠다. 불황과 일전을 치르는 각오로 비상경제대응TF를 바로 가동하겠다”며 “국가 재정을 마중물로 삼아 경제의 선순환을 되살리겠다”고 강조했다. 검찰 및 사법개혁이 중요하지만 민생 회복이 중요하다고 재차 강조한 셈이다. 이로 인해 검찰·사법개혁은 후순위로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