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휴민트, 버려서는 안 된다

지난해 4월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방문을 앞둔 시점에 <뉴욕타임스>는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 등을 담은 미국 정부의 기밀문서가 대량 유출됐다고 보도했다.

유출된 문서 중엔 우리나라 국가안보실장과 외교비서관이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건에 대해 나눈 대화 내용도 포함돼있었다. 

당시 대통령실은 전파장비나 통신망을 활용한 시긴트 방식이 아닌 사람의 접촉을 활용한 휴민트 방식으로 정보가 유출됐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11월 국회 운영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모 의원이 도청 논란과 관련해 시민단체가 미국 측 당국자들을 고발한 사건에 대한 경찰의 각하 결정문을 <서울신문>에 공개하면서 시긴트가 아닌 휴민트에 의해 유출됐다는 게 밝혀졌다.  

현대는 수많은 새로운 정보가 쏟아지고 그중 핵심 정보가 성패를 가르는 정보시대인 만큼, 특히 국가는 국가의 안위를 위해 은밀하게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

국가가 은밀하게 정보를 수집하는 방법에는 휴민트(Humint), 시긴트(Sigint), 이민트(Imint) 3가지가 있다.


휴민트는 인간 정보수집(Human Intelligence)의 약어로, 인맥을 활용해 정보를 수집하는 활동을 의미한다. 주로 국정원, 경찰 등에서 활용되며 국가 간 정보를 얻을 땐 대상 국가의 정부나 군사기관에 잠입해 정보를 획득한다.

시긴트는 신호 정보수집(Signal Intelligence)의 약어로, 통신망이나 전파를 통해 정보를 수집하며, 최근 IT가 발달하면서 많이 활용되고 있다.

이민트는 이미지 정보수집(Imagery Intelligence)의 약어로 위성이나 드론 등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며, 주로 대상 국가의 군사시설, 지형 등에 대한 정보를 획득하는 방식이다.

사실 시긴트나 이민트는 위험하지 않다. 그러나 휴민트는 대상 국가나 조직에 침투해야 하니 항상 위험에 노출돼있다. 그래서 국가는 휴민트들의 미래나 노후를 보장해야 한다.  

필자는 1980년대 중반 모 그룹 입사 2년 차 때 방글라데시 주재원으로 발령받았다. 당시 방글라데시는 Non-Quota 지역이었기에 한국서 방글라데시로 원부자재를 보내고 현지서 완성품을 생산해 전 세계로 수출하는 3자무역의 전초기지였다.  

방글라데시로 떠나기 전날 중역이 저녁식사를 하자고 해서 여의도에 있는 고급 식당에 갔더니 사장이 와 있었고, 그는 중역을 나가라고 하더니 필자에게 Secret Mission(사장과 단 둘만 아는)을 줬다.

미션은 매일 지사 업무 외에 방글라데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의 모든 상황을 매일 텔렉스(당시 팩스가 없었음)로 직접 보고하라는 것이었다. 


이유는 당시 일본 정부가 외국에 나가 있는 주재원으로부터 정보를 수집해 정책에 반영해 1등 국가를 꿈꾸고 있으니, 우리 그룹도 세계적인 1등 그룹이 되기 위해서라는 것이었다. 

이후 방글라데시 주재원으로 근무하면서 필자는 방글라데시 정치인, 경제인, 정보요원 등을 계속 만나면서 고급정보를 수집해 보고했다. 소설도 번역해서 보냈고, 방글라데시 최고 대학인 다카 대학 출신들과도 인맥을 만들며 방글라데시의 모든 정보를 수집해 지사 직원들도 모르게 본사 사장에게만 직보(직접 보고)했다.

그런데 방글라데시서 근무한 지 2년 쯤 됐을 때 여의도 본사로부터 한 달 안에 방글라데시 지사를 철수하라는 전문을 받게 됐다.

필자는 2년 동안 방글라데시의 모든 상황, 특히 국민성과 비전을 봤기에 본사에 지금 철수하면 안 된다고 강력히 철수 거부 의사를 보고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 진출을 위해 방글라데시를 포기하기로 사장 결재가 났다는 본사의 답장만 왔다.  

그후 방글라데시 지사를 정리하고 귀국했을 때 마중 나온 직원과 대화하면서 필자가 사장의 개인적인 욕망에 의해 버려지는 카드로 전락했다는 사실을 알게 돼 바로 사직서를 내고 회사를 나왔다.

결국 필자는 방글라데시서 2년 동안 산업 휴민트로 활동했고 회사로부터 버려지는 카드였다는 자괴감을 오랫동안 잊을 수 없었다.

국가 휴민트건 산업 휴민트건 버려지는 카드여선 안 된다. 국가나 회사를 위한 카드가 아닌 소집단이나 개인의 유익을 위해 휴민트가 헌신짝처럼 버려져서도 안 된다.   

지난 주말 아내와 집에서 영화 <공작>을 봤다.

북한 핵을 막기 위해 사업가로 위장해 북한에 침투해 광고사업과 골동품 사업을 발굴하며 최선을 다한 국가 휴민트 흑금성(황정민)이 국가도 아닌 정당의 유익을 위해 버려지는 카드로 전락하는 것을 보면서, 방글라데시서 2년 동안 산업 휴민트로 활동했던 모습을 회상해 봤다.

미국처럼 휴민트를 철저히 보호하고 보상해주고 절대로 버리지 않겠다는 믿음을 국가나 기업이 심어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가나 기업의 장래는 밝을 수 없고, 국가나 기업이 휴민트를 버리듯이 휴민트도 언젠간 국가나 기업을 버리고 말 것이다.

미국은 휴민트가 수집한 정보로 만든 기밀문서를 유출한 자는 엄하게 처벌하되, 정보를 수집한 휴민트는 절대 처벌하지 않고 끝까지 보호한다.


최근 4월 총선을 앞두고 정당 휴민트가 많이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시긴트보단 많지 않지만, 그래도 상대 정당의 핵심 정보를 수집하는 일등공신은 휴민트다.

그런데 정당 휴민트가 들통 나거나 선거가 끝나면 헌신짝처럼 버려지는 게 비일비재하다. 정당 휴민트가 자살하거나 감옥에 가는 사례도 많다. 

국가 휴민트와 산업 휴민트뿐만 아니라, 정당 휴민트도 보호받아야 하고, 그외 어떤 휴민트도 오더를 내린 국가나 조직으로부터 철저히 보호받아야 한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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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국방부, 내란 문건 ‘대청소 프로젝트’

[단독] 국방부, 내란 문건 ‘대청소 프로젝트’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와 관련된 국방부 문건이 대규모로 파쇄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 조치는 오영대 전 인사기획관의 지시로 이뤄졌다. 오 전 기획관은 검찰 특수본과 재판서 정보사와 수사2단 인사안의 문제점을 증언했던 인물이다. 자신이 비상계엄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수사에 협조한 것으로 의심되는 대목이다. “올해 초 신년맞이 대청소라면서 문서를 대량으로 파쇄했다.” <일요시사>와 접촉한 국방부 직원들의 말이다. 파쇄된 문건들은 12·3 내란 사태와 관련된 자료라고 한다. 지시자는 오영대 전 국방부 인사기획관이다. 검찰 수사에 협조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으나 실상은 다르다는 게 군 내부자들의 주장이다. 뭘 숨기나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말 취임하면서 시작한 첫 번째 군 개혁은 인사다. 신임 인사기획관에 일반 공무원 출신인 이인구 군사시설기획관을 임용한 건 안 장관이 강조해 왔던 ‘군 문민통제’와도 맞닿아 있다. 인사기획관은 본래 예비역 장성이 맡아왔다. 이 신임 기획관의 전임자였던 오 전 기획관도 예비역 준장 출신이다. 군 내부에서는 국방부에 여전히 12·3 내란 사태에 협조한 군인들이 남아 있다고 지적한다. 핵심으로 인사기획관실의 총괄과이자 인사기획관의 일정, 예산 등을 모두 관리하는 인사기획관리과가 언급된다. 다수의 국방부 관계자들은 “오 전 기획관은 물러났지만 책임져야 할 다수의 인물이 아직 자리를 보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부서의 간부들은 전부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다. 과장 김모 대령은 오 전 기획관이 대령이었을 때 소령으로 근무했고, 총괄 이모 중령은 오 전 기획관이 특전사 여단장을 역임했던 1공수여단서 중대장과 707중대장을 거쳤다. 장군인사팀장 김모 대령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수도방위사령관으로 근무했던 시절 비서실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김 전 장관과 가깝거나 육사 출신인 이들이 국방부 인사의 핵심부서인 인사기획관리과에 포진하면서 계엄 실행을 위한 보직 이동이 이뤄진 셈이다. 김 전 장관은 실제 대통령경호처장일 때부터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과 군 인사에 대해 논의했다. 직무에서 배제되지 않은 인사기획관리과 간부들은 ‘장관이 모든 책임을 오 전 기획관에게 묻는 형식으로 퇴직을 시켰으니 우리는 지시를 받아 어쩔 수 없이 한 것처럼 조용히 지내면서 정부초기 개혁의 소나기만 피하면 진급 가능’이라며 서로서로 쉬쉬하고 있다고 한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인사기획관리과 간부들은 내란 이후인 지난해 12월 중순 오 전 기획관의 지시에 따라 문건 파쇄를 계획했다. 김 전 장관이 물러난 이후 인사기획관리과장 김 대령 및 총괄인 이 중령 외에는 계획되지 않은 대면보고는 금지했고 내부 보안에 심혈을 기울였다. 인사과 간부들 계엄 실패 후 12월 계획···1월 파쇄 “지시자는 검찰 수사 응했던 오영대 전 인사기획관” 한 달여 뒤 이 중령은 모든 과에 ‘신년맞이 대청소’를 하라고 전파했다. TF 자리 배치와 오래된 문건을 정리한다며 유독 인사기획관리과만 복도로 책상을 빼고, 대량 세절이 가능한 세절실을 예약해 엄청난 양의 문서들을 파쇄했다. 여기엔 내란 핵심 파일도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 안 장관은 이와 관련해 국회에서 오 전 기획관에게 여러 차례 질문한 바 있다. 당시 오 전 기획관이 당황해하며 우물쭈물하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퍼지기도 했다. 이 중령은 동영상을 보며 웃는 직원들의 명단과 안 장관에게 제보한 인물을 색출하기 위해 탐문 활동을 벌여 오 전 기획관에게 추정해 보고했다. 이들은 모두 오 전 기획관으로부터 승진추천, 성과상여금, 각종 포상 등 인사상 불이익을 본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이 문건을 파쇄한 이유는 내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내란 당일 오후 10시가 넘은 시각임에도 퇴근하지 않고 사무실에 있던 오 전 기획관의 지시를 받은 이 중령은 각 과의 총괄 담당자들을 소집해 ‘계엄 선포가 됐는데 선제적으로 인사 관련 조치를 왜 안 하냐’ ‘합참에는 계엄사령부가, 지작사령부에는 지역계엄사령부가 곧 창설될 텐데 각 군 본부 및 지작사와 인사 지침을 협의해 계엄령 취지에 맞게 배포하라’고 강조했다. 특히 오 전 기획관은 계엄 해제 결의안이 국회 본회의 테이블을 통과했음에도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서 이 중령에게 “(계엄이) 해제되긴 했는데 다시 시행될 수도 있으니 빨리 계엄사 창설 지원을 위한 인사 조치를 완성하고 지작사 병력에 대한 휴가 지침 및 통제 등 건의 사항을 받아보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 전 기획관은 내란 직전까지 김 전 장관의 의중에 따라 군 인사를 반영했다. 최근 내란 특검팀이 군 장성급 인사 자료 확보에 나선 것도 이에 관해 들여다보기 위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검팀은 최근 국방부 장군인사팀과 육군본부 장군인사실 등을 압수수색해 해당 부서 내 인사 관련 파일 등을 확보했다. 정치권에선 지난 2023년 11월과 지난해 4월 이례적인 인사가 이뤄졌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진급에 절박한 군 인사들을 계엄 실행 세력으로 활용했단 의혹이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윤석열정부 장군 인사는 특이하고, 이례적인 경우가 유독 많았다”며 “인사를 통해 군을 장악하고, 내란을 준비했다는 의혹 관련 특검의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2·3차 계엄 대비 문건 없애” 증거 인멸 국회서 해제 불구 지작사와 인사 논의?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은 지난 2023년 11월 인사에서 소장에서 중장으로 진급했다. 박안수 전 계엄사령관은 ‘75주년 국군의 날 행사기획단장 겸 제병지휘관’ 등 한직에서 2023년 10월 육군참모총장에 발탁됐다. 지난해 4월엔 지휘부에 이어 작전본부 인사가 이어졌다. 원천희 당시 육군 소장이 4차 진급으로 합참 정보본부장으로 승진했고, 이승오 소장은 군단장을 거치지 않고 합참 작전본부장으로 진급했다. 안찬명 당시 육군22사단장은 임명 5개월 만에 합참 작전부장으로 보직을 옮겼다. 통상 사단장은 1년 반~2년가량 보직을 맡는다. 군 안팎에서 이례적이란 평가가 나왔던 이유다. 경질 위기이던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은 유임됐다. 그는 지난해 6월 정보사 군무원의 블랙요원 명단 국외 유출 사건 및 박민우 전 정보사 100여단장과의 갈등 등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당시 국방부 장관이던 신원식 전 안보실장은 지난해 8월 국회에서 “후속 조치를 강하게 할 생각”이라고 언급했지만, 다음 달 본인이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는 군 관계자에게서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이 장군들 인사에 대해 논의했고 오 전 기획관에게 전달됐다”는 진술을 확보한 바 있다. 위기감을 느낀 오 전 기획관은 특수본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기 시작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오 전 기획관의 특수본 진술조서를 보면 그는 “신원식 (전 국방부) 장관이 저와 원천희 국방부 정보본부장에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보직해임·정보사령관 교체 검토를 지시했으나 지난해 9월6일, 김 전 장관이 취임하면서 문 전 사령관에 대한 ‘현 보직 유지’를 지시했다”며 “납득하기 어려운, 이해하기 어려운 인사였다”고 했다. 앞뒤 달랐다 오 전 기획관은 “(문 전 사령관이 박 준장으로부터 고소당한 혐의가)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됐지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인사 조치는 없었다”며 “공론화된 문제고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됐는데도 이렇게 유야무야 넘어가는 일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