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충북 청주시에 위치한 쉐마미술관서 고 황창배 화백의 22주기 기획초대전 ‘괴산의 그림쟁이’를 준비했다. 황 화백은 한국화의 영역을 확장한 작가로, 이번 전시는 작고 22주년을 기념해 그의 발자취와 정신을 기리는 취지로 마련됐다.
![무제, giclee print on paper, 49x100cm, 2023 ⓒ황창배](http://www.ilyosisa.co.kr/data/photos/20231251/art_17028849204246_13ce3a.jpg)
황창배 화백은 서울서 태어나 대학까지 서울서 마친 ‘서울 토박이’ 작가다. 그런 그가 서울 화실을 정리하고 충북 괴산의 외딴 사과나무골 옆으로 작업실을 옮긴 것은 1990년이다. 운명하기 전 마지막 10년을 보낸 곳도 괴산이다.
화법 버리고
황 화백은 1947년 서울 태생으로 초·중·고를 다녔고 서울대 미술대학과 동 대학원서 한국화를 전공했다. 1978년 31세의 나이로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며 두각을 드러냈다.
당시 서양화 화단에서는 반국전 운동이 일어나는 등 전위미술 운동이 한창 전개되던 시점이었다. 반면 한국화와 조각은 국전을 통해 화단에 진출하려는 경향이 매우 강했던 시기였다. 그렇다 보니 동양화가의 대통령상 수상은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당시 명지전문학교에 재직 중이던 황 화백은 대통령상 수상의 부상으로 유럽미술관 순방 기회를 얻게 됐다. 이 기회를 통해 그는 서양의 현대미술을 접했다. 이후 동덕여대, 경희대, 이화여대 등에서 교수로 재임하던 그는 5년 뒤 교직을 떠나 전업화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 의지의 산물이 작업실 이전이었다. 50대부터 운명하기 전까지 황 화백의 인생서 가장 많은 걸작을 남긴 곳도 바로 괴산의 화실이었다. 청주대학교 대학원서 강의를 진행하면서 청주와도 인연을 맺었다.
황 화백은 한국화 ‘秘52’로 국전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뒤 동양화 화법을 모두 버렸다.
국전 대통령상으로 두각
작업실 옮겨 마지막까지
쉐마미술관 관계자는 “한국 화단의 대부분 작가가 고리타분한 기법을 고수하면서 변함없는 매너리즘에 빠져버리는 것이 통례였던 당시 사정에 비춰볼 때 황 화백의 태도는 대단한 용단이 아닐 수 없다”며 “진정한 창의적 작품을 하겠다는 일종의 선언이었다”고 말했다.
이후 황 화백은 보수적인 한국화의 현대화를 위한 선두주자 역할을 자처했다. 그동안 대상의 표현에 있어 가치를 묘사하는 데 역점을 뒀던 한국화의 전통적 방식을 과감히 버리고 서양화의 현대회화서 볼 수 있는 방법, 즉 대상을 재해석하고 해체하고자 했다.
![탄생, 310x70cm, 캔버스에 아크릴릭, 1997 ⓒ황창배](http://www.ilyosisa.co.kr/data/photos/20231251/art_170288497784_22ed0f.jpg)
그러면서 보다 적극적으로 변형시키고 재분석하면서 자신만의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 내려고 노력했다.
황 화백 작품의 또 다른 특징이자 장점은 천부적 재능의 필력이다. 그의 화면에 등장하는 인간의 모습, 나무나 꽃, 새 등의 형상은 구상과 추상의 특징을 동시에 느낄 수 있을 만큼 매우 독창적으로 표현했다. 최광진 미술평론가는 황 화백의 독보적 조형세계를 가리켜 “황창배 화풍”이라고 말했다.
쉐마미술관 관계자는 “미술사적으로 볼 때 황 화백의 화풍은 서양화의 신표현주의적이면서 우리 전통의 민화적 요소를 현대화시키는 방법을 차용하고 있다”며 “54세 일기로 운명한 뛰어난 천재 화가를 회상하며 괴산서의 10년 세월을 느낄 수 있는 작품과 자연 시리즈를 감상할 수 있는 의미있는 전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창의적 작품
“모든 게 신기하기만 해요. 계절 따라 변화하는 자연을 보노라면 끝내 경탄을 금할 수 없어요. 아, 저토록 신비로운 꽃, 봄이면 싹이 돋는 풀 하나에서도 생명의 신비로움에 가슴 떠는 것. 막연히 짐작하는 것과 실제 마음으로 느끼는 것은 너무 달라요. 너무 신기해 작업이 안될 지경이었어요.(황창배 <여성백과> 1992년 4월호 中)”
<jsjang@ilyosisa.co.kr>
[고 황창배는?]
▲학력
경복중·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미술대학·동대학원 졸업
▲경력
동덕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조교수(1982~1984)
경희대학교 미술대학 조교수(1984~1986)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교수(1986~1991)
경기대학교 조형대학원 교수(1995~1997)
동덕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초빙교수(1995~1997)
▲수상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문화공보부 장관상(1977)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대통령상(1978)
선 미술상(1987)
토탈미술상(1991)
대구 석재문화상(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