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뉴파레토법칙

  • 김삼기 시인·칼럼니스트
  • 등록 2023.11.06 14:23:41
  • 호수 1452호
  • 댓글 9개

문민정부(1993년2월~1998년2월)는 집권 초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위해 시장개방을 해야 했다. 그래서 김영삼 대통령은 먼저 국내시장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각종 규제를 풀고 개혁을 단행했다.

이때부터 국내 전문직 증원이 대대적으로 시작됐다. OECD 국가 평균에 맞는 인력을 확보하고 경쟁력도 키워 우리나라 전문직 수준을 높이기 위함이었다.

당시 청와대 모 수석은 문민정부의 OECD 가입(1996년 12월) 준비 상황을 설명하는 조찬모임서 “전문직 종사자가 자격증만 따면 편하게 사는 시대는 지났다”며 “이젠 전문직도 80%가 상위 20%를 향해 열심히 뛰어야 한다”고 말했다.

즉 정부가 전문직 정원을 늘려 경쟁구도의 정책을 펴겠다는 시그널이었다.

필자는 “80%의 실적을 20% VIP 고객이 내고, 80%의 매출을 20% 우수 직원이 낸다”는 불평등한 파레토법칙(80:20법칙)을 생각하며 “80%가 상위 20%를 향해 열심히 뛰어야 한다”는 문민정부의 정책기조가 긍정적인 경쟁을 유발하는 ‘뉴파레토법칙(80 for 20법칙)’이라고 임의로 명명해봤다. 

문민정부는 시장 개방으로 인해 발생할 지적재산권 문제 등 소송 증가를 염두에 두고 사법시험 합격 정원을 300명서 1000명으로 크게 늘렸다.


의료 서비스의 질 향상과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도 1994년부터 1997년 사이 무려 8개 대학에 의대를 인가해 입학 정원 350여명을 늘렸다. 

그 후 변호사는 사법시험 합격 정원 1000명 시대가 10년간 유지되다 2009년 시행된 로스쿨 도입으로 지금은 매년 1700명대의 변호사가 배출되고 있다. 불과 30년 만에 5배 이상이 늘어났다.

그러나 의사는 1997년 이후 의대 인가 한 건도 없이 미미하게 증원되다가 2006년부터 의대 입학 정원 3058명이 동결된 채 지금까지 18년 동안 유지되고 있다. 

결국 변호사 수가 늘어나면서 변호사는 문민정부 정책기조인 뉴파레토법칙대로 80%가 상위 20%를 향해 열심히 뛰어야 했다.

자격증을 따도 상위 20%만 판검사로 임용되거나 대형로펌 변호사가 될 수 있고, 나머지 80%는 개업해도 수입이 적고 재판에도 못 나가는 반쪽짜리 변호사가 대부분이어서 상위 20%를 향해 열심히 뛰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반면 의사는 문민정부 때 일시적으로 정원이 늘었으나 2006년부터 의대 입학 정원을 동결시켜 지금은 자격증만 있으면 수혜를 누릴 수 있게 됐다. 의사 수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도권 대형병원 20%가 국내 전체 80%의 진료를 맡고 있어, 불평등한 파레토법칙에 갇혀 있는 상황이다.


이에 뉴파레토법칙에 의해 심한 경쟁을 해야 하는 법조계가 “변호사시험 합격 정원을 줄여야 한다”고 계속 주장해왔고 2006년부터 의대 입학 정원을 동결했지만, 그 후 파레토법칙에 갇혀 있는 의료계도 “더 이상 의대 입학 정원을 늘려선 안 된다”고 계속 주장하고 있다.

최근 의료계의 심각한 인력난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한 정부가 지난달 19일 “2006년부터 묶여있던 국내 의대 정원을 2025년 입시부터 대폭 늘리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발표했고, 27일에는 “수요 조사를 통해 의대 신설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의료계는 "가용한 모든 수단으로 총력 대응에 나서겠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정부는 “우리 사회 곳곳서 벌어지는 ‘소아과 오픈런’ ‘응급실 뺑뺑이’ 그리고 지방 의료공백, 고령화시대 의료 서비스 증가 등의 현실을 감안할 때 의사 수 증원을 미룰 수 없다”며 “OECD 국가 평균에 맞는 의료 인력을 확보하고 경쟁력도 키워 국민에게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의료계는 “단순히 의대 입학 정원을 늘리려는 정치적 발상은 의료체계를 무너뜨리고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것이며 입학 정원 증원보단 수급 내실화 정책을 통해 수도권 병원과 지방병원의 양극화나 인기과와 비인기과의 양극화로 불평등한 파레토법칙에 함몰된 의료계의 문제점을 먼저 해결해야 한다”며 정부 주장에 반박하고 있다.

전문 분야의 수요자인 국민은 전문직이 늘어나면 양질의 서비스를 받게 돼 환영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전문직의 경우 수급 조절이 쉽지 않아 만약 전문 인력 수급에 차질이 생긴다면 국민만 피해를 보게 된다. 

현재 한국은 뉴파레토법칙 추진이 먼저냐? 아니면 파레토법칙 문제점 해소가 먼저냐를 고민하고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법조계에 비해 뉴파레토법칙을 잘 비켜왔던 의료계가 파레토법칙의 문제점인 수급 조절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앞으로 우리 사회에 의사 수를 늘려야 한다는 공감대가 더 많이 형성된다면 결국 의료계도 정부의 뉴파레토법칙을 따라야 할 것이다.

정부는 ‘의대에 입학해 전문의가 되는 데 10년이 걸리므로 지금 증원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에 더 심각한 위협으로 다가올 것’이라는 판단하에 의대 입학 정원을 늘리면서 인력 재배치, 필수의료 수가 인상, 의료사고 부담 완화, 지방 인재 배려 정책 등도 함께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30년 전 문민정부가 선진국 진입을 상징하는 OECD 가입을 위해 시장 개방에 앞서 국내 경쟁력 강화를 목적으로 전문직 인력을 증원해 뉴파레토법칙을 적용했듯이 윤석열정부가 세계 5대강국 진입을 목표로 경쟁력 있는 의료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의사 수를 늘리는 뉴파레토법칙을 내세우고 있는데도 의료계가 계속 타협점을 찾지 않고 반대만 한다면 머지 않아 국민적 저항에 부딪힐 수도 있을 것이다.

국민 10명 중 7명 이상이 의대 입학 정원을 늘리는 정부 정책에 찬성하고 있고 모처럼 정치권서도 여야가 의대 입학 정원 증원 및 의대 신설에 대해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상황서 이제 의료계의 결단만 남았다.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국방부, 내란 문건 ‘대청소 프로젝트’

[단독] 국방부, 내란 문건 ‘대청소 프로젝트’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와 관련된 국방부 문건이 대규모로 파쇄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 조치는 오영대 전 인사기획관의 지시로 이뤄졌다. 오 전 기획관은 검찰 특수본과 재판서 정보사와 수사2단 인사안의 문제점을 증언했던 인물이다. 자신이 비상계엄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수사에 협조한 것으로 의심되는 대목이다. “올해 초 신년맞이 대청소라면서 문서를 대량으로 파쇄했다.” <일요시사>와 접촉한 국방부 직원들의 말이다. 파쇄된 문건들은 12·3 내란 사태와 관련된 자료라고 한다. 지시자는 오영대 전 국방부 인사기획관이다. 검찰 수사에 협조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으나 실상은 다르다는 게 군 내부자들의 주장이다. 뭘 숨기나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말 취임하면서 시작한 첫 번째 군 개혁은 인사다. 신임 인사기획관에 일반 공무원 출신인 이인구 군사시설기획관을 임용한 건 안 장관이 강조해 왔던 ‘군 문민통제’와도 맞닿아 있다. 인사기획관은 본래 예비역 장성이 맡아왔다. 이 신임 기획관의 전임자였던 오 전 기획관도 예비역 준장 출신이다. 군 내부에서는 국방부에 여전히 12·3 내란 사태에 협조한 군인들이 남아 있다고 지적한다. 핵심으로 인사기획관실의 총괄과이자 인사기획관의 일정, 예산 등을 모두 관리하는 인사기획관리과가 언급된다. 다수의 국방부 관계자들은 “오 전 기획관은 물러났지만 책임져야 할 다수의 인물이 아직 자리를 보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부서의 간부들은 전부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다. 과장 김모 대령은 오 전 기획관이 대령이었을 때 소령으로 근무했고, 총괄 이모 중령은 오 전 기획관이 특전사 여단장을 역임했던 1공수여단서 중대장과 707중대장을 거쳤다. 장군인사팀장 김모 대령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수도방위사령관으로 근무했던 시절 비서실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김 전 장관과 가깝거나 육사 출신인 이들이 국방부 인사의 핵심부서인 인사기획관리과에 포진하면서 계엄 실행을 위한 보직 이동이 이뤄진 셈이다. 김 전 장관은 실제 대통령경호처장일 때부터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과 군 인사에 대해 논의했다. 직무에서 배제되지 않은 인사기획관리과 간부들은 ‘장관이 모든 책임을 오 전 기획관에게 묻는 형식으로 퇴직을 시켰으니 우리는 지시를 받아 어쩔 수 없이 한 것처럼 조용히 지내면서 정부초기 개혁의 소나기만 피하면 진급 가능’이라며 서로서로 쉬쉬하고 있다고 한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인사기획관리과 간부들은 내란 이후인 지난해 12월 중순 오 전 기획관의 지시에 따라 문건 파쇄를 계획했다. 김 전 장관이 물러난 이후 인사기획관리과장 김 대령 및 총괄인 이 중령 외에는 계획되지 않은 대면보고는 금지했고 내부 보안에 심혈을 기울였다. 인사과 간부들 계엄 실패 후 12월 계획···1월 파쇄 “지시자는 검찰 수사 응했던 오영대 전 인사기획관” 한 달여 뒤 이 중령은 모든 과에 ‘신년맞이 대청소’를 하라고 전파했다. TF 자리 배치와 오래된 문건을 정리한다며 유독 인사기획관리과만 복도로 책상을 빼고, 대량 세절이 가능한 세절실을 예약해 엄청난 양의 문서들을 파쇄했다. 여기엔 내란 핵심 파일도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 안 장관은 이와 관련해 국회에서 오 전 기획관에게 여러 차례 질문한 바 있다. 당시 오 전 기획관이 당황해하며 우물쭈물하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퍼지기도 했다. 이 중령은 동영상을 보며 웃는 직원들의 명단과 안 장관에게 제보한 인물을 색출하기 위해 탐문 활동을 벌여 오 전 기획관에게 추정해 보고했다. 이들은 모두 오 전 기획관으로부터 승진추천, 성과상여금, 각종 포상 등 인사상 불이익을 본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이 문건을 파쇄한 이유는 내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내란 당일 오후 10시가 넘은 시각임에도 퇴근하지 않고 사무실에 있던 오 전 기획관의 지시를 받은 이 중령은 각 과의 총괄 담당자들을 소집해 ‘계엄 선포가 됐는데 선제적으로 인사 관련 조치를 왜 안 하냐’ ‘합참에는 계엄사령부가, 지작사령부에는 지역계엄사령부가 곧 창설될 텐데 각 군 본부 및 지작사와 인사 지침을 협의해 계엄령 취지에 맞게 배포하라’고 강조했다. 특히 오 전 기획관은 계엄 해제 결의안이 국회 본회의 테이블을 통과했음에도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서 이 중령에게 “(계엄이) 해제되긴 했는데 다시 시행될 수도 있으니 빨리 계엄사 창설 지원을 위한 인사 조치를 완성하고 지작사 병력에 대한 휴가 지침 및 통제 등 건의 사항을 받아보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 전 기획관은 내란 직전까지 김 전 장관의 의중에 따라 군 인사를 반영했다. 최근 내란 특검팀이 군 장성급 인사 자료 확보에 나선 것도 이에 관해 들여다보기 위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검팀은 최근 국방부 장군인사팀과 육군본부 장군인사실 등을 압수수색해 해당 부서 내 인사 관련 파일 등을 확보했다. 정치권에선 지난 2023년 11월과 지난해 4월 이례적인 인사가 이뤄졌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진급에 절박한 군 인사들을 계엄 실행 세력으로 활용했단 의혹이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윤석열정부 장군 인사는 특이하고, 이례적인 경우가 유독 많았다”며 “인사를 통해 군을 장악하고, 내란을 준비했다는 의혹 관련 특검의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2·3차 계엄 대비 문건 없애” 증거 인멸 국회서 해제 불구 지작사와 인사 논의?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은 지난 2023년 11월 인사에서 소장에서 중장으로 진급했다. 박안수 전 계엄사령관은 ‘75주년 국군의 날 행사기획단장 겸 제병지휘관’ 등 한직에서 2023년 10월 육군참모총장에 발탁됐다. 지난해 4월엔 지휘부에 이어 작전본부 인사가 이어졌다. 원천희 당시 육군 소장이 4차 진급으로 합참 정보본부장으로 승진했고, 이승오 소장은 군단장을 거치지 않고 합참 작전본부장으로 진급했다. 안찬명 당시 육군22사단장은 임명 5개월 만에 합참 작전부장으로 보직을 옮겼다. 통상 사단장은 1년 반~2년가량 보직을 맡는다. 군 안팎에서 이례적이란 평가가 나왔던 이유다. 경질 위기이던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은 유임됐다. 그는 지난해 6월 정보사 군무원의 블랙요원 명단 국외 유출 사건 및 박민우 전 정보사 100여단장과의 갈등 등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당시 국방부 장관이던 신원식 전 안보실장은 지난해 8월 국회에서 “후속 조치를 강하게 할 생각”이라고 언급했지만, 다음 달 본인이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는 군 관계자에게서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이 장군들 인사에 대해 논의했고 오 전 기획관에게 전달됐다”는 진술을 확보한 바 있다. 위기감을 느낀 오 전 기획관은 특수본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기 시작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오 전 기획관의 특수본 진술조서를 보면 그는 “신원식 (전 국방부) 장관이 저와 원천희 국방부 정보본부장에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보직해임·정보사령관 교체 검토를 지시했으나 지난해 9월6일, 김 전 장관이 취임하면서 문 전 사령관에 대한 ‘현 보직 유지’를 지시했다”며 “납득하기 어려운, 이해하기 어려운 인사였다”고 했다. 앞뒤 달랐다 오 전 기획관은 “(문 전 사령관이 박 준장으로부터 고소당한 혐의가)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됐지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인사 조치는 없었다”며 “공론화된 문제고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됐는데도 이렇게 유야무야 넘어가는 일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