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연재> 대통령의 뒷모습 ㊻다른 사회 같은 상황

  • 김영권 작가
  • 등록 2023.08.23 00:00:00
  • 호수 14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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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권의 <대통령의 뒷모습>은 실화 기반의 시사 에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임 시절을 다뤘다. 서울 해방촌 무지개 하숙집에 사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당시의 기억이 생생히 떠오른다. 작가는 무명작가·사이비 교주·모창가수·탈북민 등 우리 사회 낯선 일원의 입을 통해 과거 정권을 비판하고, 그 안에 현 정권의 모습까지 투영한다.

어차피 피장파장 동희동락이기 때문에 그들은 서로 욕하지 않는 것이다. 가끔씩은 서로 교류한다는 명목으로 남남북녀를 바꾸어 맛보기도 하리라.

남북한의 보통 국민과 인민들끼리는 서로 싸움을 붙여 놓은 채 고위 권력층 인사들은 희희낙락 마치 초인들처럼 고급스레 소통하는 것이다.

첨부 파일 속의 수기 전체를 다 읽어 본 결과 중국과 북한에서 탈북 여인들이 겪는 고난은 사실인 성싶었다.

중국 남자에게 속아 인신매매 당한 여성들과 북한 땅으로 다시 붙잡혀 간 여인들의 비참한 절규는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어 도저히 부정하기가 어려웠다.

지옥경


모든 과장과 공상적 왜곡을 제외하더라도 가슴을 찌르는 한 줌 비극은 남았다. 그걸 모른 척 눈감는다는 건 스스로 청맹과니가 되는 짓이리라.

아무튼 그건 윤 여사가 어떤 목적을 갖고 보내 준 파일이므로 나로서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전체적으로 까다롭게 살펴봐야 할 터였다.

그녀의 중요한 기획 의도 중 하나는 북한 사회를 가능한 한 최악의 지옥경으로 설정해 보여줌으로써 남한 사람들의 가슴속에 공분을 불러일으켜 그 악의 제국을 타도케 하는 데 있는 것처럼 얼핏 보였다.

세습 김씨 왕족과 측근 최고위급 사이비 공산당 간부들의 멸망! 나 역시 바라는 바였다. 참된 공산주의도 아니고 인민들 피 빨아먹는 이기주의자들은 모조리 몰아내 대동강 물속에 수장시켜 버리고 싶었었다.

하지만 그게 과연 가능한가? 쥐새끼마저 궁지에 몰리면 결사항전을 하는데, 세계 최고의 악질 독종으로 소문난 그들이 순순히 항복하겠는가?

아마 자신들의 위기를 눈치채는 순간 핵폭탄을 안은 채 발광해 버릴 것이다. 결과는 공존공영이 아닌 동귀멸망. 우리의 번영이 훨씬 큰 타격을 입으리라.

애초에 불가능한 일을 시도하려는 건 윤 여사의 열혈 애국 정신이라기보다 책임 의식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철부지 아이들의 불장난 같은 것이랄까. 아니다. 그들에겐 분명 어떤 목적이 있을 터이다.


현실적이고 교활한 기획. 자기네 스스로의 머리로 심사숙고해 추진하기보다 어둠 속의 누군가와 손을 잡고 지령과 자금을 지원받아 벌이는 남북 상쟁 와중의 희비극 쌍곡선 쇼. 그 피에로들 뒤에는 누가 있을까?

여기서 보수파라고 쉽게 말하면 안 된다. 우리 국민의 대부분, 즉 60% 이상이 보수파이기 때문이다. 이건 과장이 아니라 사실에 가깝다. 한국에 진짜 진보와 보수는 별로 없다.

대부분 관념적이고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가짜 사이비뿐이다. 참다운 진보와 중도와 보수는 상류층이나 자칭 지식 계층엔 거의 없고 일반 보통 국민들 속에만 존재한다.

그들은 나불나불 지껄이지 않을 뿐 실천으로 이 나라를 지탱해 나가는 진정한 의미의 국민이다. 그런데 그들은 무시당하고 있다. 늘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고상하신 정치꾼 모리배님들께서는 입주둥이론 국민의 머슴이니 뭐니 운운하면서 실제로는 여전히 왕족 혹은 귀족으로 군림하고 있다.

양쪽 다 열혈 애국정신·책임 의식 전무
공존공생 이념 팽개치고 상류계급만 떵떵

그들은 현실을 농간하고 국민들의 정신을 농락하기 위해 갖은 꾀를 썼고 그 결과 우리는 참다운 진보와 중도와 보수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가짜 사이비 보수와 중도와 진보가 본 자리를 차지해 주인인 양 행세하는 바람에 우리는 밤낮 헷갈린다.

남한과 북한의 왕족 나리와 귀족님들은 이따금씩 밀실 회담을 통해 한민족의 앞길을 밝히기보다 ‘흐린 거울’을 유지하는 데 심혈을 기울인다.

오히려 거울 면을 슬그머니 일그러뜨려 남북 상황을 왜곡하려는 낌새를 보이기도 한다. 북한을 찬양하면 무조건 진보 빨갱이, 조금이라도 비판하면 누구든 보수 퍼렁이가 되어 버린다.

유교와 불교가 수천년 동안 가르쳐 준 중용과 중도의 나무는 양쪽으로부터 비겁자란 욕을 얻어먹어 이파리가 시들고 뿌리마저 뽑혀 말라 버렸다.

사리사욕을 챙기는 구멍에서는 진보파와 보수파가 오히려 중도보다 서로 더 잘 통하는 실정이다. 사이비 급진파와 수구파(극좌와 극우)는 서로 눈을 흘기면서도 얄궂은 미소를 주고받는다.


아무튼 이런 요지경 속 판국이다 보니 땀 흘려 일해서 살아가는 일반 국민들은 모리배들의 짬짜미 계획대로 도대체 뭐가 뭔지 헷갈려 버리고 말았다. 그리하여 한 사람 속에 보수와 진보와 중도가 다 들어앉은 셈이랄까.

10:90이든 50:50이든 60:40이든 어쨌든 보혁이 혼합돼 있는 것이다. 그건 또한 시류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며 수시로 비율이 변한다.

부지불식간이기 때문에 얼마나 어떻게 변하는지 알 수도 없고, 변했는데도 자신은 그대로라고 믿으며 살아간다.

아마 이건 어떤 식으로든 통일이 되기 전엔 낫기 어려운 고질병이 아닐까?

만일 통일이 되면 남과 북의 국민과 인민들 대부분은 좌도 우도 아닌 참된 중도의 길을 걸어가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그 속엔 참다운 진보와 보수가 수렴되리라.


각설하고 본줄기로 돌아가자. 애초에 탈북이니 중국으로의 여성 인신매매 따위가 왜 생겼겠는가?

죄인도 있고 자기 욕망을 다스리지 못한 자도 있었겠지만 대다수는 굶주림을 벗어나 먹고 살기 위해서였다. 도대체 왜 그런 지경이 되었는지 궁금하다. 남한과 북한의 사이비 언론들이 떠들어대는 것 말고 진짜 원인이….

나로서는 우선 북조선인민공화국의 지도층이란 자들을 믿을 수가 없다. 이 대명천지에 뭘 어찌했기에 수백만명의 인민이 굶어 죽을 수가 있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뼈와 가죽만 남아 할딱이다가 숨질 수가 있는가.

아프리카의 토인족처럼 자연 친화적으로 사는 것도 아니고, 인간의 힘으로 지상천국을 건설하겠다는 자들이! 그렇다고 인민들이 동남아 일부 사람처럼 게으른 것도 아니고 세계적으로 빠릿빠릿한 독종으로 소문나 있건만!

공산주의든 지랄주의든 뭐든 다 좋다. 적어도 부지런히 일하는 인민은 배불리 먹고살면서 자유를 누려야만 ‘민주공화국’이라 칭할 수 있지 않겠는가.

깡패 집단

그렇지 못할 경우 국가의 자격이 없다. 좀 심하게 말해 도둑 소굴이나 깡패 집단도 그러지 않는다. 살면 함께 살고, 죽으면 같이 죽는다.

더군다나 세계 유일의 공산주의 낙원이라면서 평등한 공존공생의 이념은 내팽개친 채 이른바 성혈(聖血)받은 지도층과 상류계급 족속들만 마치 조선왕조 시대처럼 떵떵거리고 일반 인민(백성)들은 로봇이나 흙 인형 꼴로 취급되고 있지 않은가?

물론 반론이 없을 수야 없으리라. 남한처럼 물질적으로 풍요롭지는 않지만 정신만큼은 훨씬 순수하다. 돈이면 다 땡이라는 황금만능주의의 노예가 돼 비인간적으로 사느니, 가난하되 정답게 살아가는 게 낙원 아니겠느냐. 우리는 그래도 남조선만큼 빈부 격차가 심하지 않으며 살인 강도와 강간 따위가 일상적으로 벌어지지 않는다.


<다음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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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12·3 계엄 당일 내란 주동자들은 정치인과 판사 등 자신들이 반국가 세력으로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위해 서둘렀다. 하지만 준비가 된 것은 각 군의 사령관들뿐이었다. 계엄사령부와 합동수사본부의 설치는 훈련 상황서도 24시간가량 걸리는데 이를 간과한 것이다. 미리 계엄을 준비했다는 증거가 계속해서 나오는 상황에 실무진에게 준비시키지 않은 점이 의문점으로 남아있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내란 주도자들이 정치인과 판사 등 ‘좌파세력’이라고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그 내막에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이하 합수본)의 미설치가 있다. 진술 나오자 다른 전략 <일요시사>가 검찰 진술 조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계엄이 시작된 계기와 14명의 체포 미수 및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불법 점거의 실패 이유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를 꼽았다.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 국회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대립은 심각했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야당은 자기들끼리 뭉쳐서 법안을 통과시켰고 윤 전 대통령은 재의요구권을 사용했다. 또 야당은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를 수사한 검찰들에 대한 탄핵을 시도하고 김건희씨와 관련한 특검법을 계속 발의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27일경, 윤 전 대통령이 관저 식사 자리서 “수사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검사를 탄핵하고, 재판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판사를 탄핵하고, 헌법재판소가 마음에 안 들면 정족수를 자르고, 이게 나라냐.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국가 세력의 준동에 관해 청주간첩단 및 창원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수사 과정서 잡은 인원들을 판사 기피 신청이 들어오면 단기간에 결정하는 것이 상식인데 6개월이나 결정을 하지 않아 간첩들의 구속 기간이 끝나 다 풀려나 돌아다니는데도 이런 것을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니 나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미래 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비상계엄)이 필요하겠다”고 강조했다. 일주일이 지난 후 윤 전 대통령은 김 전 장관에게 “야당의 패악질로 나라의 미래가 없다. 국가 비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들은 비상계엄 관련 논의를 했다. 이때 체포 명단인 이른바 ‘좌파 세력’ 14명의 명단과 군대를 어떻게 투입할지 등을 확정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들은 체포 명단의 사람들의 신병을 확보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게다가 내란 주동자들은 검찰 진술과 형사 법정 등에서도 체포하려 하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합수부 미설치로 체포 불가” “합수부 없어 시작부터 위법” 김 전 장관은 검찰에 “주요 정치인 등에 대한 검거를 시도한 바 없다. 혐의가 있어야 검거를 시도하지 않겠냐”며 “언론에 나오는 위치 추적 등은 포고령에 따라 정치활동이 금지되고 있는 상황이니 주요 정치인 몇 분과 부정선거 등과 관련해 사회서 의혹이 제기되는 사람들의 위치를 미리 파악하라고 이야기한 것일 뿐”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과 작전에 투입된 군인들의 진술로 체포 명단이 실제로 존재했으며 체포를 지시하고 시도했다는 것마저 모두 드러났다. 체포 시도가 있었다는 진술이 계속해서 나오자 내란 주동자들은 다른 전략을 세우게 된다. 바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다. 김 전 장관은 검찰 진술서 합수본이 미설치돼 체포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계엄사령부와 합수본이 설치되는 과정이라 검거가 불가능하다”며 “합수본이 설치되려면 검찰과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데 아무런 대비도 없이 체포부터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진술했다. 김 전 장관의 진술은 계엄 직후 선관위에 국군 정보사령부 부대원들을 보내 선거인 명부 관리 서버를 장악하고 선관위 당직자들에 대한 통신 제한(휴대전화 압수)과 감금이 위법한 수사 활동임을 나타내고 있다. 계엄이 터지면 통상적으로 합수본 역할을 맡는 국군 방첩사령부 관계자도 검찰 진술 당시 선관위 투입은 잘못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영희 방첩사 비서실 1과장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방첩사 소속 군인들로 하여금 중앙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도록 지시하거나 계엄 해제 이후 관련 증거를 제거하도록 시킨 것은 자신들의 정당한 권한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성 미리 알고? 박성하 방첩사 기획조정실장은 “현장에 나가 있던 소위 체포조에 대해서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면서도 “하지만 전시에도 방첩사가 일부 범죄에만 수사권이 있기 때문에 전시나 계엄 상황이라도 관할권이 없는 선관위나 정치인 등 체포나 점거는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게다가 합수본(방첩사)은 직접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역 합수단서 해야 할 일을 방첩사 인원으로 진행한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한 군검찰 출신 변호사는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임명하는 군사경찰 관리, 경찰공무원, 국가정보원 직원 중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 그 밖에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로 구성된다”며 “또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지정한 사건의 수사와 정보기관 및 수사기관의 조정·통제업무를 관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선관위로 투입된 인원들은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지도, 임무를 하달받지도 않았다”며 “게다가 합수본까지 설치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시작부터 위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보사와 방첩사 모두 계엄사령군(군사경찰)이 아니기에 정당한 절차가 없었다면 반란군이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점은 계엄 업무를 해본 김 전 장관이 왜 무리수를 뒀는지다. 김 전 장관은 대한민국 합동참모부서 작전본부장을 역임한 바 있다. 합참 작전본부에는 계엄과가 편제돼있기 때문에 김 전 장관이 계엄군과 합수본 지정 및 운용 등을 몰랐다고 보기 힘들다. 합참 계엄과서 편찬하는 계엄실무편람에도 잘 나와있기 때문이다. 김 전 장관은 논란을 줄이기 위해 계엄이 선포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화상으로 개최하면서 박안수 전 육국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을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일부 사령관 등에게만 공유됐던 12·3 계엄 작전은 계엄사령부가 설치되기도 전에, 합수본이 설치되기도 전에 끝났다. 사령부만 알았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 조서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부 사령관에게 국회와 선관위 출동을 하면서 방첩사에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해서 임무 수행을 하라고 지시했다. 김 전 장관이 방첩사에 지시한 임무는 경찰과 국방부 조사본부에 100명씩 인원을 요청하고 선관위로 먼저 투입된 국군 정보사령부가 접수한 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라는 지시였다. 국방부 조사본부와 경찰에 인원 요청을 한 것은 정치인, 판사, 등 민간인 체포를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조사본부는 방첩사가 요청한 수사관 지원 요청을 4차례 거절했다. 조사본부 한 관계자는 검찰 조사 당시 “지난 3일 계엄령 선포 이후 방첩사로부터 수사관 100명 지원을 네 차례 요청받았지만, 근거가 없다고 판단해 응하지 않았다”며 “이후 합수본 실무자 요청에 따라 시행 계획상 편성돼있는 수사관 10명을 지난해 12월4일 오전1시8분 출발시켰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의 수사관 파견 요청에는 불응했고, 계엄 시행 이후 방첩사를 중심으로 꾸려지는 합수본 요청에는 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사관이 파견된 시간은 이미 계엄 해제 의결이 이뤄진 뒤였다. 합수본이 계엄 해제와 비슷한 시기에 모양새라도 갖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 전 장관이 계엄 직후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여 전 사령관에게 합수본 설치를 지시했지만 설치가 늦어진 이유가 있다. 방첩사에 내려진 지시는 좌파세력 체포와 합수본 설치, 검찰과 경찰 및 국방부 조사본부 등에 협조 요청 등으로 내란 주동자들에게는 어느 것 하나 미룰 수 없는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 기획조정실장은 “부대에 도착해보니 OOO회의실에 여 전 사령관이 이경민 참모장, 이창엽 비서실장과 같이 있었다”며 “합수본 설치 지시를 받으려 사령관에 물어봤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여 전 사령관이 다른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합수본부장으로 임명됐다. 우리 대원들은 다 나가 있다’고 말하며 통화에만 집중했을 뿐 합수본 설치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계엄 6개월 전부터 준비 실무진만 ‘닭 쫓던 개’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국가적으로 엄중한 상황이 될 텐데 방첩사는 계엄 선포 예정 사실을 알고 준비하지 않았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계엄이 선포되면 합수본을 설치해야 하는 사람이 나다. 하지만 나는 해당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체포조를 운영한 수사단장도 해당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 그는 “방첩사 비상소집이 완료된 시간이 지난해 12월4일 오전 1시4분”이라며 “합수본은 기본 시설도 갖추지 못한 상태서 계엄이 해제됐다”고 말했다. 방첩사 인원들이 전원 소집되는 시간에 이미 계엄은 해제된 것이다. 방첩사의 작전 계획상에는 상황실 설치에 8시간, 합수본 설치에 24시간을 예정하고 있는데 비상계엄이 3시간 만에 해제됐다. 본부 설치에만 24시간이 걸리며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아 합수본을 완전히 구성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한 군사학과 교수는 “계엄 선포에 대해 사령관과 참모진 외에 실무자에게도 공유가 됐다면 미리 합수본 설치를 준비하고 있다가 계엄이 선포된 후 바로 체포를 진행했을 것”이라며 “이번 계엄의 패착은 이전 계엄과 달리 빠르게 대처한 국회를 막지 못한 것과 계엄사령부부터 합수본까지의 실무자들이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방첩사 사령부에서는 미리 계엄 준비를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방첩사 소속 간부 A씨는 검찰 조사에서 “방첩사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체결한 MOU에 언급된 ‘합동수사본부’는 계엄 시 설치되는 합수부가 맞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와 국수본은 지난해 6월28일 ‘안보범죄 수사 협력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합동수사본부 설치 시 편성에 부합하는 수사관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방첩사가 계엄을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지휘부에서 최초에는 지난해 5월 초순경 3주안에 체결하라는 지시를 했다”며 “보통 미국 국방정보국(DIA) 등 해외정보수사기관과 이런 MOU를 맺고, 국내 기관은 관련 법령이 있어 MOU를 맺지는 않는다. 국내 기관과 MOU를 맺은 건 이번이 처음이고, 굳이 이런 MOU를 맺는 게 의아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다만 조지호 경찰청장은 해당 MOU에도 불구하고 계엄 당일 수사관 지원 요청을 이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조 청장은 지난 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 나와 “방첩사 주관으로 수사본부가 꾸려질 수 있으니 경찰서 필요한 인력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준비하겠다고 했다”고 밝혔으며 계엄 당일 수사관 81명이 방첩사 요청으로 대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두환과 구상 흡사 내란 주동자들은 경찰력을 대거 방첩사로 파견해 합동수사본부를 꾸리고 정치인 체포 작전을 벌일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79년 비상계엄하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만든 합수본과 흡사한 구상이다. 당시 합수본은 정권에 반대하는 정치인에 대한 정보 기능을 도맡아 12·12 군사 반란의 수괴인 전두환씨가 권력을 장악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됐다. <kcj512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계엄 사령부 구성도 완전 실패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계엄사령부는 구성조차 못했다. 권영환 전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계엄과장은 계엄이 선포된 후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으로부터 ‘계엄사령부 설치를 도와라’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그는 육군 본부 참모진들이 올라올 때까지 계엄사 상황실 구성 준비를 했다. 계엄이 선포되면 계엄사에는 2실(비서실, 기획조정실) 8처(정보처, 작전처, 치안처, 법무처, 보도처, 동원처, 구호처, 행정처)를 구성하도록 돼있으나. 권 전 과장이 계엄사 상황실을 구성하고 있을 당시 국회에서는 ‘비상계엄해제 요구결의안’이 가결됐다. 당시 권 전 과장이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에게 “(계엄해제 요구안이 가결됐으니) 법률상 지체 없이 계엄을 해제하도록 돼있다”고 말하자 박 전 총장은 “그런 것을 조언할 것이 아니라 일이 되게끔 만들어야지 일머리가 없다”며 “올해 연습을 두 번이나 했다고 하면서 구성을 왜 빨리 못하냐”고 꾸짖었다고 한다. 이는 내란 주동자들이 2차 계엄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계엄사 구성의 역할이 합참에 있었다는 것을 내포하는 대목이다.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