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세 먹는 학교 정체는?

교부금 새는 그린스마트스쿨

[일요시사 취재1팀] 옥지훈 기자 = 나라 곳간이 빚더미에 가득하다는데 교육청 현실은 달랐다. 학령인구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는 가운데 교육현장과는 달리 지방교육재정교부금(교부금)은 쌓여가고 있다. 세금 증가에 따른 내국세의 20.79%가 수요와 무관하게 교부금으로 자동 배정된다. 지방교육청 예산은 기금을 통해 쌓여가고 있지만, 현행법 조항상 중앙정부는 지방교육청에 매년 교육예산을 보내야 한다. 일부 지역에선 교육감이 재선을 노리면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필두로 한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업이 ‘그린스마트 미래학교’다.

전국 17개 시·도 교육청이 예산을 집행할 사용처를 찾지 못해 적립한 기금 규모만 지난해 말 기준 21조원이 훌쩍 넘는다. 지난해 5조4041억원 대비 4배로 증가한 규모다. 교육청은 매년 내국세 20.79%를 교부금으로 받는다. 올해 책정한 교부금은 80조1134억원이다. 

문재인정부의 뉴딜 사업 핵심 중 하나인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사업은 최근 5년간 20조3000억원이 투입됐다. 그러나 지난해에도 사업 운영비의 예산 집행률이 절반도 되지 않아 예산을 과다 집행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일었다. 교부금 기금이 큰 폭으로 상승한 것에는 그린스마트 사업이 한몫했다는 평가다. 

선심성 정책

전국 시·도 교육청서 지방교육제정을 방만하게 사용한 정황이 드러났다. 기금 규모가 커진 만큼 여유가 생긴 교육청이 선심성 정책을 펼치는 모양새다. 국무조정실 정부합동 부패예방추진단이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5월까지 교육부와 지방교육재정 운영 실태를 점검한 결과 총 97건에 달하는 위법 사례가 발생했다.

액수는 282억원 규모로 밝혀졌다.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전환사업 운영비 예산 중 목적과 전혀 다른 지출이 발생해 논란이 일었다. 전국 노후 학교 건물을 개·보수한다는 기존 목적과는 다르게 서울과 충남의 한 중학교서 뮤지컬 관람비로 각각 700만원, 400만원을 지출했다. 경기도 소재의 한 고등학교 교직원은 바리스타 취득 연수를 위해 220만원을 집행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인천 한 고교에선 야식으로 치킨 21만원어치를 시켜 먹었고, 경남의 한 고교에선 음파전동칫솔 구입비로 290만원을 썼다. 목적성이 다른 지출을 포함하면 총3억7000만원이 지출됐다.

교부금으로 운영되는 남북교육협력기금은 북한에 물품들을 제공하는 과정서 증빙자료가 불충분한 상태로 사업이 종료됐다. 기금이 설치된 8개의 교육청은 최근 3년간 기금 122억원을 적립하고 44억원만 집행해 36.4%에 달했다. 모 교육청은 대북 인도적 지원 물품 반출에 용역계약을 체결할 당시 특정단체와 반복적으로 1인 수의계약을 체결한 정황이 드러났다.

서울시교육청은 2021년 287억원의 예산을 들여 서울 지역 중학교 1학년 교실에 전자칠판을 설치했다. 그러나 전자칠판 설치를 두고 예산 낭비라는 지적이 나왔다. 새로 개교한 학교나 시설을 교체한 지 얼마 안 된 학교에도 예산을 집행한 데다, 전자칠판이 아니더라도 기존 빔프로젝트와 컴퓨터를 이용한 디지털 자료를 수업에 활용할 수 있었던 탓이다.

예산 넘치는데 사용처가 없어서?
건물 개·보수하랬더니 웬 뮤지컬?

논란이 커지자 서울시의회는 지난해 말 서울교육청 예산 심의서 전자칠판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경북도교육청은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사업 추진과 관련해 중복투자 문제가 심해 예산 낭비 지적을 받았다. 기존 노후 학교시설을 리모델링, 소방시설 개선, 냉난방시설 개선, 석면 해체 등을 신청해 공사를 진행한 후 개축 대상에 선정되면 완전히 철거하는 경우가 발생했다.

경북 울릉군 소재 모 학교는 최근 5년간 7건의 개선 공사로 약 9억3000만원을 들여놓고 곧 철거를 앞둔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해당 도교육청 관계자는 “석면 해체공사의 경우 철거가 결정되더라도 똑같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중복이 아니지만 시설 개선 후 그린스마트스쿨 사업 선정 시 일어난 개축의 문제점을 인정한다”며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민간단체 보조금에 이어 교부금에도 전 정부 시절 예산 관리·감독 문제를 향한 공세를 이어갔다.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사업의 경우 집행 세부지침을 정비하고 사업 이행계획서를 의무적으로 제출하는 근거가 마련될 예정이다.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점검 결과에 대해 “예산의 편법적 사용과 낭비적 집행사례가 다수 발견돼 제도개선 방안을 적극 이행하고 점검해나갈 것”이라며 “관련 부처와 함께 관리·감독도 강화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이어 위법한 사례에 대해선 수사 의뢰를 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방교육재정교부금 합동 점검에도 대규모 위법, 부당사례가 적발됐다”며 “학령인구는 줄어드는데 세수는 증가해 교부금이 증가한 사례서도 보조금과 관련한 남발 검증과 관리가 이뤄지지 않아 부정과 비리의 토양이 됐다”고 말했다.

돈 넘치나? 개정 시급한데...
총선 앞두고 몸 사리는 정부 

그러면서 “혈세가 포퓰리즘의 먹잇감이 되고 지난 정부서만 400조원의 국가채무가 쌓였는데 이는 납세자에 대한 사기이자 미래세대에 대한 착취”라고 지적했다.

윤석열정부는 유아교육·보육 관리체계 통합(유보통합)을 국정과제로 삼고 2025년 시행을 목표로 삼았다. 이에 정부는 초·중·고 교육에만 배정된 교부금을 대학에 이어 어린이집에도 지원하려고 하자 교육감들이 일제히 반대하고 나섰다. 어린이집은 보건복지부 소관인 데다, 필요한 재원은 별도의 재원 확보 계획을 수립해 나서야 된다는 것이다.

윤정부는 출범 당시에도 교부금을 개편하겠다며 의지를 피력했던 바 있다. 초·중·고 교육비로만 사용할 수 있는 교부금을 대학과 평생교육으로 확대하겠다는 것이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재정전략회의서 교부금의 일부인 3조6000억원을 고등·평생교육 지원특별회계를 신설하겠다고 했지만, 국회 심의 과정서 1조5000억원으로 삭감됐다.

교육감들은 이마저도 반발하고 나섰다. 교육감협의회장인 조희연 서울교육감은 “지난해 이미 예산 1조5000억원을 대학생 형과 언니들에게 양보했던 초·중등 학생들에게 이번에는 동생한테까지 양보하라는 건 가혹하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내국세를 떼어 교육청에 지급하도록 의무화한 교부금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지적했지만, 이번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선 논의되지 않았다. 이번 회의서 국가재정의 방향성을 담은 ‘재정비전 2050’ 발표는 관계 부처와 이해관계자의 의견수렴이 필요하다며 시기를 미뤘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지방교부세와 지방교육재정교부금 등 지방교부금 제도를 손질하는 방안도 있었지만 거센 반발을 우려해 최근 삭제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정치권 눈치만

재정전략회의는 내년 예산안과 향후 5년간 재정운용 방향을 설정하는 회의체다. 올해 변수는 대규모 ‘세수 펑크’로 인한 내년도 지출 증가율 방향성 설정이다. 총선 악재 우려 속에서도 윤정부 출범 당시 강조한 건전재정 기조를 유지하겠다고 밝혔으며 교부금 개정 논의는 미뤄졌다.

지출 감소는 복지 축소와 그린스마트 사업과 같은 인프라 사업 지연으로 이어질 수 있어 내년 22대 총선서 복지 선거전략 등 힘을 받아야 할 여당 의원들의 우려가 나온다. 일각에선 총선을 앞둔 정치권이 교육계의 반발을 핑계로 묵묵부답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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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