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김청수 ‘법무법인 백현’ 변호사

경찰서 변호사로 ‘1%의 남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법고시를 판·검사로 가는 길목으로 여긴다. 실제 사법고시를 패스하고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대다수는 판사와 검사 혹은 변호사의 길을 걷는다. 소수의 사람들만 다른 방향으로 걷는다. 김청수 변호사도 그 소수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경찰의 길을 택했다.

“오랫동안 공격만 해오다가 이제는 방어를 하고 있는 셈입니다.” 경찰로 20년, 변호사로 6년을 활동한 법무법인 백현 김청수 대표변호사의 말이다. 김 변호사는 지난 2월 서울 강남으로 사무실을 이전했다. 지난 16일 오후 여전히 ‘새 것’ 냄새가 나는 법무법인 백현의 사무실서 김 변호사를 만났다. 

공격 20년

김 변호사는 43회 사법고시에 합격, 사법연수원을 33기로 수료했다. 사법연수원 수료 직후 그는 경찰 고급 간부로 특별채용돼 경찰청 중대범죄수사과장, 서울청 지능범죄수사대장 등으로 근무했다. 중대범죄수사과는 전 특수수사과, 지능범죄수사대는 전 금융범죄수사대(현 반부패공공수사대)로 김 변호사는 특수·공안 전문수사관으로 활약했다. 

김 변호사가 사법연수원을 수료할 때쯤 각 국가기관서 취업설명회를 열었다. 경찰청은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취업설명회에 왔다고 한다. 당시 경찰청 경무기획국장은 “검찰이나 경찰이나 실질적으로 범죄를 소탕해 정의를 구현하는 일을 한다. 동일한 업무다. 그런데 방법적인 측면서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의 인생을 바꿔 놓은 말이다. 


김 변호사는 “그러면서 ‘검사는 자기가 직접 일을 해야 한다. 그리고 같이 일하는 사람이 몇 명 없기 때문에 조직범죄 같은 큰 사건은 직접 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경찰은 인력이 풍부해 많게는 100명, 적게는 30~40명의 부하 직원과 함께 큰 사건을 진두지휘해 소탕하는 보람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조직을 실질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환경, 범죄수사에 대한 열망 등이 김 변호사를 경찰로 이끌었다. 김 변호사는 자신의 선택에 “남자가 할만한 일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사법연수원 33기 수료생은 966명이다. 이 가운데 김 변호사를 포함한 8명이 경찰로 진로를 결정했다. 전체의 1%도 안 되는 숫자다.

김 변호사는 집회·시위를 관리하는 경비과장으로 시작해 이후 수사업무에 매진했다. 그는 “팀원 5~10명과 함께 직접 수사를 시작했을 때부터 상당히 보람을 느꼈고 또 경찰에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경찰이 맡고 있는 다양한 분야 중 수사업무가 법률전문가로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판단했다.

사법연수원 수료 후 특채
수료생 900여명 중 8명만

그러면서 “살인이나 강도 같은 강력범죄는 현장 기동성이라든지 역동성이 중요하다. 현장을 뛰어다니면서 증거를 수집해 범인을 잡는 일은 경찰만 할 수 있다. 실제 강력범죄가 일어났을 때 용의자를 특정하고 범인을 검거하는 일은 경찰의 노하우가 많이 쌓여있고 상당히 발전돼있는 편”이라고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경찰의 능력치가 이미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는 강력범죄 대신 공안범죄나 경제범죄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경제범죄 같은 경우에는 법률 적용이나 법리 검토, 인권보장 등의 부분에서 검사와 차이를 보인다. 그래서 이 부분을 발전시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범죄수사, 그 중에서도 공안·경제범죄가 법률전문가의 전문성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본 것이다.


김 변호사는 20여년의 경찰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으로 ‘구의역 스크린도어 직원 사망사고’를 언급했다. 2016년 서울 구의역서 용역업체 직원 김모군이 스크린도어 수리 작업을 하다 열차와 스크린도어 사이에 끼여 사망했다. 당시 김군의 나이는 19세였다. 사고 직후 확인된 김군의 소지품서 컵라면이 나와 많은 사람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당시 가장 많이 나왔던 말이 ‘위험의 외주화’였습니다. 사고가 일어났을 때 서울메트로는 외주를 줬기 때문에 책임이 없다는 식으로 말했습니다. 이 부분에 책임 소재를 규명해보자는 생각에 대대적으로 수사를 진행하게 됐죠. 또 관리·감독은 서울메트로의 역할이었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도 집중 수사했던 기억이 납니다.”

위험의 외주화는 기업이 유해하고 위험한 업무를 하청업체 노동자 등 외부에 떠넘기는 것을 말한다. 김 변호사는 “관리·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자기들은 책임이 없다고 발뺌하는 것은 상당히 문제가 있지 않나”라며 “수사를 통해 사실관계를 밝히고 처벌함으로서 재발을 방지하자는 생각으로 수사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결국 운용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제도가 아무리 완벽해도 운용은 사람의 몫이라는 설명이다.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건 기억 남아
“제도는 결국 사람이 운용하는 것”

김 변호사는 “제도가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사람이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따라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도 있고 불의의 사고가 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서울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장을 끝으로 경찰을 떠난 이유로는 건강을 꼽았다. 스트레스가 심해 건강이 악화되자 제2의 인생을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김 변호사는 법무법인 율촌서 근무하다 법무법인 백현을 개업해 대표변호사를 맡고 있다. 백현이라는 이름은 ‘백 명의 현자’라는 뜻에서 붙였다.

김 변호사는 “의뢰인이 사건을 가져오면 해결책을 제공해야 하는데 이때 혼자만의 판단보다는 여러 명이 뜻을 모아 토의해 최고의 해결책을 제공하자는 의미서 백현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또 변호사가 100명 근무하는 대형 로펌으로 규모를 키우자는 의미도 있다”고 웃음을 터트렸다. 

경찰과 변호사의 차이에 대해서는 ‘공격과 방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공격(수사)을 할 때는 정보가 20% 정도밖에 없는데 방어(변호)를 할 때는 80% 정도의 정보를 갖고 진행하기 때문에 후자 쪽이 쉽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수사 과정서 정보를 확보하지만 변호사는 의뢰인을 통해 내용을 미리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공격, 즉 수사업무가 더 자신과 잘 맞는다면서도 경찰과 변호사 일 모두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경찰일 때는 범죄를 수사하고 범인을 검거하는 일에, 변호사일 때는 억울한 사정의 의뢰인을 돕는 일에 즐거움이 있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동료 변호사에게 정도를 걷는 품위 있는 변호사를 지향하자고 말한다. 변호사 수가 늘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자존감을 떨어뜨리면서까지 사건을 수임하려는 모습을 지양하자는 의미다. 그는 “누군가는 그렇게 하면 ‘굶어 죽는 거 아니냐’고 얘기한다. 하지만 진정성 있게 일하다 보면 고객이 먼저 알고 찾아주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방어 6년


“언젠가는 다시 국가에 봉사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고위직으로 간다던가 하는 게 아니라 필요한 사람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일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수임료를 받지 않는, 통상적으로 무료변론이라는 말을 쓰는데 그런 거창한 표현보다는 필요한 곳에 도움을 주고 싶어요.”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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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