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신 빙속 여제’ 김민선

이상화 넘는다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제2의 이상화’라는 수식어를 떨쳐내고 ‘제1의 김민선’으로 우뚝 섰다. 이상화 이후 스피드스케이팅계의 최고 기대주로 꼽히는 김민선이 이상화의 기록을 하나씩 넘어서고 있다. 최근 세계대회서도 압도적인 기량을 과시하고 있는 김민선에게 ‘원조 빙속 여제’ 이상화 역시 아낌없는 격려를 보내고 있다.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에이스’ 김민선이 제104회 전국동계체육대회(이하 동계체전)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대회 폐회일인 지난 20일, 대한체육회는 한국체육기자연맹 기자단 투표 결과 김민선이 MVP로 선정됐다고 전했다.

김민선은 이번 동계체전서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일반부 500m, 1000m, 팀추월 종목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대회 3관왕에 등극했다. 이 중 500m(37초90)와 1000m(1분16초35)에선 대회 신기록을 경신했다. 둘 모두 이상화의 종전 기록을 넘어선 것.

새로운 기록
대회 휩쓸다

사실 대회 전체로 시야를 넓히면 김민선의 3관왕 기록이 희귀하다고 평할 수는 없다. 이번 대회서 3관왕을 22명이나 배출했던 데다 4관왕은 10명에, 5관왕도 2명 나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김민선이 MVP로 뽑힌 이유는 최근 국제대회를 휩쓴 후광효과가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김민선은 체육기자연맹 투표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김민선은 국제빙상경기연맹(ISU)이 주관하는 2022-2023 시즌 월드컵서 금메달 5개를 따냈다. 올해 초에는 2023 레이크플래시드 동계세계대학경기대회에 출전해 3관왕에 올랐다. 이런 와중에 국내 최대 대회인 동계체전에서도 호성적을 거두자, 여러 성과를 종합해 ‘신 빙속 여제’ 대관식을 열어준 모양새다.

김민선은 “국내서 열리는 가장 큰 대회인 동계체전에서 MVP를 수상하게 돼 기쁘고 감사드린다”며 “이번 동계체전은 개인적으로는 대회 신기록을 경신해 더 큰 의미가 있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러면서 “의미 있는 상을 받은 만큼 세계선수권대회서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김민선은 11세 때 처음 스케이트를 신었다. 다른 스케이팅 선수들에 비해서는 다소 늦은 나이였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서 이상화가 스피드스케이팅 500m 종목서 금메달을 따는 모습에 반해 처음 스케이트를 신었다고 한다. 

하지만 김민선은 처음에 피겨 스케이팅으로 스케이팅을 시작했다. 그러다 쇼트트랙으로 종목을 한 차례 변경했고, 다시 스피드스케이팅을 권유받았다. 김민선은 6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스피드스케이팅을 시작했다.

이후 김민선은 각종 주니어 대회를 휩쓸면서 이상화의 뒤를 이을 주역으로 눈도장을 찍었다. 김민선은 초·중등부 시절 동계체전 스피드스케이팅 단거리 종목(500m, 1000m)서 매번 상위권 성적을 기록했다. 고등학교 2학년이던 2016년에는 릴레함메르 청소년 동계올림픽에 출전해 500m 금메달, 매스스타트 동메달을 획득했다.

2017년 9월 국제빙상경기연맹 폴클래식 여자 500m서 37초70을 기록했다. 이상화가 10년 전 세웠던 세계주니어신기록 37초81을 뛰어넘는 기록이었다.

하지만 당시 김민선의 기록은 공인기록으로 인정되지 못했다. ISU 규정상 세계신기록을 수립한 선수는 도핑검사를 해야 하는데, 주최 측 과실로 김민선의 도핑검사가 이뤄지지 않은 탓이다. 결국 당시 김민선이 세운 기록은 비공인 기록으로 남게 됐다.


동계체전 3관왕…대회 신기록 ‘MVP’
ISU 주관 2022-2023 월드컵 금메달 5개

김민선은 3개월 후인 2017년 12월 2017-2018 ISU 월드컵 4차 대회에 출전해 세계주니어기록을 재차 경신했다. 그는 37초78의 기록으로 이상화가 세운 기록을 0.03초 앞당겼다. 이 기록은 문제없이 공식 기록으로 인정받았다. 

이후 김민선은 국가대표 선발전을 무난히 통과하며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출전권을 자력으로 획득했다. 2017년 제50회 빙상인추모 전국 남녀 종목별 선수권 대회 1000m서도 1위를 차지하며 올림픽 호성적 기대감을 높였다.

실제로 김민선은 같은 해 월드컵 2차 대회서도 6위까지 오르며 성장 가능성을 보여줬다. 소속팀 의정부시청 감독인 제갈성렬은 김민선의 재능과 기량에 관해 “타고난 순발력에 좋은 신체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하체도 길다”며 “특히 스케이팅에 관한 이해도가 좋다. 스펀지 같은 선수다. 얼굴은 아기 같지만 승부욕과 독기가 있다”고 호평했다.

하지만 평창동계올림픽에서는 운이 따르지 않았다. 김민선은 경기 일주일 전 허리 부상을 당하면서 제대로 실력 발휘를 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김민선은 부상을 안고 뛴 500m 경기서 16위를 기록했다.

올림픽서 아쉬움을 삼키고, 부상의 여파로 한동안 잠잠한 시간이 흘렀다. 그런 와중에도 김민선은 꾸준히 성장했다. 그는 2020 사대륙선수권 500m서 38초416을 기록하면서 2위 브루클린 맥두걸을 0.117초 차로 따돌리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김민선은 이 대회서 500m 금메달과 함께 팀스프린트에서도 은메달을 획득했다. 

그의 기량이 본격적으로 만개할 조짐을 보인 건 2021-2022 시즌부터다. 김민선은 이 시즌 1차 월드컵부터 성적과 순위를 꾸준히 끌어올렸다. 특히 캐나다 캘거리 올림픽 오벌서 열린 ISU 월드컵 4차 대회에선 37.205초를 기록해 자신의 500m 최고기록을 새로 썼다. 이는 당시 빙속 여자 대표팀 중에서 가장 좋은 성적이었다. 김민선은 또 한 번의 올림픽을 앞두고 유망주서 기대주로 발돋움하고 있었다.

압도적인 
기량 과시

김민선은 올림픽을 앞두고 열린 제48회 전국남녀 스프린트 스피드스케이팅 선수권대회 겸 제76회 전국남녀 종합 스피드스케이팅 선수권대회 여자 500m 1차 레이스서 38초13을 기록했다. 이는 앞서 이상화가 2012년 수립한 38초18을 0.05초 앞당긴 대회 신기록이다.

뒤이어 3월 네덜란드서 열린 ISU 월드컵 파이널 500m 2차레이스에선 37초58의 기록으로 동메달을 차지했다. 이는 김민선의 첫 월드컵 메달이다.

2022 베이징올림픽 당시, 김민선은 원래 곽윤기와 함께 개막식 공동 기수로 예정돼있었다. 하지만 실제 기수로는 김아랑이 나섰다. 이는 경기에 집중하고 싶다는 김민선의 의지에 따른 것이었다.


김민선은 주종목인 500m서 10조로 배정받아 일본 베테랑 선수인 고 아리사와 경기를 펼쳤다. 이날 김민선은 37초60을 기록해 전체 7위에 올랐다. 4년 전 자신의 기록을 1초 앞당겼다. 1000m에서는 8조에 배정됐다. 단거리 주자인 김민선은 초반 200m서 17초71를 기록했지만, 뒷심 부족으로 1분16초49의 기록으로 전체 16위에 올랐다.

터질 듯 말 듯 꾸준한 기대를 모았던 김민선의 기량은 올림픽을 두 번 경험하면서 비로소 만개했다.

김민선은 2022-2023시즌 1차 월드컵서 37초55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차지했다. 베이징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에린 잭슨, 은메달리스트 다카기 미호 등 쟁쟁한 선수가 대거 출전했던 대회서 2위를 무려 0.51초 차로 따돌리고 거둔 성과였다.

이 금메달은 개인으로서도 월드컵 첫 금메달인 동시에, 한국 빙상계로서도 이상화 이후 오랜만에 탈환한 월드컵 금메달이다. 같은 대회 1000m 종목에서는 네덜란드의 유타 레이르담에게 0.21초 뒤진 기록으로 은메달을 획득했다.

2차 월드컵 500m에선 같은 조 선수보다 한발 늦게 출발했음에도, 2위를 0.27초 차이로 넉넉히 따돌리며 재차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날 김민선의 기록은 37초21이었다. 김민선은 이 기록으로 1차 월드컵의 선전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음을 스스로 입증해보였다.

3차 월드컵에선 부정 출발을 범해 심리적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도 참가자 중 유일한 36초대 기록(36초97)을 남겼다. 100m 구간을 참가자 중 가장 빠른 10초46으로 통과한 뒤, 페이스를 끝까지 유지한 것이 주효했다. 김민선은 3연패와 함께 개인 최고기록을 경신하는 기쁨을 누렸다.


장기 집권
가능할까

이 대회 1000m서 김민선은 6위를 기록했지만 개인 최고기록(1분13초794)을 새로 쓰며 발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4차 월드컵 500m에선 물오른 기량을 과시하며 월드컵 4연패를 달성했다. 36초96으로 개인 최고기록을 또 다시 경신했다. 유력 우승후보로 꼽혔던 다카기 미호는 37초26,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에린 잭슨은 37초35로 김민선의 뒤를 이었다.

김민선은 5차 월드컵에서도 압도적인 기량을 선보였다. 500m서 모든 출전 선수 중 유일하게 37초대 기록(37초90)을 남겼다. 김민선은 월드컵 5연패를 달성하며 시즌 전관왕 달성 가능성을 키웠다.

하지만 김민선의 도전은 한 끝이 모자랐다. 김민선은 6차 월드컵에 출전해 500m서 38초08의 기록으로 아쉽게 2위를 차지했다. 1위 바네사 헤어초크의 37초96에 0.12초 뒤진 기록이었다. 수개월간 국내·북미·유럽을 오가며 강행군을 펼치면서 체력적 한계에 부딪힌 게 아쉬운 대목이었다.

단일 시즌 전관왕은 현역 시절 이상화도 갖지 못한 대기록이다. 이상화는 2013-2014시즌 월드컵 1~7차 레이스서 모두 우승하고도 전관왕 등극이 불발됐다.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서 500m 2연패에 성공한 후 남은 월드컵 대회에 모두 불참했기 때문이다.

김민선은 아쉬움을 뒤로한 채 지난해 12월 캐나다 퀘벡서 열린 ISU 스피드스케이팅 사대륙선수권대회에 참가했다. 이 대회에서 김민선은 38초141을 기록하며 다시 금메달 사냥에 나섰다. 이번에는 뒷심이 돋보였다. 7조서 레이스를 펼친 김민선은 첫 100m 구간을 4위(10초68)로 통과하고도 무서운 뒷심으로 1위에 올랐다.

김민선은 이후 열린 1000m에서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상화와 예니 볼프 등 여러 전설적인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들은 긴 전성기를 누렸다. 김민선 역시 강력한 경쟁자가 등장하지 않는 이상 ‘장기 집권’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김민선 역시 현시점 정상급 선수로 꼽히지만, 지금까지 목에 건 메달 수는 전설로 불리는 선수들에 비해 한참 적은 편이다. 다만 빙상계에서는 과거 사례에 비춰 김민선이 일단 정상권에 진입하면 독주체제를 굳히길 가능성이 크다는 기대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김 “이상화 수식어 부담? 자극제 된다”
이 “‘제2 이상화’보단 본인 이름으로”

2000년대 중후반을 주름잡은 독일의 전설적인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예니 볼프는 월드컵서 금메달 49개를 휩쓸었다. 보니 블레어가 39개, 이상화 36개, 고다이라 나오 28개, 캐트리오나 르메이돈 27개 순으로 그 뒤를 잇는다.
이들은 짧게는 5년에서 길게는 10년까지 정상권을 유지했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김민선에게는 동계올림픽 금메달이 주된 동기로 작용한다. 김민선이 오는 2026년 열릴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동계올림픽 금메달을 목표로 기량을 발전시켜 나간다면 앞으로 더 많은 메달을 목에 걸 수 있다는 것.

다만 허리 부상 재발을 조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민선은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직전 허리 부상을 입은 뒤 2년간 주춤한 바 있다. 빙상계에서는 김민선이 허리를 잘 관리해 부상 재발을 막을 수만 있다면 빙속 여자 500m서 김민선의 전성시대가 열릴 수 있다고 본다.

김민선은 어린 시절부터 일찌감치 ‘포스트 이상화’로 주목받으며 항상 이상화와 비교돼왔다. 전설적인 선배와 비교되는 것이 부담일 수도 있겠지만, 김민선은 오히려 긍정적인 반응이다.

김민선은 언론 인터뷰서 관련 질문을 받고 “제가 국가대표에 선발됐던 17세 때부터 저에 대해 써 주신 모든 기사에 이상화라는 수식어가 붙었지만,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부담으로 느껴지진 않는다”면서 “오히려 많은 분이 제가 상화 언니만큼 잘할 수 있는 선수라고 믿어 주시고 지켜봐주신다고 생각해서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자극제가 된다”고 답했다.

김민선은 이번 시즌 월드컵 1차 대회서 여자 1000m 은메달을 획득한 뒤 “상화 언니가 꿈에 나왔다”고 말해 화제를 모았다. 이어 시즌 후반에는 “이번엔 꿈에 안 나왔다. 4차 대회 끝나고 축하 문자는 왔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상화와 김민선은 실제로도 돈독한 친분을 유지하는 관계로 알려졌다. 김민선은 2020년 7월 SBS 모바일 24 <배거슨 라이브 ㅅㅅㅅ>에 출연해 이상화와의 인연을 언급했다. 

김민선은 해당 방송서 “이상화와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당시 같은 방을 썼는데, 10세 이상 나이 차가 나서 오히려 편했다”며 “이상화가 밥도 많이 사줬다”고 말했다. 

이상화 역시 꾸준히 김민선을 응원하는 모습이다. 이상화는 김민선을 두고 “성숙한 정신력과 강한 집중력을 갖춘 선수고, 마치 어렸을 적 내 모습을 보는 것 같다”고 칭찬했다.

이상화는 은퇴 후에도 각종 방송에 출연할 때 김민선을 여러 번 언급했다. 김민선은 2021년 2월 방영된 SBS <동상이몽2 너는 내 운명> 이상화&강남 편에 함께 출연했다. 김민선이 이상화 부부와 함께 식사하는 모습이 방영됐다. 방송에서 김민선은 이상화가 가장 아끼는 후배로 소개됐다.

또 이상화는 지난해 2월 E채널 <노는 언니>에 출연해 2022년 베이징동계올림픽 기대주로 김민선을 꼽았다. 그러면서 세간에서 김민선을 ‘제2의 이상화’라고 부르는 것을 두고 “그것보다는 본인(김민선)의 이름으로 불러주면 좋겠다”고 뜻을 밝히기도 했다.

이상화 왕관
새로운 주인

김민선은 이상화를 넘어서기 위한 발전 방향도 스스로 찾아냈다. 김민선은 이상화가 세계신기록을 세우던 시절 초반 100m 기록이 10초09였다는 점을 언급하며 “제 기록보다 0.1초가량 빠르다. 그 부분을 앞당기면 그 이후도 좋아질 거라고 생각한다. 스타트가 마음처럼 쉽게 되진 않는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보완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민선은 다음 달 치러지는 세계선수권 대회서 세계 최정상 자리에 다시 한번 도전한다. 관건은 컨디션 조절이다. 김민선이 세 대륙을 오간 강행군으로 생긴 피로를 풀고, 몸 상태를 제대로 끌어올릴 수만 있다면 우승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전망이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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닻 올린 이재명호 눈앞 암초들

닻 올린 이재명호 눈앞 암초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21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비상계엄 사태와 대통령 탄핵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서 국민은 정권교체를 선택했다. 3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뤄냈지만 이재명 대통령의 앞길이 마냥 순탄치만은 않아 보인다. 지난 3일 치러진 6·3 조기 대선서 이재명 신임 대통령은 득표율 49.42%로 역대 대통령 중 최다 득표수를 기록했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는 8.34%,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는 0.98%를 각각 기록했다. 넘지 못한 과반의 벽 잠정 집계된 이번 대선 투표율은 지난 20대 대선보다 2.3%p 높은 79.4%였다. 이는 지난 1997년 투표율 80.7%를 기록한 15대 대선 이후 28년 만에 가장 높은 대선 투표율이다. 이를 두고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내란 세력을 심판하기 위한 국민의 뜨거운 의지”라고 입 모아 말했다. 지난 20대 대선서 양 후보 간의 득표율 차이는 0.7%p이었던 만큼 이번 역시 두 후보 간의 격차가 관전 포인트로 제시됐다. 지난 3일 지상파 방송 3사(KBS·MBC·SBS)가 한국방송협회와 함께 실시한 대선 출구조사에 따르면 이재명 후보는 51.7%, 김문수 후보는 39.3%로 두 후보간의 격차는 두 자릿수로 크게 벌어졌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이 대통령의 과반이 예상됐지만, 실제 투표함을 열자 김 후보가 40%대로 진입한 반면 이 대통령은 50%를 넘지 못했다. 두 사람 간의 격차는 289만표인 8.27%p였다. 한 민주당 초선 의원 역시 출구조사 발표 직후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서 “4%만 더 얻어서 55%로 안정 궤도를 유지하면 좋았을 것”이라며 내심 아쉬움을 비쳤다. 민주당은 선거 기간 동안 공을 들인 TK(대구·경북)서도 약세를 보였다. 선거관리위원회 개표 마감 결과 대구서 김 후보가 67.62% 득표한 반면, 이 대통령은 23.22%에 그쳤다. 경북서도 김 후보는 66.87%, 이 대통령은 25.52%로 지난 20대 대선과 비슷한 양상을 띠었다. 초유의 사태인 비상계엄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임에도 격차가 크지 않고 보수 지역서 30% 벽을 넘지 못했다는 한계점이 제시된다. 40% 지지율을 등에 업은 국민의힘과 거대 여당인 민주당의 충돌은 불가피해 보인다. 이전까지는 민주당이 과반 의석수로 법안을 통과시키면 대통령 혹은 국무총리가 거부권을 행사해 국회로 되돌리는 방식이었지만, ‘찐명’으로 꼽히는 김민석 전 최고위원이 국무총리로 내정된 마당에 더는 국민의힘이 손쓸 방법이 없다. 빗나간 출구조사…TK도 20%대 ‘뚝’ 여대야소 정국 ‘동물 국회’ 재연? 이번 하반기 국회가 역대급 ‘혐오 정치’로 얼룩질까 벌써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이 대통령은 거듭 통합을 강조했다. 지난 4일 국회서 열린 취임 선서식서 “분열의 정치를 끝낸 대통령이 되겠다”며 “국민 통합을 동력으로 삼아 위기를 극복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선서 누구를 지지했든 크게 통합하라는 대통령의 또 다른 의미에 따라 모든 국민을 아우르고 섬기는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도 말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국민 대통합을 위해 대통령 취임 후 첫 오찬 메뉴를 비빔밥으로 준비했다. 우 의장은 “지역과 세대, 계층, 다양한 의견이 모두 대한민국이고, 서로 조화를 이루고 화합하도록 이끄는 통합력이 도약의 동력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설명했다. 머뭇거릴 새도 없이 이 대통령은 곧바로 업무를 시작했다. 함께 국정을 운영할 내각 구성도 시급하다. 당분간은 윤석열 전 정부 출신인 각료들과 한 지붕 밑에서 일을 해야 한다. 조기 대선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 또한 정부 출범 76일 만에 전원 ‘문재인의 사람들’로 불리는 국무위원과 국무회의를 진행했다. 이날에 앞서 문 전 대통령은 취임 후 처음으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진행했는데, 이때 통일·외교·안보 기조가 다른 박근혜정부 인사가 함께였던 만큼 제대로 된 국정 운영이 어려웠다는 푸념도 들려왔다. 이 대통령도 마찬가지로 새 내각 구성 전까지는 ‘윤석열의 사람들’과 나라를 이끌어야 한다. 국무총리를 시작으로 각 부처 장관 등 주요 인사들을 검증하기 위한 인사청문회 등 절차가 남아 있어 내각 전부를 임명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측된다. 어수선한 여의도 안팎 국무위원 선출을 위한 인사청문회 과정도 험난할 전망이다. 지난 3년간 이동관·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 박장범 KBS 사장 후보까지 피 튀기는 청문회가 밤낮으로 이어졌다. 공수교대가 이뤄진 이번 청문회서 국민의힘이 호락호락하게 넘어가지 않을 전망이다. 이 대통령을 둘러싼 다섯 건의 재판도 주목된다. 김혜경 여사의 법인카드 유용 논란과 대선 정국서 불거진 아들 도박 의혹도 논란이지만, 아직 털어내지 못한 본인의 재판들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법조계 등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현재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파기환송심 ▲대장동 배임 및 성남FC 뇌물 의혹 1심 ▲경기도 법인카드 유용 혐의 1심 ▲불법 대북송금 혐의 1심 ▲위증교사 혐의 항소심 등 총 5개의 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은 투표 하루 전날 이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를 꼬집으며 “설사 이재명 후보가 당선된다고 하더라도 재판이 예정대로 열리고 대법원의 유죄 취지 파기환송 결정에 따라 벌금형 100만원 이상의 판결을 받을 경우, 두 달 안에 대선을 또다시 치러야 하는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가장 먼저 예정된 재판은 오는 18일에 열리는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이다. 이는 지난달 1일 대법원이 1심의 무죄 판결을 엎고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사안이다. 만일 재판부가 예정대로 사건을 처리한다면 대법원의 파기환송 결정에 따라 유죄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벌금 100만원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피선거권이 박탈되는데, 이때 대통령직 유지가 가능한지에 대한 논란이 예상된다. 아울러 대통령의 불소추특권을 다루는 헌법 제84조의 해석 논란도 다시 불붙을 예정이다. 막 내리는 용산 시대 민주당은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한 장치를 마련해뒀다. 대선 전부터 민주당은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의 구성 요건서 ‘행위’를 삭제하는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거대 여당인 민주당이 의석수로 법안을 처리할 수 있지만 국민의힘이 주장하는 ‘입법 독재’ 프레임을 우려해 속도 조절에 나섰다. 윤 전 대통령이 개방한 청와대도 풀어야 할 숙제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 2022년 “청와대를 국민께 돌려드리겠다”며 영빈관과 녹지원, 상춘재 등을 일반인에게 공개했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없이 바로 업무를 시작하는 만큼 우선은 청와대 수리를 기다리며 용산 대통령실을 사용할 예정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2일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 출연해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면 용산으로 가는 게 맞다. 대통령실 이전은 큰 비용이 들고 시간이 오래 걸리고 고생도 심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빨리 청와대를 수리해서 그 (수리) 기간만 (용산에) 있다가 청와대로 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대선 예비 후보이던 시절에도 대통령 집무실에 대한 질문에 “상당히 고민이다. (용산 대통령실이) 보안 문제가 매우 심각해 대책이 있어야 되는 것은 분명하다”면서도 “지금 당장 어디 딴 데로 가기가 마땅치가 않다”고 밝혔다. 이어 “국민 혈세를 들여 미리 준비할 수도 없다. 그래서 보안 문제가 있긴 하지만 일단 용산을 쓰면서 다음 단계로 청와대를 신속하게 보수해 그 길로 들어가는 것이 제일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은 윤 전 대통령이 사용하던 용산 집무실 환경에 “황당무계하다”고 밝혔다. 지난 4일 용산 대통령실서 가진 첫 기자회견서 “꼭 무덤 같다. 아무도 없다”며 “필기도구를 제공해 줄 직원도 없다. 컴퓨터도 없고 프린터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직업 공무원 전원을 복귀시켜버린 모양”이라며 “곧바로 다시 원대복귀 명령을 해서 제자리로 복귀시켜야 할 듯싶다”고 덧붙였다. 청와대 보수가 끝나는 대로 이 대통령이 집무실을 옮길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파기환송 선거법, 재판부 의지에 달려 청와대 복구, 극우 반격…험난한 여정 대통령 집무실이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된 만큼 보안과 경호 등이 늘 지적 대상이 됐다. 관련해 한 민주당 관계자는 “청와대가 100% 개방된 건 아니기 때문에 빠르게 보안 작업을 거친다면 올해 안에는 (청와대를) 집무실로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정부종합청사 등 제3의 장소에 임시로 집무실을 마련하는 방안에는 선을 그었다. 그는 JTBC와의 인터뷰서 “국정 책임자의 불편함 또는 찝찝함 때문에 수백억, 수천억을 날리는 게 말이 되느냐”며 “잠깐 (용산서) 조심해서 쓰든지 하고 청와대를 최대한 빨리 보수해서 가야 한다”고 말했다. 끝나지 않은 극우와의 싸움과 테러 위협도 현재 진행형이다. 계엄 옹호, 탄핵 반대 그리고 부정선거를 주장해 온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와 자유통일당 중심의 극우 성향 단체는 이번 대선 결과에 불복해 선동을 이어갔다. 광화문서 지지자들과 개표를 기다리던 전 목사는 출구조사 결과가 공개되자 “선거관리위원회에 쳐들어가자” “불법 선거, 부정 투표”라고 소리쳤다. 황교안 전 국무총리 역시 부정선거론에 다시 불을 지피고 있어 대선이 끝난 후에도 잡음은 이어지고 있다. 황 전 총리는 용인의 한 사전투표소의 관외 회송용 봉투서 이미 기표된 용지가 나온 사례를 언급하며 “지난 대선서도 같은 현상이 발생했고 문자 그대로 부정선거의 스모킹 건”이라며 “그럼에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투표자의 자작극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선관위 시스템이 얼마든지 조작 가능해서 투표 안 한 사람을 한 사람으로 만들고 한 사람을 안 한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 국가정보원 조사 결과와 정확히 일치한다. 이런 선관위를 도저히 믿을 수 있겠나”라며 “선거가 아니라 사기”라고 말했다. 현실 부정 테러 위협 이와 관련해 여권 관계자는 “망상에 불과하다. 갈라치기 정치의 원인”이라고 일축하며 “정치 성향이 맞지 않는 분들께선 지금 시국이 어수선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이번 대선은 내란 세력을 심판한 국민의 선택이라는 걸 잊지 않았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