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지방 살리기 앞장선 장기철 대한민국시도민회연합회 수석부회장

“지방이 살아야 나라가 삽니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지방이 죽어가고 있다. 한두 곳의 일이 아니다. 전국 100여개 넘는 지역이 ‘소멸’ 위기 상태다. 사람이 사라져 더 이상 아무도 살지 않는 상황 정도로 여겨선 안 된다. 인구 유출은 필연적으로 전통의 파괴로 이어진다. <일요시사>가 ‘지방 지킴이’ 장기철 대한민국시도민회연합회 수석부회장을 만나 현재 상황을 진단하고 대책을 물었다. 

바야흐로 위기의 시대다. 기후 위기, 경제위기, 식량 위기 등 전 세계 언론이 인류가 위험한 상황에 처했다고 경고 중이다. 한쪽에서는 폭염으로, 또 다른 한쪽에서는 혹한으로 사람이 죽어간다.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 재난에 각국은 도움의 손길을 보낸다. 대책 마련을 위해 국가 정상들이 한자리에 모이기도 한다. 

다가온 위기
외면하는 사회

아이러니한 부분은 전 세계적 위기엔 우려를 표하면서 정작 코앞까지 다가온 한국의 위기엔 눈을 감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지방소멸’ 위기다. 정부와 정치권이 손 놓고 있는 사이 인구절벽의 쓰나미는 코앞까지 다가왔다. 지난 30여년 간 돈으로 쌓은 방파제는 이미 무너진 지 오래다.

지난 22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출생·사망통계 잠정 결과’는 사회에 충격을 안겼다.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인 합계출산율이 0.78명으로 나타났다. OECD 38개국 중 단연 꼴찌다. 2020년 기준 합계출산율이 1명 미만인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OECD 평균 합계출산율(1.59명)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불과 몇 년 새 인구와 관련해 어마어마한 일이 연이어 일어났습니다. 2020년 인구 데드크로스가 발생했어요. 신생아가 태어나는 것보다 사망하는 노인이 많아지면서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한 거죠. 2019년에는 수도권 인구 비율이 전체 인구의 50%를 넘어서는 ‘사건’이 생겼습니다. 이건 국가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우리나라는 이미 위기 상태예요.”

문제는 인구 감소, 수도권 집중화 현상으로 지방이 직격타를 맞고 있다는 점이다. 2018년 전국 228개 시‧군‧구 중 89개가 ‘소멸 위험’ 지역으로 꼽혔고 2021년 그 숫자는 113개까지 늘어났다. 전국 지자체의 절반 가까이가 말 그대로 사라질 위기인 셈이다.

장기철 수석부회장이 주도한 대한민국시도민회연합회(이하 대도연)는 ‘지방소멸’을 막기 위해 결성된 비영리단체(NGO)다. 

지난 22일 서울 서초구 전라북도민회 사무실에서 만난 장 부회장은 국가 수립 이후 연거푸 일어나고 있는 인구 현상에 정부와 정치권이 손 놓고 있다고 지적했다. 위기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대책 마련의 필요성도 인정하지만 결국 말뿐으로 실제 행동에 나서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한탄이자 개탄이었다. 

인구 데드크로스·수도권 집중
전국 시도민회 모여 대책 마련

장 부회장은 전라북도민회 상임부회장 활동을 하면서 지역의 낙후성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토로했다. 그는 “다른 지역 도민회와 교류하는 과정에서 호남뿐만 아니라 영남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지역의 낙후성에 있어서는 영호남 구별이 없었던 셈이다. 뭉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2019년 5월 대도연을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장 부회장은 정책 지원금, 보조금 등 정부예산으로 지방을 지원하는 방식은 이미 실패했다고 못 박았다. 지난 30년 동안 1000조원에 이르는 예산이 투입됐지만 현재까지 어떤 성과도 없지 않았느냐는 반문이다. 대도연은 법률과 제도로 환경을 ‘확’ 바꿔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김영삼정부 이후 지방 균형발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직접 예산만 300조 이상이 투입됐습니다. 관련 예산까지 따지면 1000조원 이상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는 가위 벌어지듯 커지기만 했어요. 이미 이 방식은 실패한 겁니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세울 파격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대도연에 따르면 큰 도시일수록 합계출산율이 낮은 경향을 보인다. 실제 서울의 경우 0.59명, 부산은 0.72명으로 우리나라 제1‧2도시가 나란히 뒤에서 1~2등을 기록하고 있다. 역으로 말하면 수도권 집중화가 인구감소를 부추기고 있다는 뜻이다.

대도연은 이 부분에 착안해 ‘지방소멸대응특별법’을 내놨다. 많은 공청회와 세미나를 거쳐 다양한 의견을 수렴한 결과다.

지방소멸대응특별법은 대학과 기업을 지방으로 이전시키자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지방소멸대응특별법 태스크포스(TF) 팀장을 겸하고 있는 장 부회장은 지방으로 이전하는 대학과 기업에 거부할 수 없는 혜택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의 역할은 예산지원이 아니라 ‘큰 틀’의 문을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방대학 소멸은 가시권에 접어들었다. ‘벚꽃 피는 순서대로 망한다’는 속설은 어느덧 현실이 되고 있다. 이미 학령인구보다 대학 입학정원이 많은 실정이다.

장 부회장은 “고등학교 3학년이 46만명인데 대학 입학정원은 52만명 정도다. 고3 학생이 전부 대학에 간다 해도 6만명이 부족하다. 한 대학의 신입생 정원이 2000명이라면 30곳이 정원을 채우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대학·기업
옮겨야 한다

그러면서 입학정원을 채우지 못한 대학, 경쟁력 없는 대학을 위해 ‘출구’를 열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학 설립 초기 들어간 자본을 재단이 회수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렇게 되면 부실 대학은 자연스럽게 정리될 것이고, 무너져 가는 지방대학을 살리기 위해 교육부에서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할 필요가 없다는 것. 

“대학을 해산한다고 하면 아마 그 지역에서는 몸살이 날 거예요. 학생은 물론 교수, 교직원, 학교타운을 터전으로 삼고 있는 자영업자, 심지어 동창회까지 복잡한 일이 벌어질 겁니다. 하지만 일단 퇴로를 열어주면 나머지는 재단서 알아서 하게 돼있습니다. 정부가 개입하지 않아도 시장논리에 따라 다 정리가 됩니다.”

대학 수를 줄이기 위한 퇴로 제공과 함께 지방 이전 대학에 ‘어마어마한’ 혜택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부회장은 “연세대 신촌캠퍼스 부지가 20만평 정도 된다. 이 중 보존가치가 있는 5만평은 남기고 나머지 15만평을 상업·주거지역으로 용도변경해주는 거다. 연세대 재단 입장에서는 지방 이전으로 15만평의 개발지역이 생기는 셈”이라고 말했다. 

국립대인 서울대는 프랑스 모델을 차용해 지방거점대학에 단과대학을 보내자고 덧붙였다. 농업 관련 연구기관이 집중돼있는 전북에는 농·생명대학을, 전남에는 예술대학이나 인문대학을, 경북에는 의과대학 등을 보내 지방에 인재가 모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회와 혜택을 지방으로 분산해 교육격차를 줄이자는 주장이다.

일자리 격차를 줄이기 위한 방안도 언급했다. 장 부회장은 인터뷰 과정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인정할 건 인정하자’고 말했다. 현 사회에 녹아들어 이미 고착화된 상황을 인정하고 그 틀 안에서 상황을 바꿔보자는 생각을 드러냈다.

기업 이전도 마찬가지였다. ‘재벌’이라는 우리 사회의 특수한 지위를 인정하고 이를 변화의 지렛대로 삼자는 입장이다. 

“우리나라에서 재벌은 2세를 넘어 3세, 4세로 이어지고 있어요. 재벌에게 가장 중요한 건 ‘잘 이어받는 것’이거든요. 이 과정에서 기업이 가장 골머리를 앓는 부분이 상속·증여세 입니다. 지방으로 이전하는 기업에 대해 한시적으로 상속세나 증여세를 면제해주는 겁니다. 세수 부족을 우려할 수 있는데 내국세에서 상속·증여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3%에 불과합니다.”

파격적 혜택
발상의 전환

대도연은 발상의 전환을 넘어 파격적인 내용으로 가득한 법안을 들고 정치권을 찾았다. 문재인정부 시절 여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서영교 당시 행정안전위원장이, 국민의힘에서는 추경호 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대표 발의했다.


여야를 통틀어 국회의원 200여명이 발의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법안의 필요성에는 여야 없이 공감했다는 뜻이다.

문제는 상임위 심사 과정에서 법안의 핵심 내용이 전부 칼질됐다는 점이다.

장 부회장은 “대도연이 마련한 법안이 이리저리 휘둘린 끝에 행정안전부로 넘어갔다. 행안부는 1년에 1조원씩 10년간 10조원의 지방소멸 대응기금을 조성해 재정을 지원하는 방안을 내놨다. 예산 지원 방식은 이미 실패한 정책인데 다시 돌아간 것”이라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더 큰 문제는 조성된 기금이 내년 선거를 앞둔 ‘국회의원 좋은 일’만 시킨 꼴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매년 발생하는 1조원의 예산을 지방에 분배하는 과정에서 국회의원이 자신의 치적이라고 선전하지 않겠나. 지역구 예산의 명분만 만들어줬다. 고양이 앞에 생선을 맡긴 격”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지난달 이사회서 이 부분에 대한 대도연 관계자의 성토가 이어졌다고 한다. 장 부회장이 언론 인터뷰에 나선 이유도 그 일환이다. 정치권이 아니라 국민에게 직접 지방소멸의 심각성을 알리는 대국민 호소에 나서겠다는 의지다.

이전까지는 ‘왼손이 하는 일은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신념으로 물밑에서만 일해 오다 법안 처리 과정을 거치면서 수면 위로 올라온 셈이다.

“전 세계 어느 나라를 봐도 수도권 집중화가 우리나라만큼 심한 나라가 없습니다. 단연 1등입니다. 두 번째가 일본인데, 일본은 아직 30%로 묶어두고 있어요. 독일의 경우 수도 베를린에 사는 인구가 7~8%도 안 됩니다. 그런데도 최근 베를린 집중도가 높아지니까 이를 막기 위해 다각적인 방법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수도권 집중도가 50%를 돌파한 상황에서도 전혀 움직임이 없다는 지적이다. 공영방송 KBS 기자 출신인 장 부회장은 언론이 심각성에 대해 제대로 보도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언론의 주요 역할인 ‘어젠다 세팅’ 기능이 작동하고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어젠다 세팅은 미디어에서 보도하는 의제가 대중에게도 중요한 의제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장 부회장은 “언론이 국민적 관심사를 부각시켜 줘야 합니다. 우리 세대는 그런대로 버틸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한 세대만 지나면 과거 주변 나라로부터 원조를 받았던 때로 회귀할 수도 있어요. 1970년 출생아 수가 100만명이었습니다. 50년 만에 4분의 1 토막이 난 거죠. 우리나라 인구가 50년 만에 줄어들 거라고 누가 생각했겠어요?”

향토문화 복원에도 힘써
다채로운 경험 지역 위해

지방소멸에 대한 장 부회장의 안타까움은 컸다. 전북 정읍서 태어난 그는 고향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전북대를 졸업했다. 2008년과 2012년 정읍시에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두 번의 낙선은 뼈아픈 부분이었지만 그 경험을 통해 지역에 대한 애착은 커졌다고 한다.

선거를 위해 지역에 머물고 지역민과 부대끼면서 현지 상황을 소상히 알게 됐기 때문.

사단법인 정읍 수제천 보존위원회 이사장을 맡은 것도 그 연장선상이다. 수제천의 원래 이름은 ‘정읍’이다.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배우는 ‘정읍사’가 수제천의 노래가사라고 생각하면 된다. 삼국시대의 고대가요로 현존하는 유일한 백제 문학이다.

통일신라, 고려, 조선을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궁중음악으로 또 민중음악으로 이어져 내려왔다. 

“정읍사가 어떻게 궁중음악이 됐을까 상상을 해보는 거죠. 고려는 우리 민족사를 통틀어 가장 자주적인 왕조였다고 합니다. 고려 조정에서 중국과의 차별화를 위해 정읍사를 궁중음악으로 가져다 쓴 게 아닐까 싶어요. 조정과 민간에서 각각 전해져 내려오다 조선시대 음악을 집대성한 <악학궤범>에 실리게 된 거죠.”

수제천이라는 이름이 붙은 건 조선 순조 때다. 소명세자가 아버지 순조의 환갑날 이 정읍사를 ‘업그레이드’해 수제천이라는 이름을 붙여 장중한 궁중음악으로 만들었다. 실학이 융성하던 시기였다. 민족적 자주성이 부각될 때마다 수제천이 역할을 한 셈이다.

현대 들어서는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이 자신의 음악적 모티브가 수제천에서 비롯됐다고 밝히면서 비상한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현재 수제천에 대한 관심은 전무하다시피 하다. 정읍 지역에서만 향토문화로 여겨질 뿐 국민적 관심은 거의 없는 상태다. 장 부회장은 지방소멸에서 비롯된 인재 유출이 가져온 결과라고 꼬집었다. 지역 인재가 수도권으로 향하면서 향토문화를 지키고 자리매김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지역의 향토문화에 대한 긍지나 자긍심을 이어나갈 인재가 줄어들다보니 제대로 조명을 못 받았다. 또 고도의 산업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문화적인 것이 많이 잊히기도 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장 부회장은 수제천의 무형문화재 등록을 넘어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록을 준비하고 있다.

수제천은 정읍사에서 변형돼 기악곡과 관악곡으로 연주된다. 정읍사는 말 그대로 노래가사로 음악은 없는 상태다. 장 부회장은 당시 문헌 등을 기반으로 멜로디와 춤에 대한 복원을 마쳤다. 여기에 수제천의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학술대회도 진행하고 있다. 올해가 지나면 수제천의 무형문화재 등록을 위한 토대는 완성되는 셈이다. 

인재 유출
전통 파괴로

“저는 지역서 나고 자라고 공부해 서울로 올라가 오랜 시간 다채로운 경험을 했습니다. 공영방송 KBS 기자, 대학교수, NGO 수석부회장 등 남들이 하기 힘든 경험을 많이 한 편이죠. 이 경험 토대로 지방 살리기에 헌신하고 싶습니다. 지방은 점차 작아지고 고유의 것은 잊혀가는 현 상황을 바꿔야 한다는 소명의식과 사명감을 가지고 계속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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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