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현 대표’ 바라는 민주당 속내

계산기 두드리고 ‘만만하네∼’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그동안 더불어민주당에게 국민의힘 문제는 뒷전이었다. 당 대표를 끌어내리던 윤핵관이 실언하던 민주당은 그들 문제에 큰 관심을 두지 못했다. 그러나 3월로 다가온 전당대회에는 비로소 눈길을 돌리는 모양새다. 민주당은 누가 국민의힘 대표가 되면 본인들에게 유리할지 벌써 계산해두고 있다. 그들이 원하는 차기 국민의힘 대표는 요즘 각종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김기현 의원이었다.

월드컵 개막식만큼이나 주목받는 것이 조 추첨식이다. 보통 월드컵 개막 반년 전쯤 실시되는 월드컵 조 추첨은 본선 참가국 모두의 관심사다. 상대국이 누구냐에 따라 출전 엔트리를 달리 선발할 수 있고, 그 나라의 특색에 따라 전술을 새로 짤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몇몇 유명 감독과 코치진은 조 추첨 전까지는 어떤 전략도, 엔트리도 결정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엎치락
뒤치락 

상대에 따라 전략을 달리 짜는 문제는 비단 스포츠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정당 간의 선거전에서도 종종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있는데, 지난해 지방선거와 대통령선거에서 있었던 양당 싸움이 그 좋은 예다.

지난해 대통령선거에서 맞붙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각자 같은 리스크를 갖고 있는 후보를 대통령 후보로 내세운 바 있다.

상대 후보가 같은 리스크를 갖고 있다는 것은 서로에게 행운이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당시 대장동 문제와 배우자 김혜경 여사의 공금횡령 문제, 또 성남FC 뇌물 혐의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고발 사주, 배우자 김건희 여사의 주가조작 사건으로 구설수를 타며 지지율 부진을 겪었다.


이때 양 후보는 본인 리스크를 감추기보다는 오히려 당당히 드러내며 상대 리스크도 함께 강조하는 전략을 취했다.

결과적으로 이 전략은 각자에게 성공적이었으며 결국 사법 리스크와 배우자 리스크는 양 후보의 지지율에 큰 영향을 미치진 못했다. 만일 리스크가 없는 후보와 맞붙었다면 양 진영은 다른 전략을 취했을 것이다.

이 정치싸움이 내년에도 벌어질 예정이다. 여의도는 벌써부터 내년도 총선 준비에 한창이다. 

정당 관계자들은 지난해 있던 민주당 전당대회와 오는 3월에 있을 국민의힘 전당대회도 준비의 일환으로 보고 있다. 차기 당 대표가 공천권을 쥐고 있는 만큼 당이 총력전을 펼칠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이를 방증이라도 하듯 요즘 민주당의 관심사는 온통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쏠려 있는 모양새다. 이미 이재명 대표 체제로 굳힌 이들은 ‘2024 총선’이라는 링에 이미 올라가 있는 상태다. 전당대회를 치른 지 반년가량 지난 민주당은 이제 국민의힘의 대표가 누가 될지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국민의힘은 오는 3월8일 제3차 전당대회에서 새로운 지도부를 선출한다. 이 선거에서 국민의힘 당원들은 당대표 한 명과 선출직 최고위원 5명을 뽑게 된다.

말 많았던 공천룰은 당원투표 100%로 굳어졌고, 대표와 최고위원 후보직에 이미 출사표를 던진 후보가 수두룩하다.


주요 당권주자에는 울산에서만 내리 5선을 한 김기현 의원과 3선의 안철수 의원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고 윤상현 의원이 그 뒤를 잇는 상태다. 

최고위원 선거에는 광명을 당협위원장인 김용태 최고위원이 다시 도전장을 내밀었고, 송파갑에서 당선된 초선 김웅 의원이 출마 선언을 했다.

청년최고위원직에는 장예찬 청년재단 이사장과 김가람 전 한국청년회의소 중앙회장이 나란히 출사표를 던졌다.

김기현 초반 부진 속 당권주자 급부상
나경원-대통령실 갈등 속 어부지리 1등

친윤(친 윤석열)과 비윤(비 윤석열)으로 나눠진 구도에서 각 후보는 나름의 전략을 들고 고군분투 중이다. 친윤은 본인이 윤 대통령의 사람이라는 전략으로 선거운동을 하고 있고, 비윤은 ‘균형 잡힌 당 대표’라는 슬로건으로 어필하고 있다.

세간의 관심은 역시 당 대표 경쟁에 몰렸다. 친윤 세력의 대표를 자처하고있는 김기현 의원은 장제원 의원과의 연대를 공공연하게 알리며 ‘김장 연대’라는 별칭도 얻었다.

지난 5일 장 의원과 김 의원은 서울 송파을 당원 강연회에 나란히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그들이 참석한 행사는 배현진 의원의 지역구 당원 행사였는데, 배 의원 역시 지난해 7월 ‘이준석 때리기’에 앞장선 친윤계 대표 격 의원이다.

당시 최고위원직을 맡고 있던 배 의원은 모두가 이준석 전 대표의 눈치를 보고 있을 때 제일 먼저 최고위원직을 사퇴하며 친윤 세력의 규합을 도모했다. 배 의원의 사퇴로 힘을 받은 친윤계 인사는 줄줄이 지도부를 박차고 나오며 이 전 대표 몰아내기에 힘을 보탠 바 있다. 

이때의 주역들이 이날 행사에 모인 셈이다. 배 의원 양 옆에는 김 의원과 장 의원이 배석했고 현직 의원 30명도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또 다른 당권주자인 안 의원의 참석도 눈길을 끌었다. 

사실 본인과 관련 없는 지역구 당원 행사에 주요 의원들이 참석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보통 의원들은 타 의원 지역구에 가는 일이 거의 없고, 더군다나 이날 행사처럼 수십명이 모이는 것은 극히 드물다.

정계에서는 이날 행사를 두고 당권에 출마한 후보들이 ‘친윤’ 색을 입기 위해 자리에 참석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당시 행사장에 있었던 여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친윤이 아닌 사람도 대거 참석한 것으로 보인다”며 “당원투표 100% 반영인 상황에서 ‘친윤’으로 인식되는 것은 표 결집에 상당히 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김장 연대’가 공고한 만큼 ‘친윤 후보’는 김기현 의원이 가져가지 않을까 한다”고 전했다.


김장철
지났다?

이 관계자가 말한 ‘김장 연대’란 김 의원과 장 의원의 연대를 말한다. 지난 5일, 권성동 의원이 당 대표 선거에 불출마할 뜻을 밝히자 국민의힘 여론은 ‘누가 그럼 친윤 후보냐’는 논란이 벌어졌고, 윤 대통령의 복심인 장 의원은 김 의원을 공개석상에서 두둔하는 등 그에게 대놓고 힘을 실어줬다. 

민주당은 이런 국민의힘 기류를 면밀히 파악하고 있다.

민주당 측은 누가 대표가 되느냐에 초미의 관심을 보이고 있고, 그에 맞춘 전략을 구상 중이다. 한 민주당 지도부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에서 “우리는 사실상 ‘친윤’ 후보가 대표에 당선될 것이라 보고 있다”며 “김기현 의원이 되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바라는 것도 그(김 의원)”이라고 전했다. 

김 의원은 초반 부진을 이겨내고 현재는 1위 후보로 굳어지는 모양새다.

여론조사업체 ‘에이스리서치’가 <뉴시스> 의뢰로 지난 14일부터 16일까지 사흘간 남녀 1002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여당 지지층 397명에게 ‘당 대표 적합도’를 물었다. 그 결과 김 의원은 35.5%로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나 전 의원은 21.6%로 2위, 안철수 의원이 19.9%로 3위를 기록했다.


해당 여론조사는 무선ARS(자동응답‧RDD) 방식으로 진행됐으며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 응답률은 1.2%였다(더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서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12월 같은 조사에서 20.3%를 받았던 김 의원은 지지율이 약 15%p나 올라 이제야 비로소 ‘친윤 바람’을 등에 업었다고 평가받았다. 당초 한 자릿수 지지율에 머물렀던 김 의원의 약진이 윤심 덕분으로 1위까지 올랐다는 해석이다. 

많은 정치평론가들은 그 이면에 대통령실과 나 전 의원의 갈등이 한 몫 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들은 당권주자로 인기가 높았던 나 전 의원이 대통령실과의 갈등으로 논란에 휩싸이자 당원들의 마음이 김 의원 측으로 기울었다고 해석한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직을 맡고 있던 나 전 의원은 대통령실과의 마찰을 이기지 못하고 지난 13일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나 전 의원이 받아든 결과는 ‘사직서 수리’가 아닌 ‘해임 통보’였다. 대통령실 김은혜 홍보수석은 같은 날 오후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은 이날 나경원 전 의원을 저출산고령화사회부위원장과 기후환경대사직에서 해임했다”고 일방 통보했다.

2연패
설욕?

대통령실이 부위원장직은 물론, 기후대사에서도 나 전 의원의 직함을 몰수한 셈이다.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나 전 의원이 발 벗고 윤 대통령을 지원한 점을 볼 때, 해당 결정은 많은 사람의 의아함을 샀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나 전 의원과의 갈등에 대해 “윤 대통령께서는 나 전 의원이 공직을 ‘자기 정치’를 위해 이용했다고 보고 있다”며 “준장관급 자리를 저버리고 전당대회에 나간다는 것이 사실 사리에는 안 맞는 것 아닌가”라고 전했다.

대통령실과의 불화로 당권에서 멀어지고 있는 나 전 의원을 대신해 김 의원이 각광받으면서 민주당은 속으로 웃고 있는 중이다. 민주당이 원하는 게 ‘친윤’을 등에 업은 후보가 나와 대표에 당선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요시사>와 만난 민주당 관계자들은 김 의원이 대표가 되는 것이 오히려 민주당에 유리할 것이라 주장한다. 우선 이들은 대표가 누가 되느냐에 따라 다음 총선전의 성격이 결정된다고 보고 있다. 이들은 유승민 전 의원이나 나 전 의원같이 비윤계로 분류되는 후보들이 대표가 된다면 중도층 세력 확장에 유리할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를 대승으로 이끈 이 전 대표가 그 좋은 예다. 당원투표와 여론조사로 당 대표에 뽑힌 이 전 대표는 지난해 두 차례 선거에서 전면에 나서며 선거운동을 진두지휘했다.

30대 젊은 남성 대표가 지휘봉을 잡은 국민의힘은 2030세대는 물론 중도층까지 표를 흡수하며 정권교체에 성공했고, 몇 달 후의 지방선거까지 승리했다. 

초미의 관심사였던 수도권 선거 역시 국민의힘이 이긴 것이다. 광역자치단체장 선거와 기초자치단체장 선거에서 압승한 국민의힘은 ‘중도층’으로 분류된 수도권 민심을 사로잡은 것으로 평가받았고, 많은 선거 전략 전문가는 그 공이 이 전 대표에게 있다고 분석했다.

민주당 측은 그런 이 대표와 비교적 정치적으로 가까운 유 전 의원이 대표가 되는 것을 매우 꺼려하는 분위기다.

친명(친 이재명)계 의원실 관계자는 “이 대표는 수도권 민심 챙기기를 우선순위로 두고 있고, 여기에 가장 많은 공을 들일 것으로 보인다”며 “상대 당 대표가 PK지역에서만 유리한 김기현 대표라면 민주당 입장에서는 오히려 반기는 분위기”라고 <일요시사>에 전했다.

“존재감 없고 이슈파이팅 못해…환영”
친윤 업은 당 대표 상대로 차기 대권?

민주당은 수도권에서의 승리에 더해 ‘김기현표’ 국민의힘이 가지고 있는 약점이 더러 있다고 밝혔다. 우선 이들은 김 의원의 낮은 인지도에 국민의힘 표가 잠식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직함 특성상 선거전에서 자주 선거운동을 지원하러 다녀야 하는 당 대표가 인지도가 낮다면, 그 파급력이 이 대표를 따라오지 못할 것이라 생각이다. 

대통령선거까지 치른 이 대표의 선거 지원에 비해 5선이지만 울산 지역에서만 영향력을 행사해온 김 의원은 상대적으로 대중에게 이름이 덜 알려진 인물이다. ‘김장 연대’로 주목받기 전까지만 해도 김 의원의 당내 존재감은 그리 크지 않았으며 현재 나와 있는 여러 당권주자들 중 가장 낮은 지지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전화 통화에서 “물론 여의도에 오래 있던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김 의원의 이름이 익숙하지만, 일반 대중에게 파급력이 약한 것은 사실 아니냐”며 “그런 분이 대표로 국민의힘 선거운동을 이끈다면 민주당에 한참 유리한 것은 사실이다. 이슈 파이팅 능력도 상당이 저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알려지지 않은 무명 세월이 긴 만큼 이슈를 메이킹한 적도, 그에 대응한 경험도 상당히 적은 편이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의 국민의힘 내홍 문제에서도 그는 존재감 없는 모습을 연일 보여줬다.

당시 국민의힘은 이 전 대표와 윤 대통령 간의 갈등으로 연일 매스컴을 장식한 바 있다. 유례없었던 지도부와 대권후보 간의 갈등은 시민들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고, 언론은 둘 사이의 기사를 쏟아내며 싸움을 부추겼다.

당시 원내대표를 맡고 있던 인물이 바로 김 의원이었다. 그는 당내 지도부로서 내홍을 끝낼 책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역할을 해내지도, 주목도 끌지 못했다.

비록 울산에서 두 사람의 회동을 주선해 화해의 밑거름을 깔았지만, 이날 언론의 관심도 역시 이 전 대표에게만 쏠렸을 뿐이었다.

민주당은 그런 김 의원의 존재감이 민주당에는 호재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존재감이 곧 리더십으로 비춰지는 요즘 여의도 분위기에 리더십 없는 김 의원이 대표가 되기를 내심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또, 김 의원이 친윤을 대표하고 있다는 이미지도 놓칠 수 없는 포인트다. 민주당 지도부는 이 대표가 윤 대통령과의 대결 구도를 가져가는 것이 여러 모로 도움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차기 대선후보를 이 대표로 사실상 내정해놓고 있는 민주당 관계자들은 이번 총선이 이 대표의 ‘첫 승리’로 끝나길 바라고 있다.

지난해 두 번의 선거에서 윤 대통령에게 모두 패배했다고 평가받고 있는 이 대표를 2024년 총선서 승리하게 한 뒤 차기 대권후보로 다시 한번 발돋움시키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상대당 후보가 친윤 바람을 등에 업은 후보라는 점은 필수적인 요소다. 유권자들에게 현직 대통령이라 비칠 수 있는 기회인 셈이다. 

막상 뚜껑
열어봐야

민주당은 현재 상대 진영의 간판이 누가 될 것인가를 두고 이런저런 셈하고 있는 분위기지만, 이 대표에게 닥친 사법 리스크는 점점 더 그를 압박해가고 있다. 이 대표가 다음 총선까지 대표직을 유지하려면 이를 어떻게 극복할지부터 생각해야 한다. 현재 민주당에게 가장 중요한 현안은 이 대표의 ‘대표직 유지’다.


<ingyu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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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