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쭉날쭉’ 흉악범 얼굴 공개, 왜?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01.09 13:35:45
  • 호수 1409호
  • 댓글 1개

누군 덮고 누군 까고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택시 기사와 동거녀를 살해한 이기영의 신상이 공개됐다. 이때 공개된 이기영 사진은 운전면허증 사진으로, 공개되자마자 실물과 다르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이 같은 반응은 처음은 아니었으며 실제로 흉악범들의 사진이 공개될 때마다 제기돼왔던 문제다.

경기 파주시에서 전 동거녀와 택시 기사를 잇달아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이기영(31)이 지난 4일 검찰로 넘겨졌다. 그는 지난해 12월 음주 운전으로 택시와 접촉사고를 낸 뒤 60대 택시 기사를 집으로 데려와 둔기로 살해하고 시신을 옷장에 유기한 혐의를 받는다. 

그 사진이
이 사람?

이보다 넉 달 앞선 지난해 8월에는 파주시 집에서 동거하던 50대 여성을 둔기로 살해하고 시신을 파주시 공릉천변에 매장한 혐의도 있다. 경기 일산동부경찰서는 이날 이기영에게 강도살인 및 살인, 사체은닉, 절도, 사기, 여신전문금융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사건을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으로 송치한다고 밝혔다.

당초 이기영은 전 동거녀와 택시 기사에 대한 살인 혐의만 적용됐으나 택시 기사 살해 당시 재정 문제 등 전반적인 정황을 토대로 강도살인 혐의가 추가됐다. 

이기영은 검찰에 송치되면서 얼굴을 가렸다. 지난 4일 오전 9시, 경기 일산동부경찰서 정문 밖으로 나와 취재진 포토라인 앞에 선 이기영은 패딩 점퍼 후드를 눌러쓴 채 고개를 숙이고 마스크를 써서 얼굴을 완전히 가렸다. 


이날 포토라인 앞에서 얼굴이 공개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이기영은 지급된 마스크를 스스로 착용해 얼굴을 거의 가린 것이다. 이기영은 “피해자 유가족에게 할 말 없냐”는 취재진 질문에 “죄송합니다. 살인해서 죄송합니다”라고 답했다. 

포토라인에서 이기영의 얼굴을 볼 수 없었지만, 이미 이기영의 신상은 공개됐다. 경찰은 지난달 29일, 신상정보 공개 심의위원회(신상공개위원회)를 열고 이기영의 나이와 얼굴 사진을 공개했다. 신상을 공개하기 앞서 경기북부경찰청 신상공개위원회가 이기영의 얼굴과 나이를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기영이 최근 촬영한 사진 공개를 거부하면서 예전에 찍은 운전면허증 사진이 배포됐다. 현행법상 당사자가 거부하면 최근 사진을 공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피의자 신상 공개가 시작된 것은 1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계기는 2009년 강호순 등 연쇄살인범 검거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흉악범의 얼굴을 공개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졌다.

당시 강호순의 신상 공개에 문제시된 것은 다음과 같다. 입법조사처는 ▲언론의 자유와 피의자의 인격권 및 무죄 추정 원칙 ▲(범죄와 형법의 대상 관련)명확성 원칙의 문제 ▲이중처벌금지의 원칙 위반 및 범죄자 사회복귀 저해 요인의 문제 ▲프라이버시 침해의 문제를 근거로 제시했다.

2009년 강호순 계기로 신상 공개 시작
심의위원회 내부 3명, 외부 4명 구성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었지만 피의자 신상 공개가 결정됐다. 2010년 4월 ‘특정강력 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제8조의 2(피의자의 얼굴 등 공개)가 신설됐다. 같은 시기 제정된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서도 제23조(현행 제25조)를 두어 피의자의 얼굴 등을 공개하도록 했다.


특정강력 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제8조의 2는 ▲범행 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특정강력 범죄 사건일 것 ▲피의자가 그 죄를 범했다고 믿을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을 것 ▲국민의 알 권리 보장, 피의자의 재범방지 및 범죄 예방 등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할 것 ▲피의자가 ‘청소년 보호법’ 제2조 제1호의 청소년에 해당하지 않을 것을 명시하며 피의자 신상 공개 여부를 설명하고 있다.

성폭력 범죄도 비슷한 맥락이다.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25조에는 ▲검사와 사법경찰관이 성폭력 범죄의 피의자가 죄를 범했다고 믿을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을 때 ▲피의자의 재범 방지 및 범죄 예방 등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할 때 신상 공개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 이전에도 신상 공개 제도가 있었지만 성격은 다르다. 성폭력처벌법 제42조 이하 및 청소년성보호법 제49조 이하 규정과 같이 법원 확정 판결에 따른 보안처분의 성격을 지닌 것으로 재범 방지를 위한 목적을 띤다. 즉, 확정판결 받은 자를 대상으로 했다는 점에서 일종의 형사제재로서 가능했다.

이젠 법이 바뀌었다. 이제 피의자 신상 공개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공개한다. 당연히 피의자 신상 공개는 절차가 정해져 있다. 공개의 주체는 검사와 사법경찰관이다. 2015년부터 경찰서나 지방경찰청별로 신상공개위원회가 신설돼 이곳에서 공개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신상 공개 시점은 피의 사실에 대한 법원의 1차 판단이 완료됐다고 볼 수 있는 구속영장 발부 시점 이후를 원칙으로 한다. 하지만 이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대부분 국민과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고, 이미 실명이 공개된 피의자의 경우는 충분한 증거가 확보됐을 시 구속영장 발부 전에 신상공개위원회 결정을 거쳐 공개한다.

만약 수배 대상자라면 ‘경찰 수사 사건 등의 공보에 관한 규칙’에 기반해 ▲얼굴 사진 ▲성명 ▲나이 ▲직업 ▲신체의 특징 등 신상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까지 공개한다. 그러나 이미 신병이 확보된 피의자의 경우는 ▲얼굴 ▲성명 ▲나이 등으로 범위가 축소된다.

식별 불가
밝히나마나

우선 특정강력 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에 의해 신상 공개가 결정된 피의자는 2020년부터 지난해 마지막으로 공개된 이기영을 포함한 총 15명이다.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의해 결정된 피의자는 총 9명이다. 특히 성폭력 범죄로 인해 신상 공개된 이들은 아동 성 착취물 제작 및 유포 혐의로 공개됐다.

문제는 피의자 신상 공개 기준 자체가 주관적이라는 것이다.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 ‘충분한 증거’ ‘공공의 이익’이라는 기준 자체가 불분명하다. 

2021년은 피의자 신상 공개 제도로 흉악범의 신상이 이례적으로 많이 공개된 해다. 총 10명으로 ▲노원 세 모녀 살인사건 김태현 ▲인천 노래방 손님 살해사건 허민우 ▲서울 중구 오피스텔 살인사건 김병찬 ▲송파 전 여자친구 가족 살인사건 이석준 ▲인천 미주홀구 강도 연쇄살인사건 권재찬 ▲제주 중학생 살인사건 백광석, 김시남 ▲남성 미성년자 성 착취물 제작 및 유포 최찬욱 ▲남성 불법 촬영 나체 영상 유포 사건 김영준 ▲송파 전자발찌 훼손 연속 살인 사건 강윤성이 있다.

이 중 비수도권에서 신상 공개가 이뤄진 피의자는 제주 중학생 살인사건의 백광석과 김시남이 유일하다. 이런 상황이니 피의자 신상 공개가 수도권 지역에서만 주로 이뤄진다는 점도 하나의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우선 경남 지역에서 신상 공개된 대표적인 피의자는 ▲2019년 진주 아파트 방화 및 흉기 난동 살인 사건 안인득 ▲2017년 창원 골프연습장 납치 살인사건 심천우, 강정임이 있다. 


하지만 경남에서 일어난 강력 범죄 중에서 신상 공개가 되지 않은 사례도 있다. 2020년 11월 일어난 양산 동거녀 살인 사건과 2020년 12월 성탄절에 벌어진 응급구조사 폭행, 방치 살인 사건이 대표적이다.

양산 동거녀 살인 사건은 2020년 11월23~25일쯤 경남 양산의 자택에서 A(61)씨가 사실혼 관계인 B씨가 잔소리하는 것에 화가 나 B씨를 살해하고 시신을 잔혹하게 토막 내 유기한 후 사체에 불을 지르기까지 한 사건이다. A씨는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이후 2심 재판부로부터 징역 35년을 선고받았다.

성탄절 응급구조사 사건은 2020년 성탄절 전날인 12월24일, 경남 김해의 한 응급이송단 대표 C(44)씨가 직원인 응급구조사를 12시간가량 폭행하고 이튿날까지 방치해 숨지게 한 사건이다. 재판부는 C씨에게 징역 18년을 선고했다.

언론 집중도 
사회 관심도

이들은 강력 범죄임에도 신상이 공개되지 않았다. 이런 주관적인 판단이 개입될 수밖에 없는 것은 신상공개위원회 구성으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신상공개위원회 심의위원은 총 7명으로 구성되며 논의를 통해 피의자 신상공개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이때 7명 위원 중 3명은 경찰 측 내부 위원, 4명은 시민단체 혹은 관련 전문가 등 외부 위원으로 구성된다. 여기서 외부 위원이 전체의 과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구멍이 발생한다. 


물론 다양한 전문가와 시민단체 등 의견을 취합하고 일정 부분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만큼 외부 위원의 주관적인 판단이 신상 공개 결정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또 신상공개위원회 개최 여부에 명확한 원칙이 없다. 보통은 사건에 대한 언론의 집중도 혹은 사회의 관심도가 신상공개위원회 개최 여부를 결정한다.

이 같은 문제가 직접적으로 드러난 사건이 제주 중학생 살인사건이다. 이 사건에서 제주 경찰은 당초 피의자 2명에 대해 “신상 정보 요건에 부합하지 않아 신상공개위원회를 개최하지 않겠다”고 결정했다. 하지만 사건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고, 전국에서 관심을 갖는 사안으로 떠오르자 경찰은 “신상공개위원회를 통해 신상 공개 여부를 심의하겠다”고 말을 바꿨다.

이와 관련해서 경찰은 “잔인성 및 공공의 이익 등에 부합할만한 범죄사실이 수사 과정에서 새롭게 인지됐다. 신상공개위원회 개최에 대한 필요성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경찰이 제주 중학생 살인사건 피의자 신상 공개 결정의 근거로 제시한 요건은 모두 수사 초반부터 언론 측에 공개한 내용이었다. 계획된 범죄인 점, 피의자가 범행을 자백한 점, CCTV 등을 통해 피해자 자택에 침입하는 과정이 촬영된 점 등은 모두 “신상공개위원회를 개최하지 않겠다”고 경찰 결정이 내려지기 전 언론을 통해 밝혀진 내용이다.

이처럼 현재 경찰의 자의적인 해석, 혹은 언론과 여론의 관심도가 피의자 신상 공개 결정에 상당 부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언론이 피의자 신상을 먼저 공개한 사례도 있다. 대표적으로 SBS가 텔레그램을 통해 박사방을 운영하며 성 착취물을 제작‧유포한 조주빈 사진을 단독 보도했다. 

“실효성·기준 모호” 지적
사진과 다른 실제 모습들

당시 SBS 측은 “이번 사건이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잔혹한 성범죄인 동시에 피해자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중대 범죄라고 판단했다. 추가 피해를 막고 아직 드러나지 않은 범죄를 찾아 수사에 도움을 주자는 차원에서,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저희가 단독 취재한 내용과 함께 구속된 피의자의 얼굴과 이름을 공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피의자 신상 공개 기준이 모호한 것이 문제지만, 신상 공개를 해도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최근 공개된 이기영의 사진과 현재 모습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신상 공개가 결정된 피의자가 검찰에 송치될 때 얼굴을 공개하고, 사진도 함께 배포한다.

그때 당사자가 동의하면 체포 후 촬영한 현재 사진(머그샷)을 찍어 공개하지만, 거부하면 신분증 증명사진을 공개한다.

앞서 언급했듯 이기영은 운전면허증 사진을 공개했는데, 네티즌들은 이기영 계정으로 추정되는 SNS에 올라온 사진과 차이가 있다며 신상 공개 제도의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이 밖에도 김태현, 갓갓 문형욱, 안승진, 허민우, 조주빈, 고유정 등 신상공개 대상자도 실물이 달랐다.

논란이 거세지면서 국회에서도 흉악범 신상이 공개될 때 실물을 알아볼 수 있도록 최근 촬영한 얼굴 사진을 사용해야 한다는 법안이 잇따라 발의됐다.

국민의힘 송언석 의원은 살인·강간 등을 저지른 흉악범의 신상은 최근 30일 이내에 촬영한 얼굴의 사진을 사용하도록 특정강력 범죄 처벌 특례법 개정안과 성폭력 범죄 처벌 특례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송 의원은 “범죄 피의자 얼굴을 대중이 식별하는 데 용이해져 제도의 실효성이 커질 것이며, 궁극적으로 범죄로부터 국민 안전이 더욱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민주당 안규백 의원도 피의자를 식별할 수 있도록 촬영해 공개하는 규정을 추가한 특정강력 범죄 처벌 특례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안 의원은 “실효성 없는 신상 공개로 인해 오히려 무분별한 신상 털기 같은 불필요한 논란과 사회적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피의자의 재범 방지, 범죄 예방을 도모하려는 신상 정보 공개의 취지를 달성하려면 피의자의 최근 얼굴 공개를 통해 피의자를 식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관적 판단
기준 필요해

일각에서는 이번 국회에서 발의된 신상 공개 개정안에 대해 헌법상 무죄 추정의 원칙에 반하는 것이므로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법안 상정 이후 충분한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전문가들은 신상 공개 제도가 실효성을 갖추려면 사회적 합의를 거쳐 보다 명확한 기준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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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계 스캔들과 정치권 음모론

연예계 스캔들과 정치권 음모론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때 연예계를 떨게 했던 ‘마의 11월’이 다시 온 걸까? 매년 11월마다 연예계와 방송가에서 각종 이슈가 터진다는 말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아슬아슬하게 11월은 넘기는가 싶더니 12월이 되자마자 연예계 이슈가 온 세상을 뒤덮었다. 동시다발로 터져 나온 연예계 사건·사고에 정작 중요한 이슈들이 가라앉고 있다. SNS에서 의혹이 제기되고, 이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게재된다. 얼마 가지 않아 기사로 보도된다. 유튜브 쇼츠로 제작돼 확산한다. 다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다. 방송으로 퍼진다. 방송분이 편집돼 다시 유튜브 영상으로 제작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생산된 콘텐츠는 SNS를 통해 재생산된다. 다른 이슈가 불거진다. 반복된다. 하루 사이 연달아서 최근 이슈가 퍼지는 방식이다. 기사 등을 통해 정보가 대중에게 전달되던 시기는 이제 끝났다. 이제는 오히려 언론이 온라인 커뮤니티 글을 소스로 기사를 작성하는 판이다. 동시에 레거시 미디어를 통해 정보가 확산하던 시기도 지나간 지 오래다. 이제 모두가 유튜브로 이슈를 확인하고 댓글을 통해 의견을 표출한다. 문제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레거시 미디어로, 또다시 유튜브로 대표되는 뉴미디어로 정보가 전달되는 과정에서 자극도가 높아진다는 점이다. 동시에 확인되지 않은, 왜곡된 내용이 처음 올라온 정보에 덕지덕지 달라붙는다. 확산 속도 또한 어마어마하게 빠르다. 몇 시간이면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를 비롯해 유튜브까지 퍼진다. 이 사이클은 무한정 돌아간다. 시간이 가면서 대중은 짧은 영상에 목말라 하고 있다. 분 단위의 영상보다는 초 단위 쇼츠에 더 열광한다. 영상 제작자는 조회수가 곧 돈이기에 대중의 입맛에 콘텐츠를 맞출 수밖에 없다. 도파민을 바라는 대중의 눈에 들기 위해선 흡인력 있는 영상을 만들어야 한다. 사실이든 아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불과 일주일 새 연예계에서 동시다발로 이슈가 터졌다. 과거, 약물, 갑질, 조폭 의혹 등 언급되는 단어만으로 충격이 일었다. 여기에 의혹에 연루된 연예인의 면면이 전부 각 분야에서 잘 알려진 사람이라는 점은 이슈 확산에 기름을 부었다. 순식간에 커뮤니티와 유튜브 등이 불타올랐다. 배우 조진웅이 과거에 소년범이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올해 광복절 경축식을 비롯해 정부 행사에 자주 얼굴을 드러냈던 터라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는 반응이 많았다. 비상계엄 사태 때에도 SNS에 글을 올리는 등 말할 때는 하는 이른바 ‘개념 연예인’으로 알려져 있어 대중은 조진웅의 반응을 기다렸다. 기사, SNS로 한꺼번에 유튜브 타고 빠른 확산 하지만 소년범이었던 과거가 사실로 드러나고 그가 은퇴를 선언하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동시에 조진웅의 은퇴를 두고 ‘과거의 일’이라는 의견과 ‘피해자를 생각하라’는 의견이 대립하기 시작했다. 일부 진보 진영 정치인이 한두 마디씩 말을 보태면서 의견 대립은 정치권으로까지 번졌다. 여기에 소년범 의혹을 최초로 기사화한 언론의 보도 윤리도 도마 위에 올랐다. 개그우먼 박나래는 매니저 갑질 의혹과 불법 의료 시술 의혹이 동시에 불거졌다. 매니저들이 박나래를 상대로 고소했다는 보도가 나온 이후 줄줄이 이어진 후속 보도에서 드러난 의혹들이다. 박나래가 매니저들과 진실 공방을 벌이는 내용이 거듭해서 언론 보도, 유튜브 쇼츠 등으로 이어지면서 불씨가 꺼지지 않고 있다. 특히 불법 의료 시술 의혹은 ‘주사 이모’라는 존재가 등장하면서 판이 커질 기미를 보이고 있다. 주사 이모는 박나래에게 주사 등을 통해 투약한 인물로 추정된다. 해당 인물의 SNS가 공개되면서 몇몇 연예인이 연루 의혹을 받고 있다. 경찰 조사가 예정돼있어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개그맨 조세호는 조폭 연루설에 휘말렸다. 조세호 의혹은 SNS를 통해 사진이 공개되면서 확산했다. 폭로자가 조세호와 조폭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고 글을 쓰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그 여파로 조세호는 고정 출연하고 있던 <유 퀴즈 온 더 블럭>과 <1박 2일>에서 하차했다. 유명 연예인 도마 위에 아이돌 그룹 BTS의 정국과 에스파 윈터의 열애설도 비슷한 시기에 터졌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두 사람이 비슷한 위치에 ‘커플 타투’를 했다는 의혹이 나왔다. 두 멤버의 소속사인 하이브와 SM엔터테인먼트는 ‘노코멘트’라고 입장을 밝혔다. 두 그룹이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만큼 계속 언급되는 중이다. 한 건만으로도 상당한 파급력을 지닐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일각에서는 누군가가 민감한 이슈를 덮기 위해 연예계 사건·사고를 일부러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게 아니냐는 이른바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다. 앞서 매년 11월마다 연예인 관련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두고 나왔던 이야기가 이번에 다시 나온 것이다. 정치나 사회 이슈와 비교해 연예계 관련 사건·사고 소식은 대중에게 직관적으로 다가가는 편이라 몰입도가 높다. 동시에 휘발성도 크다. 또 대중에게 잘 알려진 연예인일수록 사건의 파급력이 크다. 물론 연말연시를 앞두고 머리 아픈 이슈에 질린 대중에게 연예계 문제는 더할 나위 없이 흥미로운 소재라 말이 나오는 것일 뿐 확인된 바는 없다. 말 그대로 ‘도시괴담’에 가깝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말이 심심찮게 보인다. 실제 여야가 한데 얽힌 것으로 추정되는 통일교 문제, 야당에서 강하게 반발 중인 국가보안법 폐지 논란 등이 연예계 이슈에 묻혀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3300만명이 넘는 고객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쿠팡 사태도 그 사건 규모에 비해 관심도가 떨어지고 있다. 마의 11월 12월로? 통일교 관련 논란은 당초 야당인 국민의힘에 포커스가 집중됐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통일교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이다. 그러다 최근 그 범위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으로까지 확대됐다.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이 통일교에서 금품을 제공한 정치인을 진술하면서 민주당 인사들도 입길에 올랐다.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지난 8월 윤 전 본부장으로부터 ‘통일교가 국민의힘 외에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도 지원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 윤 전 본부장이 언급한 인물 가운데 1명이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당시 민주당 의원)이었다고 한다. 명품 시계 2개와 함께 수천만원을 한일 해저터널 추진 등 교단 숙원사업을 위해 줬다는 것이다. 금품수수 의혹이 보도되자 전 전 장관은 지난 11일,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 그는 “불법 금품수수는 없었다”면서 “장관직을 내려놓고 당당하게 응하는 것이 공직자로서 해야 할 처신”이라고 했다. 이어 “저와 관련된 황당하지만 전혀 근거 없는 논란”이라며 “해수부가 또는 이재명정부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정권이 흔들릴 수도 있는 사안이라는 목소리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통일교 관련 논란으로 국민의힘에 맹공을 퍼부었는데 역풍이 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 국민의힘은 ‘통일교 특검’을 주장하면서 민주당과 이 대통령을 몰아가는 중이다. 공수가 뒤바뀐 것이다. 범여권에서 추진 중인 국가보안법(이하 국보법) 폐지를 두고 정치권이 갈등을 빚고 있다. 국민의힘이 국보법 폐지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여야 간 힘겨루기로 비화했다. 정치권 이슈 묻히고 쿠팡도 잠잠해지나? 지난 7일 민주당 민형배, 조국혁신당 김준형, 진보당 윤종오 의원은 국보법 폐지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의원들은 “국보법은 제정 당시 일본제국주의 치안유지법을 계승해 사상의 자유를 억압한 악법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며 “국보법의 대부분 조항은 형법으로 대체 가능하며 남북교류협력법 등 관련 법률로도 충분히 규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국보법 폐지를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국가보안법 폐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토론회에서 “국가정보원에서 대공수사권을 떼어내 경찰에 이관했지만 경찰은 그만한 준비가 제대로 안 돼 사실상 대공수사가 공중에 붕 뜬 느낌”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국보법을 폐지하려는 시도가 있다는 건 굉장히 심각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연예계 이슈에 바로 직전 가장 큰 이슈였던 쿠팡 사태도 상대적으로 잠잠해졌다. 지난달 말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알려진 쿠팡 사태는 3370만명의 개인정보가 해외로 유출된 사건이다. 사실상 모든 고객의 정보가 털린 셈이다. 올 한 해 통신사, 카드사 등에서 개인정보 유출을 겪은 이용자는 또 한 번 직격탄을 맞았다. 쿠팡 사태는 해킹 등으로 정보가 유출된 여타 업체와 달리 전 직원의 소행으로 드러나면서 이커머스 업체의 보안 실태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동시에 2010년 창업 이래 이커머스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한 쿠팡 생태계의 민낯이 낱낱이 알려졌다. 동시에 쿠팡에서 일어난 노동자 사망사고도 재조명받는 중이다. 지난 10일에는 박대준 쿠팡 대표가 사임했다. 쿠팡은 “최근의 개인정보 사태에 대해 국민께 실망하게 한 점에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이번 사태의 발생과 수습 과정에서의 책임을 통감하고 모든 직위에서 물러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경질이라는 의견이 많다. 당분간은 계속될 듯 일각에서는 음모론에서 한발 더 나아가 여당 쪽에서 연예계 이슈를 터트린 게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고 있다. 통일교 논란, 국보법 폐지, 쿠팡 논란 등 대형 이슈가 여당 쪽에 불리한 내용이 아니냐는 설명이다. 한편에서는 여야가 동시에 발을 걸치고 있는 사안인 만큼 특정 진영의 유불리를 따질 수 없다는 반박도 나온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