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그래도 풀려난 김경수 전 경남지사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01.02 14:02:36
  • 호수 1408호
  • 댓글 0개

죄짓고 개선장군처럼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김경수 전 경남지사가 특별사면됐다. ‘복권 없는 사면’인 만큼 오는 2027년까지 모든 선거에 나올 수 없다. 당초 그는 옥중에서 사면을 원하지 않는다고 밝혔던 바 있다. 출소 후 가장 먼저 한 말은 “받고 싶지 않은 선물을 받은 것”이었다. 

지난달 27일, 2023년 신년을 맞아 정부는 이튿날(28일 자)로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정부서울청사에서 ‘2023년 특별사면’ 브리핑을 열고 “화해와 포용, 배려를 통한 폭넓은 국민 통합 관점에서 28일 자로 정치인·공직자·특별 배려 수형자 등 1373명을 특별사면한다”고 밝혔다.

5개월 남기고
들러리 세워

사면 대상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사면 및 복권’으로, 김경수 전 경남지사는 ‘복권 없는 사면’으로 포함됐다. 이 외에도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조윤선 전 정무수석 등도 포함됐다. 또 ‘국정원 특활비’ 사건의 남재준·이병기·이병호 전 국가정보원장도 사면 대상에 이름을 올렸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남은 형기가 감형됐다. 이 밖에 여권에선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성태·이완영 전 국민의힘 의원, 야권에선 전병헌 전 대통령 정무수석, 신계륜 전 의원, 강운태 전 광주시장 등 정계 출신 인사 다수가 사면 대상에 포함됐다.

이날 김 전 지사는 ‘복권 없는 사면’을 두고 “이번 특별사면은 저로서는 받고 싶지 않은 선물을 억지로 받게 된 셈”이라고 표현했다. 


이날 0시쯤 경남 창원교도소에서 앞에는 김 전 지사의 지지자들이 모여 “김경수는 무죄다”를 외쳤다. 김 전 지사는 출소 직후 “본의 아니게 추운 겨울에 나오게 됐다. 개인적으로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앞서 사면 불원 의사를 밝히며 5월까지 형기를 채우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점에 유감을 표했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 통합을 위해서’라고 말씀하셨는데 통합은 이런 식으로 일방통행이나 우격다짐으로 되지 않는다는 점을 국민들께서 더 잘 알고 계실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민 통합과 관련해선 저로서도 국민께 대단히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 없다. 정치의 중요한 역할이 우리 사회 갈등과 대립을 조정하고 완화시켜 대화와 타협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만드는 것”이라면서 “그런 점에서 제가 여기까지 오는 동안 제 사건의 진실 여부를 떠나서 지난 몇 년간 저로 인해 우리 사회 갈등과 대립의 골이 더 깊어진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제 본연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점에 대해서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며 “제가 그동안 가졌던 성찰의 시간이 우리 사회가 대화와 타협, 사회적 합의를 통해 더 따뜻한 사회를 만드는 거름이 될 수 있도록 더 낮은 자세로 성찰하고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당초 형기 만료일은 올해 5월이었다. 이번 사면으로 잔여 형기 5개월이 면제됐다. 복권이 안 된 김 전 지사는 2027년 12월28일까지 5년 동안 피선거권이 제한된다. 이에 따라 내년 4월 국회의원 선거, 2026년 6월 지방선거, 2027년 3월 대통령선거 등 선거에 나올 수 없다.

MB, 사면에 복권까지
김은 복권 없는 사면

김 전 지사는 교도소 앞에서 출소 소회 발표 후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 민홍철·김정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허성무 전 창원시장을 비롯한 지지자 100여명의 응원을 받고 떠났다. 이날 오전 10시쯤 경남 김해 봉하마을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에 참배하고, 경남 고성에 있는 부친 산소를 찾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지사는 “제 사건으로 사회 갈등과 대립의 골이 깊어진 것 아닌지”라며 우려하기도 했다. 여기서 말하는 사건은 바로 ‘드루킹 여론조작 사건’을 말한다.

이 사건은 2014년부터 2018년까지 경제적공진화모임(경공모) 대표인 김동원(필명 드루킹)씨와 당시 김 전 지사, 그리고 경공모 회원이었던 민주당 권리당원들이 공모해 인터넷에서 각종 여론조작을 한 사건이다. 드루킹은 친노(친 노무현)·친문(친 문재인) 성향이었던 유명 블로그다.

문제 제기가 된 것은 2018년 1월이었다. 한 네티즌이 평창 동계올림픽 남북 단일팀 관련 기사에 달린 정부 비판 댓글의 공감수가 비정상적으로 올라가는 모습을 촬영해 유튜브에 올리면서 댓글 조작 의혹이 제기됐다.

민주당은 매크로(자동 입력 반복) 프로그램을 통한 조작이 의심된다며 수사를 의뢰했고, 경찰이 댓글을 조작한 일당 3명을 붙잡았다. 이들 중 1명이 앞서 말한 드루킹이고, 나머지 2명은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던 김 전 지사와 민주당 권리당원들이었다. 김 전 지사는 드루킹과 연락을 주고받은 정황이 포착됐다.

특히 두 사람은 2016년 말부터 연락을 주고받았는데 유독 대선 기간에 SNS 메신저인 시그널을 사용해 의혹이 커졌다. 김 전 지사와 드루킹이 시그널을 통해 주고받은 55건의 대화에는 두 사람의 관계를 보여주는 단서가 일부 포함됐다.

김 전 지사가 드루킹에게 보낸 기사 URL 10건 중 8건은 대선 실시 전 기사로 대부분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유리한 내용이었다. 김 전 지사는 기사를 보내며 “홍보해주세요”라고 요청하거나 “네이버 댓글은 원래 반응이 이런가요”라고 적었다. 댓글 작업을 요청하는 듯한 뉘앙스다.

또 “답답해서 내가 문재인 홍보한다”는 제목의 3분20초짜리 유튜브 동영상을 드루킹에게 보내기도 했다. 동영상은 곧바로 드루킹의 블로그 ‘경인선(경제도 사람이 먼저다)’에 올라갔다. 드루킹의 최측근인 박모씨는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인 ‘MLB파크’에 해당 동영상을 올리며 홍보했다. 

이 사건에 대해 민주당은 적발된 선거 브로커의 개인 일탈 행위라며 규정과 관련 의혹에 대한 선긋기를 했다. 주범인 드루킹은 이 사건의 최종 책임자로 김 전 지사를 지목했다.

드루킹
잊었나

2018년 5월18일 <조선일보>의 ‘[단독] 드루킹 옥중편지 전문’에서 드루킹의 옥중편지가 공개됐다. 옥중편지에서 드루킹은 “2016년 9월 김경수 의원이 파주의 내 사무실에 찾아왔을 때 상대측의 이 댓글 기계에 대해 이야기했다…김경수 의원에게 ‘일명 킹크랩’을 브리핑하고 프로토타입으로 작동되는 모바일 형태의 매크로를 제 사무실에서 직접 보여주게 됐다”며 “김경수 의원은 우리의 첫 만남부터가 극히 위험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인지 친밀한 관계임에도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고 애썼다…돌이켜보면 김경수 의원은 처음부터 저나 경공모를 철저히 이용하려는 생각이었고 문제가 생기면 발을 빼려고 몹시 조심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사건 전말을 설명했다.

대부분 김 전 지사가 댓글 조작 사건에 연루된 것을 설명하는 내용이다.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과 바른미래당 등은 이 사건을 계기로 문 대통령의 대통령 당선 무효도 가능한 여론 조작 게이트로 규정했다. 이들은 정부여당의 여론조작 연루 의혹에 대한 특검을 요구하며 대여 공세를 가했다.


당시 바른민주당은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은 게이트로 번질 수 있는 심각한 범죄”라고 규정했고, 자유한국당 단장인 김영우 의원은 “민주당 김경수 의원 외 다른 여당 정치인과 ‘드루킹’이 연계된 정황이 있다. 민주당이 여론조작의 중심에 있다는 근거”라고 지목했다.

결국 2018년 5월21일 국회 본회의에 특검법이 통과돼 특검 수사가 착수됐다. 특검법 통과 직후 네이버 뉴스 댓글 수가 대폭 감소했다. 2018년 6월11일 네이버 뉴스 댓글 통계 서비스를 제공하는 ‘워드미터’에 따르면 특검법안 국회 통과 전후인 6월 1~8일 네이버 뉴스 댓글 수는 직전 5월 같은 기간에 비해 무려 36.5% 감소한 142만1746건으로 기록됐다.

봉하마을
달려가다

같은 기간 활동 ID 수는 33.7% 줄어든 63만407개, 공감(비공감 포함) 클릭 수는 67.7% 급감한 978만7109회를 기록했다. 문제가 돼온 정치 뉴스만 해도 댓글은 38.6% 줄어든 66만7677건, ID 수는 37.1% 줄어든 32만6900개, 공감 클릭 수는 84.4% 감소한 367만3126회를 기록했다.

특검은 8월27일 수사 결과 보고를 통해 드루킹이 댓글 조작 1억회 중 8840만회를 드루킹이 김 전 지사와 공모한 것으로 결론내렸다. 

특검팀은 60일간의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김경수 의원은 드루킹이 운영한 ‘경공모’와 함께 2016년 11월부터 매크로 프로그램 ‘킹크랩’을 이용해 선거운동을 했다”고 주장했다. 특검팀은 이들이 19대 대선서 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당선을 목표로 삼았다고 덧붙였다.


1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방법원은 2019년 1월30일 드루킹이 댓글 조작, 뇌물공여 등의 혐의에 대해 징역 3년6개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징역 6개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김 전 지사에게는 드루킹 일당의 댓글 조작에 가담했다고 판단했고, 이에 따라 1심에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혐의 별로는 댓글 조작을 통한 업무방해 혐의에 대해 징역 2년의 실형,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선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2심에서도 업무방해 혐의에 대해서는 그대로 징역 2년이 선고됐고,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선 무죄가 선고됐다. 2021년 7월21일 대법원이 원심 확정 판결로 징역 2년형이 최종 선고되면서 경남도지사직도 상실됐다.

김 전 지사는 “안타깝지만 법정을 통한 진실 찾기는 더 이상 진행할 방법이 없어졌다. 대법원 판결에 따라 감내할 몫은 감당하겠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김 전 지사는 옥중에서 편지로 새해 인사를 하기도 했다. 지난해 1월 김 전 지사의 부인 김정순씨는 김 전 지사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 전 지사의 옥중편지를 공개했다. 편지 내용은 아래와 같다.

“지난해는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아직도 크고 작은 어려움 속에 우리 모두 새해 새 아침을 맞고 있다. 우리는 늘 추운 겨울의 한가운데서 새해를 맞게 된다. 맑고 차가운 정신으로 새해 새 아침을 맞으라는 뜻이라고 한다. 올해는 그렇게 ‘깨어있는 시민들의 힘’이 소중한 한 해가 되리라 본다. 2022년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짓는 대단히 중요한 해다. 그 미래를 결정하는 힘은 ‘시민’에게 있다. 선거의 승패를 뛰어넘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한 단계 진전시키는 ‘깨어있는 시민의 힘’이 꼭 필요한 해다.”

“받고 싶지 않은 선물 받아” 어부지리 출소
2027년 대선 출마 불가…정치생명 5년 스톱

이후 옥중 서신으로 가석방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밝혔다. 배우자 김씨는 지난달 13일 김 전 지사 페이스북에  “남편은 지난달 7일 교도소 측에 가석방을 원하지 않는다는 ‘가석방 불원서’를 서면으로 제출했다”고 글을 올렸다.

김 전 지사가 공개한 가석방 불원서에는 “가석방은 교정시설에서 ‘뉘우치는 빛이 뚜렷한’ 등의 요건을 갖춘 수형자 중 대상자를 선정해 법무부에 심사를 신청하는 것이라고 교정본부에서 펴낸 ‘수형생활 안내서’에 나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금까지 무죄를 주장해온 나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요건임을 창원교도소 측에 이미 여러 차례 밝혔다. 그럼에도 이런 제 뜻과 상관없이 가석방 심사 신청이 진행됨으로써 필요치 않는 오해를 낳고 있다. 다시 한번 분명히 밝힌다. 나는 가석방을 원하지 않는다”고 거듭 강조했다.

배우자 김씨도 “가석방 심사는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이뤄지는 절차인데도 ‘신청-부적격, 불허’라는 결과만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상황이 되풀이됐다. 남편의 입장은 확고하다. 가석방은 제도 취지상 받아들이기 어렵기에 그동안 이와 관련한 일체의 조사에 응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응할 생각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현재 이야깃거리가 되는 특별사면에 대해서도 ‘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에 들러리가 되는 끼워 넣기·구색 맞추기 사면을 단호히 거부한다’는 뜻을 함께 전해왔다”고 덧붙였다.

결국 김 전 지사는 특별사면을 받았다. 이를 두고 민주당 전재수 의원은 윤 대통령이 김 전 지사에 대해 사면 없이 복권한 것을 두고 “김경수 개인에 대한 모욕을 넘어서 노무현 가문에 대한 모욕”이라고 비판했다.

주목되는 
향후 행보

전 의원은 지난달 28일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사면을) 원하지 않는다고 공개적으로 입장 표명까지 한 김 전 지사를 굳이 복권 없는 사면을 하는 것은 사면권 남용이다. 사면의 역사를 보면 앞으로 정치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에 대해 달랑 5개월 남은 형량을 사면해주고 복권해주지 않는 사례가 있었냐”며 “청와대 문고리 3인방 등 피선거권 제한이 필요 없는 사람도 복권해주면 뻔히 정치를 해야 될 사람에 대해서는 사면만 해주는 게 어떻게 이해가 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대통령 사면권은 존중돼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이런 식이면 정말로 이게 법률적으로 이 부분은 제한을 해야 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alswn@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