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연재>'분쟁조정의 달인' 임성학의 실타래를 풀어라(44)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

컨설팅전문가인 임성학 멘토링컨설팅연구소 소장은 자타가 공인한 ‘분쟁조정의 달인’이다. 그런 그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지침서 <실타래를 풀어라>를 펴냈다. 책은 성공이 아닌 문제를 극복해 내는 과정의 13가지 에피소드를 에세이 형식으로 담았다. 복잡하게 뒤엉키는 일로 고민하는 이들에게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기 위해 책을 펴냈다는 임 소장. 그의 숨은 비결을 <일요시사>가 단독 연재한다.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 생각이 다르다
물에 빠진 사람 구해주니 보따리 내놓으란 격

그는 그때 일이 영 꺼림칙한지 잠깐 굳은 표정을 짓다가 나를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통화를 끝낸 진 사장이 자리에 와서 앉고 대화는 계속되었다.

“식사에 초대되어 음식을 먹고 나서 얘기들을 나누는데 처형이 돈 얘기를 꺼냈습니다. 사업은 해야겠는데 자금이 부족하니 자신들 대신 대출을 받아서 빌려달라고 말입니다. 늦어도 1년 안에는 반드시 갚아주겠다고 하는 겁니다. 그 말에 제 집사람이 난처해하며 내 눈치를 살피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동서가 나서서 구체적으로 요구를 하는 겁니다. 자신들은 지금까지 많은 대출을 받아서 금융권에서는 더 이상 대출을 받을 수 없지만, 동서는 신용이 좋으니 대출이 가능할 거라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저 역시 신용대출을 받은 것이 있어 더 이상 곤란하다고 말했지요. 그러자 동서는 자신들이 빌라 건축을 위해 구입한 땅은 제1금융권인 은행에만 담보가 제공되어 제1금융권에서는 추가담보제공이 불가능하지만, 제2금융권에서는 후순위로 담보제공이 가능하여 얼마만큼의 대출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다만 저와 같이 대출이 많지 않고 사업을 하여 어느 정도 신용이 있는 자라야만 된다는 겁니다.”

“아하, 그래서 최 사장님이 보증을 서주었군요?”
가만히 듣고 있던 진 사장이 당시 상황을 알 수 있겠다는 듯이 말을 가로채며 거들었다. 그러자 최 사장은 멋쩍은 미소를 띠고 진 사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닐세, 진 사장. 차라리 보증을 섰다면 그런대로 대응하기가 수월할 지도 몰라. 결국 우리부부는 동서부부에게 대접받은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만 했다네. 그 대출 요구를 묵살할 수 없어 결국은 내가 승낙했기 때문이지. 다음 날 우리 네 사람은 동서가 미리 정해놓은 새마을 신용금고에서 다시 만났다네. 그곳에서 나는 아무소리도 하지 못하고 동서가 요구하는 대로 내 명의로 3억원을 대출 받을 수밖에 없었어. 물론 그 동서 자신이 빌라를 짓기 위해 구입해 놓은 땅을 후순위 담보로 제공하긴 했지만…”

보증 딜레마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내가 묻자 최 사장이 일이 꼬인 과정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제 명의로 대출받은 3억원을 그 자리에서 돈 한 푼도 만져보지 못하고 곧바로 동서에게 건네주었지요. 그런데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 생각이 다르다’는 말처럼 동서부부는 대출을 받기 전에는 우리 집에 뻔질나게 들락거리며 갖은 아양을 떨더니, 대출을 받은 다음 날부터는 발걸음을 끊다시피 하다가 나중에는 연락도 하지 않는 겁니다. 그래도 저는 사업상 바빠서 그러려니 하고 이해를 하였지요. 무엇보다 동서가 사업이 잘 되어 대출금만 상환일자에 갚고, 나에게 피해만 주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며 서운한 것도 잊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상환약정일자가 지났는데도 상환을 하지 않고 제대로 이자도 불입을 하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집사람이 자기 언니에게 찾아가 빨리 상환을 해야 한다고 난리를 치게 되었지요. 더욱이 제가 신용불량에 걸리면 사업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고 통사정도 했습니다. 동서부부는 처음엔 미안하다고 하면서 어떤 경우라도 제가 신용불량에 걸리지 않도록 해주겠다고 큰소리 뻥뻥 치며 호언장담했지만…. 그저 말뿐이었고, 결국은 원금은커녕 이자마저 내지 않고 대출금상환일자를 넘기게 되었지요.”


그의 말에 옆에 앉은 진 사장이 자신의 일처럼 흥분하고 있었다.
“에이, 나쁜 놈이네.”
나 역시 이 양반이 참 고약한 일에 걸렸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어떻게 해결해야 좋을까 속으로 궁리를 했다.
진 사장이 흥분하는 모습을 잠깐 쳐다보던 최 사장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나마 내가 들어주고 진 사장이 흥분하니 위로가 되는 모양이었다.

“신용금고에서는 대출금을 상환 하지 못하자 저를 신용불량자로 등재하였다는 통보를 보내왔고요, 그게  집으로 날아오자 저희부부는 얼마나 황당했는지 모릅니다. 설마 했던 제가 어리석었지요. 그러자 저보다도 제 집사람이 더 방방 뛰었지요. 언니에게 당했으니 저를 볼 면목이 없고 괘씸하기도 하여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자살까지 하겠다는 걸 도리어 제가 간신히 진정시켰지요. 그 후 저와 집사람이 동서부부를 수차례 찾아가 갖은 방법으로 해결해달라고 요구했지만 차일피일 미루다가 지금은 아예 배 째라는 겁니다.”

그는 생각만 해도 배신감이 솟구쳐 오르는지 눈을 지그시 감으며 입을 굳게 다물었다. 한숨과 함께 들끓는 감정을 간신히 억누르고 있었다. 그런 최 사장의 모습을 옆에서 안타까운 눈으로 지켜보고 있던 진 사장이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다시 열을 토했다.
“에이 나쁜 사람들! 가족끼리 어떻게 그럴 수가…. 하여간 세상에 믿을 놈이 없다니까.”
진 사장이 흥분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했다. 평소 호탕하고 의협심 강한 그로서는 가까이 지내는 최 사장이 남도 아닌 가족들로 인해 억울한 일을 당했으니 속상할 일이었다.

나 역시 어이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진 사장처럼 욕을 하며 감정을 표출할 수는 없었다. 나는 냉정을 되찾으며 실마리를 풀기 위해 애를 썼다.
“그래도 일부는 상환했을 것이 아닙니까? 그리고 신용금고에서 담보권행사를 해서 땅을 경매처분 하여 상환 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닙니까?” 내가 궁금해 하며 물었다.

은혜를 원수로

“그렇게라도 했으면 오죽이나 좋았겠습니까? 저희부부는 동서부부의 말만 믿고 설마하며 기다렸지요. 동서는 처음엔 이자를 몇 번 불입하다가 나중에는 아예 이자를 한 푼도 불입하지 않았습니다. 원금일부를 상환하고 이자를 밀리지 않게 잘 납부했다면 부족한 부분은 저희부부가 일부라도 책임져 상환해줄 수도 있었지요. 그런데 아예 내 배 째라고 하니까 괘씸해서라도 대신 상환해줄 수가 없었어요. 그 많은 돈을 제가 상환할 입장도 못되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저희부부가 새마을신용금고에 찾아가 항의를 했습니다. 내가 비록 차주로써 대출금을 상환할 책임은 면할 수 없지만, 담보 제공된 물건을 경매처분하면 될 텐데 어째서 신용불량자로 만들었냐고 따졌지요. 그러자 신용금고 측에서 하는 말이 ‘담당자가 실수를 했는지 모르지만, 지상권설정을 하지 않아 제대로 된 권리행사를 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또한 ‘담보물건 대지 위에 이미 빌라가 지어져 세대주들이 입주한 상태’라면서, ‘지상권설정이 없는 대지담보물건 후순위채권자인 신용금고 측에서 대지에 대해 경매를 진행하였으나 선순위채권자들이 경락배당금을 모두 가져가고 자신들은 몇 달분 이자만 겨우 배당받았다’고 합니다.”

최 사장은 마치 기록해둔 자료를 읽는 것처럼 비교적 차분하게 경위를 설명했다. 얘기를 들을수록 갑갑해지는 상황이었다. 물에 빠진 사람 건져주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식으로 좋은 일 하고 당하는 꼴이었다.
<다음호에 계속>

 

임성학은?


- 대한신용조사 상무이사 역임

- 화진그룹 총괄 관리이사 역임

- 임성학 멘토링컨설팅연구소 소장

- PIA 사설탐정학회·협회 부회장 겸 운영위원

- PIA 동국대·광운대 최고위과정 지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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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