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가면 쓴 신패권국가

  • 김삼기 시인·칼럼니스트
  • 등록 2022.12.12 15:10:10
  • 호수 1405호
  • 댓글 3개

유럽 열강은 대부분 산업혁명으로 경제성장을 이룬 후, 약 40여년 동안 식민지 쟁탈전을 벌였다. 식민지 대상은 주로 아시아, 아프리카, 발칸반도였다. 이 중 아시아에는 유럽 열강 외에 미국과 일본도 끼어들었다.

식민지 쟁탈전은 영국, 프랑스, 러시아가 선두주자였고 독일, 이탈리아, 벨기에, 미국, 일본 등은 후발주자로 뒤늦게 뛰어들었다. 현대 정치학에서는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이어진 식민지 쟁탈전에 나섰던 국가를 제국주의 국가라고 부른다. 

산업혁명 전에도 제국주의 국가가 존재했는데, 근대 이전에는 제국주의 사상에 기초한 로마제국이나 몽골제국이 있었고, 근대에 이르러서는 나폴레옹 제국이 대표적인 나라다.

제국주의는 한 국가가 다른 국가를 무력침략을 통해 정치, 경제적인 지배권을 확장시키려는 정책 및 그것을 목적으로 하는 사상으로 식민주의와 동일한 의미를 가진다. 

제국주의는 서구 열강이 1914년에 전 세계의 85%를 식민지, 보호령, 신탁통치, 연방 등의 형태로 소유했을 만큼 기세가 대단했다. 아프리카의 경우 에티오피아와 라이베리아를 제외한 거의 전 지역이 유럽의 식민지였다.

1880년부터 1914년까지 서구사회는 흔히 ‘벨 에포크(belle epoque)’, 즉 ‘좋았던 시절’이라 부를 정도로 제국주의 전성기였다.


그러나 제국주의는 1차대전 이후 열강의 통제력이 약해지고, 1919년 “한 민족이 그들 국가의 독립 문제를 스스로 결정짓게 하자”는 미국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 선언으로 식민지 국가들이 독립하기 시작하면서 결국 40년 만에 몰락하고 말았다.

그런데 100여년 전 제국주의가 몰락했다지만, 당시 제국주의 반열에 있었던 10여국가가 1990년대까지도 전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강대국으로 군림해왔다는 점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제국주의 몰락 이후 1990년대까지 지구촌에서 일어났던 대부분의 전쟁과 분열과 내전이 주로 100여년 전 제국주의 국가였던 강대국의 이권에 의해 벌어졌기 때문이다.

제국주의를 경험했던 강대국이 전에 식민지였던 국가에 간섭하는 명분은 세계평화, 경제협력, 안보 등으로 간단했지만, 실제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국가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수준이었다.

결론적으로 1990년대까지 세계 곳곳의 전쟁이나 분쟁을 보면 강대국이 개입되지 않은 싸움이 하나도 없었다. 내전도 100여년 전 제국주의를 경험했던 강대국의 이권에 의해 일어났고, 결국 희생양은 강대국 싸움의 틈바구니에 있던 약소국가였다는 사실이 안타가운 지구촌의 현실이었다. 

그러니까 현재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국가 간의 싸움이나 내전도 100여년 전 제국주의와 열강의 식민지 쟁탈전에서부터 기인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미국과 중국이 2000년 이후 막강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제국주의를 경험했던 10여 강대국 간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면서 최근 20여년 동안 전 세계는 미국과 중국이라는 신패권국가 체제로 바뀌었다.


2000년 이후 전 세계는 제국주의를 경험했던 강대국이 아닌 미국과 중국의 이권싸움 아래 놓이게 됐다는 말이다.

* 패권국가는 16세기의 에스파니아, 17세기의 네덜란드, 18~19세기의 영국, 20세기의 미국 등과 같이 한 국가의 독점 패권체제를 의미하지만, 신패권국가는 2000년 이후 미국과 중국의 양대 패권체제를 일컫는 의미로 필자가 주장하는 용어

신패권국가인 미국과 중국은 제국주의 국가처럼 무력으로 침탈하지 않고, 막강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앞세워 주변 국가에 간접적인 간섭을 통해 자국의 영향력을 끼치는 행태를 취하고 있다. 제국주의 국가나 패권국가에 비해 가면을 쓴 신패권국가의 면모가 아닐 수 없다.

제국주의 국가는 무력으로 나라를 빼앗아 식민지화했기 때문에 국제적 명분이 약해 40여년밖에 버티지 못했고, 과거 패권국가도 독점 체제여서 국력이 약해지면 버티지 못했지만, 신패권국가는 경제협력과 안보를 빌미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양대 체제로 존재하기 때문에 쉽게 몰락하지 않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도 가면을 쓴 신패권국가의 속내를 드러낼 경우, 100여년 전 제국주의 체제가 쉽게 무너졌듯이 신패권국가 체제도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인류는 잘 알고 있다.

사실 코로나19 직전 유럽을 중심으로 미국과 중국이라는 신패권국가의 힘의 논리에 반기를 들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코로나 여파로 수그러들었다. 코로나가 미국과 중국에 도움을 준 셈이다.

인류가 40여년 동안 제국주의 체제와 80여년 동안 강대국 체제를 경험했고, 최근 20여년 동안 신패권주의 체제를 경험하고 있는데, 다음엔 어떤 체제를 경험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건 제국주의 이후 열강 간의 경쟁에서 살아남은 미국과 중국이 신패권국가로 등장했듯이 현재 신패권국가인 미국과 중국 중 경쟁에서 이긴 국가가 다음 체제를 주도하는 방향으로 가서는 절대 안 되고, 신패권국가인 미국과 중국이 자국의 이익을 꾀하기 위해 서로 적당히 타협하면서 신패권국가의 명맥을 유지해서도 안 된다는 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 세계가 협력해 언제 다시 등장할지 모르는 탈신패권주의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이라는 거대한 신패권국가 틈바구니에 있는 한국이 같은 처지에 있는 국가들과 연합해 탈신패권주의 시대의 초석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미국과 중국의 틈바구니에 있는 국가만이 가면을 쓴 신패권국가의 속내를 잘 알 수 있다.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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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내란 특검팀이 2차 계엄 의혹에 대한 실마리를 풀기 시작했다. 비상계엄 선포 다음 날인 지난해 12월4일 새벽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핵심이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 간 교감과 이날, 군 수뇌부의 움직임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당시 상황을 재구성 중인 특검팀은 윤석열 전 대통령을 재소환할 방침이다. 내란 특검팀(특별검사 조은석)은 비상계엄 선포 이후의 상황을 재구성해 왔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의 역할은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고 있다. 특히 2차 계엄 논의 여부는 여전히 의혹에 그치고 있다.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과 김주현 전 민정수석이 무엇을 위한 법률을 검토했는지가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안가 회동 정조준 특검팀은 지금까지 12·3 내란이 어떻게 준비됐는지에 대해 수사력을 집중했다. 북풍 공작과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 국군정보·방첩사령부의 움직임 등이 상당 부분 사실로 확인됐다. 내란 이후의 상황을 수사하기 시작한 특검팀은 지난달 24일 오전 10시 박 전 장관을 소환 조사했다.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를 받는 박 전 장관은 13시간가량 조사를 받고 귀가했다. 박 전 장관은 내란 당일 대통령 집무실에서 계엄 선포 계획을 가장 먼저 들은 국무위원 중 한 명이다. 이후 법무부로 돌아와 실·국장 회의를 열고 검찰국에 ‘합동수사본부 검사 파견 검토’ 지시를 내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계엄 당일 법무부 출입국본부에 출국금지팀을 대기시키라고 지시한 혐의도 적용됐다. 계엄 이후에는 정치인 등 수용을 위해 교정본부에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를 지시한 혐의도 있다. 특검팀은 이를 뒷받침할 만한 근거로 그가 지난해 12월3일 오후 11시쯤 대통령실에서 정부과천청사로 이동하면서 통화한 내역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이 통화한 인물은 임세진 전 검찰과장, 배상업 전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 신용해 전 교정본부장, 심우정 전 검찰총장 등이다. 임 전 과장은 박 전 장관과의 통화를 마치고 검사·수사관 인사를 담당하는 실무진 2명에게 전화를 걸었고, 배 전 본부장은 출국금지·출입국 관련 담당자들에게 연락했다. 신 전 본부장은 김문태 전 서울구치소장과 연락을 취했다. 박 전 장관은 이후 간부 회의를 열어 관련 논의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다음 날 한상대 전 검찰총장과 연락하기도 했다. 한 전 총장은 퇴직 검사 모임인 검찰동우회 회장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과 탄핵 당시 가장 많이 연락한 인물이다. 국회 계엄 해제 요구안 의결 이후에는 김 전 수석과 비화폰으로 통화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검팀은 두 사람이 2차 계엄 등 후속 대책을 논의했다고 보고 있다. 박 전 장관 측은 김 전 수석에게 포고령에 문제가 있으며 국회가 의결했으니 국무회의를 신속히 소집해 계엄을 해제해야 한다고 전했다는 입장이다. 박성재·김주현 곧바로 2차 계엄 법률 검토? 용산 CCTV 속 최측근들 메모 후 문건 만지작 특검팀은 박 전 장관이 ▲계엄사령부 산하 합동수사본부 검사를 파견하라고 검찰국에 지시 ▲출입국본부 ‘출국금지팀’ 대기 지시 ▲교정본부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 지시 등을 추진했다고 판단한다. 조사를 마친 박 전 장관은 “제가 한 일에 대해 소상하게 다 말씀드렸다”며 “통상적인 업무 수행에 대한 다른 평가를 하는 것에 대해 제가 알고 있는 모든 내용을 상세하게 말씀드렸다”고 했다. 이어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지속적으로 특검법의 위헌성에 대해 지적을 했었는데, 이 부분이 현재 특검법에도 시정되지 않은 채 시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 점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어떤 내용을 (특검에) 말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의문이 제기되는 모든 점에 대해 상세히 말씀드렸다”고 답했다.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지’ 묻자 “나는 항상 업무를 했을 뿐”이라고 했다. ‘5급 이상 간부들에게 비상대기를 지시했다’는 주장에는 “부당한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구치소장 연락 지시’ 관련 질문에는 “질문이 어디에 근거한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수용 지시가 계엄과 관련됐느냐’는 질문에는 “누구에게도 체포·구금하라는 지시를 한 사실이 없다”고 답변했다.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직전 국무회의를 열기 위해 일부 국무위원을 용산 대통령실로 소집했을 때의 CCTV 영상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은 대통령실 대접견실에서 A4 용지에 직접 내용을 메모하고 특정 문건을 들여다봤다고 한다. 특검팀은 그가 윤 전 대통령 등으로부터 문건 형태로 계엄 이후 법무부가 해야 할 조치 등을 지시받고 현장에서 이를 직접 정리했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앞서 계엄 선포 당일 대통령실에 모인 일부 국무위원 등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계엄 이후 조치 사항이 담긴 문건을 직접 전달받았다. 최상목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계엄 이후 가동할 비상입법기구 예산 편성 등을 지시받았고,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향신문> 등 언론사에 단전·단수 조치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지시를 한 사실 없다” 조태열 전 외교부 장관은 ‘공관을 통해 대외 관계를 안정화시키라’는 지시를 받았다. 박 전 장관 측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개별 지시 문건을 받지 않았고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법무부에 지시를 내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24일 특검 조사에서도 A4 용지에 메모했는지 등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장관 측은 이날 “해당 CCTV 장면을 보여달라”는 취지의 의견서를 특검에 제출했다. 특검팀이 김 전 수석을 소환한 건 지난 7월 초다. 그는 지난해 12월4일 서울 삼청동에 위치한 대통령 안전가옥(안가)에서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박 전 장관, 이완규 전 법제처장 등과 계엄 관련 법률 검토를 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모두 윤 전 대통령과는 고교·대학 및 검찰 동기나 선·후배로 윤석열정부 최고위직 법률가들이다. 지난해 말부터 정치권에서 “비상계엄 수사 등 법률적 대응 방안 또는 제2의 내란 모의 가능성을 논의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자 이들은 국회와 경찰 조사에서 “연말에 얼굴 보자는 취지였다”(박성재 전 장관), “신세 한탄이나 하자는 자리였고, 법률을 검토할 겨를도 없었다”(이상민 전 장관)며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나 검찰과 경찰은 이 자리에 한정화 전 법률비서관이 동석한 사실을 확인했다. 주변 CCTV 등 안가 회동 참석자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한 전 비서관의 존재를 인지하고 소환 조사까지 진행했다. 특검팀은 삼청동 안가 모임 성격을 ▲비상계엄 선포 절차 사후 보완 ▲대통령 탄핵 대비 법적 대응 논리 개발 자리 등으로 보고 있다. 특히 내란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나온 관련자 진술의 위법성을 면밀히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장관과 김 전 수석, 이 전 처장 등은 안가 회동 이후 휴대전화를 바꿨다. 류혁 전 법무부 감찰관은 지난 3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윤 전 대통령 최측근으로 꼽히는 김주현 전 민정수석,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등 밑에서 일하던 검찰 고위 관계자들은 대통령을 ‘운명 공동체’로 생각한다”며 “박 전 장관이나 김 전 수석에 대해서는 검찰이 적극적으로 수사하지 않았다. 이들에 대해 합리적이고 납득할 만한 수사 결론이 나오지 않으면 국민이 받아들이겠나. 모든 의혹이 해소될 때까지 그 사람들에 대한 수사는 계속돼야 한다. 이들은 죽을 때까지 수사선상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증거 이미 폐기했다? 특검팀은 과거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가 작성했던 수사보고서도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검찰 특수본 수사보고서의 제목은 ‘2차 비상계엄 가능성에 대한 의혹 등 정리 보고’다. 수사보고서에는 “12·4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되고 난 직후, 윤 대통령이 계엄사령부 상황실로 찾아가 김용현 국방부 장관에게 ‘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 ‘내가 다시 계엄을 할 테니 그때는 철저히 준비해서 국회부터 장악하라’라고 지시한 정황”이 있다고 적혔다. 해당 의혹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처음 제기했다. 민주당은 지난해 12월6일 비상 의원총회에서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2차 발령을 준비했다는 정황을 공개했다. 검찰이 이 같은 민주당의 의혹 제기와 관련해 수사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계엄사령관인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은 윤 대통령, 김용현 장관과 함께 합참 지휘통제실 내 별도의 방에 들어갔다고 국방위 현안 질의에서 답한 바 있으나 대화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발언했으나 박 총장이 답변한 날인 12월5일은 윤 대통령의 위와 같은 발언이 공개되지 않은 시점”이라며 박 전 총장에 대해 조사 필요가 있다고 적었다. 검찰은 수사보고서에서 시민단체와 언론사 보도 등 2차 계엄 의혹과 관련한 의혹 확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육군 복수 부대에 지휘관 휴가 통제 지침이 내려졌고 비상계엄 선포 이후 경계 태세가 유지되고 있다는 의혹과 계엄 둘째 날 지방 공수여단의 서울 진입 계획이 있었다는 육군특수전사령부 간부의 언론사 인터뷰 등이 그 근거다. 검찰은 윤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에게 ‘국회 문을 열고 들어가 의사당 내 의원들을 밖으로 이탈시킬 것’이라고 동일한 명령을 내렸지만, 지시가 이행되지 않아 2차 계엄이 준비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12월4일 새벽 중요…검도 “수사 필요” 인정 자료 이미 사라졌나…용산 PC 전부 포맷 확인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윤 대통령의 ‘국회의원 이탈 명령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자 김 장관에게 위와 같은 발언(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을 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어 보이고, 이와 더불어 ‘추가 계엄 선포’와 관련된 발언을 했을 가능성도 있어 보이므로 관련 내용 수사 필요성 있음”이라고 적었다. 특검팀은 대통령실 고위 간부들이 조직적으로 2차 계엄 관련 자료를 폐기했다고 보고 있다. 지난달 18일 정진석 전 대통령실 비서실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한 특검팀은 정 전 실장에게 계엄 이후의 상황을 따져 물은 것으로 파악됐다. 정 전 실장은 불법 계엄 전후 윤석열 전 대통령을 가까이서 보좌했다. 그는 계엄 선포 직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 있었다. 국무위원은 아니지만 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에 신원식 전 국가안보실장과 함께 참석했다. 이튿날 새벽에 계엄 해제 국무회의가 열리기 전, 윤 전 대통령이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 머물 때 찾아가 만나기도 했다. 정 전 실장은 지난해 12월4일 국회가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이후 윤 전 대통령, 박 전 총장, 김 전 장관 등과 함께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 내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의결된 후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와도 통화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앞서 “지난해 12월4일 오전 2시58분쯤 정 전 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국회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정부에 도착했음을 확인하고 정부의 신속한 계엄 해제 조치를 촉구했다”고 밝혔다. 정 전 실장은 대통령실 윗선이 계엄 증거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의혹에도 연루돼있다. 특검은 지난 4월 대통령실 컴퓨터(PC) 전체 초기화 계획이 정 전 실장의 지시로 실행됐을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다. 특검팀은 앞서 별도 전담팀을 꾸려 정 전 실장 관련 의혹을 수사해 왔다. 특검팀은 이날 정 전 실장을 상대로 계엄 당시 국무회의와 대통령실 상황, 추 전 원내대표와의 통화 경위 등을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간이 부족하다 특검팀은 박 전 총장도 참고인 신분으로 재조사했다. 앞서 박 전 총장은 계엄 당시 계엄사령관으로서 불법 포고령을 발령한 혐의(내란중요임무종사) 등으로 구속 기소됐다. 박 전 총장도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뒤 윤 전 대통령, 김 전 장관 등과 합참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