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수원 발바리’ 박병화 집 가 보니…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2.12.05 10:55:17
  • 호수 14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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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꾸라지 한 놈이 동네 삼켰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비가 온 다음 날이라 더욱 을씨년스러웠다. 특히 ‘이곳’으로 향하는 마을버스를 타니 “성폭행범 박병화의 퇴거를 요청한다”는 안내문이 붙어있어서 더 그랬다. 온 마을이 목놓아 한 사람의 퇴거를 외치고 있다. 바로 화성시 봉담읍 원룸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박병화는 경기도 수원시에서 발생한 연쇄 성폭행 사건의 범인으로 ‘수원 발바리’라고 불렸다. 여기서 말하는 발바리는 국어사전에 ‘몸이 작고 다리가 짧은 반려견’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 ‘경망스럽게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사람’을 비유한다. 즉 지역을 가리지 않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범행을 저지른다는 의미다.

20대 8명
성폭행

박씨는 2002년과 2005년에서 2007년까지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와 영통구 일대의 20대 여성 8명을 성폭행하고 금품을 빼앗았다. 피해자는 전부 원룸에 혼자 거주하는 여성이었다.

박씨는 혼자 거주하는 여성의 집 방범창을 뜯고 들어가거나 늦게 귀가하는 여성을 노려 범행을 저질렀다. 범행 당시 그는 여자친구도 있고 성실하게 직장 생활을 했던 것으로 드러나 지역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박씨는 2008년 1월 수원지법에서 열린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같은 해 6월 서울고법에서 열린 항소심에서 징역 11년으로 감형받았고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됐다. 하지만 복역 중 2002, 2005년 저질렀던 2건의 여죄가 추가로 밝혀지면서 형기가 4년 연장됐다.


박씨는 출소 후 보호 관찰시설에서 생활하길 원했다고 알려졌으나, 이는 이뤄지지 않았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지난 10월18일 국정감사에서 “박병화가 어디서 거주할지 기준을 만들 것을 법무부 장관에게 요구했다. 지역 상황을 고려해 주의 깊게 보며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법무부는 지난 10월21일 ‘고위험 성범죄자 재범방지 추가 대책’을 마련했지만, 법무부 관계자는 박병화에 대해 “현 단계에서 구체적인 거주지역 및 거주 형태에 대해 정해진 바 없다”고 말했다. 

주민의 안전을 위해 경찰은 ▲박병화 거주지 관할 보호관찰소와 핫라인을 구축해 공동 대응체계 구축 ▲경찰서 여성·청소년 강력팀을 특별대응팀으로 지정해 치안 관리 ▲박병화 거주지 주변에 방범 진단 실시 ▲지자체와 협조해 CCTV 등 범죄 예방시설 확충 ▲전담 보호관찰관을 배치해 1대1 전자 감독 수준으로 관리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경찰 관계자는 “주민의 불안감 해소를 위해 지역 경찰, 기동대 등 경찰력을 활용해 순찰을 강화할 계획이다. 경찰의 대응 계획을 주민들에게도 공유하며 지역민의 불안감 해소와 안전 관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불안감을 잠재우려 노력했다.

“성범죄자, 화성시민으로 인정할 수 없다”
성인 걸음 초등학교 7분 댛닥교 2분 거리

지난 10월31일 만기 출소한 박씨는 첫 거주지로 수원이 아닌 화성을 선택했다. 박씨의 모친은 박씨의 출소를 앞둔 지난 10월25일 화성의 한 부동산을 찾아 “조카가 살 집”이라고 말하며 보증금 100만원, 월세 30만원의 12개월짜리 원룸 임대차계약을 했고 바로 전입신고까지 마쳤다.

당시 박씨가 입주한 원룸 건물주 가족은 “박씨가 입주했다는 사실을 마을 이장을 통해 알게 됐다. 80대인 저희 할머니가 원룸을 관리하시는데, 지난 10월 한 여성이 수원 쪽 부동산 사람과 와서 월세 계약을 하고 갔다”며 “알고 보니 그 여성이 박씨의 모친이였는데, 여기에 박씨가 올 거라는 사실은 전혀 말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박씨가 거주자인 걸 알았다면 절대로 방을 내주지 않았을 것”이라며 “화성시와 함께 박씨의 강제퇴거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분괴했다.

정명근 화성시장은 “박씨의 거주를 알리지 않고 방을 구한 건 사기 행위에 준하는 위법 계약이라고 보인다. 원룸 관계자와 협의해 계약을 철회하고 강제퇴거할 수 있도록 법적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박씨의 거주지는 지난 10월31일 오전 10시50분 여성가족부가 운영하는 ‘성범죄자 알림e’에 등록됐다. 성범죄자 알림e에는 박씨의 정면, 양 측면, 전신 등 4장의 사진이 공개됐다. 주민등록상 주소와 실제 거주지는 동일했다.

박씨가 화성시 주민이 된 즉시, 화성시 주민들은 분노했다. 지난달 1일 박씨 거주지 인근의 초등학교 어머니회와 봉담 초·중·고교 학부모연합회 50여명이 박씨의 퇴거를 요구하는 집회를 벌였다.

이들은 “연쇄 성폭행범의 거주 소식이 알려지면서 화성시 맘카페는 난리가 났고, 이 일대는 폭탄 맞은 듯 구멍이 났다. 법무부 직원은 이곳을 한 번이라도 와 본 적이 있냐. 도대체 누가 거주를 허락한 것이냐. 성범죄자의 거주를 결사반대하고 퇴거를 요청한다”고 주장했다.

알리지 않고 
방 구했다?

같은 날 경기도 교육청은 “학생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연쇄 성폭행범 박병화의 퇴거를 촉구한다”는 입장문을 냈다. 이어 “박병화 퇴거는 물론, 해당 지역 치안 관리 강화, 범죄 예방시설 확충, 안전교육 확대 등 학생들의 안전 보장을 위한 가능한 모든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밖에도 ▲화성시 여성 단체 협의회 ▲화성시에 입주한 기업 단체 ▲이장 단체 협의회 ▲각 동 주민 일동 등이 모여서 한마음으로 박씨의 퇴거를 요청했다.

법조계는 박씨를 퇴거시키는 데 회의적이었다. 이유는 계약조건에 ‘성범죄자로 드러날 경우 계약은 무효’ 같은 특약사항이 없기 때문이다. 

비슷한 경우로 아동 성폭행범 조두순이 있다. 2020년 11월 조두순이 경기도 안산시 한 다세대주택의 집주인과 2년 계약조건으로 임대차계약을 했다. 그러나 월세 계약 과정에서 조씨가 아닌 그의 아내가 계약을 했고, 이를 몰랐던 집주인은 퇴거 요청을 했다.

하지만 조씨 측은 “이사 갈 곳이 없다”며 이를 거절했고 현재도 거주 중이다.

박씨의 거주지 앞에서는 여전히 시위가 진행 중이다. <일요시사>는 지난달 29일 박씨의 거주지인 화성시 봉담읍 원룸촌을 취재했다. 특히 이곳은 초등학교와 대학교의 중간지점이어서, 박씨가 거주한 이후 사뭇 긴장이 고조된 상황이었다.


박씨의 거주지는 대로변에서 수원대학교 후문으로 향하는 언덕길을 1분 정도 올라가다가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나온다. 박씨의 원룸은 3층짜리 빌라로, 동일한 모양의 빌라 4개 중 가장 안쪽에 위치했다. 

주변은 모두 원룸들로 이곳을 처음 방문한 사람이라도 도처에 있는 경찰로 ‘무언가 위험한 사람’이 이곳에 거주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눈치챌 수 있다. 

사실 경찰이 아니어도 이곳에 박씨가 거주하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성범죄자 박병화 화성시 거주 절대 반대” “성범죄자 박병화를 화성 시민으로 절대 인정할 수 없다” 등의 현수막이 곳곳마다 걸려 있기 때문이다. 

순찰 초소 설치
경찰 상시 주둔

특히 박씨 거주지 원룸촌 골목 초입에는 컨테이너로 만들어진 순찰 초소가 설치돼있다. 이곳에는 경찰이 상시 주둔하고 있고, 박씨의 원룸 입구 문 바로 앞에는 비닐 막으로 된 임시 초소를 만들어서 2명의 경찰이 상주 중이었다. 경찰은 시간마다 골목을 순찰하고 있었다. 

해당 빌라에 거주 중이라는 A씨는 기자에게 박씨로 인해 불편한 점이 많다고 토로했다.


A씨는 “박씨가 이곳으로 이사 오고 난 뒤로 불편한 점이 너무 많다. 동네 분위기가 안 좋아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학생이 많이 사는데 얼마나 무섭겠냐”며 “안전에 관해서는 경찰이 계속 상주해 있고 순찰도 계속 돈다. 경찰이 안전하게 지켜주고 있는 것은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근데 저 사람 한 명 때문에 경찰들이 계속 상주하고 있는 것 아니냐. 너무 힘든 일이다. 박씨가 보호 관찰시설에 들어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집 앞에서 진행되는 시위 때문에 시끄러워서 힘들다”고 호소했다.

이 같은 의견은 근처 상가에서 근무하고 있는 B씨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B씨는 기자에게 “이곳에서 거주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곳에서 일하면서 거주자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많이 봤다. 특히 이곳에는 밤에 일을 하고 낮에 쉬는 분들이 있다”며 “이분들은 시위 소음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어 이사가고 싶다고 말한다”고 털어놨다.

<일요시사>는 박씨 집에서 인근 초등학교까지 걸어가 봤다. 성인 기준으로 천천히 걸어서 7분 정도 소요됐다. 초등학교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1시. 일반적인 초등학교라면 하교하는 아이들이 있어야 하는데, 하교생은 한 명도 볼 수 없었다.

이것도 박씨 때문이었다. 학교는 학생들의 안전한 귀가를 위해, 학생들이 학원 운행 차량을 학교 운동장에서 탈 수 있도록 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혼자서 집에 가는 학생은 동네 어른들로 구성된 봉사단이 직접 하교를 도와줬다. 봉사단은 학교 정문에 2명, 후문에 2명씩 배치돼있었다.

봉사단 C씨는 “학생들이 절대 혼자서 하교하지 않도록 도와준다. 혼자 나온 아이가 있으면 같이 하교한다. 아무래도 맞벌이 부부도 있고, 상황이 있어서 혼자 하교할 수도 있지 않냐”며 “올해 초에 학교장이 이 학교는 학생 수도 적고 지역 특성상 위험하지 않다고 도와주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박씨가 거주하면서 다시 요청했다”고 말했다.

시끄럽고, 위험하고, 장사 안 돼
“모두 힘들다…도저히 못 살겠다”

이어 “바로 나와서 도와주고 있다. 어린 학생이 등하교하는 장소에 성폭행범이 사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답답함을 전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초등학교와 박씨의 거주지 사이에는 도로 하나가 있었고, 학생들이 많이 다니는 길목은 아니었다. 더 큰 문제는 인근 대학교였다.

박씨의 거주지에서 대학교 후문 입구까지는 걸어서 2분 정도 걸린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였다. 학교 후문에는 “아이 낳고 안전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보장하라!” “성범죄자 박병화 화성시 및 학교 주변 거주 반대”라는 현수막이 겹겹이 붙어있었다.

학교 인근에서 자취하고 있다는 여대생 D씨도 박씨의 거주 이후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고 했다.

D씨는 “원래 학교 주위가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박씨가 이사온 이후로 상황이 달라졌다. 이번에 집 주인이 현관문과 창틀에 안전장치를 새로 달아줬고, 학교 선배는 밤에 귀가할 때 위험하다고 호신용 3단봉을 사줬다”며 “아무래도 밤에는 집 밖으로 나가지 않으려고 한다. 무섭다고도 느낀다”고 토로했다.

이어 “학교 근처 음식점들이 장사가 잘 안 될 것이다. 나도 그렇고 친구들도 밤에 나가지 않는다. 집에서도 걱정하지만 학교 다니는 동안에는 어쩔 수 없으니까…”라고 말끝을 흐렸다.

이처럼 박씨의 거주로 인해 봉담읍 원룸촌은 사람들이 떠나가고 있다. 분위기는 고사하고 장사도 잘 안되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이런 상황에 국민동의청원에는 “연쇄 성범죄자 수원 발바리 박병화의 퇴거를 강력히 촉구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자는 “성범죄자의 3년 내 재범 확률은 62%다. 현재 정부에서 마련한 대책 모두 예방이 아닌 재범이 발생된 이후 증거로 사용할 수 있는 탁상공론적 대응이다. 어떠한 대응도 시민과 한 아이의 부모에게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박병화의 빠른 퇴거 및 보호 시설 입소를 강력히 청원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기준 청원 동의 수는 3만6519명으로 1만3481명이 더 동의하면, 청원은 국회 소관 위원회에 회부된다.

이 같은 상황에 화성시 관계자는 “시민 안전이 최우선인 만큼 시가 할 수 있는 모든 행정력을 최우선으로 동원하고 있는 상황이다. 시가 시민들과 함께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시민 안전을 위협하는 연쇄 성폭행범은 화성시민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시의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고수했다.

근본적
해결은?

성범죄자의 거주지 문제 해결을 위해, 전문가들은 성범죄자들의 양형제도를 검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외국의 경우 지속적이고 상습적인 성범죄자는 40년에서 50년까지 형량을 내린다. 박병화는 올해 겨우 39세다. 결국 지금 양형 조건으로는 현재 10년 정도 구속시키고, 출소해서 사회 갈등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조건이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위해 양형제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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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터질’ 11월 국회 막전막후

‘박 터질’ 11월 국회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9월 정기국회 첫날부터 한복과 상복으로 기싸움을 벌이던 여의도 전쟁은 현재 진행형이다. 12월 정기국회 종료까지 겨우 한 달 남았지만 여야 간의 파열음은 여전하다. 더불어민주당은 개혁 추진 동력을 얻기 위해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에 질세라 국민의힘은 야당으로서 거대 여당의 폭주에 맞서겠다며 맞불을 놨다. 고성과 퇴장이 난무하던 이재명정부 첫 국정감사(이하 국감)가 종합감사만 남긴 채 막바지에 돌입했다. 수많은 안건 속에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언급된 건 김현지·조희대 두 사람의 이름이다. 여전히 베일에 싸인 김현지 제1대통령실 부속실장과 사퇴 압박에도 꼿꼿하게 버티는 조희대 대법원장을 둘러싼 국감 후폭풍이 이어질 전망이다. 김현지 조희대 오는 6일 열리는 국회 운영위원회가 대통령실을 대상으로 한 종합감사에 김 실장 이름을 증인으로 올렸지만 끝내 불발됐다. 그동안 국민의힘은 김 실장을 증인으로 불러 모든 의혹을 검증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감사가 아닌 정치공세”라며 이를 거부했다. 민주당은 김 실장이 국감 당일 오전 또는 오후 1시까지만 출석할 수 있다고 밝혔고 ‘반반 출석’ 논란을 키웠다. 국민의힘 김은혜 의원은 “김현지 증인 출석을 놓고 민주당이 내놓은 안은 오전 출석, 오후 불출석이라고 하는데 국감이 치킨인가? 반반 출석하게”라며 “김 실장 한 사람을 지키려고 하니 이런 코미디가 나오는 것”이라고 비꼬았다. 국민의힘이 ‘김현지 흔들기’에 나서자 민주당은 조 대법원장을 도마 위에 올렸다. 민주당은 “국감이 끝난 이후 사법개혁을 처리하겠다”며 조 대법원장이 스스로 거취를 정할 수 있는 데드라인을 그어줬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이번 사법개혁안은 제왕적 대법원장의 전횡을 막고 재판의 민주적 절차를 강화하기 위한 사법정상화법이다. 사법 독립성과 책임성을 두텁게 하고 국민의 공정한 재판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라며 사법부 장악 논란을 사전에 잠재웠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은 조 대법원장에 대한 탄핵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혁신당 조국 비상대책위원장은 “대법원이 조 대법원장의 사퇴 요구를 외면할 경우 탄핵을 포함한 모든 법적·정치적 수단을 강력히 추진하겠다”며 으름장을 놨다. 두 사람의 이름은 오는 12월 정기국회를 마치고 해를 넘겨서도 호명될 것으로 보인다. 여야 모두 내년에 있을 지방선거를 겨냥해 상대편의 아킬레스건을 물고 늘어지겠다는 전략이다. 한 야권 관계자는 “김건희 특검이 12월까지 갈 것으로 봤는데 조희대라는 새로운 공격 포인트가 생겼다. 민주당이 쉽게 놔주지 않을 것”이라며 “‘내란 세트’로 묶어서 지방선거까지 끌고 가겠다는 심산이다. 내란이라는 키워드만큼 국민의힘을 공격하기 좋은 소재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반면에 민주당은 부동산 실책이 뼈아프다. 그걸 덮기 위해 조 대법원장을 계속해서 끌어들일 것”이라며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과 추경호 의원에 대한 수사가 이뤄지면 이제 그쪽을 노리지 않겠나? 여아가 머리채만 안 잡았지, 아마 역대급 국회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여야 ‘사이좋게’ 하나씩 쥔 약점 특검 앞 권성동·추경호 운명은? 추 의원은 지난달 30일 국회의 계엄해제 의결을 방해한 혐의로 첫 조사를 받았다. 특검은 당시 원내대표였던 추 의원을 비롯한 국민의힘 지도부가 의원총회 장소를 여러 차례 변경함으로써 고의로 표결을 방해했는지를 들여다볼 예정이다. 이날 추 의원은 조은석 내란특검에서 진행되는 1차 피의자 소환조사에 응해 “무도한 정치 탄압”이라며 “당당하게 특검에 임하겠다”고 밝혔다.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 수감 중인 권성동 전 원내대표의 첫 재판은 오는 3일로 예정돼있다. 권 전 원내대표는 불법 정치자금 1억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아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처럼 각종 악재가 국민의힘을 단단히 휘감자 부동산으로 한차례 휘청한 민주당이 반사이익 효과를 볼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여기에 여론조사 대납 의혹을 받는 오세훈 서울시장과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의 대질이 오는 8일 예정돼 내년 6월 치러질 지방선거 판까지 흔들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오는 5일부터 시작되는 내년도 예산안 심사를 놓고 긴장감이 고조된다. 이정부 출범 후 첫 예산 심사로 국민의힘은 지역사랑 상품권 등 이 대통령의 트레이드마크인 지역 화폐를 겨냥해 맹공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올해 두 차례에 걸쳐 민주당 주도로 추경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국민의힘이 크게 반발했고, 지난 8월 정부 예산안이 공개되면서 본격적으로 ‘이재명식 포퓰리즘’ 프레임 굳히기에 나섰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오는 5일 있을 예산안 공청회를 시작으로 6∼7일 이틀간 종합정책질의를 실시할 예정이다. 10~11일에는 경제부처, 12∼13일에는 비경제부처 부별 심사가 진행되고 17일에는 소위원회 예산안의 감·증액을 심사하는 예산안조정소위가 가동된다. 각 소위의 논의를 거친 예산안은 전체회의 의결을 통해 본회의에 상정된다. 예산안 국회 본회의 처리 법정 시한은 매년 12월2일이지만 늘 그렇듯 여야의 예산 샅바싸움으로 해당 날짜를 넘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앞서 정부는 지난 8월 728조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올해 본예산에 견줬을 때 8.1% 늘어난 규모다. 이 대통령은 초혁신 경제 분야 등에 큰 폭으로 투자해 경제의 마중물 역할을 하겠다는 방침이다. 예산안이 의결되던 날 이 대통령은 “지금은 어느 때보다 재정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씨앗을 빌려서라도 뿌려서 농사를 준비하는 게 상식이고 순리”라고 말했다. 역대급 규모 쩐의 전쟁 이어 “현재 우리 경제는 신기술 주도의 산업 경제 혁신, 그리고 외풍에 취약한 수출 의존형 경제의 개선이라는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안고 있다”며 “국무회의에서 의결되는 내년도 예산안은 이런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해결하고 경제 대혁신을 통해 회복과 성장을 이끌어내기 위한 마중물”이라고 설명했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AI 투자다. 그동안 이 대통령은 AI 3대 강국을 강조한 만큼 예산 역시 이에 맞춰 전년 대비 3배 이상 증가한 10조1000억원으로 책정했다. 자동차·조선, 반도체 등 주요 산업에 AI를 접목하고 휴머노이드 로봇용 AI 모델 등 ‘피지컬 AI’ 분야에도 집중 투자를 예고했다. 과학기술 연구개발(R&D) 예산은 지난해보다 19.3% 증가한 35조3000억원이다. 역대 규모인 이번 예산 중 10조6000억원이 AI·바이오·콘텐츠·방산·에너지·제조 등 6대 첨단산업의 핵심 기술개발을 지원하기 위해 투입된다. 이 중에서도 국민의힘은 26조2000억원으로 책정된 ‘민생경제 회복과 사회연대경제 기반 구축’ 부문을 눈여겨보고 있다. 정부는 24조원 규모로 지역사랑상품권 발행을 지원하고 지역별 여건을 고려해 국비 보조율을 상향 조정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민주당은 24조원은 총 발행되는 상품권의 액면가이며 이 중 3~7%를 예산으로 지원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디지털 온누리상품권 예산은 4000억원으로 도합 4조5000억원 규모로 책정됐다. 또 정부는 연 매출 1억400만원 미만인 소상공인 230만개 사에 경영안정 바우처 25만원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예산안이 발표되자 국민의힘은 곧바로 ‘국민 부담 가중 청구서’라고 반박했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이정부 예산이 올해보다 8.1% 늘어난 728조원 규모로 편성됐다. 조세감면까지 포함하면 실질 지출은 무려 808조5000억원에 달한다”며 “내년도 국가채무는 1415조원, 2029년에는 무려 1789조 원으로 폭증할 전망이다.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올해 49.1%에서 내년 51.6%, 2029년에는 58%까지 치솟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난 문재인정부 5년 동안 국가채무 비율이 33.9%에서 46.8%로 뛰어올랐는데 이정부는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는 나랏빚을 통제하기는커녕, 폭발 직전까지 끌어올릴 심산”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거짓 선동”이라며 민생 최우선에 초점을 맞췄다고 반박했다. ‘올려’ ‘내려’ 본회의 난타전 쟁점 법안 처리 여부도 관전 포인트다. 민주당은 사법개혁을 위한 법 왜곡죄를, 국민의힘은 이정부의 부동산을 겨냥한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폐지를 밀어붙이고 있다. 앞서 민주당과 혁신당은 각각 법 왜곡죄를 발의했다. 해당 법안은 판·검사가 증거를 조작하거나 사실관계를 왜곡하는 등 잘못된 사실관계에 법을 적용해 기소나 유죄 판결을 내리는 경우 처벌토록 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현재 법 왜곡죄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소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지난달 28일 국정감사 대책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사법개혁안에 대해 “이번달 까지 (입법을) 마무리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백혜련 사법개혁특별위원장도 MBC 라디오를 통해 “특위에서 낸 5대 개혁안은 상당한 공감대가 이미 이뤄져 있다”며 “당내, 국민적으로 그리고 법원과도 대법관 증원 문제 빼고는 의사소통이 이뤄졌다. 법사위 논의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면 이번 정기국회 내 충분히 처리 가능하다”고 밝혔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 역시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당은 개혁 골든타임을 절대로 실기하지 않고 연내에 반드시 마무리 짓겠다”며 힘을 실었다. 헌법 제84조이자 형사소송법 개정안인 ‘대통령 재판중지법’에도 군불을 땠다. 법사위 국감에서 국민의힘 송석준 의원이 “이 대통령 파기환송심은 다시 기일을 잡아 (재개)할 수 있느냐” 고 물은 데 대해 김대웅 서울고등법원장이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라고 답한 것이 도화선이 됐다. 헌법 제84조는 ‘대통령은 내란·외환죄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에 발생한 범죄로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당시 사법 리스크 족쇄를 풀지 못한 이재명 대표의 당선이 확실시되자 ‘대통령의 불소추특권’ 조항을 놓고 여러 갈래의 해석이 제기됐다. 민주당은 법안이 당론은 아니라면서도 향후 사법부의 행동에 따라 결정하겠다고 압박에 나섰다. 민주당 박상혁 의원은 YTN 라디오를 통해 “많은 국민이 지난 국감에서 서울고등법원장의 발언을 보고 깜짝 놀라셨을 것”이라며 “벌써 몇 달째 계류 중인 법안을 처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국민이 만들어주신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사법개혁? 부동산? 마음은 지선 노발대발 ‘쇼츠각’ 잡는 의원들 거대 여당인 민주당이 의석수로 법안을 통과시킨다면 국민의힘은 막아낼 도리가 없다. 대신 국민의힘은 부동산 규제를 파고들면서 이정부의 가장 아픈 곳을 찔렀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을 향해 이번 정기국회에서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이하 재초환) 폐지 법안을 여야 합의로 처리하자고 제안했다. 재건축 활성화의 핵심인 재초환은 재건축으로 얻은 초과이익에 부담금을 부담하는 규제다. 앞서 민주당은 재초환 폐지 가능성을 언급했다가 “당 차원의 결정은 아니”라며 입장을 선회했다. 10·15 부동산 대책 발표 후 예상보다 후폭풍이 크자 신중론을 내세운 것이다. 여당의 갈지자 부동산 행보가 오히려 시장 혼란을 부추겼다는 비판이 나오는 지점이다. 국민의힘 김도읍 정책위의장은 국회에서 열린 국정감사 대책회의에서 “민주당이 10·15 부동산 대책 발표 이후 국민적 비난과 여론의 뭇매로 궁지에 몰리자 이제야 국민의힘이 줄곧 주장해 온 재초환 폐지를 검토하겠다고 한다”며 “이미 김은혜 의원이 법안을 발의해 놨다. 정기국회에서 재초환 폐지 법안을 여야 합의로 신속 처리하자”고 말했다. 하지만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이 국감에서 재초환 유지 방향에 공감한다는 뜻을 밝히면서 여야 간 이견만 커지는 모양새다. 민주당 이연희 의원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재초환 폐지는 투기 광풍을 불러올 조치기 때문에 결코 안 된다.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에 김 장관은 “공감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민주당은 재초환 폐지를 정기국회 내 처리하자는 국민의힙 요구에 대해 “원내 중심의 대화를 기대한다”며 협상의 여지를 열어뒀다. 다만 더 이상 부동산 문제로 자책골을 넣어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강한 만큼 국민 여론을 충분히 반영하겠다는 방침이다. 문제는 여당인 민주당이 언제까지나 ‘신중하게’ 입장을 보류할 수 없다는 점이다. 부동산 시장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지만 “국민의힘 페이스에 말려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기류가 흐르는 만큼 돌파구를 모색해야 한다. 어느 각도에서 보더라도 여야의 강대강 대치는 불가피해 보인다. 지난달 26일 국회가 이례적으로 국감 도중 본회의를 열고 비쟁점 민생 법안 70여건을 일괄 처리하면서 협치의 물꼬가 트이나 싶었지만 또다시 서로를 향해 날을 세우는 형국이다. 앞서 민주당은 APEC 주간을 앞두고 국민의힘을 향해 “무정쟁 주간을 갖자”고 제안했으나 국민의힘은 “경제 참사·부동산 참사를 덮기 위한 침묵 강요이자 정치적 물타기”라고 오히려 비판 수위를 높였다. 김도읍 정책위의장은 “이정부와 민주당이 독선과 독재를 멈추고 정치를 회복시키면 정쟁은 없어진다”고 훈수했다. 손 내밀어도 고개만 팽 한 정치권 관계자는 “여당인 민주당은 정부의 외교 성과를 띄우고 야당인 국민의힘은 야당으로서 잘한 것과 아쉬운 것을 구분해 견제해야 하는데 지금 의원 한 명 한 명이 국회를 자기 정치의 장으로 쓰고 있다”며 “내년 지방선거 영향이 크다. 선거를 앞뒀는데 어떤 정당이든 서로 의견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주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회의감을 내비쳤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