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수원 발바리’ 박병화 집 가 보니…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2.12.05 10:55:17
  • 호수 14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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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꾸라지 한 놈이 동네 삼켰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비가 온 다음 날이라 더욱 을씨년스러웠다. 특히 ‘이곳’으로 향하는 마을버스를 타니 “성폭행범 박병화의 퇴거를 요청한다”는 안내문이 붙어있어서 더 그랬다. 온 마을이 목놓아 한 사람의 퇴거를 외치고 있다. 바로 화성시 봉담읍 원룸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박병화는 경기도 수원시에서 발생한 연쇄 성폭행 사건의 범인으로 ‘수원 발바리’라고 불렸다. 여기서 말하는 발바리는 국어사전에 ‘몸이 작고 다리가 짧은 반려견’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 ‘경망스럽게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사람’을 비유한다. 즉 지역을 가리지 않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범행을 저지른다는 의미다.

20대 8명
성폭행

박씨는 2002년과 2005년에서 2007년까지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와 영통구 일대의 20대 여성 8명을 성폭행하고 금품을 빼앗았다. 피해자는 전부 원룸에 혼자 거주하는 여성이었다.

박씨는 혼자 거주하는 여성의 집 방범창을 뜯고 들어가거나 늦게 귀가하는 여성을 노려 범행을 저질렀다. 범행 당시 그는 여자친구도 있고 성실하게 직장 생활을 했던 것으로 드러나 지역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박씨는 2008년 1월 수원지법에서 열린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같은 해 6월 서울고법에서 열린 항소심에서 징역 11년으로 감형받았고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됐다. 하지만 복역 중 2002, 2005년 저질렀던 2건의 여죄가 추가로 밝혀지면서 형기가 4년 연장됐다.


박씨는 출소 후 보호 관찰시설에서 생활하길 원했다고 알려졌으나, 이는 이뤄지지 않았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지난 10월18일 국정감사에서 “박병화가 어디서 거주할지 기준을 만들 것을 법무부 장관에게 요구했다. 지역 상황을 고려해 주의 깊게 보며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법무부는 지난 10월21일 ‘고위험 성범죄자 재범방지 추가 대책’을 마련했지만, 법무부 관계자는 박병화에 대해 “현 단계에서 구체적인 거주지역 및 거주 형태에 대해 정해진 바 없다”고 말했다. 

주민의 안전을 위해 경찰은 ▲박병화 거주지 관할 보호관찰소와 핫라인을 구축해 공동 대응체계 구축 ▲경찰서 여성·청소년 강력팀을 특별대응팀으로 지정해 치안 관리 ▲박병화 거주지 주변에 방범 진단 실시 ▲지자체와 협조해 CCTV 등 범죄 예방시설 확충 ▲전담 보호관찰관을 배치해 1대1 전자 감독 수준으로 관리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경찰 관계자는 “주민의 불안감 해소를 위해 지역 경찰, 기동대 등 경찰력을 활용해 순찰을 강화할 계획이다. 경찰의 대응 계획을 주민들에게도 공유하며 지역민의 불안감 해소와 안전 관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불안감을 잠재우려 노력했다.

“성범죄자, 화성시민으로 인정할 수 없다”
성인 걸음 초등학교 7분 댛닥교 2분 거리

지난 10월31일 만기 출소한 박씨는 첫 거주지로 수원이 아닌 화성을 선택했다. 박씨의 모친은 박씨의 출소를 앞둔 지난 10월25일 화성의 한 부동산을 찾아 “조카가 살 집”이라고 말하며 보증금 100만원, 월세 30만원의 12개월짜리 원룸 임대차계약을 했고 바로 전입신고까지 마쳤다.

당시 박씨가 입주한 원룸 건물주 가족은 “박씨가 입주했다는 사실을 마을 이장을 통해 알게 됐다. 80대인 저희 할머니가 원룸을 관리하시는데, 지난 10월 한 여성이 수원 쪽 부동산 사람과 와서 월세 계약을 하고 갔다”며 “알고 보니 그 여성이 박씨의 모친이였는데, 여기에 박씨가 올 거라는 사실은 전혀 말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박씨가 거주자인 걸 알았다면 절대로 방을 내주지 않았을 것”이라며 “화성시와 함께 박씨의 강제퇴거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분괴했다.

정명근 화성시장은 “박씨의 거주를 알리지 않고 방을 구한 건 사기 행위에 준하는 위법 계약이라고 보인다. 원룸 관계자와 협의해 계약을 철회하고 강제퇴거할 수 있도록 법적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박씨의 거주지는 지난 10월31일 오전 10시50분 여성가족부가 운영하는 ‘성범죄자 알림e’에 등록됐다. 성범죄자 알림e에는 박씨의 정면, 양 측면, 전신 등 4장의 사진이 공개됐다. 주민등록상 주소와 실제 거주지는 동일했다.

박씨가 화성시 주민이 된 즉시, 화성시 주민들은 분노했다. 지난달 1일 박씨 거주지 인근의 초등학교 어머니회와 봉담 초·중·고교 학부모연합회 50여명이 박씨의 퇴거를 요구하는 집회를 벌였다.

이들은 “연쇄 성폭행범의 거주 소식이 알려지면서 화성시 맘카페는 난리가 났고, 이 일대는 폭탄 맞은 듯 구멍이 났다. 법무부 직원은 이곳을 한 번이라도 와 본 적이 있냐. 도대체 누가 거주를 허락한 것이냐. 성범죄자의 거주를 결사반대하고 퇴거를 요청한다”고 주장했다.

알리지 않고 
방 구했다?

같은 날 경기도 교육청은 “학생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연쇄 성폭행범 박병화의 퇴거를 촉구한다”는 입장문을 냈다. 이어 “박병화 퇴거는 물론, 해당 지역 치안 관리 강화, 범죄 예방시설 확충, 안전교육 확대 등 학생들의 안전 보장을 위한 가능한 모든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밖에도 ▲화성시 여성 단체 협의회 ▲화성시에 입주한 기업 단체 ▲이장 단체 협의회 ▲각 동 주민 일동 등이 모여서 한마음으로 박씨의 퇴거를 요청했다.

법조계는 박씨를 퇴거시키는 데 회의적이었다. 이유는 계약조건에 ‘성범죄자로 드러날 경우 계약은 무효’ 같은 특약사항이 없기 때문이다. 

비슷한 경우로 아동 성폭행범 조두순이 있다. 2020년 11월 조두순이 경기도 안산시 한 다세대주택의 집주인과 2년 계약조건으로 임대차계약을 했다. 그러나 월세 계약 과정에서 조씨가 아닌 그의 아내가 계약을 했고, 이를 몰랐던 집주인은 퇴거 요청을 했다.

하지만 조씨 측은 “이사 갈 곳이 없다”며 이를 거절했고 현재도 거주 중이다.

박씨의 거주지 앞에서는 여전히 시위가 진행 중이다. <일요시사>는 지난달 29일 박씨의 거주지인 화성시 봉담읍 원룸촌을 취재했다. 특히 이곳은 초등학교와 대학교의 중간지점이어서, 박씨가 거주한 이후 사뭇 긴장이 고조된 상황이었다.


박씨의 거주지는 대로변에서 수원대학교 후문으로 향하는 언덕길을 1분 정도 올라가다가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나온다. 박씨의 원룸은 3층짜리 빌라로, 동일한 모양의 빌라 4개 중 가장 안쪽에 위치했다. 

주변은 모두 원룸들로 이곳을 처음 방문한 사람이라도 도처에 있는 경찰로 ‘무언가 위험한 사람’이 이곳에 거주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눈치챌 수 있다. 

사실 경찰이 아니어도 이곳에 박씨가 거주하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성범죄자 박병화 화성시 거주 절대 반대” “성범죄자 박병화를 화성 시민으로 절대 인정할 수 없다” 등의 현수막이 곳곳마다 걸려 있기 때문이다. 

순찰 초소 설치
경찰 상시 주둔

특히 박씨 거주지 원룸촌 골목 초입에는 컨테이너로 만들어진 순찰 초소가 설치돼있다. 이곳에는 경찰이 상시 주둔하고 있고, 박씨의 원룸 입구 문 바로 앞에는 비닐 막으로 된 임시 초소를 만들어서 2명의 경찰이 상주 중이었다. 경찰은 시간마다 골목을 순찰하고 있었다. 

해당 빌라에 거주 중이라는 A씨는 기자에게 박씨로 인해 불편한 점이 많다고 토로했다.


A씨는 “박씨가 이곳으로 이사 오고 난 뒤로 불편한 점이 너무 많다. 동네 분위기가 안 좋아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학생이 많이 사는데 얼마나 무섭겠냐”며 “안전에 관해서는 경찰이 계속 상주해 있고 순찰도 계속 돈다. 경찰이 안전하게 지켜주고 있는 것은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근데 저 사람 한 명 때문에 경찰들이 계속 상주하고 있는 것 아니냐. 너무 힘든 일이다. 박씨가 보호 관찰시설에 들어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집 앞에서 진행되는 시위 때문에 시끄러워서 힘들다”고 호소했다.

이 같은 의견은 근처 상가에서 근무하고 있는 B씨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B씨는 기자에게 “이곳에서 거주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곳에서 일하면서 거주자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많이 봤다. 특히 이곳에는 밤에 일을 하고 낮에 쉬는 분들이 있다”며 “이분들은 시위 소음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어 이사가고 싶다고 말한다”고 털어놨다.

<일요시사>는 박씨 집에서 인근 초등학교까지 걸어가 봤다. 성인 기준으로 천천히 걸어서 7분 정도 소요됐다. 초등학교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1시. 일반적인 초등학교라면 하교하는 아이들이 있어야 하는데, 하교생은 한 명도 볼 수 없었다.

이것도 박씨 때문이었다. 학교는 학생들의 안전한 귀가를 위해, 학생들이 학원 운행 차량을 학교 운동장에서 탈 수 있도록 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혼자서 집에 가는 학생은 동네 어른들로 구성된 봉사단이 직접 하교를 도와줬다. 봉사단은 학교 정문에 2명, 후문에 2명씩 배치돼있었다.

봉사단 C씨는 “학생들이 절대 혼자서 하교하지 않도록 도와준다. 혼자 나온 아이가 있으면 같이 하교한다. 아무래도 맞벌이 부부도 있고, 상황이 있어서 혼자 하교할 수도 있지 않냐”며 “올해 초에 학교장이 이 학교는 학생 수도 적고 지역 특성상 위험하지 않다고 도와주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박씨가 거주하면서 다시 요청했다”고 말했다.

시끄럽고, 위험하고, 장사 안 돼
“모두 힘들다…도저히 못 살겠다”

이어 “바로 나와서 도와주고 있다. 어린 학생이 등하교하는 장소에 성폭행범이 사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답답함을 전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초등학교와 박씨의 거주지 사이에는 도로 하나가 있었고, 학생들이 많이 다니는 길목은 아니었다. 더 큰 문제는 인근 대학교였다.

박씨의 거주지에서 대학교 후문 입구까지는 걸어서 2분 정도 걸린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였다. 학교 후문에는 “아이 낳고 안전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보장하라!” “성범죄자 박병화 화성시 및 학교 주변 거주 반대”라는 현수막이 겹겹이 붙어있었다.

학교 인근에서 자취하고 있다는 여대생 D씨도 박씨의 거주 이후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고 했다.

D씨는 “원래 학교 주위가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박씨가 이사온 이후로 상황이 달라졌다. 이번에 집 주인이 현관문과 창틀에 안전장치를 새로 달아줬고, 학교 선배는 밤에 귀가할 때 위험하다고 호신용 3단봉을 사줬다”며 “아무래도 밤에는 집 밖으로 나가지 않으려고 한다. 무섭다고도 느낀다”고 토로했다.

이어 “학교 근처 음식점들이 장사가 잘 안 될 것이다. 나도 그렇고 친구들도 밤에 나가지 않는다. 집에서도 걱정하지만 학교 다니는 동안에는 어쩔 수 없으니까…”라고 말끝을 흐렸다.

이처럼 박씨의 거주로 인해 봉담읍 원룸촌은 사람들이 떠나가고 있다. 분위기는 고사하고 장사도 잘 안되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이런 상황에 국민동의청원에는 “연쇄 성범죄자 수원 발바리 박병화의 퇴거를 강력히 촉구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자는 “성범죄자의 3년 내 재범 확률은 62%다. 현재 정부에서 마련한 대책 모두 예방이 아닌 재범이 발생된 이후 증거로 사용할 수 있는 탁상공론적 대응이다. 어떠한 대응도 시민과 한 아이의 부모에게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박병화의 빠른 퇴거 및 보호 시설 입소를 강력히 청원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기준 청원 동의 수는 3만6519명으로 1만3481명이 더 동의하면, 청원은 국회 소관 위원회에 회부된다.

이 같은 상황에 화성시 관계자는 “시민 안전이 최우선인 만큼 시가 할 수 있는 모든 행정력을 최우선으로 동원하고 있는 상황이다. 시가 시민들과 함께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시민 안전을 위협하는 연쇄 성폭행범은 화성시민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시의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고수했다.

근본적
해결은?

성범죄자의 거주지 문제 해결을 위해, 전문가들은 성범죄자들의 양형제도를 검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외국의 경우 지속적이고 상습적인 성범죄자는 40년에서 50년까지 형량을 내린다. 박병화는 올해 겨우 39세다. 결국 지금 양형 조건으로는 현재 10년 정도 구속시키고, 출소해서 사회 갈등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조건이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위해 양형제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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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