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찬바람 부는 고시촌은 지금…

고시생 떠난 후폭풍 몰려온다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공무원 ‘열풍’은 이제 옛말이다. 안정적이라는 장점에 가려졌던 여러 단점이 부각되면서 공무원 직업 선호도는 내리막을 걷고 있다. 덩달아 북적이는 고시촌 풍경도 더는 보기 어렵게 됐다. 모두 어려운 이때, 노량진·신림 등 고시생들의 성지로 불리던 곳들의 침체가 더욱 두드러진다. <일요시사>가 사뭇 달라진 고시촌 모습을 직접 살펴봤다.

“코로나19가 한창 심할 때는 (침체기가) 잠깐뿐이겠거니 했어요. 그때보단 벌이가 좀 더 된다지만, 상황은 더 암울하네요. (이 상권이) 더 나빠질 일만 남았다는 게 빤히 보이니까요.” 영원한 것은 없다. 도시와 그 속 공간은 흥망성쇠를 거듭한다. <일요시사>가 둘러본 고시촌이 그랬다. 반백년에 달하는 고시촌의 역사는 커다란 변곡점 위에 섰다. 시간이라는 썰물은 조용히, 하지만 확실하게 고시촌이란 모래성을 갉아먹고 있었다. 

모래성

<일요시사>는 이달 중순 가장 유명한 두 고시촌으로 향했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작구 노량진 일대(이하 ‘신림’ ‘노량진’)는 고시촌 중 가장 긴 역사와 큰 규모를 자랑한다. 정확한 시점은 특정하기 어렵지만, 이곳들은 1970년대 중반 형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신림은 서울대학교의 관악 캠퍼스 이전, 노량진은 정부의 재수학원 이전 정책을 계기로 활성화됐다.

한 가지 차이점을 꼽자면 응시 시험 종류다. 신림은 예로부터 사법고시·외무고시·행정고시 등과 경찰 간부·전문직 시험 준비생이 주를 이뤘고, 노량진은 재수학원에 이어 공무원 시험(7·9급) 대비의 중심지로 거듭났다.

주력 분야(?)는 달라도 최근 분위기는 크게 다르지 않다. 완만했던 내림세가 코로나 유행 이후로 급전직하하는 모양새다. 이를 피부로 느끼는 건 고시촌 상권의 자영업자들이다. 잠시 머물렀다 떠나는 고시생들과 달리, 이들은 고시촌의 쇠락을 계속해서 지켜볼 수밖에 없다.

겉보기에 한적해 보이는 고시촌이 유일하게 붐비는 시간은 식사 시간이다. 점심·저녁 시간이 되면 적막하고 엄숙하던 거리도 활기를 띤다. 그 중심에 노량진의 ‘컵밥 거리’와 신림의 ‘고시 식당’이 있다.

이들은 대개 지갑이 얇은 고시생에게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좋은 식사를 제공해왔다. 특히 노량진 컵밥 거리는 여러번 TV 전파를 타면서 젊은 세대에게 거리 음식명소로 소문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들 대부분이 영업난을 호소하고 있다. 근근이 버텨나가는 가게가 있는가 하면 일찌감치 문을 닫은 가게 역시 부지기수다.

실제로 노량진 컵밥 거리를 방문해 보니 점심시간임에도 인적이 드문드문했다.

노량진, 신림…‘쭉쭉’ 내리막 가속화
사람 줄고 물가 오르고…골목상권 울상

고시생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는 컵밥 하나를 주문했다. 4000원을 내고 3분이 채 지나지 않아 음식을 받았다. 예전처럼 줄을 길게 설 필요는 없었다. 가게 사이에 설치된 별도의 식사 장소를 활용하는 이는 드물었고, 20개 남짓한 점포 중 절반 가까이는 문을 열지 않았다. 

“애초에 동네에 학생이 많이 줄었는데, 당연히 손님도 많이 줄지 않았겠어요?”

한 점주는 ‘생각보다 한산하다’는 소감을 듣고 이같이 반문했다. “학원에서 코로나가 번진 이후로 학생이 많이 준 것도 있고, 공무원 인기가 시들한 것도 영향을 준 것 같다. 우리(컵밥 가게)는 박리다매인데 손님은 줄고 물가는 오르니 점점 장사하기 어렵다”는 토로가 이어졌다.

이 하소연대로 고시촌의 쇠락, 인근 상권의 위기 요인은 복합적이다. 코로나 유행 이후로 현장 강의 수요가 크게 줄었다. 한 번 줄어든 수요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MZ세대 수험생은 시간·공간 제약이 없고 비교적 저렴한 인터넷 강의로 눈길을 돌렸다. 정보 공유·현장 스터디 등의 장점도 많이 퇴색됐다.

공무원 직종 선호도가 감소한 것 또한 큰 변수다. 물가와 평균소득 수준은 꾸준히 오름세인데 반해 공무원 임금과 처우는 수년째 제자리걸음이다. 더군다나 이번 정부는 ‘작은 정부’를 천명하며 공무원 정원 동결·공무원 연금 삭감 등을 검토하고 있다.

수직적이고 딱딱한 조직문화를 극도로 지양하는 MZ세대의 성향 역시 주된 요인으로 꼽힌다. 유인은 떨어지고 단점만 점점 부각된다는 혹평이 나온다. 

실제로 올해 7급 공무원 공채 경쟁률은 42.7대1을 기록하며 43년 만에 최저치를 경신했다. 100대1을 상회했던 10년 전 ‘한창 때’와는 대비된다. 9급 공채 실질 경쟁률도 10년 전의 3분의 1수준인 22.5대1에 머물렀다. 21년 만의 최저치다. 

이런 가운데 급등하는 물가가 치명타를 날렸다. 국제 유가·곡물가 상승으로 국내 음식점들은 평균 10% 내외로 가격을 인상했다. ‘싼 가격’이 무기인 고시촌 식당가는 진퇴양난에 빠졌다. 아직까지 남아있는 식당들은 대부분 가격을 올렸다.

하지만 매출 감소를 막을 수는 없었다. 신림의 한 고시 식당 주인은 “(식당을 찾는)학생이 지난해 60~70%밖에 안 된다. 가격을 올려도 매출이 30% 이상 떨어졌다”고 털어놨다.

물가가 오르자 고시생들의 주머니는 더욱 빠듯해졌다. 밥값 부담이 커진 이들은 다른 곳에서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2000원 안팎의 ‘가성비’ 커피를 파는 노량진의 한 카페를 찾았다. 사장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만드는 동안 둘러본 가게 곳곳 빈자리가 눈에 띄었다.

굳건한 임대업…저소득층 속속 둥지
노량진 2동 10년 새 2030세대 25%↓

“커피가 고시생 필수품이라 하지만 결국 기호품이다. 예전에는 몇 없는 자리 먼저 잡겠다고 학생들이 경쟁도 하고 했는데, 이젠 그마저도 뜸하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비단 카페만의 속앓이가 아니다. 고시생들이 자주 찾는다던 학원 인근 코인 노래방·PC방 또한 한산했다. ‘코시국’ 전만 해도 한참 줄을 섰다던 노래방은 채 반도 차지 않았다. PC방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노량진 수험생활 2년 차에 접어든 A씨는 “단골 식당 식권 가격이 1000원 올랐다. 요즘 같은 상황에 부모님께 더 손 벌릴 수 없다”면서 “커피 마시는 횟수 줄이고, 가끔 가던 코인 노래방 안 가면서 생활비를 아낀다. 그러면 딱 굶고 다니지는 않는 정도”라고 말했다.

근심 가득한 고시촌 안에서 임대업자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에 속한다. 코로나 대유행 시기 정점을 찍었던 공실률이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한국부동산원 자료에 따르면 2분기 노량진 상권의 소형상가 공실률은 6.5%다. 12.6%를 기록한 1분기 대비 6.1%p 내려간 수치다.

최근 고시 인근 식당들이 잇달아 문을 닫으면서 곳곳에 ‘임대’ 표지판이 붙긴 했지만, 원룸 수요는 굳건하다. <일요시사>가 찾은 지역 공인중개사들은 “걱정할만한 수준은 아니다. 예전만큼은 아니어도 꾸준한 수요를 보인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 설명에 따르면 고시촌 거주민 구성이 변화하고 있다. 빠져나간 고시생 수요를 사회 초년생과 배달·일용직 노동자 등이 채우고 있다는 것. 비교적 저렴한 고시촌 임대료와 물가에 고시생 외에도 상대적으로 소득이 적은 계층이 몰려든다는 설명이다.

이들 중 청년층이 많다 보니 “표면적으로 큰 변화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평가도 나왔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통계청에 따르면 원룸이 밀집한 노량진2동은 지난 10년 전 대비 2030인구가 24.6% 감소했다. 

한 공인중개사는 그럼에도 청년층 유입이 꾸준하다는 방증으로 최근의 재건축 추세를 꺼내들었다. 그는 “이참에 건물을 새로 짓는 유형을 보면 (청년층이 선호하는)오피스텔이나 도시형 생활주택인 경우가 많다. 공실도 적다. 월세 70만원·관리비 10만원이 넘어가도 늘 수요가 충분하다”고 부연했다. 

이른 겨울

쇠락하고, 또 변화하는 고시촌의 모습 속에서 과거 ‘불패신화’는 점차 옅어지고 있다. 피할 수 없는 흐름인 걸 알지만, 다들 체념보단 걱정이 앞서는 모습이었다. 노량진과 신림에는 보다 이른 겨울이 찾아들고 있었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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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