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찬바람 부는 고시촌은 지금…

고시생 떠난 후폭풍 몰려온다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공무원 ‘열풍’은 이제 옛말이다. 안정적이라는 장점에 가려졌던 여러 단점이 부각되면서 공무원 직업 선호도는 내리막을 걷고 있다. 덩달아 북적이는 고시촌 풍경도 더는 보기 어렵게 됐다. 모두 어려운 이때, 노량진·신림 등 고시생들의 성지로 불리던 곳들의 침체가 더욱 두드러진다. <일요시사>가 사뭇 달라진 고시촌 모습을 직접 살펴봤다.

“코로나19가 한창 심할 때는 (침체기가) 잠깐뿐이겠거니 했어요. 그때보단 벌이가 좀 더 된다지만, 상황은 더 암울하네요. (이 상권이) 더 나빠질 일만 남았다는 게 빤히 보이니까요.” 영원한 것은 없다. 도시와 그 속 공간은 흥망성쇠를 거듭한다. <일요시사>가 둘러본 고시촌이 그랬다. 반백년에 달하는 고시촌의 역사는 커다란 변곡점 위에 섰다. 시간이라는 썰물은 조용히, 하지만 확실하게 고시촌이란 모래성을 갉아먹고 있었다. 

모래성

<일요시사>는 이달 중순 가장 유명한 두 고시촌으로 향했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작구 노량진 일대(이하 ‘신림’ ‘노량진’)는 고시촌 중 가장 긴 역사와 큰 규모를 자랑한다. 정확한 시점은 특정하기 어렵지만, 이곳들은 1970년대 중반 형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신림은 서울대학교의 관악 캠퍼스 이전, 노량진은 정부의 재수학원 이전 정책을 계기로 활성화됐다.

한 가지 차이점을 꼽자면 응시 시험 종류다. 신림은 예로부터 사법고시·외무고시·행정고시 등과 경찰 간부·전문직 시험 준비생이 주를 이뤘고, 노량진은 재수학원에 이어 공무원 시험(7·9급) 대비의 중심지로 거듭났다.


주력 분야(?)는 달라도 최근 분위기는 크게 다르지 않다. 완만했던 내림세가 코로나 유행 이후로 급전직하하는 모양새다. 이를 피부로 느끼는 건 고시촌 상권의 자영업자들이다. 잠시 머물렀다 떠나는 고시생들과 달리, 이들은 고시촌의 쇠락을 계속해서 지켜볼 수밖에 없다.

겉보기에 한적해 보이는 고시촌이 유일하게 붐비는 시간은 식사 시간이다. 점심·저녁 시간이 되면 적막하고 엄숙하던 거리도 활기를 띤다. 그 중심에 노량진의 ‘컵밥 거리’와 신림의 ‘고시 식당’이 있다.

이들은 대개 지갑이 얇은 고시생에게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좋은 식사를 제공해왔다. 특히 노량진 컵밥 거리는 여러번 TV 전파를 타면서 젊은 세대에게 거리 음식명소로 소문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들 대부분이 영업난을 호소하고 있다. 근근이 버텨나가는 가게가 있는가 하면 일찌감치 문을 닫은 가게 역시 부지기수다.

실제로 노량진 컵밥 거리를 방문해 보니 점심시간임에도 인적이 드문드문했다.

노량진, 신림…‘쭉쭉’ 내리막 가속화
사람 줄고 물가 오르고…골목상권 울상

고시생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는 컵밥 하나를 주문했다. 4000원을 내고 3분이 채 지나지 않아 음식을 받았다. 예전처럼 줄을 길게 설 필요는 없었다. 가게 사이에 설치된 별도의 식사 장소를 활용하는 이는 드물었고, 20개 남짓한 점포 중 절반 가까이는 문을 열지 않았다. 

“애초에 동네에 학생이 많이 줄었는데, 당연히 손님도 많이 줄지 않았겠어요?”


한 점주는 ‘생각보다 한산하다’는 소감을 듣고 이같이 반문했다. “학원에서 코로나가 번진 이후로 학생이 많이 준 것도 있고, 공무원 인기가 시들한 것도 영향을 준 것 같다. 우리(컵밥 가게)는 박리다매인데 손님은 줄고 물가는 오르니 점점 장사하기 어렵다”는 토로가 이어졌다.

이 하소연대로 고시촌의 쇠락, 인근 상권의 위기 요인은 복합적이다. 코로나 유행 이후로 현장 강의 수요가 크게 줄었다. 한 번 줄어든 수요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MZ세대 수험생은 시간·공간 제약이 없고 비교적 저렴한 인터넷 강의로 눈길을 돌렸다. 정보 공유·현장 스터디 등의 장점도 많이 퇴색됐다.

공무원 직종 선호도가 감소한 것 또한 큰 변수다. 물가와 평균소득 수준은 꾸준히 오름세인데 반해 공무원 임금과 처우는 수년째 제자리걸음이다. 더군다나 이번 정부는 ‘작은 정부’를 천명하며 공무원 정원 동결·공무원 연금 삭감 등을 검토하고 있다.

수직적이고 딱딱한 조직문화를 극도로 지양하는 MZ세대의 성향 역시 주된 요인으로 꼽힌다. 유인은 떨어지고 단점만 점점 부각된다는 혹평이 나온다. 

실제로 올해 7급 공무원 공채 경쟁률은 42.7대1을 기록하며 43년 만에 최저치를 경신했다. 100대1을 상회했던 10년 전 ‘한창 때’와는 대비된다. 9급 공채 실질 경쟁률도 10년 전의 3분의 1수준인 22.5대1에 머물렀다. 21년 만의 최저치다. 

이런 가운데 급등하는 물가가 치명타를 날렸다. 국제 유가·곡물가 상승으로 국내 음식점들은 평균 10% 내외로 가격을 인상했다. ‘싼 가격’이 무기인 고시촌 식당가는 진퇴양난에 빠졌다. 아직까지 남아있는 식당들은 대부분 가격을 올렸다.

하지만 매출 감소를 막을 수는 없었다. 신림의 한 고시 식당 주인은 “(식당을 찾는)학생이 지난해 60~70%밖에 안 된다. 가격을 올려도 매출이 30% 이상 떨어졌다”고 털어놨다.

물가가 오르자 고시생들의 주머니는 더욱 빠듯해졌다. 밥값 부담이 커진 이들은 다른 곳에서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2000원 안팎의 ‘가성비’ 커피를 파는 노량진의 한 카페를 찾았다. 사장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만드는 동안 둘러본 가게 곳곳 빈자리가 눈에 띄었다.

굳건한 임대업…저소득층 속속 둥지
노량진 2동 10년 새 2030세대 25%↓

“커피가 고시생 필수품이라 하지만 결국 기호품이다. 예전에는 몇 없는 자리 먼저 잡겠다고 학생들이 경쟁도 하고 했는데, 이젠 그마저도 뜸하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비단 카페만의 속앓이가 아니다. 고시생들이 자주 찾는다던 학원 인근 코인 노래방·PC방 또한 한산했다. ‘코시국’ 전만 해도 한참 줄을 섰다던 노래방은 채 반도 차지 않았다. PC방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노량진 수험생활 2년 차에 접어든 A씨는 “단골 식당 식권 가격이 1000원 올랐다. 요즘 같은 상황에 부모님께 더 손 벌릴 수 없다”면서 “커피 마시는 횟수 줄이고, 가끔 가던 코인 노래방 안 가면서 생활비를 아낀다. 그러면 딱 굶고 다니지는 않는 정도”라고 말했다.


근심 가득한 고시촌 안에서 임대업자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에 속한다. 코로나 대유행 시기 정점을 찍었던 공실률이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한국부동산원 자료에 따르면 2분기 노량진 상권의 소형상가 공실률은 6.5%다. 12.6%를 기록한 1분기 대비 6.1%p 내려간 수치다.

최근 고시 인근 식당들이 잇달아 문을 닫으면서 곳곳에 ‘임대’ 표지판이 붙긴 했지만, 원룸 수요는 굳건하다. <일요시사>가 찾은 지역 공인중개사들은 “걱정할만한 수준은 아니다. 예전만큼은 아니어도 꾸준한 수요를 보인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 설명에 따르면 고시촌 거주민 구성이 변화하고 있다. 빠져나간 고시생 수요를 사회 초년생과 배달·일용직 노동자 등이 채우고 있다는 것. 비교적 저렴한 고시촌 임대료와 물가에 고시생 외에도 상대적으로 소득이 적은 계층이 몰려든다는 설명이다.

이들 중 청년층이 많다 보니 “표면적으로 큰 변화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평가도 나왔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통계청에 따르면 원룸이 밀집한 노량진2동은 지난 10년 전 대비 2030인구가 24.6% 감소했다. 

한 공인중개사는 그럼에도 청년층 유입이 꾸준하다는 방증으로 최근의 재건축 추세를 꺼내들었다. 그는 “이참에 건물을 새로 짓는 유형을 보면 (청년층이 선호하는)오피스텔이나 도시형 생활주택인 경우가 많다. 공실도 적다. 월세 70만원·관리비 10만원이 넘어가도 늘 수요가 충분하다”고 부연했다. 

이른 겨울


쇠락하고, 또 변화하는 고시촌의 모습 속에서 과거 ‘불패신화’는 점차 옅어지고 있다. 피할 수 없는 흐름인 걸 알지만, 다들 체념보단 걱정이 앞서는 모습이었다. 노량진과 신림에는 보다 이른 겨울이 찾아들고 있었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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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유튜버 데뷔 진짜 이유

문재인 유튜버 데뷔 진짜 이유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잊히고 싶다던 사람의 행보는 절대 아니지 않나?” 문재인 전 대통령이 대국민 행보를 시작했다. 전임 대통령과 달리 퇴임 후에도 활발한 활동으로 입길에 오르더니 최근에는 그 행보를 본격화하는 모양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퇴임을 얼마 앞둔 시점에 남긴 “잊히고 싶다”는 말이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보수 정당은 문 전 대통령의 말을 ‘허언’이라고 치부하는 중이고 진보 세력에서도 “좀 너무한 게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전임 대통령의 행보라고 하기엔 과하다는 지적이다. 의도 없어도 정치 행보로 문 전 대통령은 2022년 3월30일 불교계 원로들과 만난 자리에서 “남은 기간 최선을 다하고 자연으로 돌아가서 잊혀진 삶, 자유로운 삶을 살겠다”고 말했다. 퇴임을 40일 정도 남긴 시점이었다. 앞서 2020년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대통령 이후에 전직 대통령 기념사업이라든지, 현실 정치와 계속 연관을 갖는다든지 그런 것은 일절 하고 싶지 않다”며 “대통령을 하는 동안 전력을 다하고 대통령이 끝나고 나면 잊혀진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문 전 대통령은 퇴임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부터 대국민 소통을 이유로 SNS를 시작했다. 책을 추천하거나 시국과 관련해 발언하는 용도로 사용됐다. 행사에 참석해 직접 정권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낸 적도 있다. 선거 때 유세에 나서기도 했다. 역대 대통령에게서는 보기 힘들었던 모습이다. 문 전 대통령의 행보는 매번 입길에 올랐다. 전직 대통령인 만큼 행보 하나하나가 정치적으로 해석되는 부분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전직 대통령이다. 백번 양보해서 정치적 의도가 없다고 해도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는 자리”라고 말했다. 실제 문 전 대통령의 언행은 정치권은 물론 국민에게도 얘깃거리가 되곤 했다. 그런 문 전 대통령이 이번에는 유튜버로 깜짝 변신했다. 전직 대통령이 유튜버로 데뷔한 사례 역시 역대 최초다. 무엇보다 영상 제작을 방송인 김어준씨가 운영하는 ‘겸손방송국’이 맡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치적 해석이 줄을 잇고 있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최초 친명 측서 민감하게 반응 문 전 대통령은 지난 17일 유튜브 채널 ‘평산책방’에 게재된 ‘EP. 1 시인이 된 아이들과 첫 여름, 완주’ 영상에 출연했다. 채널명인 평산책방은 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머무는 경남 양산에서 운영 중인 서점이다. 앞서 문 전 대통령은 지난 16일 ‘평산책방’ 계정에 45초 남짓의 영상을 올려 유튜버로서의 출발을 알린 바 있다. 영상은 문 전 대통령과 탁현민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의 대담 형식으로 구성됐다. 문 전 대통령은 평산책방의 ‘책방지기’로 소개됐다. 첫 번째 추천작은 시집 <이제는 집으로 간다>였다. 소년보호 사건 재판에서 보호위탁 처분을 받은 경남 청소년위탁센터의 청소년 76명이 작성한 시를 엮어 만든 책이다. 문 전 대통령은 “이 아이들은 앞으로 우리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오느냐, 안 그러면 계속 빗나간 생활을 하느냐는 갈림길에 서 있다”며 “절대적으로 부족한 게 애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다. 애들은 들어주기만 해도 달라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집의 표제시인 ‘가만히’를 가장 기억에 남는 시로 꼽았다. 두 번째 책으로는 류기인 창원지방법원 소년부 부장판사 등이 엮은 <네 곁에 있어줄게>를 추천했다. 청소년회복센터 교사, 자원봉사자 등이 소년재판과 소년사건 현장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을 담은 책이다. 문 전 대통령은 “이 책은 평산책방이 직접 출판했기 때문에 적은 비용으로 출판할 수 있었다”면서 “책이 많이 팔려서 아이들에게 인세(저작권 사용료)를 나눠주고 아이들이 ‘시집도 냈고 인세도 받았다’는 자긍심으로 세상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문 전 대통령의 유튜버 데뷔는 정치권을 흔들었다. SNS 글, 직접 발언 등으로 메시지를 던진 적은 있지만 고정 출연을 명목으로 한 주기적인 방송 활동은 그 영향력에 있어서 결이 다르다는 의견이 나왔다. 특히 흥미로운 대목은 문 전 대통령의 행보에 이재명 대통령을 지지하는 이른바 ‘친명(친 이재명)계’ 쪽에서 불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점이다. 뜬금없이 갑자기 왜? 실제 유튜브 영상은 물론 이 대통령을 지지하는 커뮤니티 등에는 문 전 대통령을 비판하는 의견이 다수 올라왔다. ‘잊혀지고 싶다고 했으면 조용히 있어달라’ ‘왜 대통령이 순방길에 나선 시점에 유튜브를 하나’는 등의 댓글이 달렸다. 영상 제작을 맡은 김씨와의 연관성을 언급하면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문 전 대통령의 행보를 내년 6월에 있을 지방선거와 연결 짓고 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공천 전쟁이 본격화할 즈음에 ‘친문(친 문재인)’ 세력을 규합해 영향력을 발휘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다. 국민의힘 등 야권을 상대로 목소리를 내는 게 아니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내부에 영향을 끼치겠다는 의도로 비친다는 것이다. 지방선거 후보 공천 시기가 다가오면 민주당 지지층이 친명과 친문(친 문재인)으로 갈릴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이미 민주당 내부에서는 이 대통령과 정청래 대표 사이가 미묘하게 흔들리는 상황이 자주 연출되고 있다. 정 대표는 임기 초부터 이 대통령이 주목받아야 할 시기마다 ‘자기 정치’를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최근에도 정 대표는 당원 주권 강화를 취지로 대의원과 권리당원의 표값을 1인1표로 하겠다는 내용을 두고 의견 수렴을 하겠다며 전 당원 여론조사를 밀어붙였다. 이번 여론조사는 당 대표 선거에서 ‘당심’을 등에 업고 당선된 정 대표가 당헌·당규 개정을 통해 연임을 노리고, 앞으로 있을 지방선거의 공천권을 쥐겠다는 의지로 해석되고 있다. 여기에 문 전 대통령의 지지층이 힘을 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대표적인 친문 스피커로 불리는 김어준씨와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당 대표가 되기 전부터 김씨가 운영하는 <딴지일보> 온라인 게시판에 자주 글을 남겼다. 당 대표 취임 후에는 “사법개혁안을 당론으로 추진해 본회의에 통과시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인사 글을 남기기도 했다. 공천 전쟁 친문 결집? 지난 6일 제주도에서 열린 민주당 초선 의원 모임 ‘더민초’ 워크숍 강연에선 “민주당 지지 성향으로 봤을 때 <딴지일보>가 가장 바로미터”라고 발언해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특정 지지층에 휘둘린다는 지적이다. 정치권에서는 문 전 대통령이 전면에 나타나면서 지방선거가 ‘진흙탕 싸움’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또 한편으로는 문 전 대통령에 대한 민심이 과거와 비교해 많이 훼손된 상황에서 지방선거를 망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임기 내내 40% 안팎의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고도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점, 퇴임 후의 행보가 지지세를 깎아 먹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이 같은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게 지난해 총선 때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해 4·10 총선 당시 부산·울산·경남 지역에서 민주당 후보를 지원하는 유세 활동을 펼쳤다. 당시 그는 “이렇게 못하는 정부는 처음”이라며 윤석열정부를 연일 공격했다. 국민의힘이 “최악의 정부는 문재인 정부”라고 정면 반박하면서 문 전 대통령이 선거 전면에 등장했다. 하지만 결과는 ‘폭망’이었다. 문 전 대통령은 부·울·경 일대를 돌며 민주당 후보 11명을 지원했다. 이 가운데 9명이 낙선한 것이다. 당시 민주당 대표였던 이 대통령의 지지층을 중심으로 ‘문재인 책임론’이 불거졌다. 문 전 대통령의 등장이 역풍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보수층에서 ‘문 전 대통령 덕분에 보수가 결집했다’는 조롱이 나올 정도였다. 지난해 총선 유세 ‘폭망’ 조국 사면으로 민심 악화 이재명정부가 출범한 이후에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의 사면을 요구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의 중심에 섰다. 조 대표는 자녀 입시 비리 혐의 등으로 대법원에서 징역형이 확정돼 수감된 상태였다. 조 대표가 받은 형량은 2년으로 만기 출소는 내년 2월로 예정돼있었다. 그런 그를 ‘광복절 사면’ 대상에 포함해달라는 요구를 했다는 것이다. 문 전 대통령의 조 대표 사면 요구는 이정부의 임기 초반을 완전히 뒤흔들었다. 처음 정치권에서 조 대표의 사면 이슈가 흘러나왔을 당시 불가능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역대 정부에서 임기 초에 정치인 사면을 한 적이 없던 점, 조 대표에 대한 민심이 부정적인 점 등이 근거로 떠올랐다. 이른바 ‘조국 사태’는 대학 입시에 민감한 한국 사회에서 공정성 논란과 결합하면서 엄청난 폭발력을 보여줬다.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이 가장 크게 흔들린 시점도 조국 사태였고, 결정적으로 윤정부의 탄생에 단초가 됐다는 의견도 많았다. 하지만 문 전 대통령이 사면 요구를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기류가 변했다. ‘조국에게는 마음의 빚이 있다’는 문 전 대통령의 생각이 사면 요구로 나타나면서 조 대표의 사면을 지지하는 쪽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이 대통령 지지층에서는 ‘(대통령) 임기 때에도 못 한 일을 왜 현 정부에 해달라고 하느냐’는 의견이 분출했다. 문 전 대통령 재임 당시 조 대표의 배우자인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에 대한 사면 요구가 있었지만 이뤄지지 않은 점을 꼬집은 것으로 보인다. 현 정부에 부담 주지 말라는 의견도 빗발쳤다. 정치권에서도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대통령실은 ‘사면권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면서 말을 아꼈다. 그러다 이 대통령이 조 대표의 사면을 결정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전직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을 이겼다’ ‘친문 살아 있다’는 등의 말이 나왔다. 후폭풍은 거셌다. 60%대를 견고하게 유지하던 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50%대로 주저앉았다. 공정 이슈가 훼손됐다고 생각한 2030세대가 지지율 하락을 이끌었다. 영향력은 두고 봐야 문 전 대통령은 매주 월요일 오전 10시 ‘평산책방’ 계정에 올라오는 영상 중 ‘평산책방 TV’라는 코너에 고정 출연할 예정이다. 문 전 대통령이 내놓는 발언, 추천하는 책, 출연자 등이 하나하나 입방아에 오를 가능성이 크다. 문 전 대통령은 민주당의 ‘트로이 목마’가 될까, ‘서포터’가 될까?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