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연재> 대통령의 뒷모습 ⑪선덕여왕보다 더 멋진 히로인

  • 김영권 작가
  • 등록 2022.12.06 08:46:38
  • 호수 14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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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권의 <대통령의 뒷모습>은 실화 기반의 시사 에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임 시절을 다뤘다. 서울 해방촌 무지개 하숙집에 사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당시의 기억이 생생히 떠오른다. 작가는 무명작가·사이비 교주·모창가수·탈북민 등 우리 사회 낯선 일원의 입을 통해 과거 정권을 비판하고, 그 안에 현 정권의 모습까지 투영한다.

바야흐로 봄이 가까웠다. 아직 꽃샘바람이 꽤 불었지만 버들개지와 개나리는 떨면서도 점차 화사한 기운을 내뿜었다. 선덕여왕보다 더 멋진 역사의 히로인이 될지도 모른다는 여대통령은 의외로 잦은 해외순방으로 업무를 시작해 계속 이어나갔다.

전직 대통령의 사리사욕 추구에 지쳐빠진 국민들은 민족 중흥의 영웅 박정희 대통령의 영애인 근혜에게 일말의 기대를 걸었다. 적어도 자기 탐욕에 빠져 나라를 거덜내진 않으리라는 소망이랄까. 

자기 목표

물론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지만, 사상 최초의 여대통령은 단정해 뵈는 외모와 부드러운 언행으로, 파렴치범인 전직자에 지친 국민들로 하여금 모종의 기대감을 품게 만드는 바가 없지 않았다.

아마 목련 같은 이미지를 느끼는 국민도 있었으리라. 백목련… 순결해 보이되 얼마 못 가 곧 누추해져 추락하는 꽃. 아무튼 희망과 우려와 소망을 교차케 했다고나 할까. 


미국보다 중국을 먼저 방문한 것도 화제가 됐다. 이제 새로운 북방정책으로 아메리카의 똘마니 신세에서 벗어나 민족 자존할 수도 있으리란 작은 꿈을 꾸게 했다.

시진핑 주석과 함께 한 공식 석상에서 중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해 찬탄을 불러일으켰다는 뉴스는 나중에 사실이 아닌 과장된 헛소리로 밝혀졌다. 

아마 그 무렵 이른바 ‘통일 대박론’이 나오지 않았는가 싶다. 아버지 대통령의 유훈을 받들어 딸 대통령이 선언한지라 대중들은 호응했다. 하지만 맹점이 없지 않았다.

통일이 한민족의 미래에 좋다는 건 일부 이기적인 족속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국민이 동의하겠으나 문제는 그 방법이리라.

이웃 간에 담장을 터서 서로 한 집안처럼 교류하려 해도 믿음과 어느 정도 동질성이 필요할 텐데, 오래도록 적대적으로 앙앙대고 있는 상황이라면 어떻겠는가.

아마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도 쌀 몇 가마니에 자기네 집과 족보와 추억 어린 방을 종속적인 상황 아래 내던지진 않을 터이다. 인격과 가격[家格]을 존중해 주어야 하리라.

어쨌든 북한은 하나의 나라이다. 괴상스럽든 기괴하든. ‘통일대박론’이란 건 자기들 나름대로 하나의 국가를 이루어 살아가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통째로 삼켜 버리겠다는 배짱이며 심보다.


아버지 대통령 같은 북진 통일론은 아닐지라도 자기네가 늘 주창하던 글로벌 시대의 에티켓은 아니다. 북한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싸가지 말아먹은 자본주의 광녀의 야욕으로 관측되지 않겠는가.

가마솥에 펄펄 삶아서 온 인민이 뜯어 먹어도 모자란다는 유언비어도 휴전선을 넘어왔다지. 같은 민족끼리 잡아먹으려고 광분하기보다, 최소한 일본국이나 러시아를 대하는 만큼의 예의는 갖춰야 하지 않을까.

인간 생활의 기본. 독재는 그걸 부정. 국가와 국가 간의 예의마저 무시. 아빠 대통령보다 더 무지한 딸. 그걸 억지로 극복해 보려고 그 시대 그 당시 아빠보다 더 늙은 입으로 문득 통일대박론을 꺼내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되새겨 보건대 여러모로 이상스러운 점이 없지 않았다.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비유하자면 허니문 기간인데, 하얀 요 위에 붉고 푸른 최고급 태극 문양 이불을 덮곤 행복 지향적인 합궁을 추구하진 않을망정 웬 뜬금없는 여성 상위 체위만 고집하느냐며 비웃는 시덥잖은 난봉꾼마저 있었다.

혹시 최순실의 아비인 최 머시기 사이비 목사와의 로맨스로 인해 그 자의 조종을 받는 게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하는 지식인도 보였다.

최 머시기 사이비 목사가 죽었으므로 현재 그의 딸(최순실)이 대물림 받아 막후에서 대통령을 조종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예측까지 나아갔다. 

박 전 대통령, 해외 순방으로 임기 시작
‘통일 대박론’ 내걸었지만…문제는 방법

하지만 일부 국민은 그럴 리가 있겠냐고 광분하며 그 지식인을 현대식 돌(댓글 따위)로 쳐 죽여 버렸다. 그뿐만 아니라 태극기 부대의 극렬분자들은 집 안까지 막 쳐들어가 협박하며 땡깡을 부렸다.

그때만 해도 미래 상황이 어찌 전개될지 몰랐으므로 태극기 부대가 아닌 일반 국민들도 여대통령에 대해 모종의 기대감을 지녔던 성싶다. 이전의 쥐박이 쌍놈 대통령에게 당한 허망함과 배신감까지 희망의 불쏘시개 구실을 조금쯤 하지 않았는가 싶다.

아무튼 통일대박론은 일단 논리적이기보다 허황스러운 포퓰리즘, 이를테면 로또 복권에 곧 당첨된 듯이 허풍떠는 짓거리로 인식됐다. 선거의 여왕 시대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정말로 여대통령은 해외 순방을 자주 나다니기 시작했다. 처음 한동안은 그걸 국민들도 별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던 성싶다. 아니, 오히려 외교는 내팽개친 채 국내에서 사대강 사업을 억지로 벌이며 사리사욕이나 챙긴 전직 쥐 대통령의 파렴치한 짓에 분노한 국민들은 신선한 미래성 비전을 느끼기도 했다.

영국의 대처 여사보다 더 예쁘고 지조와 강단을 갖췄을 뿐 아니라 선덕여왕 이미지마저 겸비했으므로 열광적인 남자 스토커도 적지 않았다.


그중 특히 허경영씨는 공개적으로 청혼을 했고, 한 발 더 나가 박정희 대통령 생존 당시 이미 사위로 점지 받아 영애 근혜와 약혼까지 했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정치적인 계산이 깔렸는진 몰라도 꽤나 정열적이었다.

믿는 사람도 있었다. 

그 정도면 백마(혹은 흑마) 탄 기사라고 할 만할 텐데도 우리 여대통령은 의외로 매정스레 지켜보더니 급기야 허위사실 날조로 고소해 버렸다. 만약 허 본좌의 프로포즈를 받아들여 결혼했다면 어찌 되었을지 궁금하다.

혹시 새로운 국면이 펼쳐졌을까, 아니면…?

여러 가지 상상이 가능하겠지만 공적으로 표명하는 건 삼가야 할 듯싶다. 다만 한 가지, 과연 줏대 혹은 고집이 무척 센 그녀를 허본좌가 초능력을 발휘해 잘 제어했을지 반대로 꽉 쥐어 잡혀 삐에로처럼 전락했을지는 여전히 약간 궁금하다.

어쨌든 간혹 티격태격 싸움을 할지언정 차츰 음양 기운이 조화돼 좀 부드러워지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그러운 기회는 무산되고 그녀는 유아독존 속에서 음기만 더욱 강해져 가는 모양새였다.

음양오행적인 관점에서 북쪽은 음이 강하고 남쪽은 양이 성하다는데, 취임식 때 오방색을 활용해 화려 찬란스러운 퍼포먼스를 펼치고는 그것이 상징하는 의미는 별로 생각해 보지 않은 모양이었다.

항간에 떠도는 유언비어처럼 정말 최순실이란 마녀가 주술적으로 활용해 펼친 것일까? 

그러운 세상이었지만 하숙생들의 일상생활은 큰 변화 없이 강물처럼 때론 파도치며 흘러갔다. 어차피 한 하숙생이 나가면 다른 신입생이 들어오니까.

또한 대통령의 권력이 아무리 대단할지언정 물결은 잠시 바꿀 수 있을지 몰라도 깊은 흐름은 다른 법칙을 따르는지 어쩐지…. 

하숙이란 말은 약간 낭만적인 풍미도 있지만 현시대엔 좀 구차스러운 느낌을 준다. 하숙 전성시대는 지나갔다. 이제 인생은 나그네 길이 아니라 빌딩의 주인으로 군림해야 살맛이 나는 시대다. 하숙이란 낱말 자체가 일본인이 지어냈는지 한자 단어인지 모르되, 암튼 본채 아래쪽의 허접한 숙소란 뜻이 아니겠는가. 

하숙 식당의 하루는 새벽 5시쯤이면 서서히 막이 열리기 시작한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새로운 무대. 물론 기울어진 무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터이지만, 하숙에선 불평만 하기보다 발 빠르게 움직이는 게 상책이다.

그래야만 서울 중심부의 기울어진 시멘트 아스팔트 위에서나마 잘났든 못났든 자기 꿈과 목표를 향해 반 발짝 한 걸음쯤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리라.

자기 탐욕

아니다. 아무리 버둥거려 봤자 멈췄거나 후퇴하기도 하고, 빈둥빈둥 빤질거리던 놈이 어느 날 갑자기 날개를 단 듯 날아올라 떠나 버리는 곳이 하숙이다. 물론 그 이후에 어찌 됐는지는 모르겠으나 어떤 면에서 한국 사회와 좀 닮았다 해도 되리라.


<다음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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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