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이승기

개미처럼 일만 한 ‘국민 남동생’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엄친아’ 연예인 이승기에게도 남모를 고민이 있었다. 최근 언론 보도들을 통해서 소속사와의 정산 문제가 점차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 지금까지 밝혀진 미정산 음원 수입만 96억원 이상. 누락된 데뷔 초기 수입까지 더하면 이승기는 수십억원을 떼먹힌 셈이다. 일각에선 “이승기가 노예계약에 당했다”는 말도 나온다.

이승기는 2004년 데뷔 이후로 18년간 별다른 논란 없이 연예계 생활을 이어왔다. 그의 지인들은 이승기가 데뷔 이전에도, 그리고 이후로도 모범적인 삶을 살아왔다고 입을 모은다. 일명 ‘아이렌’으로 불리는 팬덤도 이승기를 따라 성숙하고 모범적인 팬 문화 확산에 앞장섰다. 

모범 연예인
불량 소속사

하지만 지난 18년을 함께해온 소속사 ‘후크엔터테인먼트’만은 달랐다.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을 종합하면 후크엔터테인먼트(이하 소속사)는 이승기를 통해 막대한 이익을 쓸어 담으면서도 이승기를 존중하지 않았고, 심지어 기만했다. 

지난 18일, 이승기가 소속사에 정산 관련 내용증명을 보낸 사실이 세간에 알려졌다. 의외의 소식이었다. 이승기와 소속사 사이의 두터운 관계는 연예계에서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이승기는 데뷔 이래로 한 소속사에 계속 몸담았다. 지난해 5월 1인 기획사를 설립하고도 다음 달 재계약을 체결할 정도로 끈끈한 의리를 보였다. 그는 2010년 KBS연예대상 시상식에서 권진영 대표를 “인생에서 가장 큰 축복이고 인연”이라고 언급할 정도로 소속사와 권진영 대표에 대한 애정을 공공연히 전해왔다. 


이랬던 이들이 법정 다툼까지 눈앞에 둔 이유는 다름 아닌 ‘돈’ 때문이다. 지난 21일 <디스패치>는 단독 보도를 통해 이승기가 데뷔 이래 18년 동안 음원 정산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보도에 따르면 소속사는 끊임없이 이승기를 ‘가스라이팅’했다. 그동안 소속사는 이승기가 음원 수익 정산에 관해 질문할 때마다 “너는 마이너스 가수라 정산을 못 해준다” “네 팬들은 음반을 안 사준다” 등의 답변으로 일관한 것으로 알려졌다.

끝내 정산은 없었다. 이에 이승기는 자신이 지난 18년 내내 ‘마이너스 가수’였던 것으로 오해했다. 

그러던 중 이승기는 지난해 우연히 자신의 음원 수익에 관한 소식을 접했다. 소속사 경영팀 직원이 실수로 정산 관련 문자메시지를 이승기에게 보낸 것이다. 문자 속에는 이승기가 2020년 발표한 곡들의 음원 수입이 구체적으로 담겨있었다.

이를 본 이승기는 내심 기뻤다고 한다. “내가 마이너스 가수가 아니구나” “나도 음원으로 수익을 내는구나”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승기는 이를 두고 음악계 선배와 대화하던 중, 의문점을 속속 접했다. 선배는 “내가 받는 저작권료가 얼만데, 네가 마이너스일 리가 없다” “소속사와 계약조건이 어떻게 되느냐”며 의문을 표했다.

이승기는 지속적으로 정산 자료를 요구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그러다 참다못해 꺼내든 방법이 내용증명 발송이었다. 


후크엔터 음원 정산 논란 일파만파
“100억원 중 최소 50억원 받아야”

내용증명으로 공개된 장부에 적힌 매출은 소속사가 그간 이승기에게 했던 말과는 전혀 달랐다. 장부에 적힌 이승기의 음원 매출액을 합쳐보니 총 96억원에 달했다. 이마저도 2004년 6월부터 2009년 8월까지의 자료가 유실된 결과다.

유실된 기간 중 이승기는 ‘내 여자라니까’ 등으로 전국적 인기를 끌며 가수로서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일각에서는 향후 누락 금액이 확인되면 매출액이 갑절로 뛸 수도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당초 이승기 4·소속사 6에서 이승기 7·소속사 3까지 변화한 계약조건을 감안해도 이승기가 떼인 돈은 50억원을 훌쩍 넘어선다는 계산이다.  

소속사는 이 사건에서 돈을 떼먹은 가해자다. 반대로 이승기는 일방적인 피해자다. 하지만 내용증명을 받은 권 대표는 되레 분개했다. 녹취록에 따르면 권 대표는 이사진과 매니저를 소집한 자리에서 “(이승기 측이)그냥 막 가라는 식으로 나오는 것 같은데, 내 이름을 걸고 죽여버릴 거야. 내 나머지 인생을 이승기를 죽이는 데 쓸 거야. XXX끼 내가 진짜야”라고 말했다. 배석자가 만류했지만 소용없었다.

이승기는 지난 17일 소속사 A 이사에게 장문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김 매니저 통해서 권 대표 반응을 들었다. 정산서는 1년 동안 반응이 없으셔서 정당한 권리를 찾고자 취한 행동인데 어떻게 그런 협박을 하시는지 (모르겠다)”며 “37살 열심히 일하며 사는 제가 왜 18살 고등학생처럼 욕을 먹으며 주눅 들어야 하는지 참담하다. 앞으로는 변호사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다”고 적었다.

이어 “김 매니저, 정말 진심으로 후크를 위해 열심히 했다. 저도 저지만 김 매니저한테 그러시면 안 됐다”며 “이승기, 이승기 부모, 이승기 매니저, 이승기 지인. 권 대표는 이 모든 사람을 평생 무시했다. 제 사람들 더는 무시 안 당하게 제가 용기 내야겠다. 권 대표의 음해와 협박으로 제가 연예인 못한다면 그것 또한 제 운명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양측의 관계는 이제 최악으로 치달았다. 인연의 시작과는 정반대인 모습이다. 앞서 이들은 18년을 함께 걸어왔다. 18년 전 이승기는 이미 어렸을 때부터 동네에서 유명한 ‘엄친아’였고, 권 대표는 가수 이선희를 도와 그를 ‘국민 남동생’으로 만들어준 은인이었다.

이승기는 1987년 1월13일 서울특별시 도봉구에서 태어났다. 서울신학초등학교와 노곡중학교, 상계고등학교를 잇달아 졸업했다. 

친구들의 회상에 따르면 이승기는 완벽한 학창 시절을 보냈다. 공부는 물론이고 운동, 음악까지 모두 잘했다고 한다. 이승기가 중·고등학교 시절에 전교 회장을 두 번씩이나 했다는 사실은 유명한 일화다. 

성공 동반자?
정산 뒤통수

고등학교 전교 회장 선거 당시에는 데뷔 때문에 출마를 고민하던 이승기가 후보 모집 마지막 날 결국 출마하자 앞서 신청한 후보 두 명이 낙선을 직감하고 자진사퇴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승기는 학교 역사상 최초로 찬반투표로 전교 회장에 당선됐다고 한다. 

공부도 잘해서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 중간·기말고사뿐만 아니라 수행평가 성적도 늘 상위권을 기록했다. 이승기 본인 회상에 따르면 학창 시절 전교 2등까지 해봤다고 한다.


성적보다도 빛났던 것은 그의 인간성이다. 이승기는 학창 시절부터 선하면서도 강한 리더십을 지녔다. 이승기의 고등학교 담임 교사들은 “학교의 문제아들도 이승기와는 유순하게 지냈고, 보통 반장을 순순히 따르지 않는 타 반 학생들과 달리 이승기네 반은 이승기가 한마디만 하면 군말 없이 따랐다”고 증언했다.

많은 연예인이 학창 시절 논란으로 곤욕을 치르는 것과는 상반된 모습이다.

이승기는 공부를 잘하는 모범생이었지만, 공부보다도 쉬는 시간에 하는 축구에 더 열정적으로 임하는 모습은 여느 남학생들과 같았다. 또래 사이에서는 ‘축구 하자면 바로 해주는 멋진 친구’로 알려졌다.

한 동창생은 인터넷 커뮤니티에 “중학생 때 0-1로 지고 있던 상황에서 전반 20분 뒤늦게 등장한 이승기가 혼자 여러 골을 몰아 넣어 결국 11-1로 이겼다”는 일화를 전했다.

이승기는 고등학교 때 ‘사이퍼(Cypher)’라는 밴드부 보컬로도 활동했다. 먼데이 키즈의 리드 보컬인 가수 이진성과 아이돌그룹 하이라이트의 양요섭 역시 사이퍼 출신이다. 이진성은 이승기의 2년 직속 선배로, 오디션에서 직접 이승기를 뽑았다.

이승기는 밴드부 활동 당시 동네 유명인사였다고 한다. 학교 축제가 열릴 때 이승기를 보려고 여기저기서 구경꾼이 몰렸다는 후문이다. 


이선희는 직접 운영하던 라이브 소극장에서 우연히 이승기가 밴드 공연하는 것을 목격했다. 이에 이선희가 직접 가수 제의를 했지만, 정작 이승기 본인은 이선희를 알아보지 못하고 단칼에 거절했다. 사실 그때 이승기는 ‘이것이 내 마지막 무대’라고 생각하며 공연했었다는 후문이다.

밴드 활동을 하면서 공부를 소홀히 하다 보니 성적이 많이 떨어졌다는 이유에서다.

각종 잡음 
압수수색

이승기가 마음을 돌리는 데에는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이승기의 어머니는 집에 돌아온 이승기의 이야기를 듣고선 “무슨 짓이냐?”며 다시 이선희를 찾아갈 것을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이승기의 어머니는 “아들이 공부를 잘하니 당연히 공부로 성공시켜야 된다”는 생각이 확고했었는데, 본인이 유일하게 좋아하는 가수인 이선희가 자신의 아들에게 직접 제안했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놀랐다. 이에 그는 십여년간 유지해온 교육관을 뒤바꾸고, 아버지의 강경한 반대도 막아주며 이승기의 가수 데뷔를 지원했다고 한다.

결국 이승기는 이선희의 제자로 들어가 직접 음악을 배웠다. 둘의 소속사는 물론 후크엔터테인먼트였다. 짧은 연습생 기간 끝에 이승기는 ‘이선희의 애제자’라는 타이틀과 함께 가요계에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이승기는 2004년 6월5일 정규 1집 ‘나방의 꿈’ 타이틀곡 ‘내 여자라니까’로 데뷔했다. 데뷔하자마자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누나 신드롬’을 불러왔다. 이에 당대 연예인답지 않은 수수하고 모범생적인 이미지로 차별성을 주면서 데뷔 직후부터 팬덤을 확고하게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이승기는 만능 엔터테이너로서의 역량을 마음껏 펼쳤다. 후속곡 ‘삭제’도 연달아 히트곡 반열에 올랐고, 2006년 출연한 드라마 <소문난 칠공주>가 시청률 50%에 육박하는 인기를 끌면서 안방극장에도 연착륙한다.

20세가 된 2007년에는 KBS 예능프로그램 <1박2일>에 출연하면서 예능계에 본격 입성했다. 이전까지 연상녀들이 선호하는 ‘미소년’이미지가 강했던 이승기는 <1박2일> 출연을 통해 ‘국민 허당’이라는 새로운 이미지를 얻었다. 이는 이승기의 인기가 연상녀뿐 아니라 전 국민적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됐다.

2009년 이승기는 드라마 <찬란한 유산>에서 첫 정극 주연에 도전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찬란한 유산>은 최고 시청률 47.1%를 기록했고, 이승기는 ‘국민 남동생’ ‘국민 사위’ 등으로 불리며 전성기를 누렸다.

이승기는 바쁜 활동 중에도 학업과 병역을 소홀히 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며 더 큰 인기를 누렸다. 그는 2005년 동국대학교 사회과학부에 수시 합격했다. 신문방송학에서 국제통상학으로 전과한 뒤 휴학 한 번 없이 2009년 졸업했다.

들통 나자 적반하장…대표 “죽여버리겠다”
비판 여론 들끓자 면피용 사과문 게재 빈축

졸업 직후 본교 동국대 국제통상학과 대학원 석사 과정으로 입학해 예정대로 2012년 2월 수료했다. 당시 동국대 재학생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승기는 인기 많은 연예인답지 않게 출석률이 매우 준수했고, 조별 과제에도 열성적으로 참여했다고 한다.

이승기는 2016년 현역 입대한 뒤 제13공수특전여단에서 특전병(정보 특기)으로 복무했다. 고소공포증이 있던 이승기가 강하 훈련까지 수행하며 성실히 군생활에 임했던 사실이 알려지자, 대중적 호감도는 더욱 올라갔다.

이승기는 전역한 이후에도 예능 <집사부일체> 등에 출연하며 여전한 예능감을 뽐냈다. 2018년 SBS에서 연예대상을 수상하며 개인 최고 수상 경력을 경신하기도 했다.

후크엔터테인먼트는 2002년 설립 이래로 이승기와 함께 고공 성장했다. 이제 소속사는 이선희·이승기 등 가수 외에도 박민영·윤여정·이서진 등 여러 유명 배우들을 관리하는 종합 매니지먼트회사로 거듭났다.

하지만 꾸준히 잡음이 일어왔다. 소속사는 이번 사건 이전에도 다른 소속 연예인들과 여러 차례 마찰을 빚은 바 있다. 아울러 최근에는 소속배우 박민영의 전 연인인 강종현과의 긴밀한 연관성이 알려지면서 홍역을 앓았다. 강종현은 각종 경제범죄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 15일에는 소속 연예인 출연료 횡령 혐의로 국가수사본부 중대범죄수사과로부터 압수수색을 받았다. 이후 사흘 만에 이번 사건이 연이어 터진 것이다.

사건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하자, 권 대표는 지난 21일 저녁 ‘모든 것이 저의 불찰입니다’라는 제목의 사과문을 발표했다. 권 대표는 “최근 회사와 저 개인에 대한 좋지 않은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어 사실 여부를 떠나 많은 분께 면목이 없다.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부덕의 소치이기에 부끄럽고 죄송스러운 마음”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현재 언론에 보도되고 있거나 세간에 떠도는 이야기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사실관계 확인을 드리는 것이 도리이나, 앞선 보도자료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현재 사실관계 확인을 위한 정리 단계인 점과 앞으로 법적으로 다뤄질 여지도 있어 입장 표명을 자제한다”고 밝혔다.

권 대표는 “추후 후크엔터테인먼트나 저 개인이 법적으로 책임져야 할 부분이 명확히 확인되면, 물러서거나 회피하지 않고 모든 책임을 지겠다. 소속 연예인들의 연예 활동에 지장이 없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며, 더 이상의 심려를 끼쳐드리는 일이 없도록 더욱 더 주의하겠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
여전한 여론

하지만 비판 여론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되레 ‘진정성이 없다’는 지적이 줄을 이었다. 이승기가 내용증명을 보내자 “자기 인생을 걸며 죽여버리겠다던 사람”이 사태가 커지자 바로 사과문을 발표한 건 단지 비난 여론을 모면하기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jeongun15@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승기 과거 발언 재조명

이승기가 수십억대의 음원 수입을 정산받지 못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과거 농담처럼 받아들여졌던 이승기의 발언 일부가 재조명받고 있다.

앞서 이승기는 예능 <아는 형님>에 출연해 “출연료가 얼마인지 모른다”고 밝혔다.

이에 관한 진위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일각에서는 음원 수익 외에 출연료 분배에서도 불공정한 대우를 받았을 가능성을 이미 제기하고 나섰다.

또 지난 3월 <써클 하우스>에 출연한 이승기는 주식에 빠진 23세 청년에게 “내가 돈이 많아 보이냐”고 물었다.

이에 “네!”라고 답한 청년에게, 이승기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적다”고 말했다.

이 역시 떼먹힌 정산금과 연관 있는 발언 아니냐는 추측이 이어졌다.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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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계 스캔들과 정치권 음모론

연예계 스캔들과 정치권 음모론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때 연예계를 떨게 했던 ‘마의 11월’이 다시 온 걸까? 매년 11월마다 연예계와 방송가에서 각종 이슈가 터진다는 말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아슬아슬하게 11월은 넘기는가 싶더니 12월이 되자마자 연예계 이슈가 온 세상을 뒤덮었다. 동시다발로 터져 나온 연예계 사건·사고에 정작 중요한 이슈들이 가라앉고 있다. SNS에서 의혹이 제기되고, 이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게재된다. 얼마 가지 않아 기사로 보도된다. 유튜브 쇼츠로 제작돼 확산한다. 다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다. 방송으로 퍼진다. 방송분이 편집돼 다시 유튜브 영상으로 제작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생산된 콘텐츠는 SNS를 통해 재생산된다. 다른 이슈가 불거진다. 반복된다. 하루 사이 연달아서 최근 이슈가 퍼지는 방식이다. 기사 등을 통해 정보가 대중에게 전달되던 시기는 이제 끝났다. 이제는 오히려 언론이 온라인 커뮤니티 글을 소스로 기사를 작성하는 판이다. 동시에 레거시 미디어를 통해 정보가 확산하던 시기도 지나간 지 오래다. 이제 모두가 유튜브로 이슈를 확인하고 댓글을 통해 의견을 표출한다. 문제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레거시 미디어로, 또다시 유튜브로 대표되는 뉴미디어로 정보가 전달되는 과정에서 자극도가 높아진다는 점이다. 동시에 확인되지 않은, 왜곡된 내용이 처음 올라온 정보에 덕지덕지 달라붙는다. 확산 속도 또한 어마어마하게 빠르다. 몇 시간이면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를 비롯해 유튜브까지 퍼진다. 이 사이클은 무한정 돌아간다. 시간이 가면서 대중은 짧은 영상에 목말라 하고 있다. 분 단위의 영상보다는 초 단위 쇼츠에 더 열광한다. 영상 제작자는 조회수가 곧 돈이기에 대중의 입맛에 콘텐츠를 맞출 수밖에 없다. 도파민을 바라는 대중의 눈에 들기 위해선 흡인력 있는 영상을 만들어야 한다. 사실이든 아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불과 일주일 새 연예계에서 동시다발로 이슈가 터졌다. 과거, 약물, 갑질, 조폭 의혹 등 언급되는 단어만으로 충격이 일었다. 여기에 의혹에 연루된 연예인의 면면이 전부 각 분야에서 잘 알려진 사람이라는 점은 이슈 확산에 기름을 부었다. 순식간에 커뮤니티와 유튜브 등이 불타올랐다. 배우 조진웅이 과거에 소년범이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올해 광복절 경축식을 비롯해 정부 행사에 자주 얼굴을 드러냈던 터라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는 반응이 많았다. 비상계엄 사태 때에도 SNS에 글을 올리는 등 말할 때는 하는 이른바 ‘개념 연예인’으로 알려져 있어 대중은 조진웅의 반응을 기다렸다. 기사, SNS로 한꺼번에 유튜브 타고 빠른 확산 하지만 소년범이었던 과거가 사실로 드러나고 그가 은퇴를 선언하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동시에 조진웅의 은퇴를 두고 ‘과거의 일’이라는 의견과 ‘피해자를 생각하라’는 의견이 대립하기 시작했다. 일부 진보 진영 정치인이 한두 마디씩 말을 보태면서 의견 대립은 정치권으로까지 번졌다. 여기에 소년범 의혹을 최초로 기사화한 언론의 보도 윤리도 도마 위에 올랐다. 개그우먼 박나래는 매니저 갑질 의혹과 불법 의료 시술 의혹이 동시에 불거졌다. 매니저들이 박나래를 상대로 고소했다는 보도가 나온 이후 줄줄이 이어진 후속 보도에서 드러난 의혹들이다. 박나래가 매니저들과 진실 공방을 벌이는 내용이 거듭해서 언론 보도, 유튜브 쇼츠 등으로 이어지면서 불씨가 꺼지지 않고 있다. 특히 불법 의료 시술 의혹은 ‘주사 이모’라는 존재가 등장하면서 판이 커질 기미를 보이고 있다. 주사 이모는 박나래에게 주사 등을 통해 투약한 인물로 추정된다. 해당 인물의 SNS가 공개되면서 몇몇 연예인이 연루 의혹을 받고 있다. 경찰 조사가 예정돼있어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개그맨 조세호는 조폭 연루설에 휘말렸다. 조세호 의혹은 SNS를 통해 사진이 공개되면서 확산했다. 폭로자가 조세호와 조폭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고 글을 쓰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그 여파로 조세호는 고정 출연하고 있던 <유 퀴즈 온 더 블럭>과 <1박 2일>에서 하차했다. 유명 연예인 도마 위에 아이돌 그룹 BTS의 정국과 에스파 윈터의 열애설도 비슷한 시기에 터졌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두 사람이 비슷한 위치에 ‘커플 타투’를 했다는 의혹이 나왔다. 두 멤버의 소속사인 하이브와 SM엔터테인먼트는 ‘노코멘트’라고 입장을 밝혔다. 두 그룹이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만큼 계속 언급되는 중이다. 한 건만으로도 상당한 파급력을 지닐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일각에서는 누군가가 민감한 이슈를 덮기 위해 연예계 사건·사고를 일부러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게 아니냐는 이른바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다. 앞서 매년 11월마다 연예인 관련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두고 나왔던 이야기가 이번에 다시 나온 것이다. 정치나 사회 이슈와 비교해 연예계 관련 사건·사고 소식은 대중에게 직관적으로 다가가는 편이라 몰입도가 높다. 동시에 휘발성도 크다. 또 대중에게 잘 알려진 연예인일수록 사건의 파급력이 크다. 물론 연말연시를 앞두고 머리 아픈 이슈에 질린 대중에게 연예계 문제는 더할 나위 없이 흥미로운 소재라 말이 나오는 것일 뿐 확인된 바는 없다. 말 그대로 ‘도시괴담’에 가깝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말이 심심찮게 보인다. 실제 여야가 한데 얽힌 것으로 추정되는 통일교 문제, 야당에서 강하게 반발 중인 국가보안법 폐지 논란 등이 연예계 이슈에 묻혀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3300만명이 넘는 고객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쿠팡 사태도 그 사건 규모에 비해 관심도가 떨어지고 있다. 마의 11월 12월로? 통일교 관련 논란은 당초 야당인 국민의힘에 포커스가 집중됐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통일교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이다. 그러다 최근 그 범위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으로까지 확대됐다.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이 통일교에서 금품을 제공한 정치인을 진술하면서 민주당 인사들도 입길에 올랐다.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지난 8월 윤 전 본부장으로부터 ‘통일교가 국민의힘 외에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도 지원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 윤 전 본부장이 언급한 인물 가운데 1명이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당시 민주당 의원)이었다고 한다. 명품 시계 2개와 함께 수천만원을 한일 해저터널 추진 등 교단 숙원사업을 위해 줬다는 것이다. 금품수수 의혹이 보도되자 전 전 장관은 지난 11일,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 그는 “불법 금품수수는 없었다”면서 “장관직을 내려놓고 당당하게 응하는 것이 공직자로서 해야 할 처신”이라고 했다. 이어 “저와 관련된 황당하지만 전혀 근거 없는 논란”이라며 “해수부가 또는 이재명정부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정권이 흔들릴 수도 있는 사안이라는 목소리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통일교 관련 논란으로 국민의힘에 맹공을 퍼부었는데 역풍이 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 국민의힘은 ‘통일교 특검’을 주장하면서 민주당과 이 대통령을 몰아가는 중이다. 공수가 뒤바뀐 것이다. 범여권에서 추진 중인 국가보안법(이하 국보법) 폐지를 두고 정치권이 갈등을 빚고 있다. 국민의힘이 국보법 폐지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여야 간 힘겨루기로 비화했다. 정치권 이슈 묻히고 쿠팡도 잠잠해지나? 지난 7일 민주당 민형배, 조국혁신당 김준형, 진보당 윤종오 의원은 국보법 폐지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의원들은 “국보법은 제정 당시 일본제국주의 치안유지법을 계승해 사상의 자유를 억압한 악법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며 “국보법의 대부분 조항은 형법으로 대체 가능하며 남북교류협력법 등 관련 법률로도 충분히 규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국보법 폐지를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국가보안법 폐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토론회에서 “국가정보원에서 대공수사권을 떼어내 경찰에 이관했지만 경찰은 그만한 준비가 제대로 안 돼 사실상 대공수사가 공중에 붕 뜬 느낌”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국보법을 폐지하려는 시도가 있다는 건 굉장히 심각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연예계 이슈에 바로 직전 가장 큰 이슈였던 쿠팡 사태도 상대적으로 잠잠해졌다. 지난달 말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알려진 쿠팡 사태는 3370만명의 개인정보가 해외로 유출된 사건이다. 사실상 모든 고객의 정보가 털린 셈이다. 올 한 해 통신사, 카드사 등에서 개인정보 유출을 겪은 이용자는 또 한 번 직격탄을 맞았다. 쿠팡 사태는 해킹 등으로 정보가 유출된 여타 업체와 달리 전 직원의 소행으로 드러나면서 이커머스 업체의 보안 실태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동시에 2010년 창업 이래 이커머스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한 쿠팡 생태계의 민낯이 낱낱이 알려졌다. 동시에 쿠팡에서 일어난 노동자 사망사고도 재조명받는 중이다. 지난 10일에는 박대준 쿠팡 대표가 사임했다. 쿠팡은 “최근의 개인정보 사태에 대해 국민께 실망하게 한 점에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이번 사태의 발생과 수습 과정에서의 책임을 통감하고 모든 직위에서 물러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경질이라는 의견이 많다. 당분간은 계속될 듯 일각에서는 음모론에서 한발 더 나아가 여당 쪽에서 연예계 이슈를 터트린 게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고 있다. 통일교 논란, 국보법 폐지, 쿠팡 논란 등 대형 이슈가 여당 쪽에 불리한 내용이 아니냐는 설명이다. 한편에서는 여야가 동시에 발을 걸치고 있는 사안인 만큼 특정 진영의 유불리를 따질 수 없다는 반박도 나온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