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이승기

개미처럼 일만 한 ‘국민 남동생’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엄친아’ 연예인 이승기에게도 남모를 고민이 있었다. 최근 언론 보도들을 통해서 소속사와의 정산 문제가 점차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 지금까지 밝혀진 미정산 음원 수입만 96억원 이상. 누락된 데뷔 초기 수입까지 더하면 이승기는 수십억원을 떼먹힌 셈이다. 일각에선 “이승기가 노예계약에 당했다”는 말도 나온다.

이승기는 2004년 데뷔 이후로 18년간 별다른 논란 없이 연예계 생활을 이어왔다. 그의 지인들은 이승기가 데뷔 이전에도, 그리고 이후로도 모범적인 삶을 살아왔다고 입을 모은다. 일명 ‘아이렌’으로 불리는 팬덤도 이승기를 따라 성숙하고 모범적인 팬 문화 확산에 앞장섰다. 

모범 연예인
불량 소속사

하지만 지난 18년을 함께해온 소속사 ‘후크엔터테인먼트’만은 달랐다.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을 종합하면 후크엔터테인먼트(이하 소속사)는 이승기를 통해 막대한 이익을 쓸어 담으면서도 이승기를 존중하지 않았고, 심지어 기만했다. 

지난 18일, 이승기가 소속사에 정산 관련 내용증명을 보낸 사실이 세간에 알려졌다. 의외의 소식이었다. 이승기와 소속사 사이의 두터운 관계는 연예계에서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이승기는 데뷔 이래로 한 소속사에 계속 몸담았다. 지난해 5월 1인 기획사를 설립하고도 다음 달 재계약을 체결할 정도로 끈끈한 의리를 보였다. 그는 2010년 KBS연예대상 시상식에서 권진영 대표를 “인생에서 가장 큰 축복이고 인연”이라고 언급할 정도로 소속사와 권진영 대표에 대한 애정을 공공연히 전해왔다. 


이랬던 이들이 법정 다툼까지 눈앞에 둔 이유는 다름 아닌 ‘돈’ 때문이다. 지난 21일 <디스패치>는 단독 보도를 통해 이승기가 데뷔 이래 18년 동안 음원 정산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보도에 따르면 소속사는 끊임없이 이승기를 ‘가스라이팅’했다. 그동안 소속사는 이승기가 음원 수익 정산에 관해 질문할 때마다 “너는 마이너스 가수라 정산을 못 해준다” “네 팬들은 음반을 안 사준다” 등의 답변으로 일관한 것으로 알려졌다.

끝내 정산은 없었다. 이에 이승기는 자신이 지난 18년 내내 ‘마이너스 가수’였던 것으로 오해했다. 

그러던 중 이승기는 지난해 우연히 자신의 음원 수익에 관한 소식을 접했다. 소속사 경영팀 직원이 실수로 정산 관련 문자메시지를 이승기에게 보낸 것이다. 문자 속에는 이승기가 2020년 발표한 곡들의 음원 수입이 구체적으로 담겨있었다.

이를 본 이승기는 내심 기뻤다고 한다. “내가 마이너스 가수가 아니구나” “나도 음원으로 수익을 내는구나”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승기는 이를 두고 음악계 선배와 대화하던 중, 의문점을 속속 접했다. 선배는 “내가 받는 저작권료가 얼만데, 네가 마이너스일 리가 없다” “소속사와 계약조건이 어떻게 되느냐”며 의문을 표했다.

이승기는 지속적으로 정산 자료를 요구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그러다 참다못해 꺼내든 방법이 내용증명 발송이었다. 


후크엔터 음원 정산 논란 일파만파
“100억원 중 최소 50억원 받아야”

내용증명으로 공개된 장부에 적힌 매출은 소속사가 그간 이승기에게 했던 말과는 전혀 달랐다. 장부에 적힌 이승기의 음원 매출액을 합쳐보니 총 96억원에 달했다. 이마저도 2004년 6월부터 2009년 8월까지의 자료가 유실된 결과다.

유실된 기간 중 이승기는 ‘내 여자라니까’ 등으로 전국적 인기를 끌며 가수로서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일각에서는 향후 누락 금액이 확인되면 매출액이 갑절로 뛸 수도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당초 이승기 4·소속사 6에서 이승기 7·소속사 3까지 변화한 계약조건을 감안해도 이승기가 떼인 돈은 50억원을 훌쩍 넘어선다는 계산이다.  

소속사는 이 사건에서 돈을 떼먹은 가해자다. 반대로 이승기는 일방적인 피해자다. 하지만 내용증명을 받은 권 대표는 되레 분개했다. 녹취록에 따르면 권 대표는 이사진과 매니저를 소집한 자리에서 “(이승기 측이)그냥 막 가라는 식으로 나오는 것 같은데, 내 이름을 걸고 죽여버릴 거야. 내 나머지 인생을 이승기를 죽이는 데 쓸 거야. XXX끼 내가 진짜야”라고 말했다. 배석자가 만류했지만 소용없었다.

이승기는 지난 17일 소속사 A 이사에게 장문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김 매니저 통해서 권 대표 반응을 들었다. 정산서는 1년 동안 반응이 없으셔서 정당한 권리를 찾고자 취한 행동인데 어떻게 그런 협박을 하시는지 (모르겠다)”며 “37살 열심히 일하며 사는 제가 왜 18살 고등학생처럼 욕을 먹으며 주눅 들어야 하는지 참담하다. 앞으로는 변호사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다”고 적었다.

이어 “김 매니저, 정말 진심으로 후크를 위해 열심히 했다. 저도 저지만 김 매니저한테 그러시면 안 됐다”며 “이승기, 이승기 부모, 이승기 매니저, 이승기 지인. 권 대표는 이 모든 사람을 평생 무시했다. 제 사람들 더는 무시 안 당하게 제가 용기 내야겠다. 권 대표의 음해와 협박으로 제가 연예인 못한다면 그것 또한 제 운명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양측의 관계는 이제 최악으로 치달았다. 인연의 시작과는 정반대인 모습이다. 앞서 이들은 18년을 함께 걸어왔다. 18년 전 이승기는 이미 어렸을 때부터 동네에서 유명한 ‘엄친아’였고, 권 대표는 가수 이선희를 도와 그를 ‘국민 남동생’으로 만들어준 은인이었다.

이승기는 1987년 1월13일 서울특별시 도봉구에서 태어났다. 서울신학초등학교와 노곡중학교, 상계고등학교를 잇달아 졸업했다. 

친구들의 회상에 따르면 이승기는 완벽한 학창 시절을 보냈다. 공부는 물론이고 운동, 음악까지 모두 잘했다고 한다. 이승기가 중·고등학교 시절에 전교 회장을 두 번씩이나 했다는 사실은 유명한 일화다. 

성공 동반자?
정산 뒤통수

고등학교 전교 회장 선거 당시에는 데뷔 때문에 출마를 고민하던 이승기가 후보 모집 마지막 날 결국 출마하자 앞서 신청한 후보 두 명이 낙선을 직감하고 자진사퇴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승기는 학교 역사상 최초로 찬반투표로 전교 회장에 당선됐다고 한다. 

공부도 잘해서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 중간·기말고사뿐만 아니라 수행평가 성적도 늘 상위권을 기록했다. 이승기 본인 회상에 따르면 학창 시절 전교 2등까지 해봤다고 한다.


성적보다도 빛났던 것은 그의 인간성이다. 이승기는 학창 시절부터 선하면서도 강한 리더십을 지녔다. 이승기의 고등학교 담임 교사들은 “학교의 문제아들도 이승기와는 유순하게 지냈고, 보통 반장을 순순히 따르지 않는 타 반 학생들과 달리 이승기네 반은 이승기가 한마디만 하면 군말 없이 따랐다”고 증언했다.

많은 연예인이 학창 시절 논란으로 곤욕을 치르는 것과는 상반된 모습이다.

이승기는 공부를 잘하는 모범생이었지만, 공부보다도 쉬는 시간에 하는 축구에 더 열정적으로 임하는 모습은 여느 남학생들과 같았다. 또래 사이에서는 ‘축구 하자면 바로 해주는 멋진 친구’로 알려졌다.

한 동창생은 인터넷 커뮤니티에 “중학생 때 0-1로 지고 있던 상황에서 전반 20분 뒤늦게 등장한 이승기가 혼자 여러 골을 몰아 넣어 결국 11-1로 이겼다”는 일화를 전했다.

이승기는 고등학교 때 ‘사이퍼(Cypher)’라는 밴드부 보컬로도 활동했다. 먼데이 키즈의 리드 보컬인 가수 이진성과 아이돌그룹 하이라이트의 양요섭 역시 사이퍼 출신이다. 이진성은 이승기의 2년 직속 선배로, 오디션에서 직접 이승기를 뽑았다.

이승기는 밴드부 활동 당시 동네 유명인사였다고 한다. 학교 축제가 열릴 때 이승기를 보려고 여기저기서 구경꾼이 몰렸다는 후문이다. 


이선희는 직접 운영하던 라이브 소극장에서 우연히 이승기가 밴드 공연하는 것을 목격했다. 이에 이선희가 직접 가수 제의를 했지만, 정작 이승기 본인은 이선희를 알아보지 못하고 단칼에 거절했다. 사실 그때 이승기는 ‘이것이 내 마지막 무대’라고 생각하며 공연했었다는 후문이다.

밴드 활동을 하면서 공부를 소홀히 하다 보니 성적이 많이 떨어졌다는 이유에서다.

각종 잡음 
압수수색

이승기가 마음을 돌리는 데에는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이승기의 어머니는 집에 돌아온 이승기의 이야기를 듣고선 “무슨 짓이냐?”며 다시 이선희를 찾아갈 것을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이승기의 어머니는 “아들이 공부를 잘하니 당연히 공부로 성공시켜야 된다”는 생각이 확고했었는데, 본인이 유일하게 좋아하는 가수인 이선희가 자신의 아들에게 직접 제안했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놀랐다. 이에 그는 십여년간 유지해온 교육관을 뒤바꾸고, 아버지의 강경한 반대도 막아주며 이승기의 가수 데뷔를 지원했다고 한다.

결국 이승기는 이선희의 제자로 들어가 직접 음악을 배웠다. 둘의 소속사는 물론 후크엔터테인먼트였다. 짧은 연습생 기간 끝에 이승기는 ‘이선희의 애제자’라는 타이틀과 함께 가요계에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이승기는 2004년 6월5일 정규 1집 ‘나방의 꿈’ 타이틀곡 ‘내 여자라니까’로 데뷔했다. 데뷔하자마자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누나 신드롬’을 불러왔다. 이에 당대 연예인답지 않은 수수하고 모범생적인 이미지로 차별성을 주면서 데뷔 직후부터 팬덤을 확고하게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이승기는 만능 엔터테이너로서의 역량을 마음껏 펼쳤다. 후속곡 ‘삭제’도 연달아 히트곡 반열에 올랐고, 2006년 출연한 드라마 <소문난 칠공주>가 시청률 50%에 육박하는 인기를 끌면서 안방극장에도 연착륙한다.

20세가 된 2007년에는 KBS 예능프로그램 <1박2일>에 출연하면서 예능계에 본격 입성했다. 이전까지 연상녀들이 선호하는 ‘미소년’이미지가 강했던 이승기는 <1박2일> 출연을 통해 ‘국민 허당’이라는 새로운 이미지를 얻었다. 이는 이승기의 인기가 연상녀뿐 아니라 전 국민적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됐다.

2009년 이승기는 드라마 <찬란한 유산>에서 첫 정극 주연에 도전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찬란한 유산>은 최고 시청률 47.1%를 기록했고, 이승기는 ‘국민 남동생’ ‘국민 사위’ 등으로 불리며 전성기를 누렸다.

이승기는 바쁜 활동 중에도 학업과 병역을 소홀히 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며 더 큰 인기를 누렸다. 그는 2005년 동국대학교 사회과학부에 수시 합격했다. 신문방송학에서 국제통상학으로 전과한 뒤 휴학 한 번 없이 2009년 졸업했다.

들통 나자 적반하장…대표 “죽여버리겠다”
비판 여론 들끓자 면피용 사과문 게재 빈축

졸업 직후 본교 동국대 국제통상학과 대학원 석사 과정으로 입학해 예정대로 2012년 2월 수료했다. 당시 동국대 재학생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승기는 인기 많은 연예인답지 않게 출석률이 매우 준수했고, 조별 과제에도 열성적으로 참여했다고 한다.

이승기는 2016년 현역 입대한 뒤 제13공수특전여단에서 특전병(정보 특기)으로 복무했다. 고소공포증이 있던 이승기가 강하 훈련까지 수행하며 성실히 군생활에 임했던 사실이 알려지자, 대중적 호감도는 더욱 올라갔다.

이승기는 전역한 이후에도 예능 <집사부일체> 등에 출연하며 여전한 예능감을 뽐냈다. 2018년 SBS에서 연예대상을 수상하며 개인 최고 수상 경력을 경신하기도 했다.

후크엔터테인먼트는 2002년 설립 이래로 이승기와 함께 고공 성장했다. 이제 소속사는 이선희·이승기 등 가수 외에도 박민영·윤여정·이서진 등 여러 유명 배우들을 관리하는 종합 매니지먼트회사로 거듭났다.

하지만 꾸준히 잡음이 일어왔다. 소속사는 이번 사건 이전에도 다른 소속 연예인들과 여러 차례 마찰을 빚은 바 있다. 아울러 최근에는 소속배우 박민영의 전 연인인 강종현과의 긴밀한 연관성이 알려지면서 홍역을 앓았다. 강종현은 각종 경제범죄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 15일에는 소속 연예인 출연료 횡령 혐의로 국가수사본부 중대범죄수사과로부터 압수수색을 받았다. 이후 사흘 만에 이번 사건이 연이어 터진 것이다.

사건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하자, 권 대표는 지난 21일 저녁 ‘모든 것이 저의 불찰입니다’라는 제목의 사과문을 발표했다. 권 대표는 “최근 회사와 저 개인에 대한 좋지 않은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어 사실 여부를 떠나 많은 분께 면목이 없다.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부덕의 소치이기에 부끄럽고 죄송스러운 마음”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현재 언론에 보도되고 있거나 세간에 떠도는 이야기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사실관계 확인을 드리는 것이 도리이나, 앞선 보도자료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현재 사실관계 확인을 위한 정리 단계인 점과 앞으로 법적으로 다뤄질 여지도 있어 입장 표명을 자제한다”고 밝혔다.

권 대표는 “추후 후크엔터테인먼트나 저 개인이 법적으로 책임져야 할 부분이 명확히 확인되면, 물러서거나 회피하지 않고 모든 책임을 지겠다. 소속 연예인들의 연예 활동에 지장이 없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며, 더 이상의 심려를 끼쳐드리는 일이 없도록 더욱 더 주의하겠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
여전한 여론

하지만 비판 여론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되레 ‘진정성이 없다’는 지적이 줄을 이었다. 이승기가 내용증명을 보내자 “자기 인생을 걸며 죽여버리겠다던 사람”이 사태가 커지자 바로 사과문을 발표한 건 단지 비난 여론을 모면하기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jeongun15@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승기 과거 발언 재조명

이승기가 수십억대의 음원 수입을 정산받지 못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과거 농담처럼 받아들여졌던 이승기의 발언 일부가 재조명받고 있다.

앞서 이승기는 예능 <아는 형님>에 출연해 “출연료가 얼마인지 모른다”고 밝혔다.

이에 관한 진위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일각에서는 음원 수익 외에 출연료 분배에서도 불공정한 대우를 받았을 가능성을 이미 제기하고 나섰다.

또 지난 3월 <써클 하우스>에 출연한 이승기는 주식에 빠진 23세 청년에게 “내가 돈이 많아 보이냐”고 물었다.

이에 “네!”라고 답한 청년에게, 이승기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적다”고 말했다.

이 역시 떼먹힌 정산금과 연관 있는 발언 아니냐는 추측이 이어졌다.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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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