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무용지물 ‘스마트 상황실’ 뭐길래…

혈세로 만들어 놓고 카톡 쓴다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정인균 기자 = 1분1초.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 상황 전파와 정보 공유는 매우 중요하다. 큰 재난이나 참사가 발생했을 때는 더더욱 그렇다. 이 문제를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던 국립중앙의료원은 몇년 전 '스마트 상황실'이라는 메신저를 만들었다. 스마트 상황실을 만드는 데는 적지 않은 세금이 들어 갔고, 의료원 관계자들은 이것이 중요한 역할을 해줄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이번 이태원 참사에서 그 누구도 스마트 상황실을 사용하지 않았다. 국가 예산을 써서 기껏 만들어 놓았음에도, 모두 사용하기 편한 '카카오톡' 메신저를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 

이태원 참사 당시 현장에서 급파된 의료진은 급박하게 움직였고, 중앙 상황실도 여러 상황을 현장 의료진에게 공유했다. 그러나 엇박자는 계속해서 속출했다. 현장은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아수라장이 됐고,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의료계 전문가들은 이 모든 것이 "정보 공유에 혼선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5억 투입

이번 참사 당시 마련된 카카오톡 모바일 상황실에는 300명에 달하는 인원이 있었다. 모바일 상황실이란, 긴급 재난 상황에서 구조활동에 참여하는 모든 관계자가 공유하는 모바일 정보망이다. 여기에는 보건복지부, 소방관계자, 중앙응급의료지원센터, 재해의료지원팀(DMAT) 등이 초대돼있다. 

이 밖에도 여러 의료계 관련자가 실시간으로 초대됐고, 현장 상황을 업데이트했다. 이들은 나름 노력했지만, 지휘와 현장 인력간의 소통 문제가 발생하며 여러 군데에서 엇박자가 났다. 재난 전문가들은 이것이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던 상황실과 불완전한 소통체계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또한, 정부 관계자, 현장 의료진들은 '카카오톡'이라는 민간 업체에 의존 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카카오톡은 얼마 전, 먹통 사태를 일으키며 대중에게 실망을 준 바 있다. 먹통 사태 당시 사천칠백만명에 달하는 카카오톡 사용자들은 몇시간 동안 메신저를 읽을 수도, 보낼 수도 없었다. 한 재난 전문가 는 <일요시사>와의 전화통화에서 "만일 이날에도 카카오톡에 치명적인 오류가 생겼다면 희생자는 더욱 늘어났을 것이다"며 "국가 재난에서의 의사소통을 이런 민간 업체에게 의존하고있다는 점이 매우 의아스럽다"고 지적했다.


구체적인 사례도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실에 따르면 이태원 참사 당시 새벽 1시39분 소방청 중앙구급상황관리센터 소속 직원이 “망자와 관련해 남은 30여명이 순천향병원으로 이송하기로 했다는데 수용이 가능한가?”라고 질문하자, 중앙응급의료상황팀은 “이러지 마세요. 망자 지금 이송하지 마세요. 응급환자 포함 살아있는 환자 40여명 먼저 이송합니다”라고 답변했다.

새벽 1시47분에도 서울 구급상황관리센터 소속 직원이 “사망 지연 환자 이송병원 선정을 요청합니다”라고 올렸고, 중앙응급의료상황팀은 “산 사람부터 병원 보냅시다, 제발”이라고 호소했다.

현장 상황의 전파와 상황실의 지휘가 엇박자가 난 셈이었다. 한국교통대학교 김의수 안전공학과 교수는 “재난 시스템은 정부 주도가 필요하다”며 “이번 참사는 국가적 차원에서 보완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재난·참사 등 상황 발생 시 활용 비상앱
2017년 첫선…의료진·소방 인력 몰라

통상 재난이 발생했을 때 역대 정부들은 현장과 상황을 총괄하고, 국가적 차원의 시스템을 마련해왔다. 보건복지부 산하 국립중앙의료원 응급의료정보화팀에서도 재난, 참사 등의 상황이 발생했을 때 활용하도록 만든 것이 바로 스마트 상황실 애플리케이션이다.

재난 의료 지원을 총괄하는 보건복지부 및 중앙응급의료센터 재난 응급의료 상황실, 현장 출동 의료진, 119 간의 상황 업무 공유를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사고 발생 지점 및 환자 정보를 등록할 수 있고, 신속한 이송정보 등록과 이동 동선 확인 등이 가능하다.

해당 앱은 2017년 첫선을 보였고, 이듬해 보완 작업을 거쳤다. 고도화 작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여기에 약 5억원이 투입됐다.


국립중앙의료원 응급의료정보화기획팀의 제안요청서에 따르면 ▲안정적인 메신저 ▲화상회의 기능 추가 ▲쪽지 보내기 기능 추가 ▲그룹형 게시판을 통한 상황 공유 및 전달 기능 ▲중앙센터, 전국 응급의료기관 및 유관 기관 조직도 기능 등이 주요 사업내용이다.

베타 버전에 이어 본격적으로 알파 버전이 배포된 시기는 2019년으로 올해로 약3년이 다 돼간다. PC 버전과 스마트폰 앱 둘 다 개발됐다. 그러나 앱이 출시된 지 꽤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앱을 모르고 있는 의료진, 소방 인력도 많다.

스마트 상황실 앱은 미리 등록되지 않는 인원을 추가로 초대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한 현직 소방관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스마트 상황실 자체를 처음 듣는다”며 “국가에서 마련된 다른 관련 앱 등이 있기는 하지만 카카오톡이 훨씬 더 수월하기 때문에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애꿎은 세금만 낭비, 확장성 한계 
국가 차원 대책 없으면 혼란 야기

문제는 해당 앱이 국비를 들여 고도화 작업을 했지만, 재난 상황 시에는 사용 빈도가 크지 않다는 점이다.

한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의료센터 관계자는 “스마트 상황실을 동시 가동하긴 하지만 카카오톡을 사용하는 이유는 상용 메신저이기 때문”이라며 “담당자들이 보건소로 출동하는 민간 의료진 같은 경우는 당직자에 따라 수시로 변경된다”고 말했다.

이어 “이중으로 가동하긴 하지만 속도성 등 때문에 스마트 상황실 앱을 예비용으로 사용된다”고 덧붙였다. 보건복지부에서도 해당 앱은 잘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스마트 상황실은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이용자 사전 승인 가입 절차가 복잡하고, 확장성의 한계가 있다”며 “카카오톡 내 모바일 상황실을 우선 활용하고 있다. 다만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백업, 이중화하고는 있다”고 밝혔다.

국비를 들여 마련했지만 제대로 사용되지 않아, 애꿎은 세금만 낭비한 셈이다.

<일요시사>는 국립중앙의료원 측에 앱 개발에 소요된 예산에 대해 물었으나 정확한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초기 개발비, PC 버전, 스마트폰 버전, 베타 버전, 알파 버전, 고도화 작업 등이 이뤄진 것을 미뤄봤을 때 적지 않은 예산이 투입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게 뭐야?


신 의원은 이 같은 상황에 대해 “국가 앱을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국가가 비용을 들여서 대안 앱을 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며 “카카오톡이 오류 났을 때 스마트 상황실 앱을 사용하긴 하겠지만 불안정성의 문제가 발생해 이대로라면 앞으로 또 참사가 발생했을 경우 더욱 큰 혼란을 야기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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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