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나무서 떨어진 김범수 카카오 수장

왜 카카오만…독점의 민낯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카카오의 일대기는 두 번의 ‘상전벽해’로 요약된다. 스마트폰 보급과 함께 혜성처럼 등장한 카카오는 카카오톡 ‘대박’에 힘입어 국내 스타트업 성공신화를 새로 썼다. 하지만 어느새 카카오는 국민에게 ‘밉상 기업’으로 각인됐다. 게다가 잇단 ‘먹통 사태’로 미운털이 제대로 박혔다. 이 가운데 창립자 김범수 전 카카오 이사회 의장도 덩달아 부침을 겪고 있다. 그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국감장에 서게 됐다. 

한국에서 카카오톡을 쓰지 않는 이를 찾기란 쉽지 않다. 전 연령 스마트폰 보급률 100%에 근접한 나라에서, 카카오톡은 메신저 앱 중 압도적인 점유율을 유지해왔다. 4000만명이 넘는 사용자는 메신저뿐만 아니라 쇼핑·게임, 심지어 대중교통 탑승까지 모두 카카오 ‘플랫폼’을 활용한다.

성공가도
승승장구

그런데 지난 15일, 카카오톡이 갑자기 먹통이 됐다. 판교 SK C&C 데이터센터 화재로 이곳에 보관된 카카오 서버 전원이 내려간 탓이었다. 이 여파로 나라 전체가 일대 혼란에 빠졌다. 

이날 먹통이 된 카카오톡 채팅은 다음 날 새벽에나 일부 복구됐고 ‘톡서랍’과 업무용 메일 등은 완전히 복구되기까지 나흘이 넘게 걸렸다. 이외에도 선물하기·대리운전과 택시 앱 서비스 일시중단으로 해당 유료 기능을 활용하던 이들의 피해가 두드러졌다.

스쿠터·킥보드 등이 반납되지 않아 당황했다는 일화와 카카오톡 로그인 기능을 활용하다 곤경에 빠진 코인 거래소의 상황 등이 실시간으로 공유됐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처럼 그간 카카오의 위치는 많이 변했다. 연간 수십억에 달하는 서버 유지 비용으로 만년 적자를 기록하던 스타트업이 독자적인 수익 구조를 만들어내며 반등하기 시작한 때가 2012년이다.

이후 카카오는 종합 플랫폼 기업으로의 도약 성공, 코로나 유행으로 인한 비대면 산업 특수 등을 발판 삼아 크게 성장했다. 초기 창업 자본금 100억원으로 시작한 카카오는 현재 재계 서열 12위의 대기업으로 변모했다. 시가총액은 40조원을 넘나든다.

하지만 카카오의 기업 이미지는 급격한 성장세와 반비례했다. 기업가치가 뛰어오르고 새로운 ‘쪼개기 상장’이 발표될 때마다, 카카오를 둘러싼 문어발식 경영·골목상권 침해 논란이 들끓었다. ‘스타트업의 성공신화’ ‘혁신의 아이콘’ 등의 수식어도 어느덧 옛말이 됐다.

창업자 김범수 전 카카오 이사회 의장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제각각이다. 한국 IT시장의 선두주자 격인 한게임과 카카오톡을 잇달아 성공시킨 혁신가는 국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재력가가 됐다.

하지만 김 전 의장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국정감사에 불려 나와 수모를 겪을 예정이다. 지난해에는 무분별한 사업 확장으로 정치권의 질타를 받았고, 올해는 먹통 사태 관련 보고를 앞뒀다. 이외에도 경영권 승계 준비·사익편취 등 개인 의혹은 해명한 후로도 뒷말이 무성하다.

최근 여러 논란과 의혹으로 빛이 바랬지만, 김 전 의장은 여전히 자수성가한 사업가 중 입지전적인 인물로 통한다.

그는 1966년 전라남도 담양 농사꾼 집안 2남3녀 중 셋째이자 장남으로 태어났다. 이후 그의 부모님은 다섯남매의 교육을 위해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다. 부친은 막노동과 목공 일을, 모친은 식당 일을 하며 생계를 책임졌다.


김 전 의장은 자연스럽게 할머니 손에 자랐는데, 할머니를 포함한 8식구가 단칸방에서 살 만큼 형편이 여유롭지 못했다.

자식 교육을 위해 서울로 올라왔지만, 정작 그의 부모님은 공부를 강요한 적이 없었다. 김 전 의장은 노는 것도, 공부하는 것도 모두 스스로 결정했다. 그런 그에게 부모님은 “넌 잘하고 있다”며 항상 응원을 보냈다. 훗날 김 전 의장은 “그런 격려와 지지가 큰 힘이 됐다”고 회상했다. 

김 전 의장이 중학생 때, 부친이 정육 도매업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가정형편이 나아졌다. 하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부도를 맞으며 가세가 다시 기울었다. 다섯남매가 모두 대학에 진학할 수는 없었던 상황. 결국 장남인 김 전 의장 혼자만 대학에 가게 됐다. 김 전 의장이 독하게 공부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다.

카톡으로 대박…이번 먹통 사태로 미운 털
도마에 오른 위기 대처…올해도 국감 망신

김 전 의장의 재수 시절 일화는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마음이 흐트러질 때마다 손가락을 베서 혈서를 썼고, 담배를 끊기 위해 낱개로 파는 담배 3개비를 사다 책상에 올려놨다. 결국 그는 피나는 재수 생활 끝에 서울대학교 산업공학과에 합격했다.

김 전 의장은 과외 아르바이트로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하며 학교생활을 이어갔다. 이후 4년 만에 학사 학위를 받았고, 2년 뒤 동 대학원 석사를 졸업했다.

김 전 의장은 1992년 석사 졸업 직후 전문연구요원으로 삼성데이타시스템에 입사했다. 이곳에서 컴퓨터 언어에 본격적으로 몰두했다. 그는 입사 첫해 양식편집기 ‘폼 에디터’를 개발했고, 1993년에는 호암미술관 소장품 화상 관리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어 1996년에는 PC통신 유니텔을 개발해 여러 버전의 설계와 개발을 맡았다. 

이윽고 정식으로 연구소 생활을 시작한 김 전 의장은 삼성SDS에서 평생의 사업 동반자들과 인연을 맺었다. 문태식 카카오VX 대표와 김정호 브라이언임팩트 이사장 등이 대표적이다.

그가 첫 창업에 발걸음을 뗀 건 1998년이었다. 당시 PC방과 온라인 게임 열풍이 강하게 불었다. 김 전 의장은 남궁훈 카카오 전 공동대표(지난 19일 사퇴)와 함께 한양대학교 앞에 ‘미션넘버원’이라는 대형 PC방을 열었다. 전국 최대 규모 PC방으로 유명해졌다.

PC방은 개업 반년 만에 당시 가치로 매출 5000만원을 달성할 만큼 성업했다.

김 전 의장은 아내에게 PC방 운영을 맡기고 구석 자리에서 프로그램 개발에 몰두했다. 그는 한 자리에서 모든 컴퓨터를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고, 이를 다른 PC방에 판매하면서 1억5000만원을 더 벌었다. 

승승장구하던 그는 같은 해 9월 삼성SDS를 나온 데 이어 11월 한게임을 창업했다. 보드·퍼즐게임을 제공하는 게임 포털사이트로 시작한 한게임은 서비스 5개월 만에 300만 회원을 동원하며 인기를 끌었다. 


김 전 의장은 2000년 한게임을 네이버와 합병하고 NHN 공동대표가 된다. 삼성SDS 동기인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현 글로벌투자책임자, GIO)와의 동업은 7년간 이어졌다. 김 전 의장은 2004년 NHN 단독 대표에 이어 해외사업 대표를 지냈고, 그러다 2007년 8월 NHN을 떠났다.

그가 퇴사할 당시 “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 그러나 그것이 배의 존재 이유는 아니다”라는 명언을 인용한 일화는 유명하다.

그는 가족이 있던 미국으로 향했다. 1년간 가족들과 시간을 보낸 그는 홀로 귀국길에 올랐다. 귀국한 뒤에도 음악과 책에 매진하며 재충전 시간을 가졌다. 이후로는 미국에 있던 가족까지 한국으로 데려와 여행·게임 등 취미 생활을 공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폐 포털
밉상 기업

그렇게 2000년대가 끝날 무렵, 김 전 의장은 스마트폰 보급에 발맞춰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는 미국에 머물 때 아이폰 출시를 지켜보고 PC에서 모바일로 시장의 중심축이 옮겨갈 것을 직감했다고 한다. 이에 그는 한창 준비하던 프로젝트를 무산시키고, 카카오톡을 출시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카카오톡은 “PC 메신저 일색인 시장 속 모바일 메신저라는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무료 서비스와 그룹 채팅 등의 강점을 내세운 카카오톡은 출시 1년 만에 1000만명의 이용자를 모았다.


당시 카카오톡이 급속도로 성장했던 배경으로는 ‘차별성’과 ‘시장 선점’이 꼽힌다. 2010년대 초반 당시 이동통신사가 제공하던 문자 메신저는 별도의 통신비가 있었고, 글자 수가 제한됐다. 스마트폰 출시에 발맞춰 시장에 나온 메신저 앱들 역시 대부분 유료였다.

반면 카카오톡은 인터넷에 연결만 되면 무료로 무제한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었다. 글자 수 제한도 따로 없었다. 

막대한 서버 운영비를 떠안은 대신 카카오톡은 몇 년간 다진 기반 위에 새로운 수익 모델을 만들어냈다. 중소 게임 업체와의 협업을 통해 ‘애니팡’ 등 카카오톡 기반 게임을 흥행시켰고, 이모티콘 판매·선물하기 기능 등을 통해 성공가도를 달렸다.

카카오는 2014년, 다음(한메일)을 비롯해 여러 기업을 인수·합병하며 몸집을 빠르게 불렸다. 그간 카카오는 플랫폼 영향력을 바탕으로 결제·은행·게임 등의 서비스를 키우고, 이를 분사·상장하는 방식으로 성장해왔다. 카카오는 이를 수 없이 반복하면서 창사 9년 만에 대기업 반열에 올랐다.

김 전 의장은 사업 외에도 기부 등을 통해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에 관심이 많다고 알려졌다. 그는 평소 ‘성공이란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이라는 에머슨의 시를 자주 인용한다. 특히 인적 투자와 지원에 주안점을 둔다.

실제로 김 전 의장은 “100명의 CEO를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밝혔다. 2016년 스타트업캠퍼스 초대 총장으로 취임할 당시 “청년들이 직장이 아닌 업을 찾는 걸 돕겠다”고 발언한 것과 사회혁신가를 찾아 지원하는 아쇼카코리아에 기부한 일화 역시 비슷한 맥락으로 읽힌다.

이외에도 코로나·산불·태풍 등 자연재해가 벌어질 때마다 큰 액수를 기부하는 ‘통 큰 기부’ 행보를 이어왔다.

지난해 2월에는 기빙플레지에 자신의 재산 절반을 기부하겠다고 서약한 바 있다. 서약 직후 이를 활용할 브라이언임팩트재단을 세웠다. 보통 기부재단은 기금을 조성한 뒤 해당 기금에서 나오는 수익을 바탕으로 운영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하지만 브라이언임팩트재단은 기부금을 즉각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세운 점이 특징이다.

업무, 생활…
암흑 속으로

하지만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제기된 카카오와 김 전 의장을 둘러싼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 모양새다. 김 전 의장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국감장에 서는 게 그 방증이다.

다만 지난해에는 정무위원회·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이하 과방위) 등 세 차례나 국감 증언대에 섰던 것에 반해, 올해는 과방위에서만 출석 요구를 받았다. 여야 협의를 통해 질의 내용은 이번 화재에 관한 것으로만 한정됐다.

김 전 의장은 지난해 국감장에서 ‘난타’ 당했다. 당해 국감에서 세 차례나 불려 나온 총수는 김 전 의장이 유일했다.

당시 전 국민적 공분을 샀던 ‘스마트 호출 서비스’가 가장 먼저 도마에 올랐다. 지난해 카카오모빌리티는 영업시간 제한으로 택시·대리운전 수요가 특정 시간에 집중되자 배차 확률을 높여주는 대가로 많게는 5000원에서 수만원에 이르는 추가 금액 지불을 요구하는 서비스를 개시했다가 곧바로 철회한 바 있다.

모빌리티 시장 경쟁사들이 규제 철퇴로 주춤한 사이, 독과점 체제를 구축한 카카오모빌리티가 횡포를 부린다는 비판이 쇄도했다.

이를 기점으로 카카오의 계열사 면면이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공룡 기업 ‘카카오’ 이름을 달고 꽃·간식·샐러드 배달 사업에 나선 점, 카카오인베스트먼트가 카카오헤어샵 사업에 투자한 점, 스크린 골프 시장에서 카카오VX가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는 점 등이 연이어 지적됐다.

결국 카카오에는 ‘골목상권을 위협하는 대기업’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었다.

김 전 의장이 100% 지분을 갖고 있는 케이큐브홀딩스도 논란의 중심에 섰다. 케이큐브홀딩스는 카카오 지분을 10% 이상 보유하고 있다. 투자회사로 설립됐지만 별다른 투자 활동이 없어 사실상 카카오의 지주회사로 여겨진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9월 김 전 의장이 케이큐브홀딩스 관련 자료를 제대로 신고하지 않았다며 한 차례 조사한 바 있다. 여기에 경영권 승계 준비 의혹, 배당금 절세 의혹, 사익편취 등 가족 관련 의혹이 함께 불거졌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윤창현 의원은 지난해 국감에서 “케이큐브홀딩스는 마치 가족끼리 돈놀이하는 놀이터 같다. 동생한테 돈을 빌려주지를 않나, 선물옵션 거래를 한다든지 사모투자신탁에 가입한다든지 해서 이익을 낸다. 지주회사인지, 금융회사인지도 불분명하다. 금산분리 규정 위반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어려운 가정환경 딛고 자수성가 혁신가
문어발식 경영·골목상권 침해로 입방아

다방면에 걸쳐 날선 비판이 이어지자, 김 전 의장은 “골목상권을 절대 침해하지 않겠다. 성장에 취해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에 통렬히 반성한다. 초심으로 돌아가 뼈를 깎는 심정으로 노력하겠다”며 추가 상생안 마련·이행에 힘쓰겠다고 약속했다.

카카오 측은 지난 4월 “올해 계열사 수를 30~40개 줄이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약속이 제대로 지켜질지는 미지수다. 약속한 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카카오 계열사는 128개에 달한다. 138개였던 발표 당시와 비교해 단 10개가 줄어든 셈이다. 

이 가운데 터진 ‘카카오톡 먹통’ 사태에 여론 반응이 호의적일 리 없었다. 막대한 수익을 거두면서도 서버 백업 등 안전망 구축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카카오를 향해 각종 비판이 쏟아졌다.

“서버 백업 조치는 이뤄져 있었다”는 카카오 측 해명에도 성난 여론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IT업계에 따르면 지난 16일 카카오톡 사용자는 3905만명으로 화재 전인 14일 사용자 수 4112만명 대비 207만명 급감한 것으로 파악됐다.

결국 윤석열 대통령이 본 사태를 직접 언급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윤 대통령은 지난 17일 “만약 독점이나 심한 과점 상태에서 시장이 왜곡되거나 이것이 국가 기반 인프라와 같은 정도를 이루고 있을 때는 국민의 이익을 위해 제도적으로 국가가 필요한 대응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런 문제는 공정거래위원회에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도 언급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의 ‘카카오 무한 책임론’과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의 ‘대국민 사과’ 역시 눈길을 끌었다.

카카오는 김 전 의장의 국감 출석 전 여론 진화에 총력을 쏟는 모양새다. 카카오는 임직원들을 밤샘 비상근무에 투입한 데 이어 지난 19일 사과문과 남궁훈 전 대표이사의 사퇴 소식을 전격 발표했다.

남궁 전 대표는 기자회견을 열고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는 데 그 어느 때보다 큰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카카오 전체의 시스템을 점검하고 쇄신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관계 당국의 우려 역시 어느 때보다 무겁게 받아들여, 조사와 요청에 성실하게 협조하겠다”며 “모든 서비스가 정상화되는 대로 이번 사건에 대해 원인을 철저히 규명하고, 이러한 일이 또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최대한의 조치를 취해 나갈 것을 약속드린다”고 덧붙였다.

김 전 의장은 지난 3월 의장직에서 물러난 뒤 글로벌 확장에 주력하고 있다. 본사 경영 일선에서 사실상 한 발 빠진 셈이다.

집단소송 
움직임도

하지만 김 전 의장은 결국 이번에도 국감장에 얼굴을 비추게 됐다. 과방위의 여러 증인 사이에서도 집중포화가 예상된다. 일어난 일은 돌이킬 수 없다지만, 관건은 다음 국감이다. 만약 카카오를 둘러싼 논란이 내년에도 가라앉지 않는다면, 또다시 국감장에 불려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과연 김 전 의장은 국민과의 ‘불편한 대면’을 그만둘 수 있을까.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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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내란 비선’ 노상원 민간인 사찰 준비 의혹

[단독] ‘내란 비선’ 노상원 민간인 사찰 준비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방첩사가 댓글 공작을 계획한 정황이 곳곳에서 확인된다. 사이버작전사령관 후보군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여론전에 나서려 한 게 골자다. MB·박근혜정부 때의 악몽이 재발할 수 있었던 셈이다. 군 안팎에서는 계엄이 유지됐다면 여론 공작뿐만 아니라 민간인 사찰까지 벌어졌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군 정보기관 간부들은 이 계획을 준비하려 했던 인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아닌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을 지목한 것으로 파악됐다. “여인형은 댓글 공작을 지시한 사람일 뿐 계획한 사람은 노상원이다.” 한 군 고위관계자의 말이다.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부정선거 수사만을 담당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도 복수의 군 관계자들로부터 관련 진술을 받아냈다. 특히 사이버작전사령부가 댓글 공작을 계획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진보 성향 진급 제외 공수처는 이달 초 복수의 국군방첩사령부 간부들로부터 군 댓글 공작 의혹과 관련된 진술을 받아냈다. 한 방첩사 간부는 공수처에 “사이버사령관에 대한 정치 성향, 개인정보 등 신원 검증을 진행했다. 진보 계열 정치인과 친분이 있거나 알고 지낸 적이 있는 군 간부에 대해서는 신원 검증을 더욱 철저히 했다”고 진술했다. 공수처는 방첩사가 사이버작전사령관 후보군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정권 ‘코드 인사’가 정해지면 댓글 공작팀을 구성하려 했다고 보고 있다. 공수처가 확보한 블랙리스트는 지난해 12월과 지난 1월 두 차례에 걸친 방첩사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것이다. 당시 압수수색 대상엔 사이버사령관 관련 블랙리스트 문건도 포함됐다.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은 이 문건들을 김용현 전 장관에게 수차례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보고 시점이다. 김 전 장관이 대통령경호처장이던 지난해 초부터다. 김 전 장관이 군 인사에 개입하고 신원식 국가안보실장보다 영향력이 강했던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도 방첩사의 댓글 공작 플랜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지난 1월 국회 국정조사특위에서 “조원희 사이버사령관이 사이버 정예 요원 28명으로 구성된 ‘사이버 정찰 TF’를 구성해 2024년 10월7일∼12월27일 약 3개월간 운영할 계획이었다”며 “사이버사가 국가정보원, 국군방첩사령부 등 그동안 비상계엄에 협조해 온 기관과 연계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이른바 인지전·심리전을 하려던 것으로 추측된다”고 주장했다. 인지전은 전단 살포 등 기존 심리전에 더해 SNS를 통한 사이버 여론전까지 포괄한다. 실제 방첩사는 예하 보안연구소에 인지전을 전담하는 ‘정보종합통합대응팀(대응팀)’ 신설을 계획했다. 이 대응팀은 방첩사가 인지전 조직 설립을 추진하다 내부 반발에 부닥치자 만들어진 TF(태스크포스) 성격의 팀으로 알려졌다. 일부 인원을 보안연구소로 이동시켜 TF를 꾸린 뒤 인지전 조직을 설립할 계획이었다. 사이버사 통해 인지·심리전 작업 선관위 서버 탈취 성공하면 서포트 여 전 사령관은 보안연구소에 인지전 전문가를 직접 추천하기도 했다. 실제 여 전 사령관이 추천한 인사는 지난해 12월2일 보안연구소 연구기획팀에 임용됐다. 지난해 10월에는 여 전 사령관실에 있던 소령이 전 부대원을 대상으로 인지전 내용이 포함된 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 여 전 사령관의 지시를 받았던 건 그의 비서실장이던 정성우 전 1처장과 최측근인 소형기 전 방첩사 참모장(현 육군사관학교 교장)이다. 정 전 1처장은 보안처와 방첩처에 인지전 관련 조직 신설을 지시했으나 간부 대부분이 ‘업무 관련성이 없다’며 거부했다. 소 전 참모장은 지난 2023년 11월6일 인사를 통해 여 전 사령관과 함께 방첩사로 온 인물이다. 두 사람은 인사 이전 육군본부 정보작전참모부에서 부장과 계획편제차장으로 함께 근무했다. 방첩사는 육·해·공군 장성급 직책과 국방부 예하기관장 등에 대한 인사안도 작성했다. 이 인사안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관련 진술을 확보하고 지난달 29일부터 방첩사 신원보안실과 군사정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방첩사 신원보안실은 본래 육·해·공군 각군 인사참모부에서 인사 계획안을 작성하면, 해당 인물의 세평 등 정보를 수집·조사해 검증하는 조직이다. 그러나 여 전 사령관이 지난 2023년 11월 방첩사령관으로 임명된 이후 신원보안실은 여 전 사령관 측근들로 구성돼 군 인사와 비상계엄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신원보안실장을 맡고 있는 나모 실장(대령)은 지난해 전역을 앞두고 있었으나 비상계엄을 나흘 앞둔 11월29일 인사에서 이례적으로 임기가 2년 연장됐다. 신원보안실 산하 신원검증과장 등을 맡았던 진모 당시 중령은 충암고 출신으로 지난해 9월 인사에서 대령으로 진급했다. 내란 사태 이후 지난해 12월6일 육군 제5군단 방첩부대장으로 부임했다. 공수처 진술 확보 방첩사 신원보안실은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계획 문건을 만들고, 이를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기도 했다. 당시 그 자리는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이 맡고 있었으나 박 전 총장 임기 만료 전이던 지난 4월 인사에서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안을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8월 여 전 사령관 지시로 만들어진 블랙리스트인 이른바 ‘최강욱 라인 명단’은 2017~2020년, 군 법무관 출신인 민주당 최강욱 전 의원과 근무 시기가 겹치거나 만난 적이 있다는 군 판사·검사 명단을 30명 가까이 정리해 둔 문서다. 최 전 의원은 문재인정부 시절인 2018년 9월~2020년 3월 청와대 직원 직무감찰과 군을 포함한 주요 공직자 인사 검증을 담당하는 공직기관비서관으로 근무했다. 명단에는 김상환 육군본부 법무실장(준장)과 서성훈 중앙지역군사법원장(대령) 등 비육사 출신 군 법무관들이 주로 이름을 올렸다. 공수처는 여 전 사령관이 김 법무실장을 국방부 검찰단장직에 보임되는 일을 막기 위해 그를 강제 전역시킬 방안을 연구했다고 보고 압수수색 영장에 관련 혐의도 적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여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기 위해 장군 인사에도 개입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정치 성향 등 단순 세평 수집이 아닌 각 군에서 작성한 인사안을 검토하거나 직접 작성했는지가 의혹의 핵심이다. 한 군 정보 소식통은 “정보사를 포함해 계엄에 협력할 만한 인물을 정리한 문건도 방첩사가 관리했다.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을 포함해 계엄에 반대하지 않을 것 같은 인물들은 모두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됐다”고 주장했다. 조 사령관은 블랙리스트가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난해 4월 사이버사령관으로 부임했다. 노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과 연락을 취하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하기도 한다. 부임 6개월도 안 된 해군 출신이던 이동길 전임 사령관을 교체하고 조 사령관을 임명한 건 이례적인 일이라는 게 군 내부의 시선이다. 사령관 추천 노 ‘오케이’ 조 사령관은 평소 여 전 사령관과의 친분을 과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김 전 장관이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시절(2015~2017년) 작전본부 중령으로 근무했다. 방첩사 출신 군 관계자는 “여 전 사령관이 노상원을 멀리 했으나 계엄을 놓고 본다면 자신의 측근이자 믿을 수 있는 인물을 사이버사령관으로 둬야 했을 것이다. 여 전 사령관이 김용현에게 조 사령관을 추천, 노상원이 ‘오케이’한 인물”이라고 전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초부터 김 전 장관과 연락하면서 12·3 비상계엄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을 검증하려 계엄사령부 산하 수사2단을 지휘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서버 탈취를 계획했다. 정치권과 군 일각에서는 조 사령관이 여 전 사령관의 지시로 노 전 사령관에게 협력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노 전 사령관의 선관위 서버 탈취 계획이 성공했다면 조 사령관이 사이버사 산하 해킹 부대인 900연구소를 중심으로 댓글 및 여론 공작에 나섰을 것이란 분석이다. 복수의 정보사 간부들은 댓글·여론 공작의 다음 플랜이 ‘민간인 사찰’이라고 전했다. 노 전 사령관이 선관위 서버 탈취에 성공하면 진보 성향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시민단체 관계자들의 SNS를 들여다볼 계획이었다는 것이다. 정보사 출신 군 고위 관계자는 “‘부정선거가 사실이었다’는 여론을 조성하는 데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는다. 계엄이 2~3주 정도 유지됐다면 방첩사와 노상원이 지휘하는 수사2단이 주체가 돼 진보 성향 시민단체의 동향 파악은 기본이고 실제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결론적으로 방첩사가 사이버사를 통해 댓글·여론 공작을 하려 했던 건 ‘윤석열의 계엄이 옳았다’는 헛소리를 유포하기 위함이다. 노상원이 김용현에게 조언했고 MB·박근혜 때의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을 참고해 시나리오를 짰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노, MB·박정부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 참고 여, 블랙리스트 김용현에 직보…김·노 논의 여 전 사령관은 사이버사를 통해서만 댓글·여론 공작을 실행하려 하지 않았다. 직접 국정원에 방첩 업무를 담당할 도·감청 전문가들을 파견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는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이 여 전 사령관의 요청을 거절한 직후에 일어난 일이다. 당시 홍 전 차장은 윤 전 대통령이 “방첩사를 지원하라”고 하자 여 전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윤 전 대통령 지시 사항을 전달했고, 여 전 사령관은 체포 대상자 명단을 불러주며 위치 추적을 요청했다. 합참의 ‘계엄실무편람’에 따르면, 계엄사는 합동수사본부 지원을 맡는다. 합동수사본부는 예하에 수사1·2·3·5국을 둔다. 2018년 논란이 됐던 기무사의 계엄 대비 문건에는 합동수사본부장은 방첩사령관이, 수사5국은 국정원이 맡는다고 적혀 있다. 당시 문건에는 ‘국정원은 국정원법을 이유로 계엄사령관의 지시에 소극적으로 대응할 가능성 내재’ ‘이럴 경우 대통령께서 국정원장에게 계엄사령관의 지휘·통제를 따르도록 지시’라고 기록됐다. 여 전 사령관은 ‘민간인 사찰을 계획했느냐’는 <일요시사>의 여러 질문에 대해 “너무 구체적이다. 어떤 게 맞고 틀린지 답하기 곤란한 내용이 포함돼있다”며 “수사를 앞두고 있어 답할 수 없음을 양해해 달라”고 말한 바 있다. 공수처는 방첩사의 댓글·여론 공작 의혹과 군 간부들에 대한 평가와 사찰에 대한 문건이 윤 전 대통령에게까지 보고됐는지 수사 중이다. 공수처는 조만간 여 전 사령관에 대한 피의자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지만 내란 특검이 출범하게 되면 모든 자료를 특검에 넘겨야 한다. 공수처 최근 정례 브리핑에서 “지난주부터 방첩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거의 매일 진행 중”이라며 “포렌식이 오래 걸리는 건 여러 곳에 분산된 서버를 복구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통해 윤 전달? 공수처는 12·3 비상계엄 사태 수사와는 별개로 방첩사 관련 사건을 입건해 사건번호를 부여한 상태라고 부연했다. 지난 5일 내란 특검법, 채상병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해 조만간 특별검사 수사 체제가 가동될 것으로 예상돼 공수처는 특검 출범 이후 방첩사 블랙리스트 관련 수사와 기존 고발 사건 수사에 집중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 관계자는 “특검이 출범하고 자료 요청이 오면 당연히 자료를 넘겨야 하지만 그 전까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