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기획> 가습기살균제 참사, 그후 ④엎치락뒤치락 과실치사 공방전

‘13명 무죄’ 망신당하고도 무기력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법원이 가습기살균제 참사 가해 기업에 면죄부를 던져준 지 2년이 돼간다. 항소심에서는 여전히 1심처럼 5명도 되지 않는 공판 담당 검사가 10명이 넘는 대형 로펌 변호사를 상대하고 있다. 검찰의 부담감이 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상황이 뒤집힐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가습기살균제 광고기사를 심사에서 제외한 것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왔기 때문이다. SK케미칼과 애경은 그간 일부 가습기살균제 원료가 인체에 유해하지 않다고 광고해왔으나 공정위는 해당 광고기사들에 대해 조사조차 하지 않았다.

SK케미칼과 애경산업 전직 임원들은 가습기살균제의 제조 및 판매와 관련해 업무상 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기소됐으나 지난해 1월,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클로로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MIT)이 인체에 유해하다는 근거가 밝혀진 바 없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었다. 

주요 임원들
전원 면죄부

그러나 지난달 말 공정거래위원회의 SK케미칼 무혐의 처분이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오면서 가해기업 유죄 입증이 수월해졌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검찰은 1심에서 SK케미칼과 애경의 혐의 입증에 실패했다. 앞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판사 유영근)는 지난해 1월12일 업무상과실치사상 등 혐의로 기소된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와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 등 13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제조·판매한 가습기살균제의 사용과 피해자들의 상해·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됨을 전제로 하는 공소사실의 나머지 쟁점은 살펴볼 필요가 없이 모두 범죄의 증명이 없다”고 판시했다.


검찰은 2018년 11월 SK케미칼과 애경산업의 전·현직 대표에 대한 고발을 계기로 재수사에 착수했고 “최초 개발단계부터 안전성 검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등 부실 개발된 사실을 확인했다”며 관련자들을 재판에 넘겼다.

2019년 2월 첫 기소가 이뤄진 후 피고인 13명에 대해 3개의 사건이 병합되고, 2년 가까운 기간 심리가 이뤄졌다. 검찰은 1심 결심공판에서 홍 전 대표와 안 전 대표에게 법정 최고형인 금고 5년을 구형했다.

‘가습기메이트’는 옥시의 ‘옥시싹싹 가습기당번’ 다음으로 많은 피해자를 낸 제품이지만, SK케미칼과 애경산업은 원료의 인체 유해성이 명확히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벌을 피해왔다.

그러나 2년 만에 나온 1심 결론은 ‘무죄’였다.

재판부는 역학조사, 임상사례, 세포독성시험, 빅데이터 연구를 흡입독성시험 결과와 함께 살펴보더라도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않았다고 봤다. 모든 연구 결과를 종합하더라도 CMIT·MIT가 폐질환이나 천식을 유발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엔 증거가 부족하단 것이다.

재판부는 “가습기살균제 피해 인정 기준은 근본적으로 PHMG 성분 가습기살균제 피해 사례로부터 도출된 것”이라며 “물질적 성질이 상당히 다른 CMIT·MIT 성분 가습기살균제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CMIT·MIT에 의한 폐손상 피해를 공식 인정한 것에 대해서는 “피해자 구제라는 목적을 위해 보다 폭넓게 인정하는 방향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피해 인정 절차에서 피해 인정 결과를 엄격한 증명이 필요한 형사사건에 그대로 적용하긴 어렵다”고 밝혔다.


헌재, 공정위 위헌 판단…항소심 영향 가능성
검, 주의의무 위반·침해 인과관계 규명 박차

CMIT·MIT 성분 가습기살균제를 ‘단독’으로 사용해 폐질환 피해를 인정받은 사람이 존재(11명)하는 것에 대해서도 “CMIT·MIT 가습기살균제 사용과 폐질환 사이의 개별적 인과관계를 의심할만한 사정이 다수 존재한다”고 판단했다.

‘환경부 종합보고서’에 대해서는 “인과관계를 증명하지 못한 기존 연구결과들에 대한 전문가들의 추정 내지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일종의 ‘의견서’”라며 “형사재판에서 이런 추정에 기초해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가습기살균제 참사 재판 항소심은 서울고법에서 진행되고 있다. 시간이 날 때면 항소심 공판을 지켜보며 상황을 지켜보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도 있다. 특조위 출신 한 관계자는 “1심과 느낌이 다르다. 1심 당시 검찰은 여론에 떠밀려 수사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최근 담당 검사가 정해지고 난 후 공판이 답답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검찰은 가습기살균제 제품의 인체 위해성과 상해, 사망과의 인과관계가 아닌 주의의무 위반 행위와 침해 결과 간의 인과관계 규명에 힘쓰고 있다. 이는 지난해 5월 항소심 재판부가 검찰 공소사실 중 사실관계나 주장이 불명확한 부분을 지적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당시 사건 주심인 김대현 부장판사는 검찰에 “공소장을 보면 피해자들의 제품 사용 시기가 2000년부터 시작되는데, 제품 생산 시기를 보면 2002년부터로 돼있다”며 “실제 사용 시기가 맞는지 차근차근 살펴봐야 할 것 같다”고 언급했다.

윤승은 재판장도 “과실범으로 처벌하려면 ‘주의의무’가 전제돼야 하는데, 개별 피고인들의 주의의무가 명시된 게 아니라 뭉뚱그려져 있다”며 “근거를 명확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SK케미칼·애경
고발 가능성 높아

최근 항소심 공판에서 검찰은 “피고인들은 그런 보고서 내용을 확인하고서도 이를 무시하고 추가적인 안전성 실험 없이 판매를 강행했다”며 “안전기준이나 근거 없이 표준 사용량을 결정하고 과량 사용 등에 대한 주의 등 고지도 전혀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제품 판매 중에도 소비자들이 호흡기 불편, 피부 과민 등 불만을 접수했고 영유아와 산모에게 안전한지 문의가 많았지만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며 “결국 본인들이 화학물질 제조 판매업자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주의의무를 지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피해자 박나원·박다원 등 44명에게 폐 손상을 입히고 피해자 4명에게 천식 상해를 입혔다는 게 이 사건 공소사실 요지”라고 했다.

검찰은 동물과 인간 간 종간 차이 등을 무시한 채 동물 실험만으로 인과관계를 판단하는 등 원심 오류도 지적했다.


검찰은 “전문가 진술, 증거 등을 종합해 인과관계 인정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것이 법률가 역할이라고 생각한다”며 “하지만 원심은 단편적인 접근으로 (과학적인 연구 결과 등)증거를 개별적으로 분리하고 비합리적인 근거로 주요 증거를 배척했다”며 “증거 전체 취지를 왜곡하고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시험 결과와 전문가 진술 등에 대한 판단을 누락했다”고 했다.

일례로 원심은 이규홍 박사 진술의 경우 “천식이 악화된다고 단정적으로 결론내리기는 어렵다”는 답변 취지를 왜곡했다. 이는 단 하나의 동물 실험 결과를 가지고 단정적으로 인과관계를 입증할 수 있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무엇보다 이 박사의 답변 취지는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며 “천식 발생에 근거가 된다”는 것이었다.

헌재는 지난달 29일 가습기살균제 관련 광고성 온라인 기사도 공정위 조사 대상이라고 결정했다. 2016년 조사 당시 공정위는 기자 이름이 쓰인 2005년의 온라인 기사는 심의 대상에서 제외했다. 그러나 헌재가 기사 형식이라도 광고로 볼 수 있고, 처분시효가 지나지도 않았다고 판단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이례적
신속 처리

해당 기사 3건은 여전히 구글과 언론사 홈페이지에서 찾을 수 있다. 헌재는 ‘당시 공정위가 사건을 종결할 때까지 인체 위해성 여부가 판단되지 않았으므로 거짓·과장 광고로 보고 행정처분과 고발할 가능성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헌재의 판단으로 공정위의 재조사가 이뤄지는 것도 맞지만 이례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공정위 한 관계자는 “보통 회의는 수요일이나 금요일에 열리는데 오는 24일에 전원회의가 열릴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만큼 사건을 질질 끌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통상적으로 공정위 최고 의결기구인 전원회의는 매주 수요일에 개최된다. 총 9명의 위원이 모여 공정거래법 위반 기업에 대한 제재 여부와 처벌 수위 등을 정하게 된다. 관행적인 일정대로라면 전원회의는 오는 26일에 열려야 한다.

특히 이번 사건의 공소·처분시효가 오는 30일 종료되기 때문에 공정위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표시광고법의 공소·처분시효는 제품이 판매를 위해 마지막으로 진열된 시점부터 5년을 기준으로 한다.

만약 오는 24일 공정위가 표시광고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하게 되면 SK케미칼과 애경에 시정명령과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고, 경우에 따라 검찰 고발도 이뤄질 수 있다. 공정위가 이달까지 결론을 내지 못하면 과징금이나 시정명령을 부과할 수 없고, 검찰에 고발하더라도 공소시효가 지나 기소가 불가능하다.

한기정 공정위원장은 최근 국회에서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해당 사건에 대해 “미흡한 부분이 있던 것 같아 사과드린다”며 “처분시효가 지나기 전 처리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공정위가 SK케미칼과 애경에 대한 조사를 부실하게 진행하지만 않았더라도 1심 재판의 결과가 달라졌을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지금까지 SK케미칼과 애경은 CMIT·MIT가 인체에 유해하지 않다고 광고해왔다. 가해 기업 측이 CMIT·MIT가 인체에 유해하다는 인과관계가 드러난 바 없다고 주장해온 근거가 된 것으로 보인다.

“인체 무해” 거짓광고 기사
가해 기업 변호 논리와 대조

1심 재판부도 가해 기업 측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법조계에서는 공정위의 조사 후 SK케미칼과 애경에 대한 처분이 확정되면 가해 기업 측 변호인들의 논리가 흐트러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

부장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확실한 실험 결과를 증거로 제출하는 것이 더 확실하지만 SK케미칼과 애경이 거짓광고를 해왔다는 게 인정되면 CMIT·MIT가 인체에 유해하지 않다는 건 거짓말이었다는 게 된다”며 “검찰의 혐의 입증이 한층 쉬워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SK케미칼과 애경의 무죄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이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만이 아니다. 지난해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진행한 신현우 전 옥시레킷벤지커 대표다. 신 전 대표는 2018년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징역 6년형을 확정받고 감옥살이를 했다.

그는 가습기살균제 참사에 대해 “사건 본질은 SK케미칼이 PHMG가 흡입하면 위험하다는 것을 알았고, 가습기살균제로 만들어질 것을 알았다면 흡입독성 실험을 해야 했다는 것이다. 재판부가 본질을 놓쳤다”고 주장했다.

2016년 진행된 첫 번째 가습기살균제 검찰 수사는 신 전 대표를 중심으로 진행됐다. 당시 검찰은 옥시제품에 PHMG를 공급한 SK케미칼은 기소하지 않았다. “가습기살균제로 사용될 줄 모르고 원료를 납품했다”는 SK케미칼 측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2019년 시작한 2차 가습기살균제 수사는 달랐다. 1998~2007년 SK케미칼 스카이바이오팀 연구실에서 PHMG 개발 업무 등을 총괄한 최모씨 등이 가습기살균제 원료로 PHMG를 옥시에 추천하면서 원료 분석자료에 독성 정보를 빼거나 누락한 정황을 확인했다. 신 전 대표도 서울남부교도소에서 검찰수사에 여러 차례 협조했다.

신 전 대표는 2020년 10월 최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SK케미칼이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해)PHMG가 유독물임을 알았더라면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의 원료물질로 채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판부는 SK케미칼 측이 원료 독성 정보를 누락하거나 허위 기재한 자료를 옥시에 넘긴 사실관계는 인정하면서도 이들의 잘못과 인명피해의 연관성은 인정하지 않았다. “(자료에) 부주의가 있더라도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사망이나 상해 결과에 본질적 기여를 해 업무상 과실치사상 공동정범으로서 죄책을 질 만큼 과실을 범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1심은 오판
거짓말 확신”

SK케미칼 측이 자신들이 넘긴 PHMG로 옥시가 가습기살균제를 만들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는지에 대해선 “의견교환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정도로 판단했다. 그러나 “옥시싹싹 가습기 당번의 원료물질을 선정하고 그에 대한 구체적 배합비율을 적절하게 정해 안전성을 갖춘 제품을 출시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옥시의 업무”라며 흡입 독성 여부를 판단할 주체는 원료공급자인 SK케미칼이 아닌 제조사 옥시라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이재명의 100일 결정적 장면들

이재명의 100일 결정적 장면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체감상 1년은 된 것 같다.” 어느 덧 이재명정부가 출범 100일째를 맞았다. 이재명 대통령에겐 숨 가쁜 3개월이었다. 12·3 비상계엄 선포, 탄핵 정국, 조기 대선 등 대형 정치 이슈는 지나갔다. 이제 본격적으로 국정 운영의 청사진을 실현해야 하는 시기다. 지지율은 이미 요동치고 있다. 어떤 이슈가 이정부를 뒤흔들었던 걸까? 지난 6월3일 21대 대통령선거가 열렸다. 지난해 12월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6개월 만에 대선이 치러졌다. ‘어대명(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이라는 말이 대선 전부터 파다했고 실제로 이변은 없었다. 재수 끝에 대통령에 당선된 이재명 대통령은 역대 최다 득표수를 기록했다. 다만, 과반 득표율에는 미치지 못했다. 무정부 상태 산적한 이슈 이번 대선은 대통령 탄핵으로 치러진 보궐선거여서 인수위원회 기간 없이 바로 임기가 시작됐다. 이 대통령 앞에는 비상계엄 사태 수습, 민생 회복, 국민 통합 등 국내 문제는 물론 미국발 통상 전쟁 등 국외 문제까지 이슈가 산적한 상태였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무정부’나 다름없는 상태로 6개월 동안 이어진 국정 공백을 메워야 했다. 이 대통령은 당선이 확정된 후 소감 연설에서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민주공화정 공동체 안에서 국민이 주권자로 존중받고 협력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것, 반드시 그 사명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란 극복 ▲민생 회복 ▲국민 안전 ▲한반도 평화 ▲국민 통합 등을 언급했다. 실제 이 대통령은 국회의 과반 의석을 등에 업고 ‘윤석열정부 지우기’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재명 정부 1호 법안으로 ‘내란 특검법’ ‘김건희 여사 특검법’ ‘채 해병 특검법’ 등을 통과시켰다. 김건희 특검법, 채 해병 특검법 등은 윤정부에서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번번이 폐기됐던 법안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 엿새 만인 6월10일 국무회의에서 3대 특검법을 의결했다. 그는 국무회의 이후 SNS를 통해 “이재명 정부 1호 법안인 3대 특검법은 내란 심판과 헌정 질서 회복을 열망하는 국민의 뜻을 받들기 위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특검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구속 기소하는 등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침체된 내수를 회복하기 위한 소비쿠폰도 지급했다.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을 거치면서 사회 분위기가 흉흉해졌고 이는 곧 경기 부진으로 이어졌다. 정치 상황이 좋지 않다 보니 사람들이 소비를 줄이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연말 연초 대목 장사를 망친 자영업자는 폐업을 걱정해야 할 지경에 몰렸다. 민생 회복 소비쿠폰 지급은 이 대통령이 대선후보 때부터 내세운 공약이다. 지난 7월21일부터 전 국민을 상대로 1차 소비쿠폰이 지급됐다. 기본 15만원에 인구 감소 지역 등에 일정 금액을 더했다. 2차 소비쿠폰은 상위 10%를 제외한 국민 90%가 오는 22일부터 신청할 수 있다. 13조원의 재정이 투입됐다. 윤정부 때부터 이어진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은 이재명정부 들어서도 쉽게 출구 전략을 찾지 못하는 모양새다. 무엇보다 의대생 수업 복귀에 대한 이정부의 행보에 민주당 지지자 사이에서도 불만이 제기됐다. 의료 정상화를 이유로 조건 없이 의대생 복귀를 추진하는 모습에 공정과 원칙이 깨졌다며 실망감을 표출한 것이다. 두 번의 도전 끝에 당선 내란 종식, 민생 첫 손에 의정 갈등은 윤정부 시기인 지난해 2월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겠다는 보건복지부의 발표로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전공의는 집단 사직하며 병원을 떠났고 의대생은 집단 휴학을 강행했다. 응급실 뺑뺑이 사건 등 의료 공백이 가시화되고 의료 붕괴까지 우려되다가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핵심 이슈에서 멀어졌다. 새 정부의 현안으로 넘어간 것이다. 이 대통령이 정은경 전 질병관리청장을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하면서 의정 갈등 해소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정 장관 지명 이후 의료계에서 일제히 환영 입장을 내놨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대생 복귀와 관련해 특혜 논란이 나왔고 국민 여론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의료계와 국민 여론의 괴리가 큰 상황이라 해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산재와의 전쟁’은 임기 초 이정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는 모양새다. 이 대통령은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SPC 공장을 현장 방문하는가 하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반복 공시로 주가 폭락’ 등 수위 높은 발언으로 건설업계를 겨냥했다. 이 대통령이 산업재해 근절을 외치자 건설업계가 납작 엎드렸다. 산재 사고가 발생하면 사용주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내용의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고도 일터에서 근로자가 죽는 사례가 거듭 일어나자 대통령이 직접 칼을 빼든 것이다. 연이어 산재 사고가 발생한 포스코이앤씨는 대표이사가 바뀌었고 DL건설은 임직원 전원이 사의를 표명했다. 일각에서는 이정부가 지나치게 기업을 ‘잡도리’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코스피 5000’을 외치며 주가 부양을 공언한 것과 실제 행보는 정반대라는 의견이다. 지금까지의 주가 상승은 이정부에 대한 기대감에서 비롯됐다면 앞으로의 상승분은 실물 경제에서 끌어 올려야 하는데 이를 이끌 기업을 너무 옥죄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다. 경제 정책의 방향도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된다. 지난달 1일 코스피 지수가 126.03포인트(3.88%)나 하락했다. 주가 3200선이 깨졌고 하락률은 미국발 상호 관세 부과로 충격을 받았던 지난 4월7일(-5.57%) 이후 4개월 만에 가장 컸다. 이른바 ‘검은 금요일’의 배경은 전날 이재명 정부가 발표한 세제 개편안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침체된 경기 소비쿠폰으로 이정부는 주식 양도소득세 과세 대상인 대주주 기준을 50억원에서 10억원으로 낮추고 최고 35% 배당소득 분리과세 도입 등을 담은 세제 개편안을 공개했다. 금융투자소득세 도입 조건부로 인하된 증권거래세율도 현재의 0.15%에서 2023년 수준인 0.2%로 환원됐다. 또 법인세 세율을 모든 과세표준 구간에 걸쳐 1%포인트씩 일괄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검은 금요일’의 후폭풍은 상당했다. 무엇보다 국내 주식시장에 대한 투자 심리가 위축됐다는 게 문제였다. 주가가 폭락한 지난달 1일 이후 열흘 사이에 거래 대금이 20%가량 줄었다. 이른바 ‘국장’에서 빠져나간 개인 투자자들이 ‘미장(미국 주식시장)’으로 몰려가면서 나스닥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가뜩이나 관세 협상으로 전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증시 부양책에 대한 의구심이 커졌다는 방증이었다. 일명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제2·3조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점도 우려를 더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노란봉투법은 하청 노동자에게 원청과의 교섭권을 부여하고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이 골자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 활동이 위축될 것이라는 예상이 끊이지 않았다. 법안이 통과되기 전부터 한국경영자총연합회 등 경영계를 대표하는 경제단체는 물론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등이 노란봉투법에 반대 의사를 드러냈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이 규제가 덜한 외국으로 나갈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경제단체 등은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시행을 유예해 달라고까지 했지만 그대로 진행됐다. 대통령실은 법안 통과 이후 상황을 주시하는 모습이다. 이 대통령은 노란봉투법 통과 이후 “노란봉투법의 진정한 목적은 노사의 상호 존중과 협력 촉진”이라며 “노동계도 상생의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책임 있는 경제 주체로서 국민 경제 발전에 힘을 모아주시기를 노동계에 각별히 당부드린다”고 강조했다. 광복절을 앞두고는 사면 문제가 불거졌다. 취임한 지 2개월 밖에 되지 않았고 전임 정부에서 임기 초 정치인 사면을 한 적이 없던 터라 이정부 역시 같은 길을 갈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했다. 사면 대상으로 거론되던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가 자녀 입시 비리 혐의 등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수감된 지 8개월 밖에 안된 점도 ‘사면 불가론’에 힘을 더했다. 주가 부양 공약 반대되는 정책 지난해 12월12일 대법원은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의 혐의로 기소된 조 전 대표에게 징역 2년에 추징금 600만원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조 전 대표는 나흘 뒤인 12월16일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만기 출소일은 내년 12월15일이었다. 조 전 대표가 이끌던 조국혁신당은 당시 대선에서 후보를 내지 않고 이 대통령을 지지했다. 조 전 대표의 사면 관련 언급이 나올 때마다 ‘대선 청구서’라는 말이 따라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후 종교계, 시민단체, 정치권 일부에서 조 전 대표를 사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조 전 대표가 검찰의 횡포에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다는 주장도 일부 진영에서 제기됐다. 특히 문재인 전 대통령이 대통령실 등이 조 전 대표의 사면을 직접 요구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조 전 대표는 문재인정부 시절 민정수석, 법무부 장관 등 요직을 맡은 바 있다. 문 전 대통령은 조 전 대표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고 언급하는 등 각별히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빗발치는 사면 요구에 고심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정치권 등에서 조 전 대표를 사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과 달리 여론이 좋지 않았기 때문. 특히 민주당 지지층 내에서도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목소리가 나왔다.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입시 비리 혐의 등이 민주당 지지층이 중요하게 여기는 공정과 상식의 가치에 반한다는 것이다. 지지율이 떨어지는 등 민심 이반이 예상된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이 대통령은 장고 끝에 조 전 대표의 사면을 결정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11일 조 전 대표를 비롯해 윤미향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은수미 전 성남시장,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 등 정치인과 고위공직자 27명을 포함해 총 83만6678명에 대한 대규모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분열과 반목의 정치를 끝내고 국민 대화합 차원에서 이뤄지는 광복절 특사’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광복절 사면은 이 대통령의 지지율을 뒤흔들었다. 사면 논의가 시작됐을 때부터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한 지지율은 발표 이후 눈에 띄게 꺾였다. 조 전 대표가 사면 이후 ‘광폭 행보’를 보이며 노출도가 높아진 것도 한몫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세제 개편안·사면으로 지지율 흔들 한일·한미 정상회담은 긍정적 평가 조 전 대표는 이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에 대해 ‘(사면이 끼친 영향은) N분의 1 정도’라고 발언한 부분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조 전 대표는 수감 한 달여 만에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여권 내에서도 조 전 대표의 행보를 불편해하는 기류가 감지되며 야권에서는 이정부를 공격하는 소재가 된 모양새다. 특히 조 전 대표를 비롯한 조국혁신당에서 우리의 길을 가겠다는 ‘마이웨이’ 행보를 공언하면서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계 개편이 일어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대통령의 임기 5년간 외교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정상회담도 잇따라 열렸다. 이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부터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던 ‘트럼프발 통상 전쟁’의 대응 방향이 윤곽을 드러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당선 직후부터 ‘관세’를 무기로 전 세계에 싸움을 걸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미 FTA’로 쌀 등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관세가 ‘0’이었기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증액 등을 언급했다. 시장을 개방하고 미국에 이른바 ‘동맹 비용’을 내라는 요구였다. 실무진이 진행한 관세 협상은 그 시발점이었고 정상회담은 미국발 청구서의 윤곽이 드러난 자리였다.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표면상으로는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각국 정상을 불러놓고 면전에서 망신주기 하는 등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방식의 트럼프 대통령과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한 점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일각에서는 정작 중요한 사안은 하나도 논의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앞서 조선업 협력, 원전 문제를 비롯해 자동차 등 주력 산업에 붙는 관세까지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일반적으로 실무진이 틀을 만들고 정상회담에서 결정되는 방식의 외교 관행이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먹히지 않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공동성명이나 합의문 등은 나오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앞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도 만났다. 이 대통령은 일본 방문 전 과거 한일 간 위안부 합의와 징용 배상 문제와 관련해 “국가 간 약속은 존중돼야 한다”며 기존 합의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당시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미국발 관세 관련 논의도 이뤄졌다. 당분간 민생 집중 취임 후 첫 외교 시험대를 넘은 이 대통령은 당분간 민생을 살피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당분간 국민의 어려움을 살피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민생과 경제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이규연 대통령실 홍보소통수석은 “몇 주간 정상회담에 몰두했기 때문에 국내, 특히 민생·경제성장과 관련된 부분을 앞으로 주력해서 챙기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