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기획> 가습기살균제 참사, 그후 ④엎치락뒤치락 과실치사 공방전

‘13명 무죄’ 망신당하고도 무기력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법원이 가습기살균제 참사 가해 기업에 면죄부를 던져준 지 2년이 돼간다. 항소심에서는 여전히 1심처럼 5명도 되지 않는 공판 담당 검사가 10명이 넘는 대형 로펌 변호사를 상대하고 있다. 검찰의 부담감이 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상황이 뒤집힐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가습기살균제 광고기사를 심사에서 제외한 것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왔기 때문이다. SK케미칼과 애경은 그간 일부 가습기살균제 원료가 인체에 유해하지 않다고 광고해왔으나 공정위는 해당 광고기사들에 대해 조사조차 하지 않았다.

SK케미칼과 애경산업 전직 임원들은 가습기살균제의 제조 및 판매와 관련해 업무상 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기소됐으나 지난해 1월,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클로로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MIT)이 인체에 유해하다는 근거가 밝혀진 바 없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었다. 

주요 임원들
전원 면죄부

그러나 지난달 말 공정거래위원회의 SK케미칼 무혐의 처분이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오면서 가해기업 유죄 입증이 수월해졌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검찰은 1심에서 SK케미칼과 애경의 혐의 입증에 실패했다. 앞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판사 유영근)는 지난해 1월12일 업무상과실치사상 등 혐의로 기소된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와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 등 13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제조·판매한 가습기살균제의 사용과 피해자들의 상해·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됨을 전제로 하는 공소사실의 나머지 쟁점은 살펴볼 필요가 없이 모두 범죄의 증명이 없다”고 판시했다.


검찰은 2018년 11월 SK케미칼과 애경산업의 전·현직 대표에 대한 고발을 계기로 재수사에 착수했고 “최초 개발단계부터 안전성 검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등 부실 개발된 사실을 확인했다”며 관련자들을 재판에 넘겼다.

2019년 2월 첫 기소가 이뤄진 후 피고인 13명에 대해 3개의 사건이 병합되고, 2년 가까운 기간 심리가 이뤄졌다. 검찰은 1심 결심공판에서 홍 전 대표와 안 전 대표에게 법정 최고형인 금고 5년을 구형했다.

‘가습기메이트’는 옥시의 ‘옥시싹싹 가습기당번’ 다음으로 많은 피해자를 낸 제품이지만, SK케미칼과 애경산업은 원료의 인체 유해성이 명확히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벌을 피해왔다.

그러나 2년 만에 나온 1심 결론은 ‘무죄’였다.

재판부는 역학조사, 임상사례, 세포독성시험, 빅데이터 연구를 흡입독성시험 결과와 함께 살펴보더라도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않았다고 봤다. 모든 연구 결과를 종합하더라도 CMIT·MIT가 폐질환이나 천식을 유발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엔 증거가 부족하단 것이다.

재판부는 “가습기살균제 피해 인정 기준은 근본적으로 PHMG 성분 가습기살균제 피해 사례로부터 도출된 것”이라며 “물질적 성질이 상당히 다른 CMIT·MIT 성분 가습기살균제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CMIT·MIT에 의한 폐손상 피해를 공식 인정한 것에 대해서는 “피해자 구제라는 목적을 위해 보다 폭넓게 인정하는 방향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피해 인정 절차에서 피해 인정 결과를 엄격한 증명이 필요한 형사사건에 그대로 적용하긴 어렵다”고 밝혔다.


헌재, 공정위 위헌 판단…항소심 영향 가능성
검, 주의의무 위반·침해 인과관계 규명 박차

CMIT·MIT 성분 가습기살균제를 ‘단독’으로 사용해 폐질환 피해를 인정받은 사람이 존재(11명)하는 것에 대해서도 “CMIT·MIT 가습기살균제 사용과 폐질환 사이의 개별적 인과관계를 의심할만한 사정이 다수 존재한다”고 판단했다.

‘환경부 종합보고서’에 대해서는 “인과관계를 증명하지 못한 기존 연구결과들에 대한 전문가들의 추정 내지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일종의 ‘의견서’”라며 “형사재판에서 이런 추정에 기초해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가습기살균제 참사 재판 항소심은 서울고법에서 진행되고 있다. 시간이 날 때면 항소심 공판을 지켜보며 상황을 지켜보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도 있다. 특조위 출신 한 관계자는 “1심과 느낌이 다르다. 1심 당시 검찰은 여론에 떠밀려 수사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최근 담당 검사가 정해지고 난 후 공판이 답답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검찰은 가습기살균제 제품의 인체 위해성과 상해, 사망과의 인과관계가 아닌 주의의무 위반 행위와 침해 결과 간의 인과관계 규명에 힘쓰고 있다. 이는 지난해 5월 항소심 재판부가 검찰 공소사실 중 사실관계나 주장이 불명확한 부분을 지적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당시 사건 주심인 김대현 부장판사는 검찰에 “공소장을 보면 피해자들의 제품 사용 시기가 2000년부터 시작되는데, 제품 생산 시기를 보면 2002년부터로 돼있다”며 “실제 사용 시기가 맞는지 차근차근 살펴봐야 할 것 같다”고 언급했다.

윤승은 재판장도 “과실범으로 처벌하려면 ‘주의의무’가 전제돼야 하는데, 개별 피고인들의 주의의무가 명시된 게 아니라 뭉뚱그려져 있다”며 “근거를 명확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SK케미칼·애경
고발 가능성 높아

최근 항소심 공판에서 검찰은 “피고인들은 그런 보고서 내용을 확인하고서도 이를 무시하고 추가적인 안전성 실험 없이 판매를 강행했다”며 “안전기준이나 근거 없이 표준 사용량을 결정하고 과량 사용 등에 대한 주의 등 고지도 전혀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제품 판매 중에도 소비자들이 호흡기 불편, 피부 과민 등 불만을 접수했고 영유아와 산모에게 안전한지 문의가 많았지만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며 “결국 본인들이 화학물질 제조 판매업자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주의의무를 지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피해자 박나원·박다원 등 44명에게 폐 손상을 입히고 피해자 4명에게 천식 상해를 입혔다는 게 이 사건 공소사실 요지”라고 했다.

검찰은 동물과 인간 간 종간 차이 등을 무시한 채 동물 실험만으로 인과관계를 판단하는 등 원심 오류도 지적했다.


검찰은 “전문가 진술, 증거 등을 종합해 인과관계 인정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것이 법률가 역할이라고 생각한다”며 “하지만 원심은 단편적인 접근으로 (과학적인 연구 결과 등)증거를 개별적으로 분리하고 비합리적인 근거로 주요 증거를 배척했다”며 “증거 전체 취지를 왜곡하고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시험 결과와 전문가 진술 등에 대한 판단을 누락했다”고 했다.

일례로 원심은 이규홍 박사 진술의 경우 “천식이 악화된다고 단정적으로 결론내리기는 어렵다”는 답변 취지를 왜곡했다. 이는 단 하나의 동물 실험 결과를 가지고 단정적으로 인과관계를 입증할 수 있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무엇보다 이 박사의 답변 취지는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며 “천식 발생에 근거가 된다”는 것이었다.

헌재는 지난달 29일 가습기살균제 관련 광고성 온라인 기사도 공정위 조사 대상이라고 결정했다. 2016년 조사 당시 공정위는 기자 이름이 쓰인 2005년의 온라인 기사는 심의 대상에서 제외했다. 그러나 헌재가 기사 형식이라도 광고로 볼 수 있고, 처분시효가 지나지도 않았다고 판단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이례적
신속 처리

해당 기사 3건은 여전히 구글과 언론사 홈페이지에서 찾을 수 있다. 헌재는 ‘당시 공정위가 사건을 종결할 때까지 인체 위해성 여부가 판단되지 않았으므로 거짓·과장 광고로 보고 행정처분과 고발할 가능성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헌재의 판단으로 공정위의 재조사가 이뤄지는 것도 맞지만 이례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공정위 한 관계자는 “보통 회의는 수요일이나 금요일에 열리는데 오는 24일에 전원회의가 열릴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만큼 사건을 질질 끌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통상적으로 공정위 최고 의결기구인 전원회의는 매주 수요일에 개최된다. 총 9명의 위원이 모여 공정거래법 위반 기업에 대한 제재 여부와 처벌 수위 등을 정하게 된다. 관행적인 일정대로라면 전원회의는 오는 26일에 열려야 한다.

특히 이번 사건의 공소·처분시효가 오는 30일 종료되기 때문에 공정위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표시광고법의 공소·처분시효는 제품이 판매를 위해 마지막으로 진열된 시점부터 5년을 기준으로 한다.

만약 오는 24일 공정위가 표시광고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하게 되면 SK케미칼과 애경에 시정명령과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고, 경우에 따라 검찰 고발도 이뤄질 수 있다. 공정위가 이달까지 결론을 내지 못하면 과징금이나 시정명령을 부과할 수 없고, 검찰에 고발하더라도 공소시효가 지나 기소가 불가능하다.

한기정 공정위원장은 최근 국회에서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해당 사건에 대해 “미흡한 부분이 있던 것 같아 사과드린다”며 “처분시효가 지나기 전 처리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공정위가 SK케미칼과 애경에 대한 조사를 부실하게 진행하지만 않았더라도 1심 재판의 결과가 달라졌을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지금까지 SK케미칼과 애경은 CMIT·MIT가 인체에 유해하지 않다고 광고해왔다. 가해 기업 측이 CMIT·MIT가 인체에 유해하다는 인과관계가 드러난 바 없다고 주장해온 근거가 된 것으로 보인다.

“인체 무해” 거짓광고 기사
가해 기업 변호 논리와 대조

1심 재판부도 가해 기업 측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법조계에서는 공정위의 조사 후 SK케미칼과 애경에 대한 처분이 확정되면 가해 기업 측 변호인들의 논리가 흐트러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

부장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확실한 실험 결과를 증거로 제출하는 것이 더 확실하지만 SK케미칼과 애경이 거짓광고를 해왔다는 게 인정되면 CMIT·MIT가 인체에 유해하지 않다는 건 거짓말이었다는 게 된다”며 “검찰의 혐의 입증이 한층 쉬워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SK케미칼과 애경의 무죄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이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만이 아니다. 지난해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진행한 신현우 전 옥시레킷벤지커 대표다. 신 전 대표는 2018년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징역 6년형을 확정받고 감옥살이를 했다.

그는 가습기살균제 참사에 대해 “사건 본질은 SK케미칼이 PHMG가 흡입하면 위험하다는 것을 알았고, 가습기살균제로 만들어질 것을 알았다면 흡입독성 실험을 해야 했다는 것이다. 재판부가 본질을 놓쳤다”고 주장했다.

2016년 진행된 첫 번째 가습기살균제 검찰 수사는 신 전 대표를 중심으로 진행됐다. 당시 검찰은 옥시제품에 PHMG를 공급한 SK케미칼은 기소하지 않았다. “가습기살균제로 사용될 줄 모르고 원료를 납품했다”는 SK케미칼 측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2019년 시작한 2차 가습기살균제 수사는 달랐다. 1998~2007년 SK케미칼 스카이바이오팀 연구실에서 PHMG 개발 업무 등을 총괄한 최모씨 등이 가습기살균제 원료로 PHMG를 옥시에 추천하면서 원료 분석자료에 독성 정보를 빼거나 누락한 정황을 확인했다. 신 전 대표도 서울남부교도소에서 검찰수사에 여러 차례 협조했다.

신 전 대표는 2020년 10월 최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SK케미칼이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해)PHMG가 유독물임을 알았더라면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의 원료물질로 채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판부는 SK케미칼 측이 원료 독성 정보를 누락하거나 허위 기재한 자료를 옥시에 넘긴 사실관계는 인정하면서도 이들의 잘못과 인명피해의 연관성은 인정하지 않았다. “(자료에) 부주의가 있더라도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사망이나 상해 결과에 본질적 기여를 해 업무상 과실치사상 공동정범으로서 죄책을 질 만큼 과실을 범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1심은 오판
거짓말 확신”

SK케미칼 측이 자신들이 넘긴 PHMG로 옥시가 가습기살균제를 만들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는지에 대해선 “의견교환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정도로 판단했다. 그러나 “옥시싹싹 가습기 당번의 원료물질을 선정하고 그에 대한 구체적 배합비율을 적절하게 정해 안전성을 갖춘 제품을 출시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옥시의 업무”라며 흡입 독성 여부를 판단할 주체는 원료공급자인 SK케미칼이 아닌 제조사 옥시라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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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캄보디아 ‘셀허브’ 추적

[단독]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캄보디아 ‘셀허브’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민낯이 드러났다. 주로 수도인 프놈펜 인근과 시아누크빌 범죄 단지가 그들의 주둔지였다. 국내 조직폭력배가 중국 갱단과 결탁해 만든 ‘셀허브’의 경우 피해자만 수십명이다. 이들은 엔터테인먼트 기업을 가장했다. 사이트에는 유명인의 사진이 수차례 도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는 사라진 셀허브 엔터테인먼트의 홈페이지. 지난해 7월 <일요시사>가 취재한 이후 대표이사의 이름과 사진이 여러 차례 바뀌었다.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표창장을 받았다며 문서를 위조하기도 했다. 이 기업의 정체는 로맨스 스캠 조직이다. 확인된 피해액만 약 40억원, 피해자는 수십명이다. 한 언론사는 보도자료까지 작성하며 홍보하기도 했다. 조직적 준비 경찰 수사 중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지난 24일, 셀허브 조직원 3명을 각각 구속·불구속으로 서울중앙지검에 송치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이들은 조건 만남 사이트를 운영한 로맨스 스캠 조직이다. 여성 관련 데이트 상품을 판매하거나 연애 빙자 사기를 일삼았다. 셀허브 조직원이던 A씨는 “연예인 지망생이나 모델과 연락하게 해 준다며 50만원에서 100만원까지 대포통장 계좌에 돈을 입금하게 한 뒤 텔래그램 아이디를 알려주고 연락하게 하는 시스템”이라며 “연결된 여자는 실제 남성이고 한국에서 조직폭력배로 활동하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주장했다. 이 조직은 지난해 3월 캄보디아 범죄 밀집 지역인 태자 단지에서 인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같은 해 5월 사이트를 개설해 조직원들에게 민간인 협박, 중국어 통역 등의 역할을 맡기고 수십명으로부터 약 40억원을 뜯어냈다. 같은 해 7월 <일요시사> 취재가 시작되자 이 조직은 셀허브 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의 이름을 ‘김현숙’에서 ‘박소희’로 변경하고 유명인의 사진을 수차례 도용했다. 유 전 장관에게 표창장까지 수여받았다며 피해자들의 의심을 피하려는 꼼수도 서슴지 않았다. A씨는 “조직에서 탈출하려는 사람은 밤새 맞거나 강제로 마약을 투약당하기도 했다. 조직폭력배 출신 한국 사람들이 간부고 일반 조직원은 교민 사이트를 통해 ‘한 달에 500만~1000만원을 벌 수 있다’는 거짓말에 속아 일하게 된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이 사건은 서울경찰청이 수사하기 이전인 지난해 7월부터 강서·영등포·구로경찰서 등에 여러 고소장이 접수됐었다. 하지만 수사는 원활하지 않았다. 주요 혐의자가 해외에 거주 중이거나 피의자 특정이 어려운 게 난관이었다. 수사를 담당했던 한 경찰 관계자는 “캄보디아 프놈펜에 주요 혐의자들이 거주한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지난해부터 공조를 요청했으나 캄보디아 당국이 비협조로 일관했다”며 “고소인분들이 ‘왜 안 잡냐’ ‘내 돈 어떻게 하냐’는 등 불만이 많으셨다. 매번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캄보디아가 협조하지 않으면 조치가 불가능했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3월부터 조직원 모집…태자 단지서 모의 ‘유인촌 표창장’ 걸어 놓고 ‘정상 기업’ 홍보 막막했던 수사는 대학생 박모씨 피살 사건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면서 풀리기 시작했다. 이재명정부가 캄보디아를 압박했고 현지에 구금된 한국인 범죄자 겸 피해자 수십명을 국내로 송환했다. 송환된 인원 중 일부는 셀허브 사건과도 연관된 것으로 파악됐다. 정성학 충남경찰청 수사부장은 지난 20일 청내 프레스센터에서 브리핑을 열고 “이들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사기) 및 범죄단체 가입 및 활동 혐의로 전원 구속했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부건(총책 가명, 40대 초반, 한국말을 쓰는 외국인 추정) 조직으로부터 확인된 피해 건수는 110건, 피해액은 93억여원에 달했다. 약 100명의 조직원을 거느린 부건은 지난해 중순부터 올해 7월까지 주로 프놈펜 웬치(범죄 단지) 및 태국 방콕 등지에서 한국인을 상대로 범행을 벌여왔다. 부건 조직은 지난 2018년 중국에서부터 활동을 시작해 그동안 단속을 피하려 태국, 캄보디아 등지로 거주지를 옮겨가며 범행을 계속해 왔다. 이들은 데이터베이스, 입출금 등을 지원·관리하는 CS팀과 광고를 보고 접근한 피해자를 기망하는 로맨스팀, 검찰 사칭 보이스피싱팀, 코인투자리딩 사기팀, 공무원 사칭 노쇼 사기팀 등 총 5개 팀으로 이뤄진 조직체계를 갖췄다. 이들은 가구판매업을 하러 캄보디아에 갔다고 진술했으나 이후 지역 선·후배 권유, 고액 아르바이트 인터넷 광고 등을 접하고 범죄에 연루된다는 걸 알면서도 조직에 가입해 활동한 것으로 조사됐다. 속아서 조직에 들어갔다고 진술하지 않은 이들의 유입 경로는 ▲지인 포섭 29명 ▲인터넷 광고 등 포섭 8명 ▲현지 카지노 포섭 6명 ▲기타 2명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남성 42명과 여성 3명으로 연인도 있었다. 대부분은 20~30대 연령으로 최소 2개월부터 최대 16개월까지 범행에 가담해 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조건 만남 사이트 경기북구경찰청 형사기동대도 전기통신금융사기특별법 위반 등 혐의로 피의자 15명 중 11명을 구속 송치했다. 이들은 지난해 8월부터 한 달간 캄보디아 범죄 단지에서 여성을 사칭, 조건 만남 등을 명목으로 피해자들로부터 돈을 가로챘다. 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성 만남 광고를 낸 후 이를 보고 연락해 온 피해자에게 여성인 척 채팅으로 유인했다. 여성을 소개받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개발한 조건 만남 사이트에 회원 가입과 인증을 받아야 한다고 속여 인증을 위한 돈을 요구했다. 3차례에 걸친 인증 절차 과정에서 여러 게임에 성공하면 가입비를 돌려준다고 속여 피해자로부터 1인당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을 받아 챙겼다. 피해자들이 믿을 수 있도록 별도의 만남 인증과 후기글을 남기는 ‘화력방’도 운영했다. 현재까지 확인된 피해 규모는 피해자 36명, 피해금 16억원 상당이며, 1인당 최대 피해 금액은 2억1000만원이다. 이들은 대부분 20~30대 남녀다. 최초 범죄집단을 구성한 캄보디아 프놈펜 지역 명칭 ‘툴콕’을 의미하는 ‘TK’파로 스스로를 부르며 총책을 정점으로 한 지휘·통솔 체계를 갖췄다. 조직 운영을 총괄하는 총책, 이를 보좌하며 실무 전반과 인력 공급 등을 담당하는 총관리자, 각 파트 팀원의 근태를 관리하고 지시하는 팀장으로 구성됐다. 또 자체적인 조건 만남 홈페이지를 제작하는 개발자, SNS에 광고 글을 게시하는 홍보팀과 광고를 보고 접근한 피해자를 기망하는 로맨스 2개팀으로 역할을 분담했다. ▲상호 가명 사용 ▲근무 중 휴대전화 금지 ▲사진 촬영 금지 ▲야간에는 커튼으로 외부 차단 ▲다른 부서와의 업무 내용 공유 금지 등의 규칙에 따라 생활하기도 했다. 중국 국적 100명 뒷배 이들은 총책이 마련한 건물에서 2인1조로 합숙했는데 프놈펜 툴콕 지역의 13층 건물을 사용하다가 지난 8월, 현지 단속을 피해 센소크 지역 7층 건물로 이전해 범행을 이어오던 중 현지 수사 당국에 의해 검거됐다. 이들은 경찰 조사에서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SNS 구직 광고나 조직원을 통해 범죄단체에 가입했다고 진술했으며 사기임을 알고도 범행을 지속한 것으로 조사됐다. 피의자 대부분은 현지에서 구금된 중에도 총책이 이른바 관작업을 통해 자신들을 석방시켜 줄 것이라는 말만 믿고 대사관의 도움을 거절하고 귀국하지 않았다. 셀허브 사건 간부들은 타 사건에도 연루됐다. 지난 7일 캄보디아 바벳에 인접한 베트남 떠이닌 지역 국경 검문소 인근에서 30대 여성 B씨가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는데, 숨지기 직전까지 셀허브 간부와 같이 있었다. B씨의 사인은 마약 과다 투약이었다. 국내 정보·수사기관은 B씨가 셀허브에서 한국인 명의의 대포통장을 공급해 왔다고 보고 있다. A씨는 “셀허브에서 일할 사람을 모집하는 역할을 했던 B씨인데 통장을 팔려고 캄보디아에 도착한 한국인들을 유인해 범죄 단지로 팔아넘기고 유인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실제 정보·수사기관도 B씨에 의해 범죄 단지에 넘겨지는 피해를 입거나 유흥업소 일을 강요당한 사례를 확인하고 조사 중이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사실상 마약을 강제로 과다하게 투약당한 살인사건이라는 첩보는 아직 확인 중”이라며 “특정 조직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건 현지 경찰도 수사 중인 내용”이라고 말했다. 대개 조직폭력배 출신…지휘는 중국 조직이 맡아 40억 피해액 환수 불가능 “자금 세탁 끝났다” 첫 데이트하던 연인을 치어 여교사를 숨지게 했던 이른바 ‘대전 머스탱 교통사고’의 피의자도 셀허브 조직원으로 확인됐다. 피의자 전모씨는 2019년 2월10일 오전 10시14분 대전 중구 대흥동에서 면허도 없이 외제차를 운전하던 중 인도를 걷던 조모씨와 박모씨를 들이받아 박씨를 숨지게 하고, 조씨에게 중상을 입혔다. 전씨가 대여한 외제차는 불법 대여 차량이었다. 이 차량은 애초 대구에 사는 C씨가 자신 명의로 캐피털에서 월 115만원씩 주는 조건으로 60개월간 대여한 것이다. C씨는 사촌 안모씨와 함께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나모씨가 올린 ‘외제차 저렴하게 빌려줄 사람을 찾는다”는 글을 보고 접근, 한 달에 136만원씩 받기로 하고 대여한 머스탱 차량을 재임대했다. 나씨는 이렇게 빌린 머스탱 차량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활용해 “외제차를 빌려준다”고 광고하며 또다시 대여업을 했다. 전씨는 나씨가 올린 이 글을 보고 일주일에 90만원씩 주기로 약속하고 머스탱을 빌려 운전했다. 매년 확정되는 범죄수익 추징금은 30조원을 넘지만 환수 금액은 1%에도 미치지 않는다. 법무부가 캄보디아에서 보이스피싱과 로맨스 스캠 등의 범죄로 발생한 현지 범죄수익을 국내로 환수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우선 법무부는 “캄보디아 내에서 벌어진 범죄 가운데 현재 국내에서 수사 중이거나 재판 중인 사건이 1차 현지 수사 의뢰 대상”이라며 “이후 국내에서 유죄 선고를 받으면 최종적으로 환수 대상이 된다”고 밝혔다. 국제형사사법공조 조약에 따르면 해외에서 발생한 범죄라 하더라도 피해자가 국내에 있고 피해액이 특정될 경우, 우리 정부가 해외에 범죄수익 환수를 요청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2019년 캄보디아와 국제형사사법공조 조약을 체결해 2021년 정식 발효됐다. 주요 간부들 타 사건 연루 정보기관 관계자는 “범죄자 개인이 아닌 조직을 대상으로 한 범죄수익 환수 사례는 거의 없다. 특히 국내에서 수사와 재판이 끝나야 한다”며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나서는 건 좋지만 이미 늦었다. 범죄조직 특성상 이미 코인이나 대포 통장으로 제3국에 은닉하거나 세탁을 하고도 남았을 시간”이라고 지적했다.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도 “수사가 끝나고 유죄 판결이 나기까지 수년이 걸리는데 환수 절차는 이 모든 사법절차가 종료돼야 가능하다. 특히 조세회피처로 범죄수익을 옮겨놨다면 환수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봤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