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쇼’ 유튜브 속 대부업의 비밀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2.09.13 10:50:46
  • 호수 139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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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지원으로 돈 빌려준다고?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경기가 좋지 않다. 이럴 때 몸집을 불리는 게 대부 업체다. 대부 업체는 2020년 12월 말 8501개였고 지난해 6월까지 177개가 증가했다. 소비자들이 정식 등록된 대부 업체를 직접 선택한 것이라면 문제가 없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대부 업체가 유튜브 광고로 정부 지원인 것처럼 속이고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해 6월 1~3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3명에게 현재 스마트폰 사용 여부를 물은 결과 95%가 ‘사용한다’고 답했다. 국내  성인의 스마트폰 사용률은 2012년 1월 53%에서 그해 6월 60%, 2013년 2월 70%, 2014년 7월 80%, 2016년 하반기 90%를 돌파했다. 2017년부터 2020년까지는 93%로 거의 변화가 없다. 

부작용

지난해 조사에서는 60대 이상의 스마트폰 사용률이 처음으로 80%대에 올라섰다. 다른 연령대와 달리 남성 90%, 여성 77%로 성별 차이가 있다. 주관적 생활 수준별 스마트폰 사용률은 하층에서만 88%, 그 외는 95% 이상이다. 

스마트폰 사용률이 높아지면서, 덩달아 올라간 수치가 있다. 바로 유튜브 사용시간이다. 앱/리테일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와이즈레테일이 ‘유튜브’ 앱의 사용자와 사용시간을 지난해 발표했다.

와이즈앱‧와이즈레테일이 한국인 만 10세 이상 안드로이드와 iOS(아이폰) 스마트폰 사용자를 표본 조사한 결과, 유튜브 앱을 사용한 사람은 4041만명이었다. 국내 스마트폰 사용자 4568만명 중 88%가 유튜브를 한 달 동안 1번 이상 사용했으며 총 사용시간은 12억3549만 시간이다.


1인당 한 달에 30시간34분, 하루에 59분 이상 이용한 것이다.

유튜브 앱 사용자 4041만명 중 10대가 13.4%, 20대가 17.2%, 30대가 19.4%, 40대가 21.3%, 50대 이상이 28.7%로 조사됐다. 50대 이상에서 유튜브 이용률이 가장 많았다.

또 유튜브 앱 총 사용시간 12억3549만 시간 중 10대가 20.6%, 20대가 23.3%, 30대가 17.2%, 40대가 13.6%, 50대 이상이 25.4%의 비중으로 유튜브 총이용 시간도 50대 이상이 가장 길었다. 

경제적 기반이 잡혀 있는 50대의 유튜브 이용시간이 늘어나면서 생기는 부작용이 있다. 정부를 사칭한 대부업 광고로 피해자가 늘어나는 양상이다. 

‘긴급 생활 지원금’ 등으로 정부 사칭 
정식 대부 업체지만 ‘아닌 척’ 운영

지난달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유튜브에 정부기관으로 오인할 수 있는 사이트명을 사용하거나, 정책 상품을 취급한다고 광고해 소비자를 유인하는 대부업 광고가 넘쳐나고 있다. 간판은 정책 상품이라고 걸었지만, 대다수는 캐피털 등 2금융권 대출이나 대부업 대출을 중개한다. 

대부분 금융당국과 지방자치단체에 정식 등록된 합법 업체지만, 소비자가 대부 업체라는 사실을 알아채기는 쉽지 않다. ‘대부업 등록 및 금융 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대부업법)은 대부업체나 대부중개 업체는 상호와 광고에 ‘대부’라는 단어를 명기해야 한다. 소비자가 대부 업체임을 인지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한 것이다.


그러나 업체들은 등록한 상호와 별도의 업체명‧사이트명을 쓰는 방식으로 법망을 교묘히 피해가는 꼼수를 쓰고 있다. 등록 상호는 ‘○○ 대부’지만 사이트명은 ‘취약계층 금융 지원센터’ 같은 식으로 대부 업체라는 것을 숨긴다.

대신 웹페이지 하단 등 찾기 힘든 위치에 깨알 같은 글씨로 등록 상호를 표시하는 식으로 빠져나간다.

실제로 유튜브 광고에서 정부 지원으로 돈을 준다는 걸 보고 “이거 정말 안전한 것이냐”는 질문을 하는 글이 많다.

A씨는 유튜브 광고에 ‘국민채무통합’이라는 글을 보고 대출 상담을 받았다. 그러자 ○○라는 대부중계 업체에서 “대환대출 중계를 해준다”고 연락이 왔다. 곧 ○○대부중계 업체의 여성 담당자가 A씨에게 전화를 했다. “○○ 업체는 이자가 12% 조금 넘고 5500만원까지 대출이 승인난다”고 설명했다. 

결국 A씨가 유튜브 광고로 본 ‘국민채무통합’은 대부 업체로 연결고리였다. 

B씨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돈이 급한 시점에 유튜브에 뜬 광고를 보고 조회 신청을 했다. 상담원은 곧 B씨에게  대출이 가능한지 알아본다고 연락해왔다. 상담원이 제시한 업체는 두 곳이었는데 둘 모두 대부 업체였다.

대출 안 받아도 끝도 없이 연락 시도
대부분 중개업체…불법·작업 대출도

상담원은 “B씨는 카드론이 있으니 신용 대출로 카드론을 막고 중간에 여윳돈이 생기면 중간 상환해서 되도록 빨리 갚아라”고 조언까지 했다. 그러나 대부 업체인지 몰랐던 B씨는 업체를 믿을 수 없어 대출을 받지 않았다.

문제는 이런 중개 업체는 개인정보로 대출 가능한 곳을 모두 조회하고, 대출이 안 되면 작업 대출이나 불법 대출도 불사한다. 여기서 말하는 작업 대출이란 신원을 속여서 대출금을 받는 것이다.

C씨는 1년 전 유튜브를 통해 중개 업체로 대출을 알아봤지만 대출을 받지 않았다. 그때부터 휴대전화에 불이 나도록 연락이 왔다. 온갖 보이스피싱 문자, 전화, 타 대부 업체 알선 전화, 스미싱 문자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날아왔다. 대부 업체 전화번호를 차단해도 매번 새로운 연락처로 연락이 왔고, 이는 1년이 넘게 지속됐다. 

또 중개 업체를 통해 대출받은 D씨는 연봉이 오르거나, 살림살이가 조금이라도 나아지면 귀신같이 알고 대부 업체에서 전화가 와서 대출 권유를 한다고 전했다.

이런 일을 사전에 막기 위해 금융당국이 불법 사금융 단속을 시작했다. 지난달 윤석열 대통령은 불법 사금융 척결 지시의 후속 조치로 서민을 현혹하는 불법 동영상 대부 광고를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점검기간 내 적발되는 경우 무관용 원칙에 따라 엄정 조치할 예정이다.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이 지난 5일부터 30일까지 동영상 대부 광고로 인한 서민층의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경찰·서울시·경기도와 합동해 ‘불법 동영상 대부 광고 특별 점검기간’을 운영한다고 지난 1일 밝혔다.

이는 국무조정실 주관 불법 사금융 척결 범정부 태스크포스(TF)에서 논의된 사항이다. 최근 유튜브와 소셜미디어 등에는 정부기관으로 보이는 명칭을 사용하거나 정책 상품을 내건 대부업 광고가 넘쳐나고 있는 것에 지목했다. 특히 안심전환대출·대환 등을 미끼로 사용하는 것을 집중 단속한다.

불법으로 의심되는 대부 광고는 금감원 불법사금융피해 신고센터, 서울시 공정거래종합 상담센터, 경기도 경제수사팀으로 신고 제보가 가능하다. 특히 금감원은 우수 제보자를 선정해 포상하는 ‘불법 금융 파파라치 제도’도 운영하고 있다.

지난달 21일 수원 세 모녀가 불법 사금융의 빚 독촉에 시달려 세상에 등진 사건을 계기로 불법 사금융에 대한 사회적 공분이 일고 있다. 지난해 금감원에 접수된 불법 사금융 피해 신고는 9238건으로 전년보다 25.7% 증가했다.

피해 늘어

취약계층 대상 최고 금리 초과 관련 신고는 2255건으로 전년 대비 85% 늘었고 불법 채권추심은 869건으로 같은 기간 49.8% 증가했다. 대부협회는 대부업자 회원의 온라인 동영상 광고를 사전에 심의할 수 있는 ‘대부금융 광고 심의 규정’을 다음 달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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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정부는 당시 합병으로 인해 외국계 투자회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및 메이슨 캐피탈과 국제투자 분쟁에 휩싸였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정으로 정부는 이들에게 약 2100여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 중 아주 작은 소생의 실마리가 나왔다. 엘리엇 분쟁 사건의 판정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정부가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와의 8년간 진행 중인 국제투자 분쟁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1300여억원을 배상하라는 국제투자 분쟁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의 항소심에서 승소하면서다. 이로 인해 배상 판결이 취소될 가능성도 되살아났다. 사건 발단 짚어보니… 법무부에 따르면 영국 항소법원은 지난 17일 한국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법원인 고등법원에 사건을 환송했다. 이에 따라 사건을 되돌려받은 영국 고등법원은 엘리엇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을 결정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재판 관할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한국 정부로서는 중재판정 자체를 무효화할 가능성을 다시 확보하게 된 셈이다. 엘리엇 배상 사건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엘리엇은 해당 의혹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나서야 7억7000만달러의 손해를 입었다며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의 ISDS 제기는 대한민국 정부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만약 엘리엇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막대한 국민 세금이 배상금으로 지급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국제 중재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외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전담팀을 구성하고 국제 법률 전문가들과 협력해 엘리엇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양측은 수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국정 농단 사건의 재판 결과와 국민연금 관계자들의 증언 등이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 기나긴 법적 공방 끝에 지난 2023년 6월20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PCA는 엘리엇의 ISDS 사건에 대한 최종 판정을 내렸다. 판정 결과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PCA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당시 환율로 약 690억원) 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엘리엇이 청구한 금액인 약 7억7000만달러의 약 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 중재에서 패소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PCA는 판정문에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행위가 한국 정부에 귀속되는 행위며, 이로 인해 엘리엇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공적기금으로서 정부의 통제 하에 있으며, 그 의사결정이 정부의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의 정당한 주주 권리를 침해하고 투자가치를 훼손했다고 봤다. 배상 취소 소송 항소심 승소 한미FTA상 성립 불가능 판단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 판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판정 직후 즉각적으로 불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7월18일, 정부는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하는 동시에,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판정에 법리적 오류가 있거나 중재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주장하며 판정을 뒤집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특히, 정부는 엘리엇 사건이 한미 FTA상 ‘성립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점을 취소소송에서 가장 크게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국제투자 분쟁은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협정 위반 행위에 대해 제기하는 국제중재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상업적 행위’일 뿐 국가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으나 1심 법원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는 해당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를 진행했고 지난 17일 영국 항소법원은 우리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사건은 다시 1심 법원인 영국 고등법원으로 환송됐으며, 영국 고등법원은 배상 판결을 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애초 재판 관할권이 있었는지부터 다시 심리하게 된다. 이 판결은 한국 정부가 거액의 배상을 면할 수 있는 반전의 기회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엘리엇 배상 사건의 발단은 삼성물산 제일모집 합병에서 촉발됐다. 지난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 계획을 발표하며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1대 0.35의 비율로 흡수합병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및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으로 해석됐으나,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불리한 합병 비율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8년 소송 결말은?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는 삼성물산의 약 3배였지만, 자산총액 기준으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의 3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음을 공시하며 합병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합병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됐으며 합병 조건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엘리엇의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하며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합병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합병 반대 의견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내부 투자위원회를 거쳐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결국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됐고, 그해 9월1일 통합 삼성물산이 공식 출범했다. 이후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불법성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관련 인사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2025년 7월17일, 대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과 관련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이 회장은 약 10년간 이어져 온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게 됐다. 리스크 해소 다양한 반응 엘리엇 배상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항소심에서 ‘한국 승소’로 뒤집히자, 취소 청구를 주도한 법무부 장관으로서 환영했다. 한 전 대표는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낸 많은 ‘좋은 공직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제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지휘했던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의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대한민국이 이겼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저 소송(취소소송 제기) 관련해 저를 많이 비난했었다”고 정쟁적 비판을 상기시켰다. 그는 “‘국익’이 걸렸지만 결과가 나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큰 문제를 결정할 때, 몸 사리면 공직자들은 편하다. ‘지면 네 돈 낼 거냐’는 폭력적인 질문 앞에서 ‘안 하고 말지’ 생각이 들게 마련”이라며 “그래도 몸 사리지 않고 국익을 생각한 좋은 공직자들이 있다. 이 경우가 그랬다”고 설명했다. 특히 “엘리엇 항소에 대해 ‘질 가능성이 크니 항소하지 마라, 그래서 지면 한동훈 사비로 돈 대신 내라’는 감정적 비난이 많았고, 그런 제목의 언론 사설까지 있었다”면서 공직사회에 “피 같은 국민 세금 아끼기 위해 많은 분들이 혼신의 노력을 해온 것을 제가 잘 안다”고 격려를 보냈다. 한 전 대표는 “의미있는 승리지만 이 사안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쉽지 않은 싸움”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국익을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엘리엇 배상 사건처럼 메이슨 캐피탈이 같은 이유로 제기했던 ISDS의 중재판정 취소소송 항소 포기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한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엘리엇과 메이슨은 같은 이유로 ISDS를 제기했다”며 “엘리엇은 취소소송의 항소심을 진행하면서 메이슨은 지연이자 등으로 항소심을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엇 사건이 항소심에서 승리하면서 메이슨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4월 정부 대리 로펌 및 외부 전문가들과 논의한 끝에 정부의 메이슨 ISDS 중재판정 취소 청구를 기각한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발단 “이재명정부가 구상권 제기해야” 메이슨은 지난 2018년 9월 우리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금 1억9139만달러(약 2609억원)와 판정일까지 연 5% 월 복리이자를 지급하라는 ISDS를 제기했다. 정부는 한미 FTA상 ‘정부가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는 공식적인 국가 행위를 전제로 하는데, 개별 공무원의 불법적이고 승인되지 않은 비위 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4월 우리 정부를 향해 메이슨 측에 3203만876달러(약 438억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싱가포르 법원은 메이슨 측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 정부 측에 손해배상을 명한 중재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법리뿐 아니라 항소 제기 시 발생하는 추가 비용 및 지연이자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결정했다"고 항소 포기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번에 항소심에서 정부가 승리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국민 세금으로 내야 할 배상액이다. 정부가 메이슨에 지급해야 할 돈은 지연이자까지 포함해 약 887억원이 됐다. 엘리엇에 배상해야 할 금액은 당초 1300억원에서 지연이자까지 더하면 약 1500억원가량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에서는 엘리엇과 메이슨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만큼 당시 합병을 주도한 이 회장과 두 기업의 합병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상대로 구상권을 제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리이자가 계속 쌓이면서 배상액도 천문학적으로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 이재명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월 대선을 앞두고 참여연대는 대선후보들에게 엘리엇·메이슨 ISDS 배상금 구상권 행사 여부를 듣기 위해 질의문을 보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참여연대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서 세금 수천 억원의 손실을 되돌리기 위한 의지와 책임을 보여야 할 자리에서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7일에는 이재용 회장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다시 한번 “재벌 봐주기 판결로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고 총수 일가의 전횡을 용인하는 해로운 판례를 남긴 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주장과 함께 정부를 향해 구상권 청구를 요청했다. 구상권 문제는? 다만 국제통상 전문가로 활동한 송기호 변호사가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에 있다는 점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송 실장은 변호사 시절 “법무부는 당시 중과실로 불법 행위한 대한민국 공무원들, 이들과 공모 관계라고 인정된 이재용 회장을 상대로 신속하게 구상권 청구를 해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 등 공무원에겐 국가배상법에 따라 당사자에게 청구하고, 이 회장에 대해선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청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kcj5121@ilyosisa.co.kr>